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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909
한자 李茂方
이칭/별칭 석지(釋之),문간(文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19년 - 이무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51년연표보기 - 이무방 순창 군수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372년 - 이무방 계림 부윤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374년 - 이무방 정당문학, 지공거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376년 - 이무방 광양군에 책봉
몰년 시기/일시 1398년 - 이무방 사망
부임|활동지 이무방 부임지 - 전라북도 순창군
성격 문관|순창 군수
성별
본관 광양(光陽)
대표 관직 계림 부윤

[정의]

고려 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

[가계]

본관은 광양(光陽). 자는 석지(釋之).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에 증직된 이인영(李仁英)이다.

[활동 사항]

이무방(李茂方)[1319~1398]은 1319년(충숙왕 6) 출생하였고, 충목왕 때 급제하여 전교 교감(典校校勘)에 오르고 공민왕이 즉위한 1351년에 외직으로 나가 순창을 다스렸다. 이때 누가 그 고을의 토산물을 얻으려 하였다. 이무방은 차고 있던 붓집과 띠를 풀어 서리에게 주면서, “벗이 사사로이 청하는 것인데 공물은 줄 수가 없으니 이것으로 그 물건과 바꾸어서 드리도록 하게.”라고 하니 청탁하였던 자가 부끄러워하며 가 버렸다. 1372년(공민왕 21) 계림 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이때 풍년이 들자 백성들에게 어염(魚鹽)[서민 생활의 필수품인 생선과 소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팔아 의창(義倉)을 설치하여 어려운 백성을 구제(救濟)하였다. 그 공적이 순찰사 최영(崔瑩)에게 인정되어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로 승진하였고, 여절공신(礪節功臣)이라는 호가 더하여졌다.

1374년(공민왕 23)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지공거(知貢擧)를 맡기도 하였으며, 우왕 초에는 서연관(書筵官)이 되었다. 1376년(우왕 2) 시중 경복흥(慶復興)과의 알력으로 파직되었으며, 광양군(光陽君)에 봉하여졌다. 1379년(우왕 5) 문하평리(門下評理)로 명나라에 가서 공물을 바치고 진정표(陳情表)를 올려 공민왕의 시호와 우왕의 작명(爵命)을 청하였으나 명나라의 거부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창왕이 즉위한 뒤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올랐고, 공양왕이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자 이무방이 곁에서 왕을 모시면서 축수를 올린 후 일어나 춤을 추니 그 모습이 볼 만하였다. 왕이 감탄하여 추충려절찬화공신(推忠礪節贊化功臣)의 호를 내려 주었다. 1398년(조선 태조 7)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조선이 건국된 뒤 문인(門人) 조준(趙浚)의 천거로 검교문하시중이 되고 광양 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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