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해 인천 지역에서 벌어진 시민운동. 2000년 4·13 총선을 맞아 전국 412개 시민 사회 단체들은 총선 시민 연대를 구성하여 대대적인 낙선, 낙천 운동에 나섰다. 인천에서도 시민 사회 단체들로 관련 연대 기구가 구성되어 낙천, 낙선 대상자를 발표하였으며 인천광역시 남구의 출마 후보자도 이에 해당하였다. 1999년 시민 단체들은 국회의원들에...
-
2010년 9월 21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내린 폭우로 인해 발생한 자연 재해. 2010년 9월 수해는 시간당 100㎜가 넘는 비를 기록했으며, 주택이 침수되거나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서울의 강우 관측 기록은 하루 259.2㎜에 달해 9월 하순 강수량으로는 1908년 관측 시작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시베리아 기단과 아직도 남아 있는 북...
-
2010년 1월 4일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중부 대부분 지역에 내린 폭설. 2010년 1월 4일 오후 2시에 서울특별시에 25.8㎝의 눈이 쌓이면서 1937년 적설 관측 이래 최대 신적설을 기록했다. 2010년 폭설로 인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폭설이 내리기 전인 2009년 12월 26일 무렵부터 만주 지역 지...
-
1946년 2월 6일부터 시작된 서울과 인천 사이의 버스 운행. 서울과 인천 간 버스 운행 코스는 서울에서는 영등포(永登浦)를 출발하여 오류동(梧柳洞), 구로리(九老里)[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를 거쳐 부천의 소사(素砂), 명치정(明治町), 인천의 부평, 주안, 경전 창고(京電倉庫)를 지나 송판정(松坂町)까지이다. 버스 운행 자체는 최초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그...
-
2011년 6월 1일에 인천광역시 지역의 시민 단체들이 수원 지방 법원에 낸 경인 고속 도로 통행료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이 시점인 경인 고속 도로 통행료 징수에 대한 반대 운동은 1997년 5월 12일 한국 도로 공사가 통행료를 800원에서 1,000원으로 기습 인상하자 1997년 5월 23일 인천 YMCA와 인천 사랑 여성 모임이 이에 반발하며...
-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 감리서로 이송된 김구가 1898년 탈옥한 사건. 1896년 3월 9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김구(金九)[1876~1949]가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타살했다. ‘치하포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날의 사건은 김구가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목적으로 명성 황후를 살해한 일본인, 혹은 범행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왜구(倭寇)’ 한 명이라도...
-
1949년에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김구 주석 애도 행사. 1949년 7월 5일 서울 운동장에서의 영결식에 맞추어 당일 오후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당시 인천부 도원동]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김구 주석을 애도한 집회이다. 김구(金九)[1876~ 1949]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이유는 김구와 한국 독립당을 중심으로 전개한 남한 단독 정부 수립...
-
1946년 5월 19일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인천 지부 주최로 개최된 신탁 통치안 반대 집회.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이승만이 1945년 10월 23일 결성한 독촉 중앙 협의회를 모체로 하여 결성된 전국적 규모의 우익 연합 단체로 1946년 2월 8일 조직되었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동양 제철 화학 공장에서 배출된 폐석회의 처리 문제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일어난 사회 운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공장이 위치한 동양 제철 화학은 자사의 폐석회 야적장 인근 공유 수면 매립지에 대한 아파트 건설 사업 승인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320만 톤에 달하는 폐석회 처리가 환경 문제로 불거지면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아파트 건립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문학산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할 계획을 철회시키기 위한 시민운동. 1998년 12월 4일에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동에 위치한 봉재산 방공포 부대에서 나이키 미사일 한 발이 오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미사일이 자폭하여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시민들의 방공포 부대에 대한 우려는 커졌고 부대 이전에 대한 요구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봉재산에서의 미사일 오발...
-
1947년 7월 27일 민주주의 민족 전선 인천 지부가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한 집회. 좌익 계열의 ‘민족 통일 전선’ 조직인 민주주의 민족 전선 인천 지부가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와 조선 임시 정부 수립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한 집회이다. 미국과 영국, 소련의 3개국 외상은 1945년 12월 16일 소련 모스크바에서 3개국 외상 회의를 열고 그 해 1...
