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3가, 예전의 ‘오정목(五町目)’에 위치한 들. 방아다리는 북문로3가, 예전의 ‘오정목(五町目)’에 위치한 들이다. ‘반다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방아다리’이든 ‘반다리’이든 ‘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3년 일본식 지명을 우리 고유의 지명으로 고치자는 취지로 청주문화사랑모임에서는 '방아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원로(元老), 호는 몽암(蒙菴)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 유인귀(柳仁貴)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현감 이장생(李長生)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년) 진사(進士)가 되고, 1516년(중종 11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官檢閱)이 되고, 이듬해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문신으로 등과하여 벼슬이 관찰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본도(本道), 즉 충청도의 도중군(道中軍)으로 군사를 이끌고 검천(險川)싸움에서 고군분투하였는데 전세가 불리하게 됨에 따라 노비를 보내어 부모에게 고하고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전사한 뒤 1637년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었다....
-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고성(高城)이며, 자는 무숙(茂叔), 호는 한죽당(寒竹堂)으로 천성이 효성스럽고 학문이 박식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의병을 일으켜 이붕해(李鵬海), 민진완(閔鎭緩), 변관하(卞觀下) 등 의병장과 청주 인근 산하에서 군사를 수습하여 인솔하고 청주읍성(淸州邑城) 남문밖에 이르니 이미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이 적의 두목을 처참한 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사로(師魯), 소자(小字)는 여숙(汝淑), 호는 이유당(怡愉堂)이다. 영의정 이유청(李惟淸)의 후손이며 이도(李濤)의 아들로 일족인 현감 이준(李浚)에게 입양되었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선대로부터 청주 북일면 상당산(上黨山)[419m] 아래에 우거(寓居)하였다. 1606년(선조 39) 진사(進士)가 되고 1608년 별시문과(...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순필(舜弼)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목사 이성연(李聖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조좌랑 이천(李蕆)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 재랑(齋郞)·빙고별검(氷庫別檢)과 공조·호조 좌랑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옥과현감과 김화현감을 역임하면서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춘(伯春)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아버지는 이형(李泂)이며, 어머니는 최대년(崔大年)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정언 등을 역임하고, 1689년에 지평(持平)이 되어 송시열(宋時烈), 윤증(尹拯)의 시비를 분별할 것을 상소하자 왕이 가납하였으며, 홍문록(弘文錄)에도 올랐다. 이어서 정언...
-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685년 청주 남면에서 출생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근처에서 김진희(金晉熙), 박종귀(朴宗龜), 이도명(李道命) 등과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훈공(勳功)을 세웠다. 난을 평정한 뒤 포상에서 빠졌으나, 1887년(고종 24)에 감찰(監察)에 증직(贈職) 되었다....
-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고려 말의 명현(明賢)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13대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종제(從弟) 이사해(李思海), 당질(堂姪) 이중저(李重著), 향인(鄕人) 김양구(金陽龜) 등을 이끌어 청주 근처 산하에서 수백 인을 모아 창의하여, 청주성의 동문을 치고 창의사(倡義使) 박민웅...
-
조선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인(汝人), 호는 어당(峿堂)이다. 이연주(李演周)의 아들로,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820년(순조 20) 회인(懷仁)에서 출생하였는데, 1871년(고종 8) 청주 강외면 연제리에 이사하여 1882년에 우거지(寓居地) 연제리에서 죽었다. 1855년(철종 6)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 되었고, 임술민란 뒤 「응지삼정소(應旨三...
-
조선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수(聖叟)이고, 밀성군(密城君)의 후예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인근의 친지를 모아 70여인을 얻었다. 종질(從姪) 이태지(李泰之)를 부관(副官)으로 삼고, 당질(堂姪) 이원지(李元之), 이형지(李亨之) 형제를 종사관(從事官)으로 삼고, 삼종(三從) 이희명(李希命)과 이종인(李宗人), 이민핵...
-
조선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이다. 관찰사 이동직(李東稷)의 아들이며,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응교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특진된 뒤 승지·대사간·대...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주로 내려와서 어머니를 산골짜기에 피신시키고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덕수(德廋)·항승(恒承)·대수(大廋)이고, 호는 성헌(醒軒)이다.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후손으로, 이만선(李萬善)의 아들이며 이만원(李萬元)의 조카이다. 정랑 이만성(李萬成)에게 입양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여당이라는 무고를 당하여 친국을 받았으나 논리정연하게 논변하여 영조(英祖)로부터 재주를 인정받게...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정숙(靜叔)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덕사(李德泗)의 아들이고, 이덕수(李德洙)의 조카이다.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42년(인조 20)진사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정자(正字), 검열(檢閱)을 거쳐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646년 설서, 정언, 지평...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정백(靜伯)·이정(而靜)), 호는 삼죽(三竹)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이덕수(李德洙)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6년 의금부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뒤에 세마(洗馬)를 거쳐 시직(侍直)으로 병자호란을 만나 왕세자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이듬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이라면 정유재란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
조선 중기의 유의(儒醫).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이다.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정순붕(鄭順朋)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또한 음률에 밝고 현금에도 정통하여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로서 가곡의 장단을 지도하는 한편, 천문과 의술에도 이치가 밝아 관상감(觀象監)과 혜민서(惠民署)의 교수를 역임했다. 그 후에 포천현...
