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동상골마을에 있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가마터. 가천리 동상골 가마터는 완주군 경천면과 운주면 경계에 있는 불명산 서쪽 골짜기에 위치한다. 시루봉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자락 말단부로 절골 입구에 해당된다. 원용복마을에서 화암사 방면으로 향하는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절골입구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화암사로 들어가는...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동향동마을에 있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가마터. 가천리 동향동 가마터는 통일신라시대 늦은 시기부터 고려시대 전기의 이른 시기까지 오직 토기만을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 경천면 소재지에서 17번 국도를 따라가면 용복리 원용복마을이 나오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1㎞가량 떨어진 곳에 구재마...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있는 화암사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승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이룬...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보덕화상과 관련된 절터. 경복사는 고구려의 승려 보덕이 백제로 옮겨와 세운 절로 임진왜란 때에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경복사는 열반종의 중심 사찰로 규모가 대단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전국 36개 주요 사찰에 이름이 올랐었다. 경복사지는 199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삼국시대...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경천리 죽림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경천리 죽림 가마터는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조선 전기 분청사기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경천리 죽림 가마터는 완주군 경천면 경천리와 고산면 소향리 경계에 위치한 봉수대산 서북쪽 기슭 하단부 바람골 입구에 위치한다. 경천리 죽림 가마터는 2006...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계곡리 교동 고인돌 떼는 전주-순창 간 27번 국도를 따라 구이면 소재지를 지나 구이면 계곡리 교동마을의 구이순두부집 뒤편 구릉에 있다.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는 삼천천의 지류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길게 펼쳐진 완만한 구릉지이다. 2006년에 전북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완주군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을...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완주군은 원삼국시대 마한 지역으로, 지형이 평야지대이고 완주 상운리 유적·갈동 유적·반교리 유적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원삼국시대 완주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소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를 통해 완주군 일부가 전주와 함께 완산으로 불렸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있는 고려~조선시대 가마터. 계곡리 염암 가마터1은 지표에서 다량의 분청사기 조각과 백자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고려 말~조선 초기에, 계곡리 염암 가마터2는 지표에서 백자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계곡리 염암 가마터 1, 2는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위치한 염암마을...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피목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고당리 피목 가마터는 피목마을에 있는 가마터로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운영된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추정된다. 고당리 피목 가마터는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가마의 운영 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 운주면 소재지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금산 방면으로 가면 한국게임...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북쪽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고성산성은 아직 한 차례의 발굴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산성의 축성 시기를 단정할 수 없지만, 축성 주체와 관련해서는 백제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모두 두 차례의 현지 조사를 통해 판석형 할석[깬 돌]을 수직으로 쌓은 성벽의 축조기법이 고성산성 동쪽 각시봉 봉수와 거의 흡사해 전라북도 동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원평촌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고인돌.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원평촌 고인돌C는 광곡리의 구릉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2기의 고인돌이다. 광곡리 원평촌 고인돌C의 형식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며, 특히 2호 고인돌은 덮개돌[상석]마저 파괴된 상태여서 제원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다. 광곡리 원평촌 고인돌C는 구이면 원평촌마을 아래쪽...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완주군은 원삼국시대 마한 지역으로, 지형이 평야지대이고 완주 상운리 유적·갈동 유적·반교리 유적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원삼국시대 완주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소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를 통해 완주군 일부가 전주와 함께 완산으로 불렸...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원구억마을 북쪽의 구릉지[해발 60m]에 위치한다. 『조선보물고적자료』에 의하면 ‘龍進面一里, 土城址 周圍 約 五百間, 高六尺 乃至 十尺 거의 完全함’이라 기록되어 있다. 나지막한 구릉의 능선과 북쪽의 평지를 아우르는 포곡식 산성[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벽을 쌓는...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원구억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구억리 원구억 고인돌은 서쪽으로는 소양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에 있는 고인돌이다. 구억리 원구억 고인돌은 2006년의 지표조사 이외에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완주군의 고인돌 문화에 대한 인식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원구억마을은 소양천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원구억에 있는 정려. 황락(黃洛) 처 안동김씨[?~1592]의 아버지는 진사로 참봉을 지낸 김우갑(金友甲)이다. 황락 처 안동김씨는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이 가슴에 손을 대자 더러운 손이 닿았다고 큰 소리로 일본군을 꾸짖으며 품고 있던 장도로 손목을 자르고, 7월 21일에 장도칼[패도]로 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했다. 남편 황...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유기현(柳基賢), 유기섭(柳基燮)의 정려이다. 유기현[1814~1881]의 본관은 전주, 자는 치호(致浩)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유광참(柳光參), 증조할아버지는 유계운(柳啓運), 할아버지는 유여룡(柳汝龍), 아버지는 유상준(柳相峻)이다. 외할아버지는 부평이씨 이종...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1932년에 만든 정려각.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1932년에 만든 구와리 유발처 남양홍씨 정려(柳誖妻南陽洪氏旌閭)와 효자 유영철 정려(孝子柳英喆旌閭)이다. 남양홍씨[1856~1938]의 증조할아버지는 승지 홍우량(洪禹良), 할아버지는 홍유정(洪有鼎), 아버지는 홍재혁(洪在赫)이다. 남편은 2살이 어...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려.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1947년에 중수한 유지현(柳之賢), 유기창(柳基昌), 유한철(柳漢喆), 유기호(柳基灝) 처 평양조씨(平壤趙氏)의 정려이다. 유지현(柳之賢)[1768~1837]의 본관은 전주, 자는 선지(善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광은(柳光殷), 할아버지는 유봉운(柳逢運),...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주민들에 의하면, ‘금당리’라는 지명은 ‘금당사’라는 절의 명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옛날에 승려가 많았으나, 파평윤씨들에 의해 쫓겨났다고 한다.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금당사가 천등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산읍지(高山邑誌)』에는 ‘화재로 폐사되었다’라고 전한다. 금당리 금당사지는...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신풍마을에 있는 개화기 남방희와 남수희 쌍효각.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는 남수희와 남방희 형제의 쌍효각이다. 남수희는 신혼을 모르고 살았으며, 부모님 병 치료에 백약을 찾다 보니 재산이 줄고 집안이 기울어졌다. 3년간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 날마다 부모 묘를 찾아 살폈고 울음소리와 눈물이 그친...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두현리 남계정을 건립한 김진(金瑱)은 자가 이온(李溫)이고 호는 남계(南溪)이며 본관은 통천이다. 김진은 1527년(중종 22)에 태어나 25세에 과거시험에 급제해 생원이 된 후에 1574년(선조 7)에 합천에서 훈도(訓導)로 재직했다. 말년에 이곳 두현리로 낙향하여 남계정을 세우고 오직 학문과 후학들을...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남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관진의 창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남관진의 창건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1873년(고종 10)에 세워졌다.