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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원익이 허전의 「고공가(雇工歌)」에 화답하여 지은 가사.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는 조선 선조 때 경기도 광명 출신인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지은 총 86구의 가사로, 허전(許㙉)의 「고공가」에 답하는 형식의 작품이다. 이를 「고공답가(雇工答歌)」라고도 한다. 작자가 영의정을 ‘어른 종’에 빗대어 상전인 임금의 말을 듣지 않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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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명인 금천(衿川) 일대를 그린 고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47.8㎝, 세로 34.5㎝이다. 우측 상단에 ‘금천’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금천지도(衿川地圖)」는 고을의 규모가 작은 관계로 수록된 내용도 매우 소략하다. 고을의 진산인 삼성산(三聖山)과 금지산(衿之山)이 표기되어 있고, 읍치를 중심으로 왼쪽에 서면(西面)이 있고, 오른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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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강석기 가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묘터 잘못 써서 망한 강석기」는 광명시의 대표적 인물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의 가묘(家廟)를 지으려고 할 때 묘 터에서 나온 자루를 터뜨리니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그 후에 소현세자가 사망하고, 민회빈 강씨가 사사되고, 자손들도 죽임을 당하는 등 불길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풍수담이다. 묘 터[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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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원익이 자손들에게 남긴 유훈(遺訓). 「문충공 유훈(文忠公遺訓)」은 조선 선조 때 경기도 광명 출신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60세가 되던 해에 후손에게 전할 말을 글로 남긴 훈계인데, 그의 청백리로서의 검약한 일면을 알 수 있다. 이원익은 1606년(선조 39) 60세 나이에 이르자 자신의 삶을 갈무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 선대의 비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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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학온동 지역에서 능산지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벼슬을 마다한 능산지기」는 광명시 학온동 능촌에서 능산을 지키기 위해 다른 벼슬자리를 마다했다는 인물 전설이다. 광명시 학온동 능촌은 조선시대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의 빈(嬪)인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의 묘가 있다고 해서 능촌으로 불렸다고 한다. 1999년 광명문화원에서 발행한 『학온동지』의 66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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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설계조의 영정. 「설계조 영정」은 순창설씨 옥천부원군 설계조(薛繼祖)[1418~1486]의 영정이다. 설계조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아버지는 창덕궁직장(昌德宮直長) 설훈(薛纁)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숙주의 고모이다. 1443년(세종 25)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453년(단종 1)에 용양위호군이 되었다. 계유정난(癸酉靖難) 당시 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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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이원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앞을 내다본 오리정승 이원익」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청나라 사신으로 가게 된 유척기(兪拓基)가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오자 홀로 자문자답을 하여 암시적으로 알려주었지만, 유척기가 깨닫지 못하고 돌아가 청나라에 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는 재치담이자 인물담이다.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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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이원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원익의 손녀사위 허목」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사람을 잘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음을 알려 주는 지인지감(知人之感)형 인물담이다. 이원익의 자는 공려(公勵)이고, 본관은 전주이며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李袳)의 현손(玄孫)인 이익재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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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관감정(觀感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임금이 지어준 관감정」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퇴관하여 빈한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인조(仁祖)가 관감정을 지어 하사하였다는 정자 유래담이다. 2006년 광명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광명시지』 제1권의 565쪽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에 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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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이원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재치로 육방관속을 제압한 오리 이원익」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충청도 서산면의 수령으로 부임했는데, 육방관속이 어리다고 우습게 보자 능란한 말로 그들을 제압했다는 재치담이자 인물담이다.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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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이 형에게 보낸 서간. 「정원용 서간」은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원용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으로 돈녕부도정 정동만(鄭東晩)[1753~1822]과 용인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서울이나 1824년 부친의 묘소[정동만 묘]를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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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청백리 이원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청백리의 표본 이원익」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청빈함에 대한, 모든 공무원의 표본이 될 만한 충절담이자 인물담이다. 이원익은 성품이 소박하고 단조로워 과장이나 과시를 할 줄 모르고, 소임에 충실하고 정의감에 충실하였다.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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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이원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태풍이 올 것을 미리 안 오리 이원익」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갓 위를 터놓고 쓰고 다녔다는데, 그 이유를 밝히는 임기응변이자 인물담이다.