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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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保寧遊擊將軍淸德碑 |
이칭/별칭 | 보령 유격장군 계공 청덕비,보령 소성리 유격장군계금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822[소성리 661-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상육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61년 - 안대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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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98년 - 계금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598년 4월 - 보령유격장군청덕비 건립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04년 - 안대진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9월 20일 - 보령유격장군청덕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59호 지정 |
현 소재지 | 보령유격장군청덕비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822[소성리 661-12] |
성격 | 공덕비|청덕비 |
관련 인물 | 계금|안대진 |
재질 | 대리석[비신]|화강암[비좌]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04㎝[비신 높이]|48㎝[비신 너비]|14.3㎝[비신 두께] |
소유자 | 보령시 |
관리자 | 보령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성에 있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유격장군인 계금을 위해 설치한 공덕비.
[개설]
보령유격장군청덕비(保寧遊擊將軍淸德碑)는 1598년 조선 시대 충청수영성 내에 설치된 비이다. 정유재란 때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 일대로 들어온 중국 명나라 장수 계금(季金)의 덕행을 기려 세운 청덕비(淸德碑)이다.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에서는 옛 장수들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은데, 유격장군(遊擊將軍) 계금도 보령시 오천 일대에서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59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명나라 수군 3,000여 명이 정유재란 때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오천을 통해 들어왔다는 사실과 장수인 유격장군 계금을 숭배하여 바다에서의 안녕과 집안의 복을 기원하고자 안대진(安大進)[1561~1604]이 비문을 작성하였다.
[위치]
보령유격장군청덕비는 당시 충청수영성 내부에 건립되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882[소성리 661-12]로, 오천초등학교의 건물 뒤편 경사진 곳에 있다.
[형태]
보령유격장군청덕비의 재질은 대리석이며, 비신(碑身)과 이수(螭首)가 하나로 만들어진 형태로 비좌(碑座) 위에 놓여 있다. 이수는 반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제액(題額)[비신(碑身)의 상단부나 이수에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은 반원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글씨는 없다. 비좌의 일부가 땅에 묻혀 있는데 직사각형이다. 비문은 전면과 후면에 쓰여 있다. 전면에는 비명(碑名)과 함께 주요 참모들의 성명이 기록되어 있고, 후면에는 정유재란 때 중국 명(明)나라 수군 3,000여 명이 오천을 통해 들어온 사실과 유격장군을 통해 바다에서의 안녕과 집안의 복을 빌자는 내용이 쓰여 있고, 끝에 지은이의 성명이 적혀 있다.
[현황]
보령유격장군청덕비는 오천초등학교의 건물 뒤편 경사면에 비각 없이 노출되어 있다. 1960년대 말까지 비각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고, 비의 서쪽에 건물의 기둥으로 사용된 듯한 돌기둥이 2개가 서 있다. 또한, 옥개석 1개가 바닥에 놓여 있다.
[의의와 평가]
보령유격장군청덕비는 조선 시대 정유재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 유격장군 계금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비이다. 이 비를 통해 정유재란 당시 충청수영성 일대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