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전주-남원 간 도로변 완주군 상관면 남관초등학교의 교차로에서 남관성결교회로 우회전하는 곳에 있다.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개석[뚜껑돌...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남봉리 신기마을에 있는 절터. 완주군에서 고산면으로 진입하다 보면 고산천에서 화정천이 합수하는 지역이 있는데 이 부분의 위쪽에 신기마을이 있다. 남봉리 신기사지는 신기마을에서 동남쪽으로 100m 떨어진 구릉의 서쪽 경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신기마을회관에서 마을 길을 따라 동남쪽으로 100m가량 가면 절터에 이른다. 남봉리 신...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절터. 내월리 내월사지는 ‘내월사지’라고도 한다. 내월리 내월사지는 내월리 수봉산 남서쪽 기슭인 서학골에 위치하는데 원내월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800m가량 올라가면 확인할 수 있다. 내월리 내월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의 일원으로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1...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명곡마을 서쪽 우묵시골에 있는 제철유적. 내월리 명곡 제철유적은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으로, 제련로의 위치와 제철유적의 운영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완주군 비봉면과 익산시 여산면 경계에 천호산[500m]이 있는데, 이 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천호천이 줄곧 남쪽으로 흐른다.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와 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요덕사에 있는 조선시대 승려 송음당의 사리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누정. 누정건축은 사방이 터진 곳이나 경관이 수려한 곳에 주변 환경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높게 지은 건축물을 말한다. 누정건축은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고 때로는 공부하고 학문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종교적인 조상숭배를 위한 기능, 지역적인 계 모임의 공동생활 기능 등을 담기 위해 건축되었다. 이는 자연인으로서의 청렴함과 검...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동성산 동쪽에 있는 조선시대 석성. 대아리산성은 완주군 동상면 대아저수지 서남쪽 산성동과 동성산 동쪽 골짜기를 휘감은 포곡식의 조선시대 산성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의 대아저수지 서쪽을 병풍처럼 감싸주는 험준한 산줄기가 완주군 고산면과 동상면의 경계를 이룬다. 이 산줄기 동쪽 기슭에 대아리산성이 있는...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은천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대아리 은천 가마터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일대에서 조선 후기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이다. 대아리 은천 가마터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후기의 백자를 생산하다가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아리 은천 가마터는 완주군 동상면 대아저수지 우암교에서 대아천을 따라...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대원사에 있는 고려시대 부도.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이룬다....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대흥마을 서북쪽 산소골에 있는 제철유적. 대치리 대흥 제철유적은 조선시대에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으로 제련로의 위치는 파악하기 어렵다. 대치리 대흥 제철유적은 현지조사 때 산소골에서 기벽이 두껍고 승석문과 격자문이 시문된 회청색 경질토기[1100℃ 이상의 실내 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워 회청색을 띠는 단단한...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마을 내 칠암(七岩)마을과 구암(九岩)마을에 걸쳐 평지에 조성된 30여 기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덕천리 고인돌 떼는 구이면 덕천리 내 칠암(七岩)·구암(九岩) 두 마을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대략 5개의 군을 이루며 30여 기가 흩어져 있는데, 형식은 바둑판식이라고도 불리는 기반식(碁盤式) 고인돌이다. 구암마을은 이름의 유래에서...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김계헌(金啓憲)[1794~?]의 본관은 김해, 자는 중여이다. 아버지는 김귀몽[1777~?]이다. 외조는 전주이씨 이준익이다. 김계헌의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계헌이 성장해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슬픔 속에서 상을 치렀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에...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김언철(金彦哲) 처 옥야(沃野) 장씨(張氏)의 아버지는 장억기(張億紀)이다. 부인의 품성은 덕이 있고 정갈하며 시집 와서는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예로써 받들었다. 1597년(선조 31) 정유재란 때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원당동에 살았다. 옥야장씨 부인은 전주성이 함락된 뒤 일본군이...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청명에 있는 임락풍·임락관·임락성의 효자 정려. 임락풍·임락관·임락성 정려[孝子 學生 林樂豊 林樂觀 林樂晟之閭]의 효자 정문은 외삼문으로 되어 있다. 조양임씨 삼형제는 나란히 효자이다. 임락풍은 1797년(정조 21) 출생해서 1866년(고종 3)에 세상을 떠났는데, 부인 우주황씨는 석노의 딸로 1794년(정조 18)생이며 186...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67번지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기와가마터. 둔산리 신하 기와가마터 유적에서 수습되는 기와는 경도가 연질이고 등면에 무문 또는 집선문이 타날된 삼국시대 기와이다. 둔산리 신하 기와가마터에서 수습되는 기와로 볼 때 삼국시대에 조성되었던 가마터로 추정된다. 둔산리 신하 기와가마터는 봉동읍 은하리의 봉실산[해발 372m]에서...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있는 윤언형 처 전주이씨 정려. 전주이씨는 고산현 이규홍의 딸로 1797년생인 유언형과 1819년 3월 3일 혼인을 했다. 그해 6월 25일 처가에 가던 중 고산천에서 남편이 목욕하다 익사하자 전주이씨는 21세의 나이로 애통해 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동년 8월 3일 치마에 돌을 감싸고 스스로 익사했다. 모든 사람이 전주이씨를 열...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있는 백제시대 유적. 둔산리는 배매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야산에서 뻗어내린 구릉의 서사면에 자리한 마을인데, 둔산리 유적은 이 마을의 동편 구릉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931번지에 해당한다. 둔산리 유적은 전주과학산업단지 조성에 따라 발굴조사를 실시한 후 유구는 국립전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으...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190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마치리 원마치 가마터 지표에서 자기 조각에 비해 기와가 다수 확인되고 수습된 기와의 등면에 청해파문[파도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문양] 등이 타날[점토 안에 들어 있는 공기를 빼내고 토기 벽을 단단하게 두드리는 작업]된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 기와가마터가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만덕산에 있는 정수사의 중심 불전. 정수사는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만덕산 아래 평탄판 평지 위에 자리하며 사찰 앞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다.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은 정수사의 입구를 들어서 정면에 있다. 완주군 상관면의 정수사는 889년(진성여왕 2)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시대에도 법등이 이어...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석성 터. 만마관지(萬馬關址)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완주군으로 들어가는 호남제일관문(湖南第一關門)으로 조선 후기 순조(純祖) 때 축성된 석성의 터이다. 만마관은 옛 『완산지(完山誌)』의 ‘1811년(순조 11)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 이상황(李相璜)이 부(府)의 동남(東南) 7리(里)에 만마관을 축성...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명덕리 호동 고인돌은 호동마을의 구릉 말단부의 인삼밭 중앙에 있으며, 총 2기가 확인되었다. 2기에서 모두 덮개돌[상석]을 받치고 있는 4매의 받침돌[지석]이 확인되어 기반식[남방식] 고인돌 형식임을 알 수 있다. 1, 2호 고인돌의 덮개돌을 제외하고 주변에 치석된 석재들이 산재하고 있어 고인돌이 더 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 성뫼산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백도리산성은 성뫼산 정상부를 한 바퀴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삼국시대 산성이다. 백도리산성은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산성 북쪽에 위치한 작은 산성으로 백제의 전초기지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백도리산성의 축성기법이 전라북도 동부 지역 삼국시대 봉수의 연대와 같기 때문에 전라북도 동부 지역 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백여리 대덕 고인돌 떼는 남석사(南石寺) 뒤편 능선에 총 4기가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능선에는 수 십 매의 석재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규모가 큰 고인돌 떼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여리 대덕 고인돌 떼는 구이면의 계곡리와 백여리의 경계 지점에 있다. 백여리는 서쪽으...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문헌 기록 및 고지도 등에 백여리 원백여사지와 관련된 내용이 전하지 않아 조성 시기 및 연혁은 알 수 없다. 백여리 원백여사지는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원백여마을 북쪽에 있는 사방댐의 서쪽 골짜기에 있다. 이 골짜기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절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원백여마을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
