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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381
한자 鼎山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정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정산리 개설
법정리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정산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66㎢
가구수 228가구
인구[남/여] 462명[남 209명/여 253명]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정산리(鼎山里)는 정동 마을의 ‘정’자와 계산 마을의 ‘산’자를 합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이 우리 땅의 지기(地氣)를 없애려고 많은 지역의 지명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정산리도 그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정동 마을은 후룡 서쪽 1㎞ 지점에 ‘천마입구(天馬入口)’라는 혈이 있다고 하며, 마을 뒷산 혈이 솥의 형국이라 ‘말의 먹이를 삶는 솥’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정동이라 하였다. 계산 마을은 정동 마을과 무림동 마을 사이로 내려온 능선이 황계포란(黃鷄抱卵), 즉 노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기에 이름 붙여졌다. 지금은 마을 이름이 바뀌었지만 형상은 그대로이다. 동서 마을은 후룡의 형국이 동쪽에 학이 집을 지었다 하여 동서(東捿)라 하였는데, 동서리의 후룡은 학이 날아드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동학귀서(瞳鶴歸捿)라는 말의 준말로 동서(瞳捿)라고 하였다. 이 말이 한자 표기에서 ‘동’ 자가 어려우므로 ‘동녘 동’ 자로 표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계산(鷄山) 마을, 동서(東捿) 마을, 정동(鼎洞) 마을, 무림동(茂林洞) 마을을 병합하여 정산리라 하였다.

정동 마을은 고려 후기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6·25 전쟁 후 한때 정동 마을에 면의 모든 기관이 머무르게 되어 소재지로 각광받으면서 큰 마을로 번창하였으며, 마을 앞 산을 중심으로 주변 산을 둥글게 대나무 울타리를 만들고 공비와 밤마다 격전을 벌였다. 북쪽 능선 너머 무림동과 4~5가구가 거주하는 남쪽 모랭이와 한 행정리를 이루며, 1967년에는 무림동 서북쪽에 복흥 중학교가 들어 앉아 중등 교육의 요람이 되었다.

정산리는 1971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동 마을, 비거 마을, 동서 마을로 나누었다. 복흥면 소재지인 정산리 비거(碑巨) 마을은 앞으로 비(碑)가 많이 세워질 것이라는 풍수사(風水師)의 예언을 듣고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자연 환경]

산맥의 중간에서 동북 방향으로 뻗은 능선을 사이에 놓고 북쪽은 무림동 마을, 남쪽은 정동 마을이며, 대부분이 평지인 동북향은 행정복지센터, 지서, 농협 등이 있는 비거 마을이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정산리의 면적은 3.66㎢이며, 인구는 228가구, 462명으로 남자가 209명, 여자가 253명이다. 3개 행정리와 5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도 792호선이 정읍 쪽으로 뻗어 가며, 지방도 897호선대방리를 경유해 담양 용면 쪽을 향해 지나간다. 1960년대 오일장이 열려 정읍, 순창, 담양 등지 상인들이 점포를 운영하는 등 제법 시장 규모가 컸으나, 지금은 인구가 감소하고 평일 상가가 형성되어 오일장은 활기를 잃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1.17 현행화 [자연 환경] 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
2022.10.05 현행화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현황] 인구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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