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9년 3월 28일과 4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경기도 양주는 의병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특히 추교시장[현 가래비시장]은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 시장으로 많은 사람이 운집하고 각종 문물이 집결하는 곳이다. 따라서 점차 격렬하게 확산되는 서...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가래비 3·1 만세 운동 기념비. 가래비 3·1운동기념비는 1919년 3월 28일 만세배미에서 일어난 가래비 3·1 만세 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86년 3·1절 기념식 시위에 동참하였던 당시 양주군 광적면 출신 백인현의 발의로 기념비 건립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고, 조태훈이 위원장을 맡았다. 기념비 건립 추진 과정에서는 광적면장 이...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만세배미에 있는 3·1 운동 순국열사 기념비. 가래비 3·1운동 순국기념비가 서 있는 만세배미는 1919년 3월 28일 군민 950여 명이 모여 독립 만세를 부르고 독립을 외쳤던 곳이다 이때 만세 운동을 주도한 백남식(白南式)·이용화(李龍和)·김진성(金辰成) 등 세 명이 왜병의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후 이곳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진주(晉州). 본명은 강기주(姜基周). 아버지는 강준복(姜俊福)이다. 강기동(姜基東)[1884~1911]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군 기병부위(騎兵副尉)로 있다가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군을 규합하여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그 뒤 일본 헌병대를 찾아가 위장 귀순하여 경기도 장단(長湍)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
-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정치인. 강승구(姜昇求)[1903~1986]는 1903년 10월 14일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서 태어났다. 1954년 5월 20일 실시한 제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양주 을구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재선되었으며, 1963년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의정부 선거구에서 민정당 소...
-
경기도 양주 출신의 국회 의원.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의정부읍장을 지낸 강원근(姜元根)이고, 어머니는 이만분(李滿分)이다. 3남 5녀 중 장남이며, 부인은 송옥잡(宋玉煠)이다. 슬하에 강승형(姜昇馨)을 두었다. 강영훈(姜永薰)[1927~1960]은 1927년 7월 2일 양주군 의정부읍 신곡리[현 의정부시 신곡동]에 있는 둔배미마을에서 태어났다. 육군대학을 졸업한 후 1954년 5...
-
1894년 경기도 양주를 비롯한 36개 읍의 세금 징수 대상을 기록한 자료. 「경기 각읍 신정 사례(京畿各邑新定事例)」는 1894년 10월 승총(陞總)[세금 징수 대상에서 빠진 토지 내역을 조사해 장부에 등록하는 일]에 따라 새롭게 정해진 경기도 각 읍(邑)·진(鎭)의 세금 징수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15234]. 필사본. 2책. 크기는...
-
1905년 양주군에 있던 내수사(內需司)의 장토 현황을 기록한 토지 대장. 「경기도 양주군 소재 내수사 장토 사검 개타 양안(京畿道楊州郡所在內需司庄土査檢改打量案)」은 1905년(고종 42) 2월 경기도 양주군에서 백석면·광석면 등에 있는 내수사의 장토(庄土)를 측량해 중앙에 보고한 토지 대장이다. 보고자는 양주군수인 홍태윤(洪泰潤)이고, 검사자는 현상국(玄相國)이었다. 현재 규장각...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양주소놀이굿 기능 보유자. 양주소놀이굿은 탈을 쓴 소, 원마부, 곁마부가 한데 어울려 무당과 마부의 대화, 마부의 타령과 덕담, 마부와 소의 동작, 춤 등으로 이루어진 굿 형식의 놀이로, 양주의 무부(巫夫) 팽수천(彭壽天)[1901~1937]에 의해 양주 지역에 전승되어 왔다. 고희정(高熙貞)[1921~2005]은 양주군 이담면 보산리[현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구낙서(具洛書)[1882~?]는 경기도 양주군 상동면 묵동[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으로 추정]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1908년(순종 2) 당시 27세였으므로, 이로 미루어 1882년(고종 19)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구낙서는 박순근(朴順根)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덕현 등과 함께 경성...
-
1949년 6월 좌익 전향자로 구성된 조직인 국민보도연맹 산하 경기도 양주 지역 지부. 국민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의 절대 지지와 북한 공산 괴뢰 정권의 절대 반대 및 타도, 공산주의 사상의 분쇄, 남북 노동당의 멸족 파괴, 정책 폭로 및 분쇄, 민족 세력의 총결집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정식 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으나 통상 ‘보도연맹’으로 불렸다. 1948년 8월 15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자는 성근(成根), 별명은 권각(權恪)이다. 권득수(權得洙)[1873~1907]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8월 1일에는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권득수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일으켜 보고자 약관의 젊은 나이로 경기도 지평(砥平), 이천 등지에서 의병 60여 명을 규합...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권승묵(權承默)은 강기동(姜基東) 의병 부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경기 북부 지방에서 활약한 강기동 의병 부대는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경기도 양주·양평·포천·연천과 강원도 가평 등지의 산간 지대를 무대로 유격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권승묵은 1909년 12월 강기동 의병 부대에서 강원호(姜元鎬) 등과 같이 물미장[물미는 깃대나...
-
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호는 노은(蘆隱). 서도(瑞道)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김영선(金永先)이다. 김규식(金奎植)[1882~1931]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1907년 당시에는 경성부 동서 돈암현[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살았다. 대한제국 시위대부교(侍衛隊副校)·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의 조교로 있었다. 1907년 6월 김규식...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대현(金大鉉)[1872~?]은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같은 마을에 사는 안종태(安鍾台)·안종규(安鍾奎)·이사범(李士範)·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백석면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19...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정치인. 김덕열(金德烈)[1910~?]은 1910년 9월 2일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현 양주시 유양동]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학과와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청 관재처 감찰관과 양주군 주내면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국회 의원 선거에서 양주군 갑구에 출마하여 초대 제헌국회 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연성(金演性)이 아들이다. 김병기(金秉氣)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투쟁을 전개해 한말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고 애썼다. 1910년(순종 4)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투쟁을 멈추지 않고 1913년 9월 의병장 임병찬(林炳瓚)·이인순(李寅淳)·전용규(田瑢圭)...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양주별산대놀이 기예능 보유자. 일제 시대 이후 양주 지역에 전승되어 오던 양주별산대놀이가 6·25 전쟁 이후 잊혀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김성대(金成大)는 김성태(金星泰), 이장순 등과 함께 직접 양주별산대놀이에 사용되는 가면을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써서 공연을 하는 등 양주별산대놀이의 맥을 잇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국악예...
