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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011
한자 卓淳國
영어음역 Taksunguk
영어의미역 Taksunguk Small Count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남재우

[정의]

삼국시대 창원 지역에 있던 가야의 소국.

[개설]

탁순국(卓淳國)은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후기 가야 13국 중의 한 나라였다. 창원시의 옛 지명은 굴자군(屈自郡), 또는 구사군(仇史郡)이었으며, 구사모라[(久斯牟羅] 또는 기질기리[己叱己利]라고도 하였다. 창원시 도계동, 반계동, 동읍 다호리 등에서 해당 시기의 유적들이 조사되었다. 멸망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540년대로 추정된다.

[위치비정]

종전까지 탁순국의 위치에 대하여 대구광역시, 함안군 칠원면, 의령군 의령읍 등으로 비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서기』에 전하는 기사들로 볼 때 탁순국이 바다와 가까운 지역이므로 창원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탁순국은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정치 집단이었다. 366년 『일본서기』 신공 섭정 46년조에 의하면, 백제는 창원의 탁순국을 매개로 해서 왜국과 통교하기를 원했다.

또한, 탁순국말금한기는 왜로 통하는 길을 묻는 백제 사신에게 자문해 주고 왜국 사신에게 백제 사신의 말을 전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탁순국 사람 과고를 보내 왜국 사신의 시종을 백제로 인도해 주기도 했다. 탁순국은 왜국 사신 일행이 귀국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탁순국을 지금의 창원 지역으로 본다면 마산만은 왜·백제와의 중요한 교통로였을 가능성이 높다.

남아 있는 유적의 모습에서도 창원 지역에 탁순국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관련 유적으로는 창원시 가음정동, 반계동, 도계동, 봉곡동, 봉림동, 불모산동, 서상동의 고분군과 창원시 토월동 진례산성(進禮山城), 동읍 무성성지(武城城址), 북면 화천리 성지(花川里城址) 등이 있다.

[활동]

탁순국은 교역을 통하여 성장한 나라로서, 이는 신라에 의해 멸망되는 6세기 전반까지 계속되었다. 백제가 섬진강 하류인 하동까지 진출하고, 신라가 김해 지역 등의 가야 남부 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탁순국은 인근 가야의 여러 나라들과 백제·신라와의 관계 속에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탁순국은 가라국(고령의 대가야)이 신라와 맺었던 결혼동맹을 파기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신라가 김해 지역으로 진출하면 탁순국의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에 탁순국은 신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안라국[현 경상남도 함안]과 결탁하였다. 안라국은 백제가 하동 지역으로 진출함으로써 백제의 가야 지역 진출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왜를 참여시켜 국제회의인 고당회의를 개최하였으며, 여기에 탁순국도 동조하였다. 하지만 신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고당회의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탁순국주(卓淳國主)는 왜에 구원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왜는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이에 신라는 가야 지역으로 계속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멸망]

탁순국이 멸망한 시기는 532년에서 541년 사이이다. 『일본서기』에 541년까지 탁순국이 나타나고,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 경로로 볼 때 김해 지역 다음으로 창원 지역이었고, 김해가 신라에 멸망하는 것이 532년이기 때문이다. 멸망 이유는 “위, 아래가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어서, 그 왕이 스스로 신라에 항복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보아 내부 세력의 분열로 신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신라에 자진 투항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탁순국주가 신라에 자진 투항함으로써 탁순국도 자진 투항한 김해 지역처럼 다른 지역에 비해 우월한 대우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는 탁순국을 복속시켜 굴자군(屈自郡)으로 삼았으며, 757년(경덕왕 16) 의안군(義安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영현(領縣)은 칠제현(漆隄縣)[현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합포현(合浦縣)[현 경상남도 마산시], 웅신현(熊神縣)[현 경상남도 진해시]의 세 곳이다. 이는 멸망 시기 탁순국의 영역 범위가 매우 넓었음을 보여준다. 혹은 탁순국이 신라에 자진 투항하였으므로 신라가 군현을 편제할 때, 탁순국 당시보다 넓은 영역을 신라로부터 배정받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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