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2의 536~539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79년 8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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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이원익 부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행동으로 사람 됨됨이를 짐작한 이원익」은 광명시의 대표적인 인물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처가에 갈 때 이원익 부부를 해치려는 중을 부인의 임기응변으로 물리치고, 부인을 위기에서 구명한 한량이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이에 대해 이원익이 한량의 행동을 나무랐다는 재주담이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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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경기도 광명 지역의 옛 군현 읍지인 『시흥읍지(始興邑誌)』를 포함해 경기도의 35개 군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 『경기읍지(京畿邑誌)』는 총 6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판심은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며,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광(半匡)은 22.4×15.3cm이며, 계선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읍지의 크기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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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1843년 경기도 광명 지역의 옛 군현 읍지인 『시흥읍지(始興邑誌)』를 포함해 경기도의 33개 군과 영종진(永宗鎭)의 읍지를 묶은 통지(統誌). 『경기지(京畿誌)』는 총 4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으로 판식은 사주단변의 형식이며, 반광은 22.8×16.4cm 크기에 경계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30.3×20.3cm 크기이며, 표제는 ‘경기지(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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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회령부사로 재임할 당시 쓴 시문집. 정원용[1783~1873]은 47세 되던 1829년(순조 29) 규장각직제학과 대사간에 제수되었는데, 8월에 북관(北關)에 홍수가 나자 4차례의 망단자(望單子) 끝에 회령부사에 낙점 받았다. 이후 정원용은 북관이 관방(關防)에 중요한 땅인데도 준비가 소홀하다고 여겨 『북략의의(北略擬議)』와 『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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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원용이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 『경산일록(經山日錄)』은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언어학자인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과거에 급제한 1802년부터 1873년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약 71년에 걸친 생활상을 기록한 일기이다. 『경산일록』에는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때의 정치 사회상이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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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 중 경기도 군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6.8㎝, 세로 28.6㎝이다. 『광여도』「경기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군현의 위치와 산맥, 수계, 진보(鎭堡)와 찰방역(察訪驛)을 확인할 수 있고, 왕릉의 위치와 서원의 표기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산지의 묘사는 전통적인 연맥식 방식으로 표현하였고, 하계망은 한강의 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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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 중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역인 금천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6.8㎝, 세로 28.6㎝이다. 『해동지도( 海東地圖)』「금천현(衿川縣)」과 마찬가지로 남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산지는 연맥식을 가미하면서 환포형으로 그렸다. 읍치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하천이 지금의 안양천이고, 아래쪽의 하천이 지금의 도림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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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과 그의 후손들이 기록한 선조의 묘소에 관한 기록. 『금양묘산기(衿陽墓山記)』가 처음 쓰인 것은 1634년(인조 12) 이전으로, 이원익[1547~1634]이 살아생전 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선조 묘의 각각의 위치와 묘전(墓田)의 규모를 정리하였다. 이렇게 이원익이 1차 정리한 뒤 그의 유훈(遺訓)에 따라 1681년(숙종 7)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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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에 포함된 경기도 군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55.0㎝, 세로 55.0㎝이다. 『동국팔로분지도(東國八路分地圖)』는 정상기(鄭尙驥)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정후조(鄭厚祚)가 수정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기[1678~1752]가 조선 영조 때 제작한 『동국지도』에는 경기도와 충청도가 한 도면에 그려져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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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 등이 간행한 동래정씨 파보(派譜). 『동래정씨파보(東萊鄭氏派譜)』는 정원용(鄭元容) 등이 18세 정창연(鄭昌衍)을 파시조(派始祖)로 하여 간행한 동래정씨의 파보(派譜)이다. 정창연[1552~1636]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판서를 거처 1623년(인조 1) 좌의정이 된 인물이다. 5권 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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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규장각 학자들의 시를 모아 엮은 책. 『동성교여집(東省校餘集)』은 직각홍문부응교(直閣弘文副應敎)로 재직 중인 정원용[1783~1873]이 김조순(金祖淳) 등의 규장각 학자들과 함께 362일에 걸쳐 정조의 어제(御製)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의 교정·감수와 간행 작업을 하는 동안 여가를 틈타 수창하며 읊은 시를 편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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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 광명 지역이 시흥으로 표기된 전국 고지도. 『동여(東輿)』의 제작 시기는 함경도의 후주부(厚州府)가 처음 설치된 1822년(순조 22) 이후, 장진부(長津府)가 첨사진(僉使鎭)으로 변경되는 1843년(헌종 9) 이전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첩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같이 절첩장(折帖裝)으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지도의 윤곽으로 볼 때 정상기(鄭尙驥)의 『동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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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엮은 공문서 모음집. 『북첩록(北牒錄)』은 정원용[1783~1873]이 1840년 3월 4일부터 1841년 4월 21일까지 함경도관찰사로 재직하는 동안 조정과 함경도 감영을 오고 간 공문서를 모아 엮은 첩록(牒錄)이다. 전 5책 분량이었으나 이 가운데 3책이 누락되어 현재는 4책만 남아 있다. 4책의 필사본으로, 표제는 ‘북첩록(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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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함경도 회령 및 북관 지역의 사정에 대해 서술한 책. 정원용[1783~1873]은 1829년(순조 29) 회령부사에 임명되어 1년여 재직했는데, 『북행수록(北行隨錄)』은 회령부사에서 물러난 뒤 저술한 것이다. 정원용은 회령 지역이 관방의 주요 지역임을 깊이 깨닫고 변방에 대한 정책이 소홀함을 몸소 돌아보고 그 대비책을 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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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 가문에서 가계(家系)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서첩. 『삼당가승(三堂家乘)』은 오리(梧里) 이원익[1547년~1634년] 집안의 역대 가계와 통혼 관계 등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서첩이다. 1권 1책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가로 24.0㎝, 세로 34.6㎝이다. 이원익으로부터 이의전(李義傳), 이수약(李守約), 이상현(李象賢), 이존도(李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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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이 『목민심감(牧民心鑑)』에 글을 추가하여 편찬한 책. 