-
1946년 7월 4일 미국 독립 기념일을 맞아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기념 축하행사. 미국 독립 기념일은 미국의 공휴일 가운데 비종교적인 것으로는 가장 성대한 기념일이다. 대륙 회의가 독립 결의안을 실질적으로 승인한 것은 7월 2일이고, 독립 선언문이 공식 발표된 것은 7월 8일이었지만 독립 선언문의 초안이 만들어진 것은 7월 4일이었다. 독립 선언 제1주년 축하 행사는 필라...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淸)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이상재(李尙載)[1607~1636]가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鄭世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출정하여, 인조가 피란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향하여 진군하다가 용인에서 적의 협공을 받아 전사하였다. 1627년 후금(後金)[뒤의 청]의 조선에 대한 1...
-
1960년 4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학생과 일반인 등이 참가해 자유당 정권을 붕괴시킨 민주주의 혁명. 4·19 혁명은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3·15 부정 선거에 맞서 1960년 4월, 학생들이 주도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으로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는 인천 공업 고등학교, 인천 사범 학교, 인하 대학교 학생 등이 시위에 앞장서며 인천 지역의 4·...
-
1946년 해방 후 첫 3·1절을 맞아 인천시 도원동에 있는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기념식. 해방 후 인천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3·1절 기념행사는 당초 좌·우익 정당 간에 연락이 없이 각자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러다가 3·1절 행사를 통해서라도 좌·우익 양측이 일치단결하여 치르자는 의견에 일치를 보아 1946년 2월 20일 인천시 경동 한국 민주당 인천시 지부에서 3·1 독...
-
1919년 3월 27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등지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거족적인 민족 운동인 3·1 운동이 일어나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는 이보경, 이무경, 오주선, 최선택, 이창범, 이재경, 이상태, 최개성 등이 주동하여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6일, 지금의 인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위치한 선인 학원이 학내 분규를 겪어 오다가 1994년 3월 1일 시·공립화된 사건. 1981년 선인 학원 설립자인 백인엽이 부정 편·입학 등과 관련해 구속된 이후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다가 1994년 인천 대학교를 비롯한 선인 학원 산하 학교들이 시립화 또는 공립화되어 새로 출범하였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위치한 선인 학원은 백인엽이 1958...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수봉 근린공원 일부가 토지 사기꾼에게 넘어갔다가 환원된 사건. 수봉 근린공원 내의 약 19,954㎡[6천여 평]에 이르는 땅은 본래 1939년 일본인 하야시 쇼조[林省三]의 명의로 돼 있었는데, 1948년 한미 협정에 따라 국유 재산이 되었다. 그러나 1967년 토지 사기꾼이 매매 계약서를 위조해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다른 사람들에게 되판 사건이 발생하였고,...
-
수인선 노선 중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및 주변 지역 구간의 지하화를 요구한 시민운동. 인천광역시와 수원시 사이 52.8㎞를 잇는 복선 전철인 수인선에 대해 인천광역시 남구·연수구 등 지역 주민들은 소음과 분진 등을 이유로 지하화를 요구하였다. 공사 계획 초부터 이어진 지역 주민들의 지하화 요구는 서명 운동과 지하화 추진 단체 설립으로 이어졌다. 원래 수인선은 1937년 개통된 후 1...
-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인천 축구 전용 경기장 내의 홈 플러스 입점을 반대하며 진행된 시민운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소재 숭의 운동장이 철거되며 숭의 운동장 일대 도시 재생 사업이 시작된 후, 이곳에 새로 들어설 인천 축구 전용 경기장 내에 대형 마트인 홈 플러스가 입점할 계획이 발표되자 주변 재래시장 상인들이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2011년 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1871년 미국이 조선에 침범함으로써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까지 영향을 미친 사건. 신미양요는 1871년(고종 8)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 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과의 통상 관계 수립을 목적으로 무력 침략한 사건이다. 주청 전권 공사 F. F. 로우(F. F. Law)가 전권을 위임받고, 조선 원정을 명령받은 아시아 함대 사령관 J. 로저스(J. Rodgers)는 군함 5척...
