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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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耶時代-鎭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남재우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의 가야 시기 역사와 문화.
[개설]
가야 시대는 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6세기 중반까지이다. 전기 가야는 삼한에 속하는 변한 시기이며, 후기 가야는 4세기 이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이다. 진해 지역에는 가야에 속하는 포상팔국 중의 한 나라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추정되고 있지만, 그 국명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가야의 정치 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즉 전기 가야에 해당하는 변한 시기 진해 지역에는 웅천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 집단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존재하고 있으며, 후기 가야 시기에도 웅천 지역 뿐만 아니라 석동~자은동 일대까지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진해의 가야 유적]
가야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석동 고분군, 자은동 조개더미, 서중동 고분군, 수도 조개더미, 마천 고분군, 마천 조개더미, 웅천 고분군, 웅천 조개더미, 두동 고분군, 용원 유적 등이 있다. 웅천·석동·서중동 고분군은 수혈식 돌덧널무덤과 횡구·횡혈식의 돌방무덤으로 5세기 이후의 가야 시대 고분군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용원 유적은 가야 전 시기에 걸쳐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원형, 타원형, 방형 등으로 다양하다. 고분은 1~3세기와 4세기 대에 해당하는 널무덤과 덧널무덤이 존재하며, 5세기 이후에는 웅천 고분군, 석동 고분군, 서중동 고분군에서 확인되는 수혈식 돌덧널무덤과 횡구·횡혈식 돌방무덤이 확인되고 있다.
석동·자은동 유적군은 가야 시대 진해 중심권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석동, 자은동 경계부를 따라 서쪽은 고분군이, 동쪽은 4개소의 조개더미가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나머지의 낮은 대지에는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유적에서는 5세기 이후에 집중적으로 축조되는 수장층의 고총 고분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4개소에 형성된 조개더미가 대규모이므로 가야 유적인 창원시 가음정동 유적과 비교하여 진해 지역 가야사의 실체를 밝혀줄 수 있는 중심 유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웅천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인 자마산 일대 유적군은 다른 진해 지역의 유적과는 달리 웅천, 웅동, 남해안을 포함한 사방으로의 조망권이 탁월한 해발 200~240m 정도의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 능선 사면에 걸쳐 취락, 고분군, 조개더미, 산성이 입지한 유적이다. 고분군 3개소에는 4세기~6세기대로 추정되는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이 분포하고 있으며, 정상부와 사면에는 조개더미, 산성, 취락이 넓게 형성되어 있어 진해 웅천 지역의 가야 시대 문화를 밝혀줄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