『선각(先覺)』은 이원익(李元翼)이 이주군(李朱君)과 함께 명나라 초 주봉길이 쓴 『목민심감(牧民心鑑)』에 글을 추가하여 편찬한 책으로, 『목민심감』의 이본이라 할 수 있다. 이원익[1547~1634]이 생질 이덕기를 위해 써 준 것으로, 목민관이 마땅히 지켜야 할 본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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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 가문에서 전해 오는 비문을 모아 놓은 탁본첩. 『선조갈문(先祖碣文)』은 1592년부터 1694년에 걸쳐 이원익[1547~1634]의 4세손인 완성군(完成君) 이존도(李存道)[1659~1745] 대에 이원익의 할아버지 수천군 이정은의 묘갈(墓碣)에서부터 삭녕군수 이상현의 묘표에 이르기까지 집안에서 전해 오는 비문들을 모아 완성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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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원용이 오대산 사고(史庫)를 거쳐 고성군에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일기. 『쇄사동정일기(曬史東征日記)』는 경기도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1808년 4월 7일 한양에서부터 오대산 사고를 거쳐 고성군에 이르기까지 25일 동안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이를 『동정일기』, 『포쇄동정일기』 등이라고도 한다. 『쇄사동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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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철종 5)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자신이 경험한 견문과 의례, 인물 등을 정리한 책. 정원용은 아들 정기세(鄭基世)[1783~1873]가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어 1854년 임지로 떠나자, 철종으로부터 원로대신을 위로하는 뜻에서 ‘수해 지역 순찰’이란 명목으로 휴가를 받았다. 이때 한가한 틈이 나자, 50년 관직 생활의 경험을 더듬어 조정의 전장(典章)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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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순조 19)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지은 시문집. 정원용[1783~1873]은 1819년 12월 6일부터 2년 6개월간 영변부사로 재직했다. 『약산록(藥山錄)』은 영변부사로 부임한 다음날 아버지와 함께 약산(藥山) 동대(東臺)에 오른 뒤 지은 글 등 영변부사로 재직하던 동안의 시와 문장을 모은 책이다. 초고본(草稿本) 상태인 것을 정원용의 후손인 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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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철종 1)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 등이 찬(撰)한 순조와 익종의 능지장속편(陵誌狀續編). 『양릉지장속편(兩陵誌狀續編)』은 순조[1790~1834]와 세자 익종[1809~1830]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50년에 찬(撰)한 능지장속(陵誌狀續)이다. 양릉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를 합장한 인릉(仁陵)과 익종과 신정왕후 조씨를 합장한 수릉(綏陵)을 의미한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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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1776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輿地圖)』 중 경기도 군현이 그려진 지도. 『여지도』「경기도」는 1757년(영조 33)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의 홍릉(弘陵)이 들어서면서 이름을 얻게 된 서오릉(西五陵)이 고양 지역에 표시되어 있고, 평안도의 이산(理山)이 표기된 것으로 미루어 1757년 이후부터 1776년(영조 52) 이전에 제작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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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중국 연경에 다녀오면서 쓴 시와 일기 모음집. 『연사록(燕槎錄)』은 정원용[1783~1873]이 1831년(순조 31) 10월부터 1832년(순조 32) 3월까지 동지상사(冬至上使)의 신분으로 중국 연경(燕京)에 갔다가 돌아와서 입궐할 때까지 5개월 12일 동안 쓴 시와 일기를 모은 연행록(燕行錄)이다. 후손인 정인보(鄭寅普)[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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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쓴 연행(燕行) 일기. 『연행일록(燕行日錄)』은 정원용[1783~1873]이 1831년(순조 31) 10월 16일 동지겸사은사의 정사(正使)로 한양을 떠났다가 청나라에서 귀국하여 의주에 머물던 1832년 3월 11일까지 약 5개월간의 기행 일기다. 청나라에 들어가기 전의 일은 기록하지 않고, 11월 20일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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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경종 즉위년) 광명의 인물인 권유(權愈)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시문을 묶고 발문을 쓴 책. 『열성어제(列聖御製)』는 1631년(인조 9)에 단종과 연산군을 제외한 태조부터 선조까지 조선의 12대 왕의 시문을 편집하여 최초로 간행되었다. 그 후 1679년(숙종7 2)에 이를 보완하여 간행되었으며, 그 뒤로도 철종 대까지 왕이 바뀔 때마다 선왕의 어제를 편집하여 앞 시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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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문신인 이인복(李仁復)이 하사받은 열성어필(列聖御筆)을 모아 놓은 책. 『열성어필(列聖御筆)』은 조선 태조 이성계부터 경종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의 글씨를 모아 놓은 첩(帖)이다. 1723년(경종 3) 이인복[1683~1730]이 안동부사로 재직할 때 하사받아 현재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보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는 승정원우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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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조(禮曹)에서 광명 출신의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에 대해 쓴 글.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번지에 있는 영회원(永懷園)은 광명 지역이 낳은 역사적 인물 민회빈 강씨[1611~1646]의 묘를 말한다. 민회빈 강씨는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의 딸로,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1612년~1645년]의 빈이 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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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정조 9) 광명의 인물인 정술조(鄭述祚)가 동궁의 교육에 필요한 문헌을 발췌하여 엮은 교육서. 『예학집요(睿學輯要)』는 광명시 하안동에 묘소가 있다고 전하는 조선 후기 문신 정술조[1711~?]가 1785년 9월 6일 정조에게 올린 글이다. 당시 4세 된 동궁의 교육 등 조선시대 왕가의 교육을 위해 편찬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으로 1,589책[탈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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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이 남긴 일기. 『오리일기(梧里日記)』는 이원익[1547~1634]이 조선 후기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보존,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서 1592년(선조 25)부터 1623년(광해군 15)까지 기록한 일기이다. 본래 임진왜란 이전까지 10여 함(函)이 남아 있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원익의 서녀(庶女) 중 한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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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영조 48) 편찬된 광명 출신의 문신인 강석기(姜碩期)의 유고집. 금천현 서면 노온사리[현 광명시 학온동 일대]에서 태어난 강석기[1580~1643]는 인조반정 후 벼슬이 우승지에 이르렀다. 강석기의 둘째 딸이 바로 소현세자의 빈인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다. 강석기가 세상을 떠난 후 민회빈 강씨가 궁중 내의 음모로 사사되자 관직이 추탈되었다가 숙종 때 복관(復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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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작성한 조선 팔도의 살인 사건 보고서 초록. 