-
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부모가 병을 앓을 때에 의원이 말하기를 잉어를 써야 한다 하여 겨울날 못에 나가 울었더니 얼음을 뚫고 잉어가 나와 약으로 쓰니 효과를 거두었다. 또 어머니가 병을 앓아 잉어가 생각난다 하니 크게 가물어 물이 말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하늘을 보고 울자 갑자기 큰 비가 내려 돌길에 두 마리의 잉어가 튀어 나왔다. 거두어 약으로 쓰니 효과를...
-
조선후기의 효자. 판서 정사호(鄭賜湖)의 증손으로,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아들인데 그의 모친 채씨는 효부로 정려(旌閭)되었다. 정성과 공경으로 부모를 섬기고 부친 병환에 손가락을 잘랐으며, 상고(喪故)에 죽은 이를 슬퍼하고 그리워함이 도를 넘고 여막(廬幕) 삼년간 주야로 울며 조밥과 맨소금으로 집상(執喪)하더니 복상(服喪)이 끝나고 쓰러졌다. 모자 양대의 효행이 조정에 알...
-
조선 전기의 충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청주지역을 지날 때 왜장을 사살하여 그 목을 용만(龍灣)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는데, 이것이 왜장을 목 베인 처음 일이라 선조(宣祖)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종군하여 순국하니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으며, 선조대에 오근촌(梧根村)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
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1363~1423]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 백곡(栢谷)이다. 예천 출신으로 현감 정원로(鄭元老)의 증손자로 정이충(鄭以忠)의 둘째아들이다. 1552년(명종 7) 성균생원시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에 급제, 1565년 정언을 거쳐 예조정랑·헌납 등을 지냈다. 1568년(선조 1) 춘추관기주관을 겸직하고,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조인옥(趙仁沃)의 아들이다. 어려서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무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에 나가 상호군, 전성진첨절제사, 옹진진절제사, 우군동지총제, 공조참판, 경기감사, 평안도도관찰출척사,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절제사,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435년(세종 17) 병으로 벼슬을 사퇴하고 양주 서산(西山) 선영 옆에 살다 76세에 죽었다...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솔지(率之), 호는 화계(花溪)이다. 고려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8세손이다. 1442년(세종 24)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육도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청주에 머무를 때 현 제일교회 앞에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묘소는 청원군 북일면 구성리 아이(阿耳)고개에 있다. 1854년(철종 5) 곡수성신사(曲水誠信祠)에 추향...
-
조선 전기의 문신, 유학자, 의병장. 본관은 배천(白川)이고, 자는 여식(汝式)이며, 호는 중봉(重峰)·도원(陶原)·후율(後栗)이다. 경기도 김포 출생이다. 조응지(趙應祉)의 아들이다. 1555년(명종 10) 12세 때 김황(金滉)에게 시서(詩書)를 배웠다. 1565년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68년(선조 1) 관직에 올라 정주목·파주목·...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희보(希甫)이다. 1767년(영조 43)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신화동에서 출생하였다. 효우(孝友)가 뛰어나, 사림이 정서(呈書)한 바 있으나, 정포(旌褒)에 이르지 못하였다....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우경(虞卿)이다. 효우(孝友)로 세상에 알려져 송치규(宋穉圭)가 가장(家狀)에서 칭송하였다. 1884년(고종 21) 효행으로 감찰에 증직(贈職)되었다. 채지홍(蔡之洪)의 문인이다. 유고 1권이 전한다....
-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호는 운옥(雲獄)이다. 지필동(池必東)의 아들이며,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亂)에 청주를 피하여 영남·호남지방을 여행하는 동안 사회제도의 모순을 간파하고 시정을 노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회덕으로 옮겨 학구에 전념하였다. 저서에서 만민평등(萬民平等), 국민개병(國民皆兵), 전제개혁(田制改革) 등을...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선여(善餘), 호는 송촌(松村)이다. 아버지는 승지 채낙(蔡洛)이고, 어머니는 찰방 김훈(金壎)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 진사가 되었으나 조정에서 폐모론이 일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주시의 상당산(上黨山)[419m]아래에 살면서 독서를 하였다. 인조반정 후 천거되어 희릉재랑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여 나아가지 않았고, 16...
-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군범(君範)이며,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사장와(舍藏窩)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채영용(蔡領用)이며, 어머니는 유씨(柳氏)로 유승주(柳承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어머니가 『등왕각서(藤王閣序)』를 말로써 가르치면 한번에 암송하는 재질이 있었다. 8세에 시를 짓기 시작하였고, 또한『상서(尙書)...
