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자성이 시조이고 이윤만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선대 시조는 이자성(李自成)이고, 실질적인 시조는 고려 말 인물인 이당(李唐)이다. 당진시 송악읍 금곡리의 입향조는 이윤만(李允蔓)[1624~1682]이다. 이윤만은 17세기 후반 정치 혼란기에 화를 피하기 위하여 낙향하였다. 당진 지역의 광주이씨는 350년간 세거지를...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구인문(具人文)[1409~1462]은 조선 세종 때의 문신으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당진 정미면 봉생리에 귀향하여 은둔하였다. 성삼문의 거사가 실패하자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전하며,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두문불출하였다. 구인문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장숙(章叔), 호는 수옹(睡翁)이다. 아버지는 고...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권제인의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율재(栗齋)이다. 권제인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우산리에서 태어났다. 권제인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평소 부모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어머니가 이질(痢疾)에 걸려 신음할 때 권제인은 한약을 시간에 맞추어 복용하도록 온갖 정...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김기연(金耆淵)[1827~1882]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학문이 깊었으나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지 못해 우송 처사(又松處士)라 불렸다. 김기연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년(景年), 호는 우송(又松)이다. 김기연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금암리에서 출생하였다....
-
충청남도 당진시에 선정비를 남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인조·효종 때의 문신이다. 37세 때인 1638년 당진 현감에 부임하여 7개월의 짧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청덕 선정비(淸德善政碑)를 세우고 김홍욱의 치적을 기렸다. 김홍욱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이다. 아...
-
임비가 시조이고 임관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나주임씨(羅州林氏)는 고려 후기 문신인 임비(林庇)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16세기 중엽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입향한 인물은 임관(林鸛)[1548~?]이다. 임관이 생원(生員)를 지냈기에 후손들을 ‘생원공파’라고 부른다. 임관의 손자인 임항(林恒)이 석문면 교로리에 분가함으로써 집성...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에 있는 나주임씨의 열녀문. 나주임씨(羅州林氏)는 한인동(韓仁東)의 부인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자 남편은 첩을 들여 자식을 낳게 하였는데, 나주임씨는 첩이 낳은 2남 1녀까지 양육하여 집안을 크게 번성하게 한 열녀이다. 나주임씨 열녀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70-2 보덕포에 있다. 나주임씨 열녀문은...
-
홍은열이 시조이고 홍박연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입향 배경은 인조 때 반정 공신인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1572~1645]이 초락도를 사패지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 18세기 말, 홍박연(洪博淵)과 형제들이 입향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거지가 되었...
-
이돈수가 시조이고 이행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조선 전기의 문신인 연헌(蓮軒) 이의무(李宜茂)[1449~1507]가 홍주 목사로 부임하여 조선 시대 목장이 있었던 송산면을 순회하다가 능안 마을을 명당이라 눈여겨봐 두었다. 그 후 자손들이 능안 마을에 이의무의 묘를 조성하였다. 입향조인 이행(李荇)[1478~1534]은 이의무의 아들이며, 좌의정을 지...
-
충남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성씨. 조선 중기의 문신인 연헌(蓮軒) 이의무(李宜茂)[1449~1507]가 홍주 목사로 부임하여 조선 시대 목장이 있었던 송산면을 순회하다가 ‘능안’ 마을을 명당이라 지정하였다. 그리고 자손들이 이곳에 이의무의 묘를 조성하였다. 입향조인 이행(李荇)[1478~1534]은 이의무의 아들이었다. 이행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
-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학자. 문종구(文鍾龜)[1853~1897]는 한학자로 매우 청빈하게 살면서도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문종구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호는 수은(睡隱)이다. 아버지는 문인배(文仁培), 어머니는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문종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
충청남도 당진시에 은둔한 고려 말 충신. 박지(朴智)[1354~?]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조선 왕조에 출사하기를 거부하고 당진시 우두동에 낙향해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낸 충신이다. 박지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세이암(洗耳岩)이 있다. 자손이 번성하여 당진의 대표적인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박지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어옹(漁翁)이다. 사람들은 박지...
