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제2아파트 앞에 조성된 시민휴식 체육공원. 원래 이곳에는 가마못이 있었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현재의 비봉산 옛 이름은 대봉산이었다. 예로부터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배출되자 중앙에서 그 연유를 알아본 바 대봉산에 봉암이 있어 그런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에 봉암을 부수고 대봉산의 봉황을 끊기 위해 가마못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가마못이 있던 자리...
-
각종 섬유를 생산하거나, 실크 등의 섬유를 원료로 쓰는 가공품을 생산하는 산업. 진주지역의 견직공업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전통적인 기법의 견직생산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에 진주 인근의 산청지역에 그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근대식 견직공장이 설립된 것은 1910년대이다. 1920년대에 추겸호가 동양염직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30년대에는 일본인 오다나까가 오다나까...
-
1909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창간된 전국 최초의 지방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은 1883년 박문국에서 발행된 『한성순보』이다. 그 이후 개화기를 거치면서 『독립신문』, 『경성신문』, 『황성신문』 등이 서울을 중심으로 발행되었다. 또한 외국인에 의해 서울을 비롯하여 대구, 인천 등 지방에서도 신문이 발행되었다. 대구와 평양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주축이 되어 신문을 발행하려는...
-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의 사진작가. 김종태는 1915년 경상남도 진주시 대안동에서 출생한 사진작가로서 1951년 진주에서 치러진 영남예술제의 사진부를 창설하였고 진주를 중심으로 사진예술의 보급을 위해 진주사진클럽을 창설하고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으며, 각종 대회 심사 및 지도위원으로 활동한 사진예술가이다. 진주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동경 제등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진주영남예술제(...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에 있는 효적비. 유인 남원양씨가 시아버지에게 행한 효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효행내용을 기록하여 두문마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 두문마을 산기슭에 위치한다. 비좌는 방형이고 비수는 한옥와가 형태의 가첨석인데, 방형의 받침돌 사방에 석주를 세워 대형의 비수를 받치고 있어서 마치 보호각의 역할을 겸하도록 하였다. 비문은 한문...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효열비. 방형의 비좌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 양옆으로 석주를 세운 다음 가첨석을 얹었다. 비문은 한문으로 지었는데 그 내용은 증가선대부호조판서 황우수의 딸인 유인 회산황씨가 김해인 김평린에게 시집와 시부모의 병구완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인 지극한 효행을 행한 것을 기록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의 법정리. 대천리 내에 있는 자연마을인 대동(大洞)과 대천리를 흐르는 답천(沓川)을 합하여 대천리로 이름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의 반성현에 속했다가 동면 가수개리와 정수개리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이반성면과 가수개면으로 되었다. 1914년에 진주군 가수개면 대동·가산동, 외진성면 답천동 각 일부로써 대천리라 하였는데, 현재 대동·오...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창렬사에 배향된 배위에 대한 내용을 새긴 석비.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한 기록이므로 ‘동배서배비’라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제1차 진주성전투(진주대첩)와 제2차 진주성전투(계사년 전투)에서 순국한 인물들 39기의 위패 중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해 1833년(순조 33) 임금이 위무의 글을 지어 보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에 있는 도시가로명. 도시 가로가 행정 구역인 망경동을 지나고 있어 망경로라고 하였다. 1979년 3월 5일 22개 노선 및 7개의 광장명을 확정하고 1982년 1월 23일 가로명 설치 조례를 제정 공포하고 1983년 2월(조례 제989호), 1985년 7월(조례 제1184호) 개정하였다. 진주의 남강을 가로지르는 진주교의 남단에서 망경동의 육거리를 거쳐 내동...
-
경상남도 진주시 장대동-동성동-본성동-남성동으로 이어져 있는 도시 가로명. 가로가 진주성의 외성이었던 본성동을 지나므로 본성로라고 하였다. 1979년 3월 5일 22개 노선 및 7개의 광장명을 확정하고 1982년 1월 23일 가로명 설치 조례를 제정 공포하고 1983년 2월(조례 제989호), 1985년 7월(조례 제1184호) 개정하였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합동주차장)에서 남강신...
