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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고려초에 활동한 청주의 호족. 청주 출신의 호족으로 청주의 영군장군(領軍將軍)이 되었다. 918년(태조 1) 7월 부장(副將) 연익(連翌)·흥현(興鉉)과 함께 개경에 가서 태조(太祖)를 예방하자 태조는 이들에게 각각 말과 비단을 차등있게 주었다. 이때 견금(堅金)은 개경에 있는 청주 출신 김근겸(金勤謙), 관준(寬駿), 김언규(金言規) 등을 제거할 것을 청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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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전사창(前司倉), 대사(大舍)의 직을 띠고 있다. 대사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2번째에 해당한다. 당간기에 보이는 김(金), 손(孫), 경(慶), 한(韓) 4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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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장군.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경진(慶珍)의 아들이다. 경대승(慶大升)의 동생은 이소응의 사위이다. 힘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일찍부터 큰 뜻을 품고 가사를 돌보지 않았다. 15세에 음보로 교위(校尉)가 되었으며 뒤에 장군에 이르렀다. 아버지 경진은 욕심이 많아 남의 토지를 빼앗아 재산을 많이 모았는데, 그가 죽자 경대승이 토지를 모두 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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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재상.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우대언(右代言) 경사만(慶斯萬)의 아들이다. 아들에 경보(慶補), 경진(慶臻), 경의(慶儀)가 있다. 1354년 군부판서(軍簿判書)로 등용되었으며, 판추밀원사, 참지문하정사를 역임하였다. 지정사상의(知政事商議)로 승진하였는데, 이때 경성수축을 논의하자 그가 정세운, 유숙과 더불어 “병란과 기근으로 인하여 만일 축성하면 백성이 견디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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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매곡(昧谷)의 호족.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잡자 청주 출신의 순군리(徇軍吏) 임춘길(林春吉)이 반역의 음모를 하고 청주로 돌아가려 할 때, 경종은 그의 반역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복지겸(卜智謙)의 보고에 의해 이들은 체포당하여 모두 다 죄를 인정하였다. 이에 모두 금고(禁錮)처분을 받았다. 이때 청주 출신의 현율(玄律)이라는 인물이 태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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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전병부경(前兵部卿), 대나마(大奈麻)의 직을 띠고 있다. 대나마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0번째에 해당한다. 같은 기록에 보이는 대사(大舍) 경기준(慶奇俊)보다는 지위가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당간기에는 김(金), 손(孫), 경(慶)·한(韓) 4성씨가 보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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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때 연산 매곡(현재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출신의 호족. 아내는 경종(景琮)의 누이이다. 어려서부터 용략이 있었으며, 신라말의 혼란기에 본읍의 장군(將軍)을 칭하였다. 처남인 경종이 친궁예의 성향을 보이다가 태조(太祖) 왕건(王建)에게 처형당하였다. 이후 공직(龔直)은 후백제 견훤(甄萱)의 세력에 속하였던 것 같으며, 맏아들 공직달(龔直達), 둘째아들 공금서(龔金舒)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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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1285년(충렬왕 11) 지공거 설공검(薛公儉) 밑에서 문과에 급제해 문한서(文翰署)에 속하였다. 충직하고 문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예(郭預)[1232~1286]의 손자이며, 한림원사(翰林院事)를 지낸 곽운룡(郭雲龍)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지태(郭之泰)가 있고, 손자에 곽충수(郭忠秀)가 있다. 원나라 세조(世祖)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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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열(郭說)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원(郭垣)과 곽여(郭輿)[1058~1130]가 있다. 처음에는 청주의 향리였으나 선종(宣宗)을 잠저 시절에 섬기었는데, 선종이 즉위하면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감찰어사(監察御使)를 거쳐 추밀원(樞密院) 좌승선(左承宣)에 이르렀다. 1086년(선종 3) 전중소감(殿中少監)으로 요나라에 토산물을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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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몽득(夢得)으로 곽상(郭尙)의 아들이다. 어려서 꿈에 어떤 사람이 여(輿)라고 명명하였으므로 이름을 삼고 몽득으로 자를 삼았다. 어려서부터 맵고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았으며,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기를 싫어하고 항상 홀로 한방에 거쳐하여 학문에 힘썼다.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부(內侍府)에 속했다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홍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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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선갑(先甲)이며, 호는 연담(蓮潭)이다. 초명은 왕부(王府)이다. 그의 아들에 곽운룡(郭雲龍)과 곽진(郭鎭)이 있는데, 곽운룡은 벼슬이 도진장(都津長)에 이르렀고, 곽진은 등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가 뒤에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었다. 1263년(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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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996년(성종 15)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1011년(현종 2) 중추직학사(中樞直學士)를 역임하였고, 1015년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토산물을 바치고, 겸하여 거란이 해마다 내침함을 고하고 위태할 때 구원해 줄 것을 청하였다. 1016년 형부시랑(刑部侍郞)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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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추암(秋巖)이다. 