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가림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가림리 고인돌 떼는 가림리 은천 마을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이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의 경사면 말단부에 무리를 지어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주변에 은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덮개돌의 장축 방향은 하천이 흐르는 방향과 같다. 가림리 고인돌 떼 A는 전라북도...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가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가막리 상가막 고인돌 떼는 진안군 진안읍 가막리에 있는 고인돌 떼이다. 가막리 상가막 마을과 마을 남쪽 도로변 구릉에 각각 약 5기와 7기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2기만 확인된다. 고인돌의 형태는 장방형과 부정형이며 고임돌 및 하부 구조는 확인되...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던 신석기 시대의 생활 유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갈두 마을 앞 정자천 변에서 집 터, 적석 노지, 성격을 알 수 없는 구조물 등이 조사되어 전라북도 내륙의 동부 산악 지대에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 터가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갈용리 갈두 유적은 신석기 시대 생활 유적으로 토기에 시문된 문양을 중심으로...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대 터. 갈용리 국사봉 봉수 터는 진안군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금남 정맥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이어진 고대 교통로를 따라 형성된 봉수로 상에 위치한다. 북쪽의 갈용리 조포 봉수 터와 동남쪽의 성주봉 봉수 터와 연결된다. 진안군 정천면 소재지에서 용담호의 서안을 따라 이어진 지방도 4...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던 신석기 시대 생활 터와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갈용리 농산 유적은 1998년 용담댐 2차 발굴 조사에서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 편과 청동기 시대 집터와 붉은간토기 등이 출토되면서 선사 시대 유적이 대규모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용담댐 3차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갈용리 무거 도요지는 A~C 구역으로 나뉜다.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을 근거로 이 도요지는 백자를 생산하던 것으로 보이며 운영 시기는 조선 시대로 추정된다.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상에서 사발, 대접, 접시 등 백자편과...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갈용리 천왕사 대웅전이 있는 조포 마을에서 주천면 운봉리로 가는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갈용리 유물 산포지 B는 조포 마을 앞 조포교 바로 동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갈용리 유물 산포지 A는 조포교로부터 지방도를 따라 약 1㎞ 떨어진 사기골 진입부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전주...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갈용리 조포 도요지는 A·B 구역으로 나뉜다.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을 통해 살펴보았을 때 이 도요지는 백자를 생산하던 것으로 보이며 운영 시기는 조선 시대로 추정된다.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상에서 백자편들이 수습되는...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 기왓가마 터.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와 주천면 운봉리의 경계인 절연재 오른쪽 지점의 밭 경작지에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 기와를 굽던 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해당 유적의 명확한 성격은 파악할 수 없다. 다만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갈현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읍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 안천·무주 방향으로 약 7㎞ 가면 언건리에 다다르게 되고 300m가량 지나면 국도 30호선과 지방도 49호선이 분기하는 곳에 이른다. 지방도 49호선을 따라 약 3㎞ 가면 상전면 회사리 마을을 지나게 되고, 죽도 방향으로 600m 정도 들어가게 되면...
-
조선 후기 문신 진안군 마령면 원동촌 마을의 입향조.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달문(達文), 호는 동강(東崗). 초명은 흠규(欽奎).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中)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강우제(姜遇濟)이고 할아버지는 강주환(姜周煥)이며, 아버지는 강재성(姜在成), 어머니는 영산 김씨(永山金氏)이다. 강아들은 통덕랑 강제한(濟漢)이며, 손자는 강인형(寅馨), 강봉형(鳳馨) 등이...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퇴헌(退軒). 대제학(大提學)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의 손자로 병조 참판(兵曹參判) 강안복(姜安福)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씨로 이효례(李孝禮)와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씨족원류(氏族源流)』에는 혼례를 두 번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실은 성문치(成文治), 후실은 이백창(李伯昌)의 딸이다....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강정리 고인돌 떼는 원강정 마을과 월운 마을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 떼이다. 원강정 마을을 감싸고 있는 광대봉의 남쪽과 서쪽 말단부에 각각 자리하고 있으며, 원강정 고인돌 떼는 7기가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고, 월운 고인돌은 단독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인돌이 있는 마을 앞으로는 섬진강으로 합류한...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산성. 강정리 산성은 마령면 소재지 북쪽에 펼쳐진 새목들 건너편 500여 m 지점의 산봉우리[328m, 320m]를 감싸고 있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삼태기 형으로 둘레는 323m이다. 강정리 산성에서 북서쪽으로 1㎞ 지점에는 합미산성이 있는데 전초 기지인 자성(子城)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은 두 개의 봉우...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거석리 금평 도요지와 관련된 기록이나 문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양상을 볼 때 19세기대에 운영된 백자 가마 유적으로 추정된다. 거석리 금평 도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652-2에 있다. 전주에서 진안 방향의 국도 26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부귀 교차로...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에 있는 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진안군 진안읍 내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부귀면에 다다르면 부귀 교차로에서 지방도 49호선과 전환된다. 지방도 49호선을 따라 약 1.5㎞ 진행하면 부귀면 소재지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북동편으로 500여 m를 가면 상거석 마을과 부귀 중학교를 만나게 된다. 학교 뒤편에 있는 경작지에 근접한 곳...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에 있는 절터.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 원두남 마을[두봉 마을]의 오른편 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두남 사거리에서 정자천을 건너면 원두남 마을[두봉 마을] 입구가 나온다. 여기에 두남 교회가 자리하는데 여기에서 남서쪽으로 정자천을 따라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약 1.6㎞ 따라가면 시멘트 길이 끊기고 임로가 나온다. 이 임로를 따라...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에 있는 봉수대 터. 계서리 봉수 터가 있는 진안군 마령면 일원은 금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로서, 이곳에는 봉수를 비롯한 강정리 산성, 합미 산성 등 고대 관방 유적이 밀집 분포되어 있어 고대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진안군 마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2㎞가량 떨어진 곳에...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계서리 서산 고인돌 떼는 진안군 마령면 서산 마을 뒤편을 감싸고 있는 지류의 말단부에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 지표 조사를 통해 고인돌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고인돌이 있는 서산 마을 주변으로는 섬진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어 다른 지역의 고인돌들과 마찬가지로 하천을 따...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유물 산포지란 지표상에서 뚜렷한 유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일정 범위 내에 유물이 흩어져 있어 옛 선인들의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말한다. 계서리에서는 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 등이 수습되었다. 계서리 유물 산포지는 문화재 통합 GIS 인트라넷 시스템에 ‘계서리 오동 유물 산포지 A...
-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라북도 진안군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무주군과 전라북도 장수군 및 충청남도 금산군을 아우르는 진안고원은 높이 300m 내외의 전형적인 고원 지대로 ‘호남의 지붕’이라고 불리면서 선사 시대 이래로 줄곧 교통의 중심지였다. 진안고원 일대에서는 금강을 중심으로 만경강·동진강·섬진강·남강·황강 유역을 하나로 묶...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진안 지방은 진안현(鎭安縣)·마령현(馬靈縣)·청거현(淸渠縣) 등 세 고을이 전주 계수관 관할 아래 전주와 진례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고려 말에 진안에 감무가 파견되어 마령을 겸하였으며, 청거현은 충선왕 때 용담현(龍潭縣)으로 개칭되어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
-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조선 시대부터 근대까지 소재하고 있거나 생산된 문서류. 고문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 개인과 국가 기관, 국가 기관끼리 주고받았던 각종 문서류로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문서는 문헌과 구별된다. 즉 편집, 편찬된 서적류, 일기류, 비방기, 등록류, 장부류 등과 구별할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조선 시대~근현대 기간 동안 생산된 기...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 이전 무덤. 진안군에는 역사 시대 분묘 유적이 53개소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로 충적지가 발달한 곳이나 백제의 현이 설치되었던 지역에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백제의 행정 치소였던 진안읍에 10개소, 부귀면에 8개소, 마령면과 용담면에 각각 7개소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를 고분의 유형으로 분류해 보면 구덩식...
-
고려 시대 용담 고씨 문인. 선계는 제주 고씨(濟州高氏)이며, 문헌(文獻)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나 본관(本貫) 유래(由來)는 알 수 없다. 고여경(高餘慶)[?~?]은 진안군에 소재하는 용담 고씨의 시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용담편 인물에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다.’고 실려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 용담편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
-
고려 후기 진안에서 활약한 의병. 고윤덕(高允德)[?~?]은 고려 후기 진포를 통해 내륙으로 쳐들어온 왜구가 진안 지역을 약탈하였을 때 염군리(廉君利)와 더불어 현령 피원량(皮元亮)을 도와 용담현의 남쪽에 목책을 세웠다. 그리고 돌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여섯 곳에 돌을 쌓아 놓고서 왜적이 쳐들어오면 돌을 내려뜨려 분쇄하고자 하였다. 적이 이쪽의 방비가 튼튼한 것을 엿보고...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 하나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을 비롯하여 묘역 시설, 무덤방 등을 갖춘 무덤 양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되는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덤일 뿐만 아니라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의 표석,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
고려 후기 진안 용담 출신 무신. 고천백(高天伯)[?~?]은 고려 때 원종과 충렬왕 때에 사신으로 원나라를 내왕하면서 외교를 담당하였다. 일정한 무관직을 맡은 바 없고 비록 계급은 종3품 대장군에 머물렀으나, 원의 고려 간섭기 초기에 사신으로 원을 내왕하면서 대원 외교 관계 정립에 공을 세웠다. 특히, 1274년(원종 15) 장군으로 판각문사(判閣門事) 이신손(李信孫)과...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구룡리에 있는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구룡리 유물 산포지는 진안읍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 상전면 월포리를 거치게 되고 월포 휴게소와 월포 대교를 지나 대략 2㎞ 가다 보면 용담호 쪽으로 세동리가 있다. 구룡리 유물 산포지 A는 세동 마을 내 세동 노인정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구룡리 유물 산포지 B는 세동 마을에서 북...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구신리 상염북 도요지 유적과 관련된 문헌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변천 과정은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17세기에서 18세기의 연대를 갖는 백자 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백자를 생산한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가마터가 있는 곳을 가막골이라 부른다...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고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군상리에는 5곳의 유물 산포지가 분포한다. 노계 마을에 2곳, 학천 마을에 3곳이다. 군상리 노계 유물 산포지 A의 위치는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1064 일원으로 진안 여자 중학교에서 서쪽으로 70m 떨어진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군상리 노계 유물 산포지 B의 위치는 진안군 진안읍 군상...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궁항리 상궁항 도요지는 조선 시대 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 2개소가 존재한다. 이를 상궁항 도요지 A, 상궁항 도요지 B로 지칭한다. 궁항리 상궁항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양상을 통해 17세기에서 18세기 대에 요업 활동이 활발하였을...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궁항리 정수암 도요지는 조선 시대 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 2개소가 존재한다. 이를 궁항리 정수암 도요지 A와 궁항리 정수암 도요지 B라 한다. 궁항리 정수암 도요지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양상을 통해 17세기에서 18세기 대에 요업 활동이 활발...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에 있는 조선 시대 기왓가마 터. 진안군 소태정을 넘어 봉암 교차로에서 궁항리 방향으로 가면 북쪽 끝에 정수암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200m 남짓 떨어진 서쪽 산사면에 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해당 유적의 명확한 성격은 파악할 수 없다. 다만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궁항리 하궁항 고인돌 떼는 부귀면 궁항리에 있는 고인돌 떼이다. 고인돌은 하궁항 마을 주변 구릉의 사면부에 6~7기가 무리를 이루어 분포하며 대부분 흙속에 파묻혀 있어 전체 형태 및 크기 등은 파악하기 어렵다. 궁항리 하궁항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191에 있다. 궁항리...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궁항리 하궁항 도요지는 조선 시대 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 3개소가 존재한다. 이를 편의상 궁항리 하궁항 도요지 A, 궁항리 하궁항 도요지 B, 궁항리 하궁항 도요지 C라 한다. 궁항리 하궁항 도요지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양상을 통해 17세기에...
-
조선 후기 진안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증조할아버지는 영조 때 경연관(經筵官)을 지낸 권상하(權尙夏)이다. 할아버지는 제주 목사 권정성(權定性)이고 아버지는 시강원(侍講院) 자의(諮議)를 지낸 권진응(權震應)이다. 권중립[?~?]의 활동은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문과에 급제하거나 혹은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경력도 없는 듯한데, 진안 현감으로 부임한...
-
조선 최대의 역모 사건이라고 불리는 기축옥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기축년) 10월 2일에 일어났다. 그래서 기축옥사 또는 정여립(鄭汝立)의 난이라고 불리고 있다. 정여립의 자는 인백(仁伯)·대보(大輔), 호는 죽도 선생(竹島先生)이라고 불렸다. 그가 태어난 곳에 대한 기록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주 동문 밖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고, 남문 밖[현 교...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은거했던 최양 자손에게 세종이 내린 책. 『금감록』은 태조가 전주 최씨 최양을 위해 지은 책으로 1424년(세종 6)에 최양 가문에 내렸다. 최양은 포은 정몽주의 조카로서 태조 이성계와는 어릴 적 친구였으며, 1380년 황산대첩에 종사관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정몽주가 1392년 4월에 선죽교에서 죽자 최양은 남쪽 지방 진안에 내려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금당사 대웅보전에 있는 불상. 금당사의 주존 불상이다. 아미타불은 대승 불교 특히 정토 신앙의 주존불로 무량광불, 무량수불이라고 의역한다. 즉 한량없는 광명을 지니고 중생의 번뇌로 일어나는 어둠을 밝히는 그리고 생멸 없는 무한한 생명을 지닌 부처이며 서방 극락 정토의 교주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교리의 불상으로 조성된 진안 금당사...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은거했던 조선 후기 학자 긍구당(肯構堂) 김중정(金重鼎)이 저술한 문집. 『긍구당유고(肯構堂遺稿)』는 긍구(肯構) 김중정(金重鼎)이 저술한 문집이다. 그의 9세손 김태현(金泰鉉)과 김상현(金尙鉉) 등이 모아 1899년에 간행하였다. 책은 권의 구분이 없는 1책으로 된 목활자본이다. 서(序)와 목록(目錄)의 뒤에 상량문(上樑文)과...
-
조선 전기 진안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미숙(微淑), 호는 유산처사(乳山處士). 평장사(平章事) 민의공(敏懿公) 김사의(金思灑)의 손자이고 병조 판서 오매당(寤寐堂) 김만서(金晩緖)의 아들이다. 김만서는 서울 출신으로 처부가 영의정 황보인이다. 김만서는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장인 황보인과 김종서가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자 사직한 후 전주(全...
-
진안 이산묘 영모사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자술(子述), 호는 오매당(寤寐堂).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민의공(敏懿公) 김사이(金思餌)이고 장인은 영의정(領議政) 황보인(皇甫仁)이다. 김만서(金晩緖)[1421~1495]는 1438년(세종 20)에 과거에 급제한 후 안렴사(按廉使)를 지내면서 균공법(均貢法)을 건의하였고, 『용비어천...
-
고려 후기 용담 현령을 지낸 문신. 김봉린(金鳳麟)[?~?]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담현편 ‘명환(名宦)’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공민왕 때 최영(崔瑩)에게 명하여 6도를 순찰하게 하였다. 최영이 지나가는 곳에 번진(藩鎭)의 목사와 수령들이 겁을 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김봉린이 홀로 태연하게 응대하여 넘기니, 도내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당시의 모든 지방...
-
전라북도 진안에서 조선 후기에 활동한 삼의당(三宜堂) 김씨의 시문집. 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은 당호가 삼의당(三宜堂), 본관은 김해이다. 전라북도 남원의 서봉방(捿鳳坊)[현 교룡산 서남 기슭]에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후손 김인혁(金仁赫)의 딸로 태어났다. 1786년(정조 10) 18세가 되던 해에 같은 해, 같은...
