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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682
한자 凝香閣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51년연표보기 - 응향각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46년 - 응향각 수축
원소재지 응향각 원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지도보기
성격 정자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정자.

[개설]

응향각(凝香閣)은 임성익(林聖翊)이 순창 군수로 재임하던 1651년(효종 2)에 지은 정자이다. 관아에 딸린 객관의 서쪽 앞뜰을 가꾸어 연꽃 연못[蓮塘]을 조성하였는데, 인접한 대교천 물길을 대어 만들었다. 커다란 연못에는 백련이 가득하였고 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응향각과 관련하여 1746년(영조 22)에 이익지가 순창 군수로 재임할 때 수축(修築)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760년(영조 36)에 간행된 『옥천 군지』를 모본으로 편찬된 『순창 군읍지』 누정 제영(題詠) 부분에는 「제순창 응향각(題淳昌凝香閣)」이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고루담허정(高樓澹虛靜)[높은 누각이 담백하고 허정하니]

인자의표연(人自意飄然)[사람의 뜻을 저절로 표연케 하네]

정수풍상적(庭樹風霜積)[뜰의 나무는 바람서리로 주름져 있고]

지하월로원(池荷月露圓)[못의 연꽃은 달빛 이슬에 둥글어졌네]

산명당화벽(山明當畫壁)[산이 밝아 벽화 같은데]

추숙소한전(秋熟小閒田)[가을에 작은 밭에선 곡식이 익어 가네]

이유차간은(吏有此間隱)[벼슬아치가 이곳에 숨어 있으니]

금성약죽변(琴聲弱竹邊)[거문고 소리 은은히 죽변에서 들리네]

한편, 곡운(谷耘) 권복(權馥)[1769~1833]의 『곡운공 기행록(谷耘公紀行錄)』 남유록(南遊錄) 유상 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순창 응향각은 동헌 곁에 있다. 집 아래에는 작은 호수가 있어서 연꽃이 많이 피어 있으며 호수 기슭에는 화방재(畵舫齋)[누선이 정박한 모습의 집]가 있는데, 우뚝하게 이름난 정자이다.”

『곡운공 기행록』은 권복이 남긴 기행 문집이다. 『순조실록(純祖實錄)』 1817년(순조 17) 9월 21일 기사에 따르면, 권복은 1817년 49세에 별시(別試) 갑과(甲科)에 장원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하였다. 그 후 전라 좌도와 경상 좌도의 경시관(京試官)이 되었으며, 경기 암행어사를 거쳐 정언·집의로 있다가 평안도 순안(順安)으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곡운공 기행록』은 순안으로 유배되었다 돌아온 1828년(순조 28) 59세 무렵의 기록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 수록된 남유록은 51세 때인 1818년 8월 11일~9월 23일까지 42일 동안 전라 좌도 경시관이 되어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시조 작가 이세보(李世輔)[1832~1895]가 응향각화방재에서의 유락 및 추억을 노래한 시조 4수가 남아 있다.

[위치]

응향각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옛 순창 관아 터에 있었다.

[변천]

1651년 임성익이 순창 군수로 재임하면서 건립하였고, 1746년 이익지가 순창 군수로 있으면서 수축하였다. 1818년 『곡운공 기행록』 남유록 유상 편의 기록을 통해 당시 응향각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세보응향각에서의 유락과 추억을 노래한 시조가 남아 있어 적어도 19세기 말까지 응향각이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후 어느 때인가 훼철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응향각은 관아에 딸린 정자로 뜰을 가꾸어 백련을 심은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풍류처이었다. 응향각과 인접한 거리에 있는 화방재 관련 기문[신경준의 『여암 유고(旅菴遺稿)』 권4에 기록된 화방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응향각의 옛 모습을 추적할 수 있다. “신경조[1708~1777]가 옥천 군수 재임기인 1769년에 세운 화방재는 당시 순창의 명승으로 알려진 응향각 주변에 자리하였다. 응향각은 강물을 끌어와 연못을 조성하였고 백련을 심은 뒤 작은 배를 띄워 놓았으며 주위에 대숲과 나무들이 둘러싸 그윽한 맛이 있었다. 그러나 넓게 트인 경치를 볼 수 없었으므로 응향각 서쪽의 남지(南池)와 시내 사이의 긴 언덕에 새로 누각을 세워 화방재라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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