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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 본관은 진주. 본명은 강년국(姜年國)이며 세례명은 아가다이다. 아버지는 강두훈(姜斗勳)이며 어머니는 홍소사(洪召史)이다. 1910년 신성여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3월 졸업하였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전라남도에 있는 진도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21년 제주에서 최정숙(崔貞淑)과 함께 여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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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고려 후기 삼별초군을 이끌었던 김통정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애월읍 어름1리에 사는 김승추(남, 57세)가 구연한 것을 김영돈과 김지홍이 채록하여 1985년 출판한 『제주설화집성』에 수록하였다. 고려가 몽골과 화친하는 것에 반발한 삼별초군은 김통정 장군을 중심으로 진도를 거쳐 제주에 입성한 뒤 항파두리에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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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아끈다랑쉬 오름이라 불렀다. 아끈은 작은의 뜻을 가진 말로, 다랑쉬 오름의 작은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사람에 따라 아진다랑쉬 오름으로도 부른다. 아진은 앉다의 제주어인 아지다의 관형사형이다. 아끈다랑쉬 오름 바로 서쪽에 이웃한 오름이 다랑쉬 오름이다. 식생은 소나무를 비롯하여 잡초와 잡목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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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거나 주체로 하여 창작한 문학. 제주도의 아동문학은 1960년대에 동인을 중심으로 활동이 있었으며,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 현재의 제주아동문학협회의 전신인 제주아동문학연구회가 1980년에 결성되었으며 등단도 그때부터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주 아동문학은 1960년대에서부터 논의될 수 있다. 1960년대에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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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군위 오씨(軍威吳氏)의 선조가 난산리에 살다가 5백년 전 이곳에 터를 잡으며 형성되었다고 한다. 군위 오씨 뒤를 이어 담양 전씨(潭陽全氏),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입촌하게 되었고, 아란 마을은 오랫동안 세 성씨의 집성촌이었다. 고종 을미년에 군위 오씨 일가와 거마에서 이주한 양씨가 대원 마을을 이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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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450년전 강씨와 부씨가 물 좋은 곳[알새미]을 찾아들면서 금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금천에 거주하던 남평 문씨가 약 330년 전에 아래쪽으로 거처를 옮겨 월두 마을을 형성하였고, 간월동[간드락]은 여씨 조상들이 부근에 거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아라우, 아란동,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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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의 산지천 지류와 제1횡단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다리. 길이는 32m, 폭은 36m, 유효 폭은 26m, 높이는 5.5m이다. 경간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9m이다. 총 차선 수는 6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RA형 교량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ETC식이다. 설계 하중은 DB-24로 1등교(等橋)이며,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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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동. 남쪽의 한라산 정상부에서 길게 뻗어 북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아라(我羅)라는 말은 현재의 아라 1동 지역을 1700년대 아라위 또는 인다라라 불리운 것에 기원하며, 아라리(我羅里)는 『제주삼읍전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지금의 아라 1동과 아라 2동을 말한다. 아라위는 아라호의 변음으로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고 다만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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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인다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찰터. 아라동 사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대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절터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경사가 진 지형이다. 남쪽으로는 인다 건천이 흐르고 있다. 지표면에는 기와편들과 백자 및 청자편들이 산포되어 있다. 북쪽 과수원 지대에서는 백자 파편과 옹기 파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아라동 사지에서는 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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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클래식 기타 중주단. 순수한 클래식기타 애호가의 모임으로, 현재 저조해진 클래식 기타의 영역을 지켜 나가고 도내 기타의 보급과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6년 대표자 송동효를 중심으로 클래식 기타 동호인들이 모여 창단하였다. 연 1회 이상의 중주 연주회와 합주, 독주 연주에 참여하고 있다. 1986년 창단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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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450년전 강씨와 부씨가 물 좋은 곳[알새미]을 찾아들면서 금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금천에 거주하던 남평 문씨가 약 330년 전에 아래쪽으로 거처를 옮겨 월두 마을을 형성하였고, 간월동[간드락]은 여씨 조상들이 부근에 거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아라우, 아란동,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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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동. 남쪽의 한라산 정상부에서 길게 뻗어 북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아라(我羅)라는 말은 현재의 아라 1동 지역을 1700년대 아라위 또는 인다라라 불리운 것에 기원하며, 아라리(我羅里)는 『제주삼읍전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지금의 아라 1동과 아라 2동을 말한다. 아라위는 아라호의 변음으로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고 다만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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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마을. 아라호는 한자 차용표기에 따라 아라호로 표기하였다.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민간에서는 아라위로 불린다. 17세기 고지도에서 아라호촌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아라호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아라호촌이라 하였는데, 18세기에는 아라호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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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2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첫째, 바르게 생활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 둘째, 창의적인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셋째, 민주적인 생활 태도로 공익에 공헌하는 사람 넷째, 심신 건강으로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굳센 의지·착한 마음·성실한 행동’이다. 아라 중학교는 제주시 인구 증가 및 학생 수 증가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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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고 새롭게 생각하며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건강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슬기롭게·건강하게’이다. 아라동 인다라 마을 김영종의 자택에서 개설했던 개량 서당을 아라1동 1698-2번지[중앙로 585]로 이설하면서 육영 서숙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33년 4월 육영 서숙을 5년제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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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마을. 아라호는 한자 차용표기에 따라 아라호로 표기하였다.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민간에서는 아라위로 불린다. 17세기 고지도에서 아라호촌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아라호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아라호촌이라 하였는데, 18세기에는 아라호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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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마을. 아라호는 한자 차용표기에 따라 아라호로 표기하였다.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민간에서는 아라위로 불린다. 17세기 고지도에서 아라호촌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아라호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아라호촌이라 하였는데, 18세기에는 아라호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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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동. 남쪽의 한라산 정상부에서 길게 뻗어 북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아라(我羅)라는 말은 현재의 아라 1동 지역을 1700년대 아라위 또는 인다라라 불리운 것에 기원하며, 아라리(我羅里)는 『제주삼읍전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지금의 아라 1동과 아라 2동을 말한다. 아라위는 아라호의 변음으로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고 다만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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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450년전 강씨와 부씨가 물 좋은 곳[알새미]을 찾아들면서 금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금천에 거주하던 남평 문씨가 약 330년 전에 아래쪽으로 거처를 옮겨 월두 마을을 형성하였고, 간월동[간드락]은 여씨 조상들이 부근에 거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아라우, 아란동,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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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영어 전용 FM방송국. 아리랑 영어FM 제주방송국은 국제방송교류재단(KIBF : The Korea International Broadcasting Foundation)에서 2003년 9월 1일 개국한 전국 유일의 영어FM 방송이다. 국제방송교류재단은 아리랑 TV, 아리랑 FM의 운영과 한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올 바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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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압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전악(前岳)으로 표기하였다. 압오름은 앞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압오름은 소리가 바뀌면서 아보롬·아부름·아보 오름·아부 오름 등으로 불렸다. 심지어는 아부 오름을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아부악(阿父岳·亞父岳)으로 표기하여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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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압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전악(前岳)으로 표기하였다. 압오름은 앞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압오름은 소리가 바뀌면서 아보롬·아부름·아보 오름·아부 오름 등으로 불렸다. 심지어는 아부 오름을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아부악(阿父岳·亞父岳)으로 표기하여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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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압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전악(前岳)으로 표기하였다. 압오름은 앞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압오름은 소리가 바뀌면서 아보롬·아부름·아보 오름·아부 오름 등으로 불렸다. 심지어는 아부 오름을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아부악(阿父岳·亞父岳)으로 표기하여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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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압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전악(前岳)으로 표기하였다. 압오름은 앞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압오름은 소리가 바뀌면서 아보롬·아부름·아보 오름·아부 오름 등으로 불렸다. 심지어는 아부 오름을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아부악(阿父岳·亞父岳)으로 표기하여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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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바다 속 해초류를 캐는 데 쓰는 어업 도구. 아시는 거름용 해초를 캐기 위하여 만든 도구로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그 자세한 연원은 알 수 없으나 화학 비료가 나오기 전까지 지력을 돋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연장이었다. 아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물 속과 배 위에서 동시에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든 것과 다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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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항공을 이용하는 여객들에 대한 서비스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된 항공사. 금호그룹은 1988년 2월 12일 (주)서울항공으로 면허를 취득하고, 2월 17일 자본금 50억 원으로 설립 등기를 마쳤다. 이어 2월 24일 정부가 서울항공에 국내, 국제 정기 및 부정기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함으로써 우리나라 민항공업계에도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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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제주 지역의 문인들이 간행한 문학 동인지. 1958년 시 동인지 『비자림』이 중단된 후 3~4년이 지나 제주시 칠성로의 주점과 다방 등지에서 만나던 문인들이 뜻을 모아 아열대 동인을 결성하였다. 동인 이름은 강통원이 지었는데, 1963년 초 동인지를 내기로 하여 제주 시내 남궁 다방에 모여 논의한 끝에 채택되었다고 한다. 아열대 동인으로는 강통원·고영기·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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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성들이 김(검질)매기 작업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김매기 노래」는 제주 지역 여성들이 조밭이나 보리밭, 콩밭의 김을 매면서 부르던 노동요이다. 제주 지역에서 김매기는 맷돌질이나 방아질, 물질 작업과 함께 여성 노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김매기는 보통 혼자서 할 수 있는 개별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눌음(품앗이)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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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아끈다랑쉬 오름이라 불렀다. 아끈은 작은의 뜻을 가진 말로, 다랑쉬 오름의 작은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사람에 따라 아진다랑쉬 오름으로도 부른다. 아진은 앉다의 제주어인 아지다의 관형사형이다. 아끈다랑쉬 오름 바로 서쪽에 이웃한 오름이 다랑쉬 오름이다. 식생은 소나무를 비롯하여 잡초와 잡목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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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봉우리. 금봉곡 동쪽 능선상에 있는 오름이로 골짜기가 수없이 많아서 아흔 아홉 골이다. 아흔아홉골의 첫 머리에 해당하는 골머리에서 오름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제주시 공원묘지 남쪽 수림 지대에 주로 집중된 이 골짜기들은 가까이는 어승생오름 동록, 멀리는 한라산 북서사면의 꽤 높은 지대에서 발원하는 것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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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계곡.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골로 어생오름의 바로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수많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는 데서 ‘아흡아홉골’이라 하고 한자 차용 표기로 ‘九十九谷(구십구곡)’으로 쓴다. 어승생악(御乘生岳) 동쪽 동산에 크고 작은 꼬불꼬불한 골짜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적송과 조릿대가 있으며, 울창한 수목이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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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서 전승되는 한라산의 아흔아홉골 유래에 대한 민담. 「아흔아홉골과 문사랑」은 제주 지역에서 범과 왕이 왜 나지 않는지를 이야기하는 유래담이다. 또한 왕이 될 뻔한 인물이 있었으나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역적이 된 이야기를 곁들여 영웅의 출현을 바라는 민중의 심리를 담고 있다. 1983년 3월 15일 제주시 이도1동의 김선우(남,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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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서식하는 수리과의 조류. 보통 물가 주위에 서식하는 맹금류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겨울철에 관찰되며, 제주도에서는 겨울이외에도 드물지 않게 관찰된다. 몸길이는 55~65㎝이며, 등은 암갈색이고, 배는 흰색인 큰 수리류이다. 머리는 흰색이고 눈 주위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날 때는 날개의 관절 부분을 뚜렷하게 접는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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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에 있는 포구. 우지포는 지금의 한림읍 수원리의 외딴 자연마을인 용운동 해변에 있는 안개를 두고 이른 말이며, 당시 우지(牛池)라는 지형지물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잠수촌과 귀덕촌 사이에 우지포가 있다고 가록하고 있다.『탐라지』에서는 제주목 안에 있던 일곱 개의 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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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선여(善餘). 아버지는 안건(安鍵)이며,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태어났다. 1725년(영조 1)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8년(영조 14) 1월 전라북도 고부군수에 부임하였지만 1738년 10월에 백성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하여 감금되었다. 1740년(영조 16) 9월 조동점(趙東漸)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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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진무(濟州鎭撫) 김대황(金大璜)이 쓴 표류기. 김대황 등 제주인 24명이 안남(安南國)에 표류하였다가 3명을 이국땅에 장사 지내고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귀환했는가를 보여주는 해양 기록이다. 1687년(숙종 13) 9월 3일 김대황 등 24명은 제주목사가 진상하는 3필의 말을 싣고 출항했다가 추자도 앞에서 동북풍을 만나 31일 동안 표류하다가 안남국 회안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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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속하는 법정동. 도근천(都近川)의 안쪽이 되는 마을로 내도그내, 내도그리, 내도근리, 안도근내로 불리다가 내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1300년대 초 외도동에는 수정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도그내 하류 포구 일대에는 방호소와 수전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포구 서쪽인 안도그내에도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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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안돌 오름 바로 북동쪽에 이웃한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아울러서 돌오름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목장 안쪽에 있는 오름을 안돌 오름이라 하고, 목장 바깥쪽에 있는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 것이다. 예로부터 안돌 오름[안똘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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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전통 가옥에서 안거리(안채)의 뒤에 있는 뜰이나 마당. 안거리의 상방(마루) 뒷문이나 정지(부엌)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여성의 공간이다. 장독대가 놓여 있어 집안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주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안뒤는 울담을 쌓아서 외부로부터 격리된 폐쇄적인 곳으로 여기에 제주 무속의 부신(婦神)인 ‘밭칠성’을 모시는데, 타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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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안돌 오름 바로 북동쪽에 이웃한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아울러서 돌오름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목장 안쪽에 있는 오름을 안돌 오름이라 하고, 목장 바깥쪽에 있는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 것이다. 예로부터 안돌 오름[안똘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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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근대 제주 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자 항일 운동가. 1865년 2월 14일 화북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서 아버지 안치복과 어머니 신씨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보살계명은 봉려관이며, 법명은 해월이다. 1889년 탁발을 나온 한 승려를 만나 불교에 귀의한 후, 1907년 12월 8일 대흥사의 유장화상을 은사로, 청봉화상을 계사로 하여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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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무속인. 1928년 순흥안씨 집안, 21대 세습무인 임생(任生)의 장남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무계(巫系) 세습을 살펴보면 안씨 집안은 본래부터 무가(巫家)가 아니었다. 21대조가 제주로 낙향하여 애월읍 어음리에 정착,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하였고, 12대조가 애월읍 수산리로 이주하였으며, 증조부가 제주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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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조선 시대의 유학자 명도암 김진룡(金晋龍)의 은거지 명도암 마을과 함께 잘 알려진 오름으로 북사면 화구에는 국어학자 이숭녕 박사의 명문으로 된 ‘명도암 선생유허비’가 서 있다. 오름 기슭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 명도촌(明道村)이었던 데에서 명도 오름[明道岳]이라고 불리우며, 이 마을에 은거했던 명도암 김진룡을 추앙하는 후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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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 오름 일대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구축했던 방어 시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미군의 공세에 맞서 제주도에서 결7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 일환으로 1945년 4월경부터 명도암 오름 일대에 저항 진지를 구축하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에게 전쟁의 주도권을 빼앗긴 후 일본 본토마저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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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죽산. 호는 근해(槿海). 일명 안요검(安堯儉)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안태환(安台煥)이다. 유년기에 고향의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후, 전라남도 광산군 하남면 장덕리로 가서 다시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에게 한학을 배웠다. 1914년 조천리에 근대식 서당인 신명사숙(新明私塾)이 개설되자 김순탁(金淳鐸)과 함께 사장(師丈)이 되어 후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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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엘렌 화이트가 창시가 제칠일안식교예수재림교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 교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1844년 10월 22일 예수가 재림한다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윌리엄 밀러가 그 효시이다. 예수의 재림이 불발로 끝난 뒤에,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가 계시를 받아 밀러의 종말론을 재해석하면서 생겨난 종파이다. 일반 개신교와 크게 다른 점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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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죽산. 호는 근해(槿海). 일명 안요검(安堯儉)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안태환(安台煥)이다. 유년기에 고향의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후, 전라남도 광산군 하남면 장덕리로 가서 다시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에게 한학을 배웠다. 1914년 조천리에 근대식 서당인 신명사숙(新明私塾)이 개설되자 김순탁(金淳鐸)과 함께 사장(師丈)이 되어 후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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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중근 의사가 쓴 친필 휘호(揮毫).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여순 감옥에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이다. 이 휘호의 “天與不受反受其殃耳(천여불수반수기앙이)”는 “하늘이 준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가 항일 투쟁과 구국 운동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친필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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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산간 지대에 있는 오름. 안천이 오름의 ‘안천이’가 사람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안천악(安川岳) 또는 안천이악(安川伊岳)이라고도 한다. 안천이 오름 동북쪽에는 족은바리메와 바리메가 있으며 남쪽에는 검은들먹 오름, 북쪽에는 노꼬메 오름이 있다. 안천이 오름의 높이는 74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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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산간 지대에 있는 오름. 안천이 오름의 ‘안천이’가 사람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안천악(安川岳) 또는 안천이악(安川伊岳)이라고도 한다. 안천이 오름 동북쪽에는 족은바리메와 바리메가 있으며 남쪽에는 검은들먹 오름, 북쪽에는 노꼬메 오름이 있다. 안천이 오름의 높이는 74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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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산간 지대에 있는 오름. 안천이 오름의 ‘안천이’가 사람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안천악(安川岳) 또는 안천이악(安川伊岳)이라고도 한다. 안천이 오름 동북쪽에는 족은바리메와 바리메가 있으며 남쪽에는 검은들먹 오름, 북쪽에는 노꼬메 오름이 있다. 안천이 오름의 높이는 74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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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오름. 안친 오름의 ‘안친’은 ‘앉히다’에 대응하는 제주어 ‘안치다’의 관형사형으로, 오름의 형세가 ‘나지막하게 앉힌 솥과 같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안친 오름의 면적은 46,443㎡, 둘레는 924m, 높이는 192m이다. 안친 오름은 송당리 본동 북쪽에 있는 오름으로 형태가 나지막하기 때문에 오름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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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새해를 맞아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집안 곳곳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가신(家神)들에게 행하는 가정 단위의 제사. 정월에 택일하여 집안신인 터주신·성주신·조상신·조왕신·삼신 등에게 제사 지낸다. 직업이나 각 가정의 소망에 따라 특별히 기도하는 신이 정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산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산신을, 어부는 배 성주를, 해녀는 용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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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새해를 맞아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집안 곳곳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가신(家神)들에게 행하는 가정 단위의 제사. 정월에 택일하여 집안신인 터주신·성주신·조상신·조왕신·삼신 등에게 제사 지낸다. 직업이나 각 가정의 소망에 따라 특별히 기도하는 신이 정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산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산신을, 어부는 배 성주를, 해녀는 용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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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중동마을·서동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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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주민들은 도의여 또는 알도의여라 불렀다. 마을 동쪽 바닷가에 있는 토끼섬 일대를 도의여 또는 돈의여라 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약 700여 년 전 제주부씨와 제주고씨, 양천허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읍지』에는 알도의여 마을로,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하도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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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마을. 이 동은 예로부터 알무드내을이라는 데서 알무드내’ 불렀다. 알무드내는 무드내[無等川] 아래쪽에 있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17세기 고지도에 ‘무등천촌(無等川村)[무드내을]’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알무드내에 있는 마을을 알무드내을이라 하여 하무등천촌 또는 하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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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바메기 오름이라 부르고 있는데, 위쪽에 있는 오름을 웃바메기 오름이라 하고, 아래쪽에 있는 오름을 알바메기 오름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 두 봉우리를 아울러서 바메기 오름이라고 한다. 이것을 한자 차용 표기로 쓴 것이 하야막악(下夜漠岳)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부터 바메기 오름을 밤오름으로 인식하여 율악(栗岳)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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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본향신인 당동산 토주관 한집을 모시고 있는 본향당. 선흘 마을은 알선흘과 웃선흘로 나누어져 있는데, 웃선흘에는 종남밧 애기씨 서낭당이 있고 알선흘에는 본향당인 당동산당이 있다. 본향당에서 모시는 본향신인 당동산 토주관 한집은 송당 본향신의 다섯 번째 아들이라고 한다. 이 당의 제일은 음력 정월 열나흘이다. 과거에는 당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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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봉우리. 한자어 난악(卵岳)에서 온 말로 알처럼 자그마하다는 뜻이다. 알오름은 제주도의 지질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조사 지점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이 오름의 구성 물질인 화산 쇄설층에서 제주도의 기반암으로 추정되는 화강암편이 포획암으로 다량 산출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주 화산체의 하부가 반도와 같은 불국사 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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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자생하는 시로미과의 나무. 열매의 맛이 달지도 시지도 않기 때문에 시로미라 한다. 한자로는 까마귀의 자두란뜻으로 오리(烏李)라고 하며 영어로도 crowberry라 하여 같은 의미인데 열매가 작은 콩알 만한 검정색의 장과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높이는 10~20㎝이다. 잎은 총생하고 선형이며, 길이는 5~6㎜, 폭은 0.7~0.8㎜이며, 두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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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 백록담 근처에서 서식하는 돌매화나무과의 나무. 한라산의 백록담 근처에서 자생하며, 수직적으로는 해발 1,930m 이상의 지역에 자란다. 세계적으로 일본, 러시아, 북미, 그린란드 등에 분포한다. 암매나무 또는 돌매화나무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암벽에 자라면서 흰빛 또는 연한 자황색의 꽃이 마치 매화의 꽃과 닮은 데서 유래되었다. 학명의 속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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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비양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비양 오름 또는 가재, 암메 등으로 불렸다. 비양 오름은 비양섬·비영섬[비양도의 옛 이름]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인데, 오늘날은 비양봉이라 하고 있다. 비양봉에는 두 개의 굼부리[분화구]가 있는데 주봉에 딸린 큰 분화구를 큰암메라 하고, 작은 봉우리에 딸린 작은 봉우리를 족은암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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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에서 행하여졌던 비교적 너른 바위 위에서 소금을 얻는 형태의 염전. 역사적으로 볼 때 제주 지역은 암석염전에서 간석염전(干潟鹽田)으로 염전 형태가 이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자취가 뚜렷이 남아 있는 암석염전으로는 애월읍 구엄리의 구엄염전이 있다. 구엄리 암석염전의 대부분은 비교적 높은 곳에 있어 겨울 외에는 조수의 조건에 구속받음이 없이 제염(製鹽)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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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압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전악(前岳)으로 표기하였다. 압오름은 앞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압오름은 소리가 바뀌면서 아보롬·아부름·아보 오름·아부 오름 등으로 불렸다. 심지어는 아부 오름을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아부악(阿父岳·亞父岳)으로 표기하여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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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던 노래.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를 재우거나 어르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자장가라고 한다. 제주 지역에서는 예부터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는 자장가를 「애기 흥그는 소리」라고 불렀다. ‘웡이자랑’ 혹은 변이음인 ‘왕이자랑’으로 시작한다고 「웡이자랑」 혹은 「왕이자랑」이라고도 부른다. 『한국구비문학대계』9-2(제주도 제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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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사용하는 아기 요람. 애기구덕은 제주도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아기를 그 속에 눕히고 흔들어 잠재우는 요람이다. 주로 3살 전후까지 사용한다. 주로 대를 쪼개 만드는 애기구덕은 장방형으로 높이가 50~60㎝, 폭 30~40㎝, 길이 1m 정도로 중간에 끈으로 엮어 통풍이 쉽게 되도록 하고 오줌을 싸도 아래로 흐르게 하였다. 내부는 높이 중간 정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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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아기를 재울 때 불렀던 자장가. 애기구덕이란 대나무로 만든 제주특별자치도의 전통 요람이다. 애기구덕에 아기를 눕히고 좌우로 흔들어 잠을 재우면서 「애기구덕 흥그는 소리」를 불렀다. 대표적인 가창자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거주하는 장춘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거주하는 강등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거주하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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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소똥구리과의 곤충. 몸의 길이는 14~17㎜이며, 몸의 빛깔은 대체로 흑색으로 광택이 있다. 수컷 머리에는 상아 모양의 뿔이 있으나, 암컷은 판 모양의 가로 융기가 있으며 그 양끝에 작은 돌기가 있다. 딱지날개는 광택이 거의 없고, 가늘고 작은 홈과 가는 주름이 있다. 다리에는 갈색의 긴 털이 있다. 어른벌레는 목장 지대의 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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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자생하는 꿀풀과의 식물. 높이는 2~5㎝이며, 잎은 대생하는 달걀형으로 길이는 2~7㎜이며, 폭은 2~5㎜이다. 톱니가 약간 있으며, 양면 맥 위에 흰색의 털이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선점이 있으며, 잎자루는 길이가 1~2㎜이다. 꽃은 9~10월에 홍자색으로 피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의 이삭화서에 빽빽하게 달린다. 화서는 길이 2~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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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 지식 기반 사회에 부응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력과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지성·창조·활달’이다. 1953년 4월 7일 상업과 6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53년 4월 25일 애월 상업 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68년 5월 20일 교가를 제정하였으며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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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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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일 것 같으나, 일찍부터 한자화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애월이라는 음성형만 확인할 수 있다. 은 해안가라는 뜻인데, 은 월(月)의 뜻인지 확실하지 않다. 애월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애월리가 붙여졌다. 애월은 곽지 일원과 더불어 선사시대의 조개무지와 민무늬토기 파편 등이 발견되어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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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도대불. 애월읍 애월리 애월포 일대는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서 항파두성을 쌓고 관군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애월목성을 축성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1581년(선조 14)에 김태정 제주목사가 애월진성을 석축하였는데, 그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지금의 애월리 도대불은 1930~1935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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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탐라시대 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다. 유적은 애월초등학교 입구에 위치한 용천수가 솟아나는 주변의 밭에 자리한다. 1998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유적은 유물 분포 범위가 약 200여 평 미만으로 소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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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탐라시대 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다. 유적은 애월초등학교 입구에 위치한 용천수가 솟아나는 주변의 밭에 자리한다. 1998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유적은 유물 분포 범위가 약 200여 평 미만으로 소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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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절왓 일대의 옛 사찰터. 마을 사람들은 애월리 사지에 금불상이 묻혀 있다고 믿고 있다. 애월리 사지에 절이 있었다면 식수는 ‘하물’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물’은 애월 우체국 앞에 있는 용천수로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표지석을 세워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잡목들이 우거져 있어 조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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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연대. 애월연대는 동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2.7㎞), 서쪽으로 귀덕연대(직선 거리 3.2㎞)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애월연대는 애월진이 있었던 애월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속칭 ‘연디왓’이라 불린다.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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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한 읍. 『태종실록』에 애월현, 『탐라순력도』 등에 애월, 해월포로 표기되어 있고, 『제주읍지』에 애월을은 제주 서쪽으로 45리의 거리에 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18세기 중반까지 제주목 우면에 속하였으며, 본래 제주군의 지역으로 제주읍 내 오른쪽이 되므로 우면이라 하다가 금성천을 경계로 하여 구우면과 신우면으로 분리되었다.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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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농어촌 지역 청소년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 지역 주민들의 정보 이용과 문화활동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4월 21일 제정된 북제주군 공공도서관 설치운영조례와 동년 5월 1일 제정된 북제주군 공공도서관 설치운영조례시행규칙에 의거하여 동년 5월 1일 애월읍 도서관을 개관하였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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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농어촌 지역 청소년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 지역 주민들의 정보 이용과 문화활동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4월 21일 제정된 북제주군 공공도서관 설치운영조례와 동년 5월 1일 제정된 북제주군 공공도서관 설치운영조례시행규칙에 의거하여 동년 5월 1일 애월읍 도서관을 개관하였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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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팽나무. 1982년 제주도의 나무로 지정되었고, 수령이 900년이 넘는다. 최고령목으로 보호되고 있는 도지정 나무인데, 제주 4·3사건 당시에도 이 아름드리나무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한다. 제주에는 마을마다 팡돌(쉼돌)과 그 가운데 큰 나무가 자리하는데, 대부분이 팽나무(폭낭)이다. 팽나무가 많기도 하였거니와 높이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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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세 사람의 정려비를 한데 모신 조선 후기의 정려각. 『박씨삼정문록(朴氏三旌門錄)』에 따르면 박계곤(朴繼崑)[1675~1731]은 성품이 돈후하고 몸가짐이 신중했으며, 효도와 우애가 남달라 몸을 아끼지 않고 어버이를 공양하여 자식 된 직분을 다 하였다고 한다. 박계곤의 딸인 박씨 부인은 이항춘(李恒春)과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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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을 지니고 꿈을 키워 가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지닌 건강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순진하게 배우자, 심원하게 닦자, 용감하게 나가자’이다. 1947년 6월 18일 애월 중학원 설립 인가를 받은 데 이어 1947년 7월 5일 3년제 애월 공립 초급 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194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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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조선 중기의 진성. 애월진성에는 조방장 1명, 치총 2명, 성정군 84명, 유직군 86명, 서기 7명 등 총 180명이 병력이 있었다. 관할은 1봉수(고내 봉수), 2연대(남두 연대, 애월 연대)였다. 애월진성은 처음에는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들어와서 관군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목성(木城)이었다. 이를 방어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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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실내 체육관. 구 북제주군의 체육 시설은 학교 체육 시설이 전부일 정도로 매우 취약한 상황이었다. 그중 1978년 한림읍에 건립된 한림읍민관이 1990년대 초반까지 구 북제주군의 체육 요람의 구실을 담당했다. 1984년 제주도에서 열린 제13회 전국 소년 체육 대회 때에도 총 26개 개최 종목 중 구 북제주군에서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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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슬기로우며 미래를 주도할 창의성 있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슬기롭게·참되게·씩씩하게’이다. 1923년 5월 15일 신우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1923년 9월 4일 개교하였다. 1934년 4월 1일 부설 고성 간이 학교로 다시 인가를 받은 데 이어 1935년 4월 25일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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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포구. 애월포는 지금의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큰돈지·샛돈지·족은돈지를 두고 이른 말이다. 애월포는 「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애월촌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취한 포구 이름이다. 『남사일록』에 의하면 애월포는 제주도 북쪽에 있는 다섯 개의 연육포구 중 하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남사록』에서는 이곳에 당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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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연안항. 1968년 6월 16일 애월항 방파제 연장 공사에 국고 120만 원이 투자되어 동년 8월 10일 준공됨으로써 총 70m의 방파제가 완공되었다. 1971년 12월 21일 애월항은 수산청 고시 제44호에 의거 제1종 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1972년부터 시작된 애월항 항만공사는 총 공사비 8억 7900백만 원이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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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해안가를 돌담으로 쌓은 성. 애월환해장성은 왜구 등 적을 막기 위해 애월읍 해안가를 돌아가면서 단단히 쌓은 약 360m의 환해장성이다, 왜적이나 적선들이 쳐들어왔을 때 쉽게 정박할 수 없도록 쌓아놓은 환해장성은 제주 지역의 지형상 전도에 걸쳐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으며, 현재 총 5,1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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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하는 무속 의례. 액막이는 본주(本主)의 궂은 액(厄)을 막고, 무병장수와 함께 복을 받기 기원하는 무속 의례이다. 심방이 제상 앞에서 요령을 들고 울리면 만이 본풀이가 불리는데, 만이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저승 차사를 잘 대접해 액을 막고, 수명을 30년에서 3,000년으로 고쳐 장수했다는 신화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굿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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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하는 무속 의례. 액막이는 본주(本主)의 궂은 액(厄)을 막고, 무병장수와 함께 복을 받기 기원하는 무속 의례이다. 심방이 제상 앞에서 요령을 들고 울리면 만이 본풀이가 불리는데, 만이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저승 차사를 잘 대접해 액을 막고, 수명을 30년에서 3,000년으로 고쳐 장수했다는 신화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굿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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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하는 무속 의례. 액막이는 본주(本主)의 궂은 액(厄)을 막고, 무병장수와 함께 복을 받기 기원하는 무속 의례이다. 심방이 제상 앞에서 요령을 들고 울리면 만이 본풀이가 불리는데, 만이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저승 차사를 잘 대접해 액을 막고, 수명을 30년에서 3,000년으로 고쳐 장수했다는 신화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굿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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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마을의 경계나 지세가 허한 곳에 원통형 돌탑을 쌓는 전통 풍습. 제주 지역에서 액막이 기능을 갖는 속신은 방사탑(防邪塔)이나 거오기[去厄]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방사탑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친다거나 어느 한 지형이 비교적 허(虛)하다고 할 때 허한 방위를 막아야 마을이 평안하게 된다는 속신에서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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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야수(野叟), 호는 소옹(蘇翁). 아버지는 이조참판 이상급(李尙伋)[1571~1637]이다. 1636년(인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따라갔다. 1642년(인조 20) 예문관검열·예문관봉교·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645년(인조 23) 세자시강원필선을 지냈다. 1646년(인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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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 때 마을 향사에 모여 한글과 산수 등을 익혔던 문맹 퇴치 운동. 야학 운동은 일제하 식민지 제도 교육으로부터 배제된 민중들의 의식화를 위한 민중 교육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운동이다. 제주도의 야학 운동은 3·1 운동 이후 제주 지역 청년들이 계몽 운동 차원에서 노동 야학을 개설, 교사로 참여하여 대중 계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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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영등굿 때 행하는 경조(競漕) 놀이. 떼몰이놀이는 영등굿의 맨 마지막 순서인 ‘배방선’ 제차에서 펼쳐지는 경조(경주) 놀이로서 ‘약마희(躍馬戱)’, 또는 ‘테몰이놀이’라고 한다. 배방선은 ‘송신(送神)’의 제차로서, 짚으로 만든 조그만 배(퇴송선)에 제상에 올렸던 갖가지 제물과 돈, 백지를 실어서 동쪽 바다로 띄워 보내는 의식이다. 우도(牛島)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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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통정대부첨추오위장 송민환(宋敏桓), 어머니는 여산 한씨 한응성(韓應性)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지조가 있었고 친정이 부호였으나 화려한 것을 즐기지 않았다. 양기석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종숙(從叔)에게 양자로 가게 되어 시집에 생가와 양가 두 어머니가 같이 계셔서 집안이 몹시 어려운 처지에 있었는데도 원망하지 않고 집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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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80년(선조 13) 2월 전라도 부안현감으로 부임하였고, 1584년(선조 17) 3월 보성군수에 임명되었다. 1587년(선조 20)과 1588년(선조 21) 두만강 하류에 있는 섬 녹둔도를 두고 벌어진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1588년 2차 녹둔도 전투에서 온성부사 양대수는 회령부사 변언수(邊彦琇),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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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서 실시된 시취(試取) 때 합격한 문신. 본관은 제주. 자는 대비(大庇). 아버지는 양임로(梁壬老)이며 할아버지는 향공진사 양수영(梁秀瀛)이다. 한림읍 동명리에서 태어났다. 제주판관 오명계(吳命季)[1682~?]의 비리가 조정에 보고되면서 1738년(영조 14)에 제주순무시재어사 이도원(李度遠)[1684~?]이 부임하여 1738년 8월에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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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8년 2월 신창리의 야광소년단에 입단하였으며 1928년 3월 한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에게는 유급 조치를 내렸다. 평소 학교 행사에서 일황의 칙서가 낭독될 때 묵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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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당시 신분을 증명하는 증서. 제주 4·3 사건 당시 도피자 및 도피자 가족, 피난 입산자, 요시찰인을 제외한 일반 도민에게 발급해 준 증명서이다. 이 증명서가 없으면 통행할 수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없었고 좌익이나 통비분자로 의심받았다. 유격대와 이른바 통비분자, 좌익 세력 및 그 가족들을 고립시켜 다른 주민들과 구분하여 처리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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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양백(良伯). 아버지는 황수태(黃壽泰)이며,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735년(영조 11)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3월 유혁(柳爀)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778년(정조 2) 12월에 떠났다. 