-
경상남도 진주시 봉래동과 수정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봉수동에 해당하는 법정동인 봉래동과 수정동의 앞 글자를 합하여 봉수동이 되었다. 본래 진주군 진주면 대안동이었다가 1939년 10월 1일 진주부제 실시에 따라 옥산정으로 되었다. 해방 후 1949년 일본식 지명의 변경에 따라 봉래동과 수정동으로 고쳤다. 이후 수정동은 1973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에 의하여 수정남동과 수정...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계동·봉곡동을 관할했던 행정동. 법정동인 봉곡동과 중안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봉안동이라 하였다. 1949년 진주읍이 시(市)로 됨에 따라 리(里)가 동(洞)이 되었다. 1997년 7월에 중안동과 봉곡동을 통합하여 봉안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봉안동은 법정동인 중안동, 봉곡동으로 이루어졌으나 2013년 5월 1일 행정동 성지동과 함께 통합되면서 성북동으로...
-
진주지역의 대표적 민속놀이인 소싸움이 벌어진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둔치 일대. 진주지역에서는 전통시대부터 남강변의 발달된 백사장을 이용하여 소싸움경기를 하였다. 이러한 소싸움은 특정한 날에 하던 민속놀이의 하나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각종 대회 성격으로 치러지고 있다. 근대에는 진주시 장대동의 남강 백사장이나 서장대 밑의 남강둔치에서 행해졌는데, 그 중에서 서장대 밑의 남강 둔치(진...
-
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이용하여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고유의 운동.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생된 전통 민속놀이의 하나로, 우리나라 역사상 농경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각력(角力)·각저(角抵)·각희(角戱)·상박(相搏)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나 그 방법에...
-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근대적 의미의 진주지역 언론은 1909년 10월 15일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지인 『경남일보』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남일보』가 1914년 강제 폐간된 후 진주의 언론은 『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경성일보』·『매일신보』·『 조선민보』·『남조선시보』의 진주지국과 『...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고택. 같은 마을에 위치한 이충무공 진뱀이유지(경상남도 기념물 제16호)와 관련된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죄인으로 몰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원균이 대패한 칠천량 전투지역을 둘러보고 권율 도원수가 있는 초계로 가던 중, 1597년(선조 30) 7월 27일 이곳 손경례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8월 3일에 이곳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재...
-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있었던 운수업체. 설립자 하라다(原田)는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 출신으로 사업 기반을 확보하고 금전적으로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노동자를 착취하는 등 악덕기업주로서 노사 간의 충돌을 일으키는 등 불합리한 경영을 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진주지역을 기반으로 조선인들의 경제력을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일본에서 운전기술을...
-
우리나라 전통공예품 중의 하나인 장도(粧刀:칼집이 있는 작은 칼)를 만드는 장인. 장도는 소도(小刀)의 일종으로 처음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휴대용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점차 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고 하여 낭도(囊刀)라고도 하고, 허리에 차고 다닌다고 하여 패도(佩刀)라고도 하였다. 칼을 만드는 소재에 따라서도 은장도·목장도·골장도·금장도·뿔장도 등이 있으며,...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1886년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원동에서 출생하여 초년에 한문을 수학하고 신문학을 독학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국내의 서예가 및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고 일본, 대만 등지를 순유하였다. 1953년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별세하였다. 정대기는 동양화 전반에 걸쳐 능하였으나 특히 사군자에...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서예가. 1909년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아버지 정상진과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나 부친이 건립한 비봉루의 현판을 쓰기 위해 서예에 입문하여 서예가의 길에 들어섰다. 평생을 서예에 매진하면서 진주시를 벗어나지 않고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만 진력하였으며, 부친이 건립한 비봉루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에 별세하였다. 