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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이후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정치 단체의 마산 지부. 건국 준비 위원회는 해방 직후 일본으로 행정권을 인수받고 과도기의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는 것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는데 마산 지역도 같은 취지로 건국 준비 위원회 마산부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45년 8월 17일 석정(石町)의 공락관(共樂館)에서 건국 준비 위원회 마산부 위원회 결성 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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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경남 진해에서 학구적 생활과 신체 단련을 위해 조직된 청년 단체. 1921년부터 2년간 대정 학교[현 경화 초등학교] 출신 청년들로 구성되어 ‘구학(究學)’이라는 회지를 발간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구학회에서는 민족 사상의 고취와 민족적 역량을 쌓는다는 의미의 ‘구학(究學)’이라는 회지를 발간하였다. 1923년 8월 5일 경화동 공회당에서 우원도의 사회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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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 지역에서 미국 군정에 협조하기 위해 조직된 우익 단체. 1945년 8월 17일 마산 창동 공락관에서 건국 준비 위원회를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친일파 출신 인사들이 함께 결성하고 마산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마산 지역 건국 준비 위원회는 위원장은 물론 조직과 서기, 실질적인 행동대 격인 치안대장 등 핵심 요직은 모두 진보적인 사람들이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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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산청 출신으로 마산과 경성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 권우성(權又成)[1915~?]은 1931년 3월 서울 중앙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2월 6일 새벽 일제의 열하(熱河) 출병을 반대하는 반전격문(反戰檄文)을 살포하다 검거되어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34년 8월 마산에서 독서회, 적색 노동 조합 결성을 위해, 1935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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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사회 운동가 김귀동(金龜東)[?~?]은 1924년 10월 마산 노동 동우회 집행 위원, 1925년 1월 마산 독서회 창립을 주도하고 간사, 마산 청년회 임시 총회의 간부, 1925년 9월 마산 청년 연합회 창립 총회 집행위원, 1925년 11월 경남 청년 연맹 집행 위원, 1927년 1월 마산 사회 단체 연합 간담회에서 「정우회 선언」의 운동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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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활동한 공산주의 운동가. 김상주(金尙珠)[1902~?]는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교육을 받고 10대 중반부터 마산의 원동 상회(元東商會), 원동 물산 무역회사를 다녔다. 1920년대에는 노동 운동과 공산 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4년 7월에는 마산 노농 동우회 교무부에 위원이 되었고 그해에 비밀단체 사각 동맹(四角同盟)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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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 김형두(金炯斗)[1892~?]는 경상남도 마산부 만정(萬頂)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귀국할 때는 마산구락부가 주최하는 환영회에 참석하였다. 1923년 7월 마산 무산 청소년단 고문이 되고, 8월 마산 노농 동우회의 집행 위원으로서 북성회(北星會) 순회 강연단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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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 나영철(羅英哲)[1912~?]은 1928년 조선 박람회를 이용해 러시아로부터 비밀리에 들어온 이종림(李宗林)을 중심으로 고학당 학생과 화신 상회 점원 등에게 연락하여 주의 선전과 기관 조직 활동을 하였다. 1930년 4월 서울에서 이종림의 지도 아래 조선 공산당 재건을 위한 야체이까를 조직하였다. 1930년 7월에 마산으로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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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에 결성되었던 청년운동 단체. 남면청년동맹은 창원군 남면 지역에서 활동하던 남면청년회와 신흥청년회 두 청년단체의 동맹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19년 12월 5일 창원 지역에서 제일 먼저 결성되었던 남면청년회는 1925년 1월 신흥청년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나 몇몇 회원들은 계속 남면청년회라는 명칭으로 활동함에 따라 신흥청년회와 남면청년회의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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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최초로 결성된 청년운동 단체. 남면청년회는 지역의 교육, 문화, 산업, 농촌 생활 개선, 체육 장려 등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9년 12월 5일 안준(安浚)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1921년 조선청년회연합회에도 속해 있었다. 1925년 1월 남면청년회는 신흥청년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이후에도 남면청년회라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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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계열의 범 정당 정치 단체인 독립 촉성 국민회의 마산 지부. 