조선 후기 재상이자 문장가인 정원용[1783~1873]은 1831년(순조 31) 형조판서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7월 13일부터는 홍문관제학을 겸임하였다. 『유경록(惟輕錄)』은 1책본과 5책본이 있다. 이중 1책본은 1831년부터 1832년(순조 32) 10월 16일까지 1년 5개월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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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문신인 권유(權愈)가 개찬(改撰)한 인경왕후(仁敬王后)의 행적을 기록한 능지문(陵誌文). 『인경왕후지(仁敬王后誌)』는 원래 조선 후기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1661~1680]가 죽은 다음해 익릉(翼陵)에 장사지낼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제진(製進)하였다. 그런데 1689년 송시열이 숙의장씨의 아들[훗날의 경종]을 세자에 책봉해서는 안 된다는 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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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문신인 이존도(李存道)가 저술한 역사책. 『전사통감(全史痛鑑)』은 이존도[1659~1745]가 공자의 역사 저술인 『춘추(春秋)』에 근본을 두고, 송나라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自治通鑑綱目)』의 범례에 근거하여 저술한 통감류 역사책이다. 주자학의 군신유의(君臣有義)를 근본으로 후학들에게 인륜과 도덕적 규범을 중시하고 실천케 하기 위해 쓰였다. 본래는 60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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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이 참여하여 만든 관리 지침서. 조선시대에는 지방 관리가 지켜야 할 수령칠사(守令七事)와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조목들을 수록한 『칠사문답(七事問答)』이 중요한 예규로 인정받았다. 『칠사문답』은 이원익[1547~1634] 외에 편자와 간행 연도가 미상인 조선시대 관리 지침서이다. 이원익이 쓴 글은, 그의 생질(甥姪)[누이의 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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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철종 8)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서문을 쓴 한시 모음집. 조선 후기인 18세기는 신분 질서의 변화가 일어나 중인 계급이 등장하고, 위항 시인들이 대거 출현한 시기이다. 『풍요삼선(風謠三選)』은 직하시사(稷下詩社)의 시동우(詩同友)인 유재건(劉在建)과 최경흠(崔景欽) 등이 1857년에 펴낸 위항 시집이다. 풍요(風謠)는 사대부의 노래인 아(雅)와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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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 중 경기도 광명시의 옛 지역인 금천현이 그려진 지도. 채색 필사본으로, 가로는 47.5㎝, 세로는 30.0㎝이다. 『해동지도』「금천현」은 남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여 그렸다. 산지는 회화식 기법을 가미하여 환포형으로 그렸다. 읍치에는 고을 이름과 향교만이 글자로 표기되어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았다. 주변 지역에는 면이나 마을 이름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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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정원용(鄭元容)이 왕에게 올린 문서를 엮은 책. 『황각장주(黃閣章奏)』는 정원용[1783~1873]이 왕에게 올린 문서로, 1803년(순조 3) 3월부터 1851년(철종 2) 3월까지 의정부와 왕 사이에 오고간 모든 보고와 결정 사항, 대신 간의 협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21권 15책의 필사본이다. 『황각장주』의 많은 부분이 관리 임명과 왕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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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가학동 성강수 가옥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781-5번지[공세동길 23]에 있다. 광명역사를 뒤로 하고 서독터널을 지나 600m 전방의 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 전방 도로변 오른쪽의 청기와식당 바로 뒷집이다. 가학동은 조선시대에 공세마을이라 일컫던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창녕성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가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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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고조할아버지는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강숙돌(姜叔突)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소격서참봉(昭格署參奉) 강뢰(姜賚)이며, 할아버지는 삼등현령(三登縣令) 강유경(姜惟慶)이고, 아버지는 이조참의 강찬(姜燦)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廣州金氏)이며, 외할아버지는 첨지(僉知) 김은휘(金殷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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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학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설계조의 재실. 경모재는 순창설씨 옥천부원군 설계조(薛繼祖)[1418~1486]를 배향하고 경모하기 위해 창건된 재실로, 약 300년 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설계조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아버지는 창덕궁직장(昌德宮直長) 설훈(薛纁)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숙주의 고모이다. 1443년(세종 25)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453(단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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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의복·의대·장식품. 정원용(鄭元容)[1783~1873]은 1802년(순조 2)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한 뒤 순조, 헌종, 철종, 고종에 이르기까지 72년간 조정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의정부와 중추원에서만 33년간 재직하였으며, 1862년(철종 13)에 궤장(机杖)을 하사받았다. 1874년(고종 11)에 문충이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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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충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궤장 하사 기로연에서 지은 시를 모은 시첩의 사본. 조선 시대에는 나이 70세 이상, 정 2품 이상의 원로 관료에게 왕이 안석(案席)과 궤장을 내려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1623년(인조 1) 3월, 인조(仁祖)는 정계에서 떠나 있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을 영의정에 임명하고, 그 해 8월 궤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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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충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계첩. ‘금오(金吾)’는 왕명(王命)을 받아 범죄 조사와 범법자 처리를 담당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의 별칭(別稱)이다. 「금오계첩」은 1714년(숙종 40) 11월 의금부 도사에 임명된 이인복(李仁復)[1683~1730] 등 10인이 면신례(免新禮)의 준비물로 제작한 계첩(契帖)이다. 충현 박물관 일대는 청백리(淸白吏) 재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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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지은『징비록』의 한글 번역본. 『광명 번역 징비록』의 저본인 『징비록』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책으로 1647년 간행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국내외 정세를 소개하는 등 체계적 서술로 인해 관련 사료 중 연구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을 위해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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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소현세자의 빈 강씨의 묘소. 광명 영회원(永懷園)은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제1왕자인 소현세자의 빈 강씨의 묘소이다. 