전라북도 완주군에 백제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물인 화암사.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시루봉 남쪽 골짜기에 있다. ‘화암사’라는 명칭은 신라 때 의상(義湘)이 서역에서 전단목(栴檀木)을 가져와 심었는데 그 향기가 절에 가득하여 ‘화암사(花巖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15세기에 기록된 「화암사 중창기(花...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서봉리 관덕마을 북쪽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토성. 백현리산성은 고산천 서쪽 산봉우리 정상부를 토성으로 한 바퀴 두른 테뫼식 산성이다. 전주시와 금산군을 이어주는 17번 국도를 중심으로 남쪽에 관동리산성, 북쪽에 백현리산성과 서북쪽에 어전리산성이 있다. 백현리산성 동쪽에 고산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고산...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보성사 창건은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데, 창건비에 따르면 김형배가 창건했으며, 7년 뒤 다시 중건을 했다. 보성사를 중건하며 법당과 요사채를 보수했으며, 법당의 왼쪽엔 미륵존상을 봉안했다. 보성사는 1994년 건립된 공덕비로 볼 때 이때까지 법등을 이어오다가 1960년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봉산리 봉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은진임씨[1738~1805]는 현감 임경우(林景佑)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영(林苓)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恩津面) 묵동(墨洞) 출신이다. 은진임씨는 결혼하기 전부터 현숙했다. 국사증과 19세에 결혼했으며, 국사증이 병에 걸리자 좋은 약이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구해 썼다. 그러나 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조영길(趙榮吉)과 조준(趙峻)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조준[1573~1635]의 본관은 양주, 자는 사첨, 호는 유호(柳湖)이다. 대제학 조말생(趙末生)의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는 덕수이씨 이대남이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원주에 있던 영원성도 함락되었는데, 이때 조준은 어머니와 형인 조인[1...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묵계마을 서쪽 화장골 입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사봉리 묵계 백자 가마터는 19세기부터 20세기 이른 시기까지 운영된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운영 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원사봉마을 서남쪽 학동산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묵계마을 부근에서 만경강 본류로 흘러든다. 학동산 동북쪽...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묵계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려. 수원백씨의 열녀비 전면에 있는 명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사구이효(事舅以孝)[시아버지 섬기기를 효로써 하였으며] 사부이열(事夫以烈)[지아비 섬기기를 열행으로 하였다.] 일편고심(一片苦心)[편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하였으니] 천추대의(千秋大義)[길이길이 오래도록 남을 큰 의로움이로다] 아범공순(雅範...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탄현 동쪽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산북리산성은 고중리산성 혹은 탄현산성으로 불리며 산봉우리 정상부를 두른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이다. 산북리산성은 가야세력에 의해 초축된 뒤 백제시대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삼거리마을에서 운주면 산북리 저구리마을 방면으로 가려면 탄현을 넘...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삼기리에 있는 기린 고인돌은 만경강 지류를 따라 형성된 종암마을과 기린마을 사이에 조성된 남방식(南方式) 고인돌로서, 그 주변에 상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10여 점이 분포하고 있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종암마을은 고산면을 대표하는 큰 마을이다. 삼기리 기린 고인돌은 고산면 종암마을 회관...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봉수. 봉수는 낮에는 연기와 밤에는 횃불로써 변방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삼국시대 통신제도이다. 삼기리 기린봉수대는 완주군 고산면 일대에서 금남정맥 싸리재를 넘어 진안고원으로 향하는 내륙교통로를 감시하기 위해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와 화산면 종리 경계...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후백제시대 절터. 삼기리 봉림사지에 대해서는 지역의 고문헌, 사찰지(寺刹誌) 등 그 어떠한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사원이다. ‘봉림사(鳳林寺)’라는 명칭이 구전되어 오늘에 이르고는 있지만 그 유래를 역추적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 다만 『완주군지』에 의하면, 행정구역 폐합이 이루어지던 1914년 이전에는 삼기...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누정. 삼기리 삼기정을 세운 최득지(崔得之)는 본관이 전주이고 호는 율헌(栗軒)이며, 1413년(태종 13)에 장흥교수를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가 1439년(세종 21)에 고산현감이 되었다. 삼기리 삼기정은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의 전주-대전을 잇는 7번 국도의 삼기교차로 우측 언덕 위에 있는 정자 건축이다. 주변에...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상삼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 오희첨(吳熙瞻)[1755~?]의 본관은 낙안, 자는 사순(士淳), 호는 기암(奇巖)이다. 할아버지는 봉계 오명좌(吳命佐), 아버지는 오언박(吳彦博)이다. 오희첨은 고산면 삼기리 출신이다. 오희첨은 어려서부터 항상 부모의 곁에서 모시며 날마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렸다. 이웃 어른들이 혹시 과일이나 떡을...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마천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 유양원(柳良源)[1857~?]의 본관은 문화, 자는 경화이다. 친부는 유석조, 양부는 유석언이다. 어머니는 남평문씨[1806~1886]이다. 유양원은 1857년(철종 8) 5월 10일에 태어났다. 유양원의 부모님이 뜻하지 않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몸에 좋은 약과 귀하다고 하면 산신령님께 빌며 산과 들...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와 상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 상삼리산성은 완주군 용진읍 상삼리 용암마을의 서북쪽 산 정상부와 그 남쪽의 계곡부를 감싸 안은 포곡식 석축성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삼각형에 가까우며, 둘레는 986.5m 내외이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上三里 城峙山, 土城周圍 約 三百七十間: 高 約三尺, 거의 崩壞됨’이라고 기록되어...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상삼리 용교 고인돌 3기는 완주군과 전주시를 경계로 흐르는 소양천과 인접한 용교마을의 북쪽 구릉지대에 조성되어 있으며, 고인돌은 모두 덮개돌[상석] 아래의 받침돌[지석]이 확인되는 전형적인 기반식(碁盤式) 고인돌이다. 완주군 용진읍 상삼리 용교 고인돌은 용교마을의 북쪽 구릉에 위치하는데,...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신기마을에 있는 개항기 박기헌의 정려각. 박기헌의 자는 원화(元化)이고 호는 사이당(四而堂)이다. 아버지는 증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贈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계택(桂澤)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진주강씨이다. 어머니 진주강씨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고 병이 깊음을 알았으며 하늘에 대신 죽기를 축원했다. 박기헌은 부모의 상을 당하자 지나...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 있는 청동기~삼국시대 고분군. 완주군은 원삼국시대 마한 지역으로, 지형이 평야지대이고 완주 상운리 유적·갈동 유적·반교리 유적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원삼국시대 완주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소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를 통해 완주군 일부가 전주와 함께 완산으...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 상운리 유적에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집자리, 무덤 등 옛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와 유물이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 분묘유구[고인돌 1기, 돌널무덤 1기, 돌뚜껑움무덤 1기, 독무덤 3기]와 생활유구[주거지 9기], 초기 철기시대 유구로 생활유구[주거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부인 광산김씨의 묘비. 정부인 광산김씨의 사망 후, 1833년(순조 33) 묘 앞에 건립된 비석이다. 정부인 광산김씨의 가계와 부군 전주최씨 문충공의 후손 창익의 행적과 차자인 성전이 정려를 받아 효자의 모친이란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상운리 정부인 광산김씨 묘비는 완주 나들목 입구에서 오른...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서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서봉리 홍우전 신도비는 조선 후기 공조·예조·병조·형조 참판과 춘추관사를 지낸 문인 홍우전[1663~1728]의 신도비로서 1766년(영조 42)에 세워졌다. 비문은 무려 3,700자에 이르는 장문으로 글씨는 당나라 후기 서예가인 안진경의 다보탑비 서체로서 안심사 사적비와...