-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승병,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청주 의병 등이 합군하여 왜군에게 함락 되었던 청주성을 탈환한 전투.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의해 청주성이 함락되었다. 이때 옥천에서 일으킨 조헌의 의병과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승병 그리고 박춘무의 청주 의병이...
-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 상당구(上堂區) 남문로2가(南門路2街)에 있는 면적 24,800평 규모의 공원. 예로부터 청주는 지세를 따졌을 때 무심천(無心川) 위에 떠있는 배의 형상이라고 해서 주성(舟城)이라고 했다. 청주의 한복판이라 할 남문로 2가에 서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鐵幢竿)은 배를 안정시키고자 세운 돛대라고 전해진다. 중앙공원(中央公園)은 청...
-
예전의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로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성안길은 일본식 명칭 본정(本町)[본정통]을 대신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지명이다. 예전으로 치면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
충청북도 청주의 상품화된 향토음식. 충청북도 청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지형적으로 경기도, 강원도, 경상북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지역과 사방으로 접해 있기 때문에 각 지방 음식들의 특징이 복합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그로 인해 음식의 모양과 맛이 독특하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충청도의 양반적 기질이 투영된 소박하고 정갈한 향토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또...
-
1. 정의 교조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르침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교리, 법문, 종지(宗旨)의 총칭. 2. 특징 충청북도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 지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여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는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접경지였고, 통일신라시대에 서원경(西原京)이 설치된 이래로 지방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와 같은 지방문...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공보(公甫)이다.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의 손자로,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그의 처는 세조(世祖)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언니로, 윤번(尹磻)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18세의 나이에 음보로 충의위사용이 되고, 부사직으로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나주판관을 거쳐 145...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자순(子順)이다.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의 손자로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다.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7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다가 곧 집현전정자로 뽑혔다. 이어 부수찬·지제교로서 경연관을 상겸하고...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자준(子濬)이며,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이다. 예문관제학 한상질(韓尙質)의 손자로, 한기(韓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이다. 두 딸은 장순왕후(章順王后)[睿宗妃]와 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글을 읽어서 성취한 바 있었으나 과거에는...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자후(子厚)이며, 호는 의암(義菴)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한창(韓昌)이며, 어머니는 판나주목사 이욱(李勗)의 딸이다. 예종의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가 그의 딸이다. 음보(蔭補)로 사온직장이 되고, 1463년(세조 9) 사옹별좌로 있을 때 장녀가 세자궁의 소훈(昭訓)으로 선발됨으로써 1466년 의빈부도사에 발탁되었고, 146...
-
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숙경(叔敬)·경중(敬仲)이며, 호는 신재(信齋)이다. 호부상서 한공의(韓公義)의 손자로, 판후덕부사 한수(韓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길창군 권적(權適)의 딸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 우정언, 전리정랑, 예문응교, 공부총랑, 종부영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에 승진하였다. 이해...
-
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질(仲質), 호는 죽소(竹所)이다. 호부상서(戶部尙書) 한공의(韓公義)의 손자로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다. 판후덕부사 한수(韓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길창군 권적(權適)의 딸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이 그의 아우이고, 세조 때 공신 한명회(韓明澮)는 그의 손자이다. 1390년(공양왕 2) 6월 천추사로서...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공서(公瑞)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첨정 한운(韓運)이고, 어머니는 이신(李愼)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정자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그 뒤 예조좌랑·병조좌랑·지평·병조정랑·승문원부응교·의정부검상과 사인 등을 거쳐, 1...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옥경(沃卿)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전구서승(典廐署丞) 한명진(韓明溍)이고, 어머니는 권제(權踶)의 딸이다.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조카이다.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469년(예종 1) 부사과로서 진사시에 장원하고,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이 되고, 1475년 형조참의...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통지(通之)이다.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 출신으로, 아버지는 한절(韓𥑇)이며, 어머니는 중군총제 조서(趙敍)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18세로 군직에 음보(蔭補)된 뒤 감찰·장령·사복시소윤을 거쳐, 1467년(세조 13) 장례원판결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좌부승지에 오르고 이어 우승지·좌승지를 거쳐, 그 해 12월 이조참...
-
조선시대의 효자. 효자로 정려(旌閭)되어 청주 서쪽 삼리허(三里許)에 정려비(旌閭碑)가 섰다....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자유(子柔), 호는 간이재(簡易齋)이다.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한영정(韓永矴)의 아들이며, 덕종의 비(妃) 인수왕후(仁粹王后)의 아버지로, 성종(成宗)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1417년(태종 17) 진헌부사가 되어 노구산(盧龜山) 등과 같이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명나라에 들어가는 황씨(黃氏)와 누나를 호송하였고,...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문백(文伯)이다. 효자로 정려된 증참판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부인은 박이환(朴而煥)의 따님인 상주박씨(尙州朴氏)이다. 천성이 효성이 깊고, 부모병환에 축문을 지어 손바닥을 불을 놓아 하늘에 빌었다. 부모의 상을 당해 여막(廬幕)에서 거처하며 애도함이 도에 지나칠 정도였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학문이 고명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