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방의 문집. 조방(趙垹)[1577~1638]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 또는 반구정(伴鷗亭)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생육신 조려(趙旅)의 현손이다. 인근에 거주했던 이칭(李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박제인(朴齊仁)·이길(李佶)과 교유하였다. 조방의 10세...
-
1965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영기의 문집. 이영기(李永基)[1878~1948]는 함안군 대산면 황사리에서 거주하였다. 조열제(趙說濟)가 지은 『둔강 유고(遯江遺稿)』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이영기가 죽은 뒤 그의 장남 이호형(李鎬瀅)이 선친의 원고를 수습하여 조용극(趙鏞極)에게 교정과 편집을 맡겨 간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이 완수되기 전에 이...
-
조선 후기 함안 출신 유학자 안성흥의 문집. 안성흥(安聖興)[1683~1746]의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사희(士希), 호는 둔와(遯窩)이다. 조선 후기 함안군 여항면 두릉동에서 태어났다. 함안 지역의 사림이었던 안희(安憙)의 현손이다. 1728년 무신란 때 가산을 내어 반란군을 토벌하는 데 기여하여, 이후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건립되었다. 안성흥의 주손(胄孫...
-
근대 함안 출신의 유학자 감정식의 문집. 감정식(甘禎植)[1878~1951]의 본관은 창원이며, 자는 기찬(基贊), 호는 만계(晩溪)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화천리에서 태어났다. 진사를 지낸 감경무(甘景茂)의 11세손이다. 어릴 적부터 생업을 일구느라 글공부에 전념하지는 못했다. 일제 강점기 말 학정이 극심할 적인 1938년 사재를 털어 인근의 궁핍한 사람들...
-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이기호의 문집. 이기호(李錤浩)[1884~1969]의 본관은 재령이며, 자는 성화(性華), 호는 만서(晩棲)이다.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갈전 마을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고려 말 이오(李午) 이후 함안 지역에 거주했던 재령 이씨의 일원이다. 친족 숙부뻘인 이복흠(李馥欽)에게 배웠다. 이기호의 아들 이병선(李秉善)이 지은 『만서 유고(晩棲...
-
1896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 박치복의 시문집. 박치복(朴致馥)[1824~1894]의 본관은 밀양이며, 자는 훈경(薰卿), 호는 만성이다. 함안에서 태어나 합천에 살기도 하였다. 함안에 세거하던 조선 중기 박진영(朴震英)의 후손이다. 『만성집(晩醒集)』은 2차례 간행되었다. 첫 번째는 1896년 지금의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에 있는 이택당(麗澤堂)에서 간행되었고...
-
1927년 간행된 함안 지역에 거주한 유학자 이종화의 문집. 이종화(李鍾和)[1825~1905]의 본관은 여주이며, 자는 계홍(啓洪), 호는 만송당이다. 두릉(지금의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와 내곡리)에서 태어났다. 이경무(李景茂)의 후손이다. 어릴 적부터 함안에 거주하던 조원(趙湲)에게 배웠다. 조병규(趙昺奎)가 쓴 『만송당집(晩松堂集)』 서문과 정면규(鄭冕圭)...
-
선대가 함안에 살았고 창원에 거주했던 안인석의 문집. 안인석(安寅錫)[1838~1908]의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하건(夏建), 호는 만우(晩愚)이다. 창원 광려산 아래 두척(斗尺)에서 태어났다. 안인석의 13대조는 조선중종 때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로 이거하였으며, 그의 9대조는 다시 창원으로 옮겨 살았다. 묘소는 함안의 검암산에 있다. 안인석의 손자 안기호(...
-
1932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학자 조성인의 문집. 조성인(趙性仁)[1839~1924]의 본관은 함안이며, 자는 계맹(繼孟), 호는 만절당(晩節堂)이다. 우계리[지금의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조종도(趙宗道)의 후손이다. 1932년 2월경 조현규(趙顯珪)와 조용문(趙鏞汶)이 쓴 『만절당 유집(晩節堂遺集)』 발문에 의하면 간행 경위는 다음...
-
1968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영규의 문집. 조영규(趙映奎)[1858~1933]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영오(永五), 호는 임파(林坡)이다. 함안 운곡(현재의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 부근)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기에 살았던 조려(趙旅)의 후손이다. 1968년 문태관(文泰瓘)이 『임파집(林坡集)』의 발문을 지었는데, 이즈음 간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개항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성원의 문집. 조성원(趙性源)[1838~1891]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자암(紫巖)·한천(寒泉)이다. 함안 수동리[현재의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려(趙旅)의 후손이고 허전(許傳)의 문인이다. 『자암 유고(紫巖遺稿)』는 1957년경 간행되었는데, 간행을 주도했던 조성원의 손자...
-
1977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나상숙의 문집. 나상숙(羅相淑)[1868~1945]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진원(震遠), 호는 정산(靖山)이다. 함안 국곡리[현재의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국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15대조 나사경(羅士憬)이 나주에서 함안으로 이주한 이래로 함안 지역에 세거하던 나주 나씨의 일원이다. 『정산 문집(靖山文集)』 끝의...
-
1890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희의 문집. 안희(安憙)[1551~1613]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언우(彦優), 호는 죽계(竹溪)이다. 함안군 동쪽 모곡리[현재의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태어났다. 안향(安珦)의 후손이다. 문과에 급제하며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임진왜란 때 의병에 동참하였다. 1744년 이윤망(李贇望)이 지은 『죽계집(竹溪集)』 부록...