함께 재임한 제주판관은 김광현(金光鉉)[1722~?], 경내운(慶來運)[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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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경기도 남양부사 재임 중인 1771년(영조 47) 2월에 안종규(安宗奎)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고, 1773년(영조 49) 3월에 죄인을 두둔하였다 하여 체포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772년 제주 삼성혈에 담을 쌓고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또한 제전(祭田)을 제주목사의 자문 기관인 유향소(留鄕所)에서 사용하도록 배려하여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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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양세현의 기념비. 양세현은 1771년(영조 47)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2년 동안 재임하였다. 재임하는 동안 1772년(영조 48) 제주 삼성혈에 바깥담을 쌓고 소나무를 심었으며 제주 삼성혈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또한 홍화각(弘化閣)을 중수하고 전사청(典祀廳)를 건립하였으며, 우암송시열적려유허비(尤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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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지역에서 1168년(의종 22)에 양수(良守)가 일으킨 민란. 제주 사람들은 제주의 행정 단위가 지방관이 부임하지 않은 도(島)의 위상을 갖는 탁라도(乇羅島) 시기(938~1105년), 이어 외관(外官)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 위상을 지닌 탐라군 시기(1105~1153년)에도 세금을 바쳤고, 잦은 세금 부담에 고달파 불만을 가진 경우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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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동1동에 있는 탐라 시조인 양(梁)씨 종친회. 탐라 시조인 고(高)·양(梁)·부(夫) 세 성씨 중 양씨 후손들의 종친회이다. 선조의 유적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존숭 사업을 통해 종원의 화합과 전통 문화 유산의 전승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7년 제주양씨종친회를 창립하고, 1989년 양씨종친회총본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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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선구(善驅), 호는 양오(養吾). 김진호(金振鎬)의 4남이며, 김주호(金周鎬)에게 입양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제주시 조천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차례 걸쳐 연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지역도 조천에서 함덕·신흥·신촌 등으로 확대되었다. 최초의 거사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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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순조 13) 제주도에서 양제해가 일으킨 민란. 1813년(순조 13) 제주도 백성들에게 부과된 부역이 너무 과중해지자 양제해가 김익강·고덕호·강필방 등과 함께 거병을 모의하였다. 이때 사람을 모으고 병기를 만들어 제주성과 정의·대정에서 거병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제해는 제주 영읍의 네 관원을 죽이고, 섬 전체를 장악한 후 배가 육지로 못 나가도록 한 뒤, 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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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고, 허손(許愻)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을 조달해 준 공으로 허선문(許宣文)이 세거해온 공암의 공암촌주(孔巖村主)로 봉해져 그곳을 식읍으로 받았다. 양천허씨를 일명 공암허씨(孔巖許氏)라 함은 이에 연유된 것이다. 후손인 허성(許筬)은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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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아버지는 양달하(梁達河)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 1461에서 태어났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신창진(愼昌珍)과 양두옥(梁斗玉)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이들이 평소 학교 행사에서 일본 천황의 칙어가 낭독되어도 묵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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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둑을 물리치고 판관이 된 양씨 이야기. 「양판관」은 힘은 세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현명한 아내를 맞이하여 판관이란 높은 벼슬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육지의 여러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형적인 영웅담과는 다르게 민중의 소박한 심성이 배어 있는 이야기이다. 1980년 1월 제주시 노형동 광명마을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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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본관은 남원. 자는 경보(敬甫). 아버지는 부사정을 역임한 양종임(梁鍾任)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1848년(헌종 14) 무과에 급제하였다. 1864년(고종 1) 2월 14일 제주목사에 임명되어 3월 정기원(鄭岐源)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있을 때 『훈민편(訓民篇)』을 저술하여 제주도민을 계도하였고,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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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양헌수를 기리는 비. 양헌수는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64년(고종 1)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66년(고종 3) 8월에 승지(承旨)로 전출되었다. 삼성사(三性祠)의 제전(祭田)을 별도로 설치해 주었고, 효열(孝烈)을 포상하고 폐막을 혁파하는 등 정사가 명백하고 공평하여 비가 세워졌다. 비신(碑身)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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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3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양헌수를 기리는 비. 양헌수는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64년(고종 1)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66년(고종 3) 8월에 승지(承旨)로 전출되었다. 양헌수는 부임하던 해에 『훈민편(訓民篇)』을 저술하여 백성을 가르쳤고, 다음해 7월에는 큰 비바람으로 모든 곡식이 절종(絶種) 상태에 이르자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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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양헌수(梁憲洙)의 공덕을 기리는 비. 양헌수는 백성들을 가르쳤고 1865년(고종 2)에 발생한 흉년 때에는 기민 구제에도 힘썼다. 양헌수는 정사를 명백 공평(明白公平)하게 행하였으며, 효열(孝烈)을 현창(顯彰)하고 폐막(弊瘼)을 일소하였다. 양헌수가 제주도를 떠날 때 사녀(士女)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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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양헌수를 기리는 비. 양헌수는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64년(고종 1)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66년(고종 3) 8월에 승지(承旨)로 전출되었다. 부임한 해에 『훈민편(訓民篇)』을 저술하여 백성을 가르쳤다. 삼성사(三性祠)의 제전(祭田)을 별도로 설치해 주었고, 효열(孝烈)을 포상하고 폐막을 혁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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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정의현감과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602년(선조 35) 12월 이연경(李延慶)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부임하여 1605년(선조 38) 4월까지 재임하였다.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1560~1623] 등과 결탁하여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1619년(광해군 11) 10월 홍걸(洪傑)[?~1619]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탐학이 극도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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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석여(錫餘), 호는 오천(梧泉), 초명은 중흠(重欽), 시호는 양효(良孝). 아버지는 형조판서 홍만조(洪萬朝)[1645~1725]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23년(경종 3) 7월 병조정랑에서 경기도 마전군수로 전출되었고, 1728년(영조 4)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738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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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어로에 사용하는 배와 일체의 도구. 제주 지역에서는 예부터 수중 생물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였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물과 낚시를 이용하였고, 어패류를 채취하기 위해 제주 지역 특유의 환경에 맞는 잠수 도구를 개발하여 이용하였다. 물 속에서 사용하는 낚시줄의 하나인 갈치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돼지 피를 먹이고,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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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봉우리. 동쪽에서 바라볼 때는 둥그런 모양이나 남쪽이나 북쪽에서는 높직한 산 정상에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이 유선형의 모양을 띄고 있다. 일찍부터 어대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어대악(御帶岳) 또는 어대악(魚垈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어대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어대 오름 서남쪽에 주체 오름이 있고,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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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봉우리. 동쪽에서 바라볼 때는 둥그런 모양이나 남쪽이나 북쪽에서는 높직한 산 정상에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이 유선형의 모양을 띄고 있다. 일찍부터 어대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어대악(御帶岳) 또는 어대악(魚垈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어대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어대 오름 서남쪽에 주체 오름이 있고,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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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봉우리. 동쪽에서 바라볼 때는 둥그런 모양이나 남쪽이나 북쪽에서는 높직한 산 정상에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이 유선형의 모양을 띄고 있다. 일찍부터 어대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어대악(御帶岳) 또는 어대악(魚垈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어대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어대 오름 서남쪽에 주체 오름이 있고,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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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도내미 또는 도노미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도내산(道內山)으로 표기하였다. 이 도내미 가까이에 형성되었던 마을을 도내미 을이라 하여 도내산리(道內山里)로 표기하였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도내산리를 어도내산리(於道內山里)로 바꾸었다. 어도내산리에서 內[내]와 山(산)을 표기에서 생략하여 어도리(於道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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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일대에 있는 옛 사찰터. 어도리 사지의 뒤편은 동산 모양의 지형이라 절동산이라 부르고 있다. 4·3 사건 이전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군인들에 의해 소개된 후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예전에는 절동산 북서 방향 ‘상수모를’ 쪽에 절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매립되었다. 애월읍 봉성리 노인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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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도내미 또는 도노미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도내산(道內山)으로 표기하였다. 이 도내미 가까이에 형성되었던 마을을 도내미 을이라 하여 도내산리(道內山里)로 표기하였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도내산리를 어도내산리(於道內山里)로 바꾸었다. 어도내산리에서 內[내]와 山(산)을 표기에서 생략하여 어도리(於道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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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도내미 또는 도노미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도내산(道內山)으로 표기하였다. 이 도내미 가까이에 형성되었던 마을을 도내미 을이라 하여 도내산리(道內山里)로 표기하였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도내산리를 어도내산리(於道內山里)로 바꾸었다. 어도내산리에서 內[내]와 山(산)을 표기에서 생략하여 어도리(於道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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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에 있는 도림사 내의 용천수. 절새미터 인근은 1565년(명종 20) 때 제주도로 귀양 왔다가 제주목사 변협의 잔혹한 폭력에 의해 장살당한 보우 대사의 적거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응 보우 대사는 조선 불교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선사로서 선교 양종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1565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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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하며 슬기롭게 탐구하는 자주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참되고 바르게, 슬기롭고 튼튼하게’이다. 1943년 4월 1일 어도 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43년 6월 3일 개교하였다. 1949년 3월 10일 제주 4·3 사건으로 교사가 전소되어 폐교되었다가 1949년 9월 1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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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봉우리. 동쪽에서 바라볼 때는 둥그런 모양이나 남쪽이나 북쪽에서는 높직한 산 정상에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이 유선형의 모양을 띄고 있다. 일찍부터 어대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어대악(御帶岳) 또는 어대악(魚垈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어대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어대 오름 서남쪽에 주체 오름이 있고,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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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주민들은 어등개라 불렀는데 ‘어등’이 무슨 의미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어등포(魚登浦)라는 포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부터 행원리(杏源里)라는 표기가 등장하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약 600여 년 전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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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있었던 포구. 어등포는 지금의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한갯목’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다. 어등포는 조선 후기에 어등포리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구좌읍 행원리를 두고 어등개라고 한다. 그렇다고 행원리의 마을에 어등개라는 포구나 지명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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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있었던 포구. 어등포는 지금의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한갯목’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다. 어등포는 조선 후기에 어등포리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구좌읍 행원리를 두고 어등개라고 한다. 그렇다고 행원리의 마을에 어등개라는 포구나 지명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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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어로에 사용하는 배와 일체의 도구. 제주 지역에서는 예부터 수중 생물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였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물과 낚시를 이용하였고, 어패류를 채취하기 위해 제주 지역 특유의 환경에 맞는 잠수 도구를 개발하여 이용하였다. 물 속에서 사용하는 낚시줄의 하나인 갈치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돼지 피를 먹이고,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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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가장 먼저 해가 뜨고 햇볕을 직선으로 받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양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약 300여년 전 해남윤씨와 전주이씨, 동복오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추자도의 지역으로서 고종 때 완도군 추자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신상리·신하리·장작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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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뒤쪽 일대에 있는 목. 해안동 남쪽에 위치하는 한라산의 어승생오름 남쪽에 있는 길목으로 한라산의 등산 길목이다. 어리목은 ‘어리+목’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어리’는 18세기 중반의『증보탐라지』의 ‘빙담(氷潭: 어름소)’의 표기를 고려할 때 ‘어름’의 변음으로 보인다. ‘목’은 ‘통로 가운데 다른 곳으로는 빠져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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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에서 고대에 해당하는 어로 도구. 그물추는 그물 밑 끝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잡는 물고기와 작업의 규모에 따라 크기나 무게가 다양하다. 원시와 고대 사회에서 사용된 그물의 존재는 그물을 구성하는 부자·망·침자 가운데 침자인 그물추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물추의 형태 중 돌로 만든 것으로는 장축으로 길게 홈을 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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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어스싕 오름 또는 어스싕이 오름이라 부르다가, 한자 차용 표기로 어승생악(御乘生岳)으로 표기하였다. 이때부터 어승생(御乘生)이라 한 것은 이 오름 아래서 용마인 어승마(御乘馬)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유어 어스싕이나 어스싕이를 음차한 것이 어승생이 이므로 이 해석은 믿기 어렵다. 등산로에는 꽝꽝이나무와 주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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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어스싕 오름 또는 어스싕이 오름이라 부르다가, 한자 차용 표기로 어승생악(御乘生岳)으로 표기하였다. 이때부터 어승생(御乘生)이라 한 것은 이 오름 아래서 용마인 어승마(御乘馬)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유어 어스싕이나 어스싕이를 음차한 것이 어승생이 이므로 이 해석은 믿기 어렵다. 등산로에는 꽝꽝이나무와 주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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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서 시행되었던 고지대 수원 개발 사업. 예로부터 제주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강우량이 가장 많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물 빠짐이 특징인 다공질 화산암과 화산회토로 이루어져 있어 연중 흐르는 하천이나 큰 강이 없기 때문에 조상 대대로 심각한 물 부족을 겪어 왔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물허벅으로 해안가 용천수를 길어다 먹거나, 마을 주변에 고인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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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어스싕 오름 또는 어스싕이 오름이라 부르다가, 한자 차용 표기로 어승생악(御乘生岳)으로 표기하였다. 이때부터 어승생(御乘生)이라 한 것은 이 오름 아래서 용마인 어승마(御乘馬)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유어 어스싕이나 어스싕이를 음차한 것이 어승생이 이므로 이 해석은 믿기 어렵다. 등산로에는 꽝꽝이나무와 주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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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어스싕 오름 또는 어스싕이 오름이라 부르다가, 한자 차용 표기로 어승생악(御乘生岳)으로 표기하였다. 이때부터 어승생(御乘生)이라 한 것은 이 오름 아래서 용마인 어승마(御乘馬)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유어 어스싕이나 어스싕이를 음차한 것이 어승생이 이므로 이 해석은 믿기 어렵다. 등산로에는 꽝꽝이나무와 주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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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제주 지역 유일의 상수원 저수지. 맑고 깨끗한 어승생오름 계곡에서 형성된 물줄기를 모아 어승생저수지를 조성하였다. 어승생저수지 개발은 1966년 6월 20일 제주도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 수자원개발 기본구상도를 직접 그려 한라산 고지대 수원 개발 방안을 지시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어승생저수지가 개발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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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수산물을 포획, 채취, 또는 양식하는 일. 어업은 천연의 수산 동식물을 어구를 사용하여 잡아들이거나 인공적인 방법으로 키워서 거두어 들이는 일을 통칭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어업을 생존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전력을 다해 왔다. 제주시 추자면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추자도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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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써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 수근연대는 동쪽으로는 사라봉수(직선거리 4.6㎞), 서쪽으로는 도원봉수(직선거리 2.8㎞)와 서로 군사 소식을 주고받았다. 봉군은 별장 6명, 직군 12명이 있었다. 수근연대는 1978년에 제주도 내 일반적인 연대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연대의 상부는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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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부멘이다. 설촌 문씨가 부부 갈등으로 가출한 후 남은 송씨 부인이 남편 얼굴을 보고 죽는 것을 소망해서 부면이(夫面伊)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일찍부터 부멘이라 하였다. 이 마을에 맨 처음 문씨와 송씨 부부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18세기 말까지 독립된 행정 마을이었으나 19세기 초반부터 어음에 통합되었다.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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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1964년부터 옛 어름비와 돌깍이 일대를 어음2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04년 갑자사화 당시 홍문관 교리였던 박후신이 노복 30여 명을 거느리고 유배되었는데, 그 일대에 비옥한 황무지를 개척하여 자기 호를 따라 정자촌(正字村)이라 칭하고 거주한 것이 오늘의 어음2리의 시초이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한라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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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서식하는 수리과의 조류. 보통 물가 주위에 서식하는 맹금류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겨울철에 관찰되며, 제주도에서는 겨울이외에도 드물지 않게 관찰된다. 몸길이는 55~65㎝이며, 등은 암갈색이고, 배는 흰색인 큰 수리류이다. 머리는 흰색이고 눈 주위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날 때는 날개의 관절 부분을 뚜렷하게 접는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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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어촌의 자연 부락 단위로 조직되는 자주적 협동 조직. 어촌계는 1962년 각령 제619호로 시행·공포된 「수협법」 시행령 제4조에 근거하여 어촌계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공동 사업의 실시를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어촌계는 지구별 조합의 조합원 20인 이상이 발기하여 조직하는 것으로 한다. 제주 지역 어촌의 자연 부락은 연안 공동 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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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의 제1횡단도로(5·16도로)에 있는 다리. 제주시 봉개동과 아라동 그리고 조천읍 교래리의 경계에 있는 어후악(御後岳)[1,025m]의 이름을 따서 어후교가 되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2㎞ 지점에 어후악이 위치하며, 어후교 부근에서 어후악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길이는 12m, 폭은 10m, 높이는 10m이다. 경간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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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봉우리. 한라산 동사면의 성널오름의 북쪽으로 물장오리 사이의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오름이다. 꾀 높고 가파르며, 북서사면의 계곡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어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어후악(御後岳)으로 표기하였다. 어후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어후는 어우·어위[낭떠러지]의 변음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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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봉우리. 한라산 동사면의 성널오름의 북쪽으로 물장오리 사이의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오름이다. 꾀 높고 가파르며, 북서사면의 계곡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어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어후악(御後岳)으로 표기하였다. 어후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어후는 어우·어위[낭떠러지]의 변음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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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함덕리에서 선흘리로 올라가는 억수동 마을 입구의 북쪽에 위치한다. 1998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표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의 바위 그늘 유적 1개소와 탐라시대 전기로 판단되는 바위 그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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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함덕리에서 선흘리로 올라가는 억수동 마을 입구의 북쪽에 위치한다. 1998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표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의 바위 그늘 유적 1개소와 탐라시대 전기로 판단되는 바위 그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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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언론 기관들과 이들이 제공하는 일체의 뉴스와 정보. 언론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한 유형으로, 신문사, 시사 잡지사, 방송국, 통신사 등의 기관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현상들에 관한 보도, 논평, 해설 등을 목적으로, 그에 관한 뉴스와 정보 등을 취재한 뒤 이를 기사나 프로그램 등으로 작성하여 대중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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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간 지대에 있는 오름. 말찻 오름의 ‘말찻’은 ‘아래에 있는 잣[城]’이라는 뜻이거나 제주어 ‘말젯[작은]’에 대응하는 말로 보인다. 한자를 차용하여 언성악(言城岳) 또는 마을성악(馬乙城岳)이라고도 한다. 말찻 오름 서남쪽에는 물찻 오름이 자리한다. 말찻 오름의 면적은 403,935㎡, 둘레는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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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가장 먼저 해가 뜨고 햇볕을 직선으로 받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양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약 300여년 전 해남윤씨와 전주이씨, 동복오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추자도의 지역으로서 고종 때 완도군 추자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신상리·신하리·장작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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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성의 외모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속담. “얼굴 곤 거 속 궂나”는 주로 신부 감을 구할 때 쓰이던 속담으로, 얼굴이 고운 사람은 마음 씀이 좋지 않다는 의미이다. 남자들은 신부 감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외모를 본다. 얼굴이 예쁘면 마음도 예쁠 것 같지만, 문제는 외모와 마음가짐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쁘면 우쭐대고 자만하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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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에 있는 포구. 판포는 지금의 한경면 판포리에 있는 엄수개를 두고 이른 말인데,「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판포리라는 마을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판포리 앞에 판포가 있다고 하였으며, 판포리는 널개라는 마을 이름의 한자 차용 표기다. 널개는 한경면 판포리의 옛 이름이다. 『판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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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해녀들이 사용하는 물안경을 제작하는 것. 해녀들이 물안경을 쓰고 작업하기 시작한 연대는 상세히 조사되어 있지 않지만, 김영돈에 의하면 해녀 연구가 20세기 초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녀들의 증언에 의하면 1950년대까지만 해도 물안경 없이 물 속에서 작업하는 해녀가 많았으며 돈이 생기면 최우선으로 물안경을 마련했다고 한다. 동그란 유리알에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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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탐라 성립기 취락 유적. 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위치하며 해안으로부터 약 2㎞ 정도 떨어져 있다. 500m 인근에는 영구 유수천인 외도천이 있다. 또한 미사질 양토의 황갈색 점토층이 두텁게 퇴적되어 있어서 취락을 조성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한단 높은 대지상에 외도·광령리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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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2동에 있는 탐라 성립기 취락 유적. 용담동 먹돌로 유적은 한천(漢川)을 중심으로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이미 민가들이 대부분 들어서 있어 파괴되었고, 서쪽으로는 아직까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위치하며, 해안으로부터 약 1.5㎞ 정도 떨어져 있다. 약 1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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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탐라 성립기 취락 유적. 유적의 동쪽에는 ‘음나물내’라는 소하천이 형성되어 있다. 유적은 해안으로부터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변에는 해발 172m의 원당봉이 있다. 유적은 10m 이상 되는 해안 사구층 위에 해발 2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분포 규모는 동서 1.2~1.5㎞, 남북 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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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설립된 법인 기업. 한국에너지공단 제주지사는 기후변화에 대비한 에너지 이용문화 창조,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 및 미래 에너지 기술 개발·보급 등 에너지이용 합리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과 1978년 12월 제2차 석유파동 이후 1979년 12월에 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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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조선시대 설치되었던 여단의 터. 여단은 여귀를 달래어 병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제단이다. 1400년(정종 2)에 서울과 지방에 설치했는데, 제주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에 있는 여제단에서는 일 년에 세 번, 곧 봄에는 청명일, 가을에는 7월 보름, 그리고 겨울에는 10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냈는데, 보통 지방의 경우 제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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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매달 음력 여드렛날만 제를 올리는 신당. 팔일계당이라고도 하는 여드렛당의 신앙권은 주로 한라산 남부 지역에 분포하며, 네 가지 계통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표선읍 신천리를 중심으로 성산·표선·남원·서귀포·중문 등지의 현씨일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권이다. 둘째는 처녀의 원혼인 이씨아미를 모시는 안덕면 감산리의 호근이루요드렛당 신앙권이다. 셋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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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자보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송씨상계세보』에 보면 우리나라 전본송씨(全本宋氏)의 시조는 당나라의 호부상서였던 송주은(宋柱殷)으로 전해 오고 있으나 어떠한 연유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 송주은(宋柱殷)의 6세손 송순공(宋舜恭)의 후손인 송자영(宋自英)에게 세 아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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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잘못된 예측을 경계하는 속담. 장차 닥칠 앞일을 예측해서 그에 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예측이 잘못되어 빗나가는 날이면 되레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된다. ‘여산쟁이’는 “지레짐작으로 일을 속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만큼 미래를 예견하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o여(예)산쟁이 신작로에 밧 든다. [예산쟁이 신작로에 밭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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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제주여민회 주관으로 개최하는 여성 영화제. 여성영화제는 제주여민회 주최로 매년 꾸준히 기획되는 여성영화 상영회이다. 여성이 만든 세계 여성들의 이야기를 테마로 제작된 영화들이 주로 상영된다. 문화적 다양성과 시민 운동 차원에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 영화제들은 많은 대중들의 참여를 전제로 하지는 않지만, 비상업영화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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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혼인 때 신랑·신부 집의 친척 대표. 혼인 당일 신랑과 함께 신부를 데리러 가는 신랑 집의 근친 대표, 신부와 함께 신랑 집으로 오는 신부 집 친척의 대표를 일컫는다. 우시로 선정되는 사람은 학식이 있고 언변이 좋은 사람 중에서 친척 대표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으로 가려 뽑는다. 우시는 신랑을 데리고 신부 집으로 가는 상객으로서 성펜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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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菴). 아버지는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아우 신말주(申末舟)[1429~1503]의 10대손인 신내(申淶)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 이의홍(李儀鴻)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한양에서 생활하는 동안 홍양호(洪良浩)[1724~1802]와 교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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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경면 용수리에 사는 고창하(남)가 구연한 것이 채록되어 1985년에 출판한 『제주도전설지』에 실렸다. 옛날에 전라도 고창군수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임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급사를 하였다. 이렇게 되자 고창군수로 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었는데, 어떤 노름쟁이가 그 소문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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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여우 잡은 관리 이야기. 한림읍 월림리에 사는 홍태효(남, 83세)가 구연한 것이 채록되어 1985년에 출판된 『제주도전설지』에 실렸다. 안영장은 목사청에서 일보는 관리였는데, 용기와 학식을 겸비하여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늦게 일을 마친 안영장이 말을 타고 하가리 집으로 돌아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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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운(汝雲), 호는 척재(惕齋) 혹은 월포(月浦). 일명 김경흥(金景興)이라고도 한다. 고려 충정왕 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도첨의사사헌납을 지냈으며, 공민왕 때 밀직사대언이 되었고, 자제위(子弟衛)에서 일하였다. 신돈(辛旽)[?~1371]이 조정에 들어오자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1366년(공민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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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익(汝翼). 아버지는 이상연(李尙淵)이다. 1700년(숙종 26) 춘당대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1704년(숙종 30) 사헌부장령을 지냈으며, 1709년(숙종 35) 임양군(臨陽君)이 진하사(進賀使)로 청나라에 갔을 때 서장관으로 수행하여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1710년(숙종 36) 사헌부헌납을 거쳐 다시 장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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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성의 행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속담. “여자 놉뜨지 말라”는 여자는 날뛰지 말라는 뜻으로, 지금도 제주 전역에서 쓰이는 속담이다. 여성스러움을 미덕으로 강조하는 “여자 놉뜨지 말라”와 같은 속담은 여성의 사회 활동을 경계하거나 억제하려는 일종의 경고로서, 속담이 단절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것은 속담의 내용을 전승자 집단이 동의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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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속담. 원래 옷이란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말려야 깨끗하게 소독이 된다. 특히 속옷은 예나 지금이나 햇볕에 바짝 말려서 입어야 건강에 좋다. 그런데 “여자 속옷 울담에 널지 말라”는 속담에는 여자들의 속옷을 햇볕이 잘 드는 울타리가 아닌, 남들(남자)이 보지 못하는 은밀한 곳에서 널어 말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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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뱀이 된 원귀 이야기. 「여자 원귀가 뱀이 된 이야기」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남자 때문에 죽은 여자가 원귀가 되어 뱀으로 환생한다는 이야기이다. 보통 이러한 민담의 경우 복수가 주 모티프이나, 「여자 원귀가 뱀이 된 이야기」는 복수보다 원귀가 뱀으로 환생하여 상대방을 뉘우치게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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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역을 져야 했던 제주 지역의 여성들. 조선시대 제주 지방의 군인들은 마대(馬隊)·속오군·아병(牙兵)·별아병(別牙兵) 등의 병종으로 나뉘어 편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편성된 군인의 숫자는 제주도민 전체의 숫자와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1601)의 기록을 보면, 당시 제주의 거의 모든 남성이 평생 동안 군역을 졌으며, 본래 군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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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840년(헌종 6) 성균관 유생에게 황감(黃柑)을 주면서 치른 과거 시험인 황감제에서 부(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와 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841년(헌종 7) 정시(庭試)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을 거쳐 승정원부승지를 지냈다. 1850년(철종 1) 6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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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여치과의 곤충. 몸길이는 26~43㎜ 정도이며, 여치류 중에는 몸이 매우 큰 편이고 살이 쪘다. 몸의 색깔은 황록색 또는 황갈색으로 날개 중실에 검은 반점이 줄지어 있다. 머리와 앞가슴 양옆에는 갈색의 줄무늬가 있고, 배의 등쪽에도 갈색무늬가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살며, 한라산의 900m까지 분포한다. 육식성으로 다른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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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메뚜기목 여치과의 곤충. 우리나라는 1932년 일본인 학자 도이와 제주도는 1985년에 이영인·김원택·김대호에 의해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몸의 모양이 여치와 베짱이 중간 모습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몸길이는 수컷과 암컷이 37~45㎜이며, 앞가슴 등판은 수컷과 암컷이 11~13㎜, 앞날개는 수컷과 암컷이 23~26㎜, 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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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이 창시한 기독교계의 신종교. 여호와의 증인의 기원은 1870년대 초 미국에서 찰스 테이즈 러셀이 세운 세운 국제성서연구회(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이다. 러셀의 후임자 조셉 프랭클린 러더퍼드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장하여 ‘워치타워성서책자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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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거짓말 사기담. 「역고봉이와 두루붕이」는 거짓말 사기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거짓말로 상대를 이겨 먹으려는 사건이 선악의 대결을 보이며 계속되지만 결국은 착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민담의 전형적인 결말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1959년 8월 제주시 노형동에 사는 김영선(여, 64세)이 구연하고 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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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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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었던 조선 말기 서당인 문연서당이 있던 터. 1891년(고종 28) 귤암 이기온이 칠봉서당을 창설하고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며 성균관 교수로 있던 고성겸을 강사로 초빙하여 교육을 개시했다. 1899년(광무 3) 화재로 고성겸과 제자 한 명이 불에 타 숨지고 칠봉서당이 소실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 뒤 이 자리에 다시 문연서당을 세우고 아들 이응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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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원무늬가 시문된 토기. 공렬 토기는 구연부 아래에 원무늬가 연속적으로 시문되어 있는 토기이다. 골아가리 무늬[口脣刻目文]가 새겨진 토기와 함께 역삼동식(驛三洞式) 토기라고도 한다. 한반도에서는 팽이 모양[角形] 토기의 주요 분포지인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출토되며, 한반도 동북 지역에서 전파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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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1971년부터 1997년까지 제주 지역 일주 도로 완전 포장을 기념해 개최하였던 마라톤 대회. 1971년 도민의 숙원 사업이었던 제주도 일주 도로 완전 포장을 기념해 제주신문사 주최로 창설되었다. 제주신문사는 대회 요강에서 창설 취지를 “동서고금을 통하여 도로가 문화의 발상이었다면 제주도민의 숙원이던 일주 도로의 포장이야말로 지역 발전의 한 전기를 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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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세워진 교육 기관. 역학당은 관덕정 동쪽 좌위랑에 위치해 있던 서당으로, 18세기 이후 등장했던 개량서당 교육 기관이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에 의하면, “재관덕정좌위랑 역학왜학동거 배제번삼 학생일백칠십육명(在觀德亭左衛廊 譯學倭學同居 排除番三 學生一百七十六名)”이라 하여 다수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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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후기 누각. 연교정은 제주목사 김정이 1737년(영조 13)에 세운 누각으로, 임금의 교서를 받들고 전문(箋文)을 올릴 때에 그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전문은 길사나 흉사가 있을 때에 지방관이 왕에게 아뢰는 사륙 문체의 글을 말한다. 정조의 대전탄일(大殿誕日)에 지방관이 축하하는 전문을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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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종합 예술. 19세기 말까지 한국에서는 서구식 드라마가 공연된 적이 없다.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의 연극도 일찍이 공연된 적이 없다. 청일전쟁 이후 ‘중국인 및 일본인 거류 지역’이 번화해지면서 비로소 이 두 나라에 연극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플롯형식의 드라마는 없었고, 연희와 연극 개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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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화구는 침식되어 원래의 형태가 말굽형인지 원추형인지 구분이 곤란하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데 연유하여 열안지 오름, 열안지(列雁地), 열안지악(列雁地岳), 열안악(列雁岳), 열안산(列雁山)이라고 한다. 제비가 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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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읍장을 지낸 관리. 1894년(고종 31) 제주관찰부의 주사 및 제주지방재판소의 판임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그만두었다. 1900년(고종 37)을 전후한 시기에 김윤식(金允植) 등의 유배인과 어울리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고 시 동인 모임인 귤회(橘會)의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윤식은 홍종시에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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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별방진에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무주연대는 동쪽으로 좌가마연대(직선 거리 4.7㎞), 서쪽으로 입산봉수(직선 거리 2.5㎞)와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월정리 일주 도로와 인접하여 취락 구조 개선 마을이 있으며, 북서쪽으로 1㎞ 정도를 가면 월정리 마을과 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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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써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인 연대의 하나. 조부연대는 제주목에서 서쪽으로 23리(12.86㎞)에 위치한 제주목 소속의 연대이다. 조부연대는 동쪽으로 도원봉수(직선거리 4.3㎞), 서쪽으로 수산봉수(4.4㎞)와 서로 군사 소식을 주고받았다. 봉군은 별장 6명, 직군 12명이 군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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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별방진에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무주연대는 동쪽으로 좌가마연대(직선 거리 4.7㎞), 서쪽으로 입산봉수(직선 거리 2.5㎞)와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월정리 일주 도로와 인접하여 취락 구조 개선 마을이 있으며, 북서쪽으로 1㎞ 정도를 가면 월정리 마을과 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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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연못. 예로부터 마리못이라 부르고 한자 차용 표기로는 마리지(馬里池) 또는 두지(頭池)로 표기하였다. 마리는 머리[頭]의 옛 말로,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있는 못이라는 데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듬북 개연대 서쪽에 있는 못이라는 데서 연대못이라 하고 이것을 한자 차용 표기로 연대지(烟臺池)로 쓰고 있다. 외도2동 연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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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써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인 연대의 하나. 조부연대는 제주목에서 서쪽으로 23리(12.86㎞)에 위치한 제주목 소속의 연대이다. 조부연대는 동쪽으로 도원봉수(직선거리 4.3㎞), 서쪽으로 수산봉수(4.4㎞)와 서로 군사 소식을 주고받았다. 봉군은 별장 6명, 직군 12명이 군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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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연못. 예로부터 마리못이라 부르고 한자 차용 표기로는 마리지(馬里池) 또는 두지(頭池)로 표기하였다. 마리는 머리[頭]의 옛 말로,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있는 못이라는 데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듬북 개연대 서쪽에 있는 못이라는 데서 연대못이라 하고 이것을 한자 차용 표기로 연대지(烟臺池)로 쓰고 있다. 외도2동 연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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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70년대 중반까지는 농촌이었으나, 1977년 신제주 건설 계획이 확정된 뒤 새로운 시가지가 건설되면서 관공서, 관광 관련 시설, 그리고 주택가 등이 들어서면서 급속히 발전한 지역이다. 원래 있었던 마을인 ‘닛골[잇골]’의 한자 차용 표기인 연동(延洞)의 변칙 표기인 연동(蓮洞)에서 유래되었다. 18세기 중반부터 연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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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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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오름. 북쪽에서 볼 때 삼각형 모양의 바위가 솟아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장구목 오름과 연결된 북쪽 봉우리가 위쪽에서 보면 장구목의 연장으로 보이지만 북쪽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치솟은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237.586㎡, 둘레는 2,035m, 높이는 1,695m에 이른다. 한라산 관음사 등반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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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오름. 북쪽에서 볼 때 삼각형 모양의 바위가 솟아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장구목 오름과 연결된 북쪽 봉우리가 위쪽에서 보면 장구목의 연장으로 보이지만 북쪽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치솟은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237.586㎡, 둘레는 2,035m, 높이는 1,695m에 이른다. 한라산 관음사 등반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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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오름. 북쪽에서 볼 때 삼각형 모양의 바위가 솟아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장구목 오름과 연결된 북쪽 봉우리가 위쪽에서 보면 장구목의 연장으로 보이지만 북쪽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치솟은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237.586㎡, 둘레는 2,035m, 높이는 1,695m에 이른다. 한라산 관음사 등반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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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통신 시설. 화북진에 소속된 별도연대는 동쪽으로 원당봉수, 서쪽으로 사라봉수와 상응하면서 군사 소식을 전했다. 17세기 이후 별도봉수는 폐쇄되고 별도연대가 설치되었다. 별도연대는 제주목에서 동쪽으로 12리(6.71㎞)에 위치하였으며, 봉군으로는 별장(別將) 6명, 직군(直軍) 18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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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통신 시설. 화북진에 소속된 별도연대는 동쪽으로 원당봉수, 서쪽으로 사라봉수와 상응하면서 군사 소식을 전했다. 17세기 이후 별도봉수는 폐쇄되고 별도연대가 설치되었다. 별도연대는 제주목에서 동쪽으로 12리(6.71㎞)에 위치하였으며, 봉군으로는 별장(別將) 6명, 직군(直軍) 18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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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연대. 애월연대는 동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2.7㎞), 서쪽으로 귀덕연대(직선 거리 3.2㎞)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애월연대는 애월진이 있었던 애월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속칭 ‘연디왓’이라 불린다.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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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중기의 정자. 연무정은 1636년(인조 14) 제주목사 신경호가 병사들을 훈련하고 군관청과 판관 사후처(伺候處)로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탐라지(耽羅誌)』에, 연무정을 건립할 당시 제주목사 신경호가 “제주에는 온 섬에 악석(惡石)이 널려 있으나 오직 이 곳은 풀 하나 없고 평평하기가 손바닥과 같아서 하늘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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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심방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악기의 총칭. 