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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판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033
한자 林判鎬
이칭/별칭 인숙(仁淑),송계(松溪)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임판호 출생
추모 시기/일시 1913년 - 임판호 효자비 건립
몰년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임판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 - 임판호 성균관 포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1년 - 임판호 효자비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호계리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로 이건
출생지 임판호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효자비 송계 임판호 효자비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 350-5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평택

[정의]

근현대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 평택(平澤). 자는 인숙(仁淑), 호는 송계(松溪).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임선미(林先味)[1362~1394]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필주(林弼周)이다.

[활동 사항]

임판호(林判鎬)[1879~1958]는 1879년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여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만 앞 사람들의 부모를 섬기는 도리와 인의(仁義)의 덕을 몸소 익혔다.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세에 아버지마저 실명(失明)하였다. 이후 어린 몸으로 가정을 보살펴 나가는 한편, 실명한 아버지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모셨다. 정성을 다하여 약을 구하고 병을 치료하려 노력하였으나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임판호는 이에 선(善)을 쌓아 하늘을 감동시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 식구들에게 죽을 먹여 가면서 근검절약하였고, 가족 몰래 항아리를 묻어 놓고 긴 세월을 한 푼 두 푼 모아 700냥이 되었다. 34세 때인 1912년에 큰 흉년이 들자 지금까지 모아 온 700냥을 흔쾌히 희사하여 동네를 비롯한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어 굶주림을 면하게 하였다. 1958년에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임판호의 효행과 선행을 기리기 위하여 1913년 순창군 인계면 호계리 뒷산 기슭에 송계 임판호 효자비(松溪林判鎬孝子碑)가 건립되었다. 1980년 성균관 포상을 받았고, 1981년에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인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에 비각을 건립하고 임판호 효자비를 옮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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