-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 김성수 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 김성수가 소장 자료는 총 9건의 낱장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문서의 크기를 살펴보면, 「토지 건물 소유권 보존 이부(二付) 증명 신청서」[1913년]는 가로 26.9㎝×세로 39㎝, 「매도 증서①」[1921년]은 가로 27.4㎝×세로 39.8㎝, 「매도 증서②」[1930년]는 가로 27.4㎝×세로 39.8㎝, 「매도 증서③」...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순갑(金順甲)[1885~?]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저녁 8시경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마을 주점 앞에서 이회명(李會明)의 주도로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야간 시위를 하였다. 3월 29일 이른 아침부터 다시 마을 사람들이 모이자, 김순갑은 이회명...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호는 박사. 호가 박사이므로 사람들로부터 김박사라고 불렸다. 김연성(金演性)[187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학문에 재능이 있어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하였다. 1907년 9월 의병을 일으켜 동년 12월까지 부하 30~40명을 이끌고 경기도 양주·적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가 결...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완순(金完順)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현 양주시 장흥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저녁 8시경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에 사는 이회명(李會明)의 주도로 울대리 마을 주점 앞에서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참여한 3·1 운동이 전개되자, 김완순도 독립 만세를 부르며 야간 시위를 하였다. 시위는 이튿날인 3월 29일에도 계속되었는데...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양주소놀이굿 기능 보유자. 양주소놀이굿은 탈을 쓴 소, 원마부, 곁마부가 한데 어울려 무당과 마부의 대화, 마부의 타령과 덕담, 마부와 소의 동작, 춤 등으로 이루어진 굿 형식의 놀이로, 양주의 무부(巫夫) 팽수천(彭壽天)[1901~1937]에 의해 양주 지역에 전승되어 왔다. 김인기(金仁起)는 팽수천-우용진(禹龍辰), 고관성(高寬成), 오복삼(吳福三)-조만봉(...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인범(金仁凡)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김인범은 김봉기(金奉基)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경기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에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였으며, 그해 8월 1일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
-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정치인. 김종규(金宗奎)[1904~?]는 1904년 10월 21일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함흥고등보통학교 부설 사범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를 중퇴하였다. 김종규는 일제 강점기 포천공립보통학교와 서울 효창공립보통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양주군수, 경기도 학무국 서무, 조사기획 과장과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 전무 이사와 한국인쇄주식회사 부사장 등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김진묵(金溱默)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김진묵은 일제가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고 이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자 결심...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성(金辰成)[1868~1919]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김진성은 백남식(白南式)·이용화(李龍和) 등과 함께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자 광적면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거사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면서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시위 계획을 알리기 위해 마을을 순방하였다. 그리고 일장기를...
-
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암각문(巖刻文). 넓은 바위 위에 ‘낙천정(樂天亭)’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선명하여 낙천정(樂天亭)이라는 정자가 있는 곳임을 알게 해 준다. 낙천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 양식을 갖추었다. 낙천정 명문(樂天亭名文)은 경기도 양주시 고암동 70-1번지 주원터마을이 있는 언덕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바위의 표면을 평평하게...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상갑(南相甲)[1924~미상]은 경기도 양주(楊洲)에서 태어났다. 남상갑은 1939년부터 이현상(李賢相)과 동지가 되어 조국 광복을 위하여 친일파 및 일본인 고관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1941년 이현상이 경복중학교 출신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 학생 결사 단체인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고 중앙중학교, 경성사범학교 학생 등을 대상으로...
-
6·25 전쟁 기간 중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빨치산 등에 의해 벌어진 양민 학살 사건. 1948년 남북한에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양측에 대한 우방국의 지원이 갈라지게 되자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게 되고, 결국 북한군이 남침함으로써 6·25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6·25 전쟁 기간 중 양주는 북한군 점령 하에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북한군은 양주 지구에서 반공 인사들을 잡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남일성(南一成)은 경기도 양주군 어등산면 사리[2003년 10월 19일 이전, 회천읍]에서 태어났다. 1908년 남일성은 정용대(鄭用大)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정용대는 스스로 창의좌군장(倡義左軍將)이라 칭하고, 경기도 적성·양주·풍덕·교하·통진 등지에서 수백여 명의 의병 부대를 통솔하여 일본군과 수차례에 걸쳐 전투를 이끌었던 의병장...
-
1949년 12월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결성된 대한청년단 산하 우익 청년 단체. 대한청년단은 1949년 12월 19일 이승만(李承晩)이 자신의 취약한 정치 기반과 반공 활동을 강화할 목적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던 청년 단체를 하나로 모아 결성한 단체이다. 이승만을 총재로 하여 장택상(張澤相)·지청천(池靑天)·유진산(柳珍山)·신성모(申性模) 등이 최고 위원으로 추대되었으며, 단원은 2...
-
6·25 전쟁 당시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우익 계열의 자경 단체. 1948년 남북한에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측 간에 정치적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어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 1953년 7월 23일 휴전 협정 조인에 이르기까지 3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이 기간 중 한국 사회 내에서는 치열한 이념 대립과 함께 빨치산 활동이 극...
-
1945년 10월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립된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의 양주 지회. 독립촉성중앙협의회는 1945년 10월 당시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李承晩)을 중심으로 조국의 자주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정당 통일 운동 차원에서 조직된 협의체였다. 좌익·우익 50여 정당과 200여 개에 이르는 사회단체 대표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승만이 총재로 추대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양주지회는 당...