-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석기를 주된 도구로 사용하던 시대. 석기시대는 뗀석기를 사용한 구석기시대와 간석기를 사용한 신석기시대로 구분된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처음 출현한 시기부터 약 1만 년 전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로, 석기의 형태나 제작 기술의 정도에 따라 전기[약 250만 년~10만 년 전], 중기[10만 년~4만 년 전], 후기[4만 년~1만 년 전]로 구분...
-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선사시대(先史時代)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대로 역사시대(歷史時代)와 대칭되는 개념이며,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에 지표조사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 과거 전라북도 완주 지역의 선사시대를 복원할 수 있다. 완주 지역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시대로 구분된다. 전라북도 북...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남동마을 남쪽 구릉지에 있는 조선 후기 옹기 가마터. 성북리 백암 옹기 가마터 현지조사 때 옹기보다 시기가 앞서는 유물이 수습되지 않아 조선 후기 늦은 시기에 옹기만을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군과 충남 논산시 행정 경계를 이룬 남당산[375.4m]과 작봉산[419m] 사이에서 남북 방향으로...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남동마을에 있는 정려.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남동마을에 있는 평택임씨 정려군이다. 이곳에는 5개의 비석이 있다. 임상인(林尙仁)[1533~1605]의 정려는 가장 왼쪽에 있다. 성북리 임상인 정려비의 형태는 개석이 있는 쌍주 안에 비석이 있다. 비석의 명문은 ‘효자학생임상인지려(孝子學生林尙仁之閭)’이다. 원래 성북리 임상인 정려비...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봉수대산에 있는 봉수대 터.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소향저수지의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봉수대산의 정상부에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소향리 봉수대산 봉수대는 2006년 완주군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에 따른 지표조사 통해 개략적인 현황이 파악되었는데, 봉수의 거화(炬火)와 관련된 지상 구조물은 거의 붕괴하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대아저수지 북쪽 산봉우리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소향리산성은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와 동상면 대아리 경계를 이룬 산봉우리 정상부를 한 바퀴 두른 테뫼식으로 삼국시대 산성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소향리산성 내에서 수습되어 백제산성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금남정맥에서 갈라진 한 갈래의 산줄기가 고산면...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에 있는 절터. 문헌 기록 및 고지도 등에 소향리 안남사지와 관련된 내용이 전하지 않으므로 절의 연혁은 알 수 없다. 소향리 안남사지는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안남마을에서 동북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도독골’이란 골짜기에 위치한다. 안남마을에서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임도를 따라가면 절터에 이른다. 소향리 안남사지는 20...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에 있는 절터. 소향리 운문사지는 ‘운문암지(雲門庵址)’라고도 전해지며, 신라 때 창건된 후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다고 전해진다. 운문사는 『가람고(伽藍考)』, 『고산읍지(高山邑誌)』, 『완주군지(完州郡誌)』 등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완전히 소실되었다. 소실되기 이전에는 큰 법당 한 채, 작은 법당 한 채, 상량전, 산...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 내에 있는 나한전. 전주시에서 진안군 방향 26번 국도 소양면을 경유해, 마수교에서 좌회전해 벚꽃터널을 지나 2㎞쯤 가면 왼쪽에 송광사가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대웅전 뒷면 우측에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1656년(효종 7)에 조성해 대웅전에 봉안하였던 나한상을 송광사 대웅전을 중건하던 1857년(철종 8)에 새...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중기 승려 벽암당의 사리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송광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종남산 송광사는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물맛을 보고 이 주변에 절을 세우면 반드시 번창하리라 했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1622년(광해군 14)에 이 지방에 거주하던 승려 응호, 승명, 운정, 덕림, 득순, 홍신 등이 보조국사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사찰을...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지향 고인돌은 지향마을의 구릉 끝에 있으며, 고인돌이 있던 자리에는 고시원이 세워졌다. 지향마을 입구에서 송광수만로를 따라 약 170m 정도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늘푸른고시원이 있고, 수만리 지향 고인돌은 그 고시원의 마당에 있다. 수만리 지향 고인돌은 2006년에 전북대...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운곡리에 있는 절터. 수선리 부소사지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운곡리의 성뫼산 남쪽 하단부에 있고 수선저수지의 남쪽에서 확인된다. 수선리 부소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의하면 ‘부소사지’로 보고되어 있으나 사명(寺名)과 관련된 문헌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 조사에서 수선리 부소사지에는 석축의 일부가 잔존하고...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수선리 송수사지는 비봉면에서 화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왼편에 송수마을이 있는데 송수마을 남서편 ‘절골’이라는 골짜기에 위치한다. 수선리 송수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의 일원으로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13년 불교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에서...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에 있는 유도양 처 연안이씨의 정려. 유도양의 처 연안이씨는 시어머니가 병환에 걸려 위독해지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간호하며 자기 몸을 돌볼 틈 없이 약을 달여 간병을 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고 위독해지자 단지주혈[부모의 입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드리는 것]을 했다. 이같은 기사가 1892년(고종 29)...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에 있는 유태양과 부인 반남박씨의 정려. 유태양[1804~1860]은 본관이 전주이고, 시조 장령공의 17세손이며, 아버지는 유규보이다. 아내 효부 반남박씨는 1804년(철종 11, 갑자)생이고, 1859년 1월 5일 사망했다. 유태양은 평생 효경(孝經)을 읽었고 떳떳한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괴질에 걸려...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에 있는 절터. 신교리 응암사지와 관련된 기록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운영되고 폐사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신교리 응암사지는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응암제 북동편 절골로 불리는 골짜기에 있다. 신교리 응암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의 일환으로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되었다. 당...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 신원리 상리 백자 가마터는 복은저수지 동남쪽에 위치한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이다. 신원리 상리 백자 가마터 지표에서 다량의 소토부, 벽체 조각, 백자 조각 등이 수습되어 이 일대에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가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신원리 상리 백자 가마터 주변에서 다량의 백자 조각이 수습되...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거인마을 동남쪽 번갯골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신월리 거인 백자 가마터는 조선 후기 늦은 시기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19세기 백자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신월리 거인 백자 가마터는 완주군 동상면 소재지에서 55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500m 남짓 가면 신월교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하검태마을 검태골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신월리 검태 가마터는 조선 후기 늦은 시기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백자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금남정맥 연석산과 운장산 사이 북쪽 기슭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는 용연천을 따라가면 동상면 신월리가 있다. 