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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767
한자 佳南里孝烈婦旌閭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54년연표보기 - 가남리 효열부 정려각 건립
현 소재지 가남리 효열부 정려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맞배지붕 홑처마
소유자 고령 신씨 문중
관리자 신장호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고령 신씨 가문의 정려.

[개설]

가남리 효열부 정려(佳南里孝烈婦旌閭)는 신하록(申夏祿)의 처 황주 변씨(黃州邊氏)와 신상용(申尙溶)[1577~1618], 신책(申憡)을 기리고 있다. 신하록의 처 황주 변씨(黃州邊氏)는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의 손자며느리이다. 황주 변씨는 남편 신하록이 고질병에 걸려 3년간 고생하자 허벅지 살을 베어 남편을 간병하였을 만큼 살신성인으로 남편을 섬긴 열부였다.

신상용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명보(明甫), 호는 칠휴당(七休當)이다. 순창 남산대(南山臺)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생선을 먹고 싶어하자 한겨울에 강가에 나가 얼음을 깨어 잉어를 잡아서 먹게 해 드렸다. 이 같은 노력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여가 나가는데 장마로 내를 건널 수 없었다. 신상용이 슬피 우니 느닷없이 물의 흐름이 그쳐 상여가 건널 수 있었다. 이후 그 내를 건천(乾川)이라 불렀다. 한편 시묘를 하면서 피눈물을 흘려 실명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상기가 끝난 뒤에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5년을 한결같이 성묘를 하다 마침내 죽음에 이르니 그때 나이가 42세였다. 조정에서는 신상용에게 효자의 정려를 내리고 통정대부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증직하였다. 신상용의 정려는 그가 살았던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진주의 덕산리(德山里)[현재 산청군 산청읍 부리 입구] 세 곳에 세워졌다.

신책신공제(申公濟)의 증손으로 6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묘살이를 하였다.

[위치]

가남리 효열부 정려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 가운데 길가 언덕에 있다.

[변천]

1854년(철종 5)에 정려각이 건립되어 있다.

[형태]

정려각은 맞배지붕으로 홑처마이며, 안에 3개의 현판이 있다. 현판에는 ‘열부 학생 신하록 처 유인 황주 변씨지려(烈婦學生申夏祿妻孺人黃州邊氏之閭)’, ‘효자 장사랑 신상용지려(孝子將仕郞申尙溶之閭)’, ‘효자 증선무랑 종부시 주부 신책지려(孝子贈宣務郞宗簿寺主簿申憡之閭)’라고 쓰여 있다.

[현황]

2009년 현재 순창읍 남산대의 고령 신씨(高靈申氏) 후손 신장호가 관리하고 있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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