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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049
한자 衣生活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현정 김순영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개설]

현재 순창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대상자들에 대한 민속 조사를 통해 20세기 중후반까지 지속되어 오던 순창 지역의 전통 의생활 및 현재까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사 대상자는 총 다섯 명이다. 양상화[83세], 조귀례[82세], 성남진[78세], 제영옥[58세]은 순창에서 출생한 후 현재까지 순창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양옥남[75세]은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출생한 후 순창으로 시집와 현재까지 순창에서 거주하고 있다. 조사 대상자는 일상복으로 전통 복식을 착용하던 시대와 서양 복식을 착용하는 시대를 모두 경험한 세대여서, 이들을 통해 순창 의생활의 변천과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일상복]

아기가 태어나면 보통 배냇저고리를 입혔다. 양옥남의 경우, 흰색 배냇저고리를 입혔는데 배냇저고리에는 깃이 달리지 않고, 양쪽 길에 짧은 고름이 달려 있어 고름으로 묶어 주었다.

일상복으로서 한복의 소재는 여름에는 주로 삼베, 봄과 가을에는 면이나 명주, 겨울에는 무명이나 명주에 솜을 넣어 입었다. 남자의 일상복은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두루마기로 구성된다. 성남진의 남편은 결혼 후 집에서는 주로 바지·저고리를 입었으며 외출할 때는 두루마기를 착용하였다. 조끼와 마고자는 입기도 하고 안 입기도 하였으며, 여름철에는 반소매 저고리를 입었다. 양상화는 정초와 명절, 그리고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한복을 착용하는데 저고리·바지·조끼·마고자·두루마기를 입고 중절모를 쓴다. 최근에는 마고자는 잘 입지 않는다.

여자의 일상복은 치마저고리로 구성되며, 속옷으로는 다리속곳·고쟁이·단속곳·속치마 등을 입었다. 성남진과 양옥남은 어릴 때부터 한복을 일상복으로 착용하였으며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일반인들은 치마를 왼쪽 여밈으로 입는 것이 원칙이었다. 치마를 오른쪽 여밈으로 입는 것은 술을 파는 여자들의 옷차림이었다. 일할 때는 치마 위에 앞치마를 착용하였는데, 앞치마는 흰색 무명이나 광목으로 만들고 길이는 발목 위 10㎝ 정도까지 올 정도로 길게 하였다.

[돌복]

순창 지역 조사 대상자들은 대부분 6·25 전쟁 혹은 그 이후 생활이 어려울 때 자녀의 돌을 맞아 돌복을 입히거나 돌잔치를 하지 못하고 미역국과 돌떡을 하는 정도였다. 일상복으로 양복을 착용하게 된 후에는 주로 사진관에서 돌 사진을 촬영하였으며 돌복으로는 한복이나 양복을 착용하였다. 조귀례는 손녀의 돌복으로 노란색 저고리, 홍색 치마, 홍색 원삼을 입혔고, 제영옥은 딸의 돌복으로 흰색 티셔츠에 빨간색 멜빵바지를 입혔다.

[회갑연복 및 고희연복]

회갑연이나 고희연에서 주인공은 주로 한복을 입지만 때로는 양복을 입는 경우도 있다. 양옥남의 시어머니는 회갑연에서 호박단 옥색 치마와 저고리를 착용하였으나 양옥남 본인은 회갑연에서 양복을 착용하였다. 제영옥의 경우에도 시어머니 회갑연 때 시아버지는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를 입었으며, 시어머니는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최근에는 회갑연을 하지 않고 고희연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상화는 본인의 고희연 때 살구색 바지와 저고리에 자주색 조끼와 마고자를 입었으며, 양상화의 아내인 조귀례는 자주색 깃·고름·끝동이 달린 옥색 저고리에 재색 치마를 입었다.

회갑연이나 고희연에서 자녀들은 한복이나 양복을 서로 통일해서 입기도 하고 각각 다른 색으로 입기도 한다. 양상화의 고희연에서 아들·사위·손자는 자주색 저고리와 바지에 남색 조끼의 생활 한복을 함께 입었으며, 며느리·딸·손녀는 전통식 한복을 입었는데 며느리와 딸은 남색 깃·고름·끝동이 달린 홍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함께 입었으며, 손녀들은 분홍색 치마저고리, 또는 노란색 저고리와 분홍색 치마를 입었다. 제영옥의 경우에 시어머니 회갑연 때 육남매의 남자는 모두 양복, 여자는 모두 각자의 한복을 입었다.