문하평장사 곽침(郭琛)의 아들이다. 1360년(공민왕 9)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정몽주(鄭夢周), 문익점과 동방(同榜)이었다. 1374년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1377년(우왕 3) 5월 곽추가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정희(鄭熙) 등 99명을 뽑았다. 1378년 밀직사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정당문학(政堂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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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청주 출신의 인물. 궁예(弓裔) 정권 하에서 같은 고을 사람 아지태(阿志泰)로부터 참소를 당하였다. 아지태는 아첨을 좋아하고 간사하였는데, 궁예에게 같은 고을 사람 관서(寬舒)와 입전(笠全) 등을 참소할 것을 청하였다. 해당관리가 이 사건을 심리하였으나 수년 동안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다. 왕건(王建)이 당장 그 흑백을 분간해 판결을 내리니 여러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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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인물. 청주인으로 고려 초에 서울에 와 있던 인물이다. 태조(太祖)의 즉위 초에 청주 출신의 견금(堅金)과 관준 등이 서울에 있으면서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고 하면서 없애버릴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향의 인물로부터 참소를 당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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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태봉)의 건국자이자 왕. 신라 47대 헌안왕(憲安王)의 아들이며, 일설에는 경문왕(景文王)의 아들이라고 한다. 5월 5일 외가에서 출생하였는데, 일관이 말하기를 단오날 태어났고, 태어나면서부터 이가 나고 이상한 빛까지 나타나므로 장차 국가에 해로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믿은 왕이 죽일 것을 명해 사자가 그 집에 가 강보에 싸인 아이를 빼앗아 다락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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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인근 출신의 인물. 928년(태조 11) 왕건(王建)이 견훤(甄萱)에 보낸 글에 간단히 언급된 인물이다. 즉 연산군(燕山郡) 지경에서 길환(吉奐)을 목베었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길환은 친 견훤의 정치적 입장을 보인 인물로서 고려의 왕건에 의해 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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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대등(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부호장(副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데, 부호장은 호장 다음의 위상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김씨(金氏)는 당시 당간의 건립을 주도한 김(金), 손(孫), 경(慶), 한(韓) 4성씨 가운데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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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재경 관인.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장악했을 무렵 수도에 있던 청주 출신의 인물이다. 태조가 즉위 초에 청주인의 동정을 살피려고 청주 출신의 능달(能達), 문식(文植), 명길(明吉)을 청주에 보냈는데, 능달은 믿을 만하다고 말했으나, 문식과 명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김근겸(金勤謙)에게 말하였다. 그런 사실에서 김근겸은 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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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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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쓰여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대등(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부호장(副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데, 부호장은 호장 다음의 위상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철당기에는 김씨(金氏) 성을 가진 인물이 여럿 보이며 직위가 다른 성씨보다 높아 청주의 성씨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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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대등(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부호장(副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데, 부호장은 호장 다음의 위상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김수△라고 나오는데 그 인물이 아닌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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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인물. 918년 태조(太祖)가 정권을 장악한 직후에 관직을 전면 재임명하였을 때 김언규(金言規)는 일길찬(一吉湌)으로 백서성경(白書省卿)에 임명되었다. 태조 초 청주 출신의 견금(堅金)으로부터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무고당하였다. 그러나 김언규가 그것을 알고 견금을 체류시키고 관찰하도록 아뢰자, 태조가 김언규의 말을 따랐다. 사무에 능숙하고 청렴하였으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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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 청주지방의 토호. 용두사 철당을 세울 것을 발원한 인물이다. 962년에 쓰여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당대등(堂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당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호장(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토호층의 최상층이다. 고을의 호가(豪家), 향려(鄕閭)의 관족(冠族)으로 일컬어졌으며, 뜻밖의 병에 걸려 부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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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의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를 직접 짓고 글씨를 직접 썼다. 전한림학생(前翰林學生)의 직을 띠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청주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문장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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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용두사 철당간을 완성하였다. 철당간을 세울 것을 발원한 이는 김예종(金芮宗)이었지만, 그의 뒤를 이어 김희일(金希一)이 완성하였다. 30단의 철통을 주조했으며 60척의 당주를 세웠다. 김예종의 종형(從兄)이었으며 당대등(堂大等)·정조(正朝)의 직을 띠었으며, 단은어대(丹銀魚袋)를 하사받았다. 