이승만 계열인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 계열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중앙 위원회가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통합 결성하였다. 건국 준비 위원회 마산 지부가 인민 위원회로 개편되기 이전 급속히 좌경화되었는데 건국 준비 위원회에 초기에 참여했던 우익계 민족주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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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항일 운동가.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해방 운동 비밀 결사 조직인 조선 국권 회복단 마산 지부에서 안확·이형재·김기성·배중세(裵重世) 등이 활동하였다. 1. 창원 읍내 3월 중순 들어 경상남도 각지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창원 읍내에서도 애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만세 운동이 비밀리에 계획되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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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전국적인 농민운동 중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전개된 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대규모 농민운동으로 갑오농민운동 또는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한다. 당시 조선은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주도해왔던 청(淸)나라의 몰락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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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8월 17일 마산 지역에서 김명규, 김형선, 김상주, 김직성, 김기호, 황기룡이 모여 조직한 공산당 조직. 1924년 8월 17일 마산 지역에서 마산 공산당이 창립되었다. 당원이었던 김상주는 적기(赤旗)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1925년 7월과 8월 사이에 마산 공산당과 마산 공청을 조선 공산당 마산 야체이카, 고려 공청 마산 제1, 제2 야체이카로 개편하였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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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에서 조선인 자본가들이 설립한 친일 단체. 1911년에 마산 경찰서장의 발기로 교풍회(矯風會)가 조직되었다. 이것이 전국 최초의 교풍회였다. 이 조직은 이후 경남 교풍회로 발전하고, 마산에는 1914년에 그 지부가 설립되었다. 한말 이후 교육과 계몽을 통해 마산의 근대화에 앞장서기도 하였지만 교풍회는 일제의 폭압이 드세었던 1910년대와 1930년대의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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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지역에서 ‘문화 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한 청년과 노·장년층, 민족주의자와 친일적인 인물이 섞여 다양한 성격을 가진 단체. 1920년 6월에 마산 지역 문화 운동의 구심으로서 마산 구락부가 창립되었다. 마산 구락부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이었던 민의소(民議所) 건물을 회관으로 사용하고 민의소 대표였던 손덕우가 초대 회장이었다. 마산 구락부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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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지역의 기독교 청년 운동 단체. 공려 청년회(共勵靑年會)는 1911년 김윤경, 이순상 등에 의해 창립되었다. 마산 교회의 청년 조직인 공려 청년회(共勵靑年會)는 이윤재 등 교회 청년들에 의해 면려 청년회로 개칭되었다. 마산 구락부와 함께 마산 지역 ‘문화 운동’의 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종교 활동 외에 강연회 토론회를 활발히 개최하여 교육의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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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신인회 주도로 1923년 3월 14일 마산 노농 동우회가 창립되어 노동절 행사와 노동 운동 지원 활동, 노동자의 파업과 분규를 중재하는 임무를 수행한 단체. 1923년 5월 1일 제37회 노동절을 맞아 마산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 오학선, 강덕보 등의 마산 노농 동우회 관계자와 이정찬, 김기호, 손문기 등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시가행진하였다. 여기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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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부내에 산재한 노동 단체가 마산 노동회와 마산 인쇄 직공 조합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 1920년대 이후 수많은 노동 조합과 노동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이들의 사소한 경제 투쟁마저 탄압하였기 때문에 개별 노동조합의 분산적인 투쟁은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 연맹 조직을 건설하게 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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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월 마산 지역에서 최초로 결성된 사회주의 사상 단체. 마산 지역의 사회 운동·노동 운동의 발전을 위해 결성되었다. 1923년 1월 마산 지역에서 사회주의 사상 단체인 마산 신인회가 만들어졌다. 1922년 11월 마산 지역에서 만들어진 사상 단체이고 신인회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1923년 8월에는 혜성사(彗星社)라는 사상 단체를 새로 조직하였다. 신인회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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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무정부주의자. 1925년 김형윤을 중심으로 조한응, 김계홍 등이 조직하였다. 