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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조선시대 저수지 경양방죽에 대한 풍수 해석. 경양방죽은 1960년대까지 현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계림1동]에 있던 저수지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부가 매립되었고, 1968년 태봉산을 헐어 경양방죽을 완전 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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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남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남쪽은 '진남문(鎭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진남문의 '진남(鎭南)'은 "남쪽을 누른다"는 뜻인데, 여기서 남쪽은 일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광주처럼 남문을 진남문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았다. 1896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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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동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동쪽은 서원문(瑞元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서원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동쪽에서 태동하는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서원(瑞元)'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서원에서 ‘원(元)’은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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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북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북쪽은 공북문(拱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북문의 의미는 '북쪽을 공손히 받든다.'는 뜻인데 북쪽은 임금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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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서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서쪽은 '광리문(光利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서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광(光)'은 광주를 의미하고, '리(利)'는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중 서쪽 방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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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서원문 터에서 발굴된 석장승 2기에 대한 풍수 해석. 석장승들은 조선시대 광주읍성 동문인 서원문(瑞元門) 밖이었던 곳에서 수습되었는데, 장승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광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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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의 진산(鎭山)인 무등산에 대한 풍수 해석. 무등산 풍수는 광주광역시 북구와 동구, 전라남도의 화순군과 담양군에 걸쳐 있는 무등산의 자연지리를 음양오행설로 풀이한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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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전통 가옥. 무송원(撫松園)은 호남권 최초의 민족 은행인 호남은행의 설립을 주도한 현준호(玄俊鎬)가 제각(祭閣) 겸 주거공간으로 1940년대 말에 지은 전통 한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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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황화루 동쪽에 있던 정자. 봉생정(鳳笙亭)은 절양루(折楊樓)[지금의 공북루(拱北樓)], 황화루(皇華樓)와 함께 조선 초기인 1415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71년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전라도 관찰사로 지방을 순행하며 광주 지역에도 몇 차례 들렀다. 7월 28일 유희춘의 일기에 따르면, 희경루에서 관찰사인 유희춘, 병사 임진(林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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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있던 향토 음식점. 뽐뿌집은 1960~1970년대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음식점으로 김귀례(金貴禮)가 30여 년 간 영업을 하였다. '뽐뿌집'이란 이름은 가게 앞에 손으로 마치 작두질을 하듯 물을 퍼 올리는 펌프가 있어, 펌프를 당시 ‘뽐뿌’라고 부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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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오지호의 창작 공간. 오지호가는 남부 지방 농촌주택의 형태가 남아 있는 집으로,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 (吳之湖)[1905~1982]가 1953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복직하면서 광주에 정착한 이후 1982년 타계할 때까지 창작활동에 전념하던 곳이다. 전면을 보면 자연석 기단에 덤벙주초석과 사각기둥이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 부엌 2칸과 우물마루를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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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과 북구 청풍동 경계에 있는 장원봉에 대한 풍수 해석. 장원봉은 무등산의 북쪽 지맥으로 무등산 정상에 비하여 뾰족한 산 모양을 하고 있다. 속설에 향교가 옛날 봉우리 아래 있었고, 고을 사람 중 장원하는 자가 많아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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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한정식집. 청미장은 6.25전쟁 직후 영업을 시작하였다. 청미장은 제일극장[현재의 롯데시네마 충장점] 뒷골목에 자리하였고, 개업 초기 초가집이었던 청미장의 주인은 이옥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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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객사인 광산관(光山館) 정문에 있었던 2층 누각. 황화루, 공북루, 봉생정, 희경루, 제금루 등은 관아의 누정이다. ‘황화(皇華)’는 고대 중국의 고전 『시경』에 나오는 말로 칙사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환영의 의미로 부르는 「황화곡(皇華曲)」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