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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84
한자 趙奭炫
이칭/별칭 영백(靈伯), 설송(雪松)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강신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사(義士)
성별 남(男)
본관 옥천(玉川)

[정의]

조선 후기 병인양요 때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거병한 의병장.

[가계]

본관 옥천(玉川), 자 영백(靈伯), 호 설송(雪松). 조석현(趙奭炫)은 1835년(헌종 원년)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운림리에서 출생하였다. 15대조는 고려말 절의를 지킨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조원길(趙元吉)이며, 아버지는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 童蒙敎官)에 추증된 조상식(趙相式)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중봉(重峯) 조헌(趙憲)과 함께 금산성 전투에 참전한 모우당(慕友堂) 조여후(趙汝厚)가 8대조이다.

[활동사항]

1866년(고종 3년) 병인사옥이 일어나 프랑스 신부 9명과 신자 8000여 명이 학살되었다. 이 사실이 중국 톈진(天津)에 있는 프랑스 함대에 보고되어 프랑스 군함이 강화도에 침입하는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이에 조석현은 이용환, 이규수 등과 의병을 조직하여 전주성까지 북상하였다. 그러나 이미 전투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순창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울분으로 인해 병이 들어 그 해 사망하였다.

이후 부인 남양 홍씨(南陽 洪氏)는 남편 조석현의 뜻을 받들어 병자년(1876년)에 대흉년이 들자 친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가리지 않고 지역 주민들을 구제하는데, 도움을 주어 이후 순창군수 이성렬(李聖烈), 암행어사 이면상(李冕相)으로부터 상을 받았고, 경술년(1910년)에는 일본의 포상을 거절하여 명문가의 여성으로서 기개를 보여주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3.07 내용 수정 및 추가 조석현의 아버지를 조응견에서 조상식으로 수정. 8대조 조여후와 조석현의 부인 남양 홍씨 관련 행적 추가. 참고문헌 추가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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