1927년 서울에서 김산이라는 무정부주의자가 내려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외국인 선교사나 일제에서 벗어난 자주적인 독립교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중의 지지를 확보한 마산의 무정부주의자들은 창원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창원 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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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준비 위원회 마산 지부에서 마산 인민 위원회로 개편된 민간 자치 기구. 1945년 9월 6일 건국 준비 위원회가 조선 인민 공화국으로 개편됨에 따라 1945년 11월까지 각지의 건국 준비 위원회 지방 조직들과 각종의 자생적 조직들이 전환되어 만들어진 전국적 민간 자치 기구로 마산 지역도 건국 준비 위원회 마산 지부에서 1945년 10월 마산 인민 위원회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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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적인 탄압에 마산의 지식인과 노동자들이 결합하여 혁명적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 운동을 전개하려는 운동. 1930년대에 이르러 일본 제국주의는 대륙 침략 수행을 위해 조선을 병참 기지화하는 과정에서 대중적 노동조합운동은 핵심적 억압 대상이었다. 이전까지 합법적 노동운동, 개량적 노동운동도 금지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고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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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마산 지역에서 결성된 직업별 노동 조합. 1925년 5월 마산 인쇄공 조합이 결성되어 같은 해 11월 부산 인쇄 직공 조합의 총파업에 이어 다음 해 3월에 총파업을 벌였다. 인쇄 직공들의 쟁의는 활발하였으며 상호 부조에도 적극적이어서 1926년 3월에는 이 시기 각지에서 전개된 인쇄 직공들의 연속 파업 투쟁을 기반으로 전조선 인쇄 직공 총연맹이 결성되었다.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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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지역의 분리 되어 있는 여러 청년 단체들이 마산 청년 연합회에서 발전적 해소로 결성된 단체. 조선 청년 운동의 방향 전환기를 맞아 같은 사상과 정신 아래 여러 개의 청년 단체의 분리 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하에 마산 청년 동맹이 결성되었다. 마산 청년 연합회는 정우회 선언 이후 민족 운동의 전국적인 방향 전환기를 맞아 1927년 4월[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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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지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4개 단체가 연합하여 만든 단체. 일제하 사회 운동의 발전에 따른 결과로서 신간회 마산 지회 이외에도 일제의 탄압에 효율적인 대처를 위해 마산 지역 각종 청년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하였다. 1925년 9월 26일 마산 수양 청년회의 발기로 마산 청년회, 어시장 공조 청년회, 형평 청년회의 4개 단체가 연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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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지역에서 ‘문화 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한 청년과 노·장년층, 민족주의자와 친일적인 인물이 섞여 다양한 성격을 가진 단체. 마산 청년단에서는 마산 지역에 운동장이 없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해 김지철(金知喆), 이윤재(李允宰), 손문기(孫汶岐), 김인숙(金仁淑), 김재○(金宰○), 박성우(朴成宇) 등이 발기하여 1920년 9월 8일 오후 3시 마산 원(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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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6월 마산 구락부의 청년부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체. 마산 청년회는 마산 구락부의 재산을 넘겨받으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마산 청년회의 활동은 마산 구락부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계몽의 내용에 반제·반봉건사상, 특히 사회주의 사상이 많이 포함되었다. 창립 이후 마산 청년회는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으나 조선 공산당 창립 이후 활기를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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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마산과 창원 지역에 산재해 있는 사회단체 간 연락을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 1928년 신년 경상남도 마산과 창원의 각 사회단체 신년 간담회 석상에서 두 지역에 산재해 있는 마창 사회 단체의 연락을 위해 상설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28년 1월 4일 마산에서 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1928년 1월 31일 창원읍 청년회관에서 창립대회 및 집행위원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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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출신으로 사회단체 운동가. 박청수(朴淸壽)는 1929년 2월 18일 마산 예수 교당에서 윤열(尹烈)의 사회로 열린 제2회 마산 청년 동맹 임시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29년 9월 16일 오후 8시 동맹 회관에서 제10회 마산 청년 동맹 집행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이 집행 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사회를 맡았다. 1930년 3월에는 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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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때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1. 