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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보루 터. 삼국시대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보루로 추정되며, 남쪽의 엽둔재를 지키는 초소와 같다. 임진왜란 때 안성의 선비 홍계남(洪季男)이 의병을 이끌고 왜군을 막았던 곳이라 전해온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5리 엽둔재의 북쪽 산봉우리에 있다. 해발 371.7m의 봉우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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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한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가사 문학의 대가로 국문학 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등의 가사 작품과 시조를 남겼다. 문집으로는 『송강집(松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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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교성리 절터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 기와 등은 발견되지 않으나, 진천 교성리 연화대좌의 양식으로 보건대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된다. 또한 소재지의 명칭이 탑골이고, 거대한 불상의 석조대좌가 전하여 오래된 절터였으리라 짐작된다. 남산의 북록에 위치한 지형으로 보아 북향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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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李相卨)은 1870년 음력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아버지 이행우(李行雨)와 어머니 벽진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순오(舜五), 호는 부재(溥齋)이다. 고려 말 대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23대손이다. 이상설은 1876년 6세 때 승정원동부승지 이용우(李龍雨)의 양자가 되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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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자수(字修), 호는 모암(慕庵). 아버지는 김천익(金天益)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김덕숭(金德崇)[1373~1448]은 지금의 황해도 개성[옛 송도]에서 태어났다. 고려가 망하자 송도판윤으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추자(楸子)마을에 정착하였다. 1393년(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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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고려 후기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 김사혁을 기리는 비. 김사혁(金斯革)[1320~1385]은 강릉김씨 진천 입향조로, 호는 절정(節亭)이다. 1345년(충목왕 1) 음서로 대관서승(大官署丞)이 되어 관계에 입문한 이래 병부낭시중과 계금위 등을 거쳐 동북면행영절제부사로 홍건적을 물리쳤고, 이어서 전라도원수와 양광도병마대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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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만노군(萬弩郡) 태수를 역임한 신라의 귀족. 본관은 김해(金海). 일명 김소연(金消衍).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12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주군주(新州軍主)를 역임했던 김무력(金武力)이며, 아내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손녀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아들은 삼국 통일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김유신(金庾信)이고,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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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효부. 본관은 정선(旌善). 승정원좌승지에 증직이 된 김우(金瑀)의 부인이다. 정선전씨(旌善全氏)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켜 부모를 효로 대하고,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집안의 화목에 힘써 인근의 본보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드리는 일을 거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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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노은정의 터. 노은정은 충청북도 진천의 평산신씨 입향조인 신잡(申磼)[1541~1609]의 후손 정묵재(靜黙齋) 신협(申俠)이 건립한 정자이다. 모정 또는 모정골이라고도 한다. 신협은 노은정 앞에 조그마한 연못을 판 후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이후 노은정은 신협의 후손인 신현복(申鉉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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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성공회 소속 교회.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에서 종교개혁의 결과 성립되어 세계 전역에 퍼진 국가별 독립·자치 교회들의 교단으로 영국교회·앵글리컨처치·영국성공회·잉글랜드교회라고도 한다. 선임 주교이자 명목상의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다 같이 충성하고 「성공회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가 규정하는 교리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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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 사이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만노산성(萬弩山城)은 문헌 기록에 만노성(萬弩城)·만뢰성(萬賴城)·이을성 등으로도 나타나는데, 현재는 만노산성 또는 만뢰산성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표기된 바에 따라 이을산성이라 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만노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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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와 사석리 문안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문안산(文案山)[420m]은 사방의 전망이 대단히 좋은 전략적 요충지로, 문안산성(文案山城)은 삼국시대에 이미 축조되어 주로 진천의 남쪽 방면을 방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진천군으로 진입하다 보면 진천읍 문봉리와 사석리 사이의 속칭 ‘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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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이공승의 영정을 모신 영당. 사양영당(思陽影堂)은 고려 후기 명종 때의 문신인 이공승(李公升)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이공승은 청주 출생으로 첫째가 나랏일이고, 둘째가 개인의 일이라는 신념으로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의종 때에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받은 크고 작은 선물을 모두 물리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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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터. 본관이 순흥인 안동(安迵)은 1835년(헌종 1)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54세라는 고령으로 인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덕산읍 두촌리에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여 70여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한다. 안동이 67세를 일기로 죽자 제자들이 1849년(헌종 15) 숭현사(崇賢祠)를 짓고 안동과 그의 할아버지인 농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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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신화국의 행적을 적은 묘지(墓誌). 신화국(申華國)[1517~1578]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덕부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아들 신잡(申磼)과 신립(申砬)의 공으로 평주부원군(平洲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신화국 묘지가 소장된 곳으로 가려면 진천읍에서 이월면 방면으로 7㎞쯤 가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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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쌍오정의 터.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 경주이씨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후손인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지은 정자이다. 쌍오정이란 이름은 이인엽의 할아버지인 이시발의 호 벽오(碧梧)와 증조부 이대건(李大建)[1550~1574]의 호 오촌(梧村)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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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안동김씨 일가의 충의를 기린 정려각. 안동김씨 사충문은 1728년(영조 4)에 김천주·김천장 형제와 그의 아들, 조카인 김성추·김성옥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맞서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뜻을 기린 충신문으로 안동김씨 문중의 충의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진천 길상사(吉祥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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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우물 터. 연보정(蓮寶井)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원형 우물로서,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사용했던 우물이라 전한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鉉)이 만노군태수로 부임하여 살던 곳으로, 큰 담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후대에 담안밭이라고도 불렸다. 이외에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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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는 한마디로 ‘절개가 굳은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절을 지켜낸 여성을 뜻한다.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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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희원(柳希源)의 정려각. 유희원(柳希源)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라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고, 부모가 노환으로 병석이 눕자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뒷바라지를 하였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앙천기도(仰天祈禱)하여 잉어를 구해 봉양하였다. 하지만 유희원(柳希源)을 모함하는 자들이 그가 불효막심하다고 관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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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한국전쟁 당시 애국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한국전쟁 당시 후퇴 중이던 우리 국군은 북한군 을 맞아 진천의 문안산(文安山)과 봉화산(烽火山)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을 섬멸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6·25격전지 반공투사 위령비는 당시 진천지구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애국 용사들의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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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대건의 신도비. 