-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경기도 양주 출신 인물들. 1910년 불법적 한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고, 1910년에서 1920년대에 걸쳐 점차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이 잇따르면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에도 국내 및 국외에서 직접...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아들은 목장균이다. 목장균은 2011년 현재 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연욱(睦然旭)[1916~1949]은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목연욱이 의병으로 활동한 곳은 광복군 제3지대로 알려져 있다.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1945년 9월 7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미군이 경기도 양주를 포함하여 남한을 통치한 시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항복하면서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이 분할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38도선 이남에 대해서는 태평양 미육군총사령부 총사령관 맥아더가 1945년 9월 7일 ‘조선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사령부 포...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금녀(朴金女)[1926~1992]는 독립운동가인 박철규의 외동딸로 의정부(議政府)[당시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박금녀는 부친이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일제의 술책으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이 벌인 유혈 사태]으로 일본군에 피살된 후에 광복군 제3지대 1구대 본부 구호대(救護隊)에 입대하였다. 박금녀는 광복군의 일원으로 독립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박내병(朴來秉)[?~1908]은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박내봉(朴來鳳)으로도 불렸다. 고향에서는 덕망 있는 유생이었으며, 의병장으로서 지도력이 뛰어나고 자상하여 부하들뿐만 아니라 다른 의병 부대에까지 신망이 높았다고 한다. 박내병은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강요된 을사늑약과 1907년 7월 정미7조약에 따른 군대 해산 등에 분노하여 고...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양주별산대놀이 예능 보유자. 박동환(朴東煥)[1888~1965]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며, 공부는 전혀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찍이 양주별산대놀이에 심취하여 석성묵(石性默)과 이윤서(李允西)로부터 산대춤을 배웠다. 그 당시 산대춤을 배운 동배로는 김성태(金星泰)와 박준섭(朴俊燮) 등이 있었다. 공연에서 박동환은 주로 노장과 취발이 역을 맡았다....
-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정치인. 박명근(朴命根)[1928~2004]은 1928년 9월 7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났다. 1949년 서울 중동고등학교,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여 육군 대위로 예편하였다. 1962년 경제기획원 예산국 과장, 1967년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1971년 7월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파주 선거구에 출...
-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양주별산대놀이 예능 보유자. 양주별산대놀이는 200여 년 전 양주 사람 이을축(李乙丑)이 서울 사직골 딱딱이패들에게서 산대놀이를 배워 양주에 정착시켰다. 주로 사월 초파일, 단오, 추석에 즐겼고, 기우제에서도 공연을 하여 차츰 양주별산대놀이로 자리를 잡았다. 박상환(朴湘桓)[1890~1971]은 고향인 양주에서 자연스럽게 양주별산대놀이를 접하였다. 1910년대...
-
경기도 양주시에 무덤이 있는 대중 가수. 본명은 배신웅(裵信雄), 호적상 이름은 배만금. 예명이 배호(裵湖)이다. 아버지는 광복군 출신의 배국민이고, 어머니는 김금순(金錦順)이다. 여동생은 배명신(裵明信)이다. 외가 쪽이 음악가 집안으로, 둘째 외삼촌 김광옥은 일본 무사시노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윤이상과 함께 음악 활동을 하였으며, 북경심포니교향악단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남식(白南式)[1866~1919]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백남식은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마을을 순방하며 시위 계획을 알리고 거사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는데, 이는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면서부터였다. 백남식은 김진성(金辰成)·이용화(李龍和) 등과 함께 광적면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으며...
-
1919년 3월 27일과 28일에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현 백석읍]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백석면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것은 구장인 안종규였다. 만세 운동이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구장[이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일제는 1914년 면제를 개편하면서 식민지행정 말단 기구로서 면제를 확립하였으나, 리 단위의 향촌 사회는 전통의 면리제의 질서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백영년(白永年)[1883~?]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율암리 사람으로 목수 일에 종사하였다[백영현(白永賢)이라고도 함.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에는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갈곡 출신 백영년(白永年)으로 되어 있음]. 1909년 당시 27세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백영년은 1883년생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영년은 지속적인 반일 의...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변성오(邊聖五)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대야비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제의 기록으로 살펴보면, 변성오는 1910년 당시 20세였으므로 1891년생으로 추정된다. 변성오는 1909년 7~8월에 의병장 전성서(全聖西)의 휘하로 들어가서 동료 20여 명과 함께 총기와 군도(軍刀)로 무장하고 의병 활동에 적극적으...
-
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양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지역민의 동조와 호응 속에서 무장 의병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고장이다. 특히 임진강과 한남정맥의 전략적 지세와 활발한 의병 활동으로 1907년 전국의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13도 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을 때 본부...
-
1970년대 경기도 양주를 포함한 전국에서 실시된 범국민적 지역 사회 개발 운동.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제창으로 행해진 지역 사회 개발 운동으로,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그 실천을 범국민적·범국가적으로 추진하여 총체적인 국가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양주 지역은 시범 실시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많은 예산이 투입...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이천. 호는 월파(月坡). 아버지는 서화일(徐和日)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서민호(徐珉濠)[1903~1974]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반도목탁지(半島木鐸誌) 사건으로 6개월간 투옥되었으며, 보성중학교 3학년 때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에서 1923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송창근(宋昌根)[1888~?]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서 태어났으며, 묵은면 삼패상리[현 동두천시]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송창근이 23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8년으로 추측된다. 송창근은 양주군 묵은면 내묵은리의 한승교에게서 군자금 20원을...
