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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749
한자 淳昌大母山城
이칭/별칭 대모산성,백산리 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산55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20년 10월 23일연표보기 - 순창 대모산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14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순창 대모산성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11월 28일~2002년 1월 16일 - 순창 대모산성 북문지 및 주변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종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 6월 27일~2002년 7월 2일 - 순창 대모산성 북문지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정밀 발굴 조사 시작|종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6월 7일~2005년 6월 11일 - 순창 대모산성 북문지 끝 부분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종료
현 소재지 순창 대모산성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산55 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포곡식|석성
크기(높이,길이,둘레) 약 875m[둘레]
관리자 순창군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대모산에 축성되어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영되었던 산성.

[개설]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2001년과 2002년, 2005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순창 대모산성[대모산성]에 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 발굴 조사는 2001년 11월 28일부터 2002년 1월 16일까지 북문 터 및 주변에서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 발굴 조사에서는 2002년 6월 27일부터 그해 7월 2일까지 북문 터를 정밀 조사하였다. 세 번째 발굴 조사는 2005년 6월 7일부터 그해 6월 11일까지 북문 터 끝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발굴 조사를 통해 순창 대모산성은 백제 시대 도실군(道實郡)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북문 터의 동쪽 정상부의 평탄지에서 고려 시대의 군창지(軍倉址)가 확인되었는데, ‘연우 원년(延祐元年)’이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는 1314년(충숙왕 1)으로, 군창(軍倉)은 조선 시대 초기까지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자료]

순창 대모산성[대모산성]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순창군 조의 “대모산 석성(大母山石城) 둘레가 390보이며 안에 작은 샘이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않으며 군창이 있다[周圍三百九十步 內有小泉 冬夏不渴 有軍倉]”라는 기록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39 순창 성곽 조의 “대모산성(大母山城) 군의 서쪽 4리에 있는데, 석축으로 둘레는 780자, 높이 26자, 그 안에 연못과 샘이 각각 하나씩 있고 군창이 있다[在郡西四里 石築周七百八十尺 高二十六尺 內有池泉各一 有軍倉]”라는 기록으로 보면 조선 시대까지 군창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770년(영조 46)에 간행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권27 성곽 조에는 “대모산성은 서쪽 4리에 있는데, 석축으로 둘레는 780척이다. 안에는 연못과 샘이 각각 하나씩 있다. 원래 처음에는 한 할미가 아들 아홉을 데리고 성을 쌓고 살았다. 많은 곡물을 쌓아 놓고 인하여 관곡으로 삼았다 하는데 지금은 [성이] 없어졌다[大母山城 在西四里 石築 周七百八十尺 內有池泉各一 元初 有老駒 率箕九子 築城居此 多儲穀物 仍爲官穀云 今廢]”라 하여 군창의 역할이 상실되고 성이 폐기된 사실을 보여 주고 있어서 그 시기를 1700년 이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순창 군지(淳昌郡誌)』 고적 조에도 “대모산성은 서쪽 4리에 있으며 석축이고 둘레는 780척이며 못 하나와 샘 하나가 있는데 군창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해졌다. 원래 처음에 할미가 아들 아홉을 데리고 성을 쌓아 살았다. 곡식을 많이 저장해 후에 관곡으로 삼았다 한다[大母山城 在西四里 石築 周七百八十尺 一泉一池 有軍倉 今廢 元初大母率箕九子 築城居此 多儲穀物 其後因爲官穀云]”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국문헌비고』의 내용과 비슷하다. 『조선 보물 고적 자료(朝鮮寶物古跡資料)』에는 “아리부 산성은 백산리 동북 5정, 산 위에 있으며 둘레가 390간, 석축이며 타원형이고 3척이다. 우물터가 하나 있고 기와 조각이 산재했다[雅厘婦 山城 白山里 東北 五町 山上 周三百九十間 石築 橢圓形 合三尺 井址一 瓦片散在]”라고 기록되어 있다.

[건립 경위]

순창 대모산성에 대한 기록은 1454년(단종 2)에 수록된 『세종실록지리지』를 모태로 하여 전해지고 있다. 삼국 시대에 축성된 성으로 조선 시대에도 군창으로 이용되었는데, 조선 시대 순창현(淳昌縣)의 치소지와 가까이 있으면서 창고를 방비할 수 있었던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한 순창 대모산성은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전라남도 담양군으로 이어지는 국도 24호선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도로 서쪽과 산성과의 사이에 경천(鏡川)이 서에서 남으로 돌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어서 경천은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위치]

순창 대모산성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서 서쪽으로 1.5㎞ 지점에 위치한다. 순창군 읍내에서 담양군 방면의 국도 24호선을 따라 1㎞ 정도 가다 보면 좌측에 순창군 청소년 센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지점의 우측으로 경천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며 다리를 건너 산에 오르면 대모암(大母庵)의 작은 사찰에 이르게 된다. 순창 대모산성대모암의 입구와 남쪽과 북쪽 각각 해발 186.7m, 162.4m의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남쪽 봉우리에는 산성재가 지나고 있다. 산성의 동쪽은 성 내부 중 가장 낮은 지대로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현재 대모암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대모암의 입구는 남문 터로 추정되고 있으며, 북문 터는 북쪽 산봉우리 서쪽에 위치한다.

