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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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靑年聯盟 |
영어의미역 | Changwon Youth Un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연합체.
[개설]
창원청년연맹에는 창원청년단(김한용·이주만), 남면청년회(안준), 소계 청년회, 진해청년회 등이 참가하였다. 진해청년회는 일찍이 남면청년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안준(安浚)과 교분이 있던 주병화(朱炳和)를 매개로 창원청년연맹에 쉽게 참가할 수 있었다.
[변천]
1925년 4월 4일(음력)에 창원 지역의 각 청년단체 간부 간담회를 열어 임시 의장 이주만(李周萬)의 사회로 창원청년연맹을 조직하고 중앙집행부를 두어 집행위원 10인과 상무위원 5인을 선거하였다. 집행위원 10인은 조성복(趙性馥), 주병화, 김종건(金鍾健), 이주만, 안준, 주영현(朱寧現), 김한용(金漢龍), 김종□(金鍾□), 김말선(金末善), 황신성(黃信性)이었으며, 상무위원 5인은 총무부 안준, 재무부 주병화, 문예부 이주만, 사교부 김종건, 조사부 김한용 등이었다.
1925년 11월에는 창원 지역의 창원청년연맹을 비롯하여 진해청년회와 진영청년회, 에스청년회, 창원청년단 등의 다섯 단체 간부가 회합하여 경상남도 청년연맹 발기 준비회를 개최하였다. 특히 경상남도 청년연맹 결성을 둘러싸고 사회운동의 양대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던 화요파와 서울파 등이 격렬하게 대립할 때 서울파 중심의 경상남도 청년연맹 결성에 창원청년연맹 소속 단체였던 창원청년단, 진해청년회, 남면청년회 등이 주요한 활동을 하였다. 1928년 2월에는 창원청년연맹을 해산하였으며, 동시에 창원 청년 동맹을 결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창원청년연맹은 경남청년연맹을 결성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