강씨의 본관은 금천이고, 시호는 민회빈(愍懷嬪)이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와 고령신씨(高靈申氏) 사이에서 5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627년(인조 5) 9월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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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간행된 광명의 대표적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의 문집. 『오리집(梧里集)』을 책으로 간행하기 처음으로 정리를 시작한 사람은 이원익[1547~1634]의 친손인 이수강과 조카사위 이희년이었다. 달성도호부사였던 이수강은 이희년과 함께 소답, 일기, 연보, 잡저 10권에 『궤장연창수시』 1권을 덧붙인 뒤 이를 간행하기 위해 공인과 판목을 모으는 등 문집 간행을 구체적으로 진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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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에서 시행된 것으로 추측되는 은광 채굴. 조선 전기의 광산 개발은 중국에 대한 사대 조공품 및 국용(国用) 조달과 관련되어 진행되었고, 광산의 개발은 국가가 주도하였다. 그런데 지방의 수령이나 지역민들은 부담이 큰 채굴 작업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조선 초기 광산의 개발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무역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은을 무역 대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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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李元翼)의 글씨를 목판에서 인출한 것. 「광명 이원익 유묵목판 인출본」은 모두 8점으로, 이원익이 정몽주의 시를 옮겨 쓴 것을 후손이 목판에 판각하였고, 이를 인출한 것이다. 이원익의 친필 시(詩)를 언제 누가 목판본으로 간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비로서의 청렴한 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친필본과 대조하여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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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초상. 「광명 이원익 초상화」는 조선시대 문신인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영정 중의 하나이다. 2009년 6월 24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광명 이원익 초상화」의 주인공인 이원익의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 본관은 전주이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의 현손(玄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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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정몽주의 시를 직접 써서 자녀에게 준 문서. 「광명 이원익 친필 유묵」은 모두 13점이며, 대부분 손자, 손녀에게 남긴 것이다. 교육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이원익의 자손들에 대한 사랑과 선비로서의 청렴한 생활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7세기 전반 작성되었으며, 이원익 말년의 필체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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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존도가 작성한 유서. 「광명 이존도 유서」는 이원익의 4세손이며 대사간을 역임한 이존도(李存道)[1659-1745]가 1734년(영조 100, 1735년(영조 11), 1737년(영조 13) 4년간 3차례에 걸쳐 작성한 유서(遺書)이다. 일반적으로 종가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에는 분재기(分財記) 같은 자료가 중요한 자료 구실을 하지만, 이원익 종가에는 그러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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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구군복. 구군복(具軍服)은 조선시대 문관과 무관들이 갖추어 입던 군복이다.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입었던 구군복은 1968년 12월 12일 중요민속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머리에는 짐승 털을 가공하여 만든 전립을 쓰고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양이나 뒤가 트여 있는 협수를 입고 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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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퇴보(退甫), 호는 하계(霞溪). 고조할아버지는 승지 권형(權詗)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권약(權若)이며, 할아버지는 목사 권훈(權勛), 아버지는 권단(權偳)이다. 외할아버지는 정백형(鄭百亨)이다. 부인은 이행원(李行源)의 딸이다. 권유(權愈)[1633~1704]는 1665년(현종 6) 별시 문과에 병과 1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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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권형의 묘소. 권형(權詗)[1541~1605]은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중오(中悟)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치(權錙), 할아버지는 권식(權湜),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권침(權琛)이다. 외조부는 김석보(金碩輔)이다. 부인은 변훈남(卞勳男)의 딸이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중 목청전참봉(穆淸殿參奉)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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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시조는 신라의 왕족인 김흥광(金興光)이다. 고려 초기부터 명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한 광산김씨는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 형제 대(代)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 산맥으로 분파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급제자가 배출되었으며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이 나왔다. 김흥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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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대덕의 묘에서 출토된 명기류. 명기(明器)는 죽은 사람의 내세 생활을 위해 무덤에 함께 부장하는 기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15세기 후반 명기에 대한 양식이 정립되었고, 16~19세기에 걸쳐 소형 사발·접시·병 등이 주로 부장되었다. 묘지석과 함께 부장되는 명기들은 순백자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으나 청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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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대성의 묘소.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리는 광산김씨 돈녕공파와 소봉공파 후손 50여 세대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덕안리, 궁촌, 새터말 등이 새로 형성되면서 90여 호의 마을을 이루었다. 1950~1960년대에는 새마을운동, 4H 활동을 통하여 지붕 개량, 부엌 개선,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동 상점,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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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김씨 25세손으로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을 지낸 김종(金綜)이고, 어머니는 이양(李樑)의 딸이다. 김원록(金元祿)[1546~1627]은 1588년(선조 21)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형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1594년(선조 27)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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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녕(金寧). 시조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를 지내고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지고, 명종 때에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진 김시흥(金時興)이다. 