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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703
한자 迎狂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 36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1년 6월 27일연표보기 - 영광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4년 - 영광정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6월 30일연표보기 - 영광정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4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영광정 해체 복원
현 소재지 영광정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 367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기와집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영광정 보존계 대표
관리자 영광정 보존계 대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4호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누정.

[위치]

영광정순창군 쌍치면 소재지에서 시산 마을을 지나 정읍 방향으로 따라가다 둔전교 못 미쳐 기룡암(騎龍巖) 위 냇가에 위치하고 있다. 기룡암에는 용의 발톱 자국이 남아 있다 하여 용암(龍巖)이라고도 부른다.

[변천]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하자 당시 순창에 살고 있던 금옹(錦翁) 김원중(金源中)[1860~1930]은 동지들과 함께 일본에 반대한다는 뜻을 알리고자 모임을 갖고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물자를 준비하여 광인(狂人) 행세를 하며 은밀히 항일 투쟁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뜻을 같이 한 사람은 김원중을 비롯하여 어초(魚焦) 이항로(李恒老), 안설(安卨) 김정중(金正中), 우파(禹坡) 설문호(薛文皓), 취죽(翠竹) 이봉운(李鳳雲), 남곡(南谷) 안종수(安宗洙), 병산(甁山) 송국빈(宋國貧), 백계(柏溪) 김요명(金堯冥) 등 총 8명이다.

1921년 6월 27일 항일 운동의 집회 장소였던 자리에 8명의 애국 동지의 뜻을 높이 기리기 위하여 정자를 세우고, 처마 끝에 태극 팔괘(太極八卦)를 새겨 망국의 설움을 되새기며 정자의 이름을 영광정(迎狂亭)이라 하였다. 1950년 6·25 전쟁순창군 쌍치면 관내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잿더미만 남았는데, 영광정만이 유일하게 화마를 피하였다. 전쟁과 풍상에 허물어져 쇠락한 건물을 1974년 순창군의 유림들이 보수하였다. 1991년 담양~정읍 간 도로 확장 공사 때 건물이 입을 피해를 막기 위해 영광정을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영광정의 정면과 측면에는 누정의 이름을 새긴 현판 두 점이 걸려 있는데, 모두 김원중의 친필이다. 그리고 내부에는 5점의 시문 편액(詩文扁額)이 걸려 있는데, 모두 칠율(七律)의 「영광정운(迎狂亭韻)」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3편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 작품이 새겨져 있고, 다른 2편은 남곡 안종수와 금의후인(金義後人) 이종기(李種淇)의 작품이다.

[현황]

1990년 6월 30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영광정 보존계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영광정은 일제 강점기에 뜻을 같이한 순창 지역 8명의 애국지사가 광인 행세를 하며 은밀히 항일 투쟁을 벌인 뜻을 기리고자 건립한 정자이다. 이 때문에 영광정의 처마 끝에 태극 팔괘를 새겨 통한과 울분을 토로하고 망국의 설움을 달래던 아픔의 현장이자, 당시의 시대사적 장소성을 오롯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11.16 주소 수정 쌍치면 둔전리 산6->쌍치면 시산리 367(201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