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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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金寺里聖堂 |
영어공식명칭 | Buyeo Geumsari Cathedral |
이칭/별칭 | 소양이 본당,금사리 본당,성프란치스코하비에르 성당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성충로1342번길 21[금사리 33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태 |
설립 시기/일시 | 1901년 4월 27일 - 부여금사리성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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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6년 4월 - 부여금사리성당 구성당 완공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6년 - 부여금사리성당 서천 본당과 장항 본당 분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5년 - 부여금사리성당 규암 본당 분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0년 - 부여금사리성당 홍산 본당 분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4년 - 부여금사리성당 대천 본당과 청양 본당 분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8년 9월 12일 - 부여금사리성당 성당 신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7월 25일 - 부여금사리성당 충청남도 기념물 제143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금사리성당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최초 설립지 | 금사리 본당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성충로1342번길 21[금사리 334] |
현 소재지 | 금사리성당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성충로1342번길 21[금사리 334] |
성격 | 천주교 성당 |
설립자 | 공베르(J..Gombert) 신부 |
전화 | 041-832-5355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개설]
부여금사리성당(扶餘金寺里聖堂)은 충청도에서는 합덕과 공세리, 공주 본당에 이어 네 번째로 설립된 천주교 본당이다. 1901년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에 의하여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초대 주임 신부로는 쥴리앙 공베르 신부가 시무하였다. 부여를 비롯하여 지금의 청양, 보령, 서천 등 이른바 ‘하부 내포[아래 내포]’ 지역을 아우르는 신앙 공동체의 거점이 되었다. 소양이 본당, 금사리 본당, 성프란치스코하비에르 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설립 목적]
한국의 천주교회는 1886년 한불조약으로 사실상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천주교 박해기에 은밀한 신앙 활동 중에도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던 부여와 하부 내포 지역은 1897년에 이르러 새로 설립된 공주 본당에 속하였으나, 산지가 많고 26개나 되는 공소가 널리 분포하여 있어서 사제의 사목적(司牧的) 배려를 얻기가 어려웠다.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공주 파스키에 신부의 본당 분리 제안과, 사제를 파견하고 본당으로 승격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쇠양이[소양이] 공소 신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1901년 4월 27일 공베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는 한편, 금사리 본당을 신설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부여금사리성당을 충청도 서남부 지역에 대한 포교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변천]
1901년 4월 소양리[금사리]에 부임한 공베르 신부는 1901년 5월 성당 건축을 시작하였다. 1906년 4월에 완성된 성당은 현장에서 직접 구워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지은 고전적 양식을 띤 단순한 형태의 근대적 성당이었다. 성당에 이어 사제관과 사랑채를 짓고, 1913년 9월 2일 뮈텔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본당 설립 초기인 1902년에는 17개 공소에 882명의 신자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1923년에는 1,644명으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1936년에 서천과 장항이 새 본당으로 분리되고,1955년과 1960년에 각각 규암 본당과 홍산 본당이 그리고 1964년 대천 본당과 청양 본당이 분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68년 새 성당을 건축할 당시 신자 수가 1,473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지역 인구의 도시 이주로 인하여 신자 수가 점차 감소하는 한편 공소를 운영하는 공동체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60년대부터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장려한 천주교회의 분위기에 힘입어 부여금사리성당은 1979년 신용협동조합을 설립을 적극 후원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율암리 산94번지 일대 약 6만㎡에 밤 묘목을 심어 밤 농장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2000년에는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금사리 본당 백년사』를 편찬하였다.
[현황]
설립된 지 120년이 넘은 부여금사리성당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내산면, 외산면을 관할한다. 사제는 1명이다. 농촌 지역의 현실을 반영하듯 2개의 공소가 소속되어 있고 신자 수는 2020년 기준 493명이다.
시골의 작은 본당이 되었지만 깊고 오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옛 성당이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전국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와 신앙 선조들의 자취를 되새기곤 한다. 부여금사리성당은 1996년 11월 3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여금사리성당은 부여 지역 최초의 본당이자 충청남도 서남부, 즉 ‘하부 내포’ 지역 천주교 포교 활동의 거점으로 오늘날 하부 내포 지역 모든 성당의 모본당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박해기로부터 순교의 전통을 이어와 1950년 6·25 전쟁 중에는 몰리마르 신부가 피납되어 피살되기도 하였다.
한편 구성당의 건축미에 더하여진 부여 지역 최초의 성당 건축물이라는 역사적 의미 덕분에 부여금사리성당은 현대인들에게 예술적·문화적·영성적 가치를 제공하는 상징적인 현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