무악기(巫樂器)를 제주어로는 ‘연물’이라고 한다. 연물에는 북, 장귀(장구), 징, 설쉐, 4가지가 있으며, 이외에 ‘요령’과 ‘바랑(바라)’이 있다. 북, 장귀, 징, 설쉐는 모두 타악기로서, 주로 소미(小巫)들이 굿을 하는 심방의 옆에 일렬로 앉아 치는 타악기들이다. 요령과 바랑은 심방이 들고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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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 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 굿이 진행되는 동안 심방[巫堂]이 창(唱)하는 노래, 심방이 춤을 추며 굿을 진행하는 동안 소무(小巫) 악사들이 반주하는 모든 음악[巫樂]을 통칭하며, 이를 ‘연물[巫樂]’이라고도 한다. 한편 굿에 쓰이는 악기인 설쇠·징·북·장고를 연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무악기 연물로 연행되는 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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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 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 굿이 진행되는 동안 심방[巫堂]이 창(唱)하는 노래, 심방이 춤을 추며 굿을 진행하는 동안 소무(小巫) 악사들이 반주하는 모든 음악[巫樂]을 통칭하며, 이를 ‘연물[巫樂]’이라고도 한다. 한편 굿에 쓰이는 악기인 설쇠·징·북·장고를 연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무악기 연물로 연행되는 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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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 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 굿이 진행되는 동안 심방[巫堂]이 창(唱)하는 노래, 심방이 춤을 추며 굿을 진행하는 동안 소무(小巫) 악사들이 반주하는 모든 음악[巫樂]을 통칭하며, 이를 ‘연물[巫樂]’이라고도 한다. 한편 굿에 쓰이는 악기인 설쇠·징·북·장고를 연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무악기 연물로 연행되는 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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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일 제주읍 오라리 연미 마을에서 우익 청년단원에 의해 발생한 방화 사건. 1948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4·3 사건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무장대와 국방 경비대가 즉각적인 전투 중지를 합의하지만 5월 1일 우익 청년단원들이 제주읍 오라리 연미 마을에 불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두 진영 사이의 합의가 깨지고 만다. 1948년 4월 3일 제주 지역에서 무장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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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제주도 사람들의 이름을 연대순으로 수록한 인명록. 『사마선생안(司馬先生案)』이라고도 부르는 『연방록(蓮榜錄)』은 조선 시대 사마시인 생원과 진사과의 향시(鄕試)·회시(會試)에 합격한 사람의 성명을 적은 명부이다. 연방은 생원과 진사를 달리 이르는 말로, 사마라고도 하였다. 1892년(고종 29) 윤 6월 18일에 이루어졌으며 편자는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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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라산 5·16 횡단도로와 신 제주 신시가지 사이에 있는 도로. 길이 4,310m, 폭 35m의 제주시 제2 도시우회도로이다. 연북로는 도로 중간에 길이 150m, 폭 36m의 도내 최장의 연북2교를 비롯해 다리 4곳, 지중전선관 6,495m, 통신관 1,936m, 가로등 323개 등이 갖춰져 있다. 제주시 연동과 화북동을 연결하는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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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연북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연북정은 조천 포구 입구에 있는 정자인데, 이 정자가 세워지게 된 내력담이다. 조천읍 조천리에 사는 김병화(남, 85세)가 구연한 것을 현용준이 채록하여 1985년에 출판한 『제주도전설지』에 실었다. 조천 바닷가에 조천석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배가 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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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연북정은 원래 조천성 바깥에 있던 객사로 처음 축조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선조 23년(1590) 이옥 절제사가 성을 동북쪽으로 돌려 쌓은 다음에 정자를 그 위에 옮겨 세워서 ‘쌍벽정’이라 했다고 한다. ‘쌍벽’이란 말은 청산도 푸르고 녹수도 푸르러서 쌍쌍이 푸르기 때문이라는, 제주도의 유다른 풍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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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잠자리목 실잠자리과의 곤충. 우리나라는 1986년 일본인 미야자키에 의해, 그리고 제주도는 1993년 Lee가 처음으로 기록하였다. 배 길이는 약 22~35㎜로 암수 모두 겹눈과 가슴은 녹색을 띤다. 수컷은 배마디가 분홍색을 띠고, 암컷은 배마디가 옅은 녹갈색을 띠는데 제 7~9마디 등 쪽에는 흑색 무늬가 있다. 어린 벌레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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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系明), 호는 서봉(西峰), 시호는 충정(忠靖). 아버지는 연평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이며, 영의정 이시백(李時白)[1581~1660]의 아우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아버지와 함께 가담하여 정사공신 2등으로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졌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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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배를 새로 지었거나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날 때 배서낭에게 지내는 고사. 지역에 따라 ‘연신맞이’라고도 하는 뱃고사는 해상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위해 배를 관장하는 배서낭에게 지내는 고사이다. 제주 지역에서 배서낭은 영감이나 참봉, 야채 등으로 불리는 도깨비신으로 일컬어지지만 심방에 따라서는 배서낭을 용왕국의 공주로서 처녀신이라고도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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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화구는 침식되어 원래의 형태가 말굽형인지 원추형인지 구분이 곤란하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데 연유하여 열안지 오름, 열안지(列雁地), 열안지악(列雁地岳), 열안악(列雁岳), 열안산(列雁山)이라고 한다. 제비가 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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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현대 국어학자. 본관은 연주(延州), 호는 연암(延岩)이다. 1920년 8월 16일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어도리 구몰동에서 태어났다. 2004년 1월 2일 제주도 제주시 용담동 자택에서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제주학의 제1세대로서 평생 제주도 방언 연구에 주력하여 그 기틀을 마련하였다.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 관서대학 전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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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쌀가루로 만든 동그란 흰 떡으로 귀신을 위한 무속떡. 쌀가루를 익반죽한다. 모양은 제주 송편 만들 듯이 동그랗게 빚는데 가운데를 누르지 않는다. 크기는 두께가 3~4㎝, 지름 4~5㎝ 이며, 떡 속에 엿이나 조청을 넣는다. 끓는 물에 삶아낸 후 냉수에 씻어 건져 놓는다. 무속에 사용하는 떡은 귀신에 따라 달라지는데 특히 이 오물떡은 ‘중(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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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현사경 등을 입도조로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현씨는 전국이 단일본으로서 그 본향은 연주(延州)이다. 한때 현씨의 본관이 연주(延州)·창원(昌原)·성주(星州) 등 여러 곳인 것처럼 알려졌던 적도 있었지만, 모두 연주현씨의 시조인 현담윤(玄覃胤)의 자손이요, 그 분파임이 알려져 통합되었다. 현씨는 그 본향인 평안도 지방에 가장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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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풍속이란 계절에 따라 지켜지는 일반적인 생활 풍속을 말하는 것으로 연중 행사라고도 한다. 계절에 따라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양식이기 때문에 세시풍속에는 한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업·역사·사회가 반영되어 있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땅이 척박하고 가난한 절해의 고도여서 환해천험(環海千險)의 섬이라 하였다. 제주도민은 철따라 불어오는 계절풍, 달의 주기에 따라 변하는 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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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서광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예의 바르고 스스로 배우며, 슬기롭게 꿈을 열어 가는 학생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참되자 부지런하자’이다. 1949년 연평 고등 공민학교로 설립되어 1954년 5월 22일 3년제 3학급의 연평 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54년 6월 20일 개교하였다. 2000년 3월 1일 연평 초등학교와 통합되었으며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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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고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 실력을 갖춘 창의적인 사람,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여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심신이 건강하고 협동, 봉사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부지런히 배우자, 참되게 행하자, 튼튼히 자라자’이다. 1936년 1월 16일 사립 연평 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36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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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연못. 연화못은 넓이가 3,780여 평으로 봉천수에 의한 연못으로는 제주도에서 가장 넓다. 연화못은 연꽃이 많은 연못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연화못은 마을 안에 위치하고 있어 갈수기에는 농업용수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연꽃·수련·소리쟁이·쇠무릎 등과 각종 수생 식물을 비롯하여 어류 등 다양한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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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청(政廳: 업무를 보는 관청). 건축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연희각은 안무사(按撫使), 절제사(節制使), 목사(牧使), 관찰사(觀察使), 군수(郡守) 등의 집정당(執政堂)으로서, 이곳에서 제주 사람의 안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속칭 상아동헌(上衙東軒)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제주도청이 건축될 당시에 일제에 의해 철훼되었다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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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정절을 지켰던 여자. 유교에서 중요시한 덕목 가운데에는 효(孝)와 열(烈)이 있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조선조에 태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 7월에 발표된 「즉위 교서」에는 충신, 효자, 의부, 절부의 일은 풍속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를 널리 권장하고 문려(門閭: 동네 어귀에 세운 문)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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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열녀 이야기. 한경면 용수리 포구 옆에는 고목이 울창한 숲이 있는데, 이곳에 절부암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와 관련하여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1975년 한경면 고산리에 사는 이자영(남, 77세)이 구술한 것을 현용준이 채록하여 1985년에 출판한 『제주도전설지』에 실었다. 옛날 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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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귀뚜라미과의 곤충. 우리나라는 2001년 정세호가 제주도 것을 가지고 처음 기록했다. 몸의 길이는 5~7㎜이며, 더듬이가 자기 몸보다 2~3배 정도로 매우 길다. 뒷다리 종아리마디 등에는 커다란 가시가 있으며, 2번째 발목마디는 납작하고 1번째 또는 3번째 마디는 폭이 훨씬 넓다. 풀종다리와 비슷하지만 수컷에 쌍꼬리가 있어서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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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도에서 음력 섣달그믐부터 2월 초까지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행하는 풍물굿. 추자도는 6곳의 행정리로 나뉘어 있는데, 각 마을마다 전통적인 걸궁이 있다. 이 중에서 규모나 구성면에서 가장 빼어난 것이 열두 마당으로 이루어져 열두머리굿으로 불리는 대서리의 걸궁이다. 제주도와 내륙 지방의 문화가 혼재되어 독특한 양식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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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혼인 다음날 아침 신혼부부가 가까운 친척집을 방문하여 인사드리는 절차. 지역에 따라 일컬어지는 용어는 다양하다. 제주시 해안동에서는 ‘올래알림’이라고 하였으나, ‘열맹’·‘문안인사’·‘조례’·‘숙기둘레’라고도 하였다. 시어머니나 숙모, 동서, 시누이 등이 안내하여 가까운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친척들이 신랑 신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접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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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송씨 부인의 행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열부 여산송씨 유허비는 조선 후기 봉개동에서 살았던 양기석의 처 송씨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유허비이다. 송씨 부인은 남편이 괴질로 죽은 뒤에도 정성껏 시가 어른을 모시다가 아들이 죽자 목을 매어 죽었는데, 제주목사가 이 일을 전해 듣고, “사열(死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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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화구는 침식되어 원래의 형태가 말굽형인지 원추형인지 구분이 곤란하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데 연유하여 열안지 오름, 열안지(列雁地), 열안지악(列雁地岳), 열안악(列雁岳), 열안산(列雁山)이라고 한다. 제비가 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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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화구는 침식되어 원래의 형태가 말굽형인지 원추형인지 구분이 곤란하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데 연유하여 열안지 오름, 열안지(列雁地), 열안지악(列雁地岳), 열안악(列雁岳), 열안산(列雁山)이라고 한다. 제비가 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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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화구는 침식되어 원래의 형태가 말굽형인지 원추형인지 구분이 곤란하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데 연유하여 열안지 오름, 열안지(列雁地), 열안지악(列雁地岳), 열안악(列雁岳), 열안산(列雁山)이라고 한다. 제비가 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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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화구는 침식되어 원래의 형태가 말굽형인지 원추형인지 구분이 곤란하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데 연유하여 열안지 오름, 열안지(列雁地), 열안지악(列雁地岳), 열안악(列雁岳), 열안산(列雁山)이라고 한다. 제비가 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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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봉우리. 화구는 침식되어 원래의 형태가 말굽형인지 원추형인지 구분이 곤란하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모양이 기러기(雁)가 열을 지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데 연유하여 열안지 오름, 열안지(列雁地), 열안지악(列雁地岳), 열안악(列雁岳), 열안산(列雁山)이라고 한다. 제비가 알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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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봉우리. 상여형국의 지세라 하여 생이오름[생이=상여], 또는 상여 오름이라 부른다. 오름 중턱까지는 숲으로 덮였고 서남쪽 사면은 오름 중턱까지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정상부는 아담하고 널따란 풀밭을 이루고 있다. 또한, 동북쪽 사면에는 중턱까지 해송이 조림되어 있으며, 여러 기의 묘가 있다. 높이는 245m, 비고 60m, 둘레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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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보리에 물을 붓고 싹을 트인 다음 말린 가루. ‘골’은 엿기름의 제주도 방언이다.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인 말타아제를 함유하고 있어, 엿과 감주를 만들 때 사용하였다. 겉보리를 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바구니에 건져서 자주 물을 뿌려준다. 통풍이 잘되고 그늘지며 따뜻한 아랫목에 두면 약 2~3일이 지나 싹이 난다. 1주일이 지나면 싹이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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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놀이굿의 일종인 연희 놀이. 「영감놀이」는 원래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당굿 중 놀이굿의 하나이다. 도깨비 신에 대한 굿으로서 무속 의례 굿인 동시에 연희 놀이이기도 한 「영감놀이」는 1971년 8월 26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2호(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 보유자는 이중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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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무속 의례인 ‘시왕맞이’나 ‘귀양풀이’에서 심방이 울면서 대신 말해 주는 영혼의 이야기. 영혼을 뜻하는 영가(靈駕)의 제주방언이 영개이다. 그러니까 영개울림은 영혼이 울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다. 영개울림은 신의 의사를 심방이 대변하는 ‘분부사룀’의 일종이다. ‘시왕맞이’의 경우 영개울림은 질침(차사영맞이) 제차에서 행해지는데, 영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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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시호는 문충(文忠). 아버지는 상호군 고봉지(高鳳智)[?~1411]이며, 조천읍 교래리에서 태어났다. 1413년(태종 13) 효행이 두터워서 직장(直長)에 천거되었으며, 1414년(태종 14) 알성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호군(大護軍),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등을 지냈다. 1427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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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지내는 영등신에 대한 무속 의례. 영등굿은 마을의 본향당에서 이루어지는데, 본향당신(本鄕堂神)에게 하는 당굿이 아니라 영등신을 대상으로 하는 당굿이다. 영등신이란 본래 영등할망이라 불리는 여신으로서 2월 1일에 입도(入島)하여 15일에 나가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사람들은 영등할망이 이 기간 동안에 소라, 전복, 미역 등 해녀 채취물(採取物)을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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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지내는 영등신에 대한 무속 의례. 영등굿은 마을의 본향당에서 이루어지는데, 본향당신(本鄕堂神)에게 하는 당굿이 아니라 영등신을 대상으로 하는 당굿이다. 영등신이란 본래 영등할망이라 불리는 여신으로서 2월 1일에 입도(入島)하여 15일에 나가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사람들은 영등할망이 이 기간 동안에 소라, 전복, 미역 등 해녀 채취물(採取物)을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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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 찾아와서 2월 15일경에 떠난다고 알려진 풍신(風神:바람신)이며 풍농신(豐農神). 영등할망은 육지의 해안 지방에서는 풍신(바람신)으로서의 개념이 강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해산물이나 농작물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으로 더 알려진 신이다. 구전에 의하면,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복덕개'라는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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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지내는 영등신에 대한 무속 의례. 영등굿은 마을의 본향당에서 이루어지는데, 본향당신(本鄕堂神)에게 하는 당굿이 아니라 영등신을 대상으로 하는 당굿이다. 영등신이란 본래 영등할망이라 불리는 여신으로서 2월 1일에 입도(入島)하여 15일에 나가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사람들은 영등할망이 이 기간 동안에 소라, 전복, 미역 등 해녀 채취물(採取物)을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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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 찾아와서 2월 15일경에 떠난다고 알려진 풍신(風神:바람신)이며 풍농신(豐農神). 영등할망은 육지의 해안 지방에서는 풍신(바람신)으로서의 개념이 강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해산물이나 농작물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으로 더 알려진 신이다. 구전에 의하면,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복덕개'라는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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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영등할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영등할망은 영등달인 음력 2월에 여러 식솔, 즉 영등하르방·영등대왕·영등별감·영등좌수·영등호장·영등우장 등을 데리고 오는데, 비옷을 입은 영등우장이 오면 비가 오고, 두터운 솜 외투를 입은 영등할망이 오면 그해 영등달엔 눈이 많이 오며, 차림이 허술한 영등할망이 오면 영등달이 유독 날씨가 좋다는 말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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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서 민란을 일으킨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보(英甫), 호는 동곡(桐谷)이다. 일명 김준현(金俊鉉)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김문환(金文煥)이다. 1858년(철종 9)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민폐를 예방하기 위해 관리가 공무 수행 중 지켜야 할 지침서인 절목(節目)를 작성하여 관리들에게 경고하였다. 유학을 연구하고, 영호남의 유림과 교유하며 식견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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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 아명은 송성뢰(宋聖賚)이다. 아버지는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의 장씨가 낳은 아들(후일 경종)에 원자의 호칭을 부여하는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는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다. 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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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무극대도의 교주. 본관은 진주(晉州), 법명은 용강(龍剛)이다. 강승하(姜承河) 또는 영산천사(靈山天師)라고도 한다. 강영호(姜英鎬)의 아들로 1895년 5월 7일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면 하예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다. 강승태는 1918년 민족 종교인 보천교(普天敎) 본부에서 포교 차 제주도에 온 강석호(姜錫鎬), 신백근(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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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찰리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숙(英叔). 아버지는 황종창(黃鍾昌)이며, 황종림(黃鍾林)에게 입양되었다. 경기도 과천(果川)에서 태어났다. 1873년(고종 10)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찬에 임명되었다. 그 뒤 부교리·부수찬을 거쳐 1888년(고종 25) 대사성이 되었다. 1888년 함경도 영흥부민들이 환전(還錢)의 고통을 견디다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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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나비목 자나방과의 곤충. 1969년 박세욱이 한라산 영실에서 발견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기록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몸길이는 15㎜이고, 날개를 편 길이는 수컷이 30~32㎜이며, 암컷은 31~35㎜이다. 더듬이는 수컷이 미모상이고, 암컷은 실모양이다. 색깔의 변이가 매우 심하여 거의 같은 개체가 없을 정도이다. 날개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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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말기의 정자. 영은정은 1904년 제주목사 홍종우가 세운 정자이다. 영은정과 관련하여 1905년 사법(司法) 홍진국(洪鎭菊)이 쓴 「영은정기(泳恩亭記)」가 남아 있다. 현재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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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조일리 영일동에 있는 도대불. 우도면 조일리 영일동 선창 진입로에는 ‘답’이라는 방사 유적이 있는데, 마을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이 방사 유적이 도대불로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축조된 ‘답’을 1962년 10월 11일부터 도대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일리 도대불은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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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대학로에 있는 사립 실업계 고등학교. 자주성과 도덕성 및 창조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자주, 협동, 봉사’이다. 1994년 8월 29일 제주 공업 고등학교 24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95년 3월 1일 개교하였다. 2000년 9월 26일 서울 유한 공업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2001년 11월 10일에는 중국 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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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의 제주목 관아 안에 있던 조선 시대 객사 대청 터. 영주관은 조선 시대 제주목에서 객사 대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객관이라고도 불렀던 객사 대청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예부터 객관은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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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아름다운 경관 십경(十景)을 그린 기록화. 「영주십경도(瀛洲十景圖)」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10여 곳을 골라 그린 그림첩이다. ‘영주’는 ‘탐라’와 마찬가지로 제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영주 십경은 제주 십경을 가리킨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영주십경도에는 여러 점이 있다. 기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영주십경도」는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익태(李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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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국어국문학을 연구하는 전국적인 학회. 국어국문학 자료를 발굴 정리하여 연구하고 그 결과의 평가를 통해 이론을 정립하여 국어국문학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3년 발족한 제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영주어문연구회를 2001년 영주어문학회로 개편하였다. 정기적으로 기관지인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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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제주 지역 서예 문화 발전을 위해 창립된 서예 단체. 해방 이후 20년 동안 제주 지역에는 서예 단체가 없었다. 1963년 결성된 담담회 회원들 중 서예가를 주축으로 1965년 영주연묵회가 제주 최초의 서예 단체로 결성되었다. 서예를 통해 고유 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새로운 예술 창조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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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나비목 왕나비과의 곤충. 우리나라는 1906년 일본인 학자 이치가와에 의해 제주도의 것을 가지고 처음 기록되었다. 날개를 편 길이는 9~10㎝이며, 수컷은 뒷날개 내연각에 성표인 검은색 무늬가 있으나 암컷은 없다. 날개 바탕은 은회색으로 앞날개의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흑색을 띠며, 날개 맥도 검고 반투명하다. 뒷날개 아랫면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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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사진가이자 민속학자. 호는 만농(晩農)·영주주인(瀛州主人)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서 태어났다.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제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도하였고 조천공립보통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한국 대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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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내지 조선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의 삼성신화(三姓神話)가 수록된 문헌. 『영주지(瀛洲志)』의 저자는 미상이나 유창한 문장으로 보아 한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의 저작임을 알 수 있으며 사서의 기록과 부합되는 구체적인 사실도 있기 때문에 『영주지』가 다만 전설을 들어서 기술하였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피의(皮衣) 육식(肉食)과 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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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제주의 한학자 오문복이 엮어낸 제주 출신 옛 문인들의 한시집. 제주에 구전되거나 문서로 전해오는 선인들의 한시를 모아 1988년 제주의 한한자 오문복이 번역하고 해설을 달아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제주의 한학자 오문복은 제주 출신 선인들의 시문이 공간되지 못하고 없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틈틈이 구전하는 시편만이라도 남기고자 하는 생각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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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두었던 제도. 진휼곡은 춘궁기에 종곡(種穀)을 나누어주고 추수기에 거두어들이던 곡식 또는 제도를 일컫는다. 진휼곡은 1668년(헌종 9) 제주목사 이인(李寅)에 의해 설치되었는데, 진대구휼(賑貸救恤)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거듭된 자연재해로 원곡(元穀)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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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두었던 제도. 진휼곡은 춘궁기에 종곡(種穀)을 나누어주고 추수기에 거두어들이던 곡식 또는 제도를 일컫는다. 진휼곡은 1668년(헌종 9) 제주목사 이인(李寅)에 의해 설치되었는데, 진대구휼(賑貸救恤)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거듭된 자연재해로 원곡(元穀)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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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두었던 제도. 진휼곡은 춘궁기에 종곡(種穀)을 나누어주고 추수기에 거두어들이던 곡식 또는 제도를 일컫는다. 진휼곡은 1668년(헌종 9) 제주목사 이인(李寅)에 의해 설치되었는데, 진대구휼(賑貸救恤)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거듭된 자연재해로 원곡(元穀)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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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제주목사 이형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영천 출신으로 1703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제주에 만연한 음사를 철폐하고 심방들을 귀농시키는 등 개혁적인 여러 일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제주 사람들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영천 이목사」는 이형상이 제주목사 시절의 여러 가지 행적이 후대로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전설화된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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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다리. 길이는 26m, 폭은 15m, 유효폭은 14m, 높이는 6.5m이다. 경간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3.0m이다. 총 차선 수는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RA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ETC이다. 설계 하중은 DB-24로 1등교(等橋)이다. 난간의 재료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연석은 제주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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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마을. 예로부터 가시남물 또는 가시나물이라 불렀는데, 이는 ‘가시남+물’의 구성으로 보인다. 가시남은 가시나무[가래나뭇과의 돌가시나무, 북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대응하는 제주어이다. 곧 가시남에 있는 물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시남물이나 가시나물이라 부르다가 갓남(㖙南), 갓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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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쌍떡잎식물 조록나무과의 상록성 교목. 조록나무는 항상 푸른나무로 제주도와 전라남도 완도에서 자라고 있으며 제주도에서는 조로기낭 또는 조래기낭으로 불려지고 있다. 나무의 잎에는 조롱이 달린 것과 같은 벌레혹이 많이 붙어있어 조롱나무라 불리었으며, 이것이 변하여 조록나무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조롱낭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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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마음가짐이 바르고, 고운 꿈을 이루어 가는 슬기로운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올바르게·슬기롭게·씩씩하게’이다. 영평 국민학교는 1946년 3월 개교하였다가 1948년 12월 4·3 사건으로 폐교되었다. 1968년 3월 1일 아라 국민학교 영평 분교장이 설립되었고, 1969년 3월 1일 영평 국민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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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마을. 이 동은 예로부터 알무드내을이라는 데서 알무드내’ 불렀다. 알무드내는 무드내[無等川] 아래쪽에 있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17세기 고지도에 ‘무등천촌(無等川村)[무드내을]’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알무드내에 있는 마을을 알무드내을이라 하여 하무등천촌 또는 하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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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의 사당. 영혜사는 조선 중기인 1669년(현종 10) 제주목사 이연이 제주목사 출신의 유학자들을 배향하기 위해 귤림서원 동쪽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에는 이약동·이회를 배향하였는데, 1819년(순조 19) 제주목사 조의진의 유장(儒狀)에 따라 이형상과 김정을 배향하였으며, 1831년(순조 31)에는 제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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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연속 촬영으로 기록한 필름상의 화상을 스크린에 투영하여 영상을 보여주는 행위 및 그 작품. 제주 지역의 극장은 시대와 삶을 소통시켜 주는 대중문화 예술의 공간이었다. 극장의 형태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만든 ‘창심관’이 원조이다. 이곳에선 무성 영화를 변사의 해설과 함께 보여주었으나, 얼마 안 돼 화재로 소실되었다. 극장으로서의 면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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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마을 뒷산에 절이 있어 주민들이 절기미 또는 절구미라 불렀다고 하나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1914년 전라남도 완도군 추자면에서 제주군 추자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마을 이름도 ‘영원히 흥하라’는 뜻으로 영흥리로 바꾸었다. 약 300여 년 전 밀양박씨와 전주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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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의 성내 교회에 설립되었던 4년제 어린이 야간 강습소. 설립자 윤함애(尹咸愛)는 평양 숭의 여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서 이기풍(李基豊) 목사와 결혼하여 1908년에 부부가 함께 제주도로 들어왔다. 제주에 도착하여 삼도2동 서문통 근처에 성내 교회를 세우고 부설로 영흥 학교를 열었다. 1917년 어린이가 10명이 되자 4년제의 영흥 학교 설립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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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이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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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잘못된 예측을 경계하는 속담. 장차 닥칠 앞일을 예측해서 그에 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예측이 잘못되어 빗나가는 날이면 되레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된다. ‘여산쟁이’는 “지레짐작으로 일을 속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만큼 미래를 예견하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o여(예)산쟁이 신작로에 밧 든다. [예산쟁이 신작로에 밭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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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창립자인 박태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신종교 단체. 천부교는 박태선(朴泰善)[1917~1990]이 1954년 서울에서 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하였다. 1957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에 제1신앙촌을 건설하고 7천여 명의 신자들을 이주시켰다. 그 곳에서 신도들에게 공장을 짓게 하고 일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했다. 1980년 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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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미국의 조지프 스미스 2세가 창시한 기독교의 한 종파. 1830년 미국의 조지프 스미스 2세의 종교 체험으로부터 시작된 기독교 교단이다. 성경 외에 『몰몬경』을 기본 경전으로 삼고 있다. 처음 한국 교단의 명칭은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였는데, 2005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로 바뀌었다. 하느님을 믿지만 다신적 입장을 취하며,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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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뜻이나 모양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빗대어서 알아맞히는 놀이. 수수께끼는 은유를 써서 대상을 정의하는 언어 표현으로, 사물의 뜻이나 모양을 빗대어서 알아맞히는 놀이를 말한다. 「천지왕본풀이」에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제주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수수께끼가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 지역에서는 수수께끼를 ‘예숙제낄락’, 또는 ‘걸룩락’이라고 부른다. 첫째, 화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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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에 있는 제주 지역의 공연 문화를 위한 개인복합 문화 공간. 한경면 신창리 지역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지역민들은 문화 생활을 향유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문화 향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연극 및 무대 공연과 전시회를 개최하기 위하여 예올문화원을 개관하였다. 2001년 10월 21일 연극인 김덕휘 원장이 폐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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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설 무용단. 전통 예술의 맥을 전승하고 새로운 창작 능력 고취와 제주 문화 예술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제주도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정신 세계를 드높이고, 국제화 시대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제주 춤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 1994년 예지무용학원 출신과 제주 무용인들이 창단하였다. 제주 민속 예술의 발굴과 전승에 노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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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마을이라 하여 ‘예초’(禮草)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 300여 년 전 함안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에 예초리가 나타난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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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에 있는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 서북부 지역의 부속섬인 추자도에 위치한다. 유적은 엄바위 장승과 인접해 있으며, 해안변에서 다소 올라온 절벽 지형에 자리한다. 추자도는 지형·지질학적으로 전라남도 지역과 유사한 지형과 토양이 퇴적되어 있다. 1998년도에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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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에 있는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 서북부 지역의 부속섬인 추자도에 위치한다. 유적은 엄바위 장승과 인접해 있으며, 해안변에서 다소 올라온 절벽 지형에 자리한다. 추자도는 지형·지질학적으로 전라남도 지역과 유사한 지형과 토양이 퇴적되어 있다. 1998년도에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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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에 있는 ‘장사’. 예초리 장사는 추자면 예초리 마을 진입로 속칭 엄바위 밑에 세워져 있는 ‘장사’를 일컫는 말이다. 기존에 세워져 있던 것이 썩어버리자, 1992년경에 마을 청년들 주관으로 다시 만들어 세워졌다. ‘장사’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는 아무도 모르며, 예로부터 계속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나무가 썩으면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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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마을이라 하여 ‘예초’(禮草)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 300여 년 전 함안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에 예초리가 나타난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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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에 있는 ‘장사’. 예초리 장사는 추자면 예초리 마을 진입로 속칭 엄바위 밑에 세워져 있는 ‘장사’를 일컫는 말이다. 기존에 세워져 있던 것이 썩어버리자, 1992년경에 마을 청년들 주관으로 다시 만들어 세워졌다. ‘장사’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는 아무도 모르며, 예로부터 계속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나무가 썩으면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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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왯개, 옛개 또는 왜포(倭浦), 내포(內浦), 고포(古浦)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함덕리와 조천리 일부를 분리, 통합하여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는데, 이는 ‘새로 일어난 마을’ 혹은 ‘새로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흥리 동쪽의 함덕리 유물 출토지에서 탐라시대 전기의 유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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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오름. 북쪽에서 볼 때 삼각형 모양의 바위가 솟아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장구목 오름과 연결된 북쪽 봉우리가 위쪽에서 보면 장구목의 연장으로 보이지만 북쪽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치솟은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237.586㎡, 둘레는 2,035m, 높이는 1,695m에 이른다. 한라산 관음사 등반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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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제주시 오등동 오드싱 오름[오등봉] 동쪽에 위치해 있고 전체적인 형태는 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는 오름이다. 이 오름을 중심으로 주위의 모습이 말안장의 형국이라고도 하고 말의 구유라고도 한다. 이를 분석해보면 오[午:말]+구시[마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큰 그릇의 의미를 지닌 구유의 제주어]로 설명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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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방사(防邪) 유적 2기(基). 신흥리 방사탑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방사 유적으로 조천읍 신흥리 바닷가 방파제와 북서쪽 바닷가에 각 1기씩 2기가 있다. 이 신흥리 방사탑은 새들이 자주 날아와 앉기 때문에 ‘생이답’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중 신흥리 남쪽 포구에 있는 탑을 ‘큰개답’이라 부르며, 북쪽 ‘새백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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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동에 속하는 법정동. 면적과 인구 모두 이호동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북쪽 해안에 접해 있는 이호 1동과는 달리 대부분의 주민들은 채소와 화훼 재배 같은 근교 농업에 종사한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바닷가가 되므로 백개 또는 백포, 백포동이 변하여 이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이호리라 하여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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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 1동·이호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해수욕장이 있어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동쪽으로부터 용두암~도두봉~이호 해변~외도동을 연결하는 해안 도로가 개설되고 도로변에는 횟집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입지하면서 해안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의 전통적인 자연 마을 중 하나인 백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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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흥을 즐길 때 불렀던 유희요. 「오돌또기」는 제주의 향기로운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가락에 명승지가 나열되는 사설이 이어져 민간에서 흔히 애창되는 민요이다. 경기 민요인 「흥부가」나 「가루지기타령」 등에 나오는 사설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기녀들에 의해 경기 민요가 유입되어 가창 영역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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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남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내린 등성마루가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로, 용암 유출 흔적이 뚜렷하여 협곡을 따라 두 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라동 오등 마을의 옛 이름이 ‘오드싱’으로 어원은 미상이며, 한자이름 오등봉(梧登峰)은 한자의 음을 빌어 쓴 이두문식 표기이다. 한편, 오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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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두싱이 오름 아래가 되므로 오두싱이가 되었다가 뒤에 오등동이 되었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등생촌(五等生村) 또는 오등생촌(吾等生村), 오등생리(吾等生里)라 하다가 18세기에는 오등리(吾等里)로도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오드싱 또는 오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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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두싱이 오름 아래가 되므로 오두싱이가 되었다가 뒤에 오등동이 되었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등생촌(五等生村) 또는 오등생촌(吾等生村), 오등생리(吾等生里)라 하다가 18세기에는 오등리(吾等里)로도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오드싱 또는 오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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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두싱이 오름 아래가 되므로 오두싱이가 되었다가 뒤에 오등동이 되었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등생촌(五等生村) 또는 오등생촌(吾等生村), 오등생리(吾等生里)라 하다가 18세기에는 오등리(吾等里)로도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오드싱 또는 오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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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오드싱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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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제주 4·3 시기에 쌓은 석성. 오드싱성은 제주시 오등동 주민들이 제주 4·3 사건 당시 해안 마을로 소개되었다가 1951년 마을을 재건할 때 오등동 마을을 둘러싼 석성의 일부이다. 오드싱은 오등생의 토박이 지명으로, 『제주읍지』(1783년)에 ‘오등생리(吾登生里)’라 적혀 있다. 이승만 정부에 의해 제주도 중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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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남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내린 등성마루가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로, 용암 유출 흔적이 뚜렷하여 협곡을 따라 두 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라동 오등 마을의 옛 이름이 ‘오드싱’으로 어원은 미상이며, 한자이름 오등봉(梧登峰)은 한자의 음을 빌어 쓴 이두문식 표기이다. 한편, 오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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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두싱이 오름 아래가 되므로 오두싱이가 되었다가 뒤에 오등동이 되었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등생촌(五等生村) 또는 오등생촌(吾等生村), 오등생리(吾等生里)라 하다가 18세기에는 오등리(吾等里)로도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오드싱 또는 오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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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다시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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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오드싱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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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죽성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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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터. 오등동 사지는 예로부터 절왓, 또는 불탄터라고 구전되던 곳이다. 절에서 사용하던 샘물이라는 절새미와 과수원 일대에서 기와편은 물론 명문 기와도 출토되었다. 절터에는 배수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절터에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중기 사이에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시 오등동 일대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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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오드싱이오름 아래가 되므로 마을 이름이 오두싱이, 오디싱이가 되었다. 오드싱이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싕이라 하고 한자 차용표기로 오등생촌(五等生村·吾等生村) 또는 오등생리(五等生里·吾等生里) 등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에 오등리가 되었다가 1955년에 시가 되면서 오등동의 관할이 되었다. 지형은 그리 높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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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오드싱이오름 아래가 되므로 마을 이름이 오두싱이, 오디싱이가 되었다. 오드싱이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싕이라 하고 한자 차용표기로 오등생촌(五等生村·吾等生村) 또는 오등생리(五等生里·吾等生里) 등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에 오등리가 되었다가 1955년에 시가 되면서 오등동의 관할이 되었다. 지형은 그리 높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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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남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내린 등성마루가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로, 용암 유출 흔적이 뚜렷하여 협곡을 따라 두 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라동 오등 마을의 옛 이름이 ‘오드싱’으로 어원은 미상이며, 한자이름 오등봉(梧登峰)은 한자의 음을 빌어 쓴 이두문식 표기이다. 