-
1963년부터 1980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수동면(水洞面)은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고 맑은 물이 굽이쳐 흘러 물골안이라고 하였으며, ‘수동’은 이 물골안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수동면은 1963년 1월 1일 양주군에 신설된 면으로, 가평군 외서면 입석리·외방리·내방리의 3개 리와 양주군 진접면의 수산리 및 양주군 화도면의 지둔리·운수리·송천리를 병...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빗접바위 뒷면에 새겨진 개항기의 금석문. 수원 백씨 각처 선농기(水原白氏各處先壟記)는 1870년(고종 7) 정당문학(政堂文學) 백천철(白天鐵) 이래 수원 백씨 주요 인물에 대한 사적과 선영(先塋)의 위치를 정리하기 위하여 바위에 새긴 금석문이다. 건립 연도만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 금석문을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경기도 양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신상학(愼相學)[1885~?]은 충청남도 면천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현내면 곡촌에 이주하여 살았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1년 당시 27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상학은 1910년 음력 2월 의병장 홍원유(洪元裕) 휘하에 들어가 총기로 무장하고 양주군·포천군·적성군 등지에서 활동...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석천(石泉). 일명 안관오(安冠五). 안중근(安重根)의 사촌 동생이다. 안경근(安敬根)[1896~1978]은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으로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박은식(朴殷植)·안정근(安定根)·신채호(申采浩)·이범윤(李範允) 등 애국지사들과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해삼위는...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안배언(安拜言)은 1907년 10월 25일부터 박내병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면서 박내병의 지휘 아래 대일 무력 항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경기도 양주와 가평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벌인 두 차례 교전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08년 11월 1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선고 받고 고초를 겪었...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들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자,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구장(區長)이었던 안종규(安鍾奎)는 양주군 백석면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안종규는 다수의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여 3월 27일 형인 안종태(安鍾泰)와 함께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종태(安鍾台)[1883~1920]는 서울 출신으로, 1919년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살면서 동생인 이장 안종규(安鍾奎)와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7일 밤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기 위해 연곡리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일제로부터 독립해야만 살 수 있다”고 연설하였다....
-
1898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 소재 총융청(摠戎廳) 소속 둔전의 도전(賭錢)을 파악해 정리한 책. 「양주 소재 총둔 도전 수봉책(楊州所在摠屯賭錢收捧冊)」은 1898년(고종 35) 11월 양주목에서 동목에 있는 총둔(摠屯), 즉 총융청 소유 둔전(屯田)에서 거두어들인 도전의 수입을 파악해 경리원(經理院)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도전이란 도지(賭地)라고도 하는데 남...
-
1898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동군(同郡)에 있는 충훈부(忠勳府) 소속 둔전의 추수 결과를 기록한 책. 「양주 소재 훈둔 추수책(楊州所在勳屯秋收冊)」은 1898년(고종 35) 11월 양주목에서 훈둔(勳屯), 즉 충훈부 소속 둔전(屯田)의 가을걷이 결과를 조사해 경리원(經理院)에 보고할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다. 경리원은 대한 제국 때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작성 책임자는 둔...
-
일제가 농촌진흥운동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한 농촌 관제 단체. 농촌진흥회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관료-유지 지배 체제의 형성과 함께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주요 기구 중 하나이다. 양주진흥회도 일본인과 조선인 대지주의 가혹한 수탈에 대항하는 기구로서가 아니라 단지 지주와 소작인 간의 상호 부조와 농민의 자력갱생 등을 요구하는 기구로서 만들어졌다. 일제는 강점과...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3·1 운동 이후 무력만으로는 한국을 지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일제는 그때까지의 무단 통치 방식을 변경하였다. 조선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른바 문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한편, 1920년대 초반 한국은 노동 운동, 농민 운동의 이념과 조직...
-
1898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동군 소재 초촌(草村)의 화전(火田)에서 거둔 조세를 기록한 책. 화전은 원래 세금을 면제받아야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매년 가을 경작 현황을 조사해 경작지에 한해 세금을 거두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화전이 세금 면제와 부역 회피의 대상으로 전락해 정부가 한 때 화전 경작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관청의 경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 유학한 학생들의 친목 단체. 양주학생친목회는 매년 하계 방학을 이용하여 양주군 각지를 순회하는 강연회 개최를 통해 지역 청년들을 계몽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1922년 경기도 양주군 출신으로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던 안학수와 최범주의 발기로 창립되었으며 회장으로 장연채(張然采)가 선출되었다. 당시 회원은 80여 명이었...
-
1895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능(陵)·원(園)·묘(墓)의 수리비 및 특별히 감면된 둔토(屯土)의 세금을 기록한 책. 「양주군 각 능원묘 수리비 급 특감미 대전 소수 실수 구별 성책(楊州郡各陵園墓修理費及特減米代錢所受實數區別成冊)」은 1895년(고종 32) 양주군에 있는 능·원·묘의 수리비 및 특별히 감면된 둔토의 세금을 정리해 정부의 재정 담당 부서인 탁지부(度支部)에 올린 책이...
-
1900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 현황과 도조의 납부·미납부 실태를 기록한 책. 「양주군 각 역 도조 실수 급 각 둔 기경 양년 조납 미납 구별 병시직 성책(楊州郡各驛賭租實數及各屯己庚兩年條納未納區別幷時直成冊)」은 1900년(고종 37) 12월 경기도에서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賭租)[고정된 소작료] 현황과 1899~1900년 그 실태를 조사해 기록한 책이다. 역(...
-
1899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궁내부 소유의 둔토 현황을 기록한 문서. 「양주군 궁내부 소관 각 둔토 사검안(楊州君宮內府所管各屯土査檢案)」은 1899년 10월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궁내부(宮內府) 소유의 둔토(屯土)를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이다. 궁내부 사검위원(査檢委員) 강봉헌(姜鳳憲)의 서명과 도장이 찍혀 있어, 궁내부에 보고되기 위해 작성된 문건임을 알 수...
-
1915년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의 추수 내역을 기록한 문서. 「양주군 백석면 추수기(楊州君白石面秋收記)」는 1915년 10월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의 추수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27670]. 두락(斗落)은 단순 토지 면적을, 결부(結負)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환산한 토지 면적을 의미한다. 필사본. 1책[7장]. 크기는 가로 21.9㎝, 세로...