[단성전 제복]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는 단군(檀君)의 초상을 모신 단성전(檀聖殿)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 단군 성조 대례라는 제사가 행해지고 있다. 단군 성조 대례의 참여자는 제관(祭官), 집례(執禮), 집사, 일반 참례자로 구성되며 이때 착용되는 의례복으로는 크게 관복 제복과 도포로 구분된다. 제관에는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이 있으며 초헌관은 보통 순창 군수가 맡고, 아헌관과 종헌관은 유림 또는 지방관, 즉 공무원 중에서 맡아 한다. 양상화는 단군 성조 대례의 집례를 맡아오고 있다.

제관과 집례가 착용하는 관복 제복은 조선 시대 백관의 제복에 준한 것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제복의 구성 품목은 관(冠), 의(衣), 상(裳), 중단(中單), 대대(大帶), 혁대(革帶),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말, 혜, 홀(笏)이다. 집례는 초헌관과 같은 등급의 제복을 착용하고, 아헌관, 종헌관의 순으로 낮아진다. 집사와 일반 참례자는 유건(儒巾)과 도포(道袍)를 착용하는데, 유건은 검정색, 도포는 연한 미색을 착용한다.

[직물 및 의복 관리]

순창 지역에서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던 시절에는 집에서 여자들이 직접 길쌈과 직조를 하여 자급자족하였다. 조귀례, 성남진, 양옥남은 모두 30~40대, 즉 1970년대까지 삼베와 무명을 짰으며, 조귀례는 결혼 전 친정에서 명주를 짰다. 집에서 짠 옷감은 가족의 의복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장에 내다 파는 경우가 있었는데 판매하는 경우에는 당시만 해도 여자들이 집 밖으로 멀리 나가 장에 갈 수 없었으므로 남편 또는 다른 사람이 대신 팔아 주었다.

또한 당시 사용하던 면으로는 집에서 짜는 무명 외에도 시장에서 구입한 당목이나 옥양목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당목은 약간 붉은 색이 감돌았으며, 옥양목은 흰색이었다. 남자는 주로 흰색을 많이 입었으며, 여자와 어린이는 색이 있는 옷을 입기도 하였는데 염색한 옷감을 구입하기도 하고 집에서 직접 염색하기도 하였다. 집에서 염색할 경우에는 장에서 화학 염료를 구입하여 노란색, 분홍색, 남색, 검정색 등의 염색을 하였다.

의복을 세탁할 때는 짚을 끓여 잿물을 만들어 세제로 사용하여 빨래하였으며, 명주와 무명은 세탁 후 다듬이질로 손질하고, 삼베는 밟거나 손으로 문질러 주름을 편 후 다림질하였다.

[의의와 평가]

순창군에서는 20세기 중후반까지 대부분의 가정에서 옷감을 짤 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오랫동안 전통적인 의생활을 지속하였다. 1970년대까지 집집마다 삼베, 무명, 명주 등을 짜서 가족의 의복용으로 사용하거나 장에서 판매하였고 1980년대부터 옷감을 짜는 집이 점차 줄어들었다. 지금부터 10년 전까지만 해도 순창군 구림면, 풍산면 등의 삼베가 순창포로 불리며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짜는 사람이 없다.

현재 순창 지역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의생활 양식이 현대화되어 있다. 일상복으로는 대부분 서양복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결혼식 폐백, 회갑연이나 고희연, 상복과 수의 등의 의례복으로 한복을 착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순창군에서는 단성전의 단군 성조 대례와 같은 전통 행사가 시행되고 있으며 순창 장류 박물관에 전통 복식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직접적·간접적으로 전통 복식을 경험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순창 군지 편찬 위원회, 『순창 군지』(순창군, 1982)
  • 순창군청(http://www.sunchang.go.kr)
  • 인터뷰(순창읍 제영옥, 여, 58세, 2014. 1. 13)
  • 인터뷰(구림면 성남진, 여, 78세, 2014. 1. 21)
  • 인터뷰(구림면 양옥남, 여, 75세, 2014. 1. 21)
  • 인터뷰(인계면 양상화, 남, 83세, 2014. 1. 25)
  • 인터뷰(인계면 조귀례, 여, 82세, 201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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