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A0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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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재해 |
하회의 선유줄불놀이는 집성반촌의 선비문화와 마을을 끼고 도는 화천, 부용대의 절벽이 어우러진 하회마을만의 독창적인 놀이이다. 상민들이 무교적 전통에 따라 하는 별신굿 탈놀이와 달리, 양반들이 유교적 전통에 따라 시를 짓고 음주를 즐기는 선상시회(船上詩會)의 풍류였던 셈이다.
선유줄불놀이는 음력 7월 보름 밝은 달밤 부용대와 화천, 백사장, 만송정숲 등에서 열렸다.
선비들과 기녀들이 주안상을 갖춘 나룻배를 타고 절벽 밑의 경관 좋은 곳을 오르내리며 시흥(詩興)을 돋우는데. 선유(船遊)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기녀들이 술시중을 들고 가무로 흥을 돋우면 선비들은 글제에 따라 시를 다투어 짓는다. 그리고 시가 완성되면 차례로 기녀에게 시를 읊조리게 하며, 제때에 시를 짓지 못하는 선비는 벌주를 마셔야 한다. 그러므로 선유가 끝나면 어느 선비가 가장 먼저 시를 지었고, 어느 어른이 벌주를 많이 마셨다는 소문이 한동안 마을의 이야깃거리로 등장한다.
선비들이 선상시회의 풍류를 즐기도록 하기 위해 주민들은 화천을 다양한 불빛으로 꾸며서 화려하고 역동적인 야경의 장관을 펼쳤다. 이때 야경을 꾸미는 불꽃놀이는 ‘줄불’과 ‘낙화’, ‘달걀불’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줄불로, 만송정숲과 부용대 정상을 새끼줄로 이어서 강물 위에 드리워지도록 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숯가루 봉지를 늘어뜨려 불을 붙이면 빨갛게 불꽃을 날리며 타들어간다. 이때 새끼줄이 강물을 가로지르며 부용대 쪽으로 이동하도록 잡아당기면 마치 여러 개의 폭죽이 부용대로 올라가며 터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줄불은 옥연정사에서 겸암정사까지 부용대 중턱의 층길을 따라 설치하여 마치 부용대가 허리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줄불로 매다는 숯가루 봉지는 용의주도하게 만들어야 한꺼번에 타지 않고 오랫동안 불꽃을 날리며 서서히 타들어간다. 이 때문에 한지로 길게 만든 원통형 봉지에다 숯가루와 소금을 섞어 차곡차곡 채운 다음 실로 대여섯 마디로 매듭을 지운다. 숯가루 봉지를 줄에다 매단 뒤에 마른 쑥에다 불을 붙여 숯봉지 아래를 타들어가게 하면, 숯가루가 서서히 타다가 소금이 튀면서 그때마다 불꽃이 휘날린다. 매듭이 타서 큰 불꽃이 일시에 흩어지면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강물과 부용대를 가로지르는 두 갈래의 줄불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부용대 정상에서 솟갑단에 불을 붙여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낙화놀이이다. 선상에서 시를 지어 완성하면 선비가 부용대를 향해 “낙화야!”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부용대 정상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마른 솟갑단에 불을 붙여서 절벽 아래로 던지는데, 이것이 큰 불기둥을 이루면서 아래로 떨어지다가 바위에 부딪혀서 불꽃을 휘날린다. 줄불이 가로선의 완만하고 정적인 불꽃놀이라면, 낙화는 절벽에서 강물 아래로 떨어지며 세로선을 이루는 급격하고 역동적인 불꽃놀이인 셈이다.
줄불과 낙화에 견줄 만한 달걀불은 강물의 흐름과 반사를 이용한 곡선적인 불꽃놀이이다. 달걀껍데기에 피마자기름(혹은 들기름이나 상어기름 등)을 담고 솜 심지를 박아서 불을 붙인 다음 짚으로 만든 따뱅이 위에 안전하게 올려서 강물에 띄워 보낸다. 달걀 대신 헌 바가지 조각을 이용하기도 한다.
겸암정사 위쪽에서 띄워 보낸 달걀불은 유유히 흘러서 부용대 앞의 화천 바닥을 흔들리는 불꽃으로 장식하게 된다. 바람에 따라 불꽃이 살랑거리면서 물결의 소용돌이에 따라 맴돌다가 강의 구비에 따라 꼬리를 감추며 멀리 사라지는데, 불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대칭을 이루며 흐르므로 더욱 아름답다. 달걀불은 마치 물에 뜬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화(蓮花)불이라고도 한다.
전통시대 이 세 가지 유형의 불꽃 야경을 즐기며 선유를 하는 것은 양반들이지만, 아름다운 야경을 조성하는 것은 상민의 몫이었다. 줄불을 위해 튼튼한 동아줄을 600m 이상 길게 꼬고, 수백 개의 숯가루 봉지를 만드는 일은 상민들이 오랫동안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달걀불을 준비하여 물 위에 띄우는 일이나, 부용대 위에 올라가 낙화불을 던지는 일도 모두 상민들의 노력 봉사로 이루어졌다. 상민들이 별신굿을 할 때 양반들이 경제적으로 후원을 하듯, 양반들이 선유를 할 때는 상민들이 노력봉사를 했던 것이다.
선유줄불놀이는 한국 유일의 양반놀이이자 마을공동체 놀이였다. 양반들의 풍류와 선비들의 시흥이 천혜의 자연경관과 다양한 불꽃을 이용한 지혜와 어우러져서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고 여가를 즐기는 놀이를 넘어서, 즉흥적인 문예창작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했던 셈이다. 선유는 4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하회마을만의 놀이로서, 조선 후기에 중단되었다가 일제강점기와 미군정하, 1968년, 1975년 등 부정기적으로 재현되었으며, 1997년부터 매해 가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행사의 하나로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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