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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354
한자 獐藏里
이칭/별칭 장쟁이,늑곡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장장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재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늑곡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07년 10월 15일연표보기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늑곡리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장장리로 개칭
법정리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장장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61㎢
가구수 30가구
인구[남/여] 49명[남 22명/여 27명]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장장리(獐藏里)는 마을 뒤에 있는 고지산이 뛰어가는 노루 형국으로 동쪽의 아미산과 북쪽의 덕진산, 서암산이 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서쪽 산세가 약하여 그곳으로 빠져 뛰쳐나가는 형국을 하고 있다. 마을 형상이 달리는 노루가 망을 만나 주춤하고 서 있는 주장봉망(走璋逢網) 형상이므로 장정리라고 이름 붙였다. 1897년(고종 34) 어떠한 이유에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굴레 ‘륵’ 자를 써서 ‘늑곡(勒谷)’이라 개칭되었고, 2007년 10월 15일 마을 주민들의 건의로 장장리로 바꾸었다.

[형성 및 변천]

순창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금과면은 1314년(충숙왕 1) 금동방(金洞坊)과 목과방(木果坊)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760년(영조 36) 금동방 11개 리와 목과방 8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897년 방을 면으로 고치면서 금동면과 목과면이 되었고, 장장리는 목과면 ‘늑곡리’라 칭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두 면이 통합되면서 금과면이 되었고, 이에 따라 금과면 ‘늑곡리’가 되었다가 2007년 10월 15일 다시 장장리로 바뀌었다.

[자연 환경]

장장리금과면의 서쪽 중앙에 위치한다. 북쪽과 서쪽으로 금성면 봉서리, 남쪽으로 목동리방성리, 동쪽으로 남계리가 인접하여 있다. 금과면의 현무인 덕진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순창-광주 간 도로를 만나면서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과 경계를 이룬다. 이 지맥이 도로를 건너 서남쪽으로 뻗어 금성면 시목리와 경계를 이루고 솟아오른 183m 고지에서 서쪽에 솟아오른 산이 고지산(古芝山)[300m]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개장하여 마을이 형성되니 장장리이다.

고주매재는 장장리에서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 비내동으로 넘나드는 고개를 말한다. 구사골은 옛날에 구사동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었던 골짜기로 뱀과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는 골짜기를 이른다. 음치등은 상장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구릉이다. 역주개는 장장리 북쪽에 있는 산이고, 역주개재는 역주개를 넘어가는 고개이다. 장정이들은 장장리 서쪽 들을 말한다. 뒷골은 장장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선들 모퉁이는 장장리 동쪽에 있는 들로 가는 모퉁이이며, 화봉은 장장리 옆산으로 수령 300년쯤 된 귀목나무가 있다.

[현황]

2021년 12월 31일 현재 장장리의 면적은 1.61㎢로, 이 중 논 38만 9,741㎡, 밭 22만 3,014㎡, 과수원 3,280㎡, 임야 74만 5,600㎡이다. 인구는 30가구, 49명으로 남자가 22명, 여자가 27명이다. 광주 대구 고속 도로장장리의 음지등과 화봉을 가로로 지나가며, 2015년 12월 4차선 확장 공사가 완료되었다. 토착 성씨로는 경주 설씨(慶州偰氏)가 있다. 장장리는 호치리, 목동리와 함께 금과면 서암산 권역으로 2011년 ‘서암골 코스모스 축제’를 3회까지 열고, 2012년부터는 도농 교류 행사만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섬진강과 영산강을 잇는 자전거 도로가 개설되었고, 향가에서 시작되어 금과면 수양 마을 앞을 지나 동전 마을, 만촌 마을, 남계 마을, 호치 마을, 장장 마을, 일목 마을 앞을 지나 전라남도 담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0.13 현행화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현황] 인구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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