한편, 오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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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남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내린 등성마루가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로, 용암 유출 흔적이 뚜렷하여 협곡을 따라 두 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라동 오등 마을의 옛 이름이 ‘오드싱’으로 어원은 미상이며, 한자이름 오등봉(梧登峰)은 한자의 음을 빌어 쓴 이두문식 표기이다. 한편, 오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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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또는 초기 철기 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묘역 시설·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으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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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또는 초기 철기 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묘역 시설·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으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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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1동의 옛 이름은 ‘오라호’이다. 오라호는 민군에서 ‘오라위’로 변하였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오라 1동은 속칭 '모로냇가름'이라고 하며 한내를 끼고 있다. 마을 남쪽에 '내머리왓'이 있는데, 한내의 머리에 해당하는 밭이란 뜻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모르내[한천] 가가 되므로 모르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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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2동은 사평마을, 연미 마을, 정실 마을, 동성 마을을 포함한다. 연미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문(文)씨에 의해 설촌되었으나 빈번히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네에 판 큰 연못에서 연미라는 마을 이름이 연유한다. 정실 마을은 조선 선조 때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여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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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3동은 옛이름은 ‘랑굴’과 ‘구아랑’이다. 랑굴은 민간에서 '중댕이굴' 또는 월구(月龜)라 한다. 굴은 구렁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모르내[한천] 가가 되므로 모르내가름, 모로동, 오라위, 월라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라리라 해서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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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1동과 오라3동의 경계선인 병문천에 있는 다리. 길이는 26m, 폭은 35m, 높이는 3.4m이다. 경간 구조는 2단순 T이며, 경간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3m이다. 총 차선 수는 6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RCT형 교량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GP식이다. 설계 하중은 DB-18로 2등교(等橋)이며, 통과 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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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 1동·오라 2동·오라 3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연동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시가지 중심 남쪽의 중산간 지대에 있다. 제주 종합 경기장과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위시한 도심과 공항 주변으로 연결되는 녹지 지대, 그리고 한라산 북사면으로 전개되는 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다양한 생산, 생활 환경 특성을 보인다. 오라동은 옛 마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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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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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정실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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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일 제주읍 오라리 연미 마을에서 우익 청년단원에 의해 발생한 방화 사건. 1948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4·3 사건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무장대와 국방 경비대가 즉각적인 전투 중지를 합의하지만 5월 1일 우익 청년단원들이 제주읍 오라리 연미 마을에 불을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두 진영 사이의 합의가 깨지고 만다. 1948년 4월 3일 제주 지역에서 무장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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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마음가짐이 바르며 고운 꿈을 이루어 가는 슬기로운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올바르게 행하고 부지런히 배우며 튼튼하게 자라자’이다. 1946년 2월 1일 오라 공립 국민학교가 개교하였다가 4·3 사건으로 1948년 12월 6일 폐교되었다. 1950년 7월 3일 제주 남 국민학교 오라 분교장으로 인가되었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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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의 열녀. 남편 오륭복이 몹쓸 병에 걸려 정성껏 간호했으나 위독하게 되어 자기 몸으로 대신할 것으로 하늘에 빌었다. 하지만 끝내 사망하므로 장사를 치른 다음에 식음을 전폐하며 여덟 살의 아이를 늙은 노비에게 맡기고 남편을 따라 죽었다. 1834년(순조 34)에 정표(旌表)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2025-2번지[아란13길 57-49]에 ‘열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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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1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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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전통 혼례에서의 한 절차. 육지의 전통 혼례의 대례와 유사한 절차이다. 일반적으로 제주의 혼례에서는 대례과정이 없다. 극히 일부에서 ‘올리친심’(올히친심, 오리친심)이라 하여 간소화된 대례 과정을 올렸다. 올리친심의 어원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천생연분을 뜻하는 오리를 들고 간다는 뜻의 ‘오리’와 혼인식을 뜻하는 ‘친심’이 합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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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서 본향신인 백주노산주를 모시는 본향단. 종달리 본향단은 오막개라는 마을 뒷산에 있다고 해서 오막개 본향당, 또는 뒷동산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산읍 온평리에서 가지 갈라 온 당으로, 백주노산주(백조노산국)를 본향신으로 섬긴다. 당제로는 음력 정월 열나흘의 신과세제와 칠월 보름의 마불림제가 있다. 종달리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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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차조가루를 익반죽하여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삶아 고물을 묻힌 떡. 오메기떡에 사용되는 차조는 일명 ‘흐린 좁쌀’이라고 하는 검은색 차조를 사용한다. 차조를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소금을 넣고 가루로 빻는다. 차조가루를 끓는 물로 익반죽한 후 직경 5㎝ 정도의 도넛 모양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리게 둥글게 빚는다. 끓는 물에 만들어진 떡을 삶아낸다.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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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차조가루를 익반죽하여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삶아 고물을 묻힌 떡. 오메기떡에 사용되는 차조는 일명 ‘흐린 좁쌀’이라고 하는 검은색 차조를 사용한다. 차조를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소금을 넣고 가루로 빻는다. 차조가루를 끓는 물로 익반죽한 후 직경 5㎝ 정도의 도넛 모양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리게 둥글게 빚는다. 끓는 물에 만들어진 떡을 삶아낸다.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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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에서 고대 탐라 시대에 해당하는 가공 도구. 오목돌과 공이는 열매 또는 약초 등을 빻는 도구로 알려져 있다. 오목돌은 홈돌로 공이와 한 조를 이룬 것으로 여겨진다. 오목돌은 재질이 대부분 현무암 또는 조면암 계통이며, 형태는 대부분 원형에 가깝고 가운데에는 홈이 파여 있다. 공이는 손에 잡기 쉬운 기둥 모양으로 조면암이 많이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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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쌀가루로 만든 동그란 흰 떡으로 귀신을 위한 무속떡. 쌀가루를 익반죽한다. 모양은 제주 송편 만들 듯이 동그랗게 빚는데 가운데를 누르지 않는다. 크기는 두께가 3~4㎝, 지름 4~5㎝ 이며, 떡 속에 엿이나 조청을 넣는다. 끓는 물에 삶아낸 후 냉수에 씻어 건져 놓는다. 무속에 사용하는 떡은 귀신에 따라 달라지는데 특히 이 오물떡은 ‘중(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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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쌀가루로 만든 동그란 흰 떡으로 귀신을 위한 무속떡. 쌀가루를 익반죽한다. 모양은 제주 송편 만들 듯이 동그랗게 빚는데 가운데를 누르지 않는다. 크기는 두께가 3~4㎝, 지름 4~5㎝ 이며, 떡 속에 엿이나 조청을 넣는다. 끓는 물에 삶아낸 후 냉수에 씻어 건져 놓는다. 무속에 사용하는 떡은 귀신에 따라 달라지는데 특히 이 오물떡은 ‘중(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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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한라산의 자생 흑오미자에 꿀을 넣고 저온에서 발효시켜 만든 차. 처음에는 채취한 열매 상태로 먹다가 열매를 말린 뒤 저장하여 두면서 약용으로 달여 먹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형태의 음료가 좀 더 맛있게 먹기 위하여 꿀에 재어 두었다가 우려 나온 꿀즙을 뜨거운 물에 타 먹는 것으로 발전된 것이 오미자차다. 한라산에 흑오미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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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에 일어난 제주민란의 주도자. 일명 강오백(姜五百)이라고도 한다. 대정군 하원리에서 출생하였지만 주로 인근 월평리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강시양(姜時陽)이다. 1898년(고종 35) 대정군을 중심으로 방성칠(房星七)이 주도하여 일어난 민란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천주교 예비 신자로서 성당을 드나들었으나 나중에는 반천주교 운동에 앞장섰다. 1901년(고종 38) 제주민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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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영실(靈室)의 기암괴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라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영실에는 수많은 기암괴석이 늘어서서 절경을 이룬다. 이러한 절벽과 바위들을 제주 사람들은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고 부르는데, 「오백장군」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에 대한 유래담이다. 1975년 대정읍 안성리에 사는 강문호(남)가 구연한 것을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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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영실(靈室)의 기암괴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라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영실에는 수많은 기암괴석이 늘어서서 절경을 이룬다. 이러한 절벽과 바위들을 제주 사람들은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고 부르는데, 「오백장군」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에 대한 유래담이다. 1975년 대정읍 안성리에 사는 강문호(남)가 구연한 것을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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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소설가. 오본독언은 창씨개명이며 본명은 미상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소재 제주 삼성혈 부근에서 태어나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일제강점기 말기에 적잖은 소설을 일본어로 썼다. 1941년 소설 「귀착지(歸着地)」가 친일단체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문화익찬(文化翼贊) 현상 소설에 입선하였다. 『국민문학』 1943년 9월호에 「긍지(矜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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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의 병문천에 있는 다리.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오드싕오름을 오봉악(梧鳳岳)으로 바꾸어 부른 연유에서 오봉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20m, 폭은 10m, 유효폭은 8.6m, 높이는 5m이다. 경간 구조는 2단순 슬래브이며, 경간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0.0m이다. 총 차선 수는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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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주흥동·전흘동·삼양동·상고수동·하고수동 등 5개의 자연마을이 모여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하여 오봉리(五逢里)라 부른다. 1986년 구좌읍 연평출장소가 우도면으로 승격됨에 따라 이미 있던 5개 마을을 합하여 법정리인 오봉리라 하였다. 오봉리는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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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에 있는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 동북부 지역의 부속섬인 우도에 위치한다. 유적은 해안에 인접한 곳에 자리하며 사질 토양이 퇴적되어 있다. 1998년도에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물은 적갈색 경질 토기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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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오봉리에 있는 탐라시대 전기의 생활 유적.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 동북부 지역의 부속섬인 우도에 위치한다. 유적은 해안에 인접한 곳에 자리하며 사질 토양이 퇴적되어 있다. 1998년도에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물은 적갈색 경질 토기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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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남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내린 등성마루가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로, 용암 유출 흔적이 뚜렷하여 협곡을 따라 두 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라동 오등 마을의 옛 이름이 ‘오드싱’으로 어원은 미상이며, 한자이름 오등봉(梧登峰)은 한자의 음을 빌어 쓴 이두문식 표기이다. 한편, 오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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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있는 용천수. 항파두리성 북쪽 극락사 경내에 있는 생수로 구시물과 함께 삼별초군의 식수로 사용되었다. 옹성(雍城)은 무너지지 않는 성이란 뜻인데 생수가 솟아나는 지형을 보고 붙인 이름인 듯하다. 또 오생물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옹성물의 와음이거나 아니면, 성 밑으로 나는 다섯 개의 샘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거제비·자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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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에서 전승되는 오성 이항복과 관련한 민담. 이항복과 관련한 일화들은 제주 지역뿐만 아니라 육지의 여러 지역에서 민담의 형태로 다양하게 전승되어 왔다. 이는 이항복이란 인물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성품이 민간에서 회자되기에 충분했음을 의미한다. 제주 지역에서 전해 오는 「오성 이항복」 이야기에는 특히 이항복의 인물됨과 능력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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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중초(仲初), 호는 휴곡(休谷). 아버지는 오정규(吳挺奎), 어머니는 이여황(李如璜)의 딸이다. 1662년(현종 3년)에 증광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680년(숙종 6) 남인 일파가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 허적(許積)에게 아첨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1689년(숙종 15) 소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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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를 지냈으며, 1414년(태종 14) 윤임(尹臨)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417년(태종 17) 3월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떠났다. 이후 인령부윤·좌군총제(左軍摠制)를 거쳐 경주부윤 재임 중 사망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에는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산남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관아를 왕래하는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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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의 마지막 무장대원. 고향인 구좌읍 송당리에서 칠순이 넘은 아버지와 아내 및 생후 8개월 된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후 1948년 가을, 국군과 경찰 합동 토벌대가 진압 작전을 전개할 때 송당리 마을이 소각되고 그 과정에서 아내를 잃었다. 토벌대에 의해 해안 지대로 소개되었으나 식량이 없어서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가 무장대에 가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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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제주의 불교를 발전시킨 승려. 본관은 화순. 속명은 이현(彛炫), 법명은 한수(漢秀), 법호는 이화(利化). 아버지 오인규와 어머니 김계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태어나 주변에서 “훌륭한 불자(佛子)가 될 인물이다.”라고 했다 한다. 1914년 10월 15일에 해남 대흥사에서 안도월을 은사로, 박만하를 사미계사로 득도했다. 10년 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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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제주의 불교를 발전시킨 승려. 본관은 화순. 속명은 이현(彛炫), 법명은 한수(漢秀), 법호는 이화(利化). 아버지 오인규와 어머니 김계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에 태어나 주변에서 “훌륭한 불자(佛子)가 될 인물이다.”라고 했다 한다. 1914년 10월 15일에 해남 대흥사에서 안도월을 은사로, 박만하를 사미계사로 득도했다. 10년 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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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는 매월 5일 간격으로 정해진 날짜에 열리는 3개의 민속오일시장이 있다. 이 중에서 제주시민속오일시장은 제주도 내의 재래시장으로는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시장이다. 제주시민속오일시장은 2일과 7일, 한림민속오일시장은 4일과 9일, 세화민속오일시장은 5일과 10일을 기준으로 각각 열리고 있다. 1990년대로 들어서서 여러 지역의 오일시장들이 사라지게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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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는 매월 5일 간격으로 정해진 날짜에 열리는 3개의 민속오일시장이 있다. 이 중에서 제주시민속오일시장은 제주도 내의 재래시장으로는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시장이다. 제주시민속오일시장은 2일과 7일, 한림민속오일시장은 4일과 9일, 세화민속오일시장은 5일과 10일을 기준으로 각각 열리고 있다. 1990년대로 들어서서 여러 지역의 오일시장들이 사라지게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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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다리.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오등동과 장구왓을 연결하는 다리이기 때문에 각각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27m, 폭은 25m, 유효폭은 16m, 높이는 8.4m이다. 경간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3.5m이다. 총 차선 수는 4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설계 하중은 DB-24t으로 1등교(等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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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힘센 장사 이야기. 육지의 ‘아기장수 설화’와 달리, 제주 지역에서 전해 오는 ‘아기장수 설화’ 속의 날개 달린 아기들은 날개를 떼어내도 죽지 않고 힘센 장사로 살아간다. 그런데 「오찰방」 이야기의 오찰방은 구연하는 사람에 따라 그 부모가 날개를 떼어냈다고도 하고, 날개를 떼어 내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고도 한다. 육지의 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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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석여(錫餘), 호는 오천(梧泉), 초명은 중흠(重欽), 시호는 양효(良孝). 아버지는 형조판서 홍만조(洪萬朝)[1645~1725]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23년(경종 3) 7월 병조정랑에서 경기도 마전군수로 전출되었고, 1728년(영조 4)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738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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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옥돔만을 생선이라 부르고 다른 바닷고기는 고유 이름을 붙여 부를 만큼 생선 중의 생선으로 친다. 제주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심해성 백신어(白身魚)인 옥돔과의 황색 옥돔은 살이 단단하면서도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맛이 담백하고 깊어 제주인이 가장 선호하고 귀하게 여긴다. 제주인들은 정성이 중요한 제사 음식을 장만할 때는 집집마다 미리 옥돔을 장만해 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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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끓는 물에 옥돔을 넣어 익히고 미역을 넣어 살짝 끓인 생선국. ‘메역’(미역)과 함께 끓인 국이라고 해서 ‘옥돔메역국’(옥돔미역국)라 부른다. 제주도에서 가장 고급으로 치는 생선이 옥돔이다. 그래서 옛날 3읍(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관리들의 밥상에 옥돔 구이가 많이 쓰였고, 제사상에는 반드시 올리는 제수용품이다. 특히 제례상에서 최고의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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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약주(또는 막걸리), 참기름, 계란, 꿀, 생강의 다섯 가지 재료로 만든 술. 꿀, 계란, 참기름, 약주, 생강 등 다섯 가지 재료로 술을 빗는다하여 오합주라 불렀다. 만드는 법은 약주, 참기름, 계란 노른자, 꿀 각기 4컵씩과 생강즙 1컵을 모두 합하여 적당한 도자기 그릇에 넣어 따뜻한 방바닥에 놓아 담요를 덮어둔다. 3~4일 또는 1주일이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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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던 제주의 다섯 명의 현인(賢人). 서원은 사학(私學)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면서도 각 지방 군현의 향청과 더불어 향촌 사림의 집결소로서 정치·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귤림서원은 문묘 종사였던 충암묘와 인재 양성을 위해 설치되었던 장수당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귤림서원에 김정·송인수·김상헌·정온·송시열 이렇게 다섯 명의 유현이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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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발랄한 창의력을 지닌 생활인, 풍부한 인간성을 지닌 사회인, 역사적 사명감을 지닌 봉사인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학행일치’이다. 이는 이론으로 배운 학문의 진리와 품행이 일치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1946년 2월 15일 황순하가 제주 제일 중학교를 설립하여 10월 22일 교명을 오현 초급 중학교로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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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 발전에 공헌한 다섯 사람을 배향한 옛 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귤림서원이 헐린 후, 1892년(고종 29) 제주 유림들의 건의에 의해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던 오현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높이 43~45㎝, 너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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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건전한 인성 함양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오현인,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하여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오현인, 적성과 소질을 계발하여 21세기 주역이 될 오현인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학행일치(學行一致)’이다. 일제 강점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광복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온 사람과 제주 지역 내 지식인 청년들이 중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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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선비. 아버지는 오전(吳巓)이다. 집안이 가난하지만 배우기를 즐겼고,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1728], 정희량(鄭希亮)[?~1728], 박필현(朴弼顯 )[1680~1728] 등이 이른바 이인좌의 난을 일으키자 정의현을 중심으로 창의 격문을 삼읍(三邑)에 돌려 의병을 일으켰다가 진압 소식이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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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오드싱이오름 아래가 되므로 마을 이름이 오두싱이, 오디싱이가 되었다. 오드싱이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싕이라 하고 한자 차용표기로 오등생촌(五等生村·吾等生村) 또는 오등생리(五等生里·吾等生里) 등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에 오등리가 되었다가 1955년에 시가 되면서 오등동의 관할이 되었다. 지형은 그리 높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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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오드싱이오름 아래가 되므로 마을 이름이 오두싱이, 오디싱이가 되었다. 오드싱이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싕이라 하고 한자 차용표기로 오등생촌(五等生村·吾等生村) 또는 오등생리(五等生里·吾等生里) 등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에 오등리가 되었다가 1955년에 시가 되면서 오등동의 관할이 되었다. 지형은 그리 높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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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옥돔만을 생선이라 부르고 다른 바닷고기는 고유 이름을 붙여 부를 만큼 생선 중의 생선으로 친다. 제주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심해성 백신어(白身魚)인 옥돔과의 황색 옥돔은 살이 단단하면서도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맛이 담백하고 깊어 제주인이 가장 선호하고 귀하게 여긴다. 제주인들은 정성이 중요한 제사 음식을 장만할 때는 집집마다 미리 옥돔을 장만해 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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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끓는 물에 옥돔을 넣어 익히고 미역을 넣어 살짝 끓인 생선국. ‘메역’(미역)과 함께 끓인 국이라고 해서 ‘옥돔메역국’(옥돔미역국)라 부른다. 제주도에서 가장 고급으로 치는 생선이 옥돔이다. 그래서 옛날 3읍(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관리들의 밥상에 옥돔 구이가 많이 쓰였고, 제사상에는 반드시 올리는 제수용품이다. 특히 제례상에서 최고의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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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끓는 물에 옥돔을 넣어 익히고 미역을 넣어 살짝 끓인 생선국. ‘메역’(미역)과 함께 끓인 국이라고 해서 ‘옥돔메역국’(옥돔미역국)라 부른다. 제주도에서 가장 고급으로 치는 생선이 옥돔이다. 그래서 옛날 3읍(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관리들의 밥상에 옥돔 구이가 많이 쓰였고, 제사상에는 반드시 올리는 제수용품이다. 특히 제례상에서 최고의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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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옥돔만을 생선이라 부르고 다른 바닷고기는 고유 이름을 붙여 부를 만큼 생선 중의 생선으로 친다. 제주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심해성 백신어(白身魚)인 옥돔과의 황색 옥돔은 살이 단단하면서도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맛이 담백하고 깊어 제주인이 가장 선호하고 귀하게 여긴다. 제주인들은 정성이 중요한 제사 음식을 장만할 때는 집집마다 미리 옥돔을 장만해 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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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주도에서 일제가 준비했던 일본 본토 방어 작전.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은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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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의 선비. 본관은 경주. 자는 온옥(昷玉), 호는 귤당(橘堂)이다. 아버지는 이계수(李繼秀)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하여 전통 유가의 환경에서 선비의 기질을 익혔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6]의 문하에서 유학의 진수를 익혔으며, 1873년(고종 10)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친하게 지내었다. 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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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감귤 생산에 적절한 재배 환경을 조성하여 재배한 감귤. 시설 재배는 같은 장소에서 재배 방식이 다양하게 분화될 수 있으며, 생산 그 자체도 노지 재배에 비하여 퍽 안정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재배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면서 작물을 재배하는 시설 농업이라 하더라도 아직은 환경 조절 기술 수준이 낮고 시설 자체에도 결함이 많다. 뿐만 아니라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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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혼인 다음날 아침 신혼부부가 가까운 친척집을 방문하여 인사드리는 절차. 지역에 따라 일컬어지는 용어는 다양하다. 제주시 해안동에서는 ‘올래알림’이라고 하였으나, ‘열맹’·‘문안인사’·‘조례’·‘숙기둘레’라고도 하였다. 시어머니나 숙모, 동서, 시누이 등이 안내하여 가까운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친척들이 신랑 신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접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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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 있는, 거리에서 집으로 연결된 긴 골목. 올레는 제주 민가만이 갖는 특유의 공간이다. 올레는 마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관의 변화를 통해 즐거움을 주고,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해서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영역성·경계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제주의 초가는 태풍과 바람이 많은 기후 조건에서 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지혜로운 건축 기술이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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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전통 혼례에서의 한 절차. 육지의 전통 혼례의 대례와 유사한 절차이다. 일반적으로 제주의 혼례에서는 대례과정이 없다. 극히 일부에서 ‘올리친심’(올히친심, 오리친심)이라 하여 간소화된 대례 과정을 올렸다. 올리친심의 어원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천생연분을 뜻하는 오리를 들고 간다는 뜻의 ‘오리’와 혼인식을 뜻하는 ‘친심’이 합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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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안돌 오름 바로 북동쪽에 이웃한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아울러서 돌오름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목장 안쪽에 있는 오름을 안돌 오름이라 하고, 목장 바깥쪽에 있는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 것이다. 예로부터 안돌 오름[안똘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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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전통 혼례에서의 한 절차. 육지의 전통 혼례의 대례와 유사한 절차이다. 일반적으로 제주의 혼례에서는 대례과정이 없다. 극히 일부에서 ‘올리친심’(올히친심, 오리친심)이라 하여 간소화된 대례 과정을 올렸다. 올리친심의 어원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천생연분을 뜻하는 오리를 들고 간다는 뜻의 ‘오리’와 혼인식을 뜻하는 ‘친심’이 합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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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있는 포구. 마두포는 지금의 한림읍 한림리에 있는 옹덩개와 밧옹덩개를 두고 이른 말이며, 「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마두천(馬頭川)이라는 지명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에서는 이곳을 마두포 또는 명월포라 하였으며, 명월호소 소속 전선 1척과 함께 병선을 감출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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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있는 용천수. 항파두리성 북쪽 극락사 경내에 있는 생수로 구시물과 함께 삼별초군의 식수로 사용되었다. 옹성(雍城)은 무너지지 않는 성이란 뜻인데 생수가 솟아나는 지형을 보고 붙인 이름인 듯하다. 또 오생물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옹성물의 와음이거나 아니면, 성 밑으로 나는 다섯 개의 샘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거제비·자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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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오름. ‘독’은 바위 또는 돌을 뜻하는 고유어이며 독물 오름은 ‘독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한자를 차용하여 옹수악(瓮水岳, 甕水岳) 또는 독수악(獨水岳)이라고도 한다. 독물오름은 시간이 흐르면서 ‘동물 오름’으로 실현되어 동수악(東水岳)과 같은 한자 차용 표기가 생겨났다. 독물 오름 꼭대기에는 큰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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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이다. 제주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돌하르방과 마주친다. 오랜 세월 제주를 지켜온 돌하르방은 제주 방문을 환영하고 보호해 주는 듯, 위엄 있는가 하면 둥글넓적한 온후한 인상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마치 모진 환경에서 한평생을 보낸 우리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뚝뚝하고 엄한 표정엔 미소마저 담뿍 담겨 있어 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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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독개 또는 덕개이다. 제주방언 덕은 바위 너설로 이루어진 포구 또는 하나뿐인 포구라는 뜻을 가진다. 1910년경에 옹포리(瓮浦里)로 표기되었는데, 옹포리(甕浦里)로도 적는다. 1580년경 이주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명월포구(지금의 옹포포구)를 이용, 비양도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왜선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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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누운오름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읍의 중앙을 가로질러 바다로 흐르는 하천. 제주시 서부 지역 최대의 용천수를 자랑하는 옹포천은 누운오름 남사면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가린천 지점에서 하천이 둘로 갈라진다. 중동 마을 양문천 구간에서 합류하여 옹포 해안으로 흐른다. 옹포천은 옹포교 근처에서 해수와 교차하며, 하류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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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있는 일붕 선교종 사찰. 옹포포교당은 1947년 장연종과 화주 고무애성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옹포포교당이 들어선 지역에는 옹포 포구에 있었다는 고려 시대 사찰 월계사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불건터, 중밭, 배중밭, 돌탑 등의 지명이 산재해 있다. 옹포포교당 동쪽의 불건터는 ‘불당을 세운 터’라는 뜻이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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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에 있는 봉우리. 당오름이라는 곳이 제주도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당’이 들어선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당오름 북쪽에 눈미 불돗당이 들어섰기 때문에 당오름이라 한 것이다. 당이 들어서기 전에는 누워 있는 산이라는 데서 누온미, 눈미라고 하였으며, 한자 차용 표기로 와호산(臥乎山) 또는 와산(臥山)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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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누온미[臥乎山] 또는 눈미[臥山]였으며 주민들은 눈미 또는 눈메라고 부르는데, 이는 곧 ‘누운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약 450여 년 전 송씨가 처음 들어왔으며 그 후 정씨가 이주해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내생잇동네·당오롬동네·종남밧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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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에 있는 와산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와산리 불도당은 옥황상제의 막내딸인 ‘불도삼승또’가 하늘에서 하강해 좌정한 곳의 신석(神石)을 중심으로 신당을 형성한 곳이다. 당신은 아이의 포태와 출산뿐만 아니라 육아와 치병까지 두루 관장하는 신으로 제주 지역 무속신화에 나오는 삼승할망과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와산리의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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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눈오름 또는 누운 오름은 제주도 여러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나지막하게 누워 있는 듯한 오름을 일컫는다. 이 오름들의 형세가 마치 누워 있는 것과 같이 나지막하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한자 차용 표기로는 주로 와악(臥岳)으로 표기하였다. 이 오름의 북쪽에는 봉성리가 있으며, 북서쪽에는 어도 오름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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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오름의 형태가 나지막하게 가로 누워있는 형상에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옛 지도에는 와악(臥岳)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범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와호악이라 한다. 오름의 동남사면 계곡 쪽으로는 자연림에 가까운 숲을 이루면서 도근내천[都近川]으로 이어지고, 오름의 정상은 풀밭과 해송이 듬성듬성 식생하고 있다. 높이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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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줄다리기 줄을 메고 가면서 부르는 놀이요. 추자도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한 해 동안 추자 지역 사람들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행사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2월 초하루에 하기도 한다). 이 줄다리기를 위하여 해남이나 강진 등지에서 사다 놓은 볏짚으로 각 가정에서 꼰 새끼줄을 모아 25m~30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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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이 오름은 예로부터 누온메, 누온미, 눈메 또는 눈미라 하다가 한자 차용표기로 와호산(臥乎山) 또는 와산(臥山)으로 표기하였다. 일부에서는 와호산을 와호산(臥虎山) 한자명을 쓰고 ‘누운 호랑이 같은 산’이라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 오름이 나직하게 누워있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등성이에는 대체로 풀밭을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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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에 있는 봉우리. 당오름이라는 곳이 제주도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데, ‘당’이 들어선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당오름 북쪽에 눈미 불돗당이 들어섰기 때문에 당오름이라 한 것이다. 당이 들어서기 전에는 누워 있는 산이라는 데서 누온미, 눈미라고 하였으며, 한자 차용 표기로 와호산(臥乎山) 또는 와산(臥山)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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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오름의 형태가 나지막하게 가로 누워있는 형상에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옛 지도에는 와악(臥岳)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범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와호악이라 한다. 오름의 동남사면 계곡 쪽으로는 자연림에 가까운 숲을 이루면서 도근내천[都近川]으로 이어지고, 오름의 정상은 풀밭과 해송이 듬성듬성 식생하고 있다. 높이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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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 있는 용암 동굴. 와흘굴은 제주 지역 용암 동굴 중 9목 20여 종의 서식 동물이 확인되어 가장 풍부한 동물상을 보여 주고 있으며, 입구 부근에서 내부 깊숙한 곳까지 넓은 분포상을 나타내어 학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와흘굴의 길이는 약 1,300m이다. 생성물로는 용암 종유, 동굴 산호, 용암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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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누온흘 또는 눈흘, 궷드르곶이다. 주민들은 ‘논을’ 혹은 ‘눈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넓게 펼쳐진 큰 숲’을 뜻한다. 약 400~500여 년 전 김해김씨가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제작된 지도에는 와흘리, 상동, 고평동, 수기동 등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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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이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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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서 서식하는 나자식물 구과목의 나무. 남부 해안 지방에서 주로 자라지만 동해안 쪽에서는 울진, 강릉까지 분포하고 있는 상록 침엽 교목이다. 제주도에서는 한라산 고지대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조림을 위한 나무로 전국의 내륙 지방에도 많은 곳에 식재되기도 하였다. 곰솔은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이며 이는 곰의 색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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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오위장 이간(李幹)이다.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단성현감을 거쳐 호조좌랑·하동현감을 지낸 후 고성현감이 되었으며, 고성현감 재임 시 정사를 잘 돌보아 1587년(선조 20) 파격적으로 경흥부사가 되었다. 경흥부사 재임 중 여진족이 녹둔도를 침공하자 조산만호 이순신(李舜臣)[1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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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별방진 소속의 왕가봉수 는 동쪽으로는 지미봉수, 서쪽으로는 입산봉수와 연락을 취하였다. 그리고 동쪽으로 입두연대와 서쪽으로 좌가마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해안에서 남서쪽으로 1㎞ 떨어진 한동리와 월정리를 잇는 구 일주 도로변의 동쪽, 매우 낮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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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이 오름은 ‘왕관릉’ 또는 ‘왕관 바위’라 한다. 그러나 옛 지도에는 ‘구봉암(九峯岩)’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본래 ‘아홉 개의 바위 봉우리’라는 뜻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그 형상이 왕관과 같다고 하여 ‘왕관 바위’라 부르며, 이 일대가 능선을 이루고 있어서 왕관릉(王冠陵)이라 하고 있다. 이 봉우리의 생성은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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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이 오름은 ‘왕관릉’ 또는 ‘왕관 바위’라 한다. 그러나 옛 지도에는 ‘구봉암(九峯岩)’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본래 ‘아홉 개의 바위 봉우리’라는 뜻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그 형상이 왕관과 같다고 하여 ‘왕관 바위’라 부르며, 이 일대가 능선을 이루고 있어서 왕관릉(王冠陵)이라 하고 있다. 이 봉우리의 생성은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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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나비목 왕나비과의 곤충. 우리나라는 1906년 일본인 학자 이치가와에 의해 제주도의 것을 가지고 처음 기록되었다. 날개를 편 길이는 9~10㎝이며, 수컷은 뒷날개 내연각에 성표인 검은색 무늬가 있으나 암컷은 없다. 날개 바탕은 은회색으로 앞날개의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흑색을 띠며, 날개 맥도 검고 반투명하다. 뒷날개 아랫면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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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물안경. ‘눈’은 해녀들이 해산물을 캐는 데 이용하는 특수한 물안경을 말하는데, 눈알이 둘인 것과 하나인 것 두 종류가 있다. ‘눈’의 변천은 ‘섭눈’→‘족은눈’→‘왕눈’ 순으로 보인다. ‘섭눈’은 해녀들이 임시로 쓰기 위하여 간편하게 만든, 작은 알이 둘인 물안경이다. ‘족은눈’은 테두리를 쇠뿔 따위로 만든, 알이 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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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자라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벚나무. 제주도에서 자라며 각처에서 심고 있는 낙엽성 교목으로 꽃이 화려하여 가로수 등의 관상용으로 널리 식재되고 있다. 한라산에는 많은 개체의 왕벚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일부 오래된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왕벚나무는 높이 15m, 지름 100㎝ 정도까지 자라며, 가을이 되면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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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던 노래.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를 재우거나 어르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자장가라고 한다. 제주 지역에서는 예부터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는 자장가를 「애기 흥그는 소리」라고 불렀다. ‘웡이자랑’ 혹은 변이음인 ‘왕이자랑’으로 시작한다고 「웡이자랑」 혹은 「왕이자랑」이라고도 부른다. 『한국구비문학대계』9-2(제주도 제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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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차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왕자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성주와 더불어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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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인 해적을 총칭한다. 흔히 고려 후기까지의 왜구를 전기 왜구, 그 이후의 왜구를 후기 왜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기 왜구가 우리나라를 주요 약탈 대상으로 삼았다면, 후기 왜구는 약탈의 대상지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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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재배되는 십자화과 배추속에 속하는 2년생 초본식물. 유채는 씨에서 기름을 얻기 위한 작물로 유채(油菜)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유채는 제주도 및 남해안 지역에서 식용 및 약용을 위하여 재배되었으며, 벌꿀을 얻기 위한 밀원 식물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꽃이 화려하여 관광객을 위한 사진 촬영 장소 등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유채꽃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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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여치과의 곤충. 몸길이는 26~43㎜ 정도이며, 여치류 중에는 몸이 매우 큰 편이고 살이 쪘다. 몸의 색깔은 황록색 또는 황갈색으로 날개 중실에 검은 반점이 줄지어 있다. 머리와 앞가슴 양옆에는 갈색의 줄무늬가 있고, 배의 등쪽에도 갈색무늬가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살며, 한라산의 900m까지 분포한다. 육식성으로 다른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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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왯개, 옛개 또는 왜포(倭浦), 내포(內浦), 고포(古浦)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함덕리와 조천리 일부를 분리, 통합하여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는데, 이는 ‘새로 일어난 마을’ 혹은 ‘새로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흥리 동쪽의 함덕리 유물 출토지에서 탐라시대 전기의 유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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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었던 포구. 왜포는 지금의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쉐물깍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다. 왜포는 그 당시 왜포촌(倭浦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왜포촌은 지금 엉알개라는 하나의 포구만 거느리고 있다. 그것은 오래지 않은 때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쉐물깍’을 포구로 이용하였다. 이렇게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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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조선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조천진에 소속된 왜포연대(일명 고포연대)는 동쪽으로 함덕연대(직선 거리 1.4㎞), 서쪽으로 조천연대(직선거리 1.4㎞)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인,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왜포연대는 함덕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바다 쪽으로 800m 정도를 가면 포구의 서쪽 해안 가까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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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부터 왯개, 옛개 또는 왜포(倭浦), 내포(內浦), 고포(古浦)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함덕리와 조천리 일부를 분리, 통합하여 신흥리(新興里)라 하였는데, 이는 ‘새로 일어난 마을’ 혹은 ‘새로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흥리 동쪽의 함덕리 유물 출토지에서 탐라시대 전기의 유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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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외기둥 움집 형식의 민가. 살림이 어렵거나 집에 불이 나는 등 급박한 사정이 생겼을 때 거처로 이용하는 임시 가건물로서, 말이나 사는 쇠막과 같은 초라한 집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다. 구조는 돌로 만든 원형으로서, 벽을 쌓아 올린 다음 가운데의 기둥에 길이 2m쯤의 짧은 마루를 올리고 서까래를 걸어놓은 원시적 가옥이다. 내부 공간은 터져 있으며, 흙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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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제주교구 사찰. 1934년 11월 5일 백양사 함덕포교당으로 설치계를 받아 창건되었다. 백양사 함덕포교당은 함덕과 인근의 대흘리 경계, 속칭 외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외꼴절’로 더 많이 알려졌던 사찰이다. 함덕포교당에서는 1937년 음력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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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 묘역 시설, 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외도 고인돌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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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평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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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 묘역 시설, 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외도 고인돌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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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속하는 법정동. 외도동 전체 인구의 약 75%가 거주한다. 최근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제주시에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여타 주민들은 대개 근교 농업에 종사한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근내 바깥쪽이 되므로 외도, 외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외도리라 하여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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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외도동에 속하는 법정동. 