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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최씨 효열비·정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113
한자 和順崔氏孝烈碑旌閭
이칭/별칭 오교리 효열 행적 비각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오교 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승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화순 최씨 효열비·정려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오교 마을 지도보기
성격 효열비
관련 인물 최영국|최윤문 처 김해 김씨|최길영 처 김해 김씨|최문석 처 안동 권씨
크기(높이,너비,두께) 최영국 효행비: 131×45×21㎝|최윤문 처 김해 김씨 효열비: 104×40×19㎝|최길영 처 김해 김씨 효열 정려: 56×33×7㎝[석판]|최문석 처 안동 권씨 효열각: 56×34×7㎝[석판]
소유자 화순 최씨 문정공파 종중
관리자 최태창|최주호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 있는 화순 최씨 일가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정려.

[건립 경위]

1929년에 최길영(崔吉榮) 처 김해 김씨 효열 정려최문석 처 안동 권씨 효열각(崔文碩妻安東權氏孝烈閣)이 건립되었고 1958년에 최영국(崔榮國) 효행비가 건립되었으며, 1963년에 최윤문 처 김해 김씨 효열 행적비[崔允文妻金海金氏 孝烈行蹟碑]가 건립되었다. 화순 최씨 효열비·정려(和順崔氏孝烈碑旌閭)는 오교리 효열 행적 비각이라고도 한다.

[위치]

화순 최씨 효열비·정려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오교 마을 북쪽 도리산 산기슭에 있다.

[형태]

재각 안에 비석 2기가 있고, 인근에 석정려 2기가 있다. 최영국 효행비최윤문 처 김해 김씨 효열비는 비석 형태이며, 최길영 처 김해 김씨 효열지려최문석 처 안동 권씨 효열각은 석 정려(石旌閭) 형태이다.

1. 최영국 효행비

크기는 131×45×21㎝이다. 5세손 최광섭(崔光燮)이 세웠는데, ‘최공 효행 실적 비명(崔公孝行實蹟碑銘)’은 1958년 중양월(重陽月) 5일에 옹엄무(雍閹茂)가 짓고 황주 변씨(黃州邊氏)  백파(栢坡) 변동엽(邊東曄)이 썼다. 비에는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화순 최공 영국 효행적비(贈童蒙敎官朝奉大夫和順崔公榮國孝行蹟碑)’라고 새겨져 있다.

2. 최윤문 처 김해 김씨 효열 행적비

크기는 104×40×19㎝이다. ‘효열부 김해 김씨 기적찬(孝烈婦金海金氏奇蹟讚)’은 1963에 족(族) 의산(義山) 김석모(金錫模)가 짓고, 최인규(崔麟圭)가 썼다. 비에는 ‘고 휘 최윤문 배 김해 김씨 효열 행적비(故諱崔允文配金海金氏孝烈行蹟碑)’라고 새겨져 있다.

3. 최길영 처 김해 김씨 효열지려

석판의 크기는 56×33×7㎝이다. 비문은 도유대황락(屠維大荒落)[기사년, 1929] 중춘(仲春) 상완(上浣)에 예조 판서 원임 규장각 제학(禮曹判書原任奎章閣提學) 안동(安東)김종한(金宗漢)이 글을 짓고, 종손 최영모(崔永模)가 썼다. ‘도유대황락’은 고갑자(古甲子)로 기사년을 가리킨다. 중춘은 음력 2월을, 상완은 상순을 말한다. 석판에는 ‘경주인 사복시정 최길영 배 숙인 김해 김씨 효열지려(慶州人司僕寺正崔吉榮配淑人金海金氏孝烈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4. 최문석 처 안동 권씨 효열각

석판의 크기는 56×34×7㎝이다. 비문은 도유대황락[기사년, 1929] 2월 하완(下浣)[하순]에 예조 판서 원임 규장각 제학 안동김종한이 글을 짓고, 종손 최영모가 썼다.

[금석문]

이 중 최영국 효행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공의 효행 사실을 비에 새기다. 이 세상에 어버이를 섬기는 것을 효라고 하는데, 높고 곧고 먼 것이 아니라 섬기기를 행하기가 어렵다고 옛 성현 또는 선사들이 말하였다. 삼강(三綱) 중에서 제일이며 일찍이 세상 사람이 능히 행하지 못하였다고 드물게 행하는 자는 세속에서 덮어 두었다. 최공 영국은 효를 능히 행한 자로 그때의 사람들이 살펴 칭찬하는 추천장을 순찰사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지극히 효행을 실천한 사람으로 풍문에 들은 바와 같은 효자라 하였다.

공은 화순 최씨 문정공 자강 문혜공 선문의 후예로 태어나면서 효성스러워 어버이 섬김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무리 지어 다니며 놀지 않고 입으로 악한 말을 하지 않으며 어버이에게 욕이 미칠까 보아 사계절 반찬이 궁하지 않도록 바치고 저녁에 놀다 가도 말할 것 없이 받들었다. 어머니가 병을 얻으니 약을 달이는 것을 입으로 시험하여 모시고 변을 맛보아 시험하고 하늘에 쾌유를 기원하였으며, 삼년상을 치를 때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안방에 거처하지 않았으며 방에 땔감을 때지 않고 날마다 묘를 살피는 데 비바람과 더위, 추위를 피하지 않고 해가 서산에 걸려야 집에 들어갔다. 바람에 시달린 나무를 생각하고 물이 깊고 귀한 땅은 반드시 때가 있듯이 맏형과 막내가 본받도록 하였으며 가문은 말할 것도 없고 향리 친척도 본받도록 그 힘을 사랑하고 믿고 본받았다.

그 후손 최동식이 천장을 들고 백 리 길을 찾아와서 돌에 새길 글을 요구하기에 강상에 어리석은 노인이 돌아보지 않고 승낙하였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을 찰찰한 손자라 생각되어 감계함을 이기지 못하여 땀과 성을 도모하여 새김 말을 쓰다.

새기어 가로되 오교리에 종소리 나니/ 한 자락 최공이 태어나/ 칭송이 자자한 자취를 남기고/ 세상에 자자한 자취를 남기고/ 세상에 도와 공을 남기었으니/ 공을 위한 정가 없으니/ 공의 제일의 영광이 어찌 떳떳이 마음을 살펴/ 왕골자리에 어렵게 맞이하지 않고/ 백 대에 원망과 탄식으로 동정한다.”

[현황]

화순 최씨 문정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으며, 관리는 화순 최씨 문정공파 순창 총회의 최태창과 최주호가 맡고 있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최영국 효행비최윤문 처 김해 김씨 효열비, 최길영 처 김해 김씨 효열지려, 최문석 처 안동 권씨 효열각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화순 최씨 가문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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