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풍(海豊). 부친은 병마절제사 김형(金瑩)이다. 동생이 김시건(金始乾)·김이건(金以乾)·김체건(金體乾)이다....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풍(海豊). 조부는 김우추, 부친은 병마절제사 김형(金瑩)이다. 형제는 김대건(金大乾)과 김시건(金始乾)이 있다....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서북부 및 중부 지역에서 벌어진 청나라와의 전쟁. 1627년 1월에 발생한 정묘호란의 결과,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교역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후금은 변경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하는 등 수시로 조선을 도발하였다. 나아가 만주 점령 후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를 압박하는 과정에서는 형제의 맹약을...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증조부는 진사 유함(兪涵), 조부는 수안군수(遂安郡守)를 지낸 유대경(兪大儆), 아버지는 행예빈시참봉(行禮賓寺參奉) 유양증(兪養曾)이다. 어머니인 의령 남씨(宜寧 南氏)는 호조참판을 지낸 남이신(南以信)의 딸이다. 유계는 4형제 가운데 셋째이다.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형백(亨伯), 호는 화남(華南)이다. 할아버지는 공조판서 유잠(柳潛), 부친은 광해군의 장인인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유자신(柳自新)이다. 어머니는 동래 정씨(東萊鄭氏)로, 정유길(鄭惟吉)의 딸이다. 형제는 형 유희갱(柳希鏗)·유희담(柳希聃), 아우 유희발(柳希發)·유희량(柳希亮)·유희안(柳希安)이 있다. 처...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및 장안면 일대에 은거한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선(子善), 호는 호암(浩菴),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언을 지낸 이희백(李希伯), 할아버지는 안성군수를 역임한 이대수(李大秀), 아버지는 형조판서를 지낸 이현영(李顯英), 어머니 진주 유씨는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유사규(柳思規)의 딸...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자연(子淵), 호는 농옹(聾翁)·서연(西淵). 아버지는 대사간 이효원(李效元)이다. 15세기부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온 함평 이씨 함성군파의 일원이다....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위도(衛道), 호는 송죽당(松竹堂)이다. 아버지는 첨정 정응택(鄭應澤)이다. 정문익의 후손은 송죽당공파(松竹堂公派)라는 이름으로,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와 중손리에 세거하였다....
-
경기도 화성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사흥(士興)이며, 호는 만주(晩洲)·만사(晩沙)·묵헌(黙軒)·죽헌(竹軒) 등이다. 아버지는 지제교 정시망(鄭時望)이고, 어머니 여흥 이씨(驪興李氏)는 교리 이상홍(李尙弘)의 딸이다. 정창주의 후손은 초계 정씨 만주공파(晩洲公派)로,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세거하였다....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자실(子實), 호(號)는 설정(雪汀)이다. 아버지는 사도시(司䆃寺) 주부(主簿)를 지낸 조경인(曹景仁)이고, 어머니 풍산 심씨(豊山沈氏)는 우의정 심수경(沈守慶)의 딸이다....
-
경기도 화성시 명고서원에 배향되었던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400년 간 세거한 들목 조씨이다. 자(字)는 중초(仲初), 호(號)는 송곡(松谷)이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조익(趙翼)이고, 어머니는 성주 현씨(星州玄氏)이다....
-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비경(飛卿), 호는 포저(浦渚)·존재(存齋). 증조부는 오위도총부 부총관 조안국(趙安國), 조부는 현령 조간(趙侃), 부친은 중추부첨지사 조영중(趙瑩中)이고, 모친은 해평 윤씨(海平尹氏)로 현감 윤춘수(尹春壽)의 딸이다....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 수군 진영. 화량진이 설치된 남양만 일대는 신라 시대 이래 서해안 지역의 교통·군사적 요지였다. 그러나 화량진의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기 어려운데, 1358년(공민왕 7)에 왜적이 화지량(花之梁)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4세기 중반에는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화량진은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남양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