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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92
한자 -救-大師
이칭/별칭 「옥천사 삼층 석탑의 유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정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12월 - 「빈대를 물리쳐 절을 구한 대사」 『순창의 구전 설화』상에 수록
관련 지명 순화리 삼층 석탑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514-2 지도보기
성격 신이담|사찰 폐사담
주요 등장 인물 주지 스님|대사|빈대
모티프 유형 빈대의 증가|빈대 때문에 폐사된 절|대사의 신비한 능력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서 옥천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빈대를 물리쳐 절을 구한 대사」는 절에 빈대가 들끓자 대사가 옥천사 삼층 석탑[순화리 삼층 석탑으로 추측]의 옥계석으로 눌러 빈대의 침입을 막았다는 신이담이자, 악한들이 옥계석을 들어 올려서 다시 빈대가 들끓어 절이 망했다는 사찰 폐사담이다. 이를 「옥천사 삼층 석탑의 유래」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105~106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 시대 초기 순창읍 순화리에는 옥천사라는 절이 있었다. 이 당시에 옥천사는 큰 가람으로 번창하여 호남 지역에서는 매우 훌륭한 절로 이름이 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승려들과 신도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빈대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빈대가 많아지자 승려들과 신도들은 빈대 때문에 살 수가 없어 하나둘 절을 떠나기 시작했고, 절은 급속도로 쇠퇴해 갔다. 결국 옥천사에는 늙은 중 한 사람과 주지 스님이 겨우 불전에 공양이나 올리며 지내게 되었는데, 이들 또한 빈대에 시달려 더 이상 절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객승 한 사람이 이 절을 찾아와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였다. 주지 스님은 객승의 기거를 허락하면서도 근심이 앞섰다. 빈대 때문이었다. 그날 밤 주지 스님은 여전히 빈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곁에서 잠든 객승은 문풍지가 흔들릴 정도로 코를 골면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지 스님이 불을 밝혀 살펴보니 온 방안에 빈대가 가득한데 객승 주변에만 빈대가 한 마리도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주지 스님은 빈대가 많은 쪽으로 객승을 밀어 붙이고 자신은 객승이 누웠던 그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객승의 주변에 있던 빈대들이 모두 주지 스님이 누워 있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결국 주지 스님은 그날 밤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새벽이 되어서 객승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더니 모처럼 잠을 편안히 잤다고 고마워하였다. 주지 스님은 객승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고 이 절의 빈대를 없애 달라고 간청하였다. 빈대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어젯밤에도 꼬박 밤을 새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객승은 "그럼 이곳에 누워 잠을 청하시지요." 하더니 손가락으로 금을 그어 보였다. 주지 스님이 그 자리에 눕자 신기하게도 빈대가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주지 스님은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객승은 사실 도를 터득한 훌륭한 대사였다. 주지 스님이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대사는 밖에 나가 탑을 쌓고 주지 스님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지 스님이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가니 대사는 삼층 석탑 앞에 서서 무슨 잠을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고는 빈대 한 마리를 잡아 오라고 하였다. 주지 스님은 대사가 시키는 대로 빈대 한 마리를 잡아 왔다. 대사는 그 빈대를 석탑의 최상층 옥계석을 들고 거기에 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옥계석으로 빈대를 눌러 놓고 내려와서 이제는 빈대 때문에 승려들이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옥천사는 깨끗한 사찰로 번성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백 년이 넘도록 옥천사는 번창하였는데, 이를 시기하는 악한들이 있었다. 악한들은 대사가 석탑의 옥계석 밑에 빈대를 눌러 놓았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몰래 절에 들어와 옥계석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옥계석 만한 빈대가 있었고, 어느 틈엔가 빈대는 사라졌다. 이후로 다시 옥천사에는 빈대가 들끓었고, 결국 옥천사는 영영 폐찰이 되고 말았다.

[모티프 분석]

「빈대를 물리쳐 절을 구한 대사」의 주요 모티프는 '빈대의 증가', '빈대 때문에 폐사된 절', '대사의 신비한 능력' 등이다. 「빈대를 물리쳐 절을 구한 대사」는 폐사된 옥천사와 그 경내에 있던 삼층 석탑과 관련된 석탑 설화인데, 빈대 때문에 폐사하게 된 옥천사의 내력을 전하고 있다. 빈대 절터 설화는 전국 각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조선 시대에는 억불 숭유(抑佛崇儒) 정책에 따라 유학자들이 불교를 깎아내렸다. 빈대로 비유되는 유학자들이 증가하면서 신도도 승려도 다들 절을 떠나게 되었으니 사찰이 폐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불력이 뛰어난 대사는 도력으로 망해 가는 사찰을 구하려 하였지만, 여전히 절을 시기하는 무리들에 의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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