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17
한자 -洗濯所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창6길 14[남계리 570-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65년 5월 8일 - 백양 세탁소 개업
이전 시기/일시 1987년 - 백양 세탁소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570-1로 이전
현 소재지 백양 세탁소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창6길 14[남계리 570-1]지도보기
성격 세탁소
면적 49㎡
전화 063-653-2175|010-2656-2175[박래수]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는 순창군에서 가장 오래된 세탁소.

[개설]

세탁소는 현대 생활에 필수적인 곳 중 하나이다. 편리한 데다 옷이 날개인 시대에 깨끗한 차림으로 남 앞에 설 수 있게 해 준다. 세탁소는 6·25 전쟁 뒤 미군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 급속하게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그 전까지 다림질은 가정에서 여성들의 몫이었다. 세탁소가 생기면서 집안일인 다림질이 집 밖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백양 세탁소는 2014년 현재 49년째 운영 중인 순창에서 가장 오래된 세탁소로,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세탁 역사의 변천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1960년대 중반 순창읍에는 13개의 세탁소가 있었다. 지금은 체인점을 포함해 11개가 운영되고 있다. 순창 읍내 세탁소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도시 아파트 지역의 세탁소와 달리 수거나 배달을 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세탁소의 규모나 숫자는 농촌 인구의 급격한 감소 비율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만큼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건립 경위]

백양 세탁소는 1965년 5월 8일 사장 박래수[1940년생]가 현재 영업 중인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570-1번지 부근에서 개업하였다.

[변천]

처음 셋집을 얻어 몇 차례 옮겨 다니다 1987년 지금 자리에 정착하였다. 박래수가 세탁업을 하게 된 동기는 당시 누구나 그랬듯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세탁소 기술자 밑에 들어가 배우다 군대를 다녀와서 독립한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세탁 기술이 개방되지 않아 기술을 배우려면 세탁소에 들어가 도제식으로 배워야 하였다. 당시 다림질은 4㎏ 가량 나가는 무쇠 다리미를 연탄불[19공탄] 위에 올려놓고 달궈지면 시작하였다. 다리미 두 개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 것이다.

박래수는 자신이 일을 배우기 얼마 전까지 숯을 피워 다리미를 달궜다고 회고하였다. 무쇠 다리미 이후에는 스팀다리미와 전기다리미가 나왔다. 연탄불 위에 무쇠 다리미를 달굴 때는 다리미를 잡는 동시에 온도가 다림질에 적절한지 가늠해야 하였다. 다리미를 들자마자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벌겋게 달궈진 다리미 아랫부분에 살짝 갖다 대면 ‘치’ 하는 소리에 감으로 적절한 온도인지를 알아냈다. 너무 뜨거우면 물에 살짝 적셔서 사용하였다. 요즘은 전기다리미 본체에 증기를 내뿜는 장치가 달려 있지만 한 때는 물통을 올려놓고 호스를 이용해 스팀이 나오도록 한 적도 있었다.

[구성]

안채를 빼고 순수한 가게 넓이는 49㎡ 규모다.

[현황]

백양 세탁소는 겉으로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다림질 기구만 더 편리하게 변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취급하는 품목은 다양해졌다. 의류에서 이불이나 카펫, 가죽 제품, 운동화 등으로 확대되었다. 기술 역시 많이 발전하였다. 얼룩을 빼야 하는 드라이클리닝의 경우 보통 5가지 정도의 화공 약품을 사용하지만 전문적으로 하려면 50가지 약품 성분을 알아야 한다. 백양 세탁소는 1980~1990년대만 해도 “잘 나갔고” 돈도 꽤 벌었지만, 지금은 “인건비를 버는 정도”이다.

[참고문헌]
  • 인터뷰(백양 세탁소 사장 박래수, 남, 74세, 2014. 3. 7)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