마산 지역 일제 강점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은 일부 매판자본가·기생지주(寄生地主)들을 제외한 우리의 대다수 민중들을 몰락과 고통으로 몰고 갔다. 마산 지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마산에 1909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마산 출장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의 토지 박탈과 고율의 소작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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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에서 전개된 농민조합 건설 운동. 상남면 농민조합건설운동은 일제의 경제적 착취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창원 지역에 지사를 설치함과 더불어 당시 창원면, 상남면, 웅남면 등의 토지 대부분을 약탈하는 등 경제적인 수탈이 심해지자 이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농민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1927년에 일어난 운동이다. 창원 지역에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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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에서 일어났던 독립 만세 운동. 상남면 항일의거는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같은 해 4월 29일 오후 1시 창원군 상남면 마산헌병대 사파정(沙巴丁)분견소로부터 남쪽으로 약 400m쯤 떨어진 진해~창원 간의 대로상에서 학생·청년을 중심으로 하는 50여 명의 군중이 상남면의 장날을 이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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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과 웅남면 농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양척식주식회사 반대투쟁. 상남면민 동양척식회사 반대투쟁은 일제의 경제적 착취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창원에 지사를 설치함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소작인들에 대해 자행해 온 경제적 수탈과, 특히 1929년 가뭄으로 인한 수확량의 급격한 감소를 무시한 이전 그대로의 소작료 강제 징수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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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마산 지역의 항일 민족 운동 연합 전선체. 마산에서는 1927년 7월 20일 신간회 마산 지회가 설립되었다. 1929년 12월 27일 제3회 정기 대회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12월 23일 일제 경찰이 금지 명령을 내렸다. 1930년 1월 5일 신간회 마산 지회 집행 위원회를 열려고 마산 경찰서에 집회 계를 제출했으나 일제는 '연말 경계'란 구실로 집행 위원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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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통일전선체로서 결성된 단체. 1926년 11월 15일 정우회선언을 통해 방향전환론이 제기되면서 6·10만세 사건으로 위축된 사회운동은 새로운 활기를 되찾는다. 그 결과 1927년 2월 15일 비타협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통일전선체인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신간회는 창립 10개월 후인 1927년 12월 전국에 100여 개 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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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 청년들을 계몽하기 위해 설립된 청년단체. 신흥청년회는 계급의식의 촉진, 미혹적 인습의 타파, 조직적 단결 도모를 강령으로 설립하였다. 1925년 1월 26일 남면청년회에서 새롭게 회명을 고치고 새로운 활동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남면청년회의 회원 중 일부는 신흥청년회가 아닌 남면청년회라는 회명을 그대로 사용하며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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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사회 운동가. 여해(呂海)는 1923년 3월 마산 노농 동우회 집행 위원장 겸 서무부 주임이 되었으며, 6월 창원에서 구산(龜山) 소작 조합을 창립할 때 ‘소작 조합의 필요와 농촌의 진흥책’이란 강연을 하였다. 1923년 7월 마산 무산 소년단 고문을 맡았고, 사상 단체 혜성사(彗星社) 결성에 참여했다. 1924년 3월 마창(馬昌) 노농 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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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 웅동면 마천리 청년들을 중심으로 1920년대에 조직된 청년회. 1920년 웅동 청년회가 창립되어 지역 문화 향상에 노력하였으나 면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勢力)계급의 방해를 받아 웅동 청년회의 활동이 부진하던 차에 1925년 8월 1일 유학생 10여 명이 중심이 되어 웅동 면려 청년회에 합류하였다. 웅동 청년회는 조선 일보 진해 지국의 후원으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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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 웅천 지역 소년 소녀들로 구성된 단체. 1920년 8월 1일 웅천 지역 향교에서 웅천 소년단 창립 준비 위원회를 열고 8월 8일 웅천 보통학교[현 웅천 초등학교] 교정에서 웅천 소년단 결성 대회를 열었다. 민족정신 고취와 청소년들의 단합을 위해 체육회와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소년 단가와 소녀 단가를 만들어 청소년들의 기상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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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해 웅천의 웅천 청년단을 개편해 조직된 청년회. 1924년 3월 27일 조성복, 주국녕, 문석주 등 5명이 중심이 되어 80여 명으로 웅천 청년단에서 웅천 청년회로 개편을 하였다. 