-
1899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둔토(屯土)의 현황을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각 둔토 두락 급 결복 구별 성책(楊州君所在各屯土斗落及結卜區別成冊)」은 1899년(고종 36) 5월 양주군에 있는 둔토의 두락(斗落)과 결부(結負)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1899~1906년에 경기도와 인천부에 있는 역둔토(驛屯土)의 현황을 기록한 『경리원역둔토성책(經理院驛屯土成冊)』[필사본, 2...
-
1897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둔토(屯土)의 실태를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전 경리청 갑사 둔전답 두락 경수 결복 사검 성책(楊州君所在前經理廳甲士屯田沓斗落耕數結卜査檢成冊)」은 1897년(고종 34) 10월 경기도 양주군에서 전 경리청(經理廳)의 갑사(甲士)에게 제공되던 양주군 소재 둔전답(屯田畓)의 실태를 파악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경리청은 북한산성의 관리를 담당한 기관으로...
-
1896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충훈부(忠勳府) 소유의 둔토를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충훈부 둔토 성책(楊州君所在忠勳府屯土成冊)」은 1896년 한성부 사판위원(査辦委員)이 양주에 있는 충훈부 소유의 둔토(屯土)를 조사해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충훈부는 각종 공신(功臣)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양주군 소재 충훈부 둔토 성책」은 내수사(內需司)에서 만든 『각군역토성책(...
-
1895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근무하는 순검에게 지급된 노자를 기록한 책. 「양주군 유임 순검 반전 상하 성책(楊州君留任巡檢盤纏上下成冊)」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1895년 4월부터 윤5월까지 본군에 근무한 순검(巡檢)에게 지급한 노자(路資)를 조사, 정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순검은 개항기에 내부(內部) 경무청(警務廳)에 소속된 경리(警吏)로, 각 관아마다 30명을 두었다. 순포(巡捕...
-
해방 직후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립된 민간 자치 기구. 인민위원회는 해방 직후 설립된 건국준비위원회가 미군의 진주 직전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되자 1945년 11월까지 건국준비위원회 지방 조직들과 자생적 조직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인민위원회는 미군정의 통치 기구가 자리 잡을 때까지 민간 자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양주 지역에서는 양주군 인민위원회가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
1938년부터 1942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922년 10월 1일 양주군의 청사를 당시 주내면 유양리에서 시둔면 의정부리로 이전하면서 시둔면은 양주군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군청사가 위치한 시둔면을 양주면(楊州面)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삼한 시대 진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
-
1886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의 환곡 현황을 기록한 책. 「양주목 환곡 성책(楊州牧還穀成冊)」은 1886년(고종 23) 5월 양주목에서 창고에 있던 환곡(還穀)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환곡이란 정부와 지방 관청에서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걷이 뒤에 돌려받는 것을 말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奎16110]. 필사본 1책[2...
-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양주읍이란 명칭은 옛 양주의 읍치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주목의 중심지로서, 동헌·사직단·여단[돌림병 예방을 위해 나라에서 외로운 혼령을 제사지내주던 제단]·객사 등 주요 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어봉선(魚鳳善)[1891~?]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0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91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봉선은 1909년부터 의병장 윤인순(尹仁淳)·강기동(姜基東)·전성서(全聖西) 등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
개항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명은 왕영종(王榮鍾)이며, 경기도 연천 출신이다. 왕회종(王會鍾)은 1905년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며 1906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김진묵(金溱默)을 부장으로 5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적군과 유격전을 전개해 북으로 진격하여 혜산진(惠山鎭)까지 올라갔다. 1907년 정...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병창(禹炳昌)[1866~?]은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걸산리[현 동두천시 보산동]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 측 기록을 살펴보면 1911년 당시 46세로 기록되어 있어 1866년생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의병장 홍원유(洪元裕)의 휘하에서 활동한 우병창은 1911년 군자금 모집을 위해 양주군 현내면 선업리 및 이담면 연동리 등지에서...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유양리에 있었던 기독교 청년 신앙 운동 단체. 엡윗청년회(Epworth League)는 1889년 미국에서 창설된 감리교의 청년 단체이다. ‘엡윗’은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고향 이름에서 따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897년(고종 34) 5월 5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창립된 엡윗청년회[초대 회장 노병선]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유양엡윗청년회는 1922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유재만(柳在萬)[1882~1964]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김연성(金演性) 의병 부대에 들어가 총검으로 무장한 40여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양주·연천 등지에서 적에 대항하여 싸우던 중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2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 3년형을 선고 받고 유배 생활을 하였다. 1964년 2월 2...