-
김일이 시조이고 김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부안김씨(扶安金氏)의 시조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 태자 김일(金鎰)[?~?]이다. 본격적인 가문의 발전은 4세손 김경수(金景修), 9세손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1211~1278]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대호지면 두산리에 세거지를 형성한 인물은 20세손 김선(金瑄)[?~?]이다. 김선의...
-
성균관(成均館)의 이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유교 단체인 성균관유도회의 당진 지부. 현재 우리나라에는 유교의 총본산인 성균관유도회 총본부가 있고, 각 시도에 존재하는 향교를 중심으로 지부 모임인 지부 유도회가 있다. 당진에는 가장 활동이 왕성한 성균관유도회 당진지부가 있고 그 외에 면천 지부가 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의 정신(道義精神)을 천명하고, 윤리를 확립하여 수신·제...
-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성균관(成均館)의 이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유교 단체인 성균관유도회의 면천 지부. 우리나라에는 유교의 총본산인 성균관유도회 총본부가 있고, 각 시도에 존재하는 234개의 향교를 중심으로 지부 모임인 지부 유도회가 있는데, 당진에는 성균관유도회 면천지부가 있고 그 외에 당진 지부가 있다. 유도회 면천 지회 역시 유교를 중심으로 도의 정신(...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신경일의 효자 정려. 신경일(申慶一)[1675~1735]은 1675년 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아버지 신기와 어머니 한양 조씨 사이의 4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신경일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 또한 형제간에 우애 깊고 어른에 대한 예의가 남달랐다. 신경일이 열 살 때...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본관을 두고 있는 세거 성씨. 신평이씨(新平李氏)의 시조는 고려 시대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이덕명(李德明)이다. 이덕명의 묘소는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에 있다. 신평이씨는 모두 6개의 계파가 있는데, 당진 지역에는 문정공파(文定公派)와 판서공파(判書公派)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시조를 제향하는 덕모재(德慕齋)와...
-
차효전이 시조이고 차건의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연안차씨(延安車氏)는 황해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다. 시조 차효전(車孝全)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연안차씨는 당진시에 세거지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집성촌이 대호지면 적서리의 오산공파 후손들이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건립하여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영...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우산리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성씨.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이다. 권행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삼한 벽상 삼중대광(三韓壁上三重大匡)에 오르고 태사(太師)에 제수되었다. 안동에는 ‘태사묘(太師廟)’라 하여 3명의 태사를 배향하고 있다. 그들은 안동권씨의 시조인 권행, 안동 김씨의 시조인 김선평(金宣平...
-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말 충신. 윤황(尹璜)[?~?]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시기의 문신이다. 조선이 건국하자 출사하기를 거부하고 고려의 충신으로 남았다.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사망하자, 태종이 무학 대사를 보내 장지를 정해 주었다고 전한다. 현재 서산 송곡향사에서 윤황을 배향하고 있으며, 당진의 묘소 앞에는 신도비가 있다....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한학자·서예가. 이병태(李炳台)[1910~1992]는 해미 향교와 당진 향교의 전교와 유도회 당진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당진 지역 주민들에게 유교 경전을 강독하고 서예를 가르치는 등 한학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한학자이며 서예가였다. 이병태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시남(詩南)이다. 아버지는 이순목(李舜穆), 어머니는 능...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효자. 이성규(李聖規)[1678~?]는 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한 효자이다. 이성규의 효성은 아들 형제에게로 계승되어, 3부자가 모두 효자 정려를 받았다. 이성규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성규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이웃 마을에 잔치가 있으면 과일과 고기를 가슴에 품고 와서 부모에게 드렸다. 이성규가...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이성언(李誠彦)[1380~?)]은 조선 세종 때 이조 판서 겸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는데, 이가종(李可種)이라고도 한다. 신평 이씨 문정공파의 파조이며, 신평 이씨 종중은 문정사(文定祠)를 세워 이성언을 제향하고 있다. 이성언의 본관은 신평(新平),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예조 판서를 지낸 이상원(李上垣)의 아...
-
충청남도 당진시에 충신 정려가 있는 조선 시대 무신. 이시경(李蓍慶)[?~1597]은 정유재란 때 군공을 세웠으나 전사하였다. 1792년 정조 때 충신 정려를 내렸는데, 현재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에 있다. 이시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약산(藥山)이다.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李陽元)의 셋째 아들이다. 이시경은 진사과에 급제한 뒤...