부친인 정상진이 건립한 비봉루의 현판...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 있는, 동몽교관 역효당(亦囂堂) 정육의 효행을 기록하여 세운 정려비. 정식명칭은 ‘동몽교관조봉대부역효당정효비(童蒙敎官朝奉大夫亦囂堂旌孝碑)’로, 1892년(고종 29) 고종황제가 효자 정육의 효행을 기려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증직하고 정려를 내린 내용을 새긴 비이다. 정육의 5세손 정영석이 나라로부터 정려를 받은 은덕을 드러내고자 1942년 임오년 청...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서예가. 1905년 당시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출생하여 유년기에 친척인 노백헌 정재규로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고, 일찍이 진주로 이주하여 서예가로서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통하여 서예가로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행서에 능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여 말술로 이름이 났고 북을 잘 다루어 한량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1973년 69세로...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에 있는, 김진의 처 진양강씨의 정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진양강씨의 남편인 김진이 왜적에게 화를 당하자 왜적 13명을 죽이고 자결한 진양강씨에게 내린 정려로, 1868년(고종 5)에 건립하였다. 맞배지붕의 기와집에 정면과 측면 각각 1칸이다. 좌우와 뒷면은 벽을 설치하고 전면은 목창살벽을 하였다. 내부에는 정려기와 정려판이 걸려 있으...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재령이씨의 고가로 1718년(숙종 44)에 지어져 수차례 보수를 거쳤다. 전형적인 남부형 고가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특징적인 요소가 있어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소재지의 지명인 대곡면 마진리와 소유주의 성씨인 재령이씨를 따서 진양 마진리 이씨고가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592번지...
-
두 소를 마주 세워 싸우게 하고 이를 즐기는, 진주지역에 전래된 전통 민속놀이. 진주 소싸움에 관하여는 여러 곳에 그 기록이 전해지고 사진자료들도 많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12권 〈소싸움〉항목에서는 “경상남도 지방에서 주로 성행하였으며……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남강의 모랫벌에서 소싸움을 해왔으나…… ”라고 적고 있다. 같은 책 제21권의 〈진주시〉 항목의 민속에는...
-
고려 및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진주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묵게 하던 숙소. 진주객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조선 전기 문신 하륜(河崙)의 「봉명루기」에 당대 이전에 두 번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보아 진주객사는 고려 말경부터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는 진주시 평안동 47번지 일대이다. 객사는 궐패(闕牌: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시고...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과 진주성에서 매년 10월 1일~12일에 열리는 등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시에서 매년 개최되는 개천예술제의 행사 중 남강변에서 유등띄우기를 진주성싸움과 연계하여 실시하는 하나의 독립된 행사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국의 각 지역에서 행해지는 천편일률적인 축제에서 벗어나 진주지역의 역사와 특색을 살린 축제로 자리...
-
경상남도 진주시와 삼천포시(현재 경상남도 사천시로 개편되었음)를 중심으로 전래되고 있는 농악. 진주삼천포농악의 유래는 농사안택축원설(農事安宅祝願說)·군악설(軍樂說)·불교관계설(佛敎關係說) 등이 있으나 농악의 목적에 따라서 당굿과 같은 마을굿·지신밟기·걸립굿·두레굿·판굿 등으로 분리 발전한 것으로 본다. 진주삼천포농악은 12차의 판굿으로서 걸립굿과 두레굿 등의 가락을 12종 36가락...
-
진주의 소리는 진주지역의 교방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가곡, 시조 등 소리와 동편제를 중심으로 한 판소리. 진주는 일찍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토착부호들이 많아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성행했다. 또한 진주는 역사적으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여서 일찍부터 교방이 설치되어 관 주도의 문화가 전파되었고, 가무가 발달하여 많은 명창이 배출되었다. 진주는 신라시대부터 서부...
-
진주시 본성동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장석 전문 전시관. 이 향토민속관은 태정민속박물관 시기와 현재의 진주시향토민속관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83평의 전시실에 장석류 약 8만 점을 비롯하여 자물쇠 831점, 장석 제작 도구 15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태정민속박물관 시기는 평생 동안 가구 장석(옛 목가구에 사용되었던 모든 금속)과 민속품 수집에 전념했던 고 태정(苔井) 김창문(...
