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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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匡師法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서첩(書帖).
[개설]
『이광사법첩』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 縣立 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 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이광사법첩』도 그 중 1종이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0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이광사법첩』의 크기는 31㎝×21㎝이다.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다양한 서체의 글씨들을 임모(臨模)하여 싣고 있으나, 필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모두 26쪽의 분량이며,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이광사법첩』에는 이름에 걸맞게 이광사의 필치(筆致)를 따른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 다양한 서체가 실려 있고, 글자의 크기 역시 다양하다. ‘법첩(法帖)’이란 ‘습자(習字)의 본보기나 감상용으로 쓰기 위해 선인(先人)의 글씨를 그대로 베낀 책’이란 뜻이므로, 이 서첩은 누군가가 이광사의 글씨를 감상하고 배우기 위해 이광사의 서체를 임사(臨寫)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서첩에서는 이광사의 낙관(落款)이나 서명(書名) 등을 찾을 수 없다. 책의 맨 마지막에는 이 책을 만들고 소장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쓴 “원교 선생의 진짜 글씨는 우리나라 고금의 제일이다[圓嶠先生眞書我東之古今第一]”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서화가이다. 글씨에서는 옥동(玉洞) 이서(李敍)[1662~1723]와 백하(白下) 윤순(尹淳)[1680~1741]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의 서체인 원교체(圓喬體)를 완성하여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그의 서체를 ‘동국진체(東國眞體)’라도 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圓嶠) 또는 수북(壽北)이다. 정제두(鄭齊斗)로부터 양명학을 배웠으며, 영조의 등극과 함께 소론이 실각하면서 관직에 나가지 못하였다. 1755년(영조 31)에는 소론 일파의 역모 사건에 연좌되어 진도로 귀양 가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평생 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야인으로 생활하면서 작품 활동에 치중하였는데,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원교서결(圓嶠書訣)』을 비롯하여 『원교집선(圓嶠集選)』 등의 저서와 작품들을 남겼다.