-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여류 문인. 김삼의당은 남원에서 태어나 32세 때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살았던 조선 후기의 몰락 양반 여성 문인이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남편에 대한 애정과 기대, 일상생활 속의 일과 전원의 풍치 등을 260여 편의 한시와 문장으로 남겼다. 본관은 김해(金海). 당호는 삼의당(三宜堂). 아버지는 연산군 때의 학자 탁영(濯纓) 김일...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의병. 본관은 사천(泗川). 고조할아버지는 오매당(寤寐堂) 병조 판서 김만서(金晩緖)이고 의병 활동에 동참하여 순절한 죽곡(竹谷) 김정(金精)이 동생이며, 아들로는 김원룡(金元龍), 김형룡(金亨龍), 김이룡(金利龍) 등이 있다. 김수(金粹)[1542~1592]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우계(牛溪)...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의병. 본관은 사천(泗川), 호는 죽곡(竹谷). 고조할아버지가 병조 판서 오매당(寤寐堂) 김만서(金晩緖)이다. 김정(金精)[1544~1592]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무주를 거쳐 금산, 진안까지 점령하고 용담·진안을 친 다음 웅치를 넘어서 전주로 들어가려 하였다. 이에 김정은 형 김수(金粹)와 함께 가...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필(君弼), 호는 이존재(二存齋). 수은공(樹隱公) 김충한(金沖漢)의 18세손이다. 김주현(金奏鉉)[1868~1893]은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문예가 숙성하고 문학으로 유명하여 사림(士林)들의 추존(推尊)을 받았다. 부인 광산 김씨 역시 효성이 지극하여 시부모를 모심에 예를 다하였고 병이 위...
-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은퇴하고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긍구당(肯構堂). 양간공파에 공안공(恭安公)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으로 감찰공파 2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매곡(梅谷) 김충립(金忠立)이다. 김중정(金重鼎)[1602~1700]의 서울 황화방(皇華坊)...
-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금산(錦山). 자는 봉주(奉周), 호는 야양재(也養齋). 금산군(錦山君) 김신(金侁)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김평(金平)이고 할아버지는 김상옥(金相沃)이고 아버지는 김성진(金性眞)이며, 장인은 조영완(趙榮琓)이다. 아들로는 김동현(金東鉉), 김필현(金弼鉉), 김규현(金奎鉉), 김정현(金正鉉) 등이 있으며, 사위로는 김관순(...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진(國珍).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鏡)의 후손으로 직제학 김작(金綽)의 6대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진사 김신경(金信經), 증조할아버지는 김택(金澤)이다. 할아버지는 김윤적(金允迪), 아버지는 통정 김윤보(金潤寶)이며 외할아버지는 이광태이다. 장인은 참봉 이홍이다. 김효남(金孝南)[?~1636]은 진안군에서...
-
삼국 시대부터 767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난진아현(難珍阿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든 이름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의 지명이 난진아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에서 벽계군(壁谿郡)[지금의 장계면] 소속의 현으로 진안...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에 있는 옛 절터. 『진안 군사』에 따르면 “사찰의 명칭은 흔히 정수암(晶水庵)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정확한 창건 연대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간혹 다른 기록에 보이는 내원암(柰院庵)이 아닌가 싶다”라고 하였다. 구한말 이석용 의병장의 『창의록』에도 내원사의 존재가 확인된다. 운장산의 남쪽 부귀면에서 오르...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절터는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내후사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운산리 삼층 석탑에서 마을길인 내후사길을 따라 들어가면 후사 마을 회관 뒤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마을 회관에서 내후사길을 따라 350m 정도 가면 시멘트 길이 끊기는 지점에 양쪽으로 넓은 밭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내후사동 절터이다....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 있는 고분 떼. 노성리 고분 떼는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노채 마을의 남서쪽에 자리한 2개소의 고분 떼이다. 현재는 잡목이 무성하고 일부 밭으로 경작된 상태이며,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노성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산42와 노성리 산55-1에 있다. 노성리 노채 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1㎞...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유물 산포지란 지표상에서 뚜렷한 유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일정 범위 내에 유물이 흩어져 있어 과거 사람의 활동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말한다. 노채 마을 인근에는 7곳의 유물 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이 확인된다.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노채 마...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유물 산포지란 지표상에서 뚜렷한 유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일정 범위 내에 유물이 흩어져있어 과거 사람의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말한다.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안터골에는 4곳의 유물 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이 확인된다. 노성리 유물 산...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원노촌에 거주하는 신용권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원노촌에 거주하는 거창 신씨 신용권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로서 원노촌의 거창 신씨 미계 신의련의 사당 건립을 추천하는 상서류이다. 원노촌은 대대로 거창 신씨의 세거지였는데, 임진왜란 당시 신의련의 효행은 일본인 왜장을 감동시켰다. 이에 왜장은 이곳은...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노촌리 원노촌 고인돌 떼는 원노촌 고분 떼 내에 자리한 고인돌 떼이다. 3기의 고인돌이 구릉 하단부에 군집을 이루며 분포한다. 밭으로 경작 중인 곳으로 흙 속에 파묻혀 전체 형태나 크기 등은 파악하기 어렵다. 노촌리 원노촌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640에 있다. 평장리...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있는 봉수대 터. 진안군 동향면 소재지에서 구량천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2.5㎞가량 가다 보면, 능길 마을이 나온다. 능길 마을의 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국사봉[756.6m] 정상부에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동쪽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과 충청남도 금산군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최단 거리 교통로의 주요 고갯길인...
-
조선 시대 진안현의 남쪽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단령역은 전주에서 장수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원단양 마을로 추정된다. 단령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진안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산 제원도 찰방(錦山濟原道察訪)의 속역으로 역리 19명, 노 22명, 비 4명, 말 5필이 있었다. 17...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단양리 고인돌 떼는 가덕암 마을 주변에 4기가 서로 떨어져 1기씩 단독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 중 고인돌 A의 덮개돌은 개의 형상을 닮은 모양으로, 이로 인해 마을이 가덕암 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으나 아직 정식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은 상태이다. 주변의 진안천 인근...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기왓가마 터. 단양리 와요지는 진안 북부 예술 관광 단지 조성 사업 용지 내에 있다. 2003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는 적심 유구(積心遺構)와 고려~조선 시대 자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조선 시대 와요지 1기가 확인되었다. 단양리 와요지는 진안읍 단양리 외사양...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유물 산포지. 단양리 유물 산포지의 위치는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산 21 일원이다.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에서 진안 IC를 빠져나와 진무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1㎞ 정도 진행하다가 동쪽으로 이어지는 금마길을 따라 가면 원단양 마을이 나온다. 유물 산포지는 원단양 마을 동쪽 끝에 있는 한과 공장의 북쪽 야산의 경사...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절터. 진안읍 단양리에 있었다는 절터로 단양리 마을 회관에서 약 100m 이내의 지점에 위치한다고 한다. 단양리 절터는 『진안군 향토 문화 백과사전』의 내용에서 확인되는 절터이다. 말미에 ‘옛 단령역원 터’로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정확한 위치가 전하지 않는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간행한 『문화 유...
-
조선 시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었던 용담현 달계의 북쪽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달계역은 1803년에 간행된 이재(李縡)의 문집인 『도암 선생집(陶菴先生集)』 권3에 실린 「과달계역(過達溪驛)」 및 1776년에 간행된 이희지(李喜之)의 문집인 『응재집(凝齋集)』 권1에 실린 「달계역도중(達溪驛途中)」이라는 시에 등장한다. 달계역은 금산과 진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에서 살았던 담락당 하립이 남긴 조선 후기 시문집. 『담락당 시집(湛樂堂詩集)』은 하립이 남긴 시문집으로 전라북도 진안과 남원에 관한 시문이 많이 실려 있다. 특히 진안 마이산(馬耳山) 천지탑과 관련한 내용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하립의 부인은 『삼의당고』를 남긴 삼의당 김씨로 담락당과 삼의당은 부부 시인이었다. 마이산 탑영지(塔影...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 있는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대량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유물 산포지로서 2007년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대량리 유물 산포지 지표 조사 당시 다양한 문양의 기와편이 조사되었으며, 대량리 일원에서 2개소의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유물을 토대로 보았을 때 고려 시대에서...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개화동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대불리 개화동 도요지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사용된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대불리 개화동 도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999에 있다.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32호를 따라 가면 국민 관광지로 유명한 운일암 반일암이 있다. 운일암 반일암에서 주자천을...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대불리 고인돌 떼는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개화동 마을과 신기 마을에 있다. 마을들 앞으로는 주자천이 남-북으로 흐르는데, 하천변과 인접한 곳에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개화동 고인돌의 형식은 알 수 없으며, 신기 마을에는 개석식 고인돌과 기반식 고인돌이 혼재되어 있다. 대불리 고인돌 떼는...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독자동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주화산에서 부소산 북쪽 백마강 선착장 옆 조룡대까지 뻗은 길이 126㎞의 산줄기가 금남 정맥이다. 금남 정맥의 고봉인 운장산은 동봉과 서봉, 상봉 등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운장산 상봉 북쪽 기슭 하단부에 독자동 마을이 있으며, 운장산 북쪽 솔쟁이 골과 북도봉 골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대불리 장등 도요지는 장등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2개소의 조선 시대 도요지로 15~17세기로 추정된다. 대불리 장등 도요지는 금남 정맥에 자리한 진안 태평 봉수 남쪽 기슭 하단부에 대불리 장등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북서쪽에 작은 싸리재가 있는데,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금남 정맥의 운장산에서 복두봉을 거쳐 구봉산까지 이어진 산줄기가 진안군 주천면과 정천면 경계를 이룬다. 대불리 중산 도요지는 운장산과 복두봉 사이 중앙부 북쪽 기슭 말단부에 있다. 대불리 중산 마을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주자천과 인접된 구릉지에 대불리 중산 도요지 A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으...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 시유 도기 생산 가마터. 덕천리 신동 도요지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된 유물의 양상을 통해 조선 시대에 요업 활동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신동 마을은 놋그릇을 생산하였던 곳이라고 전한다. 덕천리 신동 도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생산 가마터. 덕현리 내동 도요지는 내봉 마을 주변에 자리하는 도요지로 A와 B 두 곳으로 나뉜다. 유구는 경작과 주변의 도로 개설로 인하여 상당 부분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상에서 회청색 백자 조...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는 질그릇이나 사기 그릇 또는 기와 따위를 굽는 가마가 있던 옛 터. 광의의 요지(窯址)는 가마를 이용하여 토기·기와·철·숯·도기·옹기·자기 등을 생산하였던 유적을 말한다. 협의로는 도요지(陶窯址)로, 토기·도기·자기를 생산하였던 유적으로 한정할 수 있다. 진안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요업 생산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진안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도통리 양지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출토된 유물의 양상을 볼 때 고려 초기에서부터 12세기 초반까지 청자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진안군 성수면 소재지에서 외궁 교차로를 지나 마령면 방향으로 약 2㎞ 정도 가면 도통리 중평 마을이 나온다. 성수면 양지 도요...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에 있는 고분 떼. 동창리 고분 떼는 원동창 마을의 북쪽 구릉에 위치한다. 구릉의 정상부에 낮은 봉분 수기가 남아 있으며,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일부 확인된다. 종래 지표조사 시 청동기 시대 토기편이 수습되어 청동기 시대의 생활 유적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보고된 바 있다. 동창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유적. 동촌리 고분 떼는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 떼이다. 낮은 봉분이 여럿 확인되었으며, 고분의 측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들도 보인다. 동촌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산56-1과 동촌리 산71과 동촌리 산13-1에 있다. 이는 동촌리 원동촌 마을 주변에 해당...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도기소(陶器所) 한 곳이 “마령현 동쪽 동촌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원동촌 도요지는 이 기록과 무관하다. 도요지에서 확인된 유물 양상을 볼 때 17세기에서 18세기에 요업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촌리 원동촌 도요지는 전라북도...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두남리 고인돌은 2006년의 지표 조사로 처음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 두남리 고인돌은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 39에 있다. 옥녀봉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두남리에서 국가 지원 지방도 49호선을 따라 월평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정자...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두남리 삼봉 도요지에 관한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된 유물의 양상을 볼 때 늦어도 19세기에는 요업 활동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남리 삼봉 도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 산67임에 있다. 전주·진안 간 국도 26호선에 있는 부귀 교차로에서 정천 방향...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두남리 회신 고인돌 떼는 부귀면 두남리 회신 마을 북쪽편의 구릉 말단부에 있는 유적이다. 하천과 같은 방향인 동-서 방향으로 고인돌 4~5기가 나란하게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다.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 흙 속에 파묻혀 있어 형태나 크기 파악이 어렵다. 두남리 회신 고인돌 떼...
-
삼국 시대부터 1018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마돌현(馬突縣)이라는 이름에서 ‘마’는 크다 혹은 높다는 뜻이다. 이때의 ‘마’는 ‘머리’를 뜻하여 ‘마리’·‘모리’·‘모래’라고도 하며 줄여서 ‘말’·‘몰’이 된다. ‘돌’은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는 마돌을 마진(馬珍)·마등량(馬等良)으로 불렀다고 기록...
-
757년부터 1412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마령현(馬靈縣)은 마돌현(馬突縣)의 개칭된 이름이다. ‘마’는 크다 혹은 높다는 뜻이다. 이때의 ‘마’는 ‘머리’를 뜻하여 ‘마리’·‘모리’·‘모래’라고도 하며 줄여서 ‘말’·‘몰’이 된다. ‘돌’은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는 마돌을 마진(馬珍)·마등량(馬等...
-
전라북도 진안군 남부 마이산에 소재한 이산묘(駬山廟) 옆 암벽에 각자된 인명록. 1924년에 고을 선비들이 한말 유학자 송병선과 최익현의 사당을 건립하기 위하여 성금을 거둘 때 협조한 인사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마이동천 암벽에 그들의 성명을 새겼다. 이것이 당시 성금을 거두는 방책이기도 했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에 있다. 호남 고속 도로를...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은수사에 있는 제사 유적. 마이산은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까지 소사(小祀)의 대상으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서다산(西多山)이 백해군(伯海郡) 난지가현(難知可縣)에 있다고 했으며, 『고려사』에서도 진안현의 마령에 “마이산이 있는데 신라에서는 서다산이라 불렀으며 소사에 실었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마이산의 옛...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에 있는 봉수대 터. 진안군의 서쪽은 주화산 부터 이어진 금남 정맥의 산줄기가 자연 경계를 이룬다. 금남 정맥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남북 방향의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삼국 시대 금강 상류 지역에서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부여로 나아가기 위한 최단 거리 교통로로 중요성이 매우 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교통...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중리 마을에 있는 남학의 김용배가 각자하였다는 석실 제명. 「명불암」 각석은 김용배가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5년 진안 향교에서 펴낸 『진안지(鎭安誌)』에 “주천면 대불리 중리 안산 북쪽 기슭에 있다. 명봉(明奉) 김용배(金庸培)가 그 아래에 은거하여 도를 닦고 행실을 독실히 하면서 바위 위에 ‘명불암(明佛...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에 있던 조선 후기 기왓가마 터. 모정리 두곡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는 유적으로 1996년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가마 1기가 확인되었으나 소성부만 일부 확인되었다. 모정리는 운장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 금강 상류에 합류하는 정자천 서쪽...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무덤 유적. 모정리 망덕 유적은 2000년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 4차 발굴 조사에서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조사된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 고인돌 18기와 돌널무덤 5기가 조사된 유적이다. 망덕 유적의 고인돌은 묘역을 갖추고 그 중앙에 매장 시설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묘역은 서로 접하고...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모곡 마을에 있던 청동기 시대 무덤 유적. 모정리 모곡 유적은 1996년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 1차 발굴 조사에서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사된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 고인돌 6기와 돌널무덤 2기가 조사되었다. 개별 묘역이 연접되어 집단 묘역을 구성하는 특징은 인접한 모정리 여의곡 유적, 모정리 망덕 유적의 고인돌과...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마을에 있던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현재 송풍리에 있는 여의곡 고인돌 떼는 본래 용담댐 수몰 지구인 모정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이다. 2000년 6월에 용담댐 수몰 예정 지구 3차 발굴 조사가 완료되면서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인정되는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고인돌 떼와 안천면 안자동 고인돌을 용담댐 주변 송풍리 자연 학습원으...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마을에 있던 청동기 시대 복합 유적. 모정리 여의곡 유적은 2000년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진안 용담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 3차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복합 유적으로 주거지·무덤·전작지·구상 유구·덮개돌 이동로·집석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대규모의 복합 유구 양상으로 보아 당시 금강 상류...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에 있던 선사 시대 유적지. 모정리 진그늘 유적은 1995년과 2000년~2001년에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 유적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구석기 시대 생활 터, 신석기 시대 집 터, 청동기 시대 집터 1기와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으며, 전라북도 최초로 대규모 구석기 유적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모정리...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된 창녕 성씨 가문의 고문서. 「무거 창녕 성씨 고문서」는 1765년부터 1899년까지 작성된 30장의 호구 단자 및 준호구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 3년마다 호적을 작성했는데, 호주는 자신의 가족 상황과 변동 유무를...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대 터 진안군 서쪽의 자연 경계를 이루고 있는 금남 정맥의 산줄기를 따라 한 갈래의 봉수로가 이어지는데, 이 봉수로는 진안 운장산 봉수를 시작으로 충남 금산의 매봉 봉수까지 연결되어 있다. 무릉리 봉수 터는 이 봉수로 상에 분포되어 있는데, 동쪽으로는 진안의 성치산 봉수 터와 서북쪽으로는 태평 봉수대, 북쪽으...