-
진주 출신의 국악인. 1892년 7월 7일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출생한 최순이는 조선 말 진주교방의 여기였다. 9살 때부터 검무를 전수받았고, 그 후 궁중에 들어가 어전에서 연희하다가 진주로 낙향하여 동기들을 가르치면서 검무의 계통을 이어온 진주검무보유자이다. 금보에게 9살에 배운 국문 해득이 전부이다. 검무보유자로 60년간 종사하였다. 14세에 선상기(選上妓)로 서울에 설치된 진...
-
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에 있는 문화예술단체. 큰들문화예술센터는 조상대대로 전해져 온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건강한 지역문화를 연구하여 현대에 맞는 우리 문화의 전형을 창조 보급해 가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3년 8에 ‘물놀이패’라는 이름으로 창단준비를 하여 1984년에 1984년에 ‘큰들’로 출범하여 「진양살풀이」로 창단공연을 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하공진의 사적비.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하공진은 자신을 볼모로 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하공진의 이와 같은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69년에 하공진의 후손이 건립하였다. 방형의 대좌와 거북형태의 비좌가 한 돌로 되어 있고 비신 위의 비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추사체 서예가. 하동주는 1879년에 경상남도 거제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진주로 이주하였으며, 아버지 하제봉(河濟峰)으로부터 추사체를 전수받아 추사체로 일가를 이룬 진주시의 대표적인 서예가이다. 하동주는 추사체의 행서에 주력하여 경지에 올랐다. 일생을 진주시에 주로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고, 진주지역의 서예가로 활동한 은초 정명수와 도연 김정에게 추사체를...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사진협회의 진주지부. 사진예술에 관한 지속적인 이론연구와 합동촬영 및 발표를 통하여 회원들의 예술적 기능을 드높이고 향토사진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회원 간의 친목과 권익을 도모한다. 1962년부터 진주사진클럽을 결성하여 사진 활동을 하다가 1965년 7월 16일에 한국사진협회 본부의 인준을 받고 창립하였다. 당시 회원수는 56명이었으며,...
-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에 있는 실크 전문 연구기관. 견직의 제직·염색·가공·디자인에 관한 연구, 견직업체에 대한 기술지원 및 기술지도, 기술인력 양성과 생산비 절감 그리고 품질향상을 위한 시제품개발 지원 등을 통한 진주 견직산업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1987년 12월 9일에 사단법인 한국견직연구원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1988년 2월 24일에 민법 제32조(비영리법인의...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의 진주지역 지부. 한국음악협회 정관 목적의 달성과 음악예술의 발전, 향토음악문화 발전에 기여함과 아울러 회원 상호간의 친선과 권익을 옹호함은 물론, 진주지역 음악환경의 발전과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49년부터 개천예술제 음악부 행사를 주관하면서 활동하다가 1962년 한국음악협회 진주지부로 인준을 받았다. 회원음...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1911년에 당시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에서 출생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의기와 지조로 살았으며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사사하였다. 그림으로도 명성을 날렸고 또한 허준의 『동의보감』과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번역한 한학자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1967년에 57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한국화의 전통필법으로 산과 화조를 주로 그렸으며, 내고 박생...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부친은 사근도 찰방을 지낸 황희연(黃喜淵)이다. 1881년에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와 경상남도 고성군의 경계에 있는 새티고개에서 출생한 황영두는 10세에 사랑에 머물던 과객이 묵화를 그리는 것을 보고 그림을 시작하여 천재적인 솜씨를 보였다고 한다. 고종의 부름을 받고 어전에서 그림을 그려 칭송과 상을 받았으며, 궁정화방에 머물면서 이당 김은호와...
-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1883년에 하동에서 출생하였고, 진주에서 활동한 동초 황현룡은 목단을 특히 잘 그린 한국화가이다. 소치 허유에게서 사사하고 의재 허백련과 교유하였다. 전국을 돌면서 전시회를 열었고, 일본 화단과도 활발한 교류를 벌였다. 서양화가 이우환(李禹煥)은 황현룡의 「금강산도」를 보고 사실적 유상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화풍을 이룬 작품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