제주시 서쪽 끝에 위치하며, 외도동 전체 면적의 약 4%, 인구의 약 7%를 차지하는 작은 동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도근내 바깥쪽이 되므로 외도, 외도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외도리라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시로 승격될 때 제주시에 편입되어 외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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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 해안과 외도천에 있는 다리. 길이는 75m, 폭은 10m, 높이는 5m이다. 경간 구조는 3단순 PCI이며, 경간 수는 3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25.0m이다. 총 차선 수는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RCS형 교량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GP식이다. 설계 하중은 DB-24로 등교(等橋)이다. 난간의 재료는 알루미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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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 1동·외도 2동·내도동·도평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최근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이 제주시 내에서 생업에 종사하나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비중이 더 많다. 이곳의 한가운데를 북류하는 도근내 혹은 도근천(都近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도근천의 하류 부근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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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 묘역 시설, 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외도 고인돌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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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탐라 성립기 취락 유적. 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위치하며 해안으로부터 약 2㎞ 정도 떨어져 있다. 500m 인근에는 영구 유수천인 외도천이 있다. 또한 미사질 양토의 황갈색 점토층이 두텁게 퇴적되어 있어서 취락을 조성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한단 높은 대지상에 외도·광령리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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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 묘역 시설, 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외도 고인돌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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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1동에 있는 선수 전용 실내 수영장. 외도 수영장은 1972년 제주 지역의 유일한 야외 수영장으로 건립되었다. 1984년 제13회 전국 소년 체육 대회가 제주 지역에서 개최되어 제주 종합 경기장 내에 실내 수영장이 설치됨에 따라 외도 수영장은 폐쇄된 후 양어장으로 임대되어 왔다. 1998년 제79회 전국 체 육대회 준비 과정 중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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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1동에 있는 선수 전용 실내 수영장. 외도 수영장은 1972년 제주 지역의 유일한 야외 수영장으로 건립되었다. 1984년 제13회 전국 소년 체육 대회가 제주 지역에서 개최되어 제주 종합 경기장 내에 실내 수영장이 설치됨에 따라 외도 수영장은 폐쇄된 후 양어장으로 임대되어 왔다. 1998년 제79회 전국 체 육대회 준비 과정 중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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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배우고 익혀 국제자유도시를 이끌어 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외도, 내도, 도평, 해안, 이호 등 제주 서부 지역 주민들에 의해 1939년 5월 26일 외도 공립 심상소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6월 3일 외도1리 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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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평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배우고 익혀 국제자유도시를 이끌어 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1947년 4월 12일 도평 공립 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나 4·3 사건으로 1949년 1월 2일 교사가 전소되어 외도 국민학교로 병합되었다. 통학의 불편함을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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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271년(원종 12)에 제주도에 들어와 항파두리 토성을 거점으로 삼은 삼별초의 물자 운반용 포구. ‘도근포’, 혹은 ‘외도포’라고도 불리는 제주시 외도동 해안 지대의 포구이다. 1271년 전라남도 진도 용장산성이 여몽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이후 제주도에 들어왔던 김통정 장군 통솔의 삼별초군이 물자 운반용 포구로서 이용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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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안돌 오름 바로 북동쪽에 이웃한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아울러서 돌오름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목장 안쪽에 있는 오름을 안돌 오름이라 하고, 목장 바깥쪽에 있는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 것이다. 예로부터 안돌 오름[안똘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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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밧돌 오름 바로 남서쪽에 이웃한 오름을 안돌 오름[안똘로롬]이라 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아울러서 돌오름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 예로부터 밧돌 오름[바똘로롬·받똘로롬]이라 불었으며 한자 차용 표기로 외석악(外石岳) 또는 외돌악 등으로 표기하였다. 밧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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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밧돌 오름 바로 남서쪽에 이웃한 오름을 안돌 오름[안똘로롬]이라 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아울러서 돌오름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 예로부터 밧돌 오름[바똘로롬·받똘로롬]이라 불었으며 한자 차용 표기로 외석악(外石岳) 또는 외돌악 등으로 표기하였다. 밧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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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봉우리. 안돌 오름 바로 북동쪽에 이웃한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아울러서 돌오름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목장 안쪽에 있는 오름을 안돌 오름이라 하고, 목장 바깥쪽에 있는 오름을 밧돌 오름이라 한 것이다. 예로부터 안돌 오름[안똘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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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에서 고대 탐라 시대에 해당하는 가공 도구. 오목돌과 공이는 열매 또는 약초 등을 빻는 도구로 알려져 있다. 오목돌은 홈돌로 공이와 한 조를 이룬 것으로 여겨진다. 오목돌은 재질이 대부분 현무암 또는 조면암 계통이며, 형태는 대부분 원형에 가깝고 가운데에는 홈이 파여 있다. 공이는 손에 잡기 쉬운 기둥 모양으로 조면암이 많이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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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영등굿·무혼굿 등에서 행해지는,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신이 오는 길을 치워 닦는 제차(祭次). 영등굿은 2월에 어부의 풍어와 해녀 채취물(採取物)의 풍요를 위하여 하는 굿이고, 무혼굿은 바닷물에서 익사한 영혼을 불러내어 위로하고, 육지에서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처럼 시왕맞이를 해준 뒤 저승으로 고이 보내는 굿이다. 큰굿의 제차(祭次)로 행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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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무극대도의 교주. 본관은 진주(晉州), 법명은 용강(龍剛)이다. 강승하(姜承河) 또는 영산천사(靈山天師)라고도 한다. 강영호(姜英鎬)의 아들로 1895년 5월 7일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면 하예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다. 강승태는 1918년 민족 종교인 보천교(普天敎) 본부에서 포교 차 제주도에 온 강석호(姜錫鎬), 신백근(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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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웃무드내라고 불렸다. 이 마을에 ‘놀용이[飛龍]’이라는 언덕이 있어서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용강(龍崗)이다. 일찍부터 농경, 목축을 하며 마을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본격적으로는 17세기에 이르러 촌락이 형성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의 지역으로서 영평동의 무드내 위쪽이 되므로 웃무드내, 상무, 상무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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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용논이오름 또는 용눈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용유악(龍遊岳) 또는 용안악(龍眼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오름의 형세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이 굽이졌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용눈이 오름의 북쪽에는 다랑쉬 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이 있고, 서남쪽에는 손지 오름 또는 동검은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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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용논이오름 또는 용눈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용유악(龍遊岳) 또는 용안악(龍眼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오름의 형세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이 굽이졌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용눈이 오름의 북쪽에는 다랑쉬 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이 있고, 서남쪽에는 손지 오름 또는 동검은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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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과 용담2동의 경계에 있는 못과 바위. 한천 하구에 형성된 깊은 소(沼)인 용연은 영주 12경중의 하나인 '용연야범(龍淵夜泛)'의 장소로 '취병담(翠屛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목사들이 용연에서 여름밤 뱃놀이를 풍류로 즐겼다고 한다. 용이 살았던 연못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용두암은 용이 머리를 처든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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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또는 초기 철기 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묘역 시설·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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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전기와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3동 어영 마을의 해안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유적은 현재 용담레포츠공원의 남쪽과 제주국제공항 일부를 포함하는 해발 10~20m의 평탄한 대지상에 형성되어 있다. 2001년 제주국제공항 착륙대 확장 공사와 관련하여 알려졌다. 발굴 조사는 2002년과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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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또는 초기 철기 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묘역 시설·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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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 전체적인 형상은 동서의 길이가 짧고 남북으로 길쭉하게 되어 있다. 제주시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도시적 경관으로 변모한 지역이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천을 경계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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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북쪽에 위치한 해안가 마을로 용두암과 같은 해안 관광지와 더불어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이 위치한 지역이다. 도시적 경관과 농촌적 경관이 혼재된 도농복합지역이다. 관내의 법정동으로 용담 2동과 용담3동이 있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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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2동에 속하는 법정동. 용담 2동[법정동]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도시보다는 농촌적 경관이 우세하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천을 경계로 마을이 형성되어 동쪽은 동한두기, 서쪽은 서한두기로 불리던 것이 인구가 증가하면서 두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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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고대 탐라 전기의 고분. 이 유적은 제주시 용담동 속칭 월성 마을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완만한 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안과는 1.5㎞ 정도, 한천변과는 700m 정도 떨어져 있다. 유적의 북동쪽으로는 속칭 먹돌새기라는 곳에 고대 마을터와 함께 고인돌군이 자리하고 있다. 용담동 고분의 주변에 당시의 마을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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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월성마을에 있는 철기시대의 적석석곽묘. 용담동 선사 무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20~30㎝ 두께의 경작 표토층과 20~30㎝ 두께의 무유물층 아래에 있는 유물 포함층에서 적석 유구 묘역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묘역의 범위는 동서 길이 18m, 남북 길이 8m이다. 묘역은 한가운데에 있는 동서 방향의 긴 석렬을 경계로 남쪽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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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탐라 전기의 쇠로 만든 도끼. 도끼는 철제 연모의 하나로 공구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고대에는 무기로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도끼는 크게 주조 쇠도끼와 단조 쇠도끼로 나뉜다. 주조 쇠도끼는 길이와 날 너비의 비율이 2:1 이하가 많고, 측면 형태는 이등변 삼각형을 나타낸다. 이들의 형태로 보아 종방향 또는 횡방향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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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탐라 전기의 무기. 쇠살촉은 원거리 공격용 무기이다. 화살을 구성하는 활촉·화살대·깃 중의 하나로서 원삼국 시대 이래로 무기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쇠살촉은 형태와 기능이 다양하며, 크게 뿌리의 유무에 따라 유경식과 무경식으로 분류된다. 유경식은 목의 길이에 따라 장경식과 단경식으로 나뉜다. 또한 촉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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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탐라 전기의 무기. 쇠살촉은 원거리 공격용 무기이다. 화살을 구성하는 활촉·화살대·깃 중의 하나로서 원삼국 시대 이래로 무기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쇠살촉은 형태와 기능이 다양하며, 크게 뿌리의 유무에 따라 유경식과 무경식으로 분류된다. 유경식은 목의 길이에 따라 장경식과 단경식으로 나뉜다. 또한 촉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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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삼한 시대의 유리로 만든 장식용 구슬. 한국 삼국 시대 장식구를 대표하는 구슬은 유리·금속·천연석·나무·식물 열매·조개 껍질·뼈 등 다양한 소재가 이용되었다. 이중에서 유리가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용담동 고분 출토 유리 제품은 그 성분 분석 결과에 의하면, 중국 후한 시기의 유리와 그 미량 성분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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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탐라 전기의 중국제 무기. 철검은 날이 양쪽으로 나 있는 베는 도구이다. 장검과 단검으로 나뉜다. 장검은 전체 길이가 50㎝ 이상이면서 경부 길이가 10㎝ 내외이다. 단검은 전체 길이가 50㎝ 미만이며, 경부 길이가 3~6㎝이다. 철검의 몸체는 단면이 능형 또는 렌즈형이며, 경부에는 자루와 연결하기 위해 구멍을 뚫은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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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탐라 전기의 쇠로 만든 도끼. 도끼는 철제 연모의 하나로 공구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고대에는 무기로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도끼는 크게 주조 쇠도끼와 단조 쇠도끼로 나뉜다. 주조 쇠도끼는 길이와 날 너비의 비율이 2:1 이하가 많고, 측면 형태는 이등변 삼각형을 나타낸다. 이들의 형태로 보아 종방향 또는 횡방향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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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탐라 전기의 판 모양으로 된 쇠도끼. 판상 쇠도끼는 장방형 또는 사다리꼴의 평면형을 가지며 판상의 철판 한 쪽에 양인 또는 편인의 날을 낸 도끼이다. 형태는 시기적으로 차이를 보이면서 덩이쇠로 변화한다. 널무덤 단계의 판상 쇠도끼는 날 부분이 넓은 사다리꼴이 대부분이나 소형도 있다. 이는 판상 쇠도끼의 성격이 단순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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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탐라 전기의 판 모양으로 된 쇠도끼. 판상 쇠도끼는 장방형 또는 사다리꼴의 평면형을 가지며 판상의 철판 한 쪽에 양인 또는 편인의 날을 낸 도끼이다. 형태는 시기적으로 차이를 보이면서 덩이쇠로 변화한다. 널무덤 단계의 판상 쇠도끼는 날 부분이 넓은 사다리꼴이 대부분이나 소형도 있다. 이는 판상 쇠도끼의 성격이 단순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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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에 있는 다끄네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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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2동에 있는 탐라 성립기 취락 유적. 용담동 먹돌로 유적은 한천(漢川)을 중심으로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이미 민가들이 대부분 들어서 있어 파괴되었고, 서쪽으로는 아직까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위치하며, 해안으로부터 약 1.5㎞ 정도 떨어져 있다. 약 1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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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월성마을에 있는 철기시대의 적석석곽묘. 용담동 선사 무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20~30㎝ 두께의 경작 표토층과 20~30㎝ 두께의 무유물층 아래에 있는 유물 포함층에서 적석 유구 묘역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묘역의 범위는 동서 길이 18m, 남북 길이 8m이다. 묘역은 한가운데에 있는 동서 방향의 긴 석렬을 경계로 남쪽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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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 탐라 성립기의 취락 유적. 유적은 제주시 서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은 한천을 중심으로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동쪽은 이미 민가들이 대부분 들어서 있어 파괴되었고, 서쪽은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유적은 해발 40m 내외에 해당하는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과는 약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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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유적은 속칭 ‘먹돌새기’라고 하는 월성 마을에 위치한다. 유적은 해안에서 해발 40m 정도 올라온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과는 약 1.5㎞ 정도 떨어져 있다. 유적의 동쪽으로 500m 지점에는 한천이 흐르고 있고, 서쪽으로 200m 지점에는 용담동 고분이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은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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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월성마을에 있는 철기시대의 적석석곽묘. 용담동 선사 무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20~30㎝ 두께의 경작 표토층과 20~30㎝ 두께의 무유물층 아래에 있는 유물 포함층에서 적석 유구 묘역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묘역의 범위는 동서 길이 18m, 남북 길이 8m이다. 묘역은 한가운데에 있는 동서 방향의 긴 석렬을 경계로 남쪽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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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탐라 후기의 제사 유적. 용담동 제사 유적은 제주시 앞 해안가에서 한 단 올라온 표고 20m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날씨가 좋을 때면 관탈도·추자도·해남 반도의 여러 섬 끝머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옛 제주읍성의 서쪽으로 흐르는 한천과 병문천 하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드넓은 ‘동한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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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제사 유적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의 허리띠 장식. 허리띠 장식은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띠의 표면을 장식하기 위한 대금구와 이에 매달리는 장식을 말한다. 이러한 장식은 금·은·동·옥·철·돌·뼈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조각하여 만들어졌다. 허리띠 장식의 기원은 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에까지 소급된다. 유목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허리띠에 차고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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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제사 유적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의 허리띠 장식. 허리띠 장식은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띠의 표면을 장식하기 위한 대금구와 이에 매달리는 장식을 말한다. 이러한 장식은 금·은·동·옥·철·돌·뼈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조각하여 만들어졌다. 허리띠 장식의 기원은 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에까지 소급된다. 유목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허리띠에 차고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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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제사 유적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의 허리띠 장식. 허리띠 장식은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띠의 표면을 장식하기 위한 대금구와 이에 매달리는 장식을 말한다. 이러한 장식은 금·은·동·옥·철·돌·뼈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조각하여 만들어졌다. 허리띠 장식의 기원은 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에까지 소급된다. 유목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허리띠에 차고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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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출토된 고대의 철기류. 이 유물은 용담동 고분 북쪽의 석곽묘와 그 주변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류이다. 그 종류는 장검 2점·단검 1점·철모와 그 세트로 추정되는 유물 각 1점·끌형 철기 1점·궐수형(蕨手形) 철기 2점·부채형 쇠도끼 2점·소형 쇠도끼 3점·수십 점의 삼각형 양익만입 철촉·판상 쇠도끼 등이 있다. 용담동 고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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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탐라 후기의 제사 유적. 용담동 제사 유적은 제주시 앞 해안가에서 한 단 올라온 표고 20m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날씨가 좋을 때면 관탈도·추자도·해남 반도의 여러 섬 끝머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옛 제주읍성의 서쪽으로 흐르는 한천과 병문천 하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드넓은 ‘동한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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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한두기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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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오라동 일대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대에 해당하는 생활 유적. 제주시를 아우르고 있는 하천인 한천·병문천·산지천 중에서 탐라 시대에 중심이 된 하천은 한천이다. 한천 주변에는 10만여 평에 가까운 고대 마을터·옹관묘·석곽묘·9기의 고인돌·제사 유적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들과 유물의 분석을 통해 한천 주변에는 탐라 시대에 거점 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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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3동의 해안 도로 변에 있는 공원. 제주 시민들의 건전한 레크레이션과 생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안의 도로 변에 조성되어 있는 레저 스포츠 공원이다. 1990년 7월에 제주시 종합 레포츠 공원 조성 계획이 발표되었다. 부지 선정에 들어가 용두암의 서쪽 방면으로 1㎞ 지점에 있는 해안 도로 변[제주 국제공항 동쪽 편] 건설교통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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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용소 또는 용못이다. 용당은 한자 뜻 그대로 용못이라는 데서 붙여졌다. 1600년 조선 광해군 때 속칭 산밭승물 이라는 곳에 7호가 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두모리에 속했으나, 19세기 말부터 용수리에 속하였다. 1963년 한림면 용수리의 일부를 갈라 용당리라 하여 한경면에 편입되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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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머리바위(용두암) 이야기. 「용머리바위」는 용담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머리」와 같은 지명담의 일종인데, 두 이야기 모두 흥미롭게도 힘센 장사와 백마가 등장한다. 그러나 「용머리」가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프로 했다면 「용머리바위」는 백마를 잡은 힘센 장사 이야기가 주요 모티프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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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신양리에 있는 용둠벙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신양리에는 해발 50m의 대왕산(大王山)이 있는데, 이 산에는 직경 5m, 깊이 1m 정도의 용둠벙(용이 살던 연못)이 있다. 또한 용둠벙에서 좀 떨어진 곳에 직경 2.5m, 길이 20m 정도의 작은 굴이 있는데, 이 굴과 연못에서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용이 되기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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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머리바위(용두암) 이야기. 「용머리바위」는 용담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머리」와 같은 지명담의 일종인데, 두 이야기 모두 흥미롭게도 힘센 장사와 백마가 등장한다. 그러나 「용머리」가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프로 했다면 「용머리바위」는 백마를 잡은 힘센 장사 이야기가 주요 모티프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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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과에 급제한 제주도 사람들의 이름을 연대순으로 수록한 인명록. 1892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용방록(龍榜錄)』은 1414년에 급제한 고득종으로부터 1863년에 급제한 한석윤까지 총 56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용방은 『매천야록(梅泉野錄)』 갑우이전조(甲牛以前條)에 “문과를 용방, 무과를 호방, 소과를 연방, 대과를 주방이라 한다.”고 한 것처럼 문과를 달리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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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과 용담2동의 경계에 있는 못과 바위. 한천 하구에 형성된 깊은 소(沼)인 용연은 영주 12경중의 하나인 '용연야범(龍淵夜泛)'의 장소로 '취병담(翠屛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목사들이 용연에서 여름밤 뱃놀이를 풍류로 즐겼다고 한다. 용이 살았던 연못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용두암은 용이 머리를 처든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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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기우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주시 용담2동의 한천(漢川) 하류에 있는 용소(龍沼)는 이름 그대로 용이 와서 머문다는 못이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 7년간 계속된 가뭄을 끝냈다는 고대장은 제주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대장본풀이」의 실질적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주시 삼도동 무근성[陳城洞]에 고대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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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에 있는 포구. 대독포의 대독(大瀆)은 제주시 용담2동의 자연 마을인 한두기의 뜻과 음을 빌린 한자 차용 표기이다. 따라서 대독포는 한두기라는 자연 마을에 있는 포구라는 말이다. 이증(李增)은 “용추는 주(州) 서쪽 5리에 있다. 그 하류를 대독포라고 한다. 그 아래쪽에 용추가 있다. 끝이 없을 만큼 깊다. 가물어 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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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지삿개와 벗개다. 지삿개는 기와를 구웠던 곳이라는 데서 붙여졌다고 하나, 벗개는 뜻이 확실하지 않다. 용수리는 19세기 후반 붙여진 좋은 물이 많이 나는 곳 또는 용당리에 있는 용못의 한자어 표기에서 왔다. 1418년(태종 18)에 왜적이 차귀 등지에 침입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거주는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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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방사(防邪) 유적 2기(基). 용수마을에는 포구 밖 ‘새원’이라는 곳과 ‘화성물’이라고 불리는 곳에 각 1기씩 2기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남쪽과 북쪽의 답 모두 바닷물이 닿은 암반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답 위에는 긴 돌을 세워 놓았다. 돌은 새부리 모양과 흡사한 것들인데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이 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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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인공 저수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지역의 가뭄에 대비하기 위하여 1957년 4월 30일 용수저수지가 건립되었으며 평대지(坪代池), 뱅뒷물저수지, 서부저수지, 용수황새도래지라고도 부른다. 용수저수지는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충혼 묘지 일대의 매고무동산[埋骨童山] 동쪽에 위치한다.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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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인공 저수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지역의 가뭄에 대비하기 위하여 1957년 4월 30일 용수저수지가 건립되었으며 평대지(坪代池), 뱅뒷물저수지, 서부저수지, 용수황새도래지라고도 부른다. 용수저수지는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충혼 묘지 일대의 매고무동산[埋骨童山] 동쪽에 위치한다.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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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용논이오름 또는 용눈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용유악(龍遊岳) 또는 용안악(龍眼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오름의 형세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이 굽이졌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용눈이 오름의 북쪽에는 다랑쉬 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이 있고, 서남쪽에는 손지 오름 또는 동검은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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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지표로 분출한 액체 상태의 마그마와 이 액체가 고결되어 생긴 화산암. 규산염 용융체인 마그마가 지표로 분출하면 1,000℃ 전후의 온도를 지닌 액체의 형태로 흘러내리며 용암류를 이룬다. 용암류의 유동 양식과 형태는 용암의 화학 조성 및 온도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SiO2의 함유량이 낮은 염기성 용암은 고온으로 점성이 낮고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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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한천 하류의 계곡 바위벽에 새겨진 마애명. 용연(龍淵) 마애명(磨崖銘)은 영주 12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용연야범(龍淵夜泛)의 계곡, 즉 용연(龍淵)에 새겨진 마애명이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제주목사들은 방선문에서의 봄꽃놀이와 용연의 밤뱃놀이를 최고의 풍류로 쳤는데, 바로 그 용연에서의 밤뱃놀이를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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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과 용담2동의 경계에 있는 못과 바위. 한천 하구에 형성된 깊은 소(沼)인 용연은 영주 12경중의 하나인 '용연야범(龍淵夜泛)'의 장소로 '취병담(翠屛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목사들이 용연에서 여름밤 뱃놀이를 풍류로 즐겼다고 한다. 용이 살았던 연못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용두암은 용이 머리를 처든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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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가 주최하고 제주문화원이 주관하는 음악회. 조선시대 선비들은 달빛이 교교하게 용연을 비추면 그 곳에 배를 띄워 밤의 정취에 취했다고 한다. 이때 배에 켜 놓은 등불이 밝은 달빛과 어울려 아름다운 야경을 이루었는데, 이러한 밤배놀이를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불렀다. 용연선상음악회는 1999년 동굴소리연구회의 대표였던 현행복이 용연야범을 음악회로 재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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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용연 계곡에서 개최되는 문화예술 행사. 용연은 용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예로부터 가뭄이 극심할 때 기우제를 지낸 신성한 곳이기도 하며, 신제주·구제주 목사와 판관이 교체되는 송구영신의 잔치를 즐긴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음력 7월 기망일(旣望日) 달빛이 교교하게 용연을 비추면 옛 선비들은 용연에 배를 띄워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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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영등굿·무혼굿 등에서 행해지는,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신이 오는 길을 치워 닦는 제차(祭次). 영등굿은 2월에 어부의 풍어와 해녀 채취물(採取物)의 풍요를 위하여 하는 굿이고, 무혼굿은 바닷물에서 익사한 영혼을 불러내어 위로하고, 육지에서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처럼 시왕맞이를 해준 뒤 저승으로 고이 보내는 굿이다. 큰굿의 제차(祭次)로 행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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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용천수. 선조들의 얼이 깃든 샘물이 수돗물에 밀려나는 것을 안타까워 한 독지가가 자비를 들여 축조하여 용운천(일명 녹고물)이라 명명하였다. 녹고물과 관련하여서는 전설 속에 의좋은 남매인 녹고와 수월의 애절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사랑하는 누이동생 수월이가 바위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자, 오빠인 녹고가 너무나도 슬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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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용논이오름 또는 용눈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용유악(龍遊岳) 또는 용안악(龍眼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오름의 형세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이 굽이졌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용눈이 오름의 북쪽에는 다랑쉬 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이 있고, 서남쪽에는 손지 오름 또는 동검은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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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용암 동굴. 2005년 한국 전력 공사에서는 북제주군청에 구좌읍 월정리 지역의 전신주 교체 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의뢰하였다. 이에 따라 북제주군청과 동굴 전문가인 손인석은 ‘구좌읍 월정리 지역은 제주도 동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동굴 지대로 지하에 동굴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여 시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의견을 받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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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 제주도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 용천수는 제주도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용천수는 용출하는 지역에 따라 크게 해안 지역 용천수, 중산간 지역 용천수, 산간 지역 용천수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수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해발 200m 이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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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포구. 용항포는 지금의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신착개와 그 주변을 이른 말이다. 이 포구는 당시 용목잇개[龍項]라고 이르는 지경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며, 용목잇개는 용의 목과 같은 모양을 한 개[浦口]라는 데서 붙인 것이다. 『탐라순력도』의 별방조점(別防操點)에는 조선시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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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용연 일대 해륜사(海輪寺) 터에 있는 사찰. 제주시 용담동 용연 인근에는 속칭 절동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3세기 경 창건된 고려시대 사찰 해륜사가 있었다. 해륜사는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쇠퇴를 거듭하다 1702년(숙종 28) 제주절제사로 부임했던 이형상 제주목사에 의해 훼철되었다. 이형상의 『남환박물(南宦博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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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주 출신 윤유선(尹有善)이 세운 찬물교 계통 신종교 교단. 윤유선은 찬물교 창시자 김봉남의 제자이다. 그는 1945년 11월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물법 교화를 실시하였다. 자연스럽게 교단이 형성되었고, 그의 치병 능력을 보고 3,000명 이상의 신도가 모여들었다. 1974년 삼법수도교화원이 본격적으로 재출발하자 함께 힘을 합쳤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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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송냉이와 용를이다. 사방의 소나무군[松浪]과 마을 동쪽의 용마루[龍旨] 동산으로부터 얻은 이름이다. 1950년대 초반 신엄에서 분리되어 용마루의 용이 흥한다는 뜻으로 용흥리라 하였다. 마을 농경지에서 약 2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시대의 유물인 돌칼과 돌도끼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취락이 형성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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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주고씨가전(星主高氏家傳)』을 지은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우곡(愚谷). 아버지는 정신중(鄭臣重)이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삼사도사·공조정랑·예조정랑·전교부령 등을 역임하였다. 1394년(태조 3) 지선주사가 되었다. 1398년(태조 7) 이첨(李詹)·조용(趙庸) 등과 함께 군왕의 정치에 도움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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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서 주로 남박에 밥을 풀 때 사용하던 부엌 용구. 지역에 따라 ‘밥주걱’이나 ‘우금’이라고도 불렸던 밥자는 한꺼번에 많은 밥을 큰 그릇에 담을 때 주로 사용하던 주걱이다. 예부터 제주 지역에서는 식사 때 밥을 식구수대로 그릇에 담지 않고 남박에 한꺼번에 담아서 같이 먹었는데, 그 때 많은 밥을 한 번에 풀 수 있는 주걱이 바로 밥자였다.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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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어린이 합창단. 우담바라어린이합창단은 제주 지역 어린이들의 정서 함양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불교 음악을 통하여 밝은 사회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9년 8월 사단법인 민족예술 보리수합창단 제주지부로 창립되었다. 1990년 12월 한라 불교신문사 부설 어린이 합창단으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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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우도면에 있는 섬. 우도는 제주도 동쪽에 있는 남북 길이 3.53㎞, 동서 길이 2.5㎞인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화산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섬이다. 일찍부터 소섬 또는 쉐섬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우도(牛島)라 표기하였다. 1900년 경에 행정상의 이름을 연평(演坪)이라 개칭하였다. 그 뒤 제주군 연평리, 구좌면 연평리라 하다가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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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조일리에 있는 제주도의 최동단에 위치한 유인 등대. 우도(牛島)는 제주도의 62개 부속도서 중 제일 큰 섬으로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 지대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우도팔경 등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경승지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1905년 10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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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조일리에 있는 국내 최초의 등대 테마 공원. 우도(牛島)는 제주도의 62개 부속도서 중 제일 큰 섬으로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 지대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우도팔경 등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경승지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우도 등대 관람을 통하여 해양 문화를 확산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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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조일리에 있는 제주도의 최동단에 위치한 유인 등대. 우도(牛島)는 제주도의 62개 부속도서 중 제일 큰 섬으로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 지대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우도팔경 등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경승지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1905년 10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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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에 펼쳐져 있는 해빈. 제주시 우도면 천진해수욕장은 지금까지 깨진 산호조각으로 이루어진 산호해빈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 산호 조각이 아니라 홍조사 혹은 홍조 단괴임이 밝혀졌다. 우도 해안가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홍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세포에 탄산칼슘을 침전시키는 석회 조류 중의 하나이다. 해빈의 길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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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에 있는 여덟 개의 명승.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의 섬으로 우도8경이 유명하다. 낮과 밤의 주간명월(晝間明月), 야항어범(夜航魚帆), 하늘과 땅의 천진관산(天津觀山), 지두청사(地頭靑莎), 앞과 뒤의 전포망도(前浦望島), 후해석벽(後海石壁), 동과 서의 동안경굴(東岸鯨窟), 서빈백사(西濱白沙)를 우도8경이라 하며 우도의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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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면. 예부터 쉐섬 또는 소섬이라 불렀다. ‘쉐’는 소의 제주도 방언으로, 멀리서 보면 섬의 모양이 누워 있는 소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1679년 국유목장이 설치되어 나라에서 사용할 말들을 사육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시작되었다. 1840년대부터 일반인들도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허락되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입도하여 정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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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서광리에 있는 화석과 곤충을 주제로 한 사립 박물관. 제주 지역의 학습체험 및 이론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수억 년 전의 화석이나 광물 등을 제주 지역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폐교된 연평초등학교를 새롭게 보수하여 화석·광물·곤충·해양·생활 부문의 전시물을 한 곳에 모아 2003년 9월 1일 우도박물관을 개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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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천진리에 있는 지방어항. 『우도지(牛島誌)』에 따르면 천진동은 ‘한나루’ 즉 한(큰)+나루[津]의 잘못된 표기인데, 이는 한나루를 하늘나루·하늘이 등으로 잘못 읽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1954년 구좌면 연평리(현 우도면) 주민들은 자력 부담으로 공사비 50여만 원을 투입하여 어항 방파제를 축조하였다. 1959년 동천진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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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일대에 지정된 해양 도립 공원. 우도(牛島)는 제주도의 62개 부속 도서 중 제일 큰 섬으로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 지대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우도팔경 등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경승지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우도의 빼어난 자연환경과 해양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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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천진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쉐머리오름, 소머리 오름 또는 섬머리, 섬머리 오름 등으로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두봉(牛頭峰) 또는 도두봉(島頭峰) 등으로 표기하였다. 섬머리 또는 섬머리 오름은 우도면 사람들이 부르는 것이고, 소머리 오름 또는 쉐머리 오름은 성산읍 성산리나 고성리 등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섬머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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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조선시대 차귀진 소속의 연대. 우두연대는 북쪽으로 두모연대(직선 거리 3.9㎞), 남쪽으로 대정현의 당산봉수(직선거리 1.9㎞)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우두연대는 용수리(龍水里) 일주 도로에서 해안 쪽으로 1.4㎞ 정도 떨어진 ‘쇠머리 동산’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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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포구. 우두포는 지금의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펄낭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며, 당시 우두곶(牛頭串)이라는 지경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망동산과 쉐머리코지, 그리고 연대를 그려 놓았다. 망동산과 쉐머리코지는 지금의 한경면 용수리에 있다. 우두포는 쉐머리코지에 의지하여 만든 포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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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제주도에서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했던 고병희(高秉禧)와 조대수(趙大洙)가 검거된 사건. 사회주의 운동이 소강 상태에 이른 1929년에 아나키즘 사상에 입각한 대중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아나키스트 고병희는 공산주의 사회 건설보다 무정부주의 사회 건설을 주장하였다. 우리계(宇利契)는 표면적으로는 친목계였으나 실제로는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여 교통기관, 생산기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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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딱정벌레목 딱정벌레과의 곤충. 몸길이는 수컷이 22~24㎜이며, 암컷은 23~27㎜이다. 몸 빛깔은 흑색이나 등쪽은 보통 녹색, 청색 또는 금빛을 띠는 적동색으로서 광택이 난다. 딱지날개는 대체로 긴 타원형이나 앞쪽이 약간 좁으며, 위에는 3줄의 구멍 점들이 있는데, 각각의 구멍 점은 10~15개이며 매우 크고 뚜렷하다. 어른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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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차조가루를 익반죽하여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삶아 고물을 묻힌 떡. 오메기떡에 사용되는 차조는 일명 ‘흐린 좁쌀’이라고 하는 검은색 차조를 사용한다. 차조를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소금을 넣고 가루로 빻는다. 차조가루를 끓는 물로 익반죽한 후 직경 5㎝ 정도의 도넛 모양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리게 둥글게 빚는다. 끓는 물에 만들어진 떡을 삶아낸다.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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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이다. 제주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돌하르방과 마주친다. 오랜 세월 제주를 지켜온 돌하르방은 제주 방문을 환영하고 보호해 주는 듯, 위엄 있는가 하면 둥글넓적한 온후한 인상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마치 모진 환경에서 한평생을 보낸 우리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뚝뚝하고 엄한 표정엔 미소마저 담뿍 담겨 있어 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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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원경(元卿), 호는 우수(迂叟). 아버지는 송증(宋拯)이다. 1683년(숙종 9)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1690년(숙종 16) 사간원정언에 올랐으며, 당시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 처우문제의 상소를 올렸다. 이어 사헌부지평을 지냈으며, 1696년(숙종 22) 경성판관 재임 중 정사를 잘 돌봐 품계가 올라 16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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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혼인 때 신랑·신부 집의 친척 대표. 혼인 당일 신랑과 함께 신부를 데리러 가는 신랑 집의 근친 대표, 신부와 함께 신랑 집으로 오는 신부 집 친척의 대표를 일컫는다. 우시로 선정되는 사람은 학식이 있고 언변이 좋은 사람 중에서 친척 대표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으로 가려 뽑는다. 우시는 신랑을 데리고 신부 집으로 가는 상객으로서 성펜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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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송시열의 제주 유배 때의 행적을 기리는 비.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은 기사환국으로 1689년 3월 제주로 유배를 왔다가 달포 만에 다시 한양으로 불려 가던 중 사약을 받고 죽었다. 송시열은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 제주에 있으면서 『문의통고(問義通攷)』를 저술하고, 손자를 비롯하여 제주 유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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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 아명은 송성뢰(宋聖賚)이다. 아버지는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의 장씨가 낳은 아들(후일 경종)에 원자의 호칭을 부여하는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는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다. 