-
삼국 시대부터 767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동향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물거현(勿居縣)은 기록의 미비로 지명의 유래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오늘날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용담면·동향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에 해당하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물거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고분 유적. 물곡리 고분 떼1은 상도치 마을의 동쪽 구릉에 자리한다. 정상부와 사면부에 낮은 봉분 3~4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잡목이 무성하고 일부 민묘가 들어서 있다. 물곡리 고분 떼1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 산51-1 일원에 있다. 물곡리 상도치 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고분 유적. 물곡리 고분 떼2는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 산75와 물곡리 산71에 있다. 하도치 마을의 남쪽 구릉에 해당한다. 정상부와 사면부에 낮은 봉분 몇 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잡목이 무성하고 일부에는 민묘가 들어서 있다.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 하도치 마을에서 남쪽으로 300m 정도...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물곡리 고인돌 떼는 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이다. 천변 주위에 형성된 구릉에 6~7기가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다른 지역의 덮개돌 규모에 비해 비교적 소형에 해당하며 좁은 공간에 밀집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석식 고인돌과 기반식 고인돌이 모두 발견...
-
조선 전기 진안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백춘(伯春), 호는 태천(苔泉). 시호는 경정(景靖). 증조할아버지는 첨정(僉正) 민규(閔珪)이고, 할아버지는 장원(掌苑) 민종윤(閔宗胤)이고, 아버지는 부정(副正) 민사권(閔思權)이고 어머니는 노인(盧禋)의 딸이며, 부인은 감찰(監察) 정희린(鄭姬隣)의 딸 온양 정씨이다. 첫째 아들은 민성(閔垶)이고, 둘째 아들은 민...
-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응(聖應), 호는 주천(朱川)·만곡(晩谷). 판결사(判決事) 박적손(朴迪孫)의 후손이고 박초옥(朴楚玉)의 아들로 어머니는 우주 황씨(紆州黃氏)이다. 박서(朴瑞)[1707~1765]는 1746년(영조 22)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전주에서 진안의 용담군 주천면 주양리로 찾아왔고, 주천에서 『중용...
-
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신숙(愼叔), 호는 청재(靑齋), 시호는 충정(忠貞). 할아버지는 박침(朴忱)이고 아버지는 박강생(朴剛生)이며, 어머니는 윤승경(尹承慶)의 딸이다. 박심문(朴審問...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능계(菱溪), 자는 중오(仲吾). 증 이조 참의 박윤무(朴允茂)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박정수(朴禎壽)이다. 박제대(朴齊大)[1759~?]는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성리학을 배웠으며 공부에 몰두하여 마을의 후진 교육에 힘썼다. 49세 때인 1840년(헌종 6)에 식년시에서 진사 3등...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숭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천경(天經), 호는 임회당(臨淮堂). 고려 수절신 박힐(朴詰)의 고손이며 초산 군수 박린(朴麟)의 아들이다. 박힐이 금산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 세거하였다. 반남 박씨 집안이 진안 지역에 들어오게 된 것은 박희권의 6세손 박지영이 임진왜란 때 난리를 피해 현재의 진안군...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반송리 도요지는 조선 시대 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 2008년 전북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발견된 유적이다. 반송리 백자 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변천 과정은 파악할 수 없다. 진안군 백운면 소재지에서 동창리 방향으로 약 400m 가면 동창리 삼거리가...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두원 마을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시대 자기 가마터. 반송리 두원 도요지는 청자·분청사기·백자를 생산하던 자기 생산 가마터이다. 가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시대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속적인 경작으로 인해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고분 유적. 반월리 고분 떼는 원반월 마을의 동쪽 구릉에 자리한 고분 유적이다. 사면부에 낮은 봉분 몇 개가 남아 있으며, 남쪽으로 인접하여 원반월 유물 산포지가 있다. 돌덧널무덤로 추정되는 고분이 노출되어 있다. 반월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반월리 산61-1에 있다. 반월리 원반월 마을에서 남쪽으로...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반월리 고인돌 떼는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진안천을 따라 원반월 마을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고인돌은 산의 말단부에 각각 1기씩 4개소에 단독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고인돌의 형식은 지석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개석식으로 보인다. 반월리 고인돌 B·C는 장축 방향이 하천이 흐르는 방향과 같다....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유물 산포지로서 산포지 내에 삼국 시대 유물인 회청색 경질 토기편과 조선 시대 유물인 백자편이 수습되었다. 유물 산포지 내에 생활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에서 진안 IC로 나와 진무로를 따라 남쪽으로 50m가량 진행하다가...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백운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백암리 백운동 고인돌 떼는 10여 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룬 고인돌 떼이다. 형태는 부정형이며 모두 대형에 속한다. 장축은 하천과 동일한 동-서 방향이다. 주변 밭을 개간하면서 대부분 이동된 것으로 여겨지며 하부 구조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백암리 백운동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백암리 번암 고인돌 떼는 진안군 백암 마을 입구 당산목 아래에 있다. 2기의 고인돌이 나란히 놓여 있으며, 평면 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을 띠고 덮개돌의 상면이 편평하다. 덮개돌에는 성혈이 확인된다. 고임돌이나 하부 구조 등은 확인되지 않으며 고인돌 주변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백암리 번암...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도요지는 주변에서 확인되는 유물을 근거로 조선 시대 백자를 생산하던 것으로 보인다. 유물이 지표에서 상당량 확인되나 경작과 주변에 도로가 개설되면서 훼손이 심각한 상태이다.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상에서 백자 조각과 도침 등이 수...
-
고대 진안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백제의 변방이라는 단순한 인식 속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 용담댐 수몰 예정 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확인됨에 따라 진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특히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있는 와정 토성과 인근의 월계리 황산 고분 떼, 삼락리 승금 유적 등에서 백제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상에서 백자편과 요벽 등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추정할 수 있다.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 위치한 도라 마을 회관에서 서쪽으로 70m가량 떨어진 지점에 있고 있...
-
1636년(인조 14)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의병이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북방에서 누루하치[努爾哈赤]가 여진을 통합하여 후금(後金)을 건설하고 1627년(인조 5)에 조선을 침입하자 무방비 상태였던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되었다. 이것이 정묘호란(丁卯胡亂)이다. 이후 후금은 세력을 더욱 확대하여 조선...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烽燧)는 횃불인 봉(烽)과 연기인 수(燧)를 이용해 중앙이나 변경에 긴급한 정보를 알리던 통신 방법으로,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역마나 사람을 통한 연락보다 신속한 전달이 가능했기 때문에, 전기 통신이 들어오기 이전의 전근대 국가에서는 중요하면서도 보편적인 통신 방법이었다. 봉수는 평상시...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에 있는 봉수대 터.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와 진안군 부귀면 신정리를 잇는 구 지방도는 금남 정맥의 고갯길인 모래재를 통과한다. 봉수대는 모래재 휴게소의 맡은 편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623m]에 자리하고 있다. 모래재 휴게소에서 북쪽 계곡부를 이어진 소로와 임로를 통해 진입할 수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봉암리 원봉암 도요지는 조선 시대 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 2개소가 존재한다. 이를 봉암리 원봉암 도요지 A, 봉암리 원봉암 도요지 B라고 한다. 봉암리 원봉암 도요지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없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된 유물의 양상을 볼 때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요업 활동이 이루어졌던...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봉수대 터 봉우재 봉수는 진안고원과 장수 분지·장계 분지를 이어주는 고대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의 서쪽에 있는 봉우재는 장수군 천천면 일원에서 금강의 본류를 따라 공주, 부여, 금산 등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교통이 요지이며, 남쪽에 있는 색고개는 장수군 장계면 일원에서 진안, 전주 등으로 진출...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상에서 백자편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추정할 수 있다. 봉학리 마조 도요지는 진안군 정천면에 위치한 마조 마을을 북서쪽에서 감싸고 있는 높이 500m가량의 야...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에서 지방도 795호선을 따라 정천면 소재지 입구에 있는 정천 농협에서 서쪽으로 500여 m 가면 조림 초등학교 앞뜰에 펼쳐져 있는 농경지에 유물 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다. 봉학리 유물 산포지 A는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 493 일대에 자리하고 있고, 봉학리 유물 산포지 B는 정천...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있는 봉수대 터. 봉화산 봉수 터가 위치하는 진안군 용담면 일원은 진안고원을 통해 금산·대전 등으로 진출하는 남북 교통로와 금강의 지류인 무주 남대천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이어진 교통로가 만나는 곳으로 지리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특히 봉화산 봉수의 서쪽에 있는 솔재는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을 잇는 매우...
-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 놓은 것.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石碑)·목비(木碑)·철비(鐵碑) 등으로 분류되지만, 현존하는 기념물 형태의 비는 거의 모두 석비이다. 석비는 형태에 따라 위가 네모난 형태의 비(碑)와 위가 둥근 형태의 갈(碣)로 나눌 수 있으나 총칭하여 비갈(碑碣)이라고 하며, 내용에 따라 탑비(塔...
-
고구려·백제·신라가 정립했던 시대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진안 지역에 대한 기록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사기』인데, 이 역시 시기는 백제 말 이후부터로 한정되며, 또한 내용면에서도 매우 단편적 사실만을 기록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금의 진안군은 당시 백제의 영토로서 난진아현(難珍阿縣) 또는 난지가현(難知可縣)으로 불렸다. 백제가 멸망하...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구곡 마을에 있던 청동기 시대 무덤 떼. 삼락리 구곡 고인돌 떼는 1996년에 발굴 조사된 안천면 일대의 대표적인 고인돌 떼이다. 세 지점에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두 곳에서만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한 곳에서는 10기의 고인돌이, 다른 한 곳에서는 8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곡간 평지에 조성되었다. 이들 고인돌은 방...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유적. 삼락리 구곡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립 전주 박물관에 의해 1996년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는 A·B·C의 3개 지역으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A 지역에서 고인돌 10기, B 지역에서 주거지 3기, C 지역에서 고인돌 8기가 확인되었다. 삼락리 구곡 마을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유적. 삼락리 수좌동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립 전주 박물관에 의해 1998년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된다. 삼락리 수좌동 유적은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수좌동 마을에 있다. 구곡 유적의 남쪽으로, 서쪽으로 뻗은 300m의 구릉...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승금 마을에 있던 조사된 청동기~삼국 시대 무덤 유적. 삼락리 승금 유적은 1993년에 발간된 『진안 용담댐 건설 수몰 예정지 문화재 정밀 지표 조사 보고서』에는 보고되지 않았던 유적으로, 연장 조사에서 추가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 발견 당시 철거된 민가 잔해 속에서 고인돌의 덮개돌이 확인되어 확장 조사가 이루어졌고, 조사 결과...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 마을에 있던 청동기 시대 유적. 삼락리 안자동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립 전주 박물관에 의해 1996년 용담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 1차 발굴 조사 때 확인되어 고인돌 11기가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안자천을 따라 분포하고 있으며, 단독 무덤 2기와 연접 무덤 9기로 구분된다. 삼락리 안...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풍암 마을에 있던 청동기 시대 유적. 삼락리 풍암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000년 용담댐 수몰 지구 문화 유적 3차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고인돌 16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단독 무덤과 인접 무덤으로 구분되어 축조되었고 인접해 있는 안자동 유적과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옛 서원인 삼천 서원의 건립 경위와 제향 인물에 대해 기술한 비이다. 삼천 서원은 원래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 산 1-1에 있던 옛 서원으로, 1667년(현종 8)에 용담 현령 홍석(洪錫)이 창건하여 안회(顔回), 정호(程顥), 정이(程頤), 주희(朱熹), 제갈량(諸葛亮) 등 중국의 현인(賢人)들을 배향하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는 절터. 상양명 절터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창건 시기 및 사찰의 운영 시기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에서 수습되는 기와의 문양과 자기 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시대에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천황사가 있는데 본래 상양명 절터에 있던 것...
-
조선 시대 진안군에 거주하면서 생원시 또는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 조선 시대의 과거는 대과(大科)[문과(文科)], 무과(武科), 소과(小科)[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진사(進士)], 잡과(雜科) 등으로 나뉜다. 과거는 3년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설되는 식년시(式年試)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치렀던 비정기시(非定期試)로 나눌 수 있는데, 비정기시에는 증광시(增廣試), 별...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칼·도끼 따위의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석기 시대는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도구를 만든 재료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가장 앞선 시기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시대이다. 구석기·신석기 시대, 혹은 구석기·중석기·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석기 제작 기술은 세계 각지에 존재하며 모든 인류가 이 단계를 거쳤을 것으...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 시대의 역사. 선사 시대는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말하며 세부적으로 구석기·중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를 포함한다. 진안 지역에서 전라북도 최초로 구석기 시대 유적[모정리 진그늘 유적]이 발견되었으므로 이른 시기부터 진안을 비롯한 전라북도 내륙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추정된다. 진안 지역에서는 용담댐 건설과 관련...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된 고대의 방어 시설. 전라북도 진안군 내 성곽은 삼국 시대의 산성과 통일 신라 시대의 평지성 등이 있으며, 축성 재료에 따라 석성과 토성 등으로 분류된다. 진안 지역에는 백제 때 난진아현(難珍阿縣)[진안읍], 물거현(勿居縣)[용담면], 마돌현(馬突縣)[마령면]이 있었던 곳으로 이들의 치소성과 더불어 교통망이 확...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성남리 산성은 자연 지형을 고려하여 협축과 내탁을 겸용한 포곡식의 석성으로 둘레는 약 400m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서벽이 남-북으로 길고 동쪽은 계곡을 감싸고 있는 Β 자형에 가깝다. 성 내부에서는 호형 토기, 시루, 파수부, 발형 토기, 병형 토기, 대각 등의 토기 편과 기와 편 등이 수습되었다....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하리 성묘산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성뫼 산성은 진안 백운면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진안천과 마이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소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동쪽 성묘산[361.9m] 정상에 있다. 성의 형태는 배[舟] 모양으로 둘레는 479.5m이며, 테뫼식 석성으로 추정된다. 성 내부에는 너비 4m의 토루가 있으며, 남문과 북문이 있고...
