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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83
한자 味摩之
영어공식명칭 Mimaj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기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612년 - 미마지 일본에 건너가 기악무 전수
추모 시기/일시 1986년 - 미마지 미마지 사적 현창비 건립
활동지 일본 나라현 -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
성격 예술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음악가|무용가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음악가이자 무용가.

[개설]

미마지(味摩之)[?~?]는 중국 오나라에서 기악무(伎樂舞)를 배우고 돌아온 뒤 612년(무왕 13) 일본으로 건너가 기악무를 전수한 백제 무왕 때의 음악가이자 무용가이다. 미마지는 티베트어로 ‘고승(高僧)’ 또는 ‘예능인’를 의미하는데 백제에서 온 예능이 능하였던 승려를 ‘미마지’라고 칭하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활동 사항]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스이코[推古] 천황 20년(612)에 백제인 미마지가 건너와 나라[奈良]현 사쿠라이[櫻井]에서 살며 소년들을 모아 기악무를 가르쳤다”라고 전하고 있다. 미마지가 일본에 전한 기악무는 한국의 산대가면극(山臺假面劇) 같은 계통으로 음악이 곁들여진 탈춤 형식의 공연이다. 왕권 강화와 불교 포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져 궁중과 사찰의 의례에서 자주 연희되었다고 한다.

일본 쇼토쿠[聖德] 태자의 절대적인 지원 아래 미마지가 전수한 기악무는 ‘기가쿠(伎樂)’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며 고대 일본 음악의 주류가 되어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 일본 전통 예능의 뿌리가 되었다. 미마지가 기악무를 전수할 때 사용하던 탈 14가지가 나라현 도다이지[東大寺] 경내에 있는 고대 일본 왕실의 보물 창고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

미마지의 기악무는 부여 백제기악보존회와 일본 텐리대학[天理大學]에 의하여 각각 복원되었는데 부여군에서는 백제 역사와 관련된 행사뿐 아니라 군민들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행사에서 미마지 기악무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부여군에서는 1986년 ‘미마지 사적 현창비’를 구드래조각공원 내에 건립하였고, 2017년부터 백제기악보존회백제제례악단 주최로 미마지 사적 현창비 건립을 기념하는 ‘백제기악미마지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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