김응수(金應壽)[1567~?]는 사복시 잡직인 마의(馬醫)에서 조관(朝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따르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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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찰 터. 노온사 터는 노온사동(老溫寺洞)에 있던 절터로 마을의 명칭은 노온사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마을의 이름은 원노온사동, 노온절, 노온절리, 노온사리, 논사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모두 사찰명과 유래하여 불리고 있다. 노온사동은 원래 큰말마을, 대말마을이 현재 마을에서 서남쪽 7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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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광명 지역 일대를 이해할 수 있는 32여 종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첩. 『동여비고(東輿備考)』는 제목의 뜻으로 보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이용하는 데 참고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 제작된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동람도(東覽圖)』 보다는 훨씬 자세하다. 또한 조선 후기에 제작되는 도별도(道別圖)나 군현도(郡縣圖)와는 달리 도별도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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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공세골에 있는 조선 후기 문화유씨 문중의 묘역. 문화유씨 묘역에는 유성구(柳聖龜) 등이 안장되어 있다. 유성구(柳聖龜)는 자가 원명(元明)이고 1620년에 출생하여 38세인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3등 26위에 입격하였다. 유경익(柳敬益)[1639~?]은 유성구의 아들로 자가 여숙(汝肅)이며, 35세인 1673년(현종 14) 진사에 2등 19위로 입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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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으로 소현세자의 빈. 본관은 금천(衿川). 고려 때 귀주 대첩의 영웅이며 벽상공신을 지낸 강궁진의 아들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이므로 금천강씨로 부른다. 아버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40년(인조 18) 우의정을 지낸 강석기(姜碩期)[1580~1643]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는 1611년 5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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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김녕김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김응수(金應壽)와 그의 후손들이 받은 교지 등의 고문서. 분성군(盆城君) 김응수[1567~?]는 임진왜란 당시 마의(馬醫)로 선조를 호종한 인물로 사복시이마(司僕寺理馬)의 신분에서 동반(東班)의 반열에 오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604년(선조 37)에는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도 선조의 신임으로 호성공신 3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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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량(仲亮), 호는 서은(西隱). 증조할아버지는 성복영(成復榮)이고, 할아버지는 진사 성열(成烈)이며, 아버지는 홍문관교리를 지낸 성우규(成禹奎)이다. 성종영(成鍾永)[1827~1890]은 1865년(고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1880년(고종 17) 상서원직장을 거쳐 1886년(고종 23) 예안현감과 연산현감, 18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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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응수의 사당. 영모재(永慕齋)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응수(金應壽)[1567~?]의 공덕을 기리고,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제사용 건물이다. 재실(齋室), 또는 재사(齋舍), 사당(祠堂)이라 부르기도 하며,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제의(祭儀) 기능이나, 제사에 필요한 도구와 각종 물품을 보관, 관리하는 역할도 한다. 온신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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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사당. 이원익(李元翼)의 본관은 전주,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이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이억재이다. 1569년(선조 2)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판서, 이조판서, 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유명하다. 1630년(인조 8)에 2칸 초가인 이원익의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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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원익의 종가. 오리 이원익 종택은 조선 선조~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던 오리 이원익(李元翼)의 종가이며, 관감당(觀感堂)은 1630년(인조 8) 인조가 경기감사에게 명하여 이원익에게 지어준 집이다. 이원익은 태종의 12번째 아들 익녕군(益寧君)의 4세손으로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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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익(子益), 호는 반청와(蟠靑窩). 명재상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7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금부도사와 지방 현감을 지낸 이존도(李存道)이고, 할아버지는 병조참판을 지낸 이인복(李仁復)이며, 생부는 교관(敎官)을 지낸 이언충(李彦忠)이다. 온양군수인 이언수(李彦秀)에게 입양되었다. 이겸환(李謙煥)[1739~1791]은 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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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열녀. 신씨(申氏)는 학생(學生)[생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에게 쓰는 존칭] 이세흥(李世興)의 처(妻)로 병자호란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절개를 지켰다. 정문(旌門)은 유등리(柳等里)[현 광명시 학온동]에 있었다고 전하나, 관리 부실 등으로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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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성(而省)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李元翼)이며, 아버지는 양근군수를 지낸 이의전(李義傳)이다. 이수약(李守約)[1590~1668]은 1623년(인조 1) 문음으로 선공감역이 되었으나 이듬해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28년(인조 6) 연풍현감과 1633년(인조 11) 사헌부감찰을 거쳐 1639년(인조 17) 형조좌랑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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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화(子和). 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원보(李元輔)로, 이원익(李元翼)의 형이다. 생부는 이경부(李敬傅)이나 예조좌랑을 지낸 이성전(李性傳)에게 입양되었다. 이수함(李守諴)[1592~1656]은 1627년(인조 5) 생원시에 합격한 후 1645년(인조23) 별시 을과에 4위로 합격하였다. 용담현령(龍潭縣令)과 양근군수(楊根郡守)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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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순신의 묘소.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무신 이순신(李純信)[1554~1611] 장군의 묘소이다. 이순신은 본관이 전주, 자는 입부(立夫)이다. 양녕대군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귀달(李貴達)이며, 아버지 이진(李眞)과 어머니 복주김씨 사이에서 금천(衿川)[지금의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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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이신(李愼)[1570~1634]은 임진왜란 때 영유 지방에서 시행된 무과 시험에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하였다. 