이대건(李大建)의 본관은 경주로, 고려 후기 유학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아들이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시발(李時發)이다. 이시발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朴春茂)를 따라 공을 세운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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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증조할아버지는 행원(杏園) 이부(李阜)이다. 이집(李楫)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날을 보내어 효자로 소문이 났다. 커서는 부모의 대변 맛을 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날마다 묘소에서 슬프게 곡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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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에 있는 신라시대 절터. 지장사(地藏寺)가 지장보살을 모신 절이어서 마을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지장사 터에 관하여 『문화유적총람』에는 “고려시대에 지장보살을 모셨던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지금까지 지장골 절터라고 전해지는데, 사찰이 있었던 유지와 와편을 발견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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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금성대군의 사우.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왕자로 이름은 이유(李瑜)이다.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의한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지를 전전하다 경상도 순흥에 안치되었으며,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1457년(세조 3) 사사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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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생가와 태실.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은 김유신(金庾信)[595~673]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탯줄을 보관한 태실을 가리킨다. 김유신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595년(진평왕 17)에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당나라군과 연합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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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남지의 묘소 및 신도비. 남지(南智)[?~?]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지숙(智叔)이다. 세종~단종 대의 문신으로, 영의정 남재(南在)의 손자이다. 좌의정으로 있을 때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문종으로부터 단종을 보필하라는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풍질로 낙향하였다가 병사하였다. 남지가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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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 송인의 묘소. 송인(宋仁)[?~1126]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서 태어났으며,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 인종을 호위하다가 척준경(拓俊京)이 이끄는 난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난이 평정된 후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추증되고 상산백에 봉해졌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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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신헌의 가옥. 신헌(申櫶)[1810~1884]의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이다. 조선 후기 무신이며 외교가로 병자수호조약과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는 등 조선의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말년에는 고향인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시호는 장숙(壯肅)이다. 진천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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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거이의 묘소. 이거이(李居易)[1348~1412]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건국에 공이 있으며, 1398년(태조 7년)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공을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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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생가.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진천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번지[이상설안길 10]에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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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이영남의 묘소. 이영남(李英南)[1547~1598]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옥포만호로서 원균(元均)을 도와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왕래하며 군사를 요청하는 등 여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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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고려 후기 이정 부부의 묘소. 이정(李挺)[1297~1361]의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 김계초의 딸이다. 이정은 1326년(충숙왕 13)에 병과2등으로 급제하여 봉거직장(奉車直長)·경상도찰방(慶尙道察訪)에 나갔다가 낙향하여 10년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은거하였다. 1353년(공민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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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철의 위패를 모신 사당. 정철(鄭澈)[1536~1593]의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시인이다.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같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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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진천 대모산성은 616년(진평왕 38)에 백제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모산성(母山城)으로 비정하려는 설이 있으나 대모산성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의 지리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일제강점기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상산지(常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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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는 강학 장소인 동시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사당인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 그리고 강당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천향교(鎭川鄕校)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향교골에 있으며, 진천읍 동남쪽 급경사면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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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최유경·최사흥 부자의 정려각. 전주 출신인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공민왕 대에 사헌장령(司憲掌令), 우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郞)·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등을 거쳐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경기·충청도의 도체찰사를 거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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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평산(平山). 남편 최혼(崔焜)은 지사(知事) 최극성(崔克誠)의 손자로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신씨는 남편 최혼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는 등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죽자 만 1년 뒤 기제사를 마친 후 곡기를 끊고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1699년(숙종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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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와 문봉리 태령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태령산(胎靈山)의 정상부를 감싸고 돌로 축조한 산성인데, 이 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군중면 문봉리와 상계리 사이의 태장산에 있는 성지로, 국유림이며 봉평리 부락의 서쪽 작은 구릉에 있다. 석축으로서 둘레 150간, 높이 4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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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의거를 기념하는 비.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1910년까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강원도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의병장이다. 그는 고향인 세교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유격전을 벌여 번개장군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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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와 진천읍 지암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고문헌 기록에 환희산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축조 경위 등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932년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에 환희산(歡喜山)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산성의 존재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 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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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이거나 진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효 사상은 뿌리가 깊다. 특히 유가(儒家)에서는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 하여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가족제도 아래서는 가장 우선시되며 근원적인 것이 효 사상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