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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세워진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모 비석. 현재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에 편입된 ‘용흥마을’은 4·3사건 당시 중문면 강정2구라 칭했었고, 강정2구는 염돈·내팟·월산·궁산 등 몇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었다. 각각 50호 가량의 마을들이 합쳐져 모두 200호 남짓했던 강정2구는 4·3사건 당시 무장대의 습격으로 큰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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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에 위치한 4·3사건의 희생자 유해가 발굴된 장소.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제주4·3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 10월 4일부터 18일까지 제주4·3평화재단의 업무위탁을 받은 제주4·3연구소에 의해 유해발굴이 이루어졌다. 4·3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은 4·3특별법에 의거해 4·3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시행됐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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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출신의 항일운동가이며, 사회주의 운동가. 1910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출생으로 부인은 고진희, 아들은 강희진·강석진이다. 강규찬(姜圭贊)은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1927년 신도(新挑)소년단에 가입하여 애국사상을 배웠고, 이후 신도(新挑)청년단에서 활동하였다.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 천마(天馬)방직공장에 공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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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귀포시 법환동 출생으로 서귀리 독서회 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1912년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출생한 강원화는 일제 강점기 때 이른바 “서귀리 독서회 사건”인 서귀포 야학강습소의 항일 활동을 하였다. 어릴적 1년 동안 한문을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0년 일본 오사카의 작침야학소(爵枕夜學所)에서 2년간 일본어를 배웠다. 와세다(早稻田) 『중학강의록』 제1학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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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남원읍 충혼묘지에 있는 제주4·3사건 관련 비석. 1949년 1월 12일 소위 ‘의귀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추모비다. 당시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했던 제2연대 1대대 2중대가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군인 4명이 사망하는 등 양측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그 피해는 무장대가 훨씬 컸다. 전사자를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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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있는 제주 4·3사건으로 파괴된된 자연마을 터. 무등이왓은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지금까지 복구되지 못한 잃어버린 마을이다. 이곳은 약 300년 전에 관의 침탈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화전을 일궈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주민들은 주로 목축과 조·메밀·콩 등을 재배하며 살았다. 교육열이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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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있는 제주4·3사건 관련 유적. 빌레가름은 한남리 본동과 약 2㎞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1845년경 제주 고씨 네 형제가 터를 잡고 집성촌을 이루었었다. ‘빌레가름’이란 지표면 바로 밑에 암반이 널려 있는 데서 유래한다.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며 살아가던 빌레가름 주민들은 4·3사건 발발 이후인 1948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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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위치한 4·3유적지. 제주4·3사건 당시 서귀리는 서귀면뿐만 아니라 제주도 한라산 남쪽지역의 중심지였다. 면사무소와 남제주군청이 있었고 서귀포경찰서도 서귀리에 있었다. 때문에 토벌이 강화되면서 토벌대의 주요 근거지가 되어 대대본부가 위치해 있었고, 취조를 담당하는 정보과[대대2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귀포경찰서도 서귀리에 있어서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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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 2리에 있는 제주 4·3 사건 당시 초토화되었던 마을 복구를 기념한 비석. 성산읍 수산리는 산간 마을이다. 1948년 5월 10일 선거 당일에도 군경으로부터 투표장인 향사가 공격당하여 3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향사가 불타는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다. 성산면 관할에서 유일하게 소개령이 내려진 마을로써 1948년 12월 21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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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송산동에 있는 제주 4·3 사건 관련 비석. 제주 4·3 사건은 토벌대와 무장대의 충돌로 많은 인명희생을 불러왔다. 사건 발발 초기 무장대는 5·10 단독선거를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선거관리위원과 투표소에 대한 습격도 감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인 공무원이 다수 희생됐다. 또한 대립이 격화되면서 토벌대에게 협조한다는 명분으로 관련 공무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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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안덕면 지역 4.3 희생자를 위령하기 위해 세운 비. 안덕면 4·3 희생자 위령비는 안덕면 지역의 4.3 희생자 667명을 위령하기 위해 2009년 안덕면 희생자 유족회가 세웠다. 