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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암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293
한자 鷲巖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옥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취암사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지도보기
성격 사찰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던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취암사(鷲巖寺)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무량산[586.4m] 아래에 있었다. 본래 무량산의 이름은 구악산(龜岳山), 즉 거북산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거북과 관련된 금구예미형(金龜曳尾形)으로, 영험한 거북이가 진흙으로 꼬리를 끌면서 들어가는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져 온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구미리(龜尾里)라 하였다.

구미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거북 모양의 거북 바위가 길가에 목과 몸이 분리된 채 서 있다. 마을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거북이의 꼬리 방향을 두고 마을 사람들과 근처의 취암사 승려들 사이에 심한 싸움이 있었다. 서로 거북이의 꼬리를 마을이나 절 쪽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싸움에서 불리해진 취암사의 승려들이 거북이의 목을 잘랐다. 그 뒤 1600년경에 취암사는 망해 버리고 구미리는 번창하였다.

구미리 마을 뒤 주산인 무량산은 기세가 강한 석산(石山)으로 이루어져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정상 부분의 험한 바위에서 내뿜는 험한 기를 털어내기 위해 무량산의 중심 맥은 구미리로 향하면서 여러 차례 일어나고 엎드리는 변화를 거듭하면서 낮아지는데 그때마다 산이 조금씩 순해짐을 알 수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와 같은 형상을 박환(剝換)이라고 한다.

주산의 주된 맥이 마을을 향해 내려오면서 온갖 변화를 하는 것은 기세가 강하고 억세고 혼탁한 기운을 모두 털어내고[탈살(脫煞)] 부드럽고 순한 생기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박환이 제대로 되어야 좋은 생기를 담는 명당과 혈이 형성될 수 있다. 무량산에서 우측으로 뻗은 산줄기는 마을을 감싸 돌며 외백호를 이룬다. 역시 무량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크게 원을 돌며 청룡을 만든다. 청룡 끝이 백호 끝과 서로 교차하면서 수구(水口)를 이루므로 마을은 어머니가 양팔을 벌려 아이를 안 듯 품안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취암사의 건립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명산 명당에 자리 잡고 있던 명찰이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활동 사항]

1567년(명종 22)에 취암사에서 원나라 몽산이 저술한 『육도 보설(六道普說)』을 대문으로 나누어 한글로 구결을 달고 언해한 『몽산 화상 법어 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이 간행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방 사찰에서 간행된 책이므로 판의 짜임새가 고르지 않고 잘못 새긴 글자도 적지 않으나, 중세 국어 말기의 국어, 특히 간행 지역인 전라도의 방언을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또 불교사의 한 획인 정토 신앙을 자신의 삶과 수행의 지향점으로 삼아 실천하여 유명한 『백암 정토찬(栢庵淨土讚)』을 지은 백암(栢庵) 성총(性聰)[1631~1700]은 부휴(浮休) 문파 제3대 제자로서, 부휴 선수(善修)[1543~1615]~벽암(碧巖) 각성(覺性)[1575~1660]~취미(翠微) 수초(守初)[1590~1668]~백암 성총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었다.

성총의 생애는 「백암당 성총 대선사 비문(栢庵堂性聰大禪師碑文)」과 『동사 열전(東師列傳)』의 「백암 종사전(栢庵宗師傳)」에 있다. 비문에 의거해서 보면 성총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나, 13세에 순창 취암사에서 출가하여 16세에 법계를 받았다. 1681년(숙종 7) 가을에 서적을 가득 실은 배가 풍랑을 만나 신안 앞바다 임자도(荏子島)에서 좌초하였는데 여기에는 명나라 평림(平林) 섭기윤(葉祺胤) 거사가 교간(校刊)한 여러 문헌이 실려 있었다. 성총은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단편들을 수습하여 190여 권의 책을 간행하여 징광사, 쌍계사 등지에 안치하였다. 성총의 판각은 1695년(숙종 21)에 회향식을 하기까지 약 15년 동안 지속된 거대한 불사로서 한국의 출판사, 문화사, 불교사에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취암사는 폐사되고 그 흔적조차 알 수 없으나 불교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사찰임은 분명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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