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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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蕃 |
이칭/별칭 | 형백(馨佰),성암(省菴),사정(思亭),구옹(龜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508년 - 이지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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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75년 - 이지번 사망 |
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북도 단양군 구담 |
묘소|단소 | 이지번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한산 |
대표 관직 | 청풍군수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이지번(李之蕃)[1508~1575]은 한산 이씨로 보령에서 후학을 양성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형이며, 영의정에 오른 이산해(李山海)[1539~1609]가 아들이다.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佰), 호는 성암(省菴)·사정(思亭)·구옹(龜翁)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1477~1507]이고, 동생은 『토정비결(土亭秘訣)』을 지은 이지함(李之菡)[1517~1578]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이다.
[활동 사항]
이지번의 아버지 이치는 고려 말부터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한 광산 김씨 김맹권(金孟權)[?~?]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후 이치의 자손들이 보령에 기반을 마련하여 거주하였고, 이치 이후에 보령의 대표적인 세거 성씨로 성장하였다.
이지번의 형제들이 모두 학문에 뛰어났는데, 이지번은 특히 천문지리에 정통하였다. 인종(仁宗)[재위: 1544~1545] 때 문음(門蔭)[고려·조선 시대에, 공신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일]으로 추천되어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이 되었으나 당시 윤원형(尹元衡)[1503~1565]이 국권을 잡아 횡포를 부리자 벼슬을 버리고 단양의 구담(龜潭)에 집을 짓고 세월을 보냈다. 항상 푸른 소[靑牛]를 타고 강가를 오르내리고 또 칡넝쿨로 큰 줄[索]을 만들어 구담의 양쪽 벽에 붙들어매고 날아가는 학의 형상을 만들어 매달아 타고 내왕하니 사람들이 신선이라 불렀다. 선조 즉위 후에 청풍군수를 지냈다.
[묘소]
이지번의 묘는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고만의 이지함 선생 묘역 안에 있다. 이지번의 묫자리는 어머니가 사망하자 동생 이지함이 명당을 찾아 전국을 헤맨 끝에 결국 고향에 가장 좋은 자리가 있음을 알고, 아버지의 묘를 이장해 마련한 곳이다. 묘역에는 부모의 묘역을 중심으로 이지번 삼형제의 묘와 그들의 자식들의 묘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