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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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수석을 주제로 한 사립 박물관. 2003년 설립자 이휴성이 다려도를 지척에 두고 지은 다려도휴양펜션 지하층에 30여 년간 수집한 제주산 수석과 서예 작품을 모아 우양수석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우양’이란 이름은 이휴성이 우도면 오봉리 삼양동 출생인 데서 따왔다고 한다. 개관 초기에는 전시장에 수집품들을 전시해 놓은 것이 전부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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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전통 가옥에서 채소를 기르는 텃밭. 울담 안의 안거리[안채] 혹은 밖거리[바깥채]의 측면 또는 전후면에 위치하며, 낮은 담으로 둘러쳐 만들어진, 별도의 작은 공간이다. 제주 전통 주거는 육지와는 달리 집터를 먼저 잡고 난 뒤 울타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부지의 형태가 부정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울안의 공간은 애매한 여분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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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전통 가옥에서 채소를 기르는 텃밭. 울담 안의 안거리[안채] 혹은 밖거리[바깥채]의 측면 또는 전후면에 위치하며, 낮은 담으로 둘러쳐 만들어진, 별도의 작은 공간이다. 제주 전통 주거는 육지와는 달리 집터를 먼저 잡고 난 뒤 울타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부지의 형태가 부정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울안의 공간은 애매한 여분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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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전통 가옥에서 채소를 기르는 텃밭. 울담 안의 안거리[안채] 혹은 밖거리[바깥채]의 측면 또는 전후면에 위치하며, 낮은 담으로 둘러쳐 만들어진, 별도의 작은 공간이다. 제주 전통 주거는 육지와는 달리 집터를 먼저 잡고 난 뒤 울타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부지의 형태가 부정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울안의 공간은 애매한 여분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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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비가 올 때 어깨에 걸쳐서 둘러 입었던 우장(雨裝). 비를 막기 위해 어깨에 두르는 일종의 비옷으로, 띠로 촘촘히 엮어 만든다. 제주 지역에서는 도롱이라는 용어보다 우장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습기가 많은 제주 지역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선택하여 도롱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주인의 지혜가 돋보인다. 원시 시대부터 발전해 온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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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 아명은 송성뢰(宋聖賚)이다. 아버지는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의 장씨가 낳은 아들(후일 경종)에 원자의 호칭을 부여하는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는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다. 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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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우진제비 오름 또는 우전제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燕) 등으로 표기 하였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우진제비 오름의 북동쪽에는 웃바메기 오름이 있고, 동남쪽에는 검은 오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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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우진제비 오름 또는 우전제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燕) 등으로 표기 하였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우진제비 오름의 북동쪽에는 웃바메기 오름이 있고, 동남쪽에는 검은 오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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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성소(聲簫), 호는 우정(羽亭). 아버지는 도사(都使)를 역임한 홍재원(洪在源)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3년 동안 공부한 후 1890년(고종 27)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93년(고종 30) 7월 파리를 떠나 귀국하던 길에 도쿄에 머물면서 이일직(李逸稙)을 만나 김옥균(金玉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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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에 있는 조선시대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 우지연대는 동쪽으로 도내봉수(직선거리 3.2㎞), 서쪽으로 죽도연대(직선거리 2.3㎞)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은 6명, 봉군은 12명을 배치하였다. 귀덕초등학교 입구에서 일주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1.6㎞를 가다 보면 북쪽으로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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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에 있는 포구. 우지포는 지금의 한림읍 수원리의 외딴 자연마을인 용운동 해변에 있는 안개를 두고 이른 말이며, 당시 우지(牛池)라는 지형지물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잠수촌과 귀덕촌 사이에 우지포가 있다고 가록하고 있다.『탐라지』에서는 제주목 안에 있던 일곱 개의 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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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우진제비 오름 또는 우전제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燕) 등으로 표기 하였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우진제비 오름의 북동쪽에는 웃바메기 오름이 있고, 동남쪽에는 검은 오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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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우진제비 오름 또는 우전제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燕) 등으로 표기 하였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우진제비 오름의 북동쪽에는 웃바메기 오름이 있고, 동남쪽에는 검은 오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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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우진제비 오름 또는 우전제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燕) 등으로 표기 하였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우진제비 오름의 북동쪽에는 웃바메기 오름이 있고, 동남쪽에는 검은 오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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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우진제비 오름 또는 우전제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燕) 등으로 표기 하였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우진제비 오름의 북동쪽에는 웃바메기 오름이 있고, 동남쪽에는 검은 오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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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우진제비 오름 또는 우전제비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燕) 등으로 표기 하였다. 우진제비나 우전제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우진제비 오름의 북동쪽에는 웃바메기 오름이 있고, 동남쪽에는 검은 오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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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우편 및 금융, 보험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산하의 행정 기관. 우체국은 일반적으로 우편체신 업무, 즉 편지나 전보·소포 등을 모아 배달하는 일을 하는 곳으로, 전국의 시·군·읍·면·동 단위까지 분포되어 있다. 제주도 또한 마찬가지로 제주도 독자적으로 실정에 기반을 둔 우편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제주우체국(제주시 삼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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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포구. 우포는 지금의 한경면 용수리 해변에 있는 부게원을 두고 이른 말이며, 어로 시설인 원이 들어서기 전에 이 포구를 어떻게 불렀는지를 알 수 없다. 우포는 당시 벗걸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이증은 우포를 대정현에서 대강을 붙일 수 있는 여섯 곳의 포구 중 하나라고 하였다. 이증은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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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었던 조선 후기에 세워진 교육 기관. 조선 후기에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으로 재생과 늠료를 두었다. 서당은 종래의 여러 교육 기관과 성격이 다르지만 교육 기관이라는 이유로 특권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강하였다. 이러한 특권적인 보호는 특히 군역 면제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우학당은 제주목 명월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금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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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임종(林宗), 호는 오헌(迃軒). 아버지는 참봉 정운서(鄭雲瑞), 어머니는 이정흥(李鼎興)의 딸이며,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721년(경종 1)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들어갔고, 1726년(영조 2) 예조좌랑에 올랐다. 예조좌랑 재임 중 강원도 일대 국릉(國陵)의 관리 상태를 살폈는데, 제대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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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화물 및 여객의 수송을 영업으로 하는 사업. 운수업은 교통사업이라고도 한다. 크게 육상운수사업(육운)·해상운수사업(해운)·항공운수사업(공운)으로 분류된다. 이중 육상운수사업을 살펴보면 철도사업과 자동차운수사업이 있고, 자동차운수사업에는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고속버스·시내버스·시외버스 사업 등)·구역여객자동차운송사업(택시 사업 등)·노선화물자동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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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생전에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 아관파천 등의 사건들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흥사단이 전개한 민족운동과 대동학회(大東學會)·기호학회(畿湖學會)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조인에 가담하여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부대신을 지낸 이용직(李容稙)[1852~1932]과 연서로 일본 정부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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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서식하는 종다리과의 조류. 우리나라에는 모두 4종의 종다리류가 보고되어 있는데, 이 중 종다리가 가장 몸집이 크다. 몸길이는 18㎝이며, 등은 갈색으로 검은 색을 띤 많은 무늬가 있으며, 배는 황갈색이며, 가슴에는 갈색 종반이 있다. 작은 둥근 댕기를 갖고 있으며, 근거리에서는 연한 눈썹을 볼 수 있다. 꼬리는 길며 흰색의 바깥 꼬리 깃은 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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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담은 제주 선민들의 생존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돌담은 제주도를 먼저 살다가 떠난 제주 선민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잘 활용하라’는 유언장(遺言狀)과도 같은 존재로서,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의미체라 할 수 있다. 또한 돌담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미학적(美學的) 요소이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다른 요소들, 즉 한라산과 오름, 청정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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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동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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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에 있는 와산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와산리 불도당은 옥황상제의 막내딸인 ‘불도삼승또’가 하늘에서 하강해 좌정한 곳의 신석(神石)을 중심으로 신당을 형성한 곳이다. 당신은 아이의 포태와 출산뿐만 아니라 육아와 치병까지 두루 관장하는 신으로 제주 지역 무속신화에 나오는 삼승할망과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와산리의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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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행원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행원리 본향당은 ‘나주목나주판관’과 ‘기미절석궁전요왕대부인’의 부부신을 모신 신당으로 본향신 부부는 마을의 종합적인 사항을 모두 관장한다. 행원마을의 해안가에는 남당이라는 해신당이 있는데 남당이 아래쪽에 있다 ‘알당’이라 하며, 행원리 본향당은 위쪽에 있다고 하여 ‘웃당’ 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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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행정리이자 법정리. 옛 이름은 웃도의여이다. 도의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여는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를 뜻하는 제주 고유어로서, 도의여는 현재 하도리 해안에 있는 토끼섬 일대를 부르던 이름이다. 약 550여년 전 경주 김씨와 정씨, 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제주군 구좌면 지역으로 상도라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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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강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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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봉우리. 일반적으로 바메기 오름이라 부르고 있으나, 굳이 구별할 때는 위쪽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웃바메기 오름이라 부르고 있다. 예로부터 웃바메기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상야막악(上夜漠岳)으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웃바메기 오름을 웃밤 오름으로 인식하고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상율악(上栗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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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봉우리. 윗세 오름은 크고 작은 봉우리 세 개가 연달아 이어져 있는데, 제일 위쪽에 있는 큰 오름을 붉은 오름이라 하고, 가운데 있는 오름을 누운 오름, 아래쪽에 있는 오름을 족은 오름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윗세 오름 또는 웃세 오름으로 불렀다. 위에 있는 세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으로, 아래쪽에 있는 세오름에 대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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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본향당. 송당 본향당의 주신은 벡주또 마누라신이다. 벡줏또, 또는 금백조, 김백조라고도 불리는 벡주또 마누라신은 송당리 사람들의 생산과 물고, 호적 등 종합적인 사항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벡주또 마누라신은 남편인 소천국과의 사이에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았는데, 이 자손들이 제주도 전 지역의 마을로 흩어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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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 있는 봉우리. 식은이 오름을 웃식은이 오름이라고도 하며, 식은이 오름 아래쪽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알식은이 오름이라 한다. 알식은이 오름은 종재기[종지의 제주어]를 엎어 놓은 것과 같다는 데서 종제기 오름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식은이 오름 또는 식언이 오름으로 불렀다. 오름의 맥이 식었다는 데서 식은이 오름이라 불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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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이 창시한 기독교계의 신종교. 여호와의 증인의 기원은 1870년대 초 미국에서 찰스 테이즈 러셀이 세운 세운 국제성서연구회(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이다. 러셀의 후임자 조셉 프랭클린 러더퍼드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장하여 ‘워치타워성서책자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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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해안가에서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을 수 있게 쌓아 만든 돌담. 제주 해안가에서 살짝 만(灣)을 이룬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거나 인공적으로 돌담을 쌓아 둘러막아 놓고 밀물을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 자연히 그 안에 갇히므로 쉽게 잡을 수 있게 장치해둔 곳으로 ‘원’ 또는 ‘개’라고 한다. 돌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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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가 80여 년간 원의 지배를 받던 시기. 제주는 남송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이에 원은 제주를 남송과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와 병참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일찍부터 눈독을 들여왔다. 그러던 중 원은 제주에 들어와 웅거하던 항몽 삼별초를 1273년(원종 14) 고려와 연합하여 평정한 것을 계기로 이곳을 직할령으로 삼게 된다. 이후 원은 제주를 남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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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원경(元卿), 호는 우수(迂叟). 아버지는 송증(宋拯)이다. 1683년(숙종 9)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1690년(숙종 16) 사간원정언에 올랐으며, 당시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 처우문제의 상소를 올렸다. 이어 사헌부지평을 지냈으며, 1696년(숙종 22) 경성판관 재임 중 정사를 잘 돌봐 품계가 올라 16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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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주민들은 한을 혹은 한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은 크다(大)는 의미이며, ‘흘’은 숲 또는 바위와 잡풀로 뒤덮인 넓은 땅을 의미한다. 또는 큰 습지였으므로 한흘이 되었다고 한다. 1730년경 유제륭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왔고, 그 뒤 백씨·차씨·송씨 등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이른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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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원님놀이’를 할 때 부르는 전래 동요. ‘원님놀이’란 대개 가족 단위(두서너 명)의 사람들이 다리를 쭉 뻗어서 서로 엇갈리게 가지런히 방바닥에 앉은 다음, 전래 동요인 「원님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의 마지막 박자에 맞아 떨어진 다리를 하나씩 빼어 나가다가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한쪽 다리)이 벌칙을 받는 놀이이다. 놀이의 특성상 가락이나 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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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원님놀이’를 할 때 부르는 전래 동요. ‘원님놀이’란 대개 가족 단위(두서너 명)의 사람들이 다리를 쭉 뻗어서 서로 엇갈리게 가지런히 방바닥에 앉은 다음, 전래 동요인 「원님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의 마지막 박자에 맞아 떨어진 다리를 하나씩 빼어 나가다가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한쪽 다리)이 벌칙을 받는 놀이이다. 놀이의 특성상 가락이나 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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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덕망 높은 사람이 호상(好喪)으로 죽었을 때 하는 민속놀이. 제주 지역에서는 덕망 높은 사람이 수명을 다하고 죽으면,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그 마을에서 고인과 비슷한 덕망을 갖춘 한 사람을 사또로 모셔 가마에 태우고는 동네 잔치를 벌인다. 이것을 삿도놀이라고 하는데, 큰 어른을 모시는 잔치를 열어 마을의 활력을 되찾으려는 데에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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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해오는 묘를 다질 때나 집터를 다질 때 부르는 민요. 「달구질소리」는 주로 장례 의식에서 불리는 의식요지만 집터를 다지거나 말뚝박는 일을 할 때도 불리는 노동요이기도 하다. 제주 지역에서는 장례 의식에서 불리는 「달구질소리」는 ‘음택 달구소리’라고 하고, 집터를 다지는 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를 ‘양택 달구소리’ 혹은 ‘원달구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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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해안가에서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을 수 있게 쌓아 만든 돌담. 제주 해안가에서 살짝 만(灣)을 이룬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거나 인공적으로 돌담을 쌓아 둘러막아 놓고 밀물을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 자연히 그 안에 갇히므로 쉽게 잡을 수 있게 장치해둔 곳으로 ‘원’ 또는 ‘개’라고 한다. 돌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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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오름. 원나라 때 이 오름 중턱에 원나라의 당인 원당(元堂)이 있어서 원당봉[오름], 조선시대 때 원당 봉수가 세워진 데서 망오름, 삼양동에 있어서 삼양봉, 3개의 능선에 7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원당 칠봉[일명 삼첩 칠봉]이라고도 한다. 원당봉은 망오름·도산 오름·앞오름·펜안 오름·나부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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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당봉에 위치한 조선 시대 위급을 알리던 원당봉수대의 터. 제주도 내에는 25개의 봉수대와 38개의 연대가 설치되어 유사시의 통신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원당봉수대에서는 동쪽으로 서산(西山)봉수대, 서쪽으로 사라봉수대와 교신하였다. 원당봉수는 조천연대와도 교신하였다. 평시에는 한 번, 적선이 나타나면 두 번, 해안에 접근하면 세 번,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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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사찰 터. 원당사 창건에 대한 전설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기황후(奇皇后)는 원나라로 끌려간 뒤 원나라 순제의 제2황후가 되었다. 태자가 없어 고민하던 중, 한 스님이 북두의 명맥이 비추는 삼첩칠봉(三疊七峰)에 사찰을 짓고 탑을 세워 불공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의 풍수가들까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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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오름. 원나라 때 이 오름 중턱에 원나라의 당인 원당(元堂)이 있어서 원당봉[오름], 조선시대 때 원당 봉수가 세워진 데서 망오름, 삼양동에 있어서 삼양봉, 3개의 능선에 7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원당 칠봉[일명 삼첩 칠봉]이라고도 한다. 원당봉은 망오름·도산 오름·앞오름·펜안 오름·나부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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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었던 포구. 소흘포는 지금의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동카름성창’을 두고 이른 말이다. 원당포(元堂浦)는 지금의 제주시 삼양동에 있었던 포구로, 원당포를 두고 옛 문헌은 소흘포(所訖浦)라고도 하였다. 소흘포는 당시 소흘촌(所訖村)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이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에는 원당봉(元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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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속하는 행정리. 주민들은 한을 혹은 한흘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은 크다(大)는 의미이며, ‘흘’은 숲 또는 바위와 잡풀로 뒤덮인 넓은 땅을 의미한다. 또는 큰 습지였으므로 한흘이 되었다고 한다. 1730년경 유제륭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왔고, 그 뒤 백씨·차씨·송씨 등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보다 이른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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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원동마을 터에서 제주 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한 원동마을 주민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열렸던 굿. 원동마을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 있는 마을로, 1948년 음력 10월 13일 마을 주민들이 토벌대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6가구 60여 명 중 34명의 주민이 희생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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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2동에 있는 마을. 마을의 지형이 달머리 같다는 데서 월두동(月頭洞)이라 하였다고 하나, 원두왓의 원두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17세기에 걸머리(아라2동 금천마을)에 살던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원두왓이라 불러왔던 것을 고려하면 전자는 한자 표기를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주변의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다. 마을의 서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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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있었던 포구. 원룡포는 지금의 한림읍 월령리에 있는 개창을 두고 이른 말이며, 당시 원룡(元龍)이라는 지경 이름 또는 마을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원룡포를 판포와 배령포 사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마을 이름인 한림읍 월령리의 월령과 원룡은 서로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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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일원상(一圓相)을 진리로 하는 신종교 단체.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창립한 신종교이다. 제주도에 원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51년 독실한 원불교 교인인 황온순(黃溫順)이 구 제주농업고등학교 부지에 한국보육원을 설립하면서부터였다. 1969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원불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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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원불교 교구.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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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서식하는 오리과의 조류. 우리나라 중부 지역의 산간 계곡의 숲, 연못 등에서 번식하며, 겨울에는 강가나 저수지, 호수, 해안의 조간대 등에서 지낸다. 몸길이는 43~51㎝이며, 몸무게는 444~550g이다. 수컷의 몸 빛깔은 화려한 색을 띠며, 붉은 갈색의 늘어진 댕기와 흰색으로 된 눈 둘레, 자갈색의 윗 가슴, 노란 옆구리와 위로 올라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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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출신으로 중앙 관리를 역임한 문신. 고성겸은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본 것을 한으로 여겨 어머니와 상의하여 아버지의 묘를 옮기고 3년상을 치르니 모두 지극한 효자라 일컬었다. 또한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극진하여 어머니가 70세로 노쇠해지자 성균관 교수를 사임하였다. 본관은 제주. 자는 원위(元撝), 호는 능봉(菱峰)이다. 아버지는 고응식(高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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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2동에 있는 현사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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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3세기 후반 원나라가 제주도를 지배할 때 설치했던 관아 터. 몽골족의 나라 원(元)은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 들어와 있었던 고려의 마지막 항몽 세력인 삼별초(三別抄)를 고려와 연합해 평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제주 지역을 직할령으로 삼고, 관부(官府)를 설치했는데, 그 터가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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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변씨(邉氏) 일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금개판 이야기」는 500여 년 전 제주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원주변씨의 입도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원주변씨의 시조 변안렬은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1351년 고려에 환국할때 수장(首將)으로 따라와 공민왕의 외척 원주원씨와 혼인하여 고려에 정착한 장수이다. 역성혁명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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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람들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원주족. 제주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그 선사인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종족인가에 관하여는 많은 주장이 있다. 제주도의 원주족과 관련한 논란은 많으나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은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어음동굴 유적이다. 1973년에 처음 발견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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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선무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길안. 자는 원질(元質). 길안임씨의 시조이다.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여 개성참군이 되었고,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병법에 밝아 원수 김득배(金得培)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다.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으로 이공수(李公遂)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 당시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이 왕위를 탐내어 원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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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이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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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충암 김정은 중종 때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조광조와 함께 미신타파·향약시행 등에 힘썼으나 기묘사화 때 제주에 안치되었다가 사사되었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 시호는 문간(文簡). 김정은 1504년(연산군 10)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고, 1507년(중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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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1968년 6월에 창간하여 1993년 10월에 종간된 종합 잡지. 『월간제주』는 13년 동안 발행되다가 1980년 7월 통권 126호까지 발행하고, 언론 통폐합 조치로 폐간되었다. 그러다가 언론 민주화가 이루어진 1989년 1월 복간호를 발행하여 1993년 10월 통권 175호까지 발행하다 운영난으로 종간했다. 『월간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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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의 명의(名醫). 자는 중서(仲舒), 호는 순암(順菴)·월계(月溪). 일명 진좌수라고도 한다. 제주도 입도조 진계백(秦季伯)의 10세손이며 아버지는 진정적(秦廷績)이다. 전설에 따르면, 진국태가 다른 마을로 글공부를 하러 밤에 다니게 되었는데, 여인이 항상 나타나 구슬을 입에 물고 서로 입으로 넘겨주며 놀게 되었다. 여인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그대로 했더니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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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제주교구 사찰. 월계사(月溪寺)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탐라지(耽羅志)』, 『신보탐라지(新補耽羅志)』 등에 나타나는 고려시대의 사찰 월계사의 명맥을 잇고자 창건되었다. 1934년 9월 한림면 한림리 1152번지[한림남1길 9-6]에 이학암 스님과 신도들이 초막을 짓고 한림포교소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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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터. 월계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재독포동남(在獨浦東南)’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에도 재옹포동남금폐(在瓮浦東南今廢)라 되어 있고, 담수계(淡水契)의 『증보탐라지』에는 ‘한림읍옹포리동안(翰林邑瓮浦里東岸)에 재(在)하니 금폐(今廢)’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영남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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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던 조선 시대 교육 기관. 월계정사는 1545년(인종 원년) 제주목사 임형수가 벽지 자제의 교육을 위하여 명월성 서쪽에 세운 서당이다. 월계정사에서는 고을 사람 중에서 학문이 뛰어난 자를 가려 사장(師長)으로 삼고, 주변에 거주하는 자제들을 모아 교육을 시켰다. 명월성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학(西學)으로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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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누운오름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읍의 중앙을 가로질러 바다로 흐르는 하천. 제주시 서부 지역 최대의 용천수를 자랑하는 옹포천은 누운오름 남사면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가린천 지점에서 하천이 둘로 갈라진다. 중동 마을 양문천 구간에서 합류하여 옹포 해안으로 흐른다. 옹포천은 옹포교 근처에서 해수와 교차하며, 하류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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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 도근천 하류에 있는 여름철 놀이터. 제주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철 내내 냇물이 흘러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관아에서 조공을 실어 날랐다 하여 조공천이라 불리던 도근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 시문을 즐기던 선비들이 모여 시회를 열기도 했으며, 연회를 베풀기도 했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월대’는 수백 년 된 해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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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2동에 있는 마을. 마을의 지형이 달머리 같다는 데서 월두동(月頭洞)이라 하였다고 하나, 원두왓의 원두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17세기에 걸머리(아라2동 금천마을)에 살던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원두왓이라 불러왔던 것을 고려하면 전자는 한자 표기를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주변의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다. 마을의 서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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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봉우리.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며, 북쪽은 평평하다. 이 오름은 일찍부터 다랑쉬 오름이라 부르고 한자 차용 표기로는 가랑수악(多郞秀岳)으로 표기하였다. 다랑쉬 오름은 소리가 랑쉬 오름으로 바뀌어 이를 한자 차용 표기로 월랑봉(月郞峰)으로 표기하였다. 그러면서 월랑봉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하였다. 다랑쉬나 랑쉬의 뜻은 확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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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봉우리. 들레의 어원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달] 또는 드르[들]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월평 마을의 옛 이름인 ‘다라곶’과 관련된 것으로 유추되는데 다라곶이란 이름은 ‘숲이 많은 들판’을 이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 오름은 ‘월평봉(月坪峰)’, ‘월하악(月下岳)’, ‘월래악(月來岳)’ 등 한자어 표기로 보아 들레 오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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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있는 신석기 후기에서 탐라 후기의 동굴 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릉리 부근의 우회 도로에서 중산간 마을인 조수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약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해발 80여 m의 구릉지대에 자리하며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1985년 동굴의 입구를 중심으로 신석기 시대 후기의 토기편이 확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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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감은질, 즉 검은 길이란 뜻이다. 1990년대 초반에 한자 표기로 월령(月令)이라 하였다. 지형이 반달형이라서 월령이라 하였다고도 하나, 한자 표기 월(月)을 중시한 해석으로 보인다. 1800년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월령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령리가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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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파군봉에 있는한국 불교 태고종 사찰. 파군봉(破軍峰)을 끼고 흐르는 병풍천 지경에는 예로부터 ‘부처물’이라는 용천수가 샘솟는 부처물동이 위치한다. 부처물동 인근은 조선시대 이래로 월영사(月瀛寺)가 자리 잡고 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주위의 지형은 비교적 평탄하나 부처물이 있는 곳에는 하천과 산이 있어 다소 비탈을 이룬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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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월영사에 있는 목조 불상. 1950년경 정용하가 남선사를 창건하면서 백양사에서 모셔와 봉안한 것이다. 이후 남선사가 폐사되면서 월영사의 전 주지인 설우가 월영사를 창건하면서 모셔왔다. 월영사 소장 목조여래좌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 51㎝, 어깨 너비 22.5㎝, 상호 높이 18㎝이다.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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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해안에 있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조성한 재생 에너지 단지.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전력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화석 및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어 환경 오염 문제를 안고 있는데, 에너지 소비 증가량은 선진국의 4~5배 이르는데다 1990~1996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5%로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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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명월의 월과 한림의 림을 따서 월림이라 하였다. 사냥을 하기 위해 속칭 음부리 일대에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마을이 생겨났으며, 일제강점기 때 지도에 음부(音富)로 표기하고 있다. 4·3사건 때 마을 전체가 해안지역으로 소개하였다 이후 재건이 되었다. 1935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당시 한림면 웃맹월[上明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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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의 말사. 조선시대의 배불 정책으로 오랜 세월 드러내 놓고 신행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고산리 불자들은 한라산 관음사가 창건되자 먼 길을 걸어서 관음사까지 참배를 다녔다. 그러나 길이 너무 험난하여 신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자 대신 북제주군 서부 지역 포교당으로 월성사(月星寺)를 창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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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예로부터 주민들은 무주애 또는 무주개라 불렀다. ‘무주’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개’는 포구를 뜻한다. 월정(月汀)은 마을의 모양이 반달 같고 바닷가에 접해 있다는 뜻으로, 또는 ‘달이 뜨는 바닷가’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약 400여 년 전 김해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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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의 말사. 제주 불교가 관음사 창건을 계기로 중흥기를 맞이하였으나 당시 제주에는 체계를 갖춘 선원이 없었다. 이에 선원 중심의 사찰을 운영하여 제주 불교의 내실화를 꾀하기 위하여 월정사를 창건하였다. 1934년 음력 4월 8일 김석윤이 제주 포교소 월정암을 창건하면서 월정사의 기반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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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 월정사에 있는 조선시대 목조보살입상. 월정사 목조보살입상은 월정사 소장 불상의 부속 문화재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의 불상으로 2000년 12월에 제주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었다. 향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길이 78.5㎝, 어깨 너비는 20.5㎝이다. 머리에는 화려한 금속제 보관(寶冠)을 썼으며, 상호는 원만하고 목에는 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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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 월정사에 있는 17세기 소조여래좌상. 월정사 소조여래좌상은 조선시대의 불상으로 2000년 12월 제주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었다. 소조여래좌상은 높이 59㎝, 너비 24.5㎝이고 흙으로 조성되었다.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높직한 육계가 있고 상호는 원만하나 경직된 모습이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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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마을. 다라콧 또는 다라쿳은 월평동의 옛 이름이다. 17세기 고지도에서 별라화촌(別羅花村)[다라콧을, 다라쿳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라콧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한자 차용표기로 별라화촌으로 표기하였는데, 조선 후기부터 월평리가 되었으며, 아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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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월평다라쿳당에서는 부부신인 ‘산신백관’과 ‘은기선생 놋기선생’ 및 ‘제또’의 3신위를 모신다. 본풀이에 의하면, ‘산신백관’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부정한 신으로 바람 아래 좌정한 수렵·목축의 신이다. ‘은기선생 놋기선생’은 강남천자국에서 온 외래신이며 순결한 신으로 바람 위에 좌정한 농경·산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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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다리. 길이는 20m, 폭은 10.5m, 높이는 6m이다. 경간 구조는 2단순 슬래브이며, 경간 수 2개, 최대 경간장은 10.0m이다. 총 차선 수는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RCS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GP식이다. 설계 하중은 DB-18로 2등교(等橋)이다. 난간의 재료는 알루미늄이며, 연석은 콘크리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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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월평다라쿳당에서는 부부신인 ‘산신백관’과 ‘은기선생 놋기선생’ 및 ‘제또’의 3신위를 모신다. 본풀이에 의하면, ‘산신백관’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부정한 신으로 바람 아래 좌정한 수렵·목축의 신이다. ‘은기선생 놋기선생’은 강남천자국에서 온 외래신이며 순결한 신으로 바람 위에 좌정한 농경·산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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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한라산의 밑 벌판이 되므로 다랏곳, 다랏굿, 월하, 월평이라 불렀다. 17세기 고지도에서 별라화촌(別羅花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다라콧을·다라쿳을’은 별라화촌 또는 별라화리로 표기하다가, 19세기에 별라리(別羅里)로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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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운(汝雲), 호는 척재(惕齋) 혹은 월포(月浦). 일명 김경흥(金景興)이라고도 한다. 고려 충정왕 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도첨의사사헌납을 지냈으며, 공민왕 때 밀직사대언이 되었고, 자제위(子弟衛)에서 일하였다. 신돈(辛旽)[?~1371]이 조정에 들어오자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1366년(공민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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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봉우리. 들레의 어원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달] 또는 드르[들]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월평 마을의 옛 이름인 ‘다라곶’과 관련된 것으로 유추되는데 다라곶이란 이름은 ‘숲이 많은 들판’을 이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 오름은 ‘월평봉(月坪峰)’, ‘월하악(月下岳)’, ‘월래악(月來岳)’ 등 한자어 표기로 보아 들레 오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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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던 노래.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를 재우거나 어르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자장가라고 한다. 제주 지역에서는 예부터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는 자장가를 「애기 흥그는 소리」라고 불렀다. ‘웡이자랑’ 혹은 변이음인 ‘왕이자랑’으로 시작한다고 「웡이자랑」 혹은 「왕이자랑」이라고도 부른다. 『한국구비문학대계』9-2(제주도 제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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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오름. 원나라 때 이 오름 중턱에 원나라의 당인 원당(元堂)이 있어서 원당봉[오름], 조선시대 때 원당 봉수가 세워진 데서 망오름, 삼양동에 있어서 삼양봉, 3개의 능선에 7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원당 칠봉[일명 삼첩 칠봉]이라고도 한다. 원당봉은 망오름·도산 오름·앞오름·펜안 오름·나부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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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를 지냈으며, 1414년(태종 14) 윤임(尹臨)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417년(태종 17) 3월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떠났다. 이후 인령부윤·좌군총제(左軍摠制)를 거쳐 경주부윤 재임 중 사망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에는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산남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관아를 왕래하는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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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제주 4·3 때 쌓은 석성. 이승만 정부에 의해 내려진 중산간 마을 소개령에 따라 군경은 1948년 11월 20일 해안동 주민들을 해안으로 내몬 뒤에 마을을 불태웠다. 해안 마을로 소개 갔던 해안동 주민들은 1949년 1차로 도평 하동에 전략촌을 형성하여 살다가 1950년 봄 무렵 해안동 하동에만 성을 쌓고 살았다. 위층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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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봉우리. 윗세 오름은 크고 작은 봉우리 세 개가 연달아 이어져 있는데, 제일 위쪽에 있는 큰 오름을 붉은 오름이라 하고, 가운데 있는 오름을 누운 오름, 아래쪽에 있는 오름을 족은 오름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윗세 오름 또는 웃세 오름으로 불렀다. 위에 있는 세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으로, 아래쪽에 있는 세오름에 대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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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유교는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생활 윤리로 자리 잡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무속 신앙 때문에 좀처럼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형상(李衡祥)[1653~1733] 같은 적극적인 제주목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지방 유림들은 점차 자신들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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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6년(명종 1) 유대용이 채록한 제주 사람 박손(朴孫) 일행의 유구국 표류 기록문. 『유구풍토기(琉球風土記)』는 제주 사람인 박손 일행이 오끼나와로 추정되는 유구국에 표류하였다가 돌아와 유대용이 표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간접 기록한 표류 기록문이다. 『명종실록』 제3권 명종 1년(1546) 기사에는 박손 일행의 문견 사건에 대해 ‘표류하여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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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용담과의 상록성 관목. 인도가 원산지로서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서 울타리 및 정원수 등으로 심고 있다. 잎이 버드나무 모양이고 꽃은 얼핏 복숭아의 꽃과 같다는 의미에서 유도화(柳桃花)라고도 부른다. 나무의 높이는 약 3m에 달하는 관목으로서 잎은 3개가 윤생하며, 선형으로 두껍고 길이는 약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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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관광·유람을 목적으로 운행하고 있는 여객선. 유람선은 사적(史蹟)이나 명승지가 많은 강·호수·만(灣)·연안을 회유하는 배로서 소형선이 많다. 관광·유람선업은 「해운법」에 의한 해상여객 운송사업 면허를 받은 자, 또는 「유선 및 도선사업법」에 의한 유선사업의 면허를 받거나 신고한 자가 할 수 있으며, 선박을 이용하여 관광객에게 관광을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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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어온 사람들이 겪은 일과 감정 등을 문학화한 작품. 제주도는 절해 고도로서 환해성·격절성·협소성을 지니고 있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제주 유배 문학은 대부분 조선 시대에 제주도에서 유형을 받은 지식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제주 유배 문학이란 조선 시대의 시대적·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형수로서 원악지인 제주도에 유배되어 겪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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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죄를 지어 그 형벌로 제주 지역으로 귀양 왔던 사람들. 유배는 오형(五刑) 가운데 하나로 죄인을 귀양 보내던 형벌인데, 유배인을 귀양 보낼 때는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원근(遠近)의 등급이 있었다. 제주도는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귀양살이 했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왕족이나 중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왕명을 거역하거나 정사에 과실이 있을 경우, 그 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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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지낸 문신. 본관은 평양. 자는 유보(裕甫), 호는 일락(一樂). 아버지는 조경운(趙慶雲)이며 어머니는 김응무(金應武)의 딸이다. 형은 공조참판 조인득(趙仁得)이다. 1567년(명종 2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75년(선조 8) 1월에 전라도 영암군수로 부임하였다가 1575년 8월에 체직되었다. 1577년(선조 10) 5월 제주판관으로 부임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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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서 제도 종교와는 달리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종교. 제주 지역에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무렵이었다. 대부분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와 같은 기성 교단들이 중심이었지만, 그 밖에도 남학·증산교 등의 신종교들도 들어왔다. 해방 이후 제주 사회에는 이전보다 다양한 모습의 신종교가 등장한다. 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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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787년(정조 11)에 실시한 대윤차(大輪次: 과거에 떨어진 사람에게 다시 보게 하던 시험)에서 표(表) 부분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 식년시 문과에서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796년(정조 20) 4월 제주목사 이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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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흐리믈과 검은데기인데, 흐리믈은 우물, 검은데기는 바위언덕을 의미한다. 