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 다 > 대한 제국기 군산 객주의 상회사 설립과 경제·사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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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뒤 일본은 자신들의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값싼 식량과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국내 최대 미곡 생산지를 배후로 한 서해안 지역의 개방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런 가운데 군산이 유력한 개항장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정작 군산의 개항은 대한 제국 정부의 독자적 결정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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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미곡·어물 등 각종 물산을 위탁 판매 등의 역할을 담당했던 상인 계층. 객주의 기원이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객주란 객주 상인(客主商人)이라는 뜻이며, 주인이란 주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객주는 화물주(貨物主)에게 위탁 받은 상품을 판매함과 동시에 생산자에게 자금을 대여하고,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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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일본 상인의 경제적 침탈에 대응하고 상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군산 지역 객주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객주 단체.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 체결 이후 일본의 간섭 아래 부산항, 원산항, 인천항이 개항되었다. 개항된 각 항구에는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설정되고, 그 곳을 중심으로 일본은 각종 기관을 설립하며 침략에 필요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일본의 이러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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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빌린 차관을 갚기 위해 1907년~1908년 군산 지역 객주 상회사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통감부 설치 이후 한국의 시정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차관 1,300만원을 상환하기 위해 1907년(융희 1) 2월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황성 신문』·『대한 매일 신보』·『제국 신문』·『만세보』 등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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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미곡이 수탈된 양상. 일제 강점기 군산은 미(米)의 군산이라는 별칭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비옥하고 넓은 평야에서 생산된 미곡들이 군산에 집산되어 일본으로 수탈되었기 때문이다. 미곡 수탈은 개항 이후 일본 상인과 자본들이 군산에 집중되며 시작되었다. 병합 이후에는 회사령, 객주 취체 규칙 시행으로 한국인 객주들의 활동과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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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 단체. 개항 이후 군산에는 일본에서 건너오는 일본인들이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군산이 일본과의 수출입 무역에 있어 지리적·경제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군산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자치 조직인 군산 거류민단과 일본인 상업회의소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확산시켰고, 군산 지역 객주 성장을 억제시키면서 군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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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개항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역사. 옥구현에 속했던 군산은 개항 이후 형성된 각국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이주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라는 넓은 평야 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금강과 서해안이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지주와 상업 자본가들이 집중되며 도시의 기반 시설이 갖추어 지기 시작하였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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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부터 벗어나 민족 독립을 위해 전라북도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군산은 금강과 서해안에 인접한 지리적 환경과 김제·만경·정읍 등의 호남 평야 지대를 끼고 있어 일찍부터 미곡을 중심으로 한 각종 산물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군산항이 개항된 이후부터 이러한 환경은 일제의 수탈과 침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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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 늑약 이후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군산에서는 1905년(광무 9) 을사 늑약 이후 국권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자강운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였다. 옥구 군산항 민단, 대한 협회 군산 지회 등의 계몽 운동 단체나 객주 상회사 등의 단체를 조직하여 교육 계몽 활동, 식산 흥업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국채 보상 운동과 같은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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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 지역 각 포구와 나루를 중심으로 각종 상업 활동이 전개되었던 장시. 조선 시대 장시의 종류로는 읍시(邑市)·창시(倉市)·포시(浦市)·파시(波市) 등이 있었다. 읍시는 해당 읍의 관에서 맡아 다스리는 구역 주변에 서는 장(場)이고, 창시는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산물을 보관하던 사창과 해창 등 창고를 중심으로 발생했던 장을 이야기한다. 포시는 포구와 나루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