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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진 조모 묏자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12
한자 奇正鎭祖母-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상화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기정진의 조모 묏자리.

[개설]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대중(大中), 호(號)는 노사(蘆沙), 시호(諡號)는 문간(文簡)이다. 순창군 복흥면 동산리 조동 마을에서 태어나 1879년(고종 16) 81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조선 후기 이학(理學) 6대가의 한 사람이며, 위정척사파의 정신적 지주였다. 10세 때 사서삼경(四書三經)에 통달하였으며 유학에 전념하여 34세 때는 소과(小科)에 장원으로 합격한 후 강릉 참봉, 동부승지, 호조 참의, 공조 참판 등 40여 차례 벼슬을 받지만 6일 동안만 봉직하고 사양한 후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납량사의(納凉私議)」, 「정자설(定字說)」, 「이통설(理通說)」, 「외필(猥筆)」 등의 저술이 있다.

[묏자리에 얽힌 설화]

기정진의 아버지 기재우(奇在祐)는 4세 때 양친을 잃고 당시 순창군 복흥면 하리에서 살던 큰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15세 때 소학을 공부하던 중 ‘효행 백행 지본야라(孝行百行之本也)’라는 구절을 보고, 처음에는 부모가 없는 자신이 효도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곧 부모님의 유골을 편히 모시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산서 공부를 하였고, 도선 국사의 답산가를 들고 순창 복흥 지역 24혈 중 수혈이라는 금방동 황앵탁목(黃鶯啄木穴)의 혈을 찾아서 어머니를 모셨다. 그러고는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혼인하여 순창군 복흥면 조동에 세거하였다.

안동 권씨가 잉태를 하고 십삭(十朔)이 지나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걸 알고 아버지 기재우는 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였다. 초칠일이 지났는데 하인이 방을 치우다 벽에 걸어 놓은 물체가 떨어지면서 아이의 눈을 찔러 실명이 되었다. 그때야 기재우는 문을 박차고 나와 이제야 어머니에게 효도하게 되었다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이 아이가 노사 기정진이다.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아 대는 형국의 혈]

기재우가 찾은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은 지형상 뒤에 큰 바위 두 개가 버티고 서 있는데 하나는 모양이 꾀꼬리 머리처럼 보이고, 다른 하나는 거대한 나무와 같은 자리라고 한다. 혈이라고 알려진 두 곳의 모양이 마치 한 마리 새가 고목에 달라붙어 있는 듯한 기묘한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는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형국의 혈’인데 좌향은 오행상 목(木)에 해당하는 갑좌(甲坐)나 묘좌(卯坐)이고, 무덤 뒤 바위가 노란색을 띠거나 무덤을 쓰고 난 뒤 노란색으로 변해야 한다. 이러한 황앵탁목혈을 묏자리로 쓰면 3대나 8대 후손 중에서 발복(發福)을 하게 된다고 한다. 기재우가 온전한 눈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자 두문불출한 이유는 목은 3과 8을 가리키고, 꾀꼬리가 나무를 계속하여 쪼아 대기 때문에 나무 구멍이 뚫리듯 한쪽 눈이 빈 자손[3대]이 나와야 명당 발복이 제대로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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