조선 개국 초기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생수가 용출하여 사계절 끊이지 않고 물이 흐르는 언덕이란 의미로 흐리믈이란 지명이 생겨 오랫동안 불렸다. 본래 제주군 신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흐리물과 검은데기를 금덕리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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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산새미 오름 북쪽에 있는 고려 후기 김수 장군의 묘로 불리는 무덤. 유적이 위치한 산새미 오름은 해발 650m의 높은 곳이다. 항파두리성 내성에서 남쪽으로 약 5㎞ 정도 떨어져 있다. 김수 장군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이 오름의 북쪽에 있다. 산새미 오름은 1270년 9월 고려 정부군의 영광부사 김수 장군과 그 휘하의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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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일대의 고려 시대 사찰 터. 유수암리 사지 일대에는 ‘절터’, ‘절왓’, ‘절물’이라는 사찰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절물이 자리 잡고 있는 극락봉은 해발 고도 314m의 오름으로 고성리와 금덕리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절터는 절물에서 하천을 건너 보이는 북동쪽의 경작지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청자편, 분청사기편,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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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용천수. 김통정 장군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항파두성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고성리의 구시물과 옹성물을 비롯하여 이 유수암천까지 식수로 사용하게 되면서 유수암천의 초기 형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유수암천의 머릿돌 곁에 세워진 비석 내용의 일부를 옮기면, “한라산 서북나래 드리운 곳에 우뚝솟은 절마루! 그 아래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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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유장은 전라남도 해남군의 대흥사 승려로서, 억불 정책을 실시하던 조선시대에 수많은 청중을 감명시킨 대강백이었다. 유장이 대흥사에서 구례군의 화엄사로 자리를 옮겨 강석(講席)을 마련했을 때 1,500명의 청중들이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유장의 명성을 질시했던 전라도관찰사 조모(趙某)라는 자가 누명을 씌워 제주도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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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 항쟁을 주도한 무신. 1258년(고종 45) 최씨정권이 붕괴되는 무오정변에 낭장(郎將)으로 참여하였는데, 이후 승진이 빠른 것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개경 환도에 반대하고 대몽 항전을 내세워 새로운 정부를 세울 때 대장군으로서 좌승선(左承宣)에 임명되었다. 좌승선에 임명된 것으로 보아 문학적 소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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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재배되는 십자화과 배추속에 속하는 2년생 초본식물. 유채는 씨에서 기름을 얻기 위한 작물로 유채(油菜)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유채는 제주도 및 남해안 지역에서 식용 및 약용을 위하여 재배되었으며, 벌꿀을 얻기 위한 밀원 식물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꽃이 화려하여 관광객을 위한 사진 촬영 장소 등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유채꽃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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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내에서 상품 및 서비스 등이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나 수요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교환 및 분배 활동. 제주시의 유통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제주 지역의 유통업체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2005년 말 제주시의 유통업체로는 할인점 4개소, 전문점 1개소, 등록 시장 16개소, 인정 시장 3개소로, 총 24개소가 있다. 유통업체 수로 보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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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1696년(숙종 22) 10월 전라우수사 재임 중 이익태(李益泰)[1633~1704]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699(숙종 25)년 5월에 떠났다. 이때 함께 재임한 제주판관은 이석신(李碩臣), 정의현감은 신성원(愼聖源)·이한장(李漢章), 대정현감은 김경(金磬)·이만재(李萬材)[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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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한학자이자 향토사학자. 본관은 광산. 자는 윤경(胤卿)·윤경(允敬)·홍점(鴻漸), 호는 심재(心齋)·일소도인(一笑道人)·해상실사(海上佚史). 초명은 김석조(金錫祚)이다. 아버지는 김창규(金昌圭)이며, 조선 말기에 의병운동을 벌였던 김석윤(金錫允)[1877~1949]의 동생이다.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배웠으며, 열세 살 때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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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한학자이자 향토사학자. 본관은 광산. 자는 윤경(胤卿)·윤경(允敬)·홍점(鴻漸), 호는 심재(心齋)·일소도인(一笑道人)·해상실사(海上佚史). 초명은 김석조(金錫祚)이다. 아버지는 김창규(金昌圭)이며, 조선 말기에 의병운동을 벌였던 김석윤(金錫允)[1877~1949]의 동생이다.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배웠으며, 열세 살 때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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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민란(1813년)을 밀고한 무신. 1783년(정조 7) 이경철(李景喆) 등 17명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였다. 1813년(순조 13) 양제해(梁濟海)가 아들 양일회(梁日會)와 윤광종·김지검(金之儉) 등과 함께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수령을 모해하고 민란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윤광종이 이 사실을 제주목사 김수기(金守基)에게 밀고하여 관련자 전원이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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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치항(稚恒). 아버지는 유선(諭善) 윤득부(尹得孚), 어머니는 이보만(李普萬)의 딸이다. 1801년(순조 1)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홍문관교리를 거쳐 1811년(순조 1) 순흥부사에 임명되었다. 1612년(순조 12) 순흥부사를 사임한 이후 세자시강원의 필선·문학·사서 등을 지냈으며, 1815년(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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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3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윤구동(尹久東)의 공덕을 기리는 비. 윤구동은 문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15년(순조 15) 5월에 제주도에 부임하였다가 1817년(순조 17) 10월에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전출되었다. 재임 중 윤구동은 공피전(供彼錢) 1,800냥을 마련하여 다른 나라 배가 표도(漂到) 하였을 때 공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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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윤구동(尹久東)의 공덕을 기리는 비. 윤구동은 문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15년(순조 15) 5월에 부임하였다가 1817년(순조 17) 10월에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전출되었다. 재임 중 윤구동은 공피전(供彼錢) 1,800냥을 마련하여 다른 나라 배가 표도(漂到) 하였을 때 공궤(供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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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윤구동(尹久東)의 공덕을 기리는 비. 윤구동은 1815년(순조 15) 5월에 허명(許溟)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가 1817년 10월에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임명되어 떠났다. 윤구동은 재임 중 공피전(供彼錢) 1,800냥을 준비, 공피창을 설치하여 이양선이 표류하여 왔을 때 민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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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본관은 해남(海南). 아버지는 윤덕언(尹德彦)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603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193번지로 이주한 후 제주에서 활동하였다. 제주 시내 중앙이발관의 이발사로 일하였고, 1939년부터 천주교를 믿어 제주성당에 다녔다. 제주에서 천주교의 항일 운동은 신부 패트릭 도슨(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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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오름. 예로부터 민다리 오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독달악(禿達岳)으로 표기하였다. 민다리 오름의 ‘민다리’는 민[禿]+다리[達]의 구성으로, 곧 민둥산으로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민다리 오름은 시간이 흐르면서 은리 오름으로 바뀌었으며 이것을 한자 차용 표기로 나타낸 것이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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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상(伯常), 호는 방한(方閒). 윤세수(尹世綏)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윤득민(得民), 어머니는 조정빈(趙鼎彬)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756년(영조 32) 당론을 일으켰다고 탄핵을 받아 7년 동안 고향에서 지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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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문신. 1905년 조선시대 마지막 제주목사 조종환(趙鍾桓)이 이임한 뒤 제주목사는 폐지되고 제주군수로 바뀌었다. 1906년(광무 10) 동래군수이던 윤원구가 초대 제주군수로 부임하였다. 윤원구가 제주군수로 부임하던 때는 일본에 의해 조선의 행정제도가 개편되고 있던 시기였다. 목(牧)·현(縣)제도의 면 행정, 즉 풍헌(風憲), 경민장(警民長) 등의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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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경차관을 지낸 문신이자 문인 화가. 본관은 파평. 자는 경도(景道), 호는 학산(鶴山)·찬하(餐霞). 아버지는 윤석복(尹錫復)이다. 1792년(정조 16) 생원시에 합격하고 1794년(정조 1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을 거쳐 1801년(순조 1) 정언이 되었다. 1806년(순조 6) 김구주(金龜柱) 사건에 연루되어 경상북도 창원에 유배되었다. 18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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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자생하는 난초과의 식물.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제주시 오라동 관음사, 봉개동 견월악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논고악, 한남리 동수악, 수망리, 광주광역시의 무등산 등에서 자라고 있다. 1940년대 말 ‘열매가 으름 모양과 비슷한 난초’라고 해서 으름난초로 이름 붙여졌다. 현재 20여 종류가 아열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제주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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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자생하는 난초과의 식물.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제주시 오라동 관음사, 봉개동 견월악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논고악, 한남리 동수악, 수망리, 광주광역시의 무등산 등에서 자라고 있다. 1940년대 말 ‘열매가 으름 모양과 비슷한 난초’라고 해서 으름난초로 이름 붙여졌다. 현재 20여 종류가 아열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제주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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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오름. 예로부터 민다리 오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독달악(禿達岳)으로 표기하였다. 민다리 오름의 ‘민다리’는 민[禿]+다리[達]의 구성으로, 곧 민둥산으로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민다리 오름은 시간이 흐르면서 은리 오름으로 바뀌었으며 이것을 한자 차용 표기로 나타낸 것이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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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오름. 예로부터 민다리 오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독달악(禿達岳)으로 표기하였다. 민다리 오름의 ‘민다리’는 민[禿]+다리[達]의 구성으로, 곧 민둥산으로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민다리 오름은 시간이 흐르면서 은리 오름으로 바뀌었으며 이것을 한자 차용 표기로 나타낸 것이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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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문(景文), 호는 일환재(一丸齋) 혹은 은파(恩坡). 할아버지는 영의정 심지원(沈之源)[1593~1662], 아버지는 심형운(沈亨雲), 어머니는 승지 김고(金槹)의 딸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가정이 가난하였으나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다. 1775년(영조 51) 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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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예금을 받아 그 자금으로 대출, 어음 거래, 증권의 인수 따위를 업무로 하는 금융기관. 경제가 발전하고 부가 축적됨에 따라 기업·가계 등과 같은 경제 주체들의 금융 자산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그 이유도 다양해진다. 이런 금융 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에 부응하기 위하여 금융기관들은 금융 혁신을 실행하며 그 결과 다양한 금융 상품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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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명종 10) 왜구가 제주도 화북포 일대에 침입한 사건. 을묘왜변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는데, 1555년(명종 10) 왜구 선박 70여 척이 1차로 전라도 영암·강진·진도 일대를, 2차로 제주도를 휩쓸며 약탈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선과 일본 원활하지 못한 외교 관계와 일본 내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였다. 즉,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난 이래 조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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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분포하는 음식물의 생산·소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업종. 음식점의 경우 제주 지역에서 ‘관광요정’이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인 곳은 ‘송원’이다. 이곳은 1969-1970년대 초까지 제주시 칠성로와 원정로 사이에 위치해 지역인사들의 발길을 모았던 곳이다. 그 이후에는 지금의 제주경찰서 서쪽에 한라정과 현 제주은행 남문지점 인근에 위치해 있던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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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소리를 소재로 하여 박자, 선율, 화성, 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감정을 드러내는 예술. 음악은 일반적으로 시간 예술로 불리고 있는데, 문예나 무용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전개된다. 1. 6·25전쟁 이전 1946년 제주도 최초로 제주중학교의 15인조 교악대가 김국배에 의해 발대되었고, 1948년 3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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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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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원조가 쓴 글을 합본한 전집. 이원조(李源祚)[1792~1872]의 호는 응와(凝窩)로, 1809년(순조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주부윤에 오르고, 1854년 대사간에 이어 공조판서를 지냈다. 『응와전집』에는 이원조의 글을 묶은 『응와문집(凝窩文集)』 22권, 『응와속집(凝窩續集)』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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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전통 의례 때 입던 옷. 제주의 의생활은 기후와 생활 여건에 맞게 노동형 생활복 위주인 ‘제주 것[濟州樣式]’ 위에, 육지에서 들어온 상층 관료 중심의 양식[京樣式]인 관복(官服)과 의례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이중구조(二重構造) 양상을 이어왔다. 경양식 의례복은 관혼상제(冠婚喪祭) 등 유교 의례를 비롯하여 특히 삼성제(三聖祭)나 향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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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공중 또는 특정 다수인의 질병이나 부상을 예방·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관련 기관.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은 국가·지방 자치 단체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 단체가 설립·운영하는 보건 의료 기관을 말한다. 응급 의료 기관은 「의료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의료 기관 중에서 이 법에 의해 지정된 중앙 응급 의료 센터, 권역 응급 의료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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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제주의 의병 항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세운 탑. 1909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자 제주 지역에서는 고사훈(高仕訓) 등의 유림들이 1909년 2월 25일 봉기를 결의하고 격문과 사발통문을 띄웠으나 일제에 곧 진압되고 말았는데, 의병 항쟁 기념탑은 1909년 당시 제주 의병들의 의로운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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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옷을 입는 생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형태로든 옷을 입고 생활한다. 그러므로 의복은 기후나 풍토 같은 자연 환경에 적합한 형태를 띠게 된다. 또한 일의 성격, 도덕적 기준이나 미적, 정치적 관념뿐만 아니라 종교적 가치 등의 사회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신체를 장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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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를 방문하여 6개월 간 체류한 승려. 1786년 4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득도하고, 대흥사에서 민호(玟虎)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일지암에서 40여 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의(奧義)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정약용·김정희·신위 등과 교분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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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장례 의례 때 불리는 노래. 제주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장례 의례와 관련하여 불리는 노래를 의식요라고 부른다. 장례와 관련한 의식요로는 행상을 장지까지 메고 가면서 부르는 「행상 노래」, 봉분에 쌓을 흙인 ‘진토’를 파면서 부르는 「진토굿 파는 소리」, 흙을 쌓은 후 달굿대로 봉분을 다지면서 부르는 「달구질 소리」가 있다. 「꽃염불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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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내에 설립되었던 근대 교육 기관. 교육을 통해 구제도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문화·문명 세계를 배움으로써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목표를 두었다. 1906년 2월 일제가 통감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침략을 노골화하자 전국적으로 교육 구국을 목적으로 한 사학 건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제주 지역에서도 사학 건립 운동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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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왕족. 본관은 전주. 자는 자강(子强), 호는 규창(葵窓). 할아버지는 선조, 아버지는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며, 어머니는 윤휘(尹暉)의 딸이다. 부인은 풍산심씨이다. 아버지 인성군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위를 적극 지지한 바 있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반정공신 이귀(李貴)가 인성군이 광해군 복위를 모의하고 있다고 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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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안핵겸찰리사로 파견된 문신. 1862년(철종 13) 10월 강제검(姜悌儉)[?~1863], 현재득(玄才得) 등이 제주에서 임술민란을 일으켜 부정한 아전의 죄를 들추어내고 부호의 집을 부수거나 불태웠다. 이에 조정에서는 1863년(철종 14) 1월에 이건필을 제주안핵겸찰리사(濟州按覈兼察理使)로 파견하였다. 이건필은 무고한 도민의 고충과 전 제주목사 임헌대(任憲大)[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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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오름. 이계 오름은 이게 오름이라고도 한다. ‘이계’ 또는 ‘이게’의 뜻은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이계악(離鷄岳, 二鷄岳)이라고도 한다. 이계 오름 동북쪽에는 당 오름[저지 오름]이 있으며 북쪽에는 당 오름에 딸린 소로기 동산·선장이 동산·일쳇 동산 등의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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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오위장 이간(李幹)이다.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단성현감을 거쳐 호조좌랑·하동현감을 지낸 후 고성현감이 되었으며, 고성현감 재임 시 정사를 잘 돌보아 1587년(선조 20) 파격적으로 경흥부사가 되었다. 경흥부사 재임 중 여진족이 녹둔도를 침공하자 조산만호 이순신(李舜臣)[1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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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오름. 이계 오름은 이게 오름이라고도 한다. ‘이계’ 또는 ‘이게’의 뜻은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이계악(離鷄岳, 二鷄岳)이라고도 한다. 이계 오름 동북쪽에는 당 오름[저지 오름]이 있으며 북쪽에는 당 오름에 딸린 소로기 동산·선장이 동산·일쳇 동산 등의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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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오름. 이계 오름은 이게 오름이라고도 한다. ‘이계’ 또는 ‘이게’의 뜻은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한자를 차용하여 이계악(離鷄岳, 二鷄岳)이라고도 한다. 이계 오름 동북쪽에는 당 오름[저지 오름]이 있으며 북쪽에는 당 오름에 딸린 소로기 동산·선장이 동산·일쳇 동산 등의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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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공신(二公神)에 대한 서사 무가인 동시에 그 신화를 노래하고 기원하는 제차(祭次). 제주도 무속에서는 서천 꽃밭을 인간 생명의 근원이 되는 환생꽃과 멸망을 주는 주화(呪花)를 가꾸는 곳으로 이야기된다. 이 꽃밭을 관장하는 꽃감관이 ‘이공’으로, 멸망 악심꽃으로 인한 재난을 막고 환생꽃으로 인한 집안의 번영을 빌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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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큰굿 중 이공신을 맞아들여 소지를 올리는 제차. 이공신은 서천꽃밭에서 생불꽃, 환생꽃, 멸망꽃 등 여러 가지 주화(呪花)를 관장하여 키우는 신이다. 큰굿 때 이공 본풀이 다음에 이공맞이가 행해진다. 우선 수심방이 초감제를 한 후 질침으로 들어가는데, 이때 순서는 다른 맞이굿과 같다. 즉 푸른 댓가지로 길을 만드는 일 없이 노래로만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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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정현감·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622년(광해군 14)에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할 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𥙿)[1581~1633]의 권유로 광해군[1575~1642]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여, 1623년(광해군 15) 3월에 일어난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웠다. 인조반정 후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가 평안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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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오(星五), 시호는 장희(莊僖). 아버지는 이면대(李勉大)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함경도의 단천부사, 경기도의 통진부사를 지냈고, 1881년(고종 18) 울릉도 검찰사가 되어 섬을 시찰하고 돌아와 울릉도를 포기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경상도 병마절도사, 어영대장, 총융사를 역임하였다. 1884년(고종 21) 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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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제주찰리사겸방어사 이규원을 기리는 비. 이규원은 1891년(고종 28) 9월 제주찰리사겸방어사로 부임하여 1894년(고종 31) 9월 군부대신에 임명되자 전출되었다. 재임 중 김지(金志)[1835~1896]의 난을 수습하고 오현단(五賢壇)을 귤림서원(橘林書院) 옛 터에 건립하였으며, 운주당을 중수하였다. 또한 흉년이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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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보성군수를 역임하고, 1586년(선조 19) 5월 전라도 부안현감으로 부임하여 1588년(선조 21) 3월 암행어사에 의해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1) 2월 변양걸(邊良傑)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류큐국[琉球國] 왕자가 항해하던 중 제주에 표착하였다. 이기빈은 제주판관 문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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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의 선비. 본관은 경주. 자는 온옥(昷玉), 호는 귤당(橘堂)이다. 아버지는 이계수(李繼秀)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하여 전통 유가의 환경에서 선비의 기질을 익혔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6]의 문하에서 유학의 진수를 익혔으며, 1873년(고종 10)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친하게 지내었다. 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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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 이기풍 목사는 1865년 12월 23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한국 최초의 목사이자 제주도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로 1908년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이기풍 목사는 1908년부터 1917년까지 많은 복음의 씨를 뿌렸다. 제주도 성안교회를 비롯하여, 금성, 삼양, 성읍, 조춘, 모슬포, 한림, 용수, 세화 등의 교회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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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 있는 이기풍 목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선교 기념관. 이기풍 목사는 제주 지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1989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주노회가 이기풍 선교기념훈련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전국 총회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기풍 목사 선교기념관 건축안은 1991년 열린 제76회 대한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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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하경(夏卿), 시호는 정희(貞僖). 아버지는 어영대장 이여발(李汝發)이다. 문음(門蔭)으로 관리가 되어 여러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1693년(숙종 19) 4월에 윤정화(尹鼎和)[1648~?]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694년(숙종 20) 7월까지 재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경민편(警民編)』을 저술하여 도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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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이달이 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봉우리를 아울러서 이달이 오름이라고 한다. 높은 봉우리를 큰오름이라 하고, 베락맞은그정·큰그정·족은그정 등이 있다. 그리고 낮은 봉우리는 족은 오름이라 하며, 촛대 오름 또는 촛대봉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이달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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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이달이 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봉우리를 아울러서 이달이 오름이라고 한다. 높은 봉우리를 큰오름이라 하고, 베락맞은그정·큰그정·족은그정 등이 있다. 그리고 낮은 봉우리는 족은 오름이라 하며, 촛대 오름 또는 촛대봉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이달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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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이달이 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봉우리를 아울러서 이달이 오름이라고 한다. 높은 봉우리를 큰오름이라 하고, 베락맞은그정·큰그정·족은그정 등이 있다. 그리고 낮은 봉우리는 족은 오름이라 하며, 촛대 오름 또는 촛대봉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이달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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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이달이 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봉우리를 아울러서 이달이 오름이라고 한다. 높은 봉우리를 큰오름이라 하고, 베락맞은그정·큰그정·족은그정 등이 있다. 그리고 낮은 봉우리는 족은 오름이라 하며, 촛대 오름 또는 촛대봉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이달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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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는 봉우리. 이달이 오름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봉우리를 아울러서 이달이 오름이라고 한다. 높은 봉우리를 큰오름이라 하고, 베락맞은그정·큰그정·족은그정 등이 있다. 그리고 낮은 봉우리는 족은 오름이라 하며, 촛대 오름 또는 촛대봉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이달이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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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탐라안무사를 지낸 무신. 1200년(신종 3) 진주의 공노비와 사노비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소부감(少府監) 조통(趙通)과 함께 진주로 내려가 중랑장(中郎將)으로 안무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202년(신종 5) 탐라에서 번석(煩石)과 번수(煩守)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소부소감 장윤문(張允文)과 함께 중랑장으로 탐라에 안무사로 파견되었다. 번석·번수의 난은 탐라현령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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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때 제주도 인민유격대 지휘관.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장사를 하던 큰형 이호구 밑에서 둘째형 이좌구와 함께 공부하였다. 미오키모리국민학교와 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에 학병으로 일본 육군에 입대해 광복과 함께 소위로 제대하였다. 해방 후 큰형 이호구는 고향에 신촌중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둘째형 이좌구는 1946년 11월 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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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 구시가지의 중심인 중앙 로터리에서 광양 로터리를 잇는 간선도로 상에 위치한 지역이다. 고·량·부 삼성의 탄생한 제주 삼성혈이 위치해 있어서 탐라국의 발상지에 해당한다. 탐라국의 시조 삼신인(三神人)인 고을라(高乙那)·양을라(良乙那)·부을라(夫乙那)가 땅에서 솟아 나와 활을 쏘아 거주할 땅을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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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남동을 관할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최근 구시가지의 팽창으로 새롭게 변모된 곳이다. 제주시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많이 위치하고 있어서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고,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교통의 요지에 해당된다. 탐라국의 시조 삼신인(三神人)인 고을라(高乙那)·양을라(良乙那)·부을라(夫乙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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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한자의 음과 훈(訓, 새김)을 빌려 고유어를 적던 표기법.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글자로 향찰, 이두, 구결 등이 있는데, 이두는 한문투의 문장에서 일부 어휘나 조사, 활용하는 말을 차자(借字)로 표기한 글자를 이른다. 이렇게 표기한 것을 ‘이두 표기’ 또는 ‘차자 표기’라 한다. 이러한 이두 표기는 한자의 훈을 살려 쓰기도 하고 한자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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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관리. 1746년(영조 22) 3월 전라도 운봉현감에 부임하여 1748년(영조 25) 7월까지 재임하였다. 1763년(영조 39) 경기도 남양부사 재임 중 1763년 7월 이달(李鐽)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765년(영조 41) 6월까지 재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763년에 심래복의 반역 사건이 일어났다. 심래복[?~1763]은 조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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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묘를 쓴 다음에 다시 어떤 목적에 의해 새로 묘지를 정하고 시신을 옮겨 매장하는 일. 이장은 지역에 따라 이묘(移墓), 개장(改葬), 또는 천리(遷移)로도 불린다. 조선 중기의 학자 신의경(申義慶)이 쓴 『상례비요(喪禮備要)』에, “옛날의 개장은 분묘가 어떤 이유에서 붕괴되어 시신이나 관이 없어질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이었으나, 요즈음에는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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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 삼별초의 장군을 지낸 무신. 1270년(원종 11) 삼별초는 진도를 거점으로 삼은 지 3개월 만에 제주를 배후 거점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문경 부대를 파견하였다. 당시 제주에는 전라도 안찰사 권단(權呾)의 지휘 아래 영암부사 김수(金須)가 2백여 명의 군인과 현지 주민을 동원해 방비하고 있었다. 고려의 개경 정부는 삼별초의 위협이 높아지자 고여림(高汝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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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9년 3월 21일 오후 3시경 이문천을 비롯한 5,6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미밋동산에 모여들었을 때 김시범(金時範)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김장환(金章煥)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문천을 비롯한 군중은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시가지를 향하여 시위하였다. 3월 23일의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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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1883년(고종 20) 선공감감역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1888년(고종 25) 진해현감, 1889년(고종 26) 내금위장을 거쳐 1896년(고종 33) 평리원(平理院)이 개편된 뒤 고등재판소 검사, 법부 형사국장을 역임하였다. 1896년 지방 제도가 23부제로 개편된 뒤 제2대 제주부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96년 제주민란으로 면직된 오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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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이렁 오름 또는 이스렁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이사랑악(伊士郞岳·伊士良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렁, 이스렁은 고유어로 보이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이스렁 오름 북쪽에는 망체 오름[쳇망오름]이 있고, 남쪽에는 볼레 오름, 동남쪽에는 영실과 영실 계곡이 각각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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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의병의 의병장. 1909년(순종 3) 2월 25일 이중심을 비롯한 고사훈·김석명·노상옥·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한영근(韓永根)·김만석(金萬石) 등이 조병생의 집에서 회합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의병장에 고사훈·이중심을 추대하였다. 이들은 거사 날짜를 3월 3일로 정하고 대정군부터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제주도민들에게 격문과 통문을 돌렸다. 고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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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도에 유배된 문신.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조광조가 개혁 정치의 일환으로 실시한 현량과에 천거되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투옥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무죄를 호소하다 1520년(중종 15) 제주도에 유배되어 대정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 생활 중 제주 유생들을 가르치는 일로 나날을 보냈는데, 7년 동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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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불교의 혁신 운동에 앞장섰던 승려. 초명은 이임생(李壬生), 호는 고산(古山), 법명은 세진. 어려서부터 내장사의 백학명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하던 내장선원(內藏禪院)과 서울의 불교 전문 강원인 대원강원(大圓講院)에서 수학하였다. 1934년까지 대교과(大敎科) 및 수의과(隨意科)를 모두 이수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불교를 극복하고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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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태수(太叟). 아버지는 이맹사(李孟思)이다. 1506년(중종 1) 문과 별시에서 정과(丁科)로 급제하였고, 1514년(중종 9) 사간원정언을 거쳐 1516년(중종 11)년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1526년(중종 21) 4월 김흠조(金欽祖)[1461~1528]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고, 1527년(중종 22)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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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 이수동을 기리는 비. 이수동은 1520년(중종 21) 4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522년(중종 23) 12월에 형조참의로 전출되었다. 이수동은 모흥혈(毛興穴) 내에 돌담장을 축조하고 붉은 대문을 세워 삼성(三姓)의 자손들이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며, 5방호소(防護所)에 귤유(橘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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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서 전승되는 변신한 여우와 이순풍의 대결에 관한 민담. 여우 등의 동물이 사람으로 변신하고, 변신한 여우를 특별한 능력의 주인공이 잡으러 다닌다는 「이순풍과 여우」류의 이야기는, 일상적 경험의 틀을 벗어나 신비한 환상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사람으로 변신한 여우는 힘없는 민중을 농락하나, 민중은 스스로의 힘으로 여우를 이기지 못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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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이렁 오름 또는 이스렁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이사랑악(伊士郞岳·伊士良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렁, 이스렁은 고유어로 보이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이스렁 오름 북쪽에는 망체 오름[쳇망오름]이 있고, 남쪽에는 볼레 오름, 동남쪽에는 영실과 영실 계곡이 각각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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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이렁 오름 또는 이스렁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이사랑악(伊士郞岳·伊士良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렁, 이스렁은 고유어로 보이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이스렁 오름 북쪽에는 망체 오름[쳇망오름]이 있고, 남쪽에는 볼레 오름, 동남쪽에는 영실과 영실 계곡이 각각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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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전승되는 죽어서 저승 갔다 돌아온 사람에 관한 민담. 「이승의 죄를 면한 영혼」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저승에서 만난 친구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서사 무가 「차사본풀이」와 관련지어 이야기의 전개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1980년 1월 21일 제주시 노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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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목장. 1954년 4월 콜룸반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제주도에 온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 J. Mcglinchey) 신부가 가난한 제주도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드넓은 황무지를 목초지로 개간하여 1961년 11월 성 이시돌의 이름을 따서 중앙 실습 목장을 건립하였다. 1964년 4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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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系明), 호는 서봉(西峰), 시호는 충정(忠靖). 아버지는 연평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이며, 영의정 이시백(李時白)[1581~1660]의 아우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아버지와 함께 가담하여 정사공신 2등으로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졌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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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소설가. 애월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본의 아이치현[愛知懸]에 있는 서미잠사학교(西尾蠶絲學校)를 거쳐 경성사범학교 강습과와 혜화전문학교 흥아과(興亞科)를 졸업하였다.일제강점기에 전라남도 곡성의 삼기공립보통학교, 전라남도 함평의 함평공립소학교, 함경북도 경성공립농업학교, 제주공립농업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4년 『국민문학』 8월호에 「이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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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아버지는 이덕민(李德敏)이며, 평안북도 영변(寧邊)에서 태어났다. 1814년(순조 14)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829년(순조 29) 6월에 제주판관으로 부임하고 1831(순조 31)년 11월에 퇴임하였다. 제주판관 재임 중 청렴 근면하여 공사를 공명정대하게 집행하여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1830년(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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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동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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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부르던 유희요. 「이야홍」은 장구와 허벅을 반주로 흥을 돋구면서 부르는 유희적 성격이 강한 노래로, 제주도의 풍광을 노래하는 사설이 주를 이룬다. “이야홍”이란 후렴구가 반복된다고 해서 「이야홍」이라고 부른다. 지역에 따라 「이야홍 타령」이나 「제주도 타령」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성옥(여, 51)의 선소리에 고성옥민요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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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부르던 유희요. 「이야홍」은 장구와 허벅을 반주로 흥을 돋구면서 부르는 유희적 성격이 강한 노래로, 제주도의 풍광을 노래하는 사설이 주를 이룬다. “이야홍”이란 후렴구가 반복된다고 해서 「이야홍」이라고 부른다. 지역에 따라 「이야홍 타령」이나 「제주도 타령」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성옥(여, 51)의 선소리에 고성옥민요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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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 아버지는 호조판서에 증직된 이덕손(李德孫)이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시 문과에 정과(丁科)로 급제하였다. 1458년(세조 4) 지평이 되고 1459년(세조 5) 사직하였다가 1464년 선전관으로 복직하였다. 1466년 종부시정을 거쳐 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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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조선 전기 제주목사 이약동의 한라산신단 기적비. 이약동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민폐를 근절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경사(經史)에 통달하였고, 여러 지역에 목민관을 지냈으나 청렴함으로 일관하였다. 제주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과 이약동 선생의 후손들이 공동으로 이약동 선생의 선정과 뜻을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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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장일홍이 제주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쓴 희곡 작품 「이어도로 간 비바리」는 제주의 무혼굿인 요왕맞이굿과 제주 근·현대사를 연결시켜 3대가 겪는 역사적 고난과 극복 과정을 통해 화해와 상생을 도모하는 내용이다. 단막극으로 된 이 희곡은 「초혼(招魂)」이라는 제목으로 수차례 무대에 올려진 바 있다. 이 작품은 『자유문학』 2000년 가을호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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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소설가. 1940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외국어전문학교 산하의 제1외국어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년 3개월 만에 중퇴하고 노동자가 되었으며, 주로 일본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학 활동을 하였다. 일본청년문학자협회 회원이 되면서 『청년작가』 1942년 7월호에 모이야마 이페이[森山一兵]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 소설 「밭당님(畑堂任)」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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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소설가. 1940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외국어전문학교 산하의 제1외국어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년 3개월 만에 중퇴하고 노동자가 되었으며, 주로 일본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학 활동을 하였다. 일본청년문학자협회 회원이 되면서 『청년작가』 1942년 7월호에 모이야마 이페이[森山一兵]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 소설 「밭당님(畑堂任)」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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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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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정(聖庭), 호는 녹하(麓下). 아버지는 이지응(李地膺)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0년(순조 30) 3월 이행교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32년(순조 32) 2월 파직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 1831년(순조 31)에 화촌(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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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589년(선조 22) 10월 양사영(梁思塋)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592년 (선조 25) 3월까지 재임하였다. 원래 홍로천 위쪽에 축조되었던 서귀진(西歸鎭)을 1589년 겨울 서귀포 포구 쪽으로 옮겨 쌓았으며, 1590년(선조 23) 조천성(朝天城) 안에 있는 조천관(朝天館)을 중수하고 쌍벽정(雙碧亭)을 건립하였다. 쌍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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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성광(聖光). 아버지는 이항조(李恒祚)이다. 1773년(영조 49)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간원사간, 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791년(정조 15) 8월에 이홍운(李鴻運)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791년 8월에 바람이 세게 불어 흉년이 들었는데 조정에 청하여 7천 석을 구제미로 풀었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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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원달을 기리는 비. 이원달은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37년(헌종 3) 11월에 부임하고, 1839년(헌종 5) 3월에 사직하였다. 재임 중 평역미(平役米) 4말에 4되를 감해주었고, 경민편(警民篇)을 인출(印出)하여 각 동리에 나누어주었는가 하면, 곡식이 기재된 장부를 샅샅이 조사하여 환곡의 폐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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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이원달(李遠達)의 공덕을 기리는 비. 이원달은 문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37년(헌종 3) 11월에 부임하였다가 1839년(헌종 5)에 사직하였다. 재임 중 평역미(平役米) 4말에 4되를 감해주었고, 경민편(警民篇)을 인출(印出)하여 각 동리(洞里)에 나누어 주었다. 또한 곡식이 기재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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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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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주.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지완(李志完)[1575~1617]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에 풀려났다.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지평·교리·부수찬·장령·집의 등을 거쳐 1647년(인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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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거(舜擧). 아버지는 이이정(李耳鼎)이다. 1790년(정조 14)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22년(순조 22) 1월에 백영진(白泳鎭)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재임 중인 1822년 여름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죽은 자가 3천여 명이나 되자, 조정에서는 사헌부집의 조정화(趙庭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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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441년(세종 23) 식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으며, 1466년(세조 12) 3월에 문여량(文汝良)의 후임으로 감목사(監牧事)를 겸임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이유의가 제주목사에 부임할 때부터 제주에서는 안무사 겸 감목사가 혁파되고 진을 설치하여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가 제주목사를 겸임하게 되었으며, 제주판관이 감목절제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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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본관은 함평. 이계하(李啓夏)의 장남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870번지에서 태어났고, 18살 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읍 삼도동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제주에서 천주교의 항일 운동은 패트릭 도슨(Patrick Dawson)[일명 손 신부], 오스틴 스위니(Austin Sweeny)[일명 서 신부], 토마스 라이언(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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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46년(헌종 12) 2월 권즉[1792~?]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848년(헌종 14) 3월까지 재임하였다. 1846년 제주 삼읍 원전(元田)의 세숙(稅菽)을 혁파하였다. 또한 남학당·서학당·우학당 등 세 학당을 혁파하였다. 목자(牧子)·방군(放軍)·기수(旗手) 등을 쇄신하였으며, 본영(本營)의 총수(銃手) 1천 2백 명을 따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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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이의식(李宜植)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의식은 무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46년(헌종 12) 2월에 부임하였다가 1848년(헌종 14) 3월에 이임하였다. 