신월리 신성마을...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구수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신월리 구수 가마터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운영된 조선 후기의 가마터로, 백자를 굽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완주 동상초등학교에서 55번 지방도로를 따라 진안군 주천면 방면으로 가면 구수교가 나오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금남정맥 장군봉 서쪽 기슭 말단부에...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신성마을 부근에 있는 제철유적. 신월리 신성 제철유적은 본래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조선시대 제철유적이다. 신월리 신성 제철유적에서 언제부터 철을 생산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표에서 조선 후기 백자 조각이 수습되어 조선 후기 늦은 시기에 철이 생산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금남정맥의 성재산에서 서...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용복마을에 있는 개항기 박효진의 정려. 박효진은 밀양박씨로 자는 문중(文中)이다. 아버지는 달해(達海)이고 자는 사즙(士楫)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자 박효진이 항상 탕약과 원하는 음식을 손수 마련했는데 하루는 꿩고기를 원해서 하늘에 비니 꿩이 집으로 날아와 구할 수 있었고, 또 신인으로...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에 있는 정우홍의 정려. 정우홍은 하동정씨로 1713년(숙종 39) 정진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모를 공양하는데 효성이 지극했다. 정우홍이 11살 때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대변의 맛을 보면서 병간호를 했으며, 19세 때에는 아버지가 값자기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고 하자 막연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타까워하자 꿩 한 마리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안덕리 양생동 고인돌 떼는 구이면의 서쪽 구릉에 위치한 안덕리 구릉지에 조성된 8기의 고인돌 떼이다. 안덕리 양생동 고인돌 떼의 형식은 덮개돌[상석] 이외의 하부구조가 모두 토사에 묻혀 있어 확인할 수 없으나, 일부 덮개돌에서 알구멍[성혈]과 쐐기 자국이 확인되어 고인돌의 특징적 요소를 잘 보여주고...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일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가마터. 완주 안덕리 장파 가마터 A, B에서는 지표에서 다량의 백자 조각이 수습되어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C에서는 분청사기가 수습되어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덕리 장파 가마터는 모악산[793m]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서쪽 사면부에 조성된 장파마을 인근에...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는 절터. 안덕리 장파사지는 창건 및 폐사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완산지(完山志)』와 『범우고(梵宇攷)』를 통해 18세기 후반까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에서 안덕리 장파사지와 관련된 유구[집터, 무덤 등 옛 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는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수습되는 유물은 대부분 조선 후기 유물이다. 따라서 사찰...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는 절터. 안덕리 탑선사지는 ‘안덕리사지’라고도 한다. 안덕리 탑선사지와 관련된 문헌을 확인할 수 없으며, 사지와 관련된 유구[집터, 무덤 등 옛사람이 남긴 삶의 흔적]도 지표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 주민의 전언과 석축, 산포 유물 등으로 보아 사지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안덕리...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승탑. 부도(浮屠)라고 불러온 승탑(僧塔)은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이룬다. 고려...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에 있는 안심사의 연혁을 기록하기 위해 세운 비. 안심사는 638년(백제 무왕 39)에 자장법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고, 신라 말 고려 초에 조구(祖求)화상에 의해 재중창되었다. 그 뒤 고려를 거쳐 1601년(선조 34) 수천화상(守天和尙)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1710년(숙종...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 오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구석린 효자각. 구석린은 1676년(숙종 2)에 고산면 오산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리 뛰어나 부모님을 편안히 모셨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예로써 안장한 다음 묘 옆에서 여막을 짓고 3년을 모셨다. 돌아와서 바로 모친상을 당함에 다시 아버지 묘 옆에 안장하고 3년을 시묘했다. 그동안 구석린의...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양수장. 완주 구 삼례양수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삼례와 익산 지역의 상수원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와 관련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922년 만경강 수로 공사와 삼례 취입보 공사 당시 이 지역 주민들이 음료수 문제로 난동을 일으켜 전라북도에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는...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 자리하고 있는 분묘유적과 생활유적. 전라북도 완주군 상운리 유적은 용진읍 상운리 산 10번지 및 봉동읍 구만리 산 18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상운리 원상운마을의 북동편으로 해발 35~40m 내외의 구릉지 정상부와 사면부를 따라 전북 지역 최대 규모의 분묘군이 자리하며, 구릉지 안쪽에서는 주거지들도 확인되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송광사 중심 불전.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송광사 가람 중심에 있으며, 우화루가 정면에 있고 우측에 명부전, 좌측에 적묵당이 있는 4동 중정형의 북쪽에 위치한다. 송광사 개창 비문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송광사는 17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2층의 완주 송광사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 천왕전, 정문...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영구의 신도비. 완주 송영구 신도비는 좌대[기물을 받쳐서 얹어 놓는 대]와 이수[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가 잘 갖추어져 있고 조각 수법도 정교하고 뛰어나며, 특히 당대의 명필인 송준길의 서체로서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송영구[1556~1620]의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인수(仁叟), 호는...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종형 사리탑과 금강계단. 금강계단(金剛戒壇)은 불사리(佛舍利)를 안치한 곳으로 수계(受戒) 의식을 집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완창리 안심사 사적비(事蹟碑)에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잘 나타나 있다. 완창리 안심사 사적비에 ‘안심사에 전해 오던 부처님의 치아 1개와 10과의 사리를 보존하기...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숯고개 서쪽 산봉우리에 있는 삼국시대 봉수. 봉수는 낮에는 연기와 밤에는 횃불로써 변방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통신제도이다. 탄현봉수대는 1894년 갑오개혁 때 근대적인 통신제도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개인정보를 다루지 않고 오직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정보 기능만을 전달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탄현봉수대는 완주군 운주...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에 있는 조선시대 화암사의 중심 불전.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앙식 건물로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아미타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고, 화려한 닫집이 불상 위쪽에 마련되어 있고, 닫집 주위로 목조비천상을 조각해서 현수하므로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건물 내외부 포벽에 좌불도가 그려져 있고, 내부 상벽에 나한도와 화조도가 그려져 있다. 완주...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화암사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누정. 보물 제662호인 완주 화암사 우화루(花巖寺 雨花樓)는 정면은 높은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놓은 2층의 구조이나 뒷면은 평범한 단층 구조를 가진 공중누각식(空中樓閣式)의 형태로서 자연적인 지형과 조화를 이루어 선인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화암사의 ‘화암(花巖)’이란 유래는 사찰 앞의 반석(磐石)...