당대등은 뒷날의 호장이었으며, 정조는 7품에 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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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무신. 청주를 기반으로 했던 호족으로서 왕경에 초치된 인물로 보인다. 궁예(弓裔)가 청주 주민을 철원에 이전시킨 이래 이미 청주를 떠나 상경하여 종사하는 세력과 아직 토착해 있는 현지세력이 상호 시기·반목하였으며, 지방 세력 내부에서도 대립하였다. 태조(太祖) 왕건(王建)과의 관계에서 청주세력은 충역(忠逆)이 무상하였다. 태조는 즉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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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관리.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냈을 때 재경청주인은 왕건파와 궁예파로 나뉘었는데, 명길(明吉)은 친왕건파였다. 즉위한 직후 청주지방 호족세력의 동향에 대해 염려를 하던 태조는 재경청주인 문식(文植)·능달(能達)과 함께 청주에 파견하였다. 돌아와 동향출신의 김근겸(金勤謙)·관준(寬駿)에게 청주지방의 반란을 조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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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재경관인.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장악한 직후 재경청주인은 왕건파와 궁예파로 나뉘었는데, 명길(明吉)은 친왕건파였다. 태조는 즉위한 직후 청주지방 호족세력의 동향에 대해 염려를 해서 재경청주인 명길, 능달(能達)과 함께 청주에 파견하였다. 돌아와 동향출신의 김근겸(金勤謙), 관준(寬駿)에게 청주지방의 반란을 조짐이 있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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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인물.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할 무렵 재경청주인은 궁예파와 왕건파로 나뉘었다. 배총규(裵悤規)는 반왕건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물이었다. 왕건의 쿠데타 직후 청주 출신의 순군리(徇軍吏) 임춘길(林春吉) 등이 강길(康吉), 아차귀(阿次貴), 경종(景琮)과 함께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청주로 돌아가려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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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호족.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자 청주인 가운데 이에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두령 파진찬의 지위에 있던 진선(陳瑄)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선장(宣長)은 진선의 아우로서 함께 반란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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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인정권 초기의 무신. 경대승(慶大升)의 족형으로 경대승이 정권을 장악하였을 때 크게 활약하였다. 손석은 자신의 부친이 수령으로서 탐학을 일삼아 오광척이 탄핵하자, 이후 오광척을 원수로 여기고 있었다. 경대승이 정중부 일당을 제거하자, 경대승을 꾀어 오광척을 죽이고 아울러 장군 김광영 등을 잡아 죽였다. 1179년(명종 9)에 장군으로서 금나라에 가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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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주 출신의 향리이자 효자. 청주의 향리로서 백성으로부터 조금도 재물을 취하지 않았다. 1378년(우왕 4) 왜구가 고을에 침입하자 어린 아들딸들이 옷을 붙잡고 울부짖었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달려가 모친을 업고 도망하여 숨어서 화를 면하였다. 이 일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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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효녀이며 효부.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처로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의 병에 단지(斷指)한 일이 있었고, 출가한 뒤 병든 시어머니를 젖을 짜 봉양하여 수명을 연장하였다. 이 행위로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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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숙거(叔擧), 호는 모계(慕溪)이다. 조순생(趙順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승윤(趙承胤), 어머니는 조황(趙璜)의 딸 평양조씨이다. 처음 정사현(鄭思顯)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성제원(成悌元)과 송인수(宋麟壽)[1487~1547]를 사사하였다. 성리학(性理學)에 통달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일찍이 어머니의 병에 들오리(野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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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1799년(정조 23)에 출생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1892년(고종 29) 동몽교관(童蒙敎官)이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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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단종 때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경부(警夫), 호는 인촌(仁村)이다. 태조 배향공신이며 개국공신인 조인옥(趙仁沃)의 증손이며,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조뢰(趙賚)의 손자이며, 이조참의(吏曹參議) 조순생(趙順生)의 아들이다. 음보로 세종 때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한번은 병조의 군적이 분실된 일이 있어 담당자들이 모두 죄를 입을까 두려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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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선현을 본 삼기에 힘썼다. 50세에 상고(喪故)를 당하자 여막(廬幕)생활 3년동안 한서풍우(寒暑風雨)를 무릅쓰고 공산(空山)에 홀로 거처하여 생식(生食)하였다. 원근이 그의 효행에 감탄하였으며, 청원군수는 그 독행을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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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고려초 사회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세력. 신라말 진골귀족 내부 정쟁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독자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귀족이나 6두품 계통, 지방의 토착세력인 촌주, 해상 세력, 지방군사 세력에서 기원하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스스로 장군이나 성주를 자처하였다. 호족은 대토지를 지배하고 있고, 사병(私兵)을 중심으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