-
전라북도 진안군 옥천사에 배향된 고려 말 조선 초기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修), 호는 독곡(獨谷). 시호는 문경(文景). 할아버지는 판도 총랑 성군미(成君美)이고, 아버지는 부원군 성여완(成汝完)이다. 어머니는 밀직사지신사(密直司知申事) 나천부(羅天富)의 딸이다. 동생인 성석용(成石瑢)과 성석연(成石烟)은 각각 보문각 대제학(普文閣大提學)과 예조 판서...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창녕 성씨 종중 소장의 성석린 좌명공신 왕지. 고려 시대 말과 조선 시대 초기 문신이었던 성석린(成石璘)에게 내려진 왕지(王旨)로 1983년 5월 7일 보물 제746호로 지정되었다. 성석린(成石璘)[1338~1423]은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급제, 국자학유(國子學諭)의 벼슬을 받고 승진하여 사관(史官), 이어 예문관(藝文...
-
조선 전기 창녕 성씨 진안 입향조. 본관은 창녕(昌寧). 진안에 세거하는 창녕 성씨의 입향조(入鄕祖)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이고 할아버지는 창사군 성구수(成龜壽)이고 아버지는 군수(郡守)를 지낸 성계종(成繼宗)이다. 성세필(成世弼)[?~?]은 조선 초기에 대동 찰방(大同察訪)을 지낸 인물이다. 원래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1456년(세...
-
전라북도 진안군 옥천사에 배향된 고려 말 조선 초기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초명(初名)은 한생(漢生), 호는 이헌(怡軒). 시호는 문정(文靖).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시조(始祖) 성인보(成仁輔)의 현손(玄孫)으로 할아버지는 전객사 부령(典客司 副令)을 지낸 성공필(成公弼)이고 아버지는 판도 총랑(版圖摠郞)을 역임한 성군미(成君美)이다. 어머니는 삼사 좌윤(三司左尹...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주천면 대불리 새터 마을 남서쪽의 높이 787m의 성재산 정상부에 있고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이 산성은 산 정상부 주위를 두른 테뫼식 산성이며, 둘레는 약 700여m로 추정된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 자료를 인용한 『전라북도 문화재 관리 대장』에는 ‘둘레...
-
전북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 성주봉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 터. 성주봉 봉수 터는 진안에서 충남 금산을 잇는 고대 교통로를 따라 형성된 봉수로 상에 분포되어 있으며, 동북쪽의 국사봉 봉수, 서쪽의 매봉 봉수, 동향면 국사봉 봉수와 연결된다. 용담호의 남쪽에는 진안과 무주를 잇는 국도 30호 상의 월포 대교가 동-서 방향으로 관통한다. 봉수 터가 위치한...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대 터 진안고원의 서쪽 자연 경계를 이루는 금남 정맥의 산줄기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남북 방향의 교통로가 이어지는데, 성치산 봉수 터는 이 교통로를 따라 형성된 봉수로 상에 분포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용덕리 산성, 성치산성과 마주하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봉화산 봉수 터와 연결된다. 진안군 주천면...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세동리 고인돌 떼는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웅치골 마을에 있는 고인돌 떼이다. 지표 조사에서는 본래 6~7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현재는 3기만 남아 있다.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 세동리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산215-1에 있다. 웅치골 마을 앞에서 덕봉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세동리 대곡 도요지에 대한 문헌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발견된 유물의 양상을 통해 늦어도 19세기에는 요업 활동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동리 대곡 도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1072-1전과 세동리 1072-2에 있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진안 방향의 모래...
-
조선 전기 진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윤일(允一), 호는 월계(月溪). 퇴휴재(退休齋) 송보산(宋寶山)의 후손이며 고조할아버지는 부사(府使) 송공선(宋公善)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목사(牧使) 송지은(宋之殷)이고 할아버지는 적순 부위(迪順副尉) 송유경(宋裕景)이고 아버지는 송맹현(宋孟賢)이다. 외할아버지는 참봉 조원우(趙元佑)이고 자인은 진사(進士) 박찬(朴纘)이다....
-
조선 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정계 은퇴 후 처향(妻鄕)인 전라북도 장수로 낙향한 후 장수와 진안 일대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인(大仁), 호는 퇴휴재(退休齋). 숙의공(肅毅公) 송경(宋卿)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성 송광언(宋光彦)이고 아버지는 화녕부(和寧府) 소윤(少尹)을 역임한 송흥도(宋興道)이다. 장인은 판서(判書) 백형(白荊)이다....
-
전라북도 마령면 강정리 월운 마을 구산사 경내에 있는 신도비. 송보산(宋寶山)[1432~1504]의 자는 대인(大仁), 호는 퇴휴재(退休齋),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고조는 송경(宋卿)이고, 증조는 송훈(宋勛)이며, 조부는 송광언(宋光彦)이고, 아버지는 송흥도(宋興道)이다. 송보산 신도비는 1949년에 건립되었다.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의 입향조 중...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고분 유적. 송풍리 고분 떼1은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방화 마을 일원에 위치한 고분 유적으로서, 2개소로 나뉘어져 있다. 낮은 봉분들이 확인되며, 도굴의 흔적도 있다.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고분의 축조 시기를 파악하기 어렵다. 송풍리 고분 떼1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산330-2와 송풍리 산228에 있다...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유적. 송풍리 고분 떼2는 북에서 남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 지류의 남쪽 사면부에 자리한다. 3기의 고분이 드러나 있는데 입지와 구조를 보아 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송풍리 고분 떼2는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산172-1에 있다. 진안군 용담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800m 정도 떨어진 거리...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고려 시대 가마터. 지표에서는 청자를 비롯한 생산 도구가 확인되며, 수습된 유물로 보아 이 도요지는 고려 시대에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경작 활동으로 인해 현재에도 지속적인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지표상에서 청자 편과 도침 등의 생산 도구 일부가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청자를 생산하던...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던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송풍리 방화 도요지2는 조선 시대 백자를 제작하였던 가마터이다. 현재 송풍 저수지에 수몰되어 있다. 물이 마르는 시기에는 도요지가 드러난다. 송풍리 방화 도요지2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도요지가 위치한 송풍 저수지 일대를 점골이라고 부른다....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 가마터. 방화 마을 옹기 요지는 우리나라 모든 계층 어디서든 사용하던 옹기를 굽던 가마터로서 조선 시대에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화 마을 옹기 요지는 이미 독자적인 생활 경제 문화권을 형성하였던 조선 시대 용담현에서부터 금산까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소비처를 두고...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삼국 시대 토기 요지. 송풍리 방화 토기 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1677-4 일대의 A 구역과 송풍리 804-10 일대의 B 구역으로 나뉜다. 지표상에서 수습된 유물을 통하여 모두 삼국 시대 토기를 생산하던 요지로 추정된다. 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방화 마을 인근에 유물 산포지가 있는데, 송풍 저수지 서북쪽과 방화 마을 서쪽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송풍리 방화 마을에는 2곳의 유물 산포지가 있다.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방화 마을에서 서쪽 산기슭과 맞닿아 있는 곳에 한 곳[B]이 있으며, 방화 마...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용담면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350m 정도 떨어진 밭에 새말 유물 산포지 A·새말 유물 산포지 B가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한편 노온 유물 산포지는 송풍리 일원에 위치하는데, 노온 마을 남동쪽 약 50m 거리에 있는 밭과 농로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진안읍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 상전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인공 습지 지구와 산전교를 거치게 되고, 이어서 비석거리를 지나 약 1㎞쯤 가면 수동리 마을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마을 입구 맞은 편 야트막한 구릉이 형성되어 있는 곳에 수동리 유물 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는 고려·조선 시대 분묘 유적. 수천리 고분 떼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에 걸쳐 조성된 고분들이 모여 있는 유적이다. 용담댐 수몰 지구 내의 유적들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성격이 밝혀졌다. 수천리 고분 떼의 고분들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출토된 유물도 양질이어서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지방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었던 절터.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던 절터로 남산의 서쪽 중턱에 자리하며, 주자천이 흘러 들어오는 가파른 기슭의 산전이 조선 중엽까지 있었던 절터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 용담댐으로 수몰되었다. 용담댐 수몰 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질 때 이 수천리 절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천리 절터에 대한...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수항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떼. 수항리 고분 떼는 진안군 부귀면 수항리 야산 일대에 자리한 고분 떼이다. 2006년 지표 조사 결과 확인되었으며, 고분의 석재들이 민묘나 축대를 만들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식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성격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수항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수항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수항리 신기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변천 과정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곳의 지명이 사기점골인 것을 볼 때 이 일대에서 집단적으로 도자기 생산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17세기에서 18세기의 백자 조각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운영된 백자 생산 가마...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신괴리 괴정 도요지는 괴정 마을 일원에 자리한 도요지로 주변에서는 백자편과 요도구가 상당량 수습된다. 앞으로 유적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이 지역의 도자 문화를 밝히는 데 있어 좋은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지표상에서 백자편과 도침, 요벽 등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괴정 마을 인근에는 총 2곳의 유물 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삼국 시대와 조선 시대 유물이 확인된다. 괴정 새마을 회관에서 진무로를 따라 서남쪽으로 1.3㎞가량 이동하면 길 좌측으로 둘레티골이 자리한다. 둘레티골에 신괴리 유물 산포지 A가 자리하는데 인근에는 양계장이 있으...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유물 산포지란 지표상에서 뚜렷한 유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일정 범위 내에 유물이 흩어져 있어 선인들의 활동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말한다.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 지사 마을 인근에 신괴리 유물 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다. 신괴리 유물 산포지는 4곳에 분포하고 있다. 지사 마을 회관에...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에 있던 고분 유적. 신기리 고분 떼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전주 문화 유산 연구원에 의해서 발굴 조사가 시행되었으나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신기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 산13에 있다. 임실군 관촌면 사선대의 사선 1길에서 우회전하여 200m 이동한 후 좌회전하여 섬진강을 따라 2㎞ 정도 이동...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및 삼국 시대의 유물 산포지. 신기리에 자리하고 있는 유물 산포지는 2개소로 확인되었으며 다양한 유물들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생활 유적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신기리 유물 산포지 A는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 431-1 일원에 자리하고 있다. 성수면 좌산리에 자리하고 있는 좌산 보건 진료소에서...
-
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숙존(淑尊), 호는 성계(城溪).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신기(辛麒)이다. 신성식(辛成式)[?~?]은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조정이 서울을 지키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벌여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당시 옥과 현감(玉果縣監)인 이흥발(李興渤), 대동 찰방(大同察訪)인 이기발(李起渤), 순창...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신송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신송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유물 산포지로서 3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기와, 토기, 옹기편 등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생활 유적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송리 유물 산포지 A는 진안군 동향면 신송리 1277 일원, 신송리 내유곡 마을로 들어오...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대전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신암리 대전 고인돌 떼는 신암리 대전 마을 서쪽 구릉 밭에 3기가 무리를 이루며 분포한다. 형태는 부정형이며 장축은 고인돌 옆으로 흐르는 하천과 동일한 동-서방향이다. 3기 중 1기는 이동된 것으로 보이며, 주위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다량 분포하고 있다. 신암리 대전 고인...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유물 산포지. 신암리 유물 산포지는 화암 저수지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의림사가 실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절터는 저수지에 수몰되어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 수습되는 건물지 관련 유물을 통해 절터와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 자리한 조선 시대의 백자 생산 가마터.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서 확인된 도요지이다. 지표에서 조선 시대의 백자 조각과 각종 요도구가 확인되었는데 본격적인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향후 다각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진안 지역의 도자 문화 연구에 훌륭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고분 유적. 신양리 고분 떼는 상성암 마을의 북서쪽을 감싸고 있는 지류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자리한 고분 떼이다. 지표 조사만 시행되고 정식 발굴 조사는 시행되지 않아 무덤의 형태 등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규명하기 어렵다. 도굴 행위가 자주 발생하여 고분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신양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주...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방면으로 가면 용덕리 미적동 마을 못 미쳐서 큰곰뱅이 골 입구에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가 있다. 전북 진안군과 충남 금산군 경계인 성치산 북쪽 기슭 말단부로 쌀바위 가든 부근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중앙에서 큰...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 1.5㎞쯤 가면 봉소 마을이 있는데, 남쪽 봉소골에 신양리 봉소 도요지가 있다. 봉소골 남쪽에 탁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는 지방도가 개설되기 이전까지 진안과 금산을 잇는 내륙 교통로가 통과하던 길목이다. 선사 시대 이래로 줄곧 주천면 신양리 일대는...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진안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경계인 성치산 남서쪽 기슭 하단부에 주천면 신양리 상성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동쪽 뒷골로 불리는 골짜기에 200m 내외의 거리를 두고 2개소의 도요지가 있다. 주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 금산 방면으로 800m쯤 가면 큰 서당골 입구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 가마터. 주천면 신양리 옹기 요지는 우리나라 모든 계층 어디서든 사용하던 옹기를 굽던 가마터로서 조선 시대에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양리 성암 옹기 요지는 주천면 소재지를 주 소비처로 보고 가마터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천 중학교에서 지방도 55호선을...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 1.5㎞쯤 가면 신양리 신광석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 북서쪽과 남쪽에 서로 50m가량 떨어진 상태로 2개소의 도요지가 있다. 주천면 신양리와 운봉리 경계인 탁고개 북쪽 기슭으로 그 서쪽 봉소골에 3개소의 도요지로 구성된 신양리 봉소 도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유물 산포지. 유물 산포지란 지표상에서 뚜렷한 유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일정 범위 내에 유물이 흩어져 있어 과거 사람의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말한다. 신양리 성암 유물 산포지는 상성암 마을 인근에 2곳이 자리하고 있다. 신양리 성암 유물 산포지 A는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301-1 일원에 위치한다...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신의련의 효자각. 임진왜란 때 병든 아버지를 왜적의 손에서 지켜낸 신의련(愼義連)[1546~1606]의 효행을 포창하여 선조 때 수의 부위(修義副尉)를 증직하고 정려를 내렸다. 당시에 세워진 정려비는 현존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효자각은 1801년(순조 1)에 세워진 것이지만 중수의 내력은 전하지 않고 있다....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계지(繼之)·원지(元之), 호는 사지당(仕止堂). 좌복야(左僕射) 공헌공(恭獻公) 신수(愼修)의 후손으로 증 호조 판서(戶曹判書) 신인도(愼仁道)의 아들이고 설회(薛懷)의 사위이다. 아들로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 신후경(愼後庚)이다. 신이충(愼以衷)[?~?]은 어려서부터 가학을 이어...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신정리에 있는 무덤 유적. 신정리 고분 떼는 역사 시대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적이다. 주변에는 다수의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으며, 고분으로 추정되는 봉분이 자리하고 있다. 신정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신정리 산93-1 일원에 있다. 전주에서 진안 방향으로 개설된 국도 26호선을 따라 20㎞ 정도 가...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신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가마터. 방각 마을 옹기 요지는 우리나라 모든 생활면에 필요한 옹기를 굽던 가마터이다. 신정리 방각 옹기 요지는 진안고원과 전주를 잇던 곰티재 고갯길에 자리하고 있다. 지형적 특징으로 볼 때 주위에 여러 군데 마을[소비처]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바로 곰티재 고갯길을 옹기 유통로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
-
조선 전기 영산 신씨 진안 지역 입향조. 본관은 영산(靈山). 자(字)는 계술(季述), 호는 서산정(西山亭). 고려 때 태학사를 지낸 문헌공(文憲公) 덕재(德齋) 신장(辛藏)의 후손으로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 신형(辛衡)의 아들이다. 신중윤(辛重胤)[?~?]은 영산 신씨 진안 입향조로 맨 처음 진안군 마령면에 들어와 살았다. 이후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게 되었다....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1722년 9월부터 1725년 8월까지 용담 현령(龍潭縣令)을 지냈던 신태동(辛泰東)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세운 비석이다. 신태동 휼민 선정비는 1735년(영조 11)에 용담현의 관아가 있던 용담면 옥거리에 건립되었다.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 13-14 망향의 동산에 있다. 원래...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에 있는 절터. 심원사는 573년(위덕왕 20)에 창건되었다. 수많은 명승(名僧)들이 심원사에서 배출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 절의 승려 100여 명이 나라를 구하려고 왜군과 싸우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그 뒤 명맥만을 이어오면서 1951년까지 조계종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전소...
