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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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市場 |
영어공식명칭 | Market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
[조선 시대 부여의 시장]
조선 시대 상인 혹은 보부상들이 모여서 교역을 하고 물러가는 것을 장(場)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장을 보통 장시 혹은 시장이라고 부른다. 장시는 15세기 말 전라도 지역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 후기가 되면 전국적으로 형성된다. 장시는 일반적으로 5일 간격으로 열렸다. 각 장시 간의 거리는 30~40리[11.7~15㎞]였는데, 장시를 주 무대로 물품을 거래하던 보부상의 하루 이동 거리와 비슷하다. 장시에서는 인근 백성들이 생활필수품을 교역하거나 보부상이 타 지역에서 들여온 물품을 공급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작성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전국의 장시는 1,064개였으며, 19세기 전반에 작성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따르면 전국의 장시는 1,052개였다고 한다.
부여군 지역의 사례만 보면 부여현에는 읍내장과 은산장, 임천군에는 읍내장, 남당장, 입포장, 홍산현에는 읍내장, 마정장, 노은치장, 율치장, 신기장, 석성현에는 읍내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부여군 지역은 18세기 후반 기록에는 많은 수의 장시가 개설되었으나 19세기에 이르면 많은 수가 폐지되었다. 임천군에서는 남당장, 홍산현에서는 마정장, 노은치장, 율치장이 더 이상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근현대 부여의 시장]
1960년대까지도 일정한 점포의 가게보다는 보부상과 인근 주민들이 생산한 물품을 직접 가지고 나와 형성된 시장이 발달하여 상업의 중심을 이루었다. 1940년대까지 부여군의 시장을 보면 부여읍 관북리에 읍내장, 저석리에 왕진장, 은산면 은산리에 은산장, 홍산면 남촌리에 홍산장, 임천면 군사리에 임천장, 양화면 입포리에 입포장이 개설되어 5일마다 장이 섰으며, 부여군 경제 중심지로서 물품 매매를 위한 교역의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거래되는 물품은 미곡을 위주로 잡곡, 농우, 면포, 마포와 저포, 과실류, 생선류, 소금 등이었다. 1950년대를 전후하여 각 면 단위로 시장이 개설되었다. 1940년대 운영된 시장 이외에 외산, 내산, 구룡, 옥산, 충화, 장암, 세도, 석성, 초촌과 같은 면에서도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가 되면서 부여의 상설 시장이 들어서고 각 면 단위로 상가가 설립되면서 정기 시장은 기능을 점차 상실하였다. 1973년에 이르면 내산면 외 6개 면 단위 시장이 폐장하고 1980년대가 되면 9개의 시장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여 상설 시장 외에는 모두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2020년 현재 부여의 전통 시장은 모두 6곳으로, 부여읍에 3곳, 은산면에 1곳, 외산면에 1곳, 홍산면에 1곳이 남아 있다. 부여읍은 236개 점포, 은산면은 20개 점포, 외산면은 39개 점포, 홍산면은 134개 점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