평안도 안주와 강계판관 등을 비롯하여 주로 평안도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 그리고 함경북도병마절도사와 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평안병사 이괄(李适)이 인조반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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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태종의 아들인 익녕군 이치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함천군 이억재(李億載)이다. 이원익의 가계는 익녕군 이치-수천군 이정은-청기군 이표-함천군 이억재-이원익으로 이어진다.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1573년(선조 6) 성균관전적이 되었으며, 그해 2월 성절사 권덕여(權德輿)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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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원익의 초상. 「이원익 초상」은 조선 시대 문신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초상 중 하나로, 2005년 7월 7일에 보물 제1435호로 지정되었다. 「이원익 초상」의 주인공인 이원익의 자(字)는 공려(公勵), 호(號)는 오리, 본관은 전주이며,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의 현손(玄孫)이며, 이억재의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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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자손들에게 당부할 내용을 적은 글.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1599년(선조 32) 9월 15일에 이원익(李元翼)이 동호초당(東湖草堂)에 있으면서 자필로 아들 이의전(李義傳), 손자 이수약(李守約) 및 후대(後代) 자손(子孫)들에게 당부한 글이다. 풍수설에 구애 받지 말고 선산에 장사 지낼 것과 가족 간에 재물을 갖고 다투지 말 것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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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애도하며 남긴 시. 1604년(선조 37) 이원익(李元翼)이 아내 영일 정씨(迎日 鄭氏)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輓詩)이다. 이 만시는 만장(輓章)에 쓴 것으로, 장사를 지낸 후 내용은 베껴 보관하고 태우는 것이 관례이나 이원익이 손수 쓴 것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보존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따로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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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원익의 묘소 및 신도비.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본관은 전주, 자는 공려, 호는 오리, 시호는 문충이다. 한성부 유동(楡洞) 천달방(泉達坊)에서 태어났다.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 이치(李礻+多)의 4세손이며 수천군 이정은(李貞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표(李彪)이고, 아버지는 이억재(李億載)이며, 어머니는 동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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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이원익이 아들과 손자들에게 남긴 유서. 이원익이 84세때인 1630년(인조 8) 11월 21일에 아들 이의전(李義傳), 손자 이수약(李守約)·이수기(李守紀)·이수강(李守綱) 그리고 서자(庶子) 이효전(李孝傳)·이제전(李悌傳)에게 남긴 유서로서 장례 및 제례에 관한 유언을 자필로 작성한 것이다. 이원익은 선조의 가훈을 받들어 충효를 마음에 두고 인례(仁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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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공신 이원익(李元翼)의 배향 교서. 「이원익 인조묘정 배향교서(李元翼 仁祖廟廷 配享敎書)」는 1651년(효종 2)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을 인조의 묘정에 배향한다는 내용의 효종이 내린 교서다. 인조와 반정 공신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뒤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발탁함으로써 흉흉한 인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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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의중(宜仲). 할아버지는 함천군(咸川君) 이억재(李億載)이고, 아버지는 상국문충공(相國文忠公) 이원익(李元翼)이다. 어머니는 영일정씨(迎日鄭氏)로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이의전(李義傳)[1568~1647]은 1599년(선조 32) 31세 때 비로소 벼슬에 나가 4현(四縣), 5군(五郡), 2부(二府)의 목민관으로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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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내초(來初), 호는 춘절재(春節齋). 명재상 이원익(李元翼)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주목사를 지낸 이증현(李曾賢)이고,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이존도(李存道)이다. 어머니는 권석(權碩)의 딸이다. 이인복(李仁復)[1683~1730]은 1705년(숙종 31)에 진사가 된 뒤 문음으로 입사(入仕)하여 1708년 하양현감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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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망와(忘窩). 이원익의 4세손으로 친부는 이상현(李象賢)이고, 성주목사를 지낸 이증현(李曾賢)의 양자가 되었다. 아들로 이인복(李仁復)이 있다. 이존도(李存道)[1659~1745]는 가문의 일을 많이 정비하여 의릉참봉 시절 묘지(墓誌)를 참고하여 정조의 서녀이며 순조의 누이인 숙선옹주(淑善翁主)의 묘를 찾고 옛 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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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열녀. 열녀 신씨는 학생(學生)[생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에게 쓰는 존칭] 이주(李籌)의 처로 병자호란 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절개를 지켰다. 정문(旌門)은 유등리(柳等里)[현 광명시 학온동]에 있었다고 전하나, 관리 부실 등으로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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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사(孝思). 증조할아버지는 청백리 이원익(李元翼)이다. 부인은 상산김씨(商山金氏)이다. 이증현(李曾賢)[1629~1694]은 1657년(효종 8) 사간원대사간 민응형이 선조 대 삼대신(三大臣)의 후예를 채용하길 청하여 사옹원(司饔院)의 참봉으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이후 군자감과 내섬시의 주부를 거치며 외직으로 교하현감과 영천군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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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열녀. 정씨(鄭氏)[?~1707]는 학생(學生)[생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에게 쓰는 존칭] 이후상(李後相)의 처로 지아비가 죽자 염을 끝내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뒤를 따랐다. 이를 기려 1707년(숙종 33) 유등리(柳等里)[현 광명시 학온동]에 정문(旌門)을 세웠는데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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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에 묘소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심(士深), 호는 우재(迂齋)·남항거사(南港居士)이다. 세종의 다섯 번째 왕자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7세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이한(李漢)이고, 할아버지는 이인건(李仁健)이며, 아버지는 군수 이욱(李郁)이다.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로 문정공(文貞公) 황정욱(黃廷彧)의 딸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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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전복. 전복(戰服)은 문관과 무관의 군복인 구군복(具軍服)을 입을 때 그 위에 걸쳐 입던 옷이다. ‘답호’라고도 한다.