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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에 있는 근대기 유학자 전우의 묘역과 제각. 간재선생 유적(艮齋先生遺蹟)은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에 있는 근대 성리학자 간재 전우(田愚)[1841~1922]의 묘역과 현산재를 말한다. 간재 전우는 82세에 사망한 후 익산 선영에 묻혔다. 전우의 초명은 전경륜(田慶倫)·전경길(田慶佶)이며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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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봉우(金鳳友)는 1882년 지금의 익산시 목천동 목상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10월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봉우는 익산군 관동(冠洞)에 살던 이창오(李昌五) 집을 비롯한 익산 일대의 여러 촌락에서 총기를 징발하는 등 군수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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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덕(金龍德)[1926~1995]은 1926년 4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3년 3월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를 조직하고 전통 역사관 및 독립사상 확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등독서회는 김용덕을 비롯하여 홍환균·최규학·옥대호·노동훈·안동영·이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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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흥여(金興汝)[1889~?]는 목화상을 하다가 일제의 침탈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정판성(鄭判成)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김흥여는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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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익산 지역에 미륵사와 궁궐 등을 축조한 백제의 왕. 무왕(武王)[재위 600~641]은 백제의 제30대 왕으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성장 세력 기반인 익산 지역에 왕궁평성(王宮坪城)과 제석사(帝釋寺)를 창건하였다. 또한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불교 정책을 펼쳤다. 무왕의 이름은 부여장(扶餘璋)이며 무강(武康)·헌병(獻丙)·일기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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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관옥(朴寬玉)[1880~?]은 1880년 전라북도 익산군 우북면[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김경섭(金景燮)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5월 11일 밤 박관옥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동료 의병 8명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익산군 우산면 동하리 이장인 강성옥(姜成玉)의 집에 뛰어들었다. 박관옥 등은 백성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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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복순(朴福淳)[1888~?]은 전라북도 익산군 두남면 장정리 출신으로 도기를 제조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삼남의병대장 유지명(柳志明) 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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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영오(朴永五)[1874~?]는 1874년 전라북도 익산군 서일면 관암리에서 태어났다.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부장(部將)으로서 익산과 김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2월 24일 김시백 등 동료 4명과 함께 고산군[현재의 완주군 일대] 서면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고, 4월 7일에도 김제군 공동면[현 김제시 백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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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해주오씨 가문의 사당과 묘역. 삼세오충렬 유적(三世五忠烈遺蹟)은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에 있는 해주오씨 오충신(五忠臣)의 무덤과 사당인 충렬사가 있는 곳이다. 충렬사에서는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오응정과 아들 오욱, 오직, 오동량과 오직의 아들 오방언 3대를 추향(追享)하고 있다. 오응정(吳應鼎)[1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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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서성군(徐成君)[1881~1909]은 1881년 익산군 우북면 치실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1909년 5월 이기준(李己準)의 의진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성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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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내원(蘇來元)[1890~1967]은 1890년 7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1919년 9월에 가산을 정리하여 자금을 마련한 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로 망명한 소내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리한 가산을 모두 군자금으로 내놓았고 정부 요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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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송진행(宋鎭行)[1870~?]은 1870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이석용(李錫鏞)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에 동료 의병들과 함께 진안군 원일면 좌산리와 창북리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12년 2월 1일에는 장수군 수서면 매암리와 진전면 호병리 등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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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심홍택(沈弘澤)[1909~1959]은 1909년 6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동맹휴교를 결심하였다. 심홍택은 1929년 12월 8일 강대성, 강상덕, 황한희 등과 함께 시위를 계획하고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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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양중석(楊重錫)[?~1907]은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출신으로,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양중석이 속한 의병 부대는 알 수 없지만 주로 익산, 강경, 여산 등지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병들의 항일투쟁은 일본군와의 직접적인 전투뿐만 아니라 군자금 모집,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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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권재(李權載)[1922~?]