비문에는 “천송이 만송이 꽃을 올린들 어찌 위무가 되겠습니까? 하오나 영령들이시어 이제 원한을 풀어도 될 때가 되었습니다. 일국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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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위치한 제주4·3사건 관련 유적. 제주4·3사건은 1949년 3월 제주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의 귀순작전 등으로 무장대 세력이 급속히 약화된다. 또한 6월 무장대 총책임자 이덕구가 피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잔여 무장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주민납치 등으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마을습격 등을 감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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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위치한 제주4·3사건 관련 유적. 1948년 4월 제주4·3사건 발발 당시 제주 지역에는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같은 해 12월에 국군 제2연대로 교체되었다. 군인들은 제주도 전역의 관공서나 학교 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규모로 주둔해 토벌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임시 주둔을 위한 주둔소나 부대경비를 위한 초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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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위치한 제주4·3사건 관련 유적. 4·3사건 초기 무장대들이 훈련을 받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밀림 속의 너른 분지가 형성된 이 곳은 북쪽으로는 계곡이 형성됐고, 주변에 동수악·이승악·논고악 등이 형성된 천혜의 요새였다. 때문에 무장대의 세력이 왕성했던 4·3사건 초기에 이 곳을 근거지로 하여 훈련을 받았다. 물론 훈련장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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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의귀초등학교에 위치한 4·3유적. 제주4·3사건 당시 각급 학교는 군부대 혹은 응원경찰의 주둔지로 많이 활용됐다. 1941년 간이학교로 출발해 1943년 정식 학교로 승격한 의귀국민학교에도 1948년 12월 26일부터 1949년 1월 20일까지 제2연대 1대대 2중대가 주둔했었다. 실제 2중대원으로 이 곳에 근무했었던 이윤의 『진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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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위미초등학교에 있는 설립자 이관석의 공로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남호(南湖) 이관석(李琯石)[1902~1949]은 교육자로서 1921년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신생활운동과 민중계몽운동에 헌신했다. 다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종사하다 1939년 위미초등학교가 설립될 때 초대 교장으로 발령받아 학교 초창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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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대정교회 에 있는 4.3 사건 때 희생된 이도종(李道宗) 목사의 기념비. 이도종 목사는 제주도의 제1호 목사로 1929년부터 제주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1937년에는 고산교회 목사로 취임했다. 그는 1948년 6월 16일 순회 목회차 길을 나섰다가 대정읍 인향동 부근에서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도종 목사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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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당시 소개, 폐허 된 후 복구하지 못한 잃어버린 마을. 종남굴은 위미1리와 신예1리 경계에 있던 마을이다. ‘종남’은 떼죽나무의 제주말로 이 근처는 지금도 때죽나무가 많다. 4·3사건 당시에는 고씨·현씨 등 10여가호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4·3사건 당시 이곳이 ‘산사람’들에게 은신처와 양식을 제공할 여지가 있다 하여 토벌대에서 이주를 명하므로 집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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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중문면 지역 4.3 희생자를 위령하기 위해 세운 비 중문면은 현재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로 편입 되었고 제주4·3사건 당시에는 강정리·대포리·도순리·상예리·색달리·영남리·월평리·중문리·하예리·하원리·회수리 등 11개 마을을 합쳐 이룬 면단위 행정구역이었다. 제주4·3사건은 제주도 전 지역에 그 영향을 끼치며 곳곳에서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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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당시 소개령으로 폐허가 되어, 복구되지 않은 마을. 천서동(川西洞)은 내[川] 서쪽에 있다 하여 일명 ‘냇서왓’으로 불리우며, 천서동은 ‘냇새왓슬’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천서동은 마을 북쪽으로 제2산록도로와 접해 있다. 4·3사건 당시 약 45가구, 120여 명 정도의 주민이 화전갈이와 목축업을 하며 살았다. 천서동은 동동과 서동으로 나뉘어진 비교적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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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4·3 사건 당시 경찰응원대의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수산리는 산간 마을이다. 1948년 5월 10일 선거 당일에도 투표장인 향사가 공격당하여 3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향사가 불타는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다. 성산면 관할에서 유일하게 소개령이 내려진 마을로써 1948년 11월 17일에는 토벌대에 의해 13명이 총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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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 있는 4·3 유적지. 1948년 12월 14일 국방경비대는 토산리 주민을 모두 공회당[향사]에 집결시킨 후, 18세부터 40세까지의 남자들과 20세 전후의 여자를 경비대의 임시수용소인 표선초등학교에 끌고 가 감금했다가 12월 18일부터 일주일 사이에 표선백사장[한모살, 당케]에서 집단 총살하였다. 주민들은 1960년 국회양민학살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