-
경기도 양주시에 가묘와 송공비가 있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유종현(劉鍾鉉)[1897~1948]은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유종현은 1919년 3월 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편강렬(片康烈)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각 면의 동지들과 연락하여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고, 김각배(金珏培)·김경태(金景泰)·김영빈(金永彬)·김학원(金學源)·현건식(玄建植) 등과 함께 독립 만세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흥. 자는 덕용(德容), 호는 강재(剛齋)이다. 유해용(柳海容)[1884~1938]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유해용은 1906년 4월[윤달] 8일 최익현(崔益鉉)이 일제의 침략을 응징하기 위하여 각지에 격문을 보내고 궐기를 촉진하여 일으킨 의병 부대에 들어가서 활동하였다. 일본군이 아닌 대한제국의 군대와 싸울 수 없었던 최익현은 190...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 전쟁은 1948년 남북한에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양측에 대한 우방국의 지원이 갈라지게 되자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북한군의 남침으로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은 1953년 7월 23일 당시까지의 전선을 군사 분계선으로 정하고 포로 자유 송환을 골자로 하는 휴전 협정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병구(尹炳球)[1880~1949]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병구는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며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교포들 간의 친목 단결과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1903년 8월 예수교 감리교도인 홍승하·박윤섭(朴允燮)·문홍섭·임치성·임형주·김정극·안정수·이교담 등과 함께 하와이 호...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인 독립운동가. 윤원세(尹元世)[1890~1939]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양주군 자둔면 금오리[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에 거주하면서 천도교 양주교구장으로 이곳의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6년부터 천도교 의정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천도교당 내에 야학당을 설치하여 생도들에게 일본 배척 사상을 고취시켰고 농촌 청소년과 부녀자에게...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윤인순(尹仁淳)[1880~1909]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인순은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일제의 책동으로 군대 해산이 강행되자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일으켜 의병장으로서 양주 석치에서 적과 접전하였고, 그 후 파주·적성·포천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말 경기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점차 13도 연합 의병 부대로 확대되어 이인영(...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이자 애국지사. 본관은 파평. 호는 운정(雲庭). 아버지는 윤희섭(尹熙燮)이다. 윤응섭(尹應燮)에게 입양되었다. 개항기 종합 잡지인 『조양보(朝陽報)』의 편집 겸 발행인인 심의성(沈宜性)은 사촌누이의 아들이고, 딸 윤정원(尹貞媛)은 한국 최초의 유럽 여자 유학생이다. 윤효정(尹孝定)[1858~1939]은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현 양주시 은현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윤희섭(尹喜燮)[188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희섭은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어서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
-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이자 정치가. 이강국(李康國)[1906~1955]은 경기도 양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서울로 이주하였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충청남도 예산 등지의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보성중학교에 특대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당시 『동아일보』에 그의 사진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이긍래(李兢來)[1883~?]는 양주군 이담면 광암리에서 태어났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8세이었으므로 1883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긍래는 1908년 음력 10월부터 의병장 정용대(鄭用大)의 휘하에 들어가 양주군·포천군·적성군·영평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이긍래는 다른 의병들과 달리 포천군 서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낙주(李洛周)[1896~1923]는 경기도 양주군 남면 신산리[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서 태어나서 1919년 당시 연천군 미산면 석장리[현 백학면 석장리]에 살았다. 1919년 3월 21일 장날에 모인 군중과 함께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서 조우식(趙愚植)·정현수(鄭賢秀)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이낙주는 면사무...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여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한 이덕현(李德鉉)은 국권 회복 운동을 하고자 결심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사범(李士範)[?~1943]은 1919년 3월 27일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서 인근 주민 다수를 규합하여 김대현(金大鉉)·안종태(安鍾台)·안종규(安鍾奎)·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튿날인 3월 28일에도 안종규의 주도로 6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양주군 백석면 오산리 들판에 모여 백석면사무소까지 독립 만세를...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정치가·청년운동가·종교운동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호(季皜), 호는 월남(月南). 아버지는 이희택(李羲宅)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1864년(고종 1) 강릉 유씨(江陵劉氏)와 결혼하였다. 이상재(李商在)[1850~1927]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는 전통 교육을 받았다. 1881년(고종...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순승(李順承)[190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23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던 조용원(趙鏞元)과 결혼한 후 남편을 내조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인천(仁川)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0일간 구류되었다. 1940년 6월 17일 한국 여성에게 민족...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이순재(李淳載)[1894~1944]는 1919년 당시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던 봉선사(奉先寺)의 승려였다. 1919년 3월 29일 김석로(金錫魯)·김성암(金星岩)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조선독립단 임시 사무소 명의로 독립 시위에 대한 격문(檄文) 200여 매를 인쇄, 인근 주민들에게 배...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1년 11월 11일 워싱턴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한 태평양 회의가 개최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한국의 독립 문제와 한국 독립 결의안을 상정시키기 위해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하였다. 미국 대표단과 접촉하기 위해 서재필(徐載弼)과 이승만(李承晩)을 대표로 파견하여 우리의 요구를 설명하는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
경기도 양주 출신의 법조인. 본관은 전의. 아버지는 이상익이고 동생은 이웅섭이다. 아버지 이상익은 남면사무소에서 초대 남면장을 지냈다. 부인은 평택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권태옥(權泰玉)이며,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이영섭(李英燮)[1919~2000]은 1919년 11월 5일 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아버지 이상익이 광주법원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1...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규(李用奎)[1888~?]는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행동[석적면은 지금의 양주시 광적면]에서 태어났다. 후에 서울 동부 이현(梨峴)[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가 부근]으로 이주하였다. 일제의 기록에 따르면 1911년 당시 24세였으므로 1888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규는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는데, 주요 활동지는 양주군 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화(李龍和)[1867~1919]는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운경(雲京)이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광적면에서는 이용화가 만세 시위를 위해 백남식(白南式)·김진성(金辰成) 등과 함께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리고, 마을을 순방하며 시위 계획을 알리고 일장기를 변조해 태극기를 만들었다. 거사 당일인...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여(允汝), 호는 춘사(春史). 아버지는 이해석(李海錫)이고, 교육가이자 명신여학교 초대 교장인 이정숙(李貞淑)이 여동생이다. 이원상(李源商)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효계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한 이원상은 후에 양구군수·천안군수·안산군수·죽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원상은 1907년 의병을 일으킨 왕...
-
개항기 양주목사를 지낸 문신. 이유인(李裕寅)은 1889년(고종 26) 12월부터 1891년(고종 28) 11월까지 양주목사를 지냈다. 1890년(고종 27) 익종[순조의 아들]의 비였던 신정왕후(神貞王后)가 승하하여 수릉(綏陵)[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에 합장할 때 공사를 잘 마무리한 공으로 품계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올라갔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정치인. 부인 손영선과의 사이에 학교법인 호정학원 이사장인 이영준과 이은지·이성림·이지현 등 1남 3녀를 두었다. 이윤학(李允學)[1928~2007]은 1928년 4월 3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양주에서 보냈다.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생산성본부 훈련 부장을 거쳤고, 중소기업 실무자 국...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이은찬(李殷贊)·이언찬(李諺瓚)·이헌찬(李憲瓚)이라고도 한다.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하이고 동생은 이은호이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현 원주시 판부면]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공부하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경상북도 문경에서 의병...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전주. 자는 성집(聖執), 호는 미석(渼石). 고종의 종척(宗戚)이다. 이재윤(李載允)[1849~1911]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877년(고종 14)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우승지(右承旨)에 이르렀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매국 역적들을 참하자는 소...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혁(李載赫)은 경기도 양주[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밤 이달용이 주도한 양주군 화도면의 마석모루[磨石隅][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재혁은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마석모루에 있는 헌병 주재소 앞에서 같은 날 아침 체포된 이승보(李承輔)...