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입었던 전복은 1968년 12월 12일 중요민속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소매와 무, 그리고 앞섶이 없고 뒷솔기가 허리 아래로 트여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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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익녕군파 후손이 받은 교지. 익녕군(益寧君) 이치(李袳)의 셋째 부인인 군부인(郡夫人) 평양조씨(平壤趙氏)의 묘소가 광명시 소하동[옛 소하리 마산(馬山) 삼석봉(三石峯) 아래]에 들어서면서 이곳은 군부인 조씨 소생 후손의 선산이 되었다. 이후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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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庵).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들로 조선 후기 여섯 차례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 있다. 정동만(鄭東晩)[1753~1822]은 1786년(정조 10) 진사시에 합격한 후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었다. 직장(直長)과 주부(主簿)를 거쳐 외직으로 현령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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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동만의 묘소. 정동만(鄭東晩)[1753~1822]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庵)이다.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정계순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鄭元容)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이 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으며, 1807년에 의영고봉사(義盈庫奉事)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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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동만의 묘갈. 정동만(鄭東晩)[1753~18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우고(右古), 호는 졸암(拙庵)이다. 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정계순(鄭啓淳)이다. 1786년(정조 10)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1804년(순조 4)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으며, 1807년(순조 7) 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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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지역의 대표적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정계순(鄭啓淳)이고, 아버지는 돈녕부도정을 지낸 정동만(鄭東晩)이다. 어머니는 용인이씨이다. 외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숭호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김계락의 딸이다. 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기세(鄭基世)와 목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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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광명시 향토행정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원용(鄭元容)에게 발급된 교지. 경산(經山) 정원용[1783~1873]은 1824년(순조 24) 아버지 정동만(鄭東晩)의 묘소를 현재의 광명시 학온동으로 이장하면서 이 일대에 세거지를 마련하였다. 그 뒤 정원용 자신은 물론이고, 1970년대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으로 이장하기 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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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제복. 제복(制服)은 왕이 종묘사직 등에 제사를 지낼 때 함께 참여한 신하들이 입었던 옷이다.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입었던 제복은 1968년 12월 12일 중요민속문화재 제13-1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머리에는 양관을 쓰고 푸른색 청초의를 입었다. 제복은 깃 모양이 둥근 단령으로 소매가 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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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조복. 조복(朝服)은 아침에 왕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때 입었던 관복으로, 1416년(태종 16)에 제정되었다. 조복이란 신하가 천자에게 나아갈 때 입는 옷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금관조복’이라고도 한다.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입었던 조복은 1968년 12월 12일 중요민속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민속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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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장터말에 있는 창녕성씨 문중의 묘역. 창녕성씨 묘역에는 성종영(成鍾永)[1827~1890], 성낙유(成樂游)[1865~1925], 성희경(成禧慶)[1884~1961], 성기석(成基錫)[1919~1990] 등 모두 4기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성종영은 돈녕부도정을 지낸 인물이다. 성기석은 성종영의 5세손인데, 1940년 조선방송국(朝鮮放送局) 단파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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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대지도로, 경기도 광명의 옛 지명인 시흥의 역사 지리를 이해할 수 있는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전국 8도 주현을 가로 22판, 세로 29층으로 나누어 그린 첩(帖) 지도이며, 1판 1단의 길이를 동서 70리, 남북 100리로 계산해서 그린 획정지도(劃井地圖)이다. 이는 동서의 길이를 약 1,500리, 남북의 길이를 약 3,000리로 계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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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명 출신의 열녀. 최악덕(崔岳德)[?~1741]은 수원최씨로 사비(私碑)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생활이 곤궁하였으나 부모를 극진하게 모시고 효도를 다하였다. 장성하여 원노(院奴)인 김두조(金斗祚)[자는 두징(斗徵)]에게 출가하였고, 남편에게 정순(貞純)하였다. 김두조는 힘이 천하장사였으나 갑자기 병이 들었는데, 병세가 깊어지자 최악덕은 여러 해에 걸쳐 갖은 노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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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터.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역대 명현을 모시고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함께 지닌 지방의 사설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지니고 있으며, 인재 양성과 유교적 향촌 질서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원은 붕당의 정치적 이해를 지닌 역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1865년(고종 2)부터 흥선대원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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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충현박물관 내에 있는 바위. 바위 위에서 거문고를 빠르게 연주했다 하여 탄금암(彈琴岩)이라 하며, 바위 측면에 ‘탄금암(彈琴岩)’이라고 새겨져 있다. 후손들에 의하면 이 바위는 오리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생전에 거문고 연주를 즐겼던 곳이라고 전한다. 오랜 세월 탄금암이라 전해진 것으로 볼 때 이원익 생전에 글자를 새겼을 것이라 여겨진다. 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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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의 대표적 인물인 정원용의 후수. 후수(後綏)는 종묘 제례를 드릴 때 입는 제복(制服)이나 왕에게 아침 문안을 드릴 때 입는 조복(朝服) 뒤에 장식물로 드리우는 띠이다. 우리나라에 후수가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이며 후대로 갈수록 품계를 구별하던 용도는 상실되고 장식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정원용(鄭元容)[1783~1873]이 사용했던 후수는 1968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