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김종련(金鍾鍊)[1861~1894]이고, 어머니는 정계언(鄭桂彦)이다. 아버지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하동 지역에서 활동하다 붙잡혀 경상남도 감영에서 효수를 당하였고, 형인 김기완(金淇完)도 여러 방법으로 항일 투쟁을 한 인물이다. 부인은 조묵계로,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김기범(金淇範)은 1885년 9월 25일 지금의...
-
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김한순은 근우회(謹友會) 하동지회 초대 위원장이다. 근우회는 1927년 5월 민족주의여성운동과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양 진영 합동으로 결성되어 1931년 사실상 해체될 때까지 4년간 한국여성운동의 중추부로 기능하였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치 분위기를 타고 1920년대에 전국적으로 여성단체가 폭발적으로 생겨나 1923년까지 15...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성(江城). 호는 은파(隱坡). 할아버지는 문영국(文永國)이고, 아버지는 문욱동(文勗東)이며, 어머니는 강청등(姜淸登)이다. 부인은 벽진 이씨(碧珍李氏)이며, 자녀로 5남 1녀가 있다. 문공학(文孔學)은 1897년 9월 2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1212번지에서 문욱동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학의 기본서를...
-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주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백운룡(白雲龍)은 1925년 2월 28일 평안북도 신의주 신의주시 미륵동 151번지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제의 징병령이 강화될 즈음 만주로 피신했다가 같은 해 11월 산동성 청도 지구의 적지구공작대(敵地區工作隊)에 입대하여 적지구 특파 공작대원으로 광복군의 징모(徵募) 공작을 전개하였다. 1944년 1월 광복군 소속인 윤창호...
-
일제 강점기와 현대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신현중(愼弦重)은 1910년 8월 4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관리에서 태어났다. 진주와 통영에서 공립 보통학교를 나오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7년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30년 6월 반제경성도시학생협의회(反帝京城都市學生協議會)를 조직했고, 1931년 4월에는 조규찬(曺圭讚)...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봉원(梁鳳源)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의 장날에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 등과 함께 화개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6일, 양봉원 등은 준비한 태극기를 장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화개면 주민과 전라도·충청도 상인 등 400여 명과...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삼섭(廉三燮)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하동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고 얼마 후인 3월 18일 하동읍에서 만세 사건이 일어나는 등 만세 운동의 기운이 고조되자 같은 학교 학생 박문화(朴汶和), 정점금(鄭点金), 전석순(全錫舜) 등과 함께 비밀 회합을 열고 의거를 협의하였다. 그들은 하동 지역의...
-
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장. 유명국(柳明國)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869년 3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에서 태어났다. 유진환(柳震煥)으로도 불렸다. 어려서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로 이사 가서 성장했고, 다시 아버지를 따라 산청군 시천면 공전리로 옮겨 그곳의 의병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제1차 의병 전쟁이 일어나자 가솔을 이끌고 노응규 진영에 가담하여 기관(...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종(李起淙)으로도 불리는 이강률(李康律)은 1902년(고종 39) 1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11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과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李汀秀)·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호(李璟鎬)[혹은 李敬鎬로도 씀]는 1890년(고종 27) 6월 1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던 이경호는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리고 붉은 글씨로 ‘항일 투쟁’, ‘일본 타도’를 써서 벽에 붙여두고 항일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이후 성천...
-
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호(李範鎬)는 1883년(고종 20) 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서 태어난 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55번지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월 정낙영(鄭洛榮)·정재운(鄭在雲)·정희근(鄭禧根) 등과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 18일 하동읍 장날 운집한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선언서」...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이학수이고, 어머니는 이지항이다. 부인은 김병임이며,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다. 이병도(李丙燾)[1923~1991]는 1923년 5월 11일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347번지에서 태어났다. 1940년 11월 21일 일본군 배속 장교 겸 부산 병참 기지 사령관 노다이의 총지휘 아래 ‘경남 학도 연합 군사 대연습’이 있었다. 부산과 마산의...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 경남 학도 연합 군사 대연습 이세기(李世基)는 1923년 10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1265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세기가 부산제2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1일, 일본군 배속장교 겸 부산 병참 기지 사령관 노다이의 총지휘 아래 ‘경남 학도 연합 군사 대연습’이 있었다. 부산과 마산의 중학교와...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태(李源泰)는 1894년(고종 31) 8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홍식(李弘植)·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 주재소까지 진출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기(李載基)는 1874년(고종 11) 5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이재기는 청년 시절 일본을 다녀온 후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스스로 심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같은 동리의 문공학(文孔學)·문영빈(文永彬) 등과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3월 21일 하...