당시 웅천 청년단의 주기철이 평양 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어 청년단에서 청년회로 개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일본 제국주의의 청년 운동에 대한 탄압이 날로 심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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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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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진해 지역에서 지주와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횡포에 맞서 소작 관계 개선과 농조 건설을 위한 농민 운동. 지나친 소작료의 징수 고리대의 악용 등 농민들은 늘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여기에 마름들의 농간과 그들에 의한 소작권의 빈번한 이동으로 소작 농민들의 삶이 매우 힘들어졌다. 이에 지주와 동척의 횡포에 맞서 소작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 조합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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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 주민들에게 무산계급 이념을 선전·교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1923년 3월 전조선청년당대회를 기점으로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항일운동은 종래 민족부르주아 중심의 항일운동이 지녔던 한계를 극복하고 일반 대중들을 자각시키면서 대중들의 실질적 권익신장을 보장하는 항일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처럼 민족부르주아 중심의 운동에서 무산계급 중심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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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지역에서 소작농과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 등이 설립한 단체. 노동자의 인격 향상과 상식 증진, 근검절약과 친목 및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중앙의 조선 노동 공제회 창립과 동시에 각 지방에 지회가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마산 지역에는 마산 지회와 삼진 지회 및 구산 지회 등이 설립되었다. 이후 마산 지부는 1922년 10월 조선 노동 공제회로부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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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을 주축으로 한 천민 계급이 평등을 기치로 진주에서 조직했던 조선 형평사의 마산 분사(分社). 1924년 3월 6일 마산에서 조선 형평사 마산 지회인 마산 분사(分社)가 조직되었다. 1928년 3월 13일 경남 형평사 연맹 발기회를 가졌는데 마산 분사, 김해 분사, 창원 분사, 사천 분사, 진주 분사, 통영 분사, 부산 분사, 동래 분사, 밀양 분사가 발기 단체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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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에서 결성되었던 조선형평사 창원 분사. 형평사(衡平社)는 1920~1930년대에 걸쳐 백정들의 실질적 해방을 목적으로 활동한 전국적 조직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백정이라는 신분적 차별이 법률적으로 철폐되었으나 이후에도 실생활에서는 차별이 여전했다. 1922년 일본 관서 지방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의 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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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 출신의 사회단체 운동가. 주병화(朱炳和)[?~?]는 1923년 10월 진해 노동회 창립 대회에서 서무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진해 소작회 간부로 있던 1924년 7월 진해에서 일어난 소작 쟁의에 관여하였고 이 때문에 업무 방해죄로 벌금 80원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1925년 2월 사상 단체 적성회(赤星會) 결성에 참여했고, 4월 창원 청년 연맹 집행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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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청년단과 대동 구락부가 통합하여 창립된 어용적 성격을 띤 단체. 1921년 4월에 진해 청년단과 대동 구락부가 통합되어 창립되었다. 진해 청년단의 단장 김병일(金秉一)과 대동 구락부 부장 홍수오(洪守五) 사임 후 두 단체의 의견을 모아 진해 구락부로 개칭하고 구자원(具子源)이 부장에 선출되었으며, 또 부무(部務)가 일층 확장되었다. 진해 청년단은 1915년 창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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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진해에서 노동 계급의 단결과 노동 운동을 펼치기 위해 조직된 단체. 진해 노동 청년 동맹은 1925년 창립하였다. 1927년에는 진해 제4 청년 동맹과 진해 노동 청년 동맹은 취지가 비슷하여 두 단체의 협의한 결과 합치기로 하였다. 1926년 11월 3일에는 경남 진해 노동 청년 동맹의 제3회 정기 집행 위원회는 진해 청년 회관에서 우두만 사회 하에 개최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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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진해 지역의 소년들의 사회 운동 참여를 위해 조직된 단체. 회원 20여 명으로 창립되었다. 일본 경찰의 탄압으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성주사 진해 포교당[현 정암사]으로 사무실을 옮겨 명칭을 불교 소년회로 개칭하였다. 이후 종교 집회를 가장하여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일본 경찰이 포교당의 잦은 집회를 구실로 포교당 주지에게 압력을 가해 포교당을 더는 집회 장소로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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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1923년 소작료를 인하하고 관리자 횡포를 막기 위해 결성된 소작회. 