-
1939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성혁호의 문집. 성혁호(成爀鎬)[1838~1885]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원백(源百), 호는 죽포(竹圃)이다. 함안군 삼족리[현재의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 삼발 마을]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 성유수(成有修) 대부터 함안군 삼족리에 거주하였다. 성혁호가 죽은 지 54년 뒤인 1938년 무렵 후손들이 성...
-
1968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학래의 문집. 조학래(趙學來)[1899~1964]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순칙(舜則), 호는 중암(中巖)이다. 함안군 안도[현재의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안도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려(趙旅), 조종도(趙宗道)의 후손이다. 발문(跋文)에 의하면, 조학래의 조카 조쾌현(趙快顯)이 『중암 유고(中巖遺稿)』의 간행을 주도한 것으...
-
근대 의령에 거주하며 함안 지역 인물들과 교유했던 안정한의 문집. 안정한(安鼎漢)[1840~1914]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원가(元可), 호는 지강(芝岡)이다. 의령 봉곡리(현재의 의령군 지정면 봉곡리)에서 태어났다. 안정한의 선조 안탁(安濯)이 형 안관(安灌)과 함께 기묘사화 때 함안으로 피신한 이후 후손들이 함안, 의령 등지에 세거하였다. 족형 안정억(安鼎...
-
196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한규의 시문집. 조한규(趙澣奎)[1887~1957]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수경(受卿), 호는 척암(惕庵)이다. 조선 중기 조면도(趙勉道)의 후손이다. 1916년 계화도(繼華島)로 전우(田愚)를 찾아가 문인이 되었다. 『척암집(惕庵集)』은 1961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 검암리의 양호정(養浩亭)에서 발행되었고...
-
함안 조씨의 일원인 조용화의 시문집. 조용화(趙鏞和)[1907~1986]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태형(泰亨), 호는 청계(聽溪)이다. 조선 중기 함안에 거주하던 유학자 조임도(趙任道)의 후손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괴진리에서 태어났다. 의령에 거주하다가 김해에 우거하기도 하였다. 묘소는 함안군 송정 뒷산의 해좌 언덕에 있다. 조용화의 선대...
-
17세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영휘의 시문집. 조영휘(趙永輝)[1706~1781]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완보(完甫), 호는 청희당(淸羲堂)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기 조려(趙旅)의 후손으로 함안에 세거한 집안의 일원이다. 조영휘가 생전에 남긴 글이 적지 않았지만, 조영휘의 글을 보관하고 있던 후손가...
-
1939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성순의 시문집. 조성순(趙性恂)[1844~1905]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학여(學汝), 호는 취석당(醉石堂)이다. 함안 지역에 대대로 살던 함안 조씨 일원이다. 조려(趙旅), 조익도(趙益道)의 후손이다. 간행 경위를 자세히 파악할 만한 서문(序文), 발문(跋文) 등의 자료가 없다. 다만 문집 끝의 간기에 인쇄처, 발행처...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훈경(薰卿), 호는 만성(晩醒). 7대조는 병조 참판을 지낸 박진영(朴震英)[1569~1641]이다. 아버지는 박준번(朴俊蕃)이고, 어머니는 최규찬(崔奎燦)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와 곽심춘(郭心春)의 딸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현빈(李賢賓)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강창범(姜...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언우(彦優), 호는 죽계(竹溪).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안향(安珦)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안창공(安昌恭)이 서울에서 함안으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안공진(安公軫)이고, 어머니는 안택(安宅)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이다. 안희(安憙)[1551~1613]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태어났...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경무의 문집. 이경무(李景茂)[1609~1679]의 본관은 여주이며, 자는 여실(汝實), 호는 만묵당(晩默堂)이다. 함안 두곡촌[지금의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경무의 고조할아버지가 함안으로 이주하였고, 아버지 이익형(李益亨)[1573~1633]은 두곡촌에 정착하였는데, 당시 북인 세력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
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자언(子彦), 호는 둔강(遯江). 조선 전기 함안에 거주했던 이칭(李偁)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익봉(李益鳳)이고, 어머니는 조원한(趙元漢)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부인은 이수기(李琇基)의 딸 벽진 이씨(碧珍李氏)이다. 이영기(李永基)[1878~1948]는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서 태어났다. 인근에...
-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영오(永五), 호는 임파(林坡). 조선 전기 조려(趙旅)의 15세손이고, 조영도(趙詠道)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성숙(趙性璹)이고, 어머니는 정광덕(鄭光悳)의 딸 해주 정씨(海州鄭氏)이다. 부인은 노종흠(盧琮欽)의 딸 장연 노씨(長淵盧氏)이다. 아들은 조용진(趙鏞珍), 조용석(趙鏞碩), 조용갑(趙鏞甲)이고, 딸 두 명은 성락정...
-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순칙(舜則), 호는 중암(中巖). 조선단종(端宗)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와 정유재란 때 황석 산성에서 순절한 조종도(趙宗道)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조창제(趙昌濟)이고,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와 나주 나씨(羅州羅氏)이다. 친아버지는 조강제(趙綱濟)이고 친어머니는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조학래(趙學來...
-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수경(受卿), 호는 척암(惕庵). 조선단종(端宗)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15세손이고, 조면도(趙勉道)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성모(趙性謨)이며, 어머니는 주시용(周時用)의 딸 상산 주씨(商山周氏)이다. 부인은 세 명을 맞았는데, 첫 번째 부인은 최동옥(崔東玉)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 두 번째 부인은 이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