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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702
한자 漁隱亭
이칭/별칭 영하정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길 107-32[평남리 435]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67년연표보기 - 어은정, 영하정이라는 이름으로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92년 - 어은정 1차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9년 - 어은정 2차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어은정 남원 양공 기적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6월 30일연표보기 - 어은정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2호로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1년 - 어은정 기와 및 목재 보수
현 소재지 어은정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길 107-32[평남리 435]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기와집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남원 양씨 어은공파 종중
관리자 남원 양씨 어은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2호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개설]

어은정(漁隱亭)을 지은 양사형(楊士衡)[1547~1599]은 자가 계평(季平), 호는 영하정(暎霞亭)·어은(漁隱)이다. ‘어은’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낙향한 선비들이 내수어(內水魚)가 많이 나는 이곳 섬진강 지역에서 낚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치]

순창 나들목을 빠져 나와 적성면사무소 방면으로 직진하다가 원촌 삼거리에서 적성로 인계면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1.4㎞가량 이동한 뒤 우계길에서 우회전하여 약 1㎞, 그리고 다시 좌회전한 후 약 439m 가다가 평남길 방면으로 좌회전한 후 약 485m 가면 어은정이 나온다.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는 서북부에 두류봉이 솟아 있으며, 100~300m의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섬진강오수천이 구남 마을 바로 앞에서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는 곳에 어은정이 있다. 풍수 형국을 보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북쪽의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은 용(龍)이 승천하려는 형상이고, 남쪽 무량산(無量山)은 물산을 헤아릴 수 없음을 뜻하지만 선조들은 예부터 거북 형상, 즉 거북 구(龜), 큰산 악(岳)을 쓰는 ‘구악(龜岳)’으로 불러 왔다. 구남 마을은 금거북이 남수(湳水)로 들어가는 금구 남수(金龜湳水) 형상이다. 거북은 수명이 길고 물에서도 뭍에서도 살기 때문에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특히 금거북은 하늘에 사는 영물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서 만물을 낳는다고 한다. 거북이 땅속의 기운을 더욱 힘차게 빨아들이므로 집터로 더 바랄 것이 없다. ‘남수’란 서하수(西河水)의 의미로 동계천과 섬진강 원류가 합수되는 지점이자, 섬진 3지맥이 섬진강으로 숨어드는 어은정 앞을 칭한다. 원래의 남수는 중국 산시 성[山西省]에 있는 시냇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거북이 남수에 내린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변천]

어은정양사형이 1567년(명종 22) 혼인을 한 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재 너머인 평남리 구남 마을로 분가하면서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영하정이라 하였는데, 여러 차례 중건되는 과정에서 양사형의 호를 따서 어은정으로 바뀌었다. 1892년(고종 29) 1차 중건에 이어 현재의 건물은 1919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1988년 어은정 남원 양공 기적비(漁隱亭南原楊公紀跡碑)를 어은정 담장 안에 세웠고, 1991년 기와 및 목재를 보수하였다.

[형태]

누정의 현판은 양사형의 9세손 양재절(楊在節)의 글씨이다. 어은정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건물 좌향(坐向)은 남남동향으로, 담장 돌림에 난 문[좌측면]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 약간 경사가 있는 뒤쪽 담장 밖에서 앞의 섬진강을 바라보면 누정의 지붕선과 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평야가 멀리까지 조망된다.

편액으로는 어은정의 현판을 비롯하여 9세손 양재회(楊在晦)의 「어은정 중수기(漁隱亭重修記)」, 양진영(楊璡泳)의 「구남어사서(龜南漁社序)」, 9세손 양재전(楊在田)의 시문, 윤병관(尹秉觀)의 시문 등이 걸려 있다. 그 가운데 당시 지방관이던 윤병관의 「어은정에 제하다[題漁隱亭]」는 1892년 4월 상순에 지은 것으로 새겨져 있다. 전반부는 누정의 옛 주인인 양사형의 기상을 추모하고, 후반부는 아름다운 누정을 노래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풍증불일사요(淸風曾不一絲搖)[맑은 바람 한 오라기 흔들리지 않았는데]

하인당시결성조(何忍當時訣聖朝)[어떻게 차마 당시 성조(聖朝)를 떠나셨을까]

산상지금다백일(山上至今多白日)[산 위에는 오늘까지 밝은 햇살이요]

수중의구견단하(水中依舊見丹霞)[물속에는 예전처럼 붉은 노을 비춰 있네]

허함송성진몽오(虛檻松聲塵夢悟)[빈 난간 솔바람 소리엔 세속적인 꿈 깨치우고]

만정초색객혼소(滿庭草色客魂消)[뜰 가득한 풀빛엔 나그네 마음 녹아지네]

인은고정정미은(人隱古亭亭未隱)[사람은 옛 정자에 은둔하였으나 정자는 아직 숨지 못하여]

복래유자매소요(復來遊子每逍遙)[뒤에 오는 길손들 매양 이곳을 소요하네]

[현황]

어은정의 누마루에 올라서면 물 흐름이 아름다운 섬진강이 내려다보인다. 이렇듯 수려한 섬진강의 조망처로 안성맞춤인 언덕에 자리한 어은정 주위에는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 고목이 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1990년 6월 30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2호로 지정되었으며, 남원 양씨 어은공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어은정은 조선 시대 어지러운 정치적 현실 속에서 명리(名利)를 등지고 낙향한 순창의 선비 양사형이 낚시를 즐기며 소박하나마 그만의 공간에서 자존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한 풍류와 유유자적한 삶이 투영된 공간으로 해석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