-
조선 후기 용담 현령을 지낸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군필(君弼). 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議政府左議政) 심지원(沈之源)이고, 형은 심익선(沈益善)이다. 동생은 심익현(沈益顯), 심익창(沈益昌), 심익성(沈益成) 등이다. 심익상(沈益相)[1639~?]은 1660년(현종 1) 경자(庚子) 증광시(增廣試)에서 생원이 되었다. 167...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는 절터. 안정동 절터는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안정동 마을 서쪽에 있는 절터로 인근의 정천면 갈용리에 위치한 천황사의 본래 자리라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터는 구하기 힘든 명당 터인데, 무주 사람 박헌갑이 절의 뒤에 묘를 쓰자 그 이튿날부터 절의 샘물이 끊어져 버리고 난데없이 쥐떼가 모여들어 난리를 쳤다고 한다. 이에...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용담 향교 내 양사재에 대해 기록한 글. 「양사재기」는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 위치한 용담 향교 내에 있는 양사재의 건립 과정과 기능 등을 서술한 글이다. 「양사재기」에서는 양사재의 연원과 변천 과정을 정리하였다. 이 글은 진안 향교에서 1925년에 편찬한 『진안지』에 모두 세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은 별도로 붙여지지...
-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운보(雲甫), 호는 만휴당(晩休堂). 고조할아버지는 성균 생원 양욱(梁昱)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 양이관(梁以寬)이고,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양경일(梁擎日)이고 아버지는 양우정(梁禹鼎)이다. 외할아버지는 동래(東萊) 정인화(鄭仁和)이고 부인은 거창 신씨이다. 양하룡(梁夏龍)[1699~1784]은 전라북도 남원군...
-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고대로 올라갈수록 진안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문헌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 시대와 고대 그리고 중세를 잇는 교량인 후삼국 시대 진안의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만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몇 가지 시사점을 갖는 차원에서 진안의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진안의 역사와 관련된...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연장리 부곡 고인돌은 연장리 부곡 마을의 민가 울타리에 단독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고인돌이다. 형태는 타원형이며 장축은 하천 방향과 동일한 동-서 방향이다. 수풀 등으로 인해 형태 및 규모 파악은 어렵다. 연장리 부곡 고인돌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 1000에 있다. 부곡 삼거리에서 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2007년 실시한 지표 조사 당시 산포지 내에서 회청색 경질 토기편과 분청자기편, 백자편 등이 확인되었다. 수습된 유물 등을 토대로 오랜 기간에 걸친 생활 유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장리 유물 산포지1는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 일원에 위치한다. 용대 마을 회관에서 서북쪽으로 250m 지점의 구...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유물 산포지로서 삼국 시대 유물인 회청색 경질 토기 편 등이 확인되었으며, 조선 시대 유물인 백자편 등이 수습되었다.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오랫동안 이곳의 생활상이 확인될 수 있는 값진 자료일 것으로 판단된다. 연장리 유물 산포지2...
-
전라북도 진안 지역 출신이거나 진안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는 남편을 위하여 온갖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여자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아내를 일컫는 말로 진안 지역의 열녀는 『진안 군사』에 232명이 등장하는데 정려를 받은 열녀는 12명이다. 진안 지역의 열녀 중에 정려를 받은 인물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고분 유적. 오룡리 고분 떼는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에 있는 고분 떼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통일 신라 시대의 굴식 돌방무덤 1기와 조선 시대의 회곽 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오룡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 산135에 있다. 부귀 면사무소에서 부귀 우체국을 거쳐 100m 정도 가면...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영보(榮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 판서를 지낸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으로 오사운(吳思雲)의 아들이다. 오빈(吳玭)[1547~1593]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에 증광 문과의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홍문관 정자로 등용되어 국가 문서를 맡아서 처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오(聖五), 호는 만오재(晩悟齋). 고조할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위(龍讓衛) 부호군(副護軍) 오익령(吳益齡)이고 아버지는 오부원(吳富源)이다. 효자로 동몽교관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진 오성복(吳成福)이 형이다. 아들로는 오석한(吳錫漢), 오제한(吳濟漢) 등이 있다. 오성수(吳成壽)[1805~1870]는...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오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오천리 유물 산포지는 진안군 진안읍 오천리 외오천 마을의 경로당에서 서북쪽으로 100m 지점의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유물 산포지의 현황이 확인되었다. 2007년 지표 조사 당시 유물 산포지 내에서...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남은(南隱). 좌복야(左僕射)·함양군(咸陽君) 오광휘(吳光輝)의 후손으로 좌랑(佐郞)을 지낸 오세득(吳世得)의 손자이며 순릉 참봉(順陵參奉) 오인수(吳麟壽)의 아들이다. 오형(吳珩)[?~?]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진안지』에 의하면 오형은 ‘벼슬은 참봉(參奉)에 불과하였지만 남다른 덕행(德行)과 부...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유적. 옥거리 고분 떼는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있다. 이 지역은 백제 시대의 물거현으로 비정되는 곳으로, 고분도 삼국 시대의 분묘로 추정되고 있다. 옥거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558에 있다.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에서 용담면 방향으로 지방도 795호선을 따라서 신정교를 지나...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성재산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옥거리 산성은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성재골 동쪽의 성재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테뫼식의 석성이다.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동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벽의 편축식이며, 둘레는 약 400m이다. 용담은 백제 때 물거현(勿居縣)이 있었던 곳으로 옥거리를 그 치소지로...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있던 절터.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용담 초등학교 동남쪽 용강산 아래에 위치한다. 옥거리 절터는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있던 절터로, 운교리 동쪽, 용담 초등학교 동남쪽, 용강산 아래, 남산 북쪽에 자그마한 분지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를 이른바 ‘오공구석’이라 부르며 옛날 절터라 하나 그 정확한 유래나 사적은 알...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에 있는 산성. 와룡리 산성은 정상부[높이 420m]의 주위를 두른 테뫼식 산성이며, 성의 둘레는 약 350m이다. 산성의 남쪽은 매우 가파르며, 주자천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 용담호로 유입된다. 한편 와룡리 산성은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신규로 찾은 유적으로 현황과 이력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다. 와룡리 산성에서 동쪽으로...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에 있던 조선 시대 기왓가마 터. 와룡리 와요지는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있으며,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에 의해 1998년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조선 시대 기왓가마 3기가 확인되었다. 와룡리 와요지는 용담면 소재지에서 신양리로 가다 보면 신화교와 신정교가 있는데 유적은 이 양다리 사이에 위...
-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운용된 기왓가마터. 진안군 관내에는 모두 7개소의 와요지가 보고되었으며, 이 중 월계리 와요지, 와룡리 와요지, 월포리 와요지, 모정리 두곡 와요지, 단양리 와요지가 발굴 조사되었으며, 나머지는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곳이다. 발굴 조사된 유적 중 와룡리·월계리·월포리·모정리 두곡 와요지는 용담댐 수몰...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있는 백제 시대 목책 토성. 와정 토성의 형성 및 폐기 연대는 5~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과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백제 유물이나 일부 대가야계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이 토성은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금강 상류 지역을 통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목책 열의 조사에서 확인된 화재 흔과 더불어 대가야계 유물...
-
고려 말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왜구(倭寇)는 삼국 시대부터 출현하였지만, 고려 시대에는 고종(高宗) 때부터 시작하여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빈번하게 침략하였다.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재위 1349~1351]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약 40여 년 간이며, 그 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 간[1374~1388]에 가장 극심...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외궁리 고인돌은 성수면에서 유일하게 존재가 확인된 고인돌이며 단독으로 분포하고 있다. 덮개돌의 장축 방향은 마을 앞을 흐르는 외궁천과 같은 방향이다. 외궁리 고인돌은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 887에 있다. 신고 마을에 있는 외궁 교차로에서 도통리 원도통 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1㎞가량...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성수면 외궁리 점촌 도요지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각각 청자와 옹기를 제작한 가마터이다. 성수면 외궁리 점촌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변천 과정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고려 초기에 청자 생산이 이루어지고,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점촌이 형성되면서 옹...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있는 비각.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용담 향교에 불이 났을 때 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성현의 위패를 수습하여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구봉산 바위굴 속에 보존한 구순(具詢)과 고계춘(高啓春) 두 사람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왜란 이후 향교 앞에 비각을 세웠다. 왜란 후에 구순(具詢)과 고계춘(高啓春)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전라도 용담현의 통치를 담당하였던 지방관. 용담 현령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용담현의 통치를 담당하였던 수령을 가리킨다. 용담현의 수령은 원래 현령이었으나 1646년(인조 24)에 현감으로 격하되었다. 1656년(효종 7)에 다시 현령으로 회복되었다가, 용담현이 진안군으로 편입되면서 용담현의 현령직은 사라지게 된다. 한편 현령의 품계는 종5품...
-
1313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용담현(龍潭縣)의 유래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현의 동남쪽에 두 물이 모이는 곳에 용담(龍潭)이 있어 이름으로 취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용담’의 옛 지명인 ‘물거(勿居)’나 ‘청거(淸渠)’ 등은 모두 물갓·물가의 음차(訓借)이고, ‘용담’의 ‘용’도 훈이 ‘...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용담현 거창 유씨 고문서. 진안 역사 박물관 소장 「용담현 거창 유씨 고문서」는 진안 용담군 남면 여의곡(如意谷)에 살던 거창 유씨가 작성한 1744년부터 1887년까지 작성한 29장의 호구 단자 및 준호구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
-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진안 역사 박물관 소장 남원 양씨 고문서. 진안 역사 박물관 소장 「용담현 남원 양씨 고문서」는 용담현 남원 양씨 종중에서 1777년부터 1903년까지 작성된 41장의 호구 단자와 준호구, 그리고 신호적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 3년...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마터.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인 광대정재 남서쪽에 용덕리 도촌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남쪽에 2개소의 도요지가 있다. 용덕리 도촌 도요지 A는 도촌 마을 입구에서 남동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바람골 입구이다. 지방도 725호선에서 도촌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용두교가 있는데, 용두교 동쪽 지방도 부근이 여기...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진안군 주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방면으로 가면 용덕리 미적동 마을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미적동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입구에 용덕리 미적 도요지가 있다. 용덕리 미적 도요지를 중심으로 남동쪽에 신양리 곰뱅이 도요지, 북쪽에...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산성의 축조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성 내부에서 삼국 시대 토기편 등이 확인됨과 동시에 전북 동부 내륙 지역의 교통로 상에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대에 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용덕리 산성은 진안 주천면~금산 남이면을 잇는 지방도 55호선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한다. 충남 금산과 전...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진안군 주천면 면소재지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가면 용덕리 대촌 마을이 있고, 대촌 마을 입구에서 북서쪽으로 1.2㎞가량 떨어진 곳에 1980년대 느지목골과 밤섬골 골짜기를 막아 만든 용덕 저수지가 있다. 용덕 저수지 동쪽에 용덕리 삼밧골 도요지가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진안...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용덕리 대촌 마을에는 두곳의 유물 산포지가 있다. A는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 대촌 마을 경로당에서 용덕 저수지 쪽으로 330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B는 대촌 유물 산포지 A에서 동남쪽으로 6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용덕리 도촌 마을에는 두곳의 유물 산포지가 분포한다. 용덕리 도촌 경로당에서 주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동상 주천로를 따라 800m가량 이동하면 다다르는 도로변 우측 밭에 한 곳[A]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220m가량 떨어진 곳에 또 한 곳[B]가 있다. 2007년 전주...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고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용덕리 유물 산포지3[A]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 산제 마을 회관에서 북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경작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마을 북쪽에 자리한 야산의 하단부에 해당하므로 북고·남저의 지형을 이룬다. 용덕리 유물 산포지3[B]는 산제 마을 회관에서 하천 너머 서남쪽으...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용평리 대구평 도요지에서는 백자 조각과 요벽 일부 등 지표에서 일부 유물이 수습되었지만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전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형성과 이후 변화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상에서 백자 조각과 요벽 일부가 수습되는...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용평리 유적은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운암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운암 마을 정미소 뒤편 구릉의 능선에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유적이 자리한 곳 일대는 밭농사로 많은 면적이 경작되고 있다. 운암 마을에서 금강의 본류가 크게 S 자로 굽이치면서 유적이 자리한 구릉의 말단부를 감돌고 있다. 이 구릉상에...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성수면 용포리 반룡 도요지는 2013년 곽장근, 윤성준에 의해 발견된 유적이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나 문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변천 과정은 파악하기 어렵다. 단 발견되는 유물이 17~18세기 백자편과 생산 도구 등인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 백자 생산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에 자리한 유물 산포지로서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생활 유적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포리 유물 산포지는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데, 포동 교차로에서 남쪽으로 용포로를 따라 진행...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있는 고분 유적. 운교리 고분 떼1은 주천 마을의 북쪽을 감싸고 있는 구릉에 있는 고분 떼이다.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낮은 봉분 수 기가 남아 있으며,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일부 확인된다. 운교리 고분 떼1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산157에 있다. 운교리 주천 마을은 북쪽의 아래뜸 마을과 남동쪽...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상원산 마을 주변에 있는 고분 유적. 운교리 고분 떼2는 상원산 마을의 북쪽과 동쪽을 감싸고 있는 구릉에 자리한 고분 떼이다. 구릉의 정상부와 남쪽 사면부에 낮은 봉분 몇 개가 남아 있으며,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일부 확인된다. 구릉 정상부에서 분청사기편과 백자편 등이 수습되었다. 운교리 고분 떼2는 전라북도...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무덤 떼. 운교리 신전 고인돌 떼는 진안군 백운면에 있는 고인돌 떼이다. 지표 조사를 통해 3~4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현재는 과수원으로 개간이 이루어지면서 모두 유실된 상태이다. 운교리 신전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71에 있다. 운교리 신전 마을의 남쪽 논 일...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운교리 원운교 마을의 도로변에 고인돌 1기가 단독으로 놓여 있으나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방화 마을에서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원운교 마을로 넘어가는 백마교를 지나면 남쪽에 전 면장 김영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고인돌은 이곳 도로변 잔디밭에 놓여 있다. 2007년 전주...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운교리 유물 산포지는 지동 마을 동쪽 맞은편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를 통해 유물 산포지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교리 유물 산포지는 구릉 전체가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회청색 경질 토기...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사는 전송훈이 소장한 고문서.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사는 전송훈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로 1949년 3월 백범 김구가 전원석에게 준 것이다. 전원석이 사망한 후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 문서는 소장자인 전송훈의 조부인 운초 거사 전원석에게 백범 김구가 준 글이다. 백범 김구는 당시 한독당 옥구 지사 행사 참석차...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봉수대 터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일원은 삼국 시대 진안고원과 공주·부여를 최단거리로 연결해 주는 동서 교통로와 진안고원과 금산 분지를 이어주는 남북 교통로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그 정점에 탁고개가 있는데, 탁고개의 남쪽에 운봉리 봉수 터, 운봉리 산성 등이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운봉리 봉수 터는...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전라북도 문화재 관리 대장』에는 ‘진안 신양리 성지 1’이라 하였고, 2001년에는 ‘성재 산성’으로 보고된 바 있다. 한편 현재 운봉리 봉수로 불리는 성곽은 기존에 ‘탁고개 산성’, ‘진안 신양리 성지 2’로 명명된 바 있다. 이 운봉리 봉수에 관한 『전라북도 문화재 관리 대장』 내용 중...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진안군 진안읍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가면 운봉리 구암 마을 남쪽에 운봉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600m가량 떨어진 조고탕골 입구에 운봉리 안정동 도요지 B가 있다. 운봉리 안정동 마을 북서쪽 산제당골 입구에 운봉리 안정동 도요지 A가 있다. 금남 정맥의 고봉인 운장산 동쪽...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는 선사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운봉리 유물 산포지 A는 운봉리 구암 마을 운봉 장로 교회에서 동북쪽 능선으로 240m가량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운봉리 유물 산포지 B는 운봉 장로 교회에서 서북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곳으로 구암 마을 뒤편의 경작지에 자리하고 있다. 구암 마을을 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야...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진안군 진안읍에서 지방도 725호선을 따라가면 운봉리 하양명 마을 부근에 3개소의 도요지가 있다. 운봉리 하양명 도요지 A는 하양명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명박골 입구로 주천면과 용담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 북서쪽 기슭 하단부에 있다. 운봉리 하양명 도요지 B는 하양...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 있는 고분 유적. 운산리 고분 떼는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구운 마을 주변에 있는 고분 떼이다. 지표 조사 결과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할석형 석재가 일부 확인되었으나, 그 외 수습된 유물은 없다. 구운 마을의 북서쪽에 위치한 뜰재골 북쪽 구릉에 자리한다. 구릉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데 남쪽 사면부에 고분의 벽석으로 추정되는 할...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운산리 유물 산포지는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검북 마을에서 가나무골 방향인 북쪽으로 180m 지점에 있는 낮은 야산의 남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유물 산포지의 현황이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 당시 회청색 경...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대 터 금남 정맥의 명산인 운장산은 동봉, 중봉, 서봉의 3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서봉에는 봉수가, 중봉에는 산성이 위치하여 서로 세트 관계를 이룬다. 운장산의 동쪽에는 진안고원에서 논산을 거쳐 부여·공주까지 연결되는 남북 교통로의 주요 고갯길인 칼크미재가 있으며, 북쪽에는 진안 고원과 전라북도...