-
전라북도 14개 시 군[6개 시, 8개 군] 중의 하나. 완주군은 전라북도 14개 시 군 중의 하나로 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수는 9만 5,234명[남 4만 8,922명, 여 4만 6,312명]으로 전라북도에서 다섯 번째이며, 면적은 821.05㎢으로 가장 넓다.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전주의 과거 지명인 완산과 현재 지명인 전주에서...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의 안심사 근처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고인돌. 완창리 안심 고인돌은 총 2기[A, B]로 구릉에 조성되었으며, 모두 안심사(安心寺)에 인접해 있다. 완창리 안심 고인돌은 두 기는 서로 약 500m 정도 떨어져서 분포하고 있는데, 완창리 안심 A 고인돌은 안심사의 대웅전 동편 구릉에, 완창리 안심 B 고인돌은 일주문 옆의 밭에 조성되어...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현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완창리 현동 분청자 가마터는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분청사기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완창리 현동 분청자 가마터는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현동마을 입구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2006년 안골에서 또 다른 가마터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완창리 현동...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에 자리하고 있는 고대 석성. 용계산성은 금남정맥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장선천 서쪽 산봉우리에 있는 포곡식 고대 산성이다. 용계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문헌비고』, 『대동지지』 등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고대 산성으로 삼국시대 완주군 동북부 일대로 진출한 가야세력에 의해 초축된 뒤 백제, 후백제시대까지 운영되었을 것...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 만수동마을 동북쪽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용복리산성은 성재산 정상부를 한 바퀴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삼국시대 산성이다. 용복리산성은 전라북도 동부 지역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삼국시대 봉수의 연대 축조기법과 거의 흡사해 완주군 동북부로 진출한 가야세력에 의해 초축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용복리산성...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 석장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용복리 석장 가마터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 후기 백자를 생산하다가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고 추정된다. 용복리 석장 가마터는 완주군 경천면 소재지에서 17번 국도를 따라가면 경천교육공무원 양성학원이 나오고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사기점골 입구 남쪽 기슭에...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내애마을에 있는 절터. 용암리 내애사지와 관련된 문헌이 확인되지 않아 사명(寺名)과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내애마을에 있는 용암리 내애사지는 경각산 동쪽 골짜기에 있다. 용암리 남관초등학교 앞 남관진(南關鎭) 창건비가 있는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1㎞가량 진입하면 내애마을이 나온다. 내애마을에서...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용암리 용암 고인돌 떼는 구릉 말단부에 위치하며, 2개의 지점으로 파악할 수 있다[A, B].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용암 A 고인돌은 현재 완주테크노벨리 조성단지에 인접한 봉암들에 있다. 봉암들은 봉동로를 따라 조성된 원용암마을에서 원용암길을 따라 약 600m 정도 이동하면 있는데, 길 양쪽에 총 3...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용흥리에 있는 청동기~통일신라시대 고분군. 완주군은 원삼국시대 마한 지역으로, 지형이 평야지대이고 완주 상운리 유적·갈동 유적·반교리 유적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원삼국시대 완주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소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를 통해 완주군 일부가 전주와 함께 완...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용흥리 녹동마을 구릉 정상부 1기의 고인돌과 용진읍 운곡리의 갈우제 구릉에 조성된 총 2기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운곡리 녹동 고인돌 떼는 『완주군지』에는 ‘용흥리 지석묘’로 보고되어 있는 유적으로, 용흥리 녹동마을 뒤 구릉의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는 고인돌 1기와 운곡리 갈우제 남동쪽에 조성된 2기의 고인돌이다. 완주군 용진읍...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용흥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완주군은 원삼국시대 마한 지역으로, 지형이 평야지대이고 완주 상운리 유적·갈동 유적·반교리 유적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원삼국시대 완주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소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를 통해 완주군 일부가 전주와 함께 완산으로 불렸...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운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완주군 용진읍 운곡리에 있는 운곡리 봉계리사지는 서방산과 깃대봉의 능선이 만나는 대절골에 있다. 사지는 봉계마을에서 서방산으로 난 도로상의 운지제를 지나 약 900m를 오르면 깃대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약 200m를 오르면 확인되는 폐건물 일원에 해당한다. 운곡리 봉계리사지는 운곡리 봉계사...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원기리 상학 고인돌은 해발고도 약 125m의 구릉에 위치한 고인돌이다.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상학마을은 27번 국도와 인접해 조성되어 있는 마을로, 상학마을에서 전북도립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옆의 밭에서 원기리 상학 고인돌을 확인할 수 있다. 원기리 상학 고인돌은 2006년에 전북대학교...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하학마을에 있는 개항기 이근섭의 효자 정려. 이근섭은 연안이씨이고, 좌의정 이귀령의 자손이다. 이근섭은 유복자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남보다 더욱 청순하며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했다.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도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날로 더해 갔다. 어머니의 가냘픈 삶은 오직 아들에 기대를 걸 뿐이었다. 어머니가 죽자 이...
-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이에 준하는 고고 자료. 우리 조상들의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은 당시인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으며, 한 나라와 민족의 구체적 표상으로 정체성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근래에는 제3차 산업의 꽃이라는 관광산업과 연계되어 점차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유산’...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터. 은교리 신월 가마터는 지표에서 다량의 옹기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은교리 신월 가마터는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위치한 신월마을을 동쪽에서 감싸고 있는 구릉지의 서쪽 사면부에 해당한다. 은교리 신월 가마터는 가마가 조성되기에 알맞은 경사를 갖추고 있...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완주군 봉동읍은 백제시대 우소저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경덕왕 때 우주로 고쳐 금마군(金馬郡)[익산시 금마면]의 영현으로 되었고, 고려 현종 때 전주에 속하게 되었다. 우주에는 우동(紆東)·우서(紆西)·우북(紆北)의 3개 면이 있었다. 우주의 북동쪽에 양량소(陽良所)가 있었는데, 이곳은 우양촌(...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완주군 봉동읍은 백제시대 우소저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경덕왕 때 우주로 고쳐 금마군(金馬郡)[익산시 금마면]의 영현으로 되었고, 고려 현종 때 전주에 속하게 되었다. 우주에는 우동(紆東)·우서(紆西)·우북(紆北)의 3개 면이 있었다. 우주의 북동쪽에 양량소(陽良所)가 있었는데, 이곳은 우양촌(...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은하리 은하 고인돌은 은하마을의 북편 구릉 정상부에 조성되어 있는 총 3기의 기반식[남방식,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또한 모든 덮개돌[상석]에서 치석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은하리 은하 고인돌은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은하마을 북편 구릉 정상부에 총 3기가 조성되어 있다. 은하마을은 봉동읍에서 7...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완주군 봉동읍은 백제시대 우소저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경덕왕 때 우주로 고쳐 금마군(金馬郡)[익산시 금마면]의 영현으로 되었고, 고려 현종 때 전주에 속하게 되었다. 우주에는 우동(紆東)·우서(紆西)·우북(紆北)의 3개 면이 있었다. 우주의 북동쪽에 양량소(陽良所)가 있었는데, 이곳은 우양촌(...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완주군 봉동읍은 백제시대 우소저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경덕왕 때 우주로 고쳐 금마군(金馬郡)[익산시 금마면]의 영현으로 되었고, 고려 현종 때 전주에 속하게 되었다. 우주에는 우동(紆東)·우서(紆西)·우북(紆北)의 3개 면이 있었다. 우주의 북동쪽에 양량소(陽良所)가 있었는데, 이곳은 우양촌(...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은하리 추동 고인돌은 추동마을 동쪽 바른절골을 넘어 남-북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구릉지대에 조성되어 있다. 은하리 추동 고인돌의 덮개돌[상석] 하부에서는 매장주체부 시설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여러 매 확인되었다.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추동마을은 봉동로[799번 지방도]를 따라 왕궁면...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위치한 구한말에 지은 양로당. 읍내리 구 고산양로당은 고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쪽으로 독촉저수지 앞까지 난 도로를 따라 직선거리로 360m 내외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읍내리 구 고산양로당은 1905년에 건립되어 ‘사균정(舍均亭)’이라는 이름으로 양로당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30여 m 떨어진 인근에 2층의 양옥 건물을...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상리에 있는 유석진의 효자각. 유석진은 기계유씨로 고산현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 성보의 손자다. 원래 운제현 사람으로 고산현의 관리였다. 부친인 천을(天乙)이 괴질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어 기절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니, 유석진이 기도로서 하늘에 도움을 구하고 널리 약을 구하며 간병하고 있을 때, 한 의원이 말하기를, 살아 있는 사람...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있는 정려. 달성서씨의 아버지는 진사 서상기(徐相基)이다. 남편은 허복(許福)으로, 허조(許調)의 아들이다. 청풍김씨의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해 찰방을 지낸 김선철(金善哲)이다. 