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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606
한자 淳昌基督勉勵靑年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숙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 설립
성격 사회단체

[정의]

1926년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 설립된 개신교 청년 단체.

[개설]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청년 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 양성과 문화 향상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라북도 15개 부군에서 1919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청년 운동 단체가 252개 정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순창 지역의 청년 단체로는 순창 청년회(淳昌靑年會), 천도교 청년회 순창 지회(天道敎靑年會淳昌支會), 동계 청년회(東溪靑年會), 여명 구락부(黎明俱樂部), 순창 형평 청년회(淳昌衡平靑年會), 순창 청년 동맹(淳昌靑年同盟), 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淳昌基督勉勵靑年會), 순창 청년 동맹 유등 지부(淳昌靑年同盟柳等支部), 순창 청년 동맹 인계 지부(淳昌靑年同盟仁溪支部), 순창 청년 동맹 금과 지부(淳昌靑年同盟金果支部)가 있었다.

[설립 목적]

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는 사회주의에 빠지는 순창의 기독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변천]

기독 면려 청년회(基督勉勵靑年會)는 1881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국내에서는 선교사들에 의해 1921년을 기점으로 전국에 확산되었으며, 3·1 운동 이후 사회적 변화와 청년 운동의 활성화가 배경이 되었다. 목적은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가는 기독 청년들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1921년 6월 경북 지방 면려 청년 연합회가 조직된 이래 지역 단위의 면려회 조직이 점차 확산되었다. 1931년 기록을 보면 면려회 운동이 조선에서 시작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면려회 조선 연합회가 포용한 지방 연합회가 무려 600개에 달하고 총 회원은 1만 5000여 명에 달하였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는 1926년 박재준(朴在俊), 이성만(李成萬)의 발기로 조직되었다. 당시 순창의 종교 인구는 1927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불교 신도가 130명, 기독교 신도가 176명, 천주교가 280명, 천교도가 80명이었다. 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는 기독교 신도가 다른 종교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기에 이 신도들이 사회주의 경향의 단체들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기독 청년 면려회는 주로 청년 수양과 지도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순창 기독 면려 청년회의 활동에 대해 알려주는 기록은 현재 신문 기록뿐이다. 『동아 일보』 1935년 7월 30일자 기사를 보면 1935년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광주읍 양림정 오원 기념각(光州邑 楊林町 吳元記念閣)에서 기독 청년 면려회 전남 연합회 주최로 제1회 전남 남녀 기독 청년 면려 대회를 개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강사로 김건(金健), 안대선(安大善), 백낙준(白樂濬) 3명을 초대했으며, 50년 조선 기독교의 신사상(新思想), 신계획(新計劃), 신동력(新動力)을 얻고자 하는 것이 모임의 취지였다.

[현황]

순창 기독 청년들의 신앙 확립과 교회를 통한 사회 운동에 주력하여 1930년대 전반 절정기를 맞았지만 1930년대 후반 교회 내 사정과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 연합회가 와해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창 기독 청년들의 모임의 장이자 기독교 사상을 드높인 단체로서 당시 순창 지역의 기독교 청년 단체 모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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