[형태]

순창 대모산성의 평면 형태는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두 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석성이다. 둘레는 약 875m 정도로 중형 산성에 속하며, 인근의 담양 금성산성(潭陽金城山城)[사적 제353호]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성 내부는 동쪽에 대모암이 자리하고 있는 평탄지와 북벽 안쪽에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다. 성벽은 무너진 부분이 많으나 북벽과 서벽은 높이 4~5m 정도 남아 있으며, 북벽은 복원되었다. 남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자연 경사면이다.

성문은 봉우리의 남쪽과 북쪽에 위치하는데, 남문지는 대모암의 진입로 쪽에 해당하며 북문 터는 산성재가 지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문 터의 1차 문지는 백제 시대에 축조된 어긋문으로, 동쪽 성벽과 북쪽 성벽을 중복시켜 개구부를 성벽을 따라 만들어 외부에서 출입구의 식별이 어렵게 만든 형태이다. 문지의 평면 형태는 중복형이나 직각형으로, 개구부의 너비는 2.8m이며 개구부로 이용된 동쪽 성벽은 4.6m, 북쪽 성벽은 4.8m이다. 한편 이 개구부에도 문루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차 문지는 고려 시대에 개축되었는데 문확석(門確石)[문을 고정시킬 때 사용되는 돌], 문지방석, 원산석 등의 문 시설을 갖춘 개거식이며, 문의 양쪽에는 돈대(墩臺)[평지보다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를 마련하였다. 개축된 성문의 통로부 길이는 9.8m이며, 문확석 간의 간격은 2.9m로 한 문짝의 너비는 1.45m이다. 확석(確石)에는 직경 14㎝의 둔테 구멍에 원형의 철제 축륜이 산화된 상태로 부착되어 있다.

성벽은 북문 주변의 22.4m 정도가 조사되었다. 성벽을 축조하기 전에 먼저 경사면을 정지(整地)하고, 외벽부터 성 돌을 눌러 쌓기 하여 성벽의 기저부를 완성한 후 내벽과 외벽을 축조하였다. 내벽은 할석형 면석을 이용하여 12~15단 정도 쌓았으며, 외벽은 할석형 면석으로 7~8단 정도 쌓았다. 성 돌의 반듯한 면을 외면에 노출하였으며, 성 돌의 크기는 큰 차이 없이 수직으로 쌓았다. 성 돌의 빈틈에는 쐐기돌을 박아 넣었다. 내벽 기저부는 생토층을 정지한 후 그 위에 쌓았는데, 기저부의 일부는 땅에 묻혀 있어 무너짐을 방지한 것으로 보인다.

성 내부 시설은 북벽 쪽의 평탄지와 대모암의 평탄지에서 확인된다. 북벽 쪽의 평탄지에서는 길이 40m, 너비 7m의 토단(土壇) 두 곳이 연결되어 있는데, 시굴 조사에서 초석과 기단석이 확인되어 군창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한편 대모암에는 앞마당에 연못이 있으며, 대웅전 남쪽에 샘이 있다.

북문 터의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기와이다. 이 중 모골와통(模骨瓦筒)[기와 틀]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으로 외면은 선문양이 주종을 이루며, 내면에는 포목흔(布目痕)[삼베의 흔적, 기와를 틀에서 쉽게 빼내기 위해 사용한다], 승석흔[짚으로 엮은 자리의 흔적]이 남아 있고, 측면과 측면의 내외 면을 깨끗하게 정면하였다. 이러한 기와 제작 기법은 백제 시대 기와의 특징 중 하나이다. 백제 기와 중 ‘삼수(三秀)’라고 새긴 명문도 확인되었다.

또한 수지문(樹枝文)이 절대를 차지하는 고려 시대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그중에 ‘연우 원년’, ‘도곡관(刀谷官)’, ‘붕□심동(朋□心東)’, ‘만(卍)’ 자 명의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다.

[현황]

현재 순창 대모산성 내부에는 대모암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대웅전이 신축되었으며, 우측으로는 요사채가 있다. 요사채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문헌 기록에 보이는 샘과 연못으로 추정된다. 북문 터는 발굴 조사 이후 어긋문 형태로 복원되었으며, 북문 주변의 성벽도 복원되어 있다. 복원된 북벽의 안쪽으로는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 터가 확인된 바 있다. 순창 대모산성은 2020년 10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4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창 대모산성의 발굴 조사 결과 성문의 평면 형태와 축조 방식 등이 확인되었으며, 선문·통쪽흔[와통 제작 시 보이는 흔적], 측면 분할법 등 백제 시대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또한 백제 시대 산성에서 보이는 입지적 조건이나 성문의 위치 선정 등이 순창 대모산성에서도 적용되고 있어 백제 시대에 축조된 산성임이 확인되었다. 순창군은 백제 시대 지방 행정의 하나인 도실군을 두었던 기록이 남아 있어 순창 대모산성도실군의 치소지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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