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수(李汀秀)는 1888년(고종 25) 9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이정수는 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이종의(李宗義)는 박영묵(朴永默)·이종인(李宗仁)·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그 해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장날, 일신단이 단상으로 올라가 의거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인(李宗仁)은 1869년(고종 6) 6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90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이종인은 박영묵(朴永默)·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홍식(李弘植)은 1896년(고종 33) 3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원태(李源泰)·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는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주재소까지 진출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봉규(林奉圭)로도 불리던 임만규(林萬圭)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1893년(고종 30) 1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화개면 장날,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 등의 주도로 전개된 1차 만세 시위에 임만규는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석순(全錫舜)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하동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학우 박문화(朴汶和)·염삼섭(廉三燮)·정점금(鄭點金) 등과 하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만세 운동을 목도하고 “우리 학생들도 궐기하여 의거를 결행하자!”고 결의하였다. 이에 수차례 비밀 회합을 가진 후, 기숙사에서 3~4학년...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은 1879년(고종 16) 3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66번지에서 태어났다.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권 회복의 첩경이라 생각하여 1909년 4월 19일 현산학교(懸山學校)를 설립하고, 이후 약 8년간 교사·교감·교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양력 과세와 단발 등 주민 계몽에도 앞장섰다. 또한 충의공...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남시(鄭南時)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885년(고종 22) 9월 1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남시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항리 밭에서 대성통곡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누가 죽었기에 그리 통곡하는가?” 하고 물으니, “조선 천지가 모두 죽었다.”고 답하였다....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몽석(鄭夢錫)은 1896년 4월 16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08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계통인 진주 광림학교[현 봉래초등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신학문을 배웠다. 1919년 2월 고종 황제의 인산에 참여하러 상경하였다가 3·1 운동을 직접 목도하고, 「독립선언문」과 격문을 지니고 진주로 귀향하였다. 이후 정몽석은 강달영(...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상근(丁湘根)은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장날에 쌍계사 승려 김주석(金周錫), 학생 양봉원(梁奉源) 등과 함께 화개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화개면 주민과 전라도·충청도 상인 등 400여 명도 합세하여 밤늦도록 시위를 전개하다 경찰의 발포로 해산하였다. 그리고 다음 장날인 4월 11일, 이강률(李康律)·이정수(...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상정(鄭相正)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중(善中), 호는 석정(石亭)이다. 1878년(고종 15)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1103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상정은 지리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의병대장 유명국(柳明國)의 명으로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귀향하였다. 1919년 3월 박영묵...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정섬기(鄭暹基)[1895~1954]는 영일 정씨로 아버지는 정환칠(鄭煥七), 어머니는 김관동(金冠東)이다. 정섬기는 1895년 12월 26일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600번지에서 태어나 1919년 하동읍 만세운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1954년 7월 24일 별세하였다. 부인은 정양남이며, 그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정섬기는 선조인 정몽...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성기(鄭成基)는 1886년 4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재종인 정섬기, 정섬기의 자형인 이경호와 함께 일가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43년 6월 11일에 작고하였다. 정성기는 1919년 3월 하동군 양보면 일신학교 교원 정섬기(鄭暹基)의 발의로 정세기(鄭世基)·이경호(李璟鎬)·정이백(鄭伊伯) 등과 하...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정찬옥(鄭燦玉)이고, 어머니는 정진덕(鄭晋德)이다. 부인은 창녕 조씨(昌寧趙氏) 조도업(曺道業)이며, 그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1. 3·1만세운동 정세기(鄭世基)[1879~1981]는 1894년 9월 28일 출생하여, 선조인 정몽주(鄭夢周)를 모신 재각에 건립된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일신학교에서 신학문을 배...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의 배다리장터에서 열린 만세 운동에는 인근 양보·진교·금남 주민 1천여 명이 동참하여 하동군 내 어느 지역보다 규모가 컸다. 이들이 만세 운동을 진행했던 배다리장터에는 현재 장은 서지 않고 그 터만 남아 있으며, 만세 운동을 기념해 하동군 고전면민 만세 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배다리장터는 ‘배더리장터’...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재옥(鄭在玉)[1893~1944]은 1893년 2월 21일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33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인이 최선이이며, 그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통해 충의(忠義) 사상을 갖춘 데다, 일본의 만행을 직접 보며 자라 항일 의식이 투철하였다. 1919년 4월 7일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정신교(鄭信敎)의 집에서 김기...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흥(咸興).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에 소속되어 장수로 활약한 추수경(秋水鏡)[1530~1600]의 9세손이다. 부인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그 사이에 아들은 없고 딸만 둘을 두어 양자를 들였다. 추홍순(秋鴻順)[1894~1959]은 1894년 3월 12일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23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매...
-
일제 강점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탁영래(卓泳來)[1922~ ]는 경상남도 통영시 태형동 284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무력항쟁을 기획하다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부인은 신상임(辛祥任)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탁영래는 1940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학생 김인준(金寅準)과 구국 운동에 뜻을 다지고 동지들을 모았다. 7월경...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남(洪順南)은 1902년(고종 3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광주 3·1 운동은 김강·김철·최병준·최한영과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농업학교 교사들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경 부동교(不動橋) 아래의 작은 장터에서 학생 및 일반 주민 1,500여 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당시 18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