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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삼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72
한자 淳昌三防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양상화·이석남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쌍치면 일대에 있는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세 협곡.

[개설]

삼방(三防, 三坊)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협곡(峽谷)을 이루며, 또 세 곳으로 가는 통로에 통행인을 검신할 수 있는 관방(關防)이 설치되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 남단 현 강원도 세포군에 있는 마을로서 관북지방의 오랑캐에 대비한 3개소의 관문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삼방은 안변 외에도 강원도 인제, 그리고 전라도 순창의 세 곳이 있었다 한다.

[순창의 삼방]

순창의 삼방은 첫째, 쌍치면 오봉리 배재로 정읍 칠보로 통하고, 둘째, 복흥면추령 갈재로 정읍 내장으로 통하고, 셋째, 복흥면 답동천치재로 담양군 용면으로 통하는 협곡을 말한다. 복흥면은 호남정맥 가운데에 위치한 넓은 분지로 사방이 바위 절벽으로 성곽을 이룬 곳이다. 쌍치면은 중앙을 북류하는 추령천 연변의 평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해발 300m 이상의 산악 지대이다. 쌍치면에만도 세 협곡이 있어 쌍치면 시산리에 치등소(置等所)와 관방소(關防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쌍치 삼방은 피노리 부근의 상치등방, 금평 시산 부근의 하치등방, 복흥방의 세 군데 요지를 총칭하는 것이다.

현재 순창에 관방소 등 삼방과 관련된 유적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쌍치면복흥면에는 ‘삼방’이란 용어가 여럿 보인다. 우선 복흥면쌍치면 일대를 흐르는 추령천삼방천으로도 불린다. 삼방천복흥면 서북쪽 끝에 있는 추령봉에서 발원하여 복흥면 소재지를 지나 쌍치면을 거쳐 정읍시 산내면에서 섬진강으로 들어간다. 또 복흥면 반월리 동산 마을에는 옛 삼방 고을 터가 있었다 한다. 그리고 구한말 쌍치면 도고리 출신의 의병 대장 채영찬(蔡英贊)은 1906년 면암(勉庵)최익현(崔益鉉)돈헌(遯軒)임병찬(林秉瓚)이 일으킨 의병에 참여하였는데, 임병찬의 『돈헌 유고(遯軒遺稿)』에 보면, 그를 ‘순창 삼방의 포수’라고 일컫고 있다. 따라서 비록 순창 삼방의 관방소 등은 지금 찾을 수 없지만 순창 삼방이 실재했고, 타 지역 사람들도 ‘순창 쌍치의 포수’가 아니라 ‘순창 삼방의 포수’라고 할 정도로 순창 삼방이 일반적으로 인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방의 문화유적]

첫째, 쌍치면 종곡리 관수재 뒤편 바위에 새겨진 관수당 마롱암 암각서(觀水堂 磨礱巖 巖刻書)가 있다. 이 암각서는 우암(尤庵)송시열(宋時烈)의 글씨로 송시열의 아우 송시걸(宋時杰)이 순창 군수로 재임할 때[1672~1675] 순창을 방문해 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쌍치면 종곡리에는 송시열 의 제자 농암(礱巖) 김택삼(金宅三)이 관수당(觀水堂)이라는 정자를 짓고 살았는데, 송시열 이 김택삼을 방문해 써 준 것으로 전한다. ‘관수당 마롱암(觀水堂磨礱巖)’이라고 행서로 새기고 ‘우암 서(尤庵書)’라고 되어 있다. 우암의 암각서가 현재까지 온전히 전하는 예는 많지 않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둘째, 쌍치면 학선리에서 정읍으로 넘나드는 굴치(屈峙) 계곡의 거대한 바위에 박잉걸(朴仍傑)의 적선을 송덕하는 초상화(肖像畵)와 수도비(修道碑)가 암각(岩刻)되어 있다. 조선 숙종 때 사람인 박잉걸은 자신의 노력으로 만석꾼이 되었으나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날 굴치 고개에서 쉬고 있는데 한 노인을 만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노인은 굴치 고개를 사람이 편히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후 박잉걸은 굴치 고개 길을 닦고, 고갯마루에 움막도 지어 고개를 넘나들기 편하게 했다. 또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덕을 베풀었더니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순창 사람들은 박잉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치도비를 세우고 비 옆 암벽에는 그의 초상화를 새기고 초상화 옆에는 두 군데 글씨를 새겼다.

셋째, 쌍치면 둔전리에는 훈몽재(訓蒙齋)와 어암 서원 유허비(魚巖書院遺墟碑)가 있다. 훈몽재하서(河西)김인후(金麟厚)가 1548년 순창 점암촌백방산 자락에 세운 강학당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5세손 김시서(金時瑞)가 중건하였고, 6·25전쟁으로 불탄 것을 2009년 다시 중건하였다. 1827년(순조 27) 순창 유림의 공의(公議)로 김인후, 율곡(栗谷) 이이(李珥), 정철(鄭澈), 김시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김인후가 강학하던 훈몽재(訓蒙齋) 옆에 어암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어암 서원은 1876년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로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고, 2009년 둔전 마을에 어암 서원 유허비만 섰다.

넷째, 쌍치면 적곡리김진종(金振宗)의 자취가 머문 곳이다. 김진종중종 때 문관으로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을사사화로 순창에 유배되어 11년간을 지내다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적곡리이다.

다섯째, 전봉준(全琫準) 장군이 체포된 쌍치면 금성리피노 마을녹두장군 전봉준관이 있다. 전봉준피노 마을에 피신해 있었으나 현상금에 눈이 먼 옛 부하 김경천(金敬天)이 밀고해 체포되었다. 순창에서 체포되었기에 밀고자 김경천이 순창 사람이라 오인되어 왔으나 김경천은 순창 출신이 아니다. 이 외에도 쌍치면 학선리의 천주교 피난지 및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의 집회 장소였던 쌍치면 둔전리에 세운 영광정(迎狂亭) 등 많은 유적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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