지주가 소작권을 가질 수 없게 하고 고율의 소작료로 착취할 수 없게 대항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23년 6월 18일 주병화(朱炳和), 문찬두(文酇斗), 김종건(金種健) 등이 발기인이 되어 불교 포교당[정암사]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다시 조직을 변경하여 종래 소작인만으로 조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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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에서 1925년 설립된 청년 운동 단체. 경남 창원군 진해면에서 1919년 창립한 진성회(進誠會)가 1925년 12월 13일 오전 11시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진해 제4 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학원을 설립하여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1926년 10월 31일 제2회 정기 총회에서는 회관 건축, 교양 문제, 재정 문제, 경남 사회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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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활동했던 항일 청년 운동 단체. 1923년 4월 진해 청년 구락부가 정기 총회를 열어 진해 청년회로 개칭하였다. 1915년 진해 청년단을 출발로 해 1919년에는 대동 구락부와 통합하였고 1923년에는 진해 청년회가 되었다. 1923년 10월 13일 일본 토요야마 대학 졸업생 엄용식, 쥬오우 대학 졸업생 이영실을 초청하여 경화동 불교 포교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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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마산 성호리(城湖里)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 영국령 오스트레일리아 미손회(會)의 파견 선교사 아담슨이 일찍이 본국에 청원하여 매달 금화 십 원의 보조를 받아 성호리 구 예배당[현 마산야학교] 사무실에 사숙(私塾)을 설치하고 학생 20여 인을 모집하여 이승규(李昇奎)가 숙장(塾長)으로 구학문을 가르쳤다. 1908년 7월 경성 정동 교회 고(故) 남승(南昇)을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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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개항장·개시장에 설치되어 행정과 대외통상 업무를 보던 기관.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1876), 원산(1879), 인천(1882)을 비롯해 주요 항구가 개방되면서 그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교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거류지 관계 사무와 통상사무를 전담하고 처리할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감리서는 초기에 해당 지역의 부사가 감리를 겸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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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에서 노동야학총동맹이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려다 일제에 발각된 사건. 1933년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역의 각리에 산재한 노동야학 15개소의 야학 대표자와 교원이 북면노동야학총동맹의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이들은 공립보통학교의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하려다가 일제에 적발되었다. 북면노동야학총동맹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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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가난한 아동들을 위해 만든 야학. 창원노동야학교는 창원 지역에서 보통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과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창원청년단의 문화부 사업의 일환으로 1920년에 설립되었다. 1925년 경비 부족으로 운영난을 겪자 창원청년회 정기총회에서 회원들이 경비를 모을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에도 노동야학은 계속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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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운동 단체. 창원동화합성회(昌原東華合成會)는 창원 지역에 산재해 있는 많은 소년 단체와 청년 단체들이 함께 수양을 통하여 합치 단결하여 사회에 실익을 주는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1927년 9월 28일 창원청년회관에서 임시의장에 선출된 김치용(金致鏞)의 사회로 창원동화합성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이 후 창원동화합성회는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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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던 여성 중심의 사회운동 단체.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청년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지역의 젊은 여성들은 창원 지역의 여성을 대상으로 사회적 교양을 쌓고 교육이나 훈련을 통하여 개개인의 인격을 완성하고자 여성 사회운동 단체인 창원여자청년동맹을 결성하였다. 1926년 12월 19일 집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집행위원으로 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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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2월에 창립된 창원 청년 동맹의 진해 지부. 조선 청년 대중의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이익에 노력하여 생활의 향상을 기하고, 의식적 교양 및 훈련을 통해 청년 대중의 완성을 위해 조직되었다. 창원 청년 동맹은 1928년 2월 7일 창립하였고 창원 청년 동맹 진해 지부는 1928년 4월 1일 창립되었다. 창원 청년 동맹 진해 지부는 조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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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에서 결성되었던 사회운동 단체. 