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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16
한자 煉炭-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2년 - 한일 연탄 영업 개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7년 - 서울 연탄 영업 개시
현 소재지 한일 연탄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9길 16-22[순화리 123-13]
현 소재지 서울 연탄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58 지도보기
전화 063-653-2909[한일 연탄]|063-653-0990[서울 연탄]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는 연탄 판매 가게.

[개설]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현재 연탄을 판매하는 가게는 한일 연탄과 서울 연탄 2곳이다. 양종환 사장[1947년생]이 연탄 가게를 내던 1970년대 순창 읍내에는 전북 연탄, 남일 연탄, 서울 연탄, 남선 연탄, 대흥 연탄 등 8곳이 있었다. 그리고 가게 없이[허가 받지 않고] 차로 떼어 바로 넘기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후 김만 사장[1947년생]이 서울 연탄을 인수하던 1980년대 중반에는 5곳으로 줄었고, 지금은 2곳에 불과하다. 이들 연탄 가게는 우리나라 에너지 변천사를 대변하는 산 증거들이다.

[변천 및 애환]

한일 연탄은 1972년 양종환 사장이 순창 읍내 버스 터미널 건너편에서 9.9㎡[3평]도 못되는 작은 가게로 출발했다. 이후 순창 병원 응급실 자리 등을 거쳐 네 번째로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 고향이 순창군 구림면인 양 사장은 7남매의 장남으로 어려서 부산, 광주 등 도시로 나가 백화점과 인쇄소 직원으로 일했으며 베트남 전쟁에 파병돼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결혼해 제주도에서 살다 동생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친은 일제 강점기 때 탄광에 끌려가 일하다 한쪽 다리를 잃어 생활이 어려웠다. 연탄 가게를 하게 된 것은 순창군 유등면에 사는 친척이 밀어주겠다고 권유해서 시작했다.

당시 가정용 십구공탄의 소비자 가격은 장당 22원이었으며, 중국집이나 유과 만드는 가게에서 사용하는 영업용 삼십일공탄은 가격이 두 배 비쌌다. 한때 석유 파동으로 석유 가격이 크게 올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연탄 수요가 많아, 배달부를 두고 일을 했다. 하지만 중간 이윤이 적고 외상 판매가 대부분이어서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

광주 남선 연탄 공장[10자표]에서 하루 두 트럭 분량을 사다 팔았는데 경쟁이 심했다. 연탄 생산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며, 기다리는 순서대로 연탄을 싣고 올 수 있어서 밤 12시나 새벽 1시쯤 공장에 도착해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차로 싣고 오면 리어카로 연탄 배달을 했고, 당시만 해도 도로 포장이 되지 않은 상태여서 비가 오는 날은 연탄[장당 3.6㎏] 리어카가 무거워 골목길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갈비뼈 일곱 개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입원하기도 했다.

서울 연탄 김만 사장은 1987년에 지금의 연탄 가게를 시작했다. 친척이 하던 서울 연탄 가게에서 배달부로 일하다 이를 인수한 것이었다. 연탄 가게가 너무 좁아 2009년 집을 다시 지었다. 초창기는 남원에 있는 남일 연탄 공장과 거래하다, 10년 전 쯤 공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광주 남선 공장으로 거래 선을 옮겼다.

[현황]

지금은 난방이나 취사를 대부분 기름보일러로 하고 2013년 12월부터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도 도시가스가 들어와 연탄은 거의 저소득층이 사용한다. 한일 연탄은 2013년도에 대략 24만 장을 판매했다. 연탄 장사는 고객도 많지 않은데다 일 년 열두 달 찾는 게 아니어서 한일 연탄은 흑염소 건강원을, 서울 연탄은 부식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연탄 배달은 부업이 된 셈이다. 이들 연탄 가게는 운영자가 모두 70세를 바라보는 고령인데다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고 한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는 취사나 난방 에너지로 1960년대 중반까지 장작 등 나무를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산이 헐벗게 되자 정부가 나서 산림녹화 정책을 펴면서 연탄이 1990년대까지 주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지금은 석유와 도시가스로 대체되었다. 아직 저소득층이나 화원 등 일부에서 연탄을 사용하지만 연탄 가게는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다. 이들 연탄 가게는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과 부침을 함께 해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농촌 소도읍 마다 몇 개 남아있지 않는 전형적인 연탄 가게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인터뷰(한일 연탄 사장 양종환, 남, 67세, 2014. 3. 7)
  • 인터뷰(서울 연탄 사장 김만, 남, 67세, 2014.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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