는 1922년 2월 1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삼담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서울 경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권재는 같은 학교 동기생인 송택영(宋澤永) 등과 함께 민족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조선인해방투쟁동맹(朝鮮人解放鬪爭同盟)을 조직하고 기관지 발행과 선전물 작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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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이기영(李琪榮)[1849~1922]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부인은 장상문(張相文)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아들은 이규홍(李圭弘), 이규련(貳圭連)이다. 이기영은 1849년 7월 29일 전라북도 익산군 팔봉면 석암리[현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중추관의관을 역임하였으며, 1907년 아들 이규홍이 의진을 결성하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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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환(李載煥)[1889~1951]은 1889년 11월 12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5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17년 국내에 들어왔다. 1919년 9월경 이재환은 우재룡·소진형·권영만 등과 함께 전국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확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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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862년(철종 13) 2월 18일 진주민란에 이어 3월 27일 익산에서도 농민들의 항쟁이 일어났다. 익산민란은 도결의 폐단과 봉건 정부의 수탈, 그리고 향촌 내 양반의 횡포 등 19세기 전반적인 봉건 정부의 무능과 수탈에 맞선 항쟁이다. 익산민란은 타 지역과 같이 불법적인 도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농민의 항쟁이었지만 다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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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정제호(鄭濟鎬)[1821~1897]의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시순(時舜), 호는 만포(滿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유증(鄭有曾)이고, 할아버지는 정택응(鄭宅膺)이다. 아버지는 북촌(北村) 정석행(鄭碩行)이며, 어머니는 교관 이의술(李宜述)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훈련원첨정을 지내고 경술국치 때 자결한 애국지사 정동식(鄭東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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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정판성(鄭判成)[1883~?]은 1883년 익산에서 태어났다.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김흥여(金興汝)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정판성은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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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2019년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는 조선 시대의 4개 군현을 통합하여 1914년 성립되었다. 조선은 1413년(태종 13) 행정구역을 8도로 정비하였고 전라도는 1부[전주] 4목 7도호부 12군 31현을 두었다. 익산군은 12개 군 중의 하나로 고려 시대 익주를 익산군으로 개편하여 칭하였다. 이후 1895년(고종 32) 이웃 고을인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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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설치된 세미(稅米) 창고. 익산 지역의 조창은 조선 전기에 덕성창, 후기에 성당창이 설치되었다. 덕성창(德城倉, 德成倉)은 1428년(세종 10)부터 1487년(성종 18)까지 전라도 함열 피포(皮浦), 현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고창리에 설치되었다. 성당창은 현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일대에 설치되었다. 전라도 전주와 그 주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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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최윤보(崔允甫)[?~1909]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자 이기준(李己準)의 의진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에 나섰다. 최윤보는 19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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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노소. 노소란 오늘날의 경로당, 노인정과 같이 노인 등이 모여 쉴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조선 시대 노소는 단순히 공간적 기능뿐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통솔하고 이끌어 가는 정치·사회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수동마을의 함라노소는 1687년(숙종 13) 7월 건립되어 유서가 매우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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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허균의 유배 생활 추정터. 허균 유배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인 허균(許筠)[1569~1618]이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1611년(광해군 3)에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허균이 전라북도 익산의 함열로 유배를 자원한 까닭은 함열 지역이 또 다른 생활의 근거지였던 부안과 인접한 곳이고, 당시 함열현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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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건표(洪建杓)[1923~1975]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자는 경중(敬中), 호는 호산(壺山)이다. 홍건표는 1923년 9월 17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경복중학교 재학 중이던 홍건표는 같은 학교 학생이던 이현상(李賢相)·장의찬(張宜燦)·주낙원(朱樂元)·성익환(成益煥)·명의택(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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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화암서원은 1552년(명종 7)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이공수(李公遂)[1308~1366]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서원이다. 이공수는 고려 시대 학자이자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고려 공민왕 때인 1365년 익산부원군(益山府院君)에 봉해진 익산 출신 인물이다. 화암서원은 1869년(고종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