-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부대 공작원 24명이 탈출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일대를 지나간 사건. 북한의 ‘1·21 사태’가 발생한 후 정부는 대북 대응 조처 방침에 따라 1968년 4월 1일 북한 침투 작전을 위해 실미도 부대를 창설한 후 공작원을 모집해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실미도에서 3년 4개월간 훈련을 진행했다.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부대원 24명이 기간병...
-
1950년 5월 5일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인천 소재 22개 초등학교들의 연합 운동회. 6·25 전쟁이 일어난 해인 1950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인천시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의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시내 22개 초등학교가 참여하는 대운동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의 명예 회장에는 인천 시장, 회장에는 조석기, 부회장...
-
1986년 5월 3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을 비롯한 인천광역시 지역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 1985년 2·12 총선 이후 전개된 직선제 개헌 운동의 열풍을 타고 신한 민주당이 1986년 5월 3일 당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소재 인천 시민 회관에서 ‘개헌 추진 인천·경기 지부 결성 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보수 야당의 기회주의적 속성에 반발한 재야 세력 및 학생 운...
-
1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시작되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도 대학생 등이 참여하게 된 민주화 운동. 1979년 10월 26일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태’가 발생하였다. 10․26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이 12․12 사건을 일으키며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후 민주화 운동 세력과 정적들...
-
1987년 6월 10일부터 1987년 6월 29일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전역에서 전개된 민주화 시위. 1987년 6월 10일부터 1987년 6월 29일까지 계속된 6·10 민주 항쟁은 ‘독재 타도’와 ‘호헌 철폐’를 구호로 외치며 전개된 민주 항쟁으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소재 인하 대학교 학생 등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민과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인천광역시 미추...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군은 1950년 6월 28일 서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50년 7월 3일 밤 경인 가도 등을 통해 인천 지역으로 진격하여 인천 지역의 각 기관을 점거하였다. 1973년 7월 3일 밤부터 7월 4일까지 인천 지역의 점...
-
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했던 인주 이씨(仁州 李氏) 출신의 이자겸(李資謙)이 일으킨 난. 이자연(李子淵)[1003~1061]의 손자이며 인종(仁宗)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1126]이 1126년(인종 4)에 왕권의 약화를 틈타 왕위를 빼앗으려 했던 사건이다. 이자겸의 난은 이자겸이 지군국사(知軍國事)가 되어 사실상 왕을 대신해 실권을 차지하자, 왕이 하...
-
1905년과 1906년에 경기도 인천군 주안면 주안포와 부평군 가자포의 황무지 개간권을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통감부 사이에 발생한 분쟁. 일본인 마츠다 코조[松田行藏]이 1905년 2월 한국인 이희열의 명의를 빌려 경기도 인천군 주안면 주안포와 부평군 가자포의 황무지에 대한 개간 특허권을 획득한 후, 일본인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에게 양도하려 하였다. 한국 정부가 개간 특허...
-
1968년에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인천 출신 전몰장병 379위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국군 묘지에서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이장한 사건. 현재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인천 출신 전몰장병들은 몇 차례 이장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인천광역시 중구 해광사(海光寺)에 안치되어 있다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국군 묘지로, 다시 서울특별시 동...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한 인천의 읍격(邑格) 변화. 우리나라에서 지방 행정 제도로서의 주·군·현이 등장한 것은 신라 중대였다. 하지만 주·군·현이 한 고을의 등급을 나타나는 것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이 자신을 지지하거나 도움을 준 읍들에 대해 읍호를 주(州)로 승격시키고, 자신을 배반하는 호족이 나오는 경우 해당 출신 읍을...