-
근대 경기도 양주 출신의 여성 교육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해석(李海石)이고, 오빠는 죽산군수를 역임한 이원상(李源商)이다. 이정숙(李貞淑)[1858~1935]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471번지[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16세 때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조카인 조영하(趙寧夏)와 혼인하였다....
-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정치인. 이진용(李珍鎔)[1920~1991]은 보성전문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민주공화당 중앙 상임 위원과 민주공화당 경기 제4지구당 위원장을 지냈으며, 대한빙상협회장, 제2경제위원 동남아시아 시찰 단장, KOC 상임 위원, 한일의원연맹 간사, 무소속 의원 원내 총무를 역임하였다.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
-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일제 식민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양주는 서울의 동북 방면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현재의 동두천시·남양주시·의정부시·포천시·구리시 등과 서울의 동북쪽이 모두 양주 지역에 해당되었다. 즉, 1912년 당시 양주 지역은 32면 343동리의 대규모 고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4년 면제 개편 때 양주는 16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천(豊川). 호는 추정(秋汀). 부인은 본관이 제안(濟安). 호는 추계(秋溪). 황석청(黃錫淸)의 딸로, 경성가정여숙(京城家庭女塾)[현 중앙여자중학교·중앙여자고등학교]을 설립한 황신덕(黃信德)[1898~1984]이다. 황신덕은 1962년 문화 훈장 대통령장을 수훈하였다. 자녀는 1남 1녀를 두었다. 임봉순(任鳳淳)[1...
-
경기도 양주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인. 본관은 풍천. 아버지는 임태순(任泰淳)이고 어머니는 윤순녀(尹順女)이다.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으로 임우빈, 임좌빈, 양주시장을 역임한 임충빈, 임운빈, 임능빈 등과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임희빈이 있다. 부인은 이종배이고 자녀로는 건축 공학 박사인 장남 임창일, 임창화, 미국에 체류 중인 임창범 등 3남이 있다. 임사빈(任...
-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경기도 양주 지역은 의병 운동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국권 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점차 격렬하게 확산되고 있던 서울의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1919년 3·1 운동 초기부터 만세 운동에 대한 사발통문이 나도는 등 독립 만세의 기운이 일...
-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관할 지역 일부가 경기도 양주 지역으로 편입된 행정 구역. 적성군 남면은 조선 시대에는 적성현에 속했는데, 지리적으로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 적성현의 남면(南面)이란 이름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처음 등장한다. 1895년 5월 적성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적성군 남면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연천군에 편입되어 연...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상주(尙州). 호는 우촌(牛村). 아버지는 전경준(錢京俊)이고, 어머니는 박성악(朴城岳)이다. 전진한(錢鎭漢)[1901~1972]은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915년 고향에서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월반하여 1917년 4학년 때 서울로 올라갔다. 하숙집 사환과 학교 급사 등의 일을 하고, 김성수(金性洙)와 송진우(宋鎭禹)...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범(重凡), 호는 의암(毅庵). 양촌공파(陽村公派) 21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의병 정인태(鄭寅泰)이며, 아버지는 정두환(鄭斗煥)이다. 어머니는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용대(鄭用大)[1882~1910]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정제환(鄭濟煥)[1878~1956]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일제의 침략이 더욱 심해지자 정제환은 연기우(延基羽) 의병 부대에 들어가 경기도 연천과 삭녕[현 경기도 연천군 북부 지역] 일대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삭녕군 서면에서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포목상으로부터 포목 수십 점을 확보하였으며,...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신(敬信),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성균관교관 정인식(鄭寅植)이다. 정충환(鄭忠煥)[1888~196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 활동 당시의 주소지는 서울 동부 연화방 39통 6호[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였다. 1907년(순종 1) 영춘[현 충청북도 단양]에서 의거를 일으켰으며, 1908년 음력 5월...
-
1945년 해방 직후 재결성된 조선공산당의 경기도 양주 지역 지구당. 조선공산당은 1925년 서울에서 결성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몇 차례 와해되는 등 굴곡을 겪었다. 그러다 국내 사회주의자들 중 경성콤그룹 세력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이 전개되어 1945년 9월 11일 다시 결성되었으며 여운형(呂運亨), 박헌영(朴憲永), 허헌(許憲), 김원봉(金元鳳) 등이 의장단에 포함되었다...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조용은(趙鏞殷), 자는 경중(敬仲), 호는 소앙(素昻), 별호는 아은(亞隱)·소해(嘯海)·한살임(韓薩任)·아나가위후인(阿那伽餧後人).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 남동...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순옥(趙順玉)[1923~1973]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광복군 총사령부가 창립되자 오광심(吳光心)·김정숙(金貞淑)·지복영(池復榮) 등과 함께 여군으로 입대하여, 1940년 10월부터 1942년 3월까지 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에서 복무하였다. 1942년 4월에는 광복군 제...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조용원(趙鏞元), 호는 호일(胡逸).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이고, 누나는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시원(趙時元)[190...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 할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 아버지는 조소앙(趙素昻)이다. 어머니는 오영선이다. 동생은 조인제(趙仁濟)이다. 조시제(趙時濟)[1913~1947]는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으...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일명 조경순(趙慶順).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오빠는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이고, 남동생은 조시원(趙時元)이다. 조용제(趙鏞濟)[1898~1948]는 경기도 양주...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1420~1489]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이고, 남동생은 조용한(趙鏞漢)·조용원(趙鏞元)이며,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주(趙鏞周)[1889~1937]는 경...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구심(求心).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남동생은 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조용원(趙鏞元)이고,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하(趙鏞夏)[1882~1937]는 경기도 양주군...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이고 남동생은 조용원(趙鏞元),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한(趙鏞漢)[1894~1935]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일명 반성호(潘成鎬)라고도 부른다.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 할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조소앙(趙素昻)이다. 어머니는 오영선이다. 형은 조시제(趙時濟)이다. 일찍이 아버지 조소앙을 따라 중국으로 간 조인제(趙仁濟)는 1932년 1월 중국 사천성 중경...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조인환(曺仁煥)은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 부대를 편성한 뒤 경기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는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연기우(延基羽) 등 많은 의병 부...
