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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290
한자 萬日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안정리 337]
집필자 배옥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54년 - 만일사 이전, 중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만일사 대웅전 신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 만일사 일주문과 요사채 신축
최초 건립지 만일사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현 소재지 만일사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안정리 337]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무학 대사
전화 063-653-5283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만일사(萬日寺)회문산 자락 산안 마을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3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회문산은 해발 837m의 높은 산으로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 즉 다섯 신선이 둘러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으로 예부터 명당으로 이름 난 곳이다.

회문산 끝자락에 만일사가 처음 창건된 것은 백제 때이다. 만일사 사적기가 전해지지 않아 건립 시기가 백제 시대 384년(침류왕 1)이라는 설과 삼국 통일 후 673년(문무왕 13)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백제 때에 창건된 것으로 연구 발표되었다. 그리고 1760년(영조 36)에 간행된 『옥천지(玉川誌)』에 의하면 만일사는 백제의 원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요사채가 두 채, 암자가 동암(東庵)과 칠성암(七聖庵), 선적암(禪寂庵) 등 세 채가 있었으며, 만일사가 있던 산꼭대기 천길 위에 돌샘이 있어서 가물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만일사는 고려 말 조선 초, 무학 대사(無學大師)[1327~1405]에 의해 중창되었다. 만일사라는 이름도 무학 대사이성계(李成桂)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만일(萬日) 동안 이곳에서 기도한 데서 유래되었다. 중건 과정에 관한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만일사임진왜란 때 다시 한 번 소실과 중건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정유재란 때 왜구가 침입해 절이 불에 타버렸으며 지홍(智弘)과 원측 대사(元測大師)에 의해 다시 증축되었다.

만일사는 많은 역사적 아픔을 한 몸으로 겪어야 하였으나, 빼어난 산세로 인해 수많은 고승들이 찾아들고 배출되었다. 송만암과 야은(野隱) 등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백학명(白鶴鳴) 선사만일사의 금화(錦華) 주지(住持)로부터 법통을 이어받았다.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스승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1870~1948]도 만일사에서 수도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과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만일사는 폐허가 되었다. 그러다가 광복 후인 1946년에 이르러 주지 이금담(李錦潭)이 대웅전, 칠성각, 산신각 등을 짓고 불사를 추진하였으나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으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만일사가 다시 중건된 것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으로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겨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새로 건립하였다. 지금도 현 위치의 200m 위쪽에서 기와 등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순창 군지』[1982]에 의하면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에 거주하는 김인숙이 1949년과 1954년에 시주를 해 중건이 이루어졌다.

만일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90년대이다. 1994년 당시 승려 출신인 정재산이 초암을 헐고 새 요사를 지었다. 이후 태허 지성이 주지 부임 후 순창군의 지원으로 대웅전을 건립하면서 현재의 사격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1997년 11월 현 주지인 경우가 현재의 대웅전을 완공시켰고, 1998년 일주문과 새 요사채를 건립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만일사는 대웅전, 산신각, 일주문, 비각, 요사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량의 정면에는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에 풍판이 달린 맞배지붕의 목조 건물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형 기둥을 세우고 다포 형식을 하고 있다. 편액은 ‘대웅전’이라고 적혀 있고 주련 4기가 걸려 있다. 창호는 중앙 칸이 4분합이고 좌우 협칸은 각각 2분합이다. 내외부에는 화려한 금단청으로 나한상과 동자상 및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외벽에 그려진 그림은 불벽에는 부처가 있고 벽에는 십육 나한상과 모란도 및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다. 내부의 천장은 우물 반자로 되어 있고,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화려한 조각의 수미단 위에는 석가모니불 좌상이 있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은 축대 위에 세워진 건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이고 덤벙주초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으며 겹처마에 풍판을 단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목조 건물이다. 편액은 ‘삼성각’이고 주련은 4기가 걸려 있다. 창호는 빗살창이고 중간 칸은 2분합이고 좌우 협칸 3분합으로 되어 있다. 내외부에는 단청이나 외벽화 등은 없다. 특이한 것은 산신탱의 호랑이가 백호로 그려져 있는 점이다.

[관련 문화재]

만일사 비는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조선 시대에 순창에서 왕에게 고추장을 진상하게 된 유래와 만일사 중건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립 시기는 1658년(효종 9)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