-
1592년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웅치 일대에서 벌어진 조선 관군·의병과 왜군의 전투. 임진왜란 개전 20일 만에 조선의 수도 한양이 함락되고, 2개월이 지나자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거의 전 지역이 왜군에게 점령당하였다. 한양을 점령한 왜군의 일부는 코바야카와 타카카게[小早千隆景]의 지휘 아래 호남을 공격하여 1592년 6월 23일에 금산성을 점령했고, 이를 거점으로...
-
조선 시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숙박 시설. 원은 역의 기능을 보조하는 교통·숙박 시설로, 역을 이용할 수 없는 일반 여행객들이나 공물 및 노비 신공 운반자들의 숙식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시설이었다. 고려 말에는 국가에서 원에 새로운 인호(人戶)를 배정하고 토지를 지급하는 등 원의 운영이 체계화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에는 각 도와 각 주...
-
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무신.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원성모의 큰 며느리 구씨가 병자호란을 피해 진안군 상전면에 은거하며 산 이후부터이다. 후에 진안 유림들이 원성모의 내력을 듣고 충절 3부자를 영모사에 배향했다. 본관은 원주(原州)....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의병.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평중(平仲), 호는 남계(南溪). 증조할아버지는 이조 판서를 지낸 원계검(元繼儉)이고 할아버지는 승지를 지낸 원호영(元虎英)이고 아버지는 충의공(忠毅公) 원성모(元成模)이다. 부인은...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황산 마을 동쪽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 유적. 월계리 고분 떼는 금강의 상류 지역인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위치한다.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재 발굴 조사가 시행되면서 확인된 유적으로, 삼국 시대의 가야 고분 떼로 밝혀졌다. 고분들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모두 17기가 조사되었다. 월계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용담면...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있던 삼국 시대 기왓가마 터. 월계리 와요지는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발굴 조사 결과 삼국 시대 기왓가마 2기가 확인되었다. 월계리 와요지는 용담교에서 지방도 795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300여 m 가다 보면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의 말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원월계 마을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
삼국 시대와 고려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월량현(月浪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으로 지명을 정하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월량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에서 진안현의 연혁을 상고하면서 이를 백...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무덤 떼. 월포리 고인돌 떼는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 월포 초등학교 서쪽편에 있던 고인돌 떼로, 모두 5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덮개돌은 5기 전부에서 확인되었지만 무덤방은 4기에서만 확인되었다. 5기의 고인돌은 넓은 평지에도 불구하고 한 곳에 밀집하여 열을 지어 축조되었으며, 진안 지역 고인돌의 특징인...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있던 조선 전기의 회곽묘. 월포리 대구평 유적은 1995년 12월 26일부터 1996년 5월 25일까지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 유적 1차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그 결과 1기의 회곽묘가 확인되었다. 깊이가 비교적 깊고 바닥에 돌이 깔려 있으며 감실을 갖추고 있는 형태로 조선 초기의 무덤으로...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있던 고려 시대 기왓가마 터. 월포리 와요지는 용담댐 수몰 지구 내에 자리하는 유적으로 1996년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유물은 고려 시대 수키와와 암키와만이 출토되었다. 월포리는 진안-무주를 잇는 국도 30호선의 서쪽에 있다. 금강이 상전면 월포리 원월평 마을에 이르고 월포리 대구평 마을에서 동...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읍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 상전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수동 터널을 지나게 되고, 터널에서 약 1㎞ 지점에서 월포 보건 진료소를 만나게 된다. 월포리 유물 산포지는 보건 진료소로부터 서쪽 편으로 약 100m 내에 있는 영모제 주변과 금양 교회 주변에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 편으로 약 40...
-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발견된 선사 및 역사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나 사용하였던 물질 문화의 단편들이 존재하는 일정한 범위의 장소. 유물 산포지는 고고학적 대상이 되는 선사 또는 역사 시대 사람들이 남겼던 흔적이나 물질 문화의 현존 상태를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할 수 있는 고고학적 기초 단위를 이룬다. 이는 도보로 지표면의 다양한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지...
-
고려 후기 용담 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헌숙(憲叔), 호는 동정(桐亭). 고려 시대 성리학을 익힌 윤택(尹澤)의 손자이다. 5대조 윤량비(尹良庇)는 호장 출신이었고 4대조 윤해(尹諧)는 과거에 합격하여 가문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버지는 윤귀생(尹龜生)이다. 아들은 윤회(尹淮)이다. 윤소종(尹紹宗)[1345~1393]은 1360년(공민왕 9)에...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1695년(숙종 21) 용담 현령을 지낸 윤추(尹推)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용담현 백성들이 세운 비석이다. 윤추는 1694년 5월에 용담 현령으로 부임하여 1695년 2월 이임하였다. 본래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안자동 마을 어귀 길가에 세워졌으나 그 뒤 용담댐 건설로 수몰의 위기에 놓이자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
-
고려 후기 전주 이씨 진안 입향조.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만상(晩祥)·정암(靖菴). 시조는 사공(司空) 이한(李翰)이고 아버지는 이용부(李勇夫)이고 형제로는 이린(李璘)이 있다. 『씨족원류』에는 이용부의 아들로 이준의(李俊義)와 이의방(李義方)이 기재되어 있다. 『씨족원류』와 전주 이씨의 계보를 수록하고 있는 『태조실록』 등에는 이거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거(李...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용담 현령(龍潭縣令) 이광덕(李光德)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이광덕은 1771년(영조 47) 6월에 용담 현령으로 부임하여 1775년 12월까지 재직하였다. 임기 만료 후 이광덕이 떠난 뒤에 고을 백성들이 이광덕의 선정을 높이 평가하여 1786년(정조 10) 10월...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홍재(弘宰), 호는 귀락당(歸樂堂). 문성공(文成公) 송은(松隱) 이명성(李明誠)의 후예로 도사(都事) 이현산(李賢山)의 아들이다. 이광필(李光弼)[?~?]은 1567년(...
-
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흥서(興瑞), 호는 괴은(槐隱)[또는 塊隱]. 증조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할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 좌의정(贈左議政...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관은 진안(鎭安). 자는 기원(基遠), 호는 유계(幽溪). 직제학(直提學) 이교(李校)의 증손(曾孫)이고 참봉(參奉) 이계남(李繼南)의 아들이다. 이달손(李達孫)[?~?]은 진안군에 태어났다. 『대한 이산...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진안(鎭安). 자는 직향(直鄕), 호는 근재(謹齋). 유계 이달손(李達孫)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이유항(李惟恒)이다. 이만정(李萬禎)[?~?]은 재기가 웅대하고 사예(射藝)에 능하여 무과에 합격하고, 선전관을 거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만암(晩庵) 이상진(李尙眞)의 천거로 곡성 현감을 제수받...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 있는 용담 현령 이민항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 1875년(고종 12)에 용담 현령(龍潭縣令) 이민항(李敏恒)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세운 비석이다. 1875년(고종 12)에 용담 현령(龍潭縣令) 이민항(李敏恒)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영세 불망비를 건립하였다. 이민항의 또 다른 선정비인 청간 애민 불망비(淸...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서 활동한 이덕응·이부용 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고문서의 소장자 이부용은 대한 제국기의 유학자이자 관원이었던 이덕응(李德應)의 손자이다. 300여 점에 이르는 이부용의 소장 고문서에는 이덕응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고문서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에 있는 이부용 가에 소장되어 있다. 고문서의 종류가 다양한...
-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학자.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천득(天得), 호는 만암(晩庵). 시호는 충정(忠貞). 증조할아버지는 부윤 이정란(李廷鸞)이고 할아버지는 이종길(李宗吉)이며 아버지는 참봉 이영선(李榮先)이고 어머니는 참판 민여임(閔汝任)의 딸이다. 자손으로는 이우하(李宇夏)가 있다. 이상진(李尙眞)[1614~1690]은 1645년(인조 23) 별시 문과...
-
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유학자.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숙(敬叔), 호는 송재(松齋).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李彦沖)의 후예로 금부도사(禁府都事) 이근인(李根仁)의 아들이다. 정숙공(貞肅公) 이탁(李鐸)이 재종형이다. 이숙남(李叔男)[?~?]은 자품(資稟)이 매우 높고 재기(才氣)가 영오(穎悟)하여 어려서부터 독서함에 문의(文...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이승소(李承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송덕비이다. 이승소는 1850년(철종 1) 7월에 진안 현감(鎭安縣監)으로 부임하여 1853년 1월에 용담 현령으로 전임되었고 1856년 7월에 이임하였다. 1855년(철종 6)에 이승소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1853년(철종 4)에 용담 현령(龍潭縣令) 이승소(李承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세운 비석이다. 이승소는 1850년(철종 1) 7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853년 1월에 용담 현령으로 전임되었고 1856년 7월에 이임하였다. 1853년(철종 4)에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
조선 전기 진안에 세거하는 공주 이씨 중시조. 본관은 공주(公州), 호는 사봉(沙峯). 시호는 공숙공(恭肅公).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 세거하고 있는 공주 이씨의 중시조이다. 아버지는 농공 판서(農工判書) 정경공 이엽(李曄)이다. 이신지(李新之)[1374~1444]는 1393년(태조 5)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사헌부 감찰, 형조 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
조선 후기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수증(守曾), 호는 연담(蓮潭). 별칭은 운규(雲圭). 세종의 열여덟째 아들인 담양군(潭陽君)의 13대손이다. 이운규(李雲圭)[?~?]는 천안 목천(木川)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문과 참판(參判)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과 친밀하게 지냈다. 학통으로는 북학계의 강산 이서구의...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안(鎭安). 자는 순경(舜卿), 호는 이석정(李石亭). 증조할아버지는 이규성(李揆聖), 할아버지는 이구연(李龜蓮)이고 아버지는 이수삼(李受森)이고, 외할아버지는 통천(通川) 최응태(崔應台)이다. 이원효(李元孝)[1784~1870]는 『진안지』에 의하면 재예(才藝)가 뛰어났으며, 고종 대에 행의(行義)로 사림의 천거를 받았다. 규당(...
-
조선 후기 진안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숙(大叔). 임영대군의 7대손이며 판서 이응시(李應蓍)의 아들이다. 이의징(李義徵)[1643~1695]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공덕으로 음관(蔭官)에 천거되어 진안 현감이 되었다. 1676년(숙종 2)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681년(숙종 7) 9월에 암행어사로 내려온 오도일(吳道一)의 추천으로 양리(...
-
조선 후기 진안 현감을 지낸 문신. 이항(李杭)[?~?]은 1641년(인조 19) 2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646년(인조 24) 1월에 이임하였다. 바른 말만 듣는다고 『진안지』에 전한다. 이외 자세한 관력은 전하지 않는다....
-
조선 후기 진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유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 할아버지는 상주 목사를 지낸 임타(林㙐)이고 아버지는 군수 임일유(林一儒)이며 어머니는 임천 조씨(林川趙氏)로 조석형(趙錫馨)의 딸이다. 임영[1649~1696]은 1665년(현종 6)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였고, 호당(湖堂)에 뽑혀...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진안 지역은 일본군에게 점령당하였으며,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길목인 웅치에서 관군과 의병이 사투를 벌이고 안덕원에서 격퇴함으로써 호남을 지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호남 지역을 점령하지 못하...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노암(老巖). 임타(林㙐)의 증손자이고 임만유(林晩儒)의 손자이다. 임윤(林潤)의 아들이다. 동춘당(同春堂)송준길(宋浚吉)의 손자 사위이다. 임취업(林就業)[1690~1756]은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평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인 임타가 진안군 상전면 와은리에 내려와 은거하며 지은 만화정(萬花亭)에서 평생...
-
조선 중기 진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실지(實之), 호는 몽촌(夢村). 승지(承旨) 귀래당(歸來堂) 임붕(林鵬)의 증손으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 풍암(楓巖) 임복(林復)의 손자이며 임협(林悏)의 아들이다.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5촌 당숙이다. 임타(林㙐)[1593~1664]는 어렸을 때에 권비(權鞞)에게 수학하였고 천성이 어질고 재주가...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찬증(燦增), 호는 모와(慕窩).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임기원(林起遠)이다. 고조할아버지인 부제학 임영(林泳)이 정천면 조림리에 우거하면서부터 나주 임씨가 대대로 거주하게 되었다. 임호진(林濠鎭)[1779~1847]은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에서 태어났다. 1824년(순조 24) 4월 교육에...
-
조선 전기 장기건에게 내린 진안 현감 임명 교지. 「장기건 교지」는 1534년(중종 29)에 장기건(張紀乾)을 진안 현감(鎭安縣監)에 임명하면서 내린 교지이다.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관에 대한 인사는 이조(吏曹)이며, 이조에서 진안 현감 적임자에 대하여 3명을 올리면 임금은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1명을 수망(首望)하게 된다. 이를 기...
-
조선 시대 진안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재지 사족은 향촌의 지배 세력으로 수도에서 관직에 종사하다가 국가 변란기 또는 정치적 변혁기 등 특정 시기에 본향(本鄕)으로 낙향한 가문과 다른 지역으로부터 처향(妻鄕)·외향(外鄕) 등의 이유로 이주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한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6세기 중·후반부터 향촌 사회에서 중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과 사족으로서...
-
조선 후기 진안 출신 의병. 본관은 천안(天安). 휘는 규암(葵菴), 자는 백윤(伯胤). 고조할아버지는 호조 판서를 지낸 전극례(全克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전자온(全自溫)이고 부사(府使) 할아버지는 전익희(全益禧)이다. 아버지는 참봉 전찬(全瓚)이고 어머니는 천녕 유씨(川寧兪氏)로 현감 유계해(兪啓諧)의 딸이다. 부인은 거창 신씨, 남원 양씨이다. 전계종(全繼宗)[151...
