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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암과 홍성문 대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809
한자 獅子庵-洪成文大師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집필자 박정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12월 - 「사자암과 홍성문 대사」 『순창의 구전 설화』상에 수록
성격 풍수담|일화
주요 등장 인물 홍성문|큰형|셋째 형
모티프 유형 서자 박대|풍수로 징치하기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서 홍성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사자암과 홍성문 대사」는 서자라고 박대하자 집을 나와 사자암에 기거하면서 풍수지리에 통달하게 된 이복동생 홍성문이 정하여준 아버지의 묫자리를 이복형제들이 불신하여 임의로 정한 아버지의 묫자리가 명당의 혈에서 비켜 나가 그 후손들이 복을 받지 못했다는 풍수담이다. 풍수지리에 통달했다고 알려진 홍성문 대사에 관한 이야기는 순창을 비롯하여 임실, 남원 등지에 여러 가지 형태의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191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임실군 하운암면 텃골 마을에 홍 진사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마을 앞 주막집 주모와 눈이 맞아 아들을 하나 두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홍성문이라 한다. 성문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홍 진사의 집으로 와서 살았는데, 성문에게는 손위로 형이 세 명 있었다. 주모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성문이는 양반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라면서 아버지 홍 진사의 몸종처럼 지내야 했다. 홍 진사가 죽고 나서 성문이는 큰형의 심부름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성문이가 열세 살이 되던 어느 날, 성문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큰형의 방에 불을 때고 있었다. 마침 그때 셋째 형이 큰형에게 와서 말하기를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없으니 성문이를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그러자 큰형은 그래도 어쨌든 아버지의 자식이고 동생인데 그럴 수는 없다고 하였다. 성문은 큰형이 비록 저렇게 말은 하지만 셋째 형의 소행으로 보아서 어느 땐가 화를 입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길로 집을 나와서 회문산만일사로 갔다.

만일사에서 성문은 공양간에 나무를 대주는 목공이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주지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사자암에서 열심히 불공도 드렸다. 마침내 성문은 지리에 통달하여 세상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성문이 보아하니 당시의 사회 제도는 양반들의 횡포가 심한 때였다. 그래서 양반들을 조롱하고 싶어서 사자암에서 행자 하나를 데리고 갈담장, 녹사장, 후천장, 순창장 등 오일장을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깃발에 봉사리 청사리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홍성문이 미친 사람이라 취급을 당했으나 점차 지리에 통달한 대사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문은 홍 진사의 큰아들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회문산 사자암에 점잖은 양반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바로 홍성문의 큰형이었다. 큰형은 성문에게 "동생, 어찌 되었든 아버지는 자네에게도 아버지가 아니신가. 아버지의 유택을 아직 정하지 못했으니 자네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유택을 좋은 곳에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게나." 하였다. 성문 대사는 큰형의 진실된 설득에 감동하여 큰형과 함께 고향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명당을 찾아내어 아버지의 유택으로 삼으라 하였다. 그곳은 사나운 호랑이가 숲 속에서 나오는 형상을 한 땅이었다. 큰형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좋아하였다. 장사를 모실 날을 정하고 나서 홍성문 대사는 회문산 사자암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삼 형제는 모여서 장사를 모실 준비를 하였다. 정해진 날짜가 되어서 홍성문은 고향을 찾았다. 셋째 형은 성문이 큰형 집에 온 것이 의아하였다. 그래서 큰형에게 물으니 아버지의 유택을 성문이가 정하였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셋째는 "저것이 뭘 안다고 저것 말을 듣고 아버지의 유택을 정한 것입니까? 성문이를 쫓아버리고 우리끼리 아버지의 유택을 정해 장사를 지내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큰형은 셋째의 말을 무시하고 성문의 말대로 하고자 하였으나 셋째는 막무가내였다. 큰형이 "성문이가 정한 아버지의 유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곳은 형님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였다. 결국 큰형은 셋째의 말대로 세 형제끼리 아버지의 유택을 모시기로 하고는 그 장소로 갔다.

그곳에 가보니 이미 성문이 와 있었다. 성문은 바위 위에 앉아 "형님들이 이곳을 알고 있으니 셋째 형님하고 묘를 쓰시오." 하고는 떠나려 하였다. 큰형은 "성문아! 아버지를 위하여 일을 끝내주고 가거라." 하며 애원하였다. 그러자 성문은 "셋째 형님이 스스로 잘못했다고 하고, 아버지의 묘를 정해 달라고 하면 일을 끝내주겠습니다." 하였으나 끝내 셋째는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홍성문은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났다. 결국 삼형제는 아버지의 유택을 성문이 정한 그 어디쯤 언저리에 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택이 잘못된 혈에 들었는지 그 후로 홍 진사 세 아들은 재산도 모으지 못하고 후손들도 번성하지 못한 채 겨우 마을을 유지하며 살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사자암과 홍성문 대사」의 주요 모티프는 '서자 박대', '풍수로 징치하기' 등이다. 전통적으로 민간에서 하나의 신앙처럼 여기는 풍수지리를 통하여 복수, 징치, 보은 등을 하는 설화는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 「사자암과 홍성문 대사」도 일종의 복수, 또는 징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으나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대를 한 형제들에게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자 풍수지리를 이용하여 징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자암과 홍성문 대사」는 일종의 풍수담이다. 또한 홍성문 대사와 관련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인물의 일화 형식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이외에 순창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홍성문과 관련된 설화로는 「명당을 팔러 다니는 홍성문」, 「홍성문과 만석 거부」, 「보은하고 신선이 된 홍성문」, 「더벅머리 총각과 홍성문」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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