청풍김씨는 허완과 결혼한 지 5년만에 병을 얻은 남편의 병구완을 했다. 허완(許完)은 허복의 아들이다. 읍내리 허복처 달성서씨, 허완처 청풍김...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의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 의암리 계월 백자 가마터 지표에서 수습된 분청사기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의암리 계월 백자 가마터는 조선 초기에 조성,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의암리 계월 백자 가마터는 완주군 소양면과 상관면을 나누는 묵방산[해발 527m]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하단부에 있다. 이곳...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의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의암리 민목 백자가마터 지표에서 백자 조각, 분청사기 조각 등이 수습되어 유적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조성,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의암리 민목 백자가마터는 상관면 의암리의 묵방산[해발 527m]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하단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마가 조성되기에 알맞은 지형을 갖...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황새골마을에 있는 송정 처 반남박씨의 정려. 무진년 9월에 이성리 송정처 반남박씨 정려각을 세웠다. 무진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자세히 알 수 없다.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황새골마을은 전주-김제 간 716번 지방도로에서 갈산리-금구 방향 713번 지방도를 타고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황새골마을이 나온다. 이성리 송정처 반남박씨 정려는...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원이성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언술의 정려. 정언술은 동래정씨로 태어난 지 겨우 50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새어머니에 대해서도 효성을 다했다. 새어머니는 강보에 싸인 전 부인의 아들 정언술을 길렀다. 정언술은 새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공부를 해서 지방 수령이 되었다. 정언술은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슬픔이 본성을...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 구하마을에 있는 정려비. 강기환[1821~?]은 진양강씨로 호는 흥서(興瑞)이다. 부모를 변변하게 공양은 못했지만 유쾌한 성격으로 극진히 섬겼다. 부모가 죽은 후 강기환은 3년간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어 땅이 패이고 눈물 젖은 풀이 말라 죽었다.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글을 올리자 예식원 이용직(李容稙)이 주청해서 증직과 함께...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 구하마을 서북쪽 요골에 있는 제철유적. 이전리 구하 제철유적은 본래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제철유적이다. 이전리 구하 제철유적 현지조사 때 요골에서 기벽이 두껍고 표면에 격자문이 시문된 회청색 경질토기[1100℃ 이상의 실내 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워 회청색을 띠는 단단한 토기] 조각과 백...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이전리산성은 완주군 고산면과 비봉면 경계를 이룬 산줄기와 북쪽 골짜기를 포함하는 삼국시대 포곡식 산성이다. 이전리산성은 종래에 백제 동방성의 전진 기지성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그 주변에 삼국시대 산성 및 봉수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므로 가야세력과의 관련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
전라북도 완주군의 인구, 교육, 산업, 교통, 역사 등 인문지리적 특성. 전라북도 완주군은 1935년 전주군에서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전주군 지역 중 전주부 이외 지역을 완주군으로 분리해 탄생하였다. 1895년 전주부가 전주군으로, 고산현이 고산군이 되었다. 1914년 부군 병합시에 고산군이 통합되어 전주군이 설치되었으며, 1931년 전주면이 전주읍으...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저구리마을 동남쪽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저구리산성은 운주면 산북리 저구리마을 동남쪽 산봉우리 정상부를 휘감은 테뫼식으로 삼국시대 산성이다. 저구리산성은 충청남도 금산 백령성에서 금남정맥을 넘어 만경강 유역에서 진안고원의 금산분지로 진출할 때 대부분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전략상 요충지를 이룬다. 완주군 동북부로 진출한...
-
전라북도 완주군과 전주시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인류의 역사 발전에서 공헌도가 가장 높은 것 중의 하나가 철과 소금이다. 한나라 무제가 제정해서 시행한 소금과 철의 전매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염철론’으로 전라북도는 ‘염철론’의 큰 무대였다. 전라북도 서부지역에서 소금이, 동부지역에서 철이 생산되었는데, 여기에 근거를 두고 전라북도를 ‘동철서염(東鐵西鹽...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절터. 제내리 관음사지는 일제강점기 자료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의하면 ‘관음사지’로 칭하며 석축 일부와 초석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1977년 『문화유적총람』에는 ‘사지에 석축이 남아 있으며, 인근 민가에 팔각형 주춧돌이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1979년 『전주·완주지역 문화재보...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임정언(林廷彦)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임국주(林國柱), 임광후(林光后) 등 임씨 삼충(三忠)을 기리는 정문(旌門)이다. 임정언의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자는 사미(士美), 호는 한정당(閒田堂)이다. 참판 임각(林恪)의 후손이며, 고조할아버지는 상주목사 임중형(林仲亨)...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절터.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신촌리사지는 비봉산 또는 학현산으로 불리는 곳의 남서쪽 골짜기인 절골에 있다. 제내리 신촌리사지는 2006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 때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 지표조사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고 석축과 우물, 기와 조각 등이 확인된다고 했으나, 2013년 『한...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경천저수지 동남쪽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종리산성은 완주군 경천면 소재지 남쪽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 정상부를 두른 테뫼식 산성이다. 종리산성은 종래에 백제산성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지만, 종리산성을 중심으로 북쪽에 종리봉수, 서쪽에 봉림산봉수가 있기 때문에 가야세력과의 관련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종리산성...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 원종리마을 동북쪽 산봉우리에 있는 삼국시대 봉수. 종리봉수대는 낮에는 연기와 밤에는 횃불로써 변방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삼국시대 봉수대이다. 『일본서기』에 가야계 소국 반파(伴跛, 叛波)가 513년부터 515년까지 3년 동안 기문(己汶), 대사(帶沙)를 두고 백제와 갈등 관계에 빠졌을 때 봉수[후]제를 운용한 것...
-
전라북도 완주군의 주생활. 완주군은 고대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전주와 같이 완산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면서 같은 행정구역에 속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고산군이 통합되어 전주군이 설치되고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되면서 전주군이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전주와 완주가 분리되었다. 이후 크고 작은 행정적 변화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완주...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떼. 죽림리 공기 고인돌 떼는 총 4기로 구릉지대 사이에 길게 펼쳐진 구릉 하단부에 조성되어 있다. 고인돌의 형태를 통해 기반식[남방식] 고인돌로 판단되며, 1호 고인돌에서는 알구멍[성혈]이 확인되어 고인돌의 특징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마을은 17번 국도에서 공덕교를 지...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위치한 고려시대 절터.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사지는 공덕마을 동편 ‘절골’이라는 골짜기에 있다. 죽림리 공기사지는 공덕마을에서 약 1.2㎞ 정도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진입한 후 북서쪽으로 난 죽림편백길을 따라 약 650m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계곡 부에 해당된다. 죽림리 공기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죽림리 외정 백자가마터는 지표에서 다량의 백자가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가마가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죽림리 외정 백자가마터는 외정마을을 동남쪽에서 감싸고 있는 야산의 북사면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마가 조성되기에 알맞은 지형을 갖추고 있고 산지가 가까워 땔감 등을 손쉽게...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 있는 절터. 죽림리 종현사지는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종현마을 동편과 북편 골짜기에 있다. 상관면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전주시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외사마을에서 오른편으로 난 길이 보이고 이 길을 타고 가면 금계마을을 지나 종현마을이 나온다. 죽림리 종현사지는 2006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죽절리 내주 고인돌은 총 3기이며, 구릉과 구릉 사이의 평야지대에 위치한다. 모든 고인돌에서 일부이지만 받침돌[지석]이 확인되었으며, 1호 고인돌에서는 1개의 알구멍[성혈]이 확인되었다.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내주마을은 소양천의 작은 지류가 관통하는 마을로 그 지류는 ‘내주제’라는 저수지와 연...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죽절리 내주 기와가마터 지표에서 등면에 청해파문[파도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문양]이 타날[점토 안에 들어 있는 공기를 빼내고 토기 벽을 단단하게 두드리는 작업]된 기와가 다수 수습되는 것으로 볼 때, 죽절리 내주 기와가마터는 조선시대에 조성,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죽절리 내주...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 봉서사에 있는 조선 중기 승려 진묵대사의 사리탑. 진묵대사[1562-1633]의 이름은 일옥이며, ‘진묵’은 그의 호이다.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는데, 이 화포리란 곳은 옛날에는 불거촌(佛居村)으로 부처가 살았던 마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7세에 출가해 주로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
-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북쪽 천호산 봉우리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천호산성은 천호산 두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두른 포곡식으로 삼국시대 산성으로 추정된다. 종래 백제산성으로만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천호산성 내 북쪽에서 방형의 봉수시설이 발견되고, 현지 조사 때 빼곡한 물결무늬[밀집파상문]가 장식된 가야토기 조각이 수습되어 가야세력과의 관련성도 배제할...