-
조선 전기 진안으로 낙향한 문신.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진안으로 낙향하였다.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낭헌(浪軒). 형조 판서를 지낸 문평공(文平公) 도은(都隱) 전문식(全文軾)의 증손으로 판중추부사 전사미(全思美)의 아들이다. 전극례(全克禮)[?~?]는 『진안지』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재주가 비상했을 뿐 아니라 도량이 넓고 문장이 장...
-
전라북도 진안군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의병.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대승이 진안군 진안읍 가림리 은천 마을에 내려와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은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휘원(輝遠), 호는 이산(駬山). 문평공(文平公) 도은(都隱) 전문식(...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1624년(인조 2) 서울에 올라가 월사 이정구 문하에 들어갔으나 그 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 인조가 공주로 파천하니 그 때 나이 15세에 지원병이 되어 충성을 다 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부친 전대승(全大昇)이 순절하자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에 안장하고 3년간 시묘하면서 병서를 탐독하였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가재(...
-
조선 전기 천안 전씨 진안 입향조.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문영(文英), 호는 도은(都隱). 시호는 문평(文平). 증조할아버지는 판공부사(判工部事)를 지낸 영평군(永平君) 전단(全旦)이고 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한 전려(全呂)이고 아버지는 좌복야(左僕射) 전희(全熙)이다. 어머니는 시중을 지낸 윤은형(尹殷衡)의 딸이다. 모두 고려 때 벼슬한 사람이다. 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문평공 전문식의 묘. 전문식(全文軾)[?~?]의 호는 도은(都隱)이며, 본관은 천안(天安)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학과 도덕에 밝아 포은(圃隱) 정몽주는 그를 어지러운 세상의 큰 선비라는 뜻으로 탁세학종(濁世學宗)이라고 크게 칭찬하였다. 전문식은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고 상서사를 맡았다. 김농암...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의병. 진안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백언(伯言), 호는 우재(愚齋). 문평공(文平公) 전문식(全文軾)의 후예로서 규암(葵庵) 전계종(全繼宗)의 손자이다. 전응철(全應哲)[?~?]은 『대한 이산묘지(大韓駬山廟誌)...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봉경(鳳卿). 문평공(文平公) 전문식(全文軾)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성균 생원 전열(全烈)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전응정(全應禎)이고 아버지는 처사 전시진(全時進)이다. 외할아버지는 성균 진사 장복환(張復煥)이다. 전익화(全翊華)[1666~?]는 진안군 마령면 오동리에서 태어났다. 19세 때인 1683년(숙...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진안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죽헌(竹軒). 문평공(文平公) 전문식(全文軾)의 현손으로 호조 판서 전극례(全克禮)의 아들이다. 전자양(全自讓)[?~?]은 타고난 바탕이 빼어나고 뜻과 기개가 높았다....
-
조선 전기 진안 지역의 충신. 본관은 천안(天安), 호(號)는 송당(松堂). 십제공신(十濟功臣) 환성군(歡城君) 전섭(全攝)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대사헌 전천근(全天近)이고 할아버지는 동지중추 전사미(全思美)이고 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전극례(全克禮)이다. 전자온[?~1457]은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서 태어났다. 1444년(세종 26) 동생 전자양과 함께 문과에...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字)는 정서(丁瑞), 호(號)는 만보재(晩保齋). 규암(葵菴) 전계종(全繼宗)의 9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전세휘(全世輝)이고 할아버지는 전상문(全尙文)이고 아버지는 전기풍(全基豊)이다. 외할아버지는 전주(全州) 이가실(李可實)이고 장인은 연안(延安) 송차정(宋次呈)이다. 전재규(全載奎)[1798~1845]는 진안군...
-
진안 이산묘 영묘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죽재(竹齋). 환성군(歡城君) 전섭(全攝)의 후예로 아버지는 현감 전만(全蔓)이다. 전혜(全惠)[?~?]는 성종 때 문과에 뽑혀 내직과 외보를 두루 거쳤는데, 옥과(玉果) 현감으로 있을 때 전라 감사 이극돈(李克墩)이 성종의 초상에도 불구하고 국휼(國恤)하지 않고 매일 잔치를 즐기는 것을...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던 불교 사찰 터. 절터는 사지(寺址)라고도 하며 사찰이 있었던 장소로, 사찰은 절 또는 사원(寺院), 가람(伽藍)이라고도 하는데 가람은 범어 Sangharama의 음역인 승가람(僧伽藍)의 준말로 승려가 수도하고 생활하는 장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 불교를 처음 받아들인 이후 많은 사찰이 새로이 창건되기도 하였고 또한 전란 및 사상적인 이...
-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훈(士勛), 호는 수부(守夫). 증조할아버지는 결성 현감 정귀령(鄭龜齡)이고, 아버지는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지낸 익혜공(翼惠公) 정난종(鄭蘭宗)이고 어머니는 장사랑(將仕郞) 이지지(李知止)의 딸 정경부인(貞敬夫人) 완산 이씨이다. 부인은 예조 정랑(禮曹正郞) 송순년(宋順年)의 딸 은진...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의병. 진안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世居)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개부(蓋夫), 호는 모와(慕窩). 대사성을 지낸 정곤(鄭坤)의 7세손이며 상호군(上護軍) 정건(鄭鍵)의 아들이다. 외증조할아버지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다...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에 있던 절터. 정수암 터에 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 기와 등 절의 이름을 밝혀주는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와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6·25 전쟁 때 소실된 것만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전한다. 그 후 암자가 들어섰다가 폐기되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정수암 마을의 북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정수암...
-
조선 전기 기축옥사 때 진안 죽도에서 자결한 문신. 정여립은 조선 시대의 인물 중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사람이다. 그렇게 된 핵심적 원인은 조선 시대 당쟁의 중심적 사건인 기축옥사(己丑獄事)[1589, 선조 22]를 불러온 장본인이었지만, 여러 의문을 남긴 채 진안 죽도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결과 기축옥사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조작과...
-
1589년 진안 지역에서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들이 모반을 일으켰다는 혐의를 받아 희생당한 역모 사건. 정여립 옥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에 일어났다. 조선 전기에 일어난 4대 사화[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조선 역사상 최대의 역모 사건이다. 정여립 옥사는 기축년에 발생하여 기...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지(元之). 조선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14세손이며 정귀발(鄭貴發)의 아들이다. 정이삼(鄭理三)[1741~1822]은 진안군 정천면 망화리에서 태어났다. 의지가 굳고 행실이 밝았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되었다....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강(元綱). 조선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14세손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의 8세손이다. 부인은 제주 고씨이다. 정재삼(鄭載三)[1744~1803]은 진안군 정천면 망화리에서 태어났다 재예가 특출하고 유학에 능하였으며 효행이 남달리 뛰어나 근린의 칭송이 자자했다. 호...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근재(根齋), 자는 춘경(春卿). 할아버지는 정남추(丁南樞)이고 아버지는 정우언(丁宇彦), 외할아버지는 박경(朴烱)이다. 정재영(丁載榮)[1798~1876]은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이 깊었다. 동네에 있던 박씨의 서당인 지선당(至善堂)에서 공부하였는데, 글공부를 할 때는 밤에...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두곡 마을에 거주하던 전주 이씨 소장 고문서. 「정천면 전주 이씨 고문서」는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두곡 마을에 거주하였던 전주 이씨 이상연과 그 후손들이 남긴 고문서로서 총 201점이다. 그 중 낱장 고문서는 149점이며, 성책 고문서는 52점이다. 이상현은 만년에 장수 현감을 지낸 뒤 귀향하지 않고 진안 정천면 모정리 두곡(頭谷...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유(士裕), 호는 운송(雲松). 처음 이름은 헌규(憲奎)였으며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 朴氏)였다.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던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의 11세손이다. 정헌해(鄭憲海)[1819~1887]는 품성이 곧았으며 일을 처리...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초휘는 성언(成彦). 조선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15세손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의 9세손이다. 부인은 강릉 유씨(江陵柳氏)이다. 정흥룡(鄭興龍)[1779~1817]은 진안군 정천면 망화리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곧고 적극적이었으며 효행심이 두터웠다. 형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조병섭(趙秉燮)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조병섭은 1857년(철종 8) 7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그 해 11월에 수원 판관(水原判官)으로 이임하였다. 이듬해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영세 불망비를 세웠다. 진안군...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초명은 석규(錫奎), 자는 자관(子觀), 호는 국헌(菊軒). 충익공 조문택(曺文澤)의 후손으로 지정(池亭) 조상학(曺尙學)의 아들이다. 조석하(曺錫河)[1791~1859]는 진안군 마령면 송내리에서 태어났으나 1819년 완주군 비봉면 월곡리로 이사하여 살았다. 기상이 비범하여 어려서부터 호학의 기질이 있어서 가전의 학문...
-
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진안 지역은 조선 건국 후 진안현(鎭安縣)과 용담현(龍潭縣)의 2현으로 재편되었다. 진안 지역은 웅치 전투, 기축옥사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조선 시대에 용담현은 본래 청거현(淸渠縣)으로 금산의 속현이었는데 1313년(충선왕 5) 용담현으로 개칭되면서 독립하였다. 진안...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조연명(趙然明)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조연명은 1834년(순조 34) 1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836년 2월에 이임하였다. 1837년(헌종 3)에 조연명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모성 애사비를 세웠다. 진안군 진안...
-
조선 시대 진안 지역을 포함한 각 지방에서 수취한 조세를 배를 통해 경창(京倉)까지 운반하는 제도. 조운은 조전(漕轉)·조만(漕輓)·해조(海漕)라고도 부르는데, 내륙의 물길을 이용하는 경우는 수운(水運)·참운(站運)이라고 하며 바닷길을 이용하는 경우 해운(海運)이라고 한다. 국가에서는 강변에 수운창을, 해변에 해운창을 설치하여 각 지역의 세곡을 모으고 매해 일정 기간을 정하여 중앙...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대 터 금남 정맥은 진안군의 서쪽 자연 경계를 이루는데, 남북으로 뻗어있는 산줄기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진안에서 공주, 부여 그리고 금산 분지 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다. 이 교통로를 따라 한 갈래의 봉수로가 이어지는데, 갈용리 조포 봉수 터는 이 봉수로 상에 분포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산리에 있는 고분 유적. 좌산리 고분 떼는 진안군 성수면 좌산리 원좌산 마을 동쪽 구릉에 자리하고 있는 고분 떼로서, 모두 4개소에서 고분들이 발견되고 있다.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고분의 성격과 축조 시기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좌산리 고분 떼 A는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산리 889-1에 있고,...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산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성수면 좌산리 일원의 유물 산포지로서 3개소가 확인되었다. 유물 산포지 내에서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확인되었는데, 오랜 기간에 걸친 생활 유적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성격을 명확히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상좌 마을에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좌포리 유물 산포지 A는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475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내좌 교차로에서 고분제로를 따라 80m 정도 진행한 후, 서쪽 봉좌 마을길로...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복합 유적지. 진안군 성수면의 소하천과 부귀면에서 흘러내린 소하천이 마령면 강정리에서 합류하고 합류 지점에서 3㎞가량 내려가면 강물이 U 자형으로 선회하는데 이 곳이 바로 좌포리이다. 좌포리는 북쪽에 뒷산이 병풍처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마을 앞에는 넓은 들이 있다. 좌포리 유적은 봉좌 마을 앞을 지나는...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주양리 괴정 고인돌은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서 단독으로 발견된 고인돌이다. 형태는 부정형이며, 장축은 하천 방향과 동일한 동-서방향이다. 덮개돌에는 떼어낸 흔적이 보이며, 고임돌 및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주양리 괴정 고인돌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13에 있다. 주양리에 있는...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있는 선사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주양리 유물 산포지 A는 주천 중학교에서 동상 주천로를 따라 동북 방향으로 110m가량 떨어져 있는 길 좌측 경작지에 자리하고 있다. 주양리 유물 산포지 B는 주양리 유물 산포지 A에서 동상 주천로 너머 20m가량 떨어진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
-
고려 후기 남송에서 귀화하여 진안에 은거한 신안 주씨 시조.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주자(朱子)이고 할아버지는 안양후(安陽候) 주야(朱埜)이고 아버지는 광국후(光國候) 충무공(忠武公) 주거(朱鋸)이다. 아들은 추밀원밀직사(樞密院密直司)를 역임한 주여경(朱餘慶)이고 손자는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를 역임한 주열(朱悅)이다. 주잠(朱潛)[119...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 지역에서 향민들이 자치적으로 만든 향약 관련 전적. 전라북도에서는 정읍 고현 내 향약과 남원 원동 향약이 가장 오래 되어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주천 향약의 경우 『주천 향약서』에 1700년대 광산 김상원이 창립하고 김기열이 글을 지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주천 지역 「사립 화동 학교 설립 청원서」[이병항 찬]의 내용 중에 있는 “금년 봄...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회사 마을 동쪽 끝자락에 있는 경작지에 주평리 유물 산포지가 있다. 유물 산포지 바로 동편에는 고려 시대에 축조된 회사동 석탑과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유적지인 회사동 절터가 자리하고 있다. 진안군 진안읍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 안천·무주 방향으로 약 7㎞ 가면 언건리...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및 일제 강점기의 유물 산포지. 주평리에 있는 원주평교로부터 서쪽 편에 자리한 재고개들에는 4곳의 유물 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다. 진안군 진안읍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 안천·무주 방향으로 약 7㎞ 가면 언건리를 지나는데, 언건리에서 약 300m 더 가면 국도 30호선과 지방도 49호선이 분기하는 곳에...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옆 암벽에 새겨진 각자.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마이산에 30일간 머물며 건국의 대의를 품었는데 「주필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암벽에 새긴 각자라고 한다. 주필(駐蹕)이란 임금이 거둥길에 잠시 머무르거나 묵고 간 것을 뜻하는데 조선의 창업자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1380년에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가마터.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는 조선 시대 분청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 2개소가 존재한다. 이를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A,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B라고 한다. 성수면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요지에 대한 변천 과정은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의...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던 절터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의 중산 절터 골에 위치한다. 중산리 동쪽에 땅이 검다고 해서 ‘곰지기’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복두봉[1,017m] 쪽의 작은 골짜기를 절터 골이라 하는데 이곳이 중산리 절터가 있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중산리 절터 대한 발굴 조사는 전혀 이루어진 바 없다. 다만 1989년 『진안 지방 문...
-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성수면 도통리 중평 마을의 계안.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 마을에서 작성된 계안은 동계(洞契)와 송계(松契), 장학계(獎學契), 흥학계(興學契) 등 4가지이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작성된 이들 계안은 원래 진안군 성수면 중평 마을 회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진...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지장산에 있는 봉수대 터. 진안군 용담면 소재지에서는 남쪽으로 13번 국도를 따라 3.5㎞가량 가다보면, 용담댐을 지나 삼락교가 나온다. 이곳의 동쪽에 있는 지장골을 따라 올라가면 지장산[774.3m] 정상부에 이를 수 있다. 지장산 봉수 터는 정상부에 있다. 2000년대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학술 지표 조사를 통해 그...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도통리 중평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변천 과정은 파악되지 않는다. 선해무리굽, 중국식 해무리굽, 한국식 해무리굽의 청자편 등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청자 생산 가마터가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도통리 중평 도요지는 성수면 소재지에서 외궁 교차로...
-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전라도 진안현의 통치를 담당한 지방관. 현감이란 수령(守令)으로 총칭된 지방관의 하나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현의 규모에 관계없이 지방관은 모두 현령(縣令)이라 불렀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 이르러 큰 현에는 영(令)이, 작은 현에는 7품의 감무(監務)를 두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다가 모두 현감으로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현이라고...