-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시경의 정려. 이시경(李蓍慶)[?~1597]의 충신 정려는 약산사(藥山詞) 또는 세마 별묘(洗馬別廟)라 부른다. 이시경은 조선 후기 영의정 이양원의 아들로 정유재란 때 군공을 세웠으나 불행히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1792년에 충신 정려를 내렸다. 이시경 충신 정려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문헌로 303-1...
-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양원(李陽元)[1526~1592]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유도대장(留都大將)[임금이 서울을 떠나 거둥할 때, 도성 안을 지키던 대장]으로 한강을 수호하고 왜적을 무찔렀으나, 선조가 의주를 넘었다는 와전된 소식을 접하고 단식 끝에 순절하였다. 이양원의 본관은 전주(全...
-
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의무(李宜茂)[1449~1507]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평안도 어천역(魚川驛)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홍주 목사로 부임하였다. 이의무의 묘소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후손들이 집성촌을 형성하...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행정가이자 서예가. 이재서(李載瑞)[1911~1984]는 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으로 성균관에서 한학을 배우고 해방 후에 부여 군수, 문교부 총무과장을 역임하였으며, 민주 공화당 충남 사무국장과 성균관 관장을 지냈다.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다. 이재서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취암(醉巖)이다. 조선 전기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 이첨(李詹)[1345~1405]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본관을 둔 신평 이씨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첨은 고려 말 공민왕·우왕·창왕·공양왕 때 벼슬을 하였고,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정종·태종 등 세 임금을 위해 일했다. 이첨이 공민왕 때 올린 상소문은 구규(九規)[군주가 힘써야 할 9가지 사항]로 널리 알려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행(李荇)[1478~1534]은 연산군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중종 때 좌의정에 오른 문신이다. 16세기 전반기 요동치던 정국의 중심에 서서 많은 풍파를 겪었으며, 『성종실록』 편찬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제작에도 깊이 참여하였다. 또한 당진시 송산면에 회화나무를 심고 정착하여 송산면 덕수 이씨...
-
충청남도 당진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장에 뛰어나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 문서를 담당하며 명성을 떨쳤다. 차천로는 시와 가사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한시에 능했다고 전한다. 후손들은 오산공파(五山公派)라 하여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세거지를 이루고 영정을 봉안한 문원사(文苑祠)를...
-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에 있는 차천로를 배향하는 사당.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1556~1615]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당진지 대호지면 적서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원사(文苑祠)를 세우고, 조선 선조 때의 대문장가였던 차천로의 영정을 봉안하여 학문과 사상을 기리고 있다. 문원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410번지...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에 남양홍씨가 모여 형성된 집성촌. 홍씨(洪氏)는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에 들어온 홍천하(洪天河)를 선시조(先始祖)로 모시고 있다. 그는 삼국 통일 이후 신라 태자(太子)의 태사(太師)가 되었고,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다. 하지만 계통이 불명확하여 남양홍씨는 고려 태조 왕건의 개국 공신인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있다. 2...
-
최온이 시조이고 최순형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해주최씨(海州崔氏)의 시조는 최온(崔溫)이고, 당진 입향조는 16세기 인물인 계공랑(啓功郞) 최순형(崔順亨)이다. 최순형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세거지를 형성해 400여 년을 이어 오고 있다. 후손들은 해동공자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984~1068]의 영정을 모신 ‘...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의 부마. 홍려(洪礪)[?~1533]는 조선 전기 중종(中宗)의 부마이다. 작서의 변[灼鼠之變]에 관련되었다는 김안로(金安老)의 무고(誣告)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홍려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홍서주(洪敍疇)[1499~1546]이며, 할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홍숙(洪淑)[1464~1...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상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부마도위 홍려의 사당. 홍려(洪礪)[?~1533]는 남양홍씨 토홍계로 시조 홍선행(洪先幸)의 13세손이다. 1525년 조선 시대 중종의 딸인 혜정 옹주와 혼인하여 종2품의 품계인 가의대부 당성위(唐城尉)에 봉해졌다. 홍려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작서의 변[(灼鼠之變)]’에 연루되었다는 김안로(金安老)의 무고(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