이의식은 재임 중에 판관이었던 송익열(宋益烈)의 탐장(貪藏: 벼슬아치가 옳지 않은 짓을 하여 재물을 탐함)을 조정에 아뢰어 파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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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전주. 양부는 이한구(李漢九)이며 부인은 장경렬(張璟烈)이다. 조선 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김창호(金昌鎬)의 생질로, 김창호의 아들 김정순(金正舜), 김정로(金正魯)와는 외종형제(外從兄弟) 사이이며 모두 항일운동가이다. 한림공립보통학교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호세이대학교[法政大學校]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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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유(大裕). 아버지는 이돈형(李惇亨)이다.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74년(현종 15) 5월 전라북도 용안현감에 부임하여 1675년(숙종 1) 12월 사임하였다. 1694년(숙종 20) 이기하(李基夏)[1646~1718]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696년(숙종 22) 9월에 물러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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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익(汝翼). 아버지는 이상연(李尙淵)이다. 1700년(숙종 26) 춘당대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1704년(숙종 30) 사헌부장령을 지냈으며, 1709년(숙종 35) 임양군(臨陽君)이 진하사(進賀使)로 청나라에 갔을 때 서장관으로 수행하여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1710년(숙종 36) 사헌부헌납을 거쳐 다시 장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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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야수(野叟), 호는 소옹(蘇翁). 아버지는 이조참판 이상급(李尙伋)[1571~1637]이다. 1636년(인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따라갔다. 1642년(인조 20) 예문관검열·예문관봉교·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645년(인조 23) 세자시강원필선을 지냈다. 1646년(인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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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때 활동한 승려. 이일선은 선운사에서 출가한 백양사 소속의 승려이다. 불교중앙학림의 학생 시절인 1920년에는 조선불교청년회 활동을 하였고 1922년 불교유학생학우회 체육부장을 했다. 1930년대에는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한 사회 계몽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7년에 제주에 내려와 백양사의 서귀포포교소, 제주포교소, 제주중앙포교당과 정광사를 근거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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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묘를 쓴 다음에 다시 어떤 목적에 의해 새로 묘지를 정하고 시신을 옮겨 매장하는 일. 이장은 지역에 따라 이묘(移墓), 개장(改葬), 또는 천리(遷移)로도 불린다. 조선 중기의 학자 신의경(申義慶)이 쓴 『상례비요(喪禮備要)』에, “옛날의 개장은 분묘가 어떤 이유에서 붕괴되어 시신이나 관이 없어질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이었으나, 요즈음에는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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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찰리겸위유어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신로(新老). 아버지는 판서 이문원(李文源)[1740~1794]이며, 어머니는 심숙(沈鏽)의 딸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813년(순조 13)의 제주민란(일명 양제해의 난)으로 흩어진 민심을 위로하기 위하여 홍문관응교 이재수를 제주찰리사 겸 위유어사로 파견하였다. 18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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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제주민란(일명 이재수의 난, 신축민란, 제주교난)의 주모자. 본관은 고부(高阜). 아버지는 이시준(李時俊)이며 어머니는 송씨이다. 본래 대정군의 관노였으나 갑오개혁 이후 노비제가 폐지되자 관아의 급사이면서 향청의 우두머리인 오대현(吳大鉉)의 하예(下隸)가 되었다. 칼과 활 등 무예에도 뛰어났다. 1901년 5월 봉세관(封稅官)의 과중한 세금과 이와 결탁한 천주교도의 작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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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 간의 충돌 사건을 다룬 영화. 1999년 상영된 「이재수의 난」은 최초로 한국과 프랑스가 합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한국의 기획시대와 프랑스의 롭세르바토와르가 공동으로 제작하였고, 박광수 감독이 연출했다. 상영 시간 100분으로, 주인공은 이정재·심은하가 맡았다. 이 영화의 원작은 현기영(玄基榮)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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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5) 4월 제주도에서 이재수(李在秀)가 주도한 민란. 천주교는 1886년 한불 수호 조약과 1896년 교민 조약 등을 통해 선교와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후 고종이 “신부를 나처럼 대하라”라고 선언함에 따라 특권 세력화되었다. 제주 지역에서도 1901년 인구의 2.5%가 천주교 신자가 되는 성장을 보이는데 이는 관리와 동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세금을 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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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901년(고종 38) 4월 이상규(李庠珪)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902년(고종 39) 6월까지 재임하였다. 주사 최창순(崔昌淳)과 함께 프랑스 군함을 타고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대정군수 채구석(蔡龜錫)[1850~1920]으로부터 유림 오대현(吳大鉉)과 관노 출신인 이재수(李在守) 등이 제주성을 점거하고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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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만기의 토기. 구연부에 점토로 된 띠를 덧대어 만든 토기로, 형태는 깊은 바리 모양이 대부분이며, 항아리 모양과 얕은 바리 모양도 일부 있다. 제주 지역에서 확인된 이중구연토기는 해안가의 패총을 중심으로 출토되었으며, 신석기시대 만기에 사용되었다. 육지에서 확인된 이중구연토기와 비교할 때, 이중 구연에 거치문(鋸齒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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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의병의 의병장. 1909년(순종 3) 2월 25일 이중심을 비롯한 고사훈·김석명·노상옥·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한영근(韓永根)·김만석(金萬石) 등이 조병생의 집에서 회합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의병장에 고사훈·이중심을 추대하였다. 이들은 거사 날짜를 3월 3일로 정하고 대정군부터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제주도민들에게 격문과 통문을 돌렸다. 고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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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17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법률 공부를 한 뒤 1921년 8월 보통문관 시험에 합격하였다. 1924년 3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0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1925년 10월 서울 기독청년회관에서 조선농민사가 결성될 때 김준연(金俊淵)·최두선(崔斗善) 등과 함께 이사로 선임되었다. 제주출신유학생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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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776년(영조 52) 봉산군수를 거쳐 김해부사와 좌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 봉산군수 재임 중 장령 유영진(柳榮鎭)[1723~?]은 이철운에 대해 “민생을 침학하여 자기 살찌우기를 마치 천성을 상실한 사람처럼 하므로, 서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침을 뱉고 욕하지 않음이 없었다.”라는 이유로 벌을 내리라는 상소를 올렸다. 1792년(정조 16) 3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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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이최응(李最應)이 제주 지역에 쌓은 공덕을 기리는 비. 이최응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쇄국 정책에 반대했으며, 대원군(大院君) 실각 후 영의정이 되었다. 이최응은 1877년(고종 14)과 1878년(고종 15)에 잇달아 흉년이 들자 임금에게 품신하여 호남사창미(湖南社倉米)를 제주도에 보내어 굶주린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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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2동에 있는 포구. 이포는 지금의 제주시 도두2동에 있는 캐를 두고 이른 말이며,「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이포촌(泥浦村)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남사록』에서는 이을포라고 하였으며, 병선도 감출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제주삼현도」에서는 지금의 제주시 연동에 있는 문악과 임밀악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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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의 효자. 제주목 우면 입석촌(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극진히 섬겼고, 아버지 이세훈(李世薰)의 제사를 정성을 다하여 올렸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살며 제사를 지냈다. 어머니가 생전에 쇠고기를 먹지 않았으므로 죽은 후에도 쇠고기를 쓰지 않고 닭과 꿩고기를 썼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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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전주. 자는 차문(次文), 호는 매계(梅溪). 초명은 이한진(李漢震)이다. 아버지는 이신구(李信九)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 김덕하(金德河)의 딸이다. 아버지가 마을에서 서당을 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향시에 합격하여 여러 차례 전시에 응시하였으나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시골 선비가 급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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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출신의 문인. 본관은 전주. 자는 차문(次文), 호는 매계(梅溪). 초명은 이한진(李漢震)이다. 아버지는 이신구(李信九)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 김덕하(金德河)의 딸이다. 아버지가 마을에서 서당을 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향시에 합격하여 여러 차례 전시에 응시하였으나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시골 선비가 급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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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의 열녀. 효자 박계곤(朴繼崑)[1675~1731]의 딸이며, 이항춘(李恒春)과 혼인하였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게 되자 평생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그녀에게는 고소락(高所樂)이라는 몸종이 있었는데 주인의 정절에 감화하여 육십 평생을 시집가지 않고 주인을 섬기었다고 한다. 70세에 세상을 떠나니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정절부인이라 칭찬하고 그 절행을 천거하니, 17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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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씨 부인의 열행(烈行)을 기리는 비. 정려비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행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내려 주던 상이었다. 이항춘 처 박씨정려는 남편이 죽자 평생 동안 절개를 지키며 수절하다 죽은 박씨 부인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 준 정려비였다. 박씨 부인은 조선 후기 제주목 엄장리에 살던 박계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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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27년(순조 27) 4월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1827년(순조 27) 8월 현명원(玄明圓)의 반역 사건으로 파직된 심영석(沈英錫)[1767~?]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30년(순조 30) 3월에 떠났다. 1827년 광양에 있는 제주향교가 사면이 바람을 받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옮겨 세우는 것을 추진하던 중 관노 고상신(高相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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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행교를 기리는 비. 이행교는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27년(순조 27) 8월에 부임하고, 1830년(순조 30) 3월에 교체되었다. 제주향교를 서문 밖으로 이건하였고 삼성사(三姓祠)의 모흥단(毛興壇)과 전사청(典祀廳), 대일관(大一觀), 귤림서원(橘林書院), 박심당(博審堂), 삼초서당(三草書堂)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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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행교를 기리는 비. 이행교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827년(순조 27) 8월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제주에서 3년 정도 있으면서 이행교는 전임자인 심영석이 추진하던 제주향교 이전을 마무리 짓고 대일관과 홍화각 등을 중수하여 제주 지역의 사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판관 이의겸이 여색을 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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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회천동에 있는 조선 말기 이행숙의 처 김씨의 정려비. 이행숙 처 김씨 효열정려는 1916년에 세워졌는데, 이행숙이나 김씨에 관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비신의 너비는 31㎝이고 두께는 11㎝, 높이는 78㎝이다. 전면에는 “閑良李行淑妻 金氏孝烈之閭(한량이행숙처 김씨효열지려)”라 적혀 있고, 후면에는 “崇禎後五丙辰 上巳日 孫琪成竪(숭정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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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840년(헌종 6) 성균관 유생에게 황감(黃柑)을 주면서 치른 과거 시험인 황감제에서 부(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와 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841년(헌종 7) 정시(庭試)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을 거쳐 승정원부승지를 지냈다. 1850년(철종 1) 6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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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이현공(李玄功)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현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여주목사를 지낸 뒤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이현공은 1851년에 관덕정(觀德亭)을 중수(重修)하였고, 같은 해 제주향교(濟州鄕校)를 개축(改築)하였다. 서재(書齋)를 세워 제생(諸生)에게 늠료를 지급하여 숙식(宿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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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이고, 아버지는 이주하(李柱厦)이다.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680년(숙종 6) 별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03년(숙종 29)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후 제주의 전통 풍속을 개혁하여 유교화시키는 데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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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형상을 기리는 비. 이형상 기념비는 1702년(숙종 18) 6월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703년(숙종 29) 6월에 파직된 이형상(李衡祥)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제주에 부임했던 이형상은 목민관으로서 학문을 진흥하고 미신적인 인습과 악습을 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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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2동에 있는 오도롱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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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2동에 있는 현사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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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동에 속하는 법정동. 북쪽 해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과 숙박업에 종사하며, 해안에서 떨어진 남쪽 주민들은 근교 농업을 하는 비중이 높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바닷가가 되므로 백개 또는 백포, 백포동이 변하여 이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이호리라 하여 제주면에 편입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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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1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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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동에 속하는 법정동. 면적과 인구 모두 이호동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북쪽 해안에 접해 있는 이호 1동과는 달리 대부분의 주민들은 채소와 화훼 재배 같은 근교 농업에 종사한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바닷가가 되므로 백개 또는 백포, 백포동이 변하여 이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이호리라 하여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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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 1동·이호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해수욕장이 있어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동쪽으로부터 용두암~도두봉~이호 해변~외도동을 연결하는 해안 도로가 개설되고 도로변에는 횟집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입지하면서 해안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의 전통적인 자연 마을 중 하나인 백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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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1동에 있는 이호해수욕장에서 개최되는 전통 어로 문화 재현 축제. 예로부터 이호 지역은 바다를 터전으로 한 어로 생활환경이 형성되어 왔으며, 어로 작업의 주요 도구는 테우였다. 테우는 한자어로 ‘벌선(筏船)’이라 하여 떼로 만들어진 배를 뜻한다. 제주 지역에서 예로부터 연안 어업과 해조 채취 등에 이용되었던 테우는 제주 문화 연구의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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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 1동에 있는 해변. 제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7㎞ 지점에 있어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다. 백사장 길이는 약 250m, 폭은 120m이며 평균수심은 1.2m 경사도 5도이다.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여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다. 사질은 검은 색을 띠는 모래와 자갈, 패사 등이 섞여 있으며, 현무암초가 군데군데 노출되어 있고 암석해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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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790년(정조 14) 7월 경상좌수사 재임 중 이철모(李喆模)[1732~?]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791년(정조 15) 7월에 사임하였다. 1793년(정조 17) 11월에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90년 7월 27일 유구국(琉球國)[일본 오키나와]의 배가 귀일포에 예고 없이 정박하였는데, 배에는 선원 12명이 있었으며 유구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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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방(子方).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이창정(李昌庭)[1573~1625]이다. 1631년(인조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예문관대교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소현세자[1612~1645]가 인질로 청나라에 갈 때 세자시강원의 사서로서 따라갔다.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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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제주의 근대 불교를 중흥시킨 승려. 1876년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학림암 보하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 불교계의 교단을 이끌던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제주불교협회를 창설하였고 근대 제주 불교를 중흥시켰다. 1902년 원흥사의 서무로 활동했고, 1907년에는 불교연구회의 내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14년 49세에는 대본산 영명사 주지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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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목사 이후현(李侯玄)의 추사비(追思碑). 비신의 너비는 44㎝이고 두께는 13㎝이며 높이는 83㎝이다. 비의 앞쪽 가운데에는“사상이후현공추사비(使相李侯玄功追思碑)”라 적혀 있고, 앞쪽 좌우로는 “백성들의 힘을 동원하지 않고 사우를 고쳐 세운다(不動民力 改建祠宇)”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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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대숙(大叔). 아버지는 이광하(李廣河)이다. 1702년 알성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으며, 1703년(숙종 29) 6월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애매헌(愛梅軒) 동쪽에 청심당(淸心堂)을 건립하였다. 청심당은 영조 때 세병헌(洗兵軒)이라고 불렸다. 또한 해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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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에 제주목사였던 이희태(李喜泰)가 관기 곤생(昆生)의 세 딸을 고문하여 죽인 사건. 제주목사였던 이희태의 첩은 서울에서 조카(혹은 전 부인의 아들)를 함께 데리고 제주목으로 왔는데 이희태는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관기인 곤생 모녀가 눈치 채고 그 사실을 발설하였는데, 이 때문에 이희태는 곤생 모녀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기생 몇 명이 사사로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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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봉우리. 예로부터 이렁 오름 또는 이스렁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이사랑악(伊士郞岳·伊士良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렁, 이스렁은 고유어로 보이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이스렁 오름 북쪽에는 망체 오름[쳇망오름]이 있고, 남쪽에는 볼레 오름, 동남쪽에는 영실과 영실 계곡이 각각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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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엿기름가루와 좁쌀이나 찹쌀에 익모초 삶은 물을 넣어 고아 만든 엿. 익모초는 높이 1m쯤 자라는 두해살이 풀이다. 꽃피기 전인 5~6월 경에 줄기를 베어 그늘에 말려 약으로 쓴다. 익모초의 맛은 쓰고 매우며 약간 차고 독이 없다. 가능한 한 초년생은 약으로 쓰지 않고 2년째 것을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말린 익모초를 10L의 물에 2~3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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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익성(翼成), 호는 고봉(孤峰). 아버지는 김용서(金龍瑞)이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사회주의 사상 고취 및 대중 계몽 운동을 벌이기 위한 비밀 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이 결성될 때 참여하였다. 혁우동맹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신재홍(申才弘)이 주도하는 급진적인 단체였으며, 소집 책임은 김순종이 담당하였다. 1931년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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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의군수를 역임한 관리이자 항일운동가. 본관은 인동. 자는 익중(翊中), 호는 정산(庭山). 장규열(張奎烈)이라는 이름도 썼다. 아버지는 장현호(張炫昊)이다. 김윤식(金允植)이 1896년 아관파천 후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27세의 장용견과 교유하고 평하기를, “의(義)를 좋아하며 항상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챙겼고 시회(詩會)에도 참가하였으며 어렵고 험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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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만들어진 시 동인지. 1965년 김용해·김용길 형제가 주도하여 ‘향토적 이미지 발굴과 제주 문학의 순수성’을 표방하며 ‘인(人)’ 동인을 결성했다. 당시로서는 제주도 유일의 대학생 중심 동인이었다. 창립 이듬해인 1966년 4월 1일 동인시지 『인』 창간호를 냈다. 『인』은 1960년대에 4집까지 나왔으나 마지막 동인지인 5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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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자식을 점지해 주고 보살펴 주는 것으로 알려진 산신(産神). 삼신할망은 원래 명진국 따님아기였다. 명진국 따님아기가 아직 명진국에서 살 때 인간세상에는 동해용왕 따님아기가 생불할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해용왕 따님아기가 해산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가 임박사의 아기를 죽이는 바람에 명진국 따님아기는 옥황상제에게 불려가 산신(産神)으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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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수산 자원을 조성하고 증식하기 위해 인공어초를 설치하는 사업. 인공어초 시설사업은 수산 자원을 조성하고 증식하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서, 줄여서 어초 시설사업이라고도 부른다. 연안 수역의 수산 자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수산 생물이 산란하고 서식할 수 있는 장소를 조성하고, 치어가 은신처로 삼을 만한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안 수역에 인공어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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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총체. 제주시는 2006년 9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실시되어 이전 제주시와 북제주군을 통합하여 이루어져 있는데, 2005년 12월 현재 이전 제주시는 11만 161세대에 30만 4510명, 이전 북제주군은 3만 6886세대에 9만 7744명으로, 현재의 통합된 제주시는 14만 7047세대에 40만 2254명으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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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인다마을에 있는 제주 4·3 시기에 쌓은 석성. 이승만 정부에 의해 내려진 제주도 중산간 마을 소개령으로 군경은 1948년 11월 중순경 아라동 주민들을 해안으로 내몬 뒤에 마을을 불태웠다. 해안 마을로 소개갔던 아라동 주민들은 1949년 5월 알인다 공터를 중심으로 석성을 쌓고 전략촌을 형성하여 살았다. 이때 아라 2구인 걸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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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보한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때 삼중대광에 올라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했고, 장금용(張金用)의 아들 장선(張善)이 고려 문종조에서 금오위 상장군을 지냈다. 그 후 자손들이 본향지인 인동현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인동으로 삼게 되었다. ① 장윤태(張允泰)는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1세손이다. 1605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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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행정구역상 제주시라는 특정 장소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 중,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대상으로 지리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 제주도 북부, 즉 한라산의 북쪽에 동서로 길게 위치하는 행정시(行政市)이다. 동·서·북쪽은 남해 바다에 면하고, 남쪽은 서귀포시에 접한다. 탐라국 시대 이래 약 2천 년 동안 제주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면적은 977.7㎢로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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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에 있는 제주 4·3 유적지. 인민위원회 사무실 옛터에는 1945년 11월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어 1947년까지 제주 주민들의 자치, 행정 업무를 해 오던 제주도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인민위원회 사무실 옛터는 현 중앙로 교차로 동북쪽에 있었으며, 최근까지 나사로병원이 있던 자리이다. 2003년 제주도와 (사)제주4·3연구소가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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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선조의 왕자 인성군 가족이 제주로 유배되어온 사건. 1628년 모반의 혐의로 선조의 일곱 번째 아들인 인성군이 진도로 유배당한 뒤 죽고, 부인 윤씨와 아들 삼형제, 두 딸은 제주도로 유배당한 사건이다. 인성군은 선조의 일곱 번째 왕자이다. 정빈 민씨의 소생으로서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선조의 사랑을 받았다. 12세에 인성군에 책봉되었고, 커서는 사옹원과 종부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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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수정사지 탑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석탑부재. 수정사지 인왕상은 고려시대 대찰로 알려진 제주 수정사지를 발굴, 조사할 당시 탑지에서 출토된 석탑부재이다. 면석에 음각된 인왕상은 함께 출토된 금동 제품과 함께 고려시대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청석다층석탑의 면석으로 석질은 점판암이며, 면석의 정면에 좌우 대칭으로 뚜렷하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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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마을. 1955년 8월 13일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일도리 일부인 신산루, 운주당골, 새나끗, 내팟굴을 갈라서 일도2동에 편입하였다. 지금은 운주당골이나 내팟굴은 일도1동에 속하고, 흰머들의 사구왓, 루왓, 강알왓 등은 건입동에 속하다가 일도2동에 편입되었다. 다시 인제아파트 부근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어 신천지아파트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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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 주도적 활동으로 21세기를 이끌어 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인화(人和)’이다. 1970년대 후반 제주 동 국민학교와 일도 국민학교에서는 학생수가 수용 규모를 넘어선 상태였고 인화동이 개발되면서 국민학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인화 국민학교는 1980년 5월 9일 설립 인가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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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명명상제(明明上帝)와 미륵불을 모시는 신종교 단체. 일관도는 중국에서 생겨나 유교·불교·도교·샤머니즘을 혼합한 신종교 교단이다. 달마(達磨)를 초조(初祖)로 하여 18대 궁장조사(弓長祖師)[본명 장광벽(張光璧)]로 이어져 내려왔다. 중국 산동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자 본거지를 대만으로 옮겼다. 그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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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주시의 가장 중요한 간선 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뻗은 동문로와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는 중앙로인데 이들 도로가 이곳에서 교차할 뿐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외부 문물이 드나들던 산지천의 하구를 두고 있어 일찍부터 제주의 중심 취락으로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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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일노래. 제주 지역에서 주로 불리는 노동요는 크게 밭일을 할 때 부르는 농업 노동요, 곡식을 빻거나 찧을 때 맷돌이나 방아를 돌리면서 부르는 제분 노동요, 바닷일을 하면서 부르는 어업 노동요, 산에서 나무를 베고 다듬어 끌어내리면서 부르는 임업 노동요, 양태·탕건·망건 등을 짜면서 부르는 관망 노동요, 방앗돌을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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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상업 및 금융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주시의 가장 중요한 간선 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뻗은 동문로와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는 중앙로인데 이들 도로가 이곳에서 교차할 뿐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외부 문물이 드나들던 산지천의 하구를 두고 있어 일찍부터 제주의 중심 취락으로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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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대단위 택지 개발로 인한 단독 주택 및 아파트 단지의 조성으로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이다. 일도 2동은 태고시 고(高), 양(梁), 부(夫) 삼신 중의 일신인 고을라의 거소로서 당시 제일도(第一徒)를 일도(一徒)라 칭하여졌으며, 조선 후기에는 제주목 중면 일도리라 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中面)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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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예절 바르며 미래를 열어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열린 생각, 바른 마음, 굳센 의지’이다. 1968년 3월 1일 일도 국민학교는 제주 동 국민학교에서 분리되어 설립 인가를 받고 18학급으로 편성되어 1968년 3월 2일 개교하였다. 1969년 8월 16일 제주 북 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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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지낸 문신. 본관은 평양. 자는 유보(裕甫), 호는 일락(一樂). 아버지는 조경운(趙慶雲)이며 어머니는 김응무(金應武)의 딸이다. 형은 공조참판 조인득(趙仁得)이다. 1567년(명종 2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75년(선조 8) 1월에 전라도 영암군수로 부임하였다가 1575년 8월에 체직되었다. 1577년(선조 10) 5월 제주판관으로 부임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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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매달 음력 이렛날만 제의를 올리는 신당. 일뤳당에서 모시는 일뤠할망은 농경신이자 기자와 출산, 육아, 치병의 직능을 지니고 있는 여신이다. 일뤳당은 제주도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대규모 신앙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마을에 따라 일뤳당이 본향당인 경우도 상당수 분포하며, 현재까지 활발하게 당제가 올려지는 곳도 여럿이다. 일뤳당신인 일뤠할망의 직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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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서 본향신인 굴묵밧할마님과 송씨하르바님을 모시는 본향당. 동복리 본향당에서 모시는 굴묵밧할마님과 송씨하르바님은 마을의 생산과 물고, 호적 등 종합적인 사항을 관장하는 당신이다. 매년 음력 정월 초이렛날에 신과세제를 올리는데, 마을 신앙민들이 개인적인 기원 사항이 있을 때는 매달 초이레와 열이레, 스무이렛날에 찾아가 치성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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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건설한 육군 비행장. 육군 동비행장이라고도 불렀던 진뜨르 비행장 건설은 1943년부터 시작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진뜨르’라고 불렀던 넓은 평야 지대에, 제주도 주민들을 동원해 인근의 원당봉 등지에서 흙과 돌 등을 날라다 활주로 공사 등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던 1945년 4월 제주도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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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만든 육군 비행장. 정뜨르 비행장은 당시 제주읍에 있었던 일본 육군 서비행장을 일컫는다. 정뜨르 비행장이란 이름은, 당시의 지역 주민들이 비행장 부지를 ‘정뜨르’라고 한 데서 연유한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 들어선 정뜨르 비행장과 교래리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 진뜨르 비행장들은 1944년 말부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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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제주인들이 벌였던 항일 운동. 일제 강점기인 1923년 12월 15일 제주도와 오사카 간에 정기 항로가 개설된 후 많은 제주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 이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사회 단체나 학교, 노동 현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해방될 때까지 치열한 항일 운동을 벌였다. 일본으로 진출한 제주인들은 오사카에 많이 거주하였으며, 주로 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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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제주에 사는 내섬시의 노복 정회이가 일본으로 표류했다가 돌아온 일을 기록한 글. 정회이(棖廻伊)는 조선 중기인 1499년(연산군 5년) 제주에서 육지로 나오다가 바람을 잘못 만나 일본으로 떠내려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1년 넘게 머물다 돌아온 뒤, 일본 호족 평순치(平順治)의 집에서 얻어먹으며 보고들은 내용을 예조에서 적어 올린 것이 「일본풍토기(日本風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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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경보에 의해 창건된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의 제주 지역 지부. 일붕선교종 제주지부는 『금강경(金剛經)』과 『화엄경(華嚴經)』, 전등법어(傳燈法語)를 소의 경전으로 삼아 1988년 서경보에 의해 창건된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의 제주 지역 지부이다. 서경보는 1914년 제주에서 출생했으며, 박사학위 최다 취득(73개), 최다 저술(741권)로도 유명하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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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한학자이자 향토사학자. 본관은 광산. 자는 윤경(胤卿)·윤경(允敬)·홍점(鴻漸), 호는 심재(心齋)·일소도인(一笑道人)·해상실사(海上佚史). 초명은 김석조(金錫祚)이다. 아버지는 김창규(金昌圭)이며, 조선 말기에 의병운동을 벌였던 김석윤(金錫允)[1877~1949]의 동생이다.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배웠으며, 열세 살 때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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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에 설립된 제주도 최초의 4년제 사립 초등학교. 1922년 6월 30일 제주 신엄리의 자산가 백창유(白昌由)가 5천 원을 쾌척하고 신엄리의 성여흥(成呂興)이 토지 3천 3백 평을 희사하여 제주도 최초의 사학재단을 설립하고 인가를 받아 1923년 4월에 제주도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로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은 김익수(金翊洙)가 취임하였다. 1939년 학생은 여자 2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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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큰굿 때에 일월신을 맞아들여 소지를 올리는 제차. 불도맞이 때와 같이 마당에 일월맞이 상을 차리고, 여러 악기를 동원하여 하는 굿이다. 수심방은 초감제를 하여 일월신을 청해 들여 가족의 안녕을 빌어주고 ‘산받아 분부사룀’을 한다. ‘산받는다’ 함은 신칼, 상잔으로 점을 치는 것을 말하며, ‘분부사룀’이란 신의 의사를 제주(祭主)에게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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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출상 전날 밤에 지내는 제사. 일포제는 출상 전날 밤 망자와 마지막 이별을 한다는 의미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망자의 방 앞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데, 다른 지역과는 달리 여자 상제들도 참여하며, 모두 곡을 한다. 제주 지역에서는 이 날 상제들이 다른 일을 보지 않고 하루 종일 상가를 지키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조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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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문(景文), 호는 일환재(一丸齋) 혹은 은파(恩坡). 할아버지는 영의정 심지원(沈之源)[1593~1662], 아버지는 심형운(沈亨雲), 어머니는 승지 김고(金槹)의 딸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가정이 가난하였으나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다. 1775년(영조 51) 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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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를 지냈으며, 1414년(태종 14) 윤임(尹臨)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417년(태종 17) 3월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떠났다. 이후 인령부윤·좌군총제(左軍摠制)를 거쳐 경주부윤 재임 중 사망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에는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산남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관아를 왕래하는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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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 자는 숙빈(叔賓)이다. 아버지는 임섬(任暹)이며 어머니는 송필훈(宋必勳)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67년(영조 43) 정언 재임 중 언론의 중요성, 『어제유곤록(御製裕昆錄)』의 불합리한 서술, 재상의 잦은 교체, 제술(製述) 시험 때 성균관 유생을 모독한 도승지 송영중(宋瑩中)의 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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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선무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길안. 자는 원질(元質). 길안임씨의 시조이다.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여 개성참군이 되었고,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병법에 밝아 원수 김득배(金得培)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다.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으로 이공수(李公遂)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 당시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이 왕위를 탐내어 원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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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8년 제주청년동맹 화북지부의 활동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소년 단체에 대한 지원과 지도였다. 화북소년단의 단원들은 대부분 화북보통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929년 5월 하순 화북보통학교 교사 문재순이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대하자, 임삼호를 비롯한 제주청년동맹 맹원들은 학생들과 함께 교사 배척 운동을 벌였다. 1931년 2월 12일 화북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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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임지(林地) 및 이와 관련된 수자원과 황무지를 관리·경영 사업. 임업은 주로 목재생산을 비롯해 보전 및 휴양을 목적으로 한다. 세계 육지 면적의 31%는 산림으로 분류되며, 매년 전체 입목(立木)의 거의 1%가 벌채되고 있다. 벌채된 나무 중 절반은 연료로 사용되며, 나머지는 임산 가공품과 종이 및 충전물질에 사용되는 펄프 등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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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를 유람한 문신. 본관은 나주.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풍강(楓江)·소치(嘯癡)·벽산(碧山)·겸재(謙齋). 아버지는 제주목사와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임진(林晋)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20세가 넘어서 성운(成運)에게 사사하였다. 1576년(선조 9)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과거 급제 소식을 제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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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임종(林宗), 호는 오헌(迃軒). 아버지는 참봉 정운서(鄭雲瑞), 어머니는 이정흥(李鼎興)의 딸이며,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721년(경종 1)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들어갔고, 1726년(영조 2) 예조좌랑에 올랐다. 예조좌랑 재임 중 강원도 일대 국릉(國陵)의 관리 상태를 살폈는데, 제대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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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 자는 성능(聖能), 호는 서재(西齋). 아버지는 집의 임형(任泂)이며, 어머니는 이의저(李義著)의 딸이다. 부인은 호조판서 김진구(金鎭龜)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21년(경종 1)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일어난 신임사화로 삭직되었다가 1725년(영조 1) 노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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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희명(希明). 아버지는 임현모(任賢模)이다. 1851년(철종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862년(철종 13) 2월에 신종익(申從翼)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임헌대가 제주목사로 부임하던 시기는 1862년(철종 13) 4월에 일어난 진주민란이 삼남 지방으로 확산되어 제주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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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임헌대(任憲大)를 기리는 비. 임헌대는 무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62년(철종 13) 2월에 부임하였다가 1863년(철종 14) 정월에 파직되었다. 임술민란(壬戌民亂)이 일어났을 때 축출당한 것이다. 민란 때 혹독한 곤욕을 치른 후 임헌대는 스스로 동헌(東軒)에서 물러나와 화북동 민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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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사수(士遂), 호는 금호(錦湖). 아버지는 북병사(北兵使) 임준(林畯), 어머니는 현감 권석(權錫)의 딸이며, 동생에 임길수(林吉秀)[1529~?]가 있다. 1531년(중종 25) 진사가 되고, 1535년(중종 3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 춘추관기사관, 세자시강원사서 등을 지냈다. 사가독서(賜暇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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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덕장(德章), 호는 죽실거사(竹室居士), 시호는 효정(孝貞). 아버지는 좌참찬에 추증된 임환(任喚)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로 감역 신방헌(申邦憲)의 딸이다. 1657년(효종 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66년(헌종 7)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후 도원찰방·가례도감조관·성균관전적을 거쳐 현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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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제주도에 들어와서 정착한 최초의 동일 성씨 선조. 제주의 토착 성씨인 고씨·부씨·양씨를 제외하면 제주의 성씨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성씨들이다. 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제주에 들어와 정착했든 그 후손들은 제주에 최초로 정착한 선조를 입도조라 칭하였다. ○ 제주입도조 가운데는 유배된 사람들이 많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조선 개국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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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입두연대는 동쪽으로 정의현지미봉수(직선 거리 5.4㎞), 서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 3.3㎞)와 서로 교신이 가능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동동에서 제주 삼성연합의원으로부터 서남쪽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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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포구. 입두포는 지금의 구좌읍 평대리 외딴 자연마을인 갯마리에 있는 물머리라는 포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입두촌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입두촌이 끼어 있는 해변에 입두포가 있다고 하였다. 입두촌은 구좌읍 평대리 동쪽에 있는 자연마을인 갯마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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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봉우리. 높이는 낮고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야트막한 분화구가 하늘을 향해 둥굴 넙적하게 벌어져 있다. 예로부터 입산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입산악(笠山岳)으로 표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 봉우리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입산 봉수 또는 입산봉(笠山烽)이라 하였다. 봉수를 폐지하면서 입산봉(笠山峰)이라 하여 오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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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입산봉수는 동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 6.0㎞), 서쪽으로는 서산봉수(직선 거리 7.5㎞)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수 24명을 배치하였다. 별방진 소속의 입산봉수는 동쪽으로 무주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입산봉수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해수욕장에서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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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봉우리. 높이는 낮고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야트막한 분화구가 하늘을 향해 둥굴 넙적하게 벌어져 있다. 예로부터 입산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입산악(笠山岳)으로 표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 봉우리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입산 봉수 또는 입산봉(笠山烽)이라 하였다. 봉수를 폐지하면서 입산봉(笠山峰)이라 하여 오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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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봉우리. 높이는 낮고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야트막한 분화구가 하늘을 향해 둥굴 넙적하게 벌어져 있다. 예로부터 입산 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차용 표기에 따라 입산악(笠山岳)으로 표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 봉우리에 봉수를 설치하면서 입산 봉수 또는 입산봉(笠山烽)이라 하였다. 봉수를 폐지하면서 입산봉(笠山峰)이라 하여 오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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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양력으로 2월 4일경에 지내는 세시 풍속.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보통 양력으로 2월 4일이 되는데, 이날부터 새 봄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는 지역에 따라 입춘을 부르는 말이 다르다. 노형동 광평마을에서는 ‘문전멩질’이라고 하는데, 영평동 가시나물마을의 경우 ‘새철 드는 날’로 불렀다. 이외에도 ‘새잇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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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 가시나물마을에서 입춘을 이르는 말. 제주시 영평동 가시나물마을에서는 입춘을 ‘새철 드는 날’로 부른다. 이 날 마을 사람들은 특별히 곤밥[쌀밥]을 해먹고, 하얀 종이에 여러 가지 내용의 입춘서를 써서 집 안 곳곳에 붙이는 ‘입춘축 붙이기’를 한다. 또한 절에 가서 입춘 기도를 드리며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 다른 곳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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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건망증 심한 선비 이야기. 조선시대까지 선비는 평민이나 천민들에게는 감히 올려다볼 수 없을 만큼 고귀하고 높은 존재였다. 그런 선비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한바탕 마음껏 놀리는 이야기가 「잊어버리기 잘하는 선비」이다. 제주시 노형동에 사는 현창준(남)이 구연한 것을 현용준이 채록하여 1996년 출판한 『제주도 민담』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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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 분포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조록나무과의 상록 교목. 전라남도 완도 및 제주도, 남부 해안 지방에 자라는 상록성 교목으로 한라산에는 상록 활엽수림이 남아 있는 계곡이나 숲섬 등의 도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잎에는 조롱이 달린 것과 같은 벌레혹이 많이 붙어 있다. 이로 인해서 조롱나무라 불리었으며, 이것이 변하여 조록나무가 되었다. 제주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