-
개항기 양주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양. 자는 작농(芍農), 호는 월파거사(月坡居士). 아버지는 참정대신에 증직된 조동석(趙東奭)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딸이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조정구(趙鼎九)[1862~1926]는 20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홍문관 부제학, 대사성, 이조 참의, 규장각 직제학, 예조 참...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조선인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개되었다. 3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도 안종규(安鍾奎)·안종태(安鍾台)·김대현(金大鉉)·이사범(李士範)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가 일어났는데, 당시 농사를 짓던 조필선(趙弼善)도 함께 참여하여...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한명(趙漢明)[1892~?]은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182번지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상해 임시 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인 허병률(許秉律), 박용선(朴容善) 및 조선식산은행 서기로 근무하는 이동찬(李東粲) 등과 상해 임시 정부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기로 하고, 권총과 탄환을 휴대하고 서울...
-
1914년부터 2000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주내(州內)’는 주(州)로 끝나는 행정 구역 단위의 중심을 뜻한다. 475년에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양주에 속하였고, 다시 1308년 한양부에 속하였다. 1394년 양주에 속하였다. 1895년 한양부 양주군에 속하였다...
-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주한 미군 장갑차에 의해 여중생 두 명이 압사당한 사건. 6·25 전쟁이 종료되고 남북한 간 휴전 협정이 체결되자 주한 미군은 1958년 2개 사단만 남기고 점차 철수를 시작하였다.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한·미 동맹이 강화되었고, 미군은 휴전 상태인 정전 체제를 관리하기 위해 한국에 계속...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종교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중(子中), 호는 월당(月塘). 아버지는 행연서도찰방(行延曙都察謗) 최영오(崔永五)이며, 친아버지는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 최영칠(崔永七)이다. 부인 김씨는 일찍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름을 ‘주신을 믿는다’는 의미의 김주신(金主信)으로 바꿨다고 한다. 슬하...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추삼만(秋三萬)[1880~1910]은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현 양주시 회암동] 출신으로, 이담면 하봉암리[현 동두천시 하봉암동]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추삼만은 같은 해 8월 황재호(黃在浩) 의병 부대에 들어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한국사 속에서 전개된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회 구조와 계층, 생산력 등을 바탕으로 시대 구분을 하며 그에 따라 고대나 중세, 근세, 근대, 현대 등의 구분을 하기 마련이다. 시대 구분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시대의 전환점, 즉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를 제시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에서 특히 남한 학...
-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에 있는 현충탑(顯忠塔). 현충탑은 6·25 전쟁 참전 등 조국 수호와 국토방위를 위해 공헌하거나 장렬히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주민들의 호국 보훈 정신 함양에 기여하며, 더불어 민(民)·관(官)·군(軍)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2001년 12월에 건립되었다. 현충탑은 양주시청 북쪽에 위치한 테니스장 옆에 자리하고 있다. 천지인(...
-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사회주의 운동가·정치가. 호는 한산(韓山)·일강(一剛)·일광(一光)·소앙(笑仰). 일명 유포심(劉怖深)·진덕삼(陳德三)·이극화(李克和)·김지강(金志綱)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생 홍순석이다. 홍남표(洪南杓)[1888~1950]는 경기도 양주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1907년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아버지 홍순석은 망국의 한을 품고 음독자살하면...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양송(楊松). 아버지는 홍재선(洪在宣)이다. 홍종헌(洪鍾憲)[1867~1919]은 천도교인으로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출신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05년 이후 동학에 들어가 양주 접주로 활동하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의병이 되어 항일 의병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낙향한 후에는 의병 지원 사업을 전개하여 화승총과 화약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애국지사. 1907년 당시 홍태순(洪太順)은 기독교를 전도하는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1907년 7월 20일 일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사실상 고종 황제를 강제 폐위시키자, 이에 분함을 금치 못한 홍태순은 7월 22일 오후 4시 서울 덕수궁의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로 국민들의 여론이 분분하고...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순일(黃順一)[1865~?]은 포군 부장(砲軍部長)을 지냈다. 1904~1905년경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로 이사하였으며, 1907년 9월 황재호(黃在浩)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를 비롯하여 적성, 포천, 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양주 출신의 의병 홍희영(洪喜永)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의병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재호(黃在浩)[1872~?]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적성군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권득수(權得洙)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얼마 후 권득수 부대를 흡수 통합하여 양주·파주·가평·영평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전순만(全順萬)·...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회천청년수양회는 지역 청년들의 지식 계발과 도덕 함양은 물론 지역 사회사업 및 발전 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회천청년수양회는 3·1 운동의 결과 일제가 문화 정치를 표방함에 따라 각종 문화 단체의 활동이 활성화되는 시기에 설립되었다. 1924년 10월 19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덕천강습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설립 취...
-
1914년부터 198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岩面)의 ‘회’자와 천천면(泉川面)의 ‘천’자를 따서 회천면(檜泉面)이라고 불렀다.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양주에 속하였고 다시 1308년 한양부에 속하였다. 1394년 양주에 속하였으며, 1895년 한...
-
1985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천읍(檜泉邑)은 회천면에서 왔으며, 회천면은 천천면·어등산면·회암면 등이 합쳐질 때 회암면의 ‘회(檜)’자와 천천면의 ‘천(泉)’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