-
1882년 일본의 하나부사 공사 및 일행을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던 인천부 청사로 도망치게 만든 사건. 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 7월 23일에 구식 군대가 별기군(別技軍)과의 차별 대우, 급료 연체와 불량미 지급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병난으로 청나라와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일본 공사와 그 일행은 난을 피해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벌어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1597년에 시작된 일본의 재침입을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당시 자신들의 연호를 따서 ‘분로쿠(文祿)·케이초(慶長)의 역(役)’이라 하고, 중...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인천 소재 적산 공장에서 소유·관리권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각종 분쟁. 적산(敵産) 혹은 귀속 재산은 해방 때까지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갖고 있었던 기업체, 부동산, 유·무형의 동산과 주식 및 지분 등을 말하는 것으로, 1941년 말 현재 일본인 회사의 자본 비중이 91%나 될 정도로 조선 경제는 압도적으로 일본 자본이 지배하였다. 그러나 적산 공장은 원자재...
-
1948년 8월 15일 인천부 주최로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행사.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역사적인 날이다.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지 38년 만에 마침내 우리 정부를 갖게 된 것이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앙청 광장에는 주둔지 일본에서 건너 온 맥아더 미 태평양 전구 사령관 내외, 하지 주한 미군 사령관, 딘 군정관과...
-
2011년 북서 태평양에서 5번째로 발생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피해를 준 태풍. 2011년 북서 태평양에서 발생한 5번째 태풍인 메아리는 태풍의 길목에 있던 필리핀, 타이완, 대한민국, 북한 등에 피해를 입히고 소멸되었다. 태풍 메아리[태풍 번호: 1105, 국제명: MEARI]는 북한에서 제출한 이름이다. 2011년 6월 28일 태풍 메아리가 동반한 집중 호우로 인해 인천광역시...
-
2010년 북서 태평양에서 7번째로 발생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피해를 준 태풍. ‘곤파스[コンパス]’[태풍 번호: 1007, JTWC 지정 번호: 08W, 국제명: KOMPASU]는 일본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컴퍼스 자리 및 컴퍼스를 의미한다. 7호 태풍 곤파스는 일본 오키나와 섬, 대한민국, 북한 등에 큰 피해를 냈다. 괌 섬 북서쪽 약 300㎞ 해상에서 발생해 북서쪽으로 진행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인천도호부를 옛 제물진(濟物鎭)으로 옮기자는 유생 조익(趙翼)의 상소문. 조익은 조정익(趙廷翼)의 5대손이다. 조정익 부처(夫妻)는 강도(江都)[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순절(殉節)하였고, 고조(高祖) 할아버지 조유(趙猷)는 병자호란의 사무친 한을 안고 싸워서 지킬 방법과 미리 준비하여 막을 계획을 강구(講究)하였다. 조익은 집안에 전래하는 것을 듣...
-
2011년 7월 27일에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하 대학교 학생을 포함한 투숙객들이 사망한 사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인하 대학교 학내 동아리 아이디어 뱅크 회원들인 대학생 35명이 강원도 춘천시 상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뱅크 발명 캠프를 진행하던 중, 2011년 7월 27일 새벽, 숙소인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소재...
-
1882년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일본 공사가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도호부 관아에 머물다가 병사들에게 습격당한 사건. 1882년 7월 19일 훈련도감(訓練都監) 군인들이 난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하고 일본공사관을 포위·공격한 사건을 임오군란이라고 한다. 임오군란의 직접적인 원인은 13개월이나 밀렸던 급료로 받은 쌀이 정량이 아닌데다가 대개는 물에 잠겨...
-
1946년 8월 18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던 시민 운동회. 1946년 8월 18일 해방 1주년을 맞아 인천시 체육회와 인천 육상 경기 구락부 공동 주최로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당시 인천부 도원동]에 소재한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해방 1주년 기념 경축 운동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해방 1주년 기념 경축 운동회...
-
1953년 4월 25일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6·25 전쟁 휴전 방침에 반대하여 거행된 인천 시민 궐기 대회. 6·25 전쟁이 3년째에 접어들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 연합 참전국들 사이에는 더 이상 한국에서 희생을 치를 수 없다는 여론이 높아져 갔다. 공산권도 승리 없는 전쟁에 대한 과중한 부담으로 인해 휴전 회담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게다가 스탈린이 사망으로 인해 휴전 논의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