창원청년단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지식을 고양시키고 체육 활동을 보급하며, 직업을 갖도록 하여 지덕체(智德體) 강화를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창원청년단은 1920년 6월 27일 창원면 중동리의 김일현(金一鉉)·김정숙(金正淑)·황의성(黃義性)·설근헌(薛根憲)·황진환(黃臻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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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던 청년 중심의 사회운동 단체.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통일적인 조직을 결성하여 청년 대중의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이익의 획득과 생활의 향상을 꾀하고자 설립하였다. 또한, 조선 청년 대중의 의식과 교양 등을 철저히 훈련하고 조선 청년 대중의 장고한 조직의 완성을 기하고자 창원청년동맹을 설립하였다. 1928년 2월 7일 창원청년연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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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던 7개의 청년단체가 연합하여 결성한 사회운동 단체. 창원청년연맹에는 창원청년단(김한용·이주만), 남면청년회(안준), 소계 청년회, 진해청년회 등이 참가하였다. 진해청년회는 일찍이 남면청년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안준(安浚)과 교분이 있던 주병화(朱炳和)를 매개로 창원청년연맹에 쉽게 참가할 수 있었다. 1925년 4월 4일(음력)에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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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지역에 설립된 무정부주의자 비밀결사. 1928년 5월경 창원공립보통학교 훈도(訓導)로 재직하던 조영기(趙榮基)와 청년 손조동(孫助同) 외 몇몇 청년들이 독서구락부를 조직하여 사상에 관해 연구해 오다가 1928년 8월경 흑우연맹으로 변경한 뒤 부근의 청년들을 권유해 가맹시켰다. 이 후 마산경찰서에 조직이 발각되어 검거된 이후 취조하였으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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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면민들이 전개한 일본인 군수에 대한 규탄 시위. 1910년부터 1918년까지 경상남도 내무부 및 제1부 도서기를 역임한 인물인 일본인 구찌이시[口石敬義]가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창원군수로 재직하면서 군민의 안전과 생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영리와 치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에 농민들이 도청, 군청, 면사무소 등에 진정하는 등 강하게 항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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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읍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창원읍 항일의거는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같은 해 3월 23일과 4월 2일 창원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말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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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마산 노동회가 발간했던 기관지. 『첫소리』는 마산 노동 동우회가 1926년 2월 마산 노동회로 명칭을 바꾸고 야학 경영, 강습회 개최, 연맹체 조직, 벽신문 발간 등의 사업을 추진하며 만든 신문이다. 갱지 전지 한 장에 손으로 써서 만든 신문 체제의 벽보이다. 노동자들이 쉽게 인지하도록 전체 국문으로 썼다. 1926년 5월 20일부터 창간호를 발행하여 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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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청년 운동가. 최달수(崔達守)[?~?]는 주로 소년·청년 운동에 관여하였다. 1930년 1월 마산 소년 동맹이 주최한 동화회(童話會)에 참여하고 3월에는 마산 청년 동맹 대회에서 마산 보통학교 문제를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검거되었다가 풀려났다. 1930년 3월 마산 청년 동맹의 집행위원, 4월 마산 소년동맹의 집행 위원장, 6월 경남 소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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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 최명줄(崔明茁)[1909~?]은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졸업한 후 마산 어시장 점원으로 일하였다. 1929년 2월 마산 청년 동맹 집행 위원이 되고, 8월 마산 자유 노동 조합 검사 위원, 마산 노동 연맹 교육부 간사로 활동하였다. 1930년 3월 신간회 마산 지회 서무부원, 마산 자유 노조 정치 문화 부원, 6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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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출신의 독립 운동가·공산주의 운동가. 팽삼진(彭三辰)[1902~1944]은 1919년 3·1 운동 때 마산 장터에서 시위를 주도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8개월간 복역하였다.[독립유공자 공훈자료와 『매일신보』[1919.5.22.]에는 6개월을 복역하였다고 한다.] 1923년 6월 보안법 위반자들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조직된 의성계(義誠契)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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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신인회의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1923년 8월 새롭게 조직한 사상 단체. 사회주의 사상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한 주에 한 차례 모임을 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혜성사는 1923년 8월 조직되었고 1924년 8월 5일에 사각 동맹과 함께 ‘마산 공산 청년회’를 조직하였고, 1924년 8월 17일에 ‘마산 공산당’을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