-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철기시대는 고고학에서 사용하는 시대구분의 명칭으로, 기원전 300년경 한반도에 철기가 등장한 시기부터 삼국시대가 정립된 기원후 300년까지로 정의된다. 한국고고학에서는 기원전·후를 경계로 그 이전을 초기철기시대, 이후를 원삼국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초기철기시대는 한반도 서북한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전국시대 철기...
-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경사회가 시작되는 시기로, 무문토기가 제작되고, 간석기가 더욱 발달하여 일상도구로 사용되며, 청동기가 제작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1,500년경부터 시작하여 철기문화가 등장하기 전인 기원전 300년까지로 보고 있다. 이 시대는 청동기가 표지적인 유물이지만 남한...
-
고려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관인. 최용각(崔龍角)은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 최아의 둘째 아들로 대호군공파 중시조이다. 최용각의 아버지는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인 최아이다. 최아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최용각은 둘째이다. 최용각의 아들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최철(崔哲)이고 부인 정경부인 허씨(許氏)는 중호군(中護軍) 허선(許瑄)의 딸이자 지...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 명나라 무인 추수경 장군의 묘. 추수경(秋水鏡) 장군은 명나라 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청하(淸河), 호는 세심당(洗心堂)이다. 명나라 귀주성 성덕산하 오현군 칠성동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재예(才藝)가 뛰어나고 문무(文武)를 겸비해 16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1591년(선조 24)에는 중국 명나라의 무강자사...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춘산리 덕동마을에서 행해지는 마을 제사. 덕동마을은 원래 ‘덕골’이라 불렸다. 덕동마을은 임진왜란 무렵 김해김씨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성산배씨, 담양국씨 등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춘산리 덕동 당산제는 마을 앞쪽 앞재 길목 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특히 앞재를 다니는 사람들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춘산리 덕동...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춘산리에 있는 절터. 춘산리 예곡사지에 대한 관련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예곡마을 앞들을 ‘탑거리’라고 부르며, 일제강점기에 탑을 약탈당했다고 한다. 춘산리 예곡사지는 완주군 화산면 춘산리 예봉산 남서쪽 예곡마을 북동쪽 골짜기의 대나무 숲을 지나서 자리하고 있다. 춘산리 예곡사지는 20...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하봉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보광사는 『가정집(稼亭集)』에는 백제 때 건립된 것으로 전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덕산(高德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광사가 폐사된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반경에 완전히 황폐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평촌리 보광사지는...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평촌리 원평촌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남북으로 길게 평평한 들이 조성된 마을이다. 평촌리 원평촌 고인돌은 두 지점에서 확인되는데, 원평촌마을의 북쪽 하보마을로 가는 길가에 조성된 고인돌 1기[평촌리 원평촌 A]와 원평촌마을 남쪽의 평촌교와 인접한 밭에서 확인된 4기의 고인돌[평촌리 원평촌 B]이 해...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는 동쪽으로는 구이저수지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모악산과 인접하고 있는 평탄한 지역이다. 항가리 고인돌은 덮개돌[상석]과 받침돌[지석]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4개 정도 주변에서 확인되어 기반식[남방식] 고인돌 형식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는 구이면의 구이...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무지마을에 있는 개항기 하정용과 부인 김해김씨 효열각. 하정용은 진양하씨로 어머니 유씨가 전염성인 이질에 걸려서 6개월을 고생하고 약을 써도 쉽게 낫지 않자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하느님께 빌기도 했다. 하정용과 하정용 부인은 약효를 시험하기 위해 대변의 맛을 보았는데, 결국에는 어머니 유씨가 회복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몸이...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해전리 해전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경주김씨와 신범균 처 파평윤씨의 정려. 경주김씨는 남편인 신태로(申泰魯)가 나이 겨우 20대에 의원도 모르는 병에 걸리자 온갖 노력으로 치료에 힘썼으며, 약이란 약은 두루 구해 써 보고 대변의 맛을 보기까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떨어뜨렸다. 간병은 허사가 되고 낭군은 눈을 감...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에 있는 오재효와 오인한의 정려비. 오재효[1858~?]의 본관은 동복이고 자는 양여이며, 호는 송암이다. 임진왜란 공신 오세우의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연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 아들 오윤탁, 손자 오인한, 증손자는 오병근이다. 사망한 날은 7월 24일인데 정확한 해는 모른다. 오재효의 묘는 소양면 유상의 아래 자좌[묏...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 지표에서 수습되는 백자의 기종 및 가마 도구, 번조 방법[질그릇이나 사기그릇, 도자기 등을 불에 구워서 만드는 일] 등으로 볼 때, 가마터는 조선시대[19세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화심리 화심리 가마터1은 만덕산[765m]에서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하단부에...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화암사 중창에 관한 내용이 새겨진 비. 화암사 중창비는 1441년(세종 23)에 쓰였으나 비의 건립은 비문을 써놓은 지 131년이 지난 1572년(선조 5)에 세워졌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 전기의 관료인 성달생(成達生)이 1417년(태종 17)에 전라감사로 부임해 전주에 내려왔는데 세종 7년인 1425년 자신의 원찰을 세우...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창곡마을에 있는 절터. 고문헌에 창곡사와 관련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창곡마을 일원과 그 동남쪽의 불당골이 화월리 창곡사지의 범위에 해당한다. 화월리 창곡사지는 2006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10년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한국사지총람』에도 현황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경천저수지 북쪽 각시봉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봉수. 봉수는 낮에는 연기와 밤에는 횃불로써 변방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삼국시대 통신제도이다. 화평리 수락봉수대는 충청남도 부여군, 논산시 방면에서 완주군 화산면을 경유해 진안고원으로 향하는 내륙교통로를 감시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평리 수락봉...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황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황운리 마수 고인돌은 소양천과 인접해 있는 충적대지를 배경으로 해서 조성된 고인돌이다. 현재 황운리 마수 고인돌은 마수마을의 밭에서 확인되며, 덮개돌[상석]까지 흙에 묻혀 있어 정확한 형태 파악은 어렵다. 마수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인돌이 여러 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기만 존재한다....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후정리 비비정은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의 ‘한내[한천(寒川)]’라 부르는 강인 삼례천의 북쪽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전면에는 삼례천이 유유히 흐르고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후면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우암 송시열이 지은 「비비정기」에서는 ‘장비’나 ‘악비’에서 비비정이...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원후정마을에 있는 숲. 마을숲이란 마을의 역사·문화·신앙 등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조성·보호·유지되는 숲을 말한다. 자생해서 이루어진 산림이나 목재를 이용할 목적으로 조성한 일반적인 숲과는 구별된다. 후정리 원후정 마을숲은 마을의 우백호 줄기에 조성된 숲으로 이를 보강하기 위한 숲이다. 전라북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