-
76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진안현(鎭安縣)의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보면, 현재의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난진아현(難珍阿縣) 또는 월량현(月良縣)이었고, 이 지역을 신라가 장악한 후 767년(경덕왕 16)에 진안현(鎭安縣)으로 개정하면서 벽계군(壁谿...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가막리·동향면 성산리·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의 접경을 이루는 산 정상부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천반산성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조선 후기 정여립(鄭汝立)이 역적으로 몰렸을 때 그 일당이 관군과 이 성에서 싸웠다고 전해지나, 축성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산성은 대체로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반산성...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고조선과 중국 연의 무력 충돌로 고조선 유이민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기존의 고인돌 사회는 급격히 해체되었고, 새로운 질서의 재편 속에서 마한 등 삼한 정치체가 형성되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철기가 새롭게 출현했고, 청동기 제작 기술도 크게 발전하면서 우수한 청동 제품이 급증하게 되었다....
-
767년부터 1313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동향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청거현(淸渠縣)은 기록의 미비로 인하여 정확한 지명의 유래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용담면·동향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에 해당하는 지역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명이 청거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에 이어 나타나며,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철제 도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진안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주거지와 고인돌 등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진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은 크게 생활 유적과 분묘 유적으로...
-
호남의 지붕인 진안고원은 도요지의 보고이자 도자 문화의 중심지이다. 약 1억 년 전 중생대 마지막 지질 시대인 백악기 때 큰 호수였던 진안고원이 고령토 산지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중앙부에 자리한 지정학적인 이점으로 줄곧 교통의 중심지라는 사실도 빼 놓을 수 없다. 진안고원에서 도자 문화의 첫 장을 열었던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외궁리의...
-
조선 후기의 진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건(子建), 호는 추모재(追慕齋).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진(崔璡)이고 아버지는 최이관(崔以官)이었다. 아들로는 최현위(崔玄暐), 최현휘(崔玄暉), 최현요(崔玄曜) 등이 있다. 최두칠(崔斗七)[1683~1756]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도덕심과 정의감이 강하였고 부모에 대...
-
조선 전기 용담 현령을 지낸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지(徽之). 최선보(崔善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자충(崔子忠)이고 아버지는 호조 전서(戶曹典書) 최윤문(崔潤文)이며 어머니는 어백유(魚白游)의 딸이다. 좌상을 역임한 최항(崔恒)이 아들이다. 최사유[1372~1455]는 1399년(정종 1)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식년 문과에...
-
고려 말 조선 초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함(伯函), 호는 만육(晩六)·장륙당(藏六堂). 아버지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역임한 최지(崔贄)이고 어머니는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역임한 정운관(鄭云瓘)의 딸이다. 최양(崔瀁)[1351~1424]은 14세에 외삼촌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익...
-
조선 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우은(愚隱). 고려 말 수절신 충익공(忠翼公)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5세손이다. 만육 최양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생질[정몽주가 만육의 외삼촌]로 고려가 망하자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팔공산에 은거하였으며, 후에 완주군 대승 마을로 이거하였다. 최인수(崔麟壽)[?~?]는 진안군 마이산에서 태어났다. 학...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태여(台汝). 충익공(忠翼公)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최규(崔逵)이고 아버지는 최세효(崔世孝)이고 장인은 탐진(耽津) 최도영(崔道永)이다. 아들로 최장기(崔長淇), 최호기(崔浩淇)가 있다. 만육 최양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생질[정몽주가 만육의 외삼촌]로 고려가 망하자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팔...
-
조선 시대 태종이 1413년 9월 25일과 26일에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행차하여 주솔산과 마이산에서 제사를 지낸 사건. 태종은 재위 13년인 1413년 9월부터 10월 초까지 33일 동안 삼남 지방을 행차하였다. 9월 10일 인덕궁에 행차를 고하고 17일에 유성 온천에 거동하였으며 용담을 지나 임실에서 사냥을 즐기고 10월 1일에 전주에 도착했다. 태종은 전주에서 강무...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대 터 태평 봉수는 금남 정맥의 큰 고갯길인 작은 싸리재의 동쪽에 위치한다. 작은 싸리재는 삼국 시대 진안고원에서 공주·부여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리적 요충지로, 주변에 다수의 산성과 봉수가 분포되어 있다. 서쪽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일대로 고중리 산성, 봉수대산·탄현 봉수 등...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평장리 송림 고인돌 떼는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송림 마을 인근에 있는 고인돌 떼이다. 고인돌의 형태는 방형 또는 부정형이며, 대부분 흙 속에 묻혀 있어 고임돌 및 하부 구조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다. 평장리 송림 고인돌 떼 A는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278에 있고, 평장리 송림...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송림 마을에 거주하는 양재호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송림 마을 양재호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는 백운면 평장리 송림 마을 어귀에 세워진 ‘남원 양씨 2효 1열비’[1892]의 주인공인 양원하, 양명수, 의성 정씨와 관련된 것으로 호구 단자, 혼서지류, 상서 등이다. 호구 단자는 사인이 관에 제출하는 것으로 4조와 부인, 그리고 딸...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떼. 평장리 오암정 고인돌 떼는 백운면 평장 마을 진입로변의 밭에 7기의 고인돌이 열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는 유적이다. 밭에 파묻혀 있고 수풀이 무성하여 7기 모두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고인돌 떼의 열은 하천과 동일한 방향이다. 평장리 오암정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에 있던 옹기 가마터. 백운면 평장리 정송 마을 옹기 요지는 생활 옹기를 굽던 가마터로서 마을 자체가 점촌으로 불리는 옹기 마을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마령현 동쪽 동림의 도기소와 남쪽 두원리의 자기소에 대한 기록이 있다. 동림의 도기소는 동림대라는 산봉우리가 있는 현재 백운면 평장리 정송 마을로 추정된다. 찰흙과...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에 살고 있는 정상렴이 소장한 고문서. 평장리 정상렴 소장 고문서는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이서면[성수면] 좌우개리 등지에 거주하였던 동래 정씨 호적 문서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 3년마다 호적을 작성했는데, 호주는 자신의 가족...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고분 유적. 평지리 고분 떼는 진안군 마령면에서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2개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고분 떼이다. 1개소에서는 고인돌과 돌덧널무덤이 각각 1기씩 조사되었으며, 다른 1개소에서는 구덩식 돌덧널무덤 6기가 조사되었다. 평지리 고분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산3에...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있던 근대 옹기 가마터. 평지리 원평지 옹기 요지는 나매기들이라고도 하는 마령 평야를 앞에 두고 위치한다. 이 나매기들에는 옹기의 몸을 이루는 질흙이 광활하게 매장되어 있다. 조선 신분 사회에서 신분상 하대했던 옹기점을 바로 마령현 소재지였던 원평지 마을 가까이 두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신분 사회가 흐트러지기 시...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평지리 유물 산포지는 원평지 마을 남악제 북쪽으로 뻗어 있는 높이 320m가량의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는 섬진강을 끼고 발달한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 통해 유물 산포지를 확인하였다. 유...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평지 토성. 평지리 토성은 진안군 마령면 소재지의 동쪽 송내 마을에 있는 평지 토성으로 송내 토성(松內土城)으로도 불린다. 토성은 주변의 비고 차가 13m 정도로 낮은 동산에 있으며, 평면 형태는 동벽이 짧고 서벽은 길며, 남벽과 북벽의 길이가 비슷한 방형이다. 성벽은 외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안쪽은 완만한...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문인.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청서(淸瑞), 호는 담락당(湛樂堂). 세종 대 영의정을 지낸 경재(敬齋) 하연(河演)이 12대조이고 명종 대 8대 문장가 중 한 명이었던 청천(菁川) 하응림(河應臨)이 7대조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하경윤(河慶潤)이고 할아버지는 하한징(河漢澄)이고 아버지는 하경천(河經天)이다. 부인은 삼의당(三宜堂) 김씨이다. 하립(河...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합미산성은 마이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의 석성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둘레는 611m이다. 성벽은 지대가 낮은 서쪽은 편축, 나머지 쪽은 협축하였으며 높이는 약 4~5m이다. 합미산성은 동서, 남북의 사통 팔달한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동국여지승...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향·소·부곡은 군현 아래 편성된 특수 행정 구역이었다. 향(鄕)과 부곡(部曲)은 삼국 시대부터 있었지만, 소(所)는 고려 시대에 생겼다. 향과 부곡은 주로 농경에 종사하면서 국가에 대하여 공역의 부담을 지는 반면, 소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 및 지류·자기·묵 등 특정 공납품을 생산하였다....
-
조선 전기 투항 왜인을 진안현에 나누어 거주하게 한 일. 조선 초기 왜구 대책의 실시와 식량의 부족 등 생활고로 인해 조선에 투항하는 왜인이 증가하였다. 조선에서는 향화왜인(向化倭人)이 흥리왜인(興利倭人)[조선을 오가며 무역에 종사하던 왜인]과 서로 왕래하는 폐단이 발생하자 향화왜인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 지방에 나누어 거주시켰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진안 지역에도 만시라(萬...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능실(能實), 호는 낙재(樂齋). 간숙공(簡肅公) 허주(許周)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 허신방(許藎邦)의 아들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허필(許弼)이고 할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허기린(許其潾),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허진방(許盡邦)이다. 외할아버지는 박지정(朴枝貞)이다. 허이찬(許以讚)[1606~1677]은...
-
조선 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백방(伯方)·백공(伯公), 호는 숙재(肅齋). 시호는 간숙(簡肅). 할아버지는 도관 정랑(都官正郎) 허윤창(許允昌)이고, 아버지는 판도 판서(版圖判書) 허귀룡(許貴龍)이며, 어머니는 통례 부사(通禮副使) 이길(李吉)의 딸이다. 아들은 공간공(恭簡公) 허성(許誠)이고, 동생은 좌의정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이다. 진안군...
-
웅치 전투는 1592년 7월 8일을 전후로 하여 전라도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고개인 웅치에서 전주 부성을 공격하고자 하는 왜군을 호남 지역의 관군과 의병이 사투를 전개하여 왜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안덕원까지 진출하였던 왜군을 격퇴하여 호남을 지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전투이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
조선 후기 국난(國難) 때 창의 활동을 한 진안 지역을 포함한 호남 사람들의 사적을 기록한 책.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은 임진왜란에서부터 1728년 무신란(戊申亂)까지의 국가 위기에 입절(立節)한 1,457명의 호남 사람의 사적을 수록한 것으로 해당 시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호남절의록』 편찬자에 대한 내용이 전하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용담 현령(龍潭縣令) 홍원섭(洪遠燮)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홍원섭은 1837년(헌종 3) 12월에 용담 현령으로 부임하여 1840년 12월에 교하 현령으로 전임하였다. 1845년 3월에 홍원섭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방폐 선정비를 세웠다....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용담 현령(龍潭縣令) 홍원섭(洪遠燮)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홍원섭은 1837년(헌종 3) 12월에 용담 현령으로 부임하여 1840년 12월에 교하 현령으로 전임하였다. 1847년에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영세 불망비를 세웠다. 홍원섭 영세...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노래재 동쪽의 정상부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환미산성은 테뫼식의 편축 석성이다. 둘레는 약 150m이며 대부분 붕괴하여 성벽의 흔적만 남아있다. 성 내부에서는 삼국 시대 토기편과 격자 문양이 있는 기와편 등이 수습된 바 있다. 수습 유물로 보아 이 환미산성은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산성의 축성 시기에 대해 임진왜란...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영의정 황희(黃喜)의 후손으로 세조 때 좌익공신 영의정 남원 부원군 황수신(黃守身)의 후예이다. 황국주(黃國柱)[?~?]는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세운 무신으로 문장이나 문필이 뛰어났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에서 왜적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침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晉)이...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황금리 가치 고인돌 떼는 정천면과 부귀면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가치 마을에 있는 고인돌 떼로, 총 20여 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가치 마을 북쪽을 감싸고 있는 옥녀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류의 하단부와 말단부에 단독으로 있거나 3~5기씩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 진안군 내에서 가장 밀집도가...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고분 유적. 황금리 고분 떼1은 중수항 마을 북쪽과 남동쪽에 산개되어 있는 2개소의 고분 떼이다. 중수항 마을 북쪽의 야산 정상부와 사면 아래에서 고분 여러 기가 확인되며, 주변에서 고려 시대 토기편·자기편·옹기편 등이 발견된다. 또한 중수항 마을 동남쪽 야산의 능선 하단부에서 고분의 측벽석으로 보이는 석재가 다수 보인다....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고분 유적. 황금리 고분 떼2는 가치 마을 남서쪽에 자리한 구릉에 있는 고분 떼이다. 황금리 고분 떼2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산21에 있다. 이곳은 가치 마을 남서쪽 구릉 지대의 남사면이다. 진안군 부귀면에서 5㎞ 남짓한 지점에 있는 하수항 마을에서 하천을 건너 동쪽으로 향하면 중수항 마을이 있고, 중...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떼. 황금리 고인돌 떼는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의 4개 마을에 걸쳐 무리지어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 떼이다. 2006년에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으며, 마을 앞을 흐르는 황금천을 따라 4개 마을에 덮개돌이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 황금리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던 조선 후기 가마터. 황금리 봉곡 도요지에 관한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변천 과정은 파악할 수 없다. 발·대접·완·잔·접시 등의 백자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운영되던 백자 생산 가마터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은 진안 황금 지구 둑 높임 사업으로 인해 발굴 조사 후 수몰되었다. 황금리 봉...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진안군 진안읍에서 부귀 교차로를 통해 지방도 49호선을 따라 부귀면 소재지로 들어오면 부귀 초등학교가 있는 거석리를 지나게 된다. 거석리를 지나 약 4㎞ 지점에서 회신동 마을과 두남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회신동 마을에서 서쪽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약 2㎞ 가다 보면 중수항 마을에...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황금리 진상 도요지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도요지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양상을 볼 때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요업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황금리 진상 도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307임에 있다. 전주~진안 간 국도상에 있는 부귀 교차로를 나와...
-
조선 후기 진안 출신 의병장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을 이끌고 각지에서 왜병과 싸웠던 의병장이다. 부인은 옥천 육씨이다. 황대성(黃大成)[?~?]은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수 백 명을 이끌고 각지에서 왜병과 대항하여 싸우다가 황간(黃澗)에서 체포되어 일본에 포로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그의 충의와 행동에 감복한...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 있는 화산 서원에 소장된 방촌 황희의 초상화. 화산 서원에 봉안되어 있는 방촌(厖村) 황희(黃喜)[1363~1452]의 초상화이다. 황희는 조선 전기의 재상으로 내외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조선 개국 초기의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힘쓴 인물이다. 「황방촌 영정」은 경상북도 상주시 옥동 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844년(헌종 10...
-
조선 전기 진안에 세거한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조선 초기의 유명한 재상이자 청백리의 표상이었던 익성공(翼成公) 방촌(尨村) 황희(黃喜)의 5대손이다. 황징(黃澄)[?~?]은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세거하는 장수 황씨의 입향조로 알려졌다. 조선 초기에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 하지만 문과에 급제하였거나 혹은 생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아 벼...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문헌 기록이나 명문 기와 등 절의 이름을 밝혀주는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와 연혁은 알 수 없고, 절 내에 고려 시대 양식을 띠는 회사동 석탑만이 고려 시대 운영되었음을 알려준다.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회사 마을 입구에서 마을 회관을 지나 동쪽으로 회사길을 따라 160m 정도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
-
전라북도 진안 지역 출신이거나 진안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아들. 진안 지역에서는 많은 효자가 나왔는데, 『진안 군사』에 수록된 효자가 280명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 중 효자 정려를 받은 사람이 22명이다. 신의련(愼義連), 오성복(吳成福), 유대겸(兪大謙), 양원하(梁原河), 양종윤(梁鍾潤), 김학배(金鶴培), 김봉...
-
전라북도 진안군의 이부용이 소장하고 있는 효자 이희식에게 내린 증직 교지. 「효자 이희식 교지」는 1998년에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2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희식의 후손 이부용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이다. 교지(敎旨)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자격